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전부는 아닐지라도 / 서강석
33년 전이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면서 나는 두 살 터울 남동생과 함께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수입이 거의 없는 살림이기에 요금체납으로 그만 전기가 끊긴 이후로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서둘러 저녁
을 먹고 촛불 아래서 긴긴밤을 지새야 했다. 문명과 통하는 유일한 매체는 벽돌만 한 건전지가 달린 트랜지스터라
디오뿐.
주위에서는 컬러텔레비전의 색감이 어떻고 하던 그 시절, 내게는 라디오가 유일한 오락거리였다. 촛불 아래서
책을 읽기가 너무 힘들었기에, 라디오는 내게 책이자 친구이자 교사였다. 여러 프로그램들이 떠오르지만 할머니
가 좋아하던 <세월따라 노래따라>를 자주 들었다. 대중음악의 세계에 빠진 계기였다. 남인수의 '애수의 소야곡',
고복수의 '타향살이',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 등 애달픈 가사와 구슬픈 곡조가 열두 살 소년의 가슴에 파고들었
다. 나라를 잃고 고향을 떠난 슬픔과 한(恨)이 주는 애상적 정서가 가난한 사춘기 소년의 마음을 위로했으리라.
그러던 어느 날 주파수를 이리저리 돌리다가 팝송 한 곡을 듣게 되었다. 뜻 모를 가사였지만 그 차분하면서도 애
조 띤 목소리에 빠져들었다.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는 오직 yesterday뿐. 노래가 끝난 후 <별이 빛나는 밤에>의
DJ서세원은 이렇게 소개했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팝송 1위라 불러도 손색없는 노래'라고. 불과 2분 남짓한
짧은 곡이었지만 그 울림은 컸다. 그날 이후로 우연히 들은 그 'Yesterday'를 다시 듣기 위한 나의 노력은 시작되
었다. 팝송 프로그램만 줄기차게 들으면서 언제 그 노래가 다시 나오나 귀를 쫑긋 세우며 기다리는 일이 밤마다
계속되었다. 하지만 팝송을 좋아하지 않던 할머니는 다른 프로그램을 틀라고 성화셨기에 당신이 잠든 후에야 비
로소 주파수를 원하는 채널로 돌릴 수 있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다행히 'Yesterday'는 비교적 자주 나왔고, 나는 그 노래가 주는 여운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그때부터 비틀즈는 나의 사랑이 되었다. 비틀즈라면 무엇이든 찾아 듣고 찾아 읽었다. 비틀즈를 다룬
<월간 팝송> 부록은 내 성경이었고, 큰 맘 먹고 산 천 원짜리 테이프는 내 찬송가였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가세
가 좀 트였고, <월간 팝송> 부록에 나와 있는 알림을 읽고서 곧장 비틀즈 팬클럽에 가입했다. 대학생이 주축이었
던 팬클럽 선배들 덕분에 비틀즈 앨범 전곡을 테이프에 녹음해 들을 수 있었고,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
시절 선배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비틀즈는 내 인생의 커다란 부분으로 남아 있다. 3만 4천 명에 달하는 팬클럽을
운영하고, 음반 해설지를 쓰고 번역서를 여러 권 내다 보니 어느덧 비틀즈 전문가라는 타이틀이 붙게 되었다. 일
주일을 고민하다가 테이프를 샀던 가난한 소년에서 이제는 그 음악에 대한 전문서적을 발간할 정도가 되었으니
생각해 보면 참 감개무량하다. 게다가 올해는 그 비틀즈의 멤버였던 폴 매카트니가 서울 잠실종합경기장에서 첫
내한 공연을 가진다. 어릴 적 들었던 'Yesterday'의 주인공인 폴을 우리 땅에서 만날 수 있다니 내 개인적 성장과
함께 우리 공연 문화도 한층 성숙하고 빌전한 것 같아 가슴 벅차고 기쁘기만 하다.
근래 힐링이라는 말이 회자된다. 그만큼 치유해야 할 상처가 많은 시대라는 반증이리라. 절대적 빈곤의 시대는
갔을지 몰라도, 빈부격차는 날로 심해지고 청년실업과 세대갈등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힘내세요'라는 소박한 격
려조차 함부로 건네기 무람할 정도로 상처 깊은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래도 우리에게 기댈 무언가가 있다면 그건
음악의 힘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물론 음악이 밀린 카드값을 해결해줄 수도 없고, 직장을 구해줄 수도 없으며, 자
녀의 교내 급식비를 대신 내줄 수도 없다. 실용적인 면에서 본다면 음악이란 어쩌면 무용지물에 가깝다.
하지만 음악은 그 문제를 해결해줄 수는 없어도 해결할 수 있는 힘을 줄 수는 있지 않을까. 영화 <쇼생
크 탈출>에서 주인공이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중 '편지의 이중창'을 들으며 감옥 당장 너
머의 자유를 느낀 것처럼. 불우한 시절 우연히 들은 'Yesterday' 한 곡을 기다리던 그 간절함이 전기 끊
긴 내 어둠의 시간을 견딜 수 있는 힘이 되었던 것처럼.
지금 잠 못 이루며 괴로워하는 분들에게 따뜻한 차 한 잔괴 노래 한 곡을 권하고 싶다. 음악이 생의 전부는 아니
겠지만 어쩌면 살아가는 데 작은 힘이 될 수 있다는 말과 함께.
- 『월간에세이』(2015년 5월호) -
첫댓글 발성보다 가사가 좋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