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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취한 코끼리 길들이기> 아잔 브라흐마, 이레 열반에 드신 태국의 아잔 차 스님에게 출가한 영국 출신의 비구 아잔 브라흐마의 쉽고 재미나고 교훈 가득한 법문을 만날 수 있다.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108개의 일화로 이야기를 엮어나가는 스님의 말은 정말 쉽고 재미나다. 불교의 어려운 용어는 아예 없다. 그러면서도 볼교의 사유와 교훈을 이야기를 통해 훌륭하게 전하고 있는 것이 이 책의 더할 나위 없는 장점일 것이다. 그게 아마 서양 스님들이 가장 매력이기도 할 것이다. 종교와 문화에 구애되지 않고 이리저리 넘나들 수 있는 문화적 배경이 갖추어진 환경에서 자란 탓이다. 책 안에 담긴 스님 자신의 풍부한 경험담을 따라 읽으며 고난과 경계를 어떻게 극복하고 받아들이는 지 배우는 기회도 되었다. 아잔 차 스님의 법문집은 이미 한국에도 번역되어 읽은 적이 있지만, 기라성 같은 남방 불교의 스승과 문화를 깊이 이해하고 있지는 못하다. 아잔 문의 밀라레파 뺨치는 전기를 읽으며 감동한 기억은 생생하다. 그 아잔 문의 제자가 아잔 차 스님이고, 아잔 차를 통해 남방불교가 서양의 수많은 제자들을 얻게 되었다. 장님 코끼리 만지듯 나같이 달걀들은 책을 통해 조금씩 그쪽 세계를 알아나간다. 그것은 정말 아름다우 코끼리의 퍼즐을 맞추는 즐거움 같다. 그래서 책과 지식에 대한 중독이 생기는 것일 것이다. 술취한 코끼리는 분명 부처를 죽이기 위해 부처의 사촌이 술을 먹여 부처에게 달려들게 한 그 코끼리이다. 그러나 이것은 전통적으로 이리저리 날뛰는 우리들의 마음을 말하곤 한다. 부처는 그 미친 코끼리가 다가오자 오히려 자비로운 미소로 맞이한다. 물론 코끼리는 부처에게 다가와 무릎을 꿇는다. 우리는 저마다 자신의 생각과 마음 때문에, 자기의 생각과 마음의 감옥에 갇혀 고통 받으며 산다. 가슴 안에 열쇠를 놔둔 채 평생 밖에서 열쇠를 찾아 돌아다닌다. 책을 읽으며 그 열쇠 찾는 법을 좀 배울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 차례 = 1. 벽돌 두 장 누가 쓴 대본에 따라서 웃고 울고, 좋아하고 싫어하는가? 누가 쓴 대본에 따라서 날마다 기뻐하고 슬퍼하고, 행복하고 불행해하는가? 그 대본을 하나님이 쓰는가, 붓다가 쓰는가? 아니면 운명이 쓰는가? 부모인가, 세상인가? 그렇지 않다. 그 대본은 우리 자신의 마음이 쓰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이 쓰는 대본에 따라 우리는 사랑하고 미워하고, 즐거워하고 불만족스러워하는 것이다. 2. 마음의 문 행복과 고통을 거의 같은 비율로 얻는 것이 삶의 본질이다. 만일 우리가 지금 고통에 처해 있다면, 이것은 우리가 전에 받거나 잃은 행복 때문이다. 행복은 고통의 끝이 아니고, 고통은 행복의 끝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통해서 이 순환을 돌고 있을 뿐이다. 조금 놓아 버리면 조금의 평화가 오고, 크게 놓아 버리면 큰 평화를 얻을 것이다. 만일 완전히 놓아 버린다면 완전한 평화와 자유를 얻을 것이다. 그리하여 세상을 상대로 한 그대의 싸움은 끝이 날 것이다. 3. 내려놓기 한 여행자가 갠지스 강가에 앉아 있다가 몸집이 큰 코끼리 한 마리가 강에서 목욕을 마치고 강둑으로 올라오는 것을 보았다. 그때 갈고리 달린 막대기를 든 남자가 다가가 코끼리에게 다리를 내밀라고 명령했다. 코끼리는 온순하게 다리를 앞으로 내밀었고, 남자는 그 무릎을 밟고 코끼리 등으로 올라가 앉았다. 이러한 광경을 보고 있던 여행자는 야생의 코끼리가 인간에 의해 그토록 온순하게 길들여질 수 있음을 보고 큰 깨달음을 얻었다. 그 길로 그는 숲으로 들어가 자신의 마음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4. 술취한 코끼리 길들이기 야생의 코끼리를 자유롭게 풀어 놓으면 마음 내키는 대로 짓밟고 돌아다닐 것이다. 마찬가지로 마음속 코끼리를 정복하지 않으면 삶은 고통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생의 문제를 만들어내는 주인공은 다름아닌 이 길들여지지 않은 마음속 코끼리이다. 깨어 있음의 밧줄로 코끼리를 붙들어 맬 때 문제는 사라진다. 깨어 있는 마음을 키우지 못하면 코끼리는 통제하는 이도 없이 집착과 분노, 욕망과 쾌락 사이를 뛰어다닐 것이다. 5. 한 트럭의 소똥 시장을 지나갈 때 코끼리는 쉴 새 없이 코를 흔들어 진열된 물건을 쓰러뜨리거나 아무거나 집어서 입으로 가져간다. 노련한 조련사는 이때 코끼리의 코에 대나무 막대기 하나를 쥐어 준다. 막대기를 받아 쥔 코끼리는 그것을 꽉 잡고 가느라 주변을 돌아볼 겨를이 없다. 사람의 마음도 이와 같다. 마음 역시 이런저런 생각으로 늘 움직이지만 참다운 자신을 놓치지 않는다면, 그는 더 이상 어떤 감정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6. 울고 있는 소 당신이 식료품 꾸러미를 두 팔 가득 안고 걸어가는데 누군가 당신에게 부딪쳐 당신은 넘어지고 식료품들도 바닥에 나뒹군다고 하자. 깨진 계란들과 엎질러진 토마토 주스를 바라보며 당신은 당장에라도 소리칠 기세다. “도대체 눈은 어디다 달고 다니는 거야? 장님이야?” 그렇게 말하려는 순간 당신은 그 사람이 실제로 장님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역시 넘어져 있고, 그가 안고 있던 식료품들도 바닥에 뒹굴고 있다. 분노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동정어린 관심과 배려로 바뀐다. “다치지 않았어요? 일어나도록 내가 붙잡아 드릴까요?” 그때 당신은 자신과 타인을 치료하는 위치에 서게 된다. 7. 세상에서 가장 큰 것은 마음 전쟁터에 나갈 때 왕은 코끼리의 상아에 날카로운 칼을 묶고, 어깨에는 커다란 낫, 다리에는 창, 꼬리에는 쇠공을 매달았다. 하지만 코에 화살 하나만 꽂혀도 치명적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왕은 코끼리에게 코를 잘 감고 있으라고 가르쳤다. 하지만 한번은 전투에서 코끼리가 창을 붙잡기 위해 코를 앞으로 내밀자 왕은 더 이상 이 코끼리가 전투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내렸다. 코끼리가 화살로부터 코를 보호하듯이, 만일 사람이 자신의 혀를 잘 간수할 수 있다면 그에게는 상대할 적이 없을 것이다. 8. 가득 찬 항아리 어떤 장소든 당신이 그곳에 있기를 원치 않는다면, 아무리 안락하더라도 당신에게는 그곳이 감옥이다. 이것이 ‘감옥’이라는 단어의 진정한 의미다. 만일 당신의 직업이 당신이 원치 않는 것이라면, 그때 당신은 감옥에 있는 것이다. 자신이 원치 않는 관계 속에 있다면, 당신은 감옥에 있는 것이다. 병들고 고통스런 육체 속에 있는데 그것을 원치 않는다면, 그것 역시 당신에게는 감옥이다. 자유는 당신이 지금 있는 자리에 만족하는 것이다. 진정한 자유는 욕망으로부터의 자유이지, 욕망의 자유가 아니다. 9. 삶이라는 이름의 스승 우리들 각자는 삶의 표현이다. 삶은 친절한 스승이면서 동시에 가혹한 스승이다.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이 스승을 찾기 위해 어떤 특별한 장소에 가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삶을 경험한다는 것은 수많은 타인들을 거쳐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것이다. 자신을 탐구한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잊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자신을 잊는 것은 곧 주위 모든 존재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나무, 별, 고양이, 사람, 꿈과 소망을 가진 모든 존재, 웃음과 눈물을 가진 모든 존재와 하나가 되는 길이다. 10. 생의 아름다운 마무리 마음을 내려놓고 삶과 죽음에 대해 명상하는 것은 다른 어떤 일보다 중요하다. 명상은 우리가 가진 재산, 우리의 인간관계, 아이들, 자동차, 소유물보다 더 중요하다. 재물을 쌓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것들은 당신이 죽을 때 모두 사라진다. 즐거움에 탐닉하는 것은 결국 좌절을 가져온다. 아무리 많은 기쁨을 가진다 해도, 그것들은 노년의 안개 속에 사라진다. 나이 듦에 따라 알아야 할 것 중 하나는, 삶의 쾌락이 일찍 올수록 마지막에 남는 것은 고통이라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