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형 공모 교장제 학교를 찾아서 |
지난해 말 봇물 터지듯 불거진 교육비리의 해법으로 교과부는 교장공모제 확대 도입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교과부의 교장공모제는 교장자격증을 가진 이들만 교장이 될 수 있는 '초빙형'이란 점에서 무늬만 공모제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전국 6개 지역 진보교육감들은 교장 자격증이 없는 교원도 교장이 될 수 있는 '내부형 교장공모제' 확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지난 2007년 시작해 내년이면 임기가 끝나는 경남 남해 설천중학교 이영주 교장을 통해 내부형 교장 공모제의 가능성을 살펴본다.... 기자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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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천중학교 교정 교사(校舍) 앞에 제법 자태를 뽐내며 정이품송처럼 서 있는 소나무(오른쪽) 너머로 바다가 드나들며 아이들과 함께 까르르 출렁이기도 하는 곳. 설천중학교다. |
ⓒ 임정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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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남해군 설천면 노량리와 하동군 금남면 노량리를 연결하는 남해대교는 빨갛다. 그 아래를 흐르는 노량수도(露梁水道)는 푸르다. 수심이 깊고 물살이 빠르다. 그 빨갛고 푸른 남해대교를 건너 5Km 남짓 더 바다를 끼고 꼬불꼬불 들어가면 새들의 울음소리가 낯가림도 없이 먼저 반기는 3층짜리 정갈한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교사(校舍) 앞에 제법 자태를 뽐내며 정이품송처럼 서 있는 소나무 너머로는 바다가 드나들며 아이들과 함께 까르르 출렁이기도 하는 곳. 설천중학교다.
1·2·3학년 다 해서 전교생 70명. 학년마다 남·여학생이 함께 있는 학급이 1개씩이다. 여학생이 남학생의 절반인 2학년을 빼곤 반반 남짓하다. 학교가 작아 교감은 없고 교장 선생님 1명과 교사 9명이 이들과 함께 지낸다.
2007년 9월 내부형 교장공모제를 통해 지금의 이영주 교장이 부임하면서 낡고 학생 수가 줄어 가만히 두면 없어질 학교가 정갈하게 안팎을 단장하고 변화를 거듭할 수 있었다. 실제로 이영주 교장이 부임하면서부터 신입생도 늘었고 학교도 깔끔하게 새 단장을 했다.
학생들이 떠나지 않는다는 건 부모나 학생들로부터 인정 받은 것이다. 교사 초빙을 생각해 목조건물 사택까지 2동을 지었다. 전국에서 최초의 일이다. 학교 운동장을 덮고 있는 인조잔디도 코코아 천연물질로 만든 친환경 제품이다. 발암물질 덩어리의 인조잔디 운동장과는 비교를 거부한다.
달마다 수업시간표가 바뀌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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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사용 사택 초빙교사를 위해 교사 뒤편에 마련한 교사용 사택 2개동. 이것도 전국 최초다. |
ⓒ 임정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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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설천중이 자랑할 만한 것은 수업예고제와 명사특강, 방과후 활동 등이다.
수업예고제는 미리 수업 내용을 알려주어 학생들이 예습을 해오면 공부를 좀 더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 만들었다. 그런데 처음에는 교사들의 부담이 컸다. 날마다 수업 예고 파일을 만들어야 하는데 일 년이면 300여 개를 만들어야 했던 것이다.
이영주 교장은 "교사 노릇을 오래하면 수업도 더 잘 하고 모든 게 노련해야 하는데 실상은 그 반대다. 수업 예고 파일을 잘 하는 교사는 그런 능력이 축적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신규 교사는 절대 가질 수 없는 노련한 파일이 나온다. 힘들더라도 이게 습관이 되면 큰 자산이라고 교사들을 설득했다"며 수업예고제를 시작하던 당시 상황을 들려줬다.
명사 특강은 부임하면서부터 매월 이 교장이 직접 강사를 섭외하고 챙기는 교육프로그램이다. 첫해는 예산 문제 때문에 자주 못했지만 지금은 매월 빠지지 않고 챙긴다. 아이들의 반응도 좋다. 시인 도종환, 김진경씨를 비롯해 상지대 정대화 교수, 서울대 박상현 교수 등의 학자는 물론 지난 5월엔 예비 우주인이었던 고산씨가 다녀갔다.
수업 시간표도 한 번 정하면 1년 동안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매월 바꾼다. 달마다 시간표가 바뀌는 이유는 이렇다. "중학생이면 평생에서 가장 역동적인 시절인데 학년 초에 만든 시간표로 1년을 간다는 건 안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3월의 아이들 자세나 모습과 12월의 그것이 다르다는 것이다. 3~4월 결기를 내고 할 때는 공부할 분위기 만들어 줘야 하고 노량 앞바다를 건너오는 봄바람이 화사해지는 5월에는 풀어줘야 한다는 게 이 교장의 생각이다. 거기에 어울리도록 시간표를 새로 짜는 것이다.
정상적인 학교 일과는 오후 4시 30분이면 모두 끝난다. 그러면 전교생의 절반이 하교를 한다. 나머지 절반은 학교에 남는다. 국영수과 교사들도 함께 남아서 오후 8시 10분까지 방과후활동을 하는 것이다. 변변한 학원 하나 없는 시골 마을 학교에서 벌이는 방과후활동은 도시 학교의 그것과는 다르다. 학교에 남아 방과후활동을 할 것인가 아니면 집에 갈 것인가 하는 건 100% 학생들의 자율이다. 자율을 가장한 강제가 100%인 도시의 학교들과는 분명히 구별되는 점이다.
국영수과 네 과목을 일주일에 두 시간 정도씩 아이들과 함께 하는 저녁 튜터반도 반응이 좋다. 작년까지는 사회까지 포함해 5과목을 했는데 올해는 빠졌다. 담당 교사는 하겠다고 했지만 예산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게 된 탓이다. 서운해하기는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이 교장과 교사들이 함께하는 희망한문연구모임에서 직접 만든 교재로 학생들의 한자능력을 키워주는 프로그램도 인기다. 학생들은 졸업할 무렵이면 기본으로 5급 자격증은 받게 된다. 잘하는 아이들은 3급까지도 받는다.
"공부도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여기 아이들이 착한 것까지는 좋은데 숫기가 없다. 시골이고 하다 보니 아이들이나 학부모들이나 바닥에 깔린 열패감 같은 게 있다. 그런 맥락에서 도시 아이들보다 시골 아이들의 한자 감각이 낫다는 걸 활용해 나온 프로그램이 한자능력 검정시험이다"라는 게 이 교장의 설명이다.
"문제집도 사주고 급식비도 공짜, 울 학교가 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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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과후활동 교재 이 교장과 설천중 교사들이 함께하는 희망한문연구모임에서 직접 만든 교재로 학생들의 한자능력을 키워주는 프로그램도 인기다. |
ⓒ 임정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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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시간을 이용해 교실에서 만난 3학년 아이들도 학교 자랑이 여간하지 않았다. 이 교장이 부임한 후에 입학해 졸업을 앞둔 아이들이 바로 지금의 3학년들이다. 거의 이 교장과 임기를 함께 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러니 학교의 변화를 제대로 체험한 아이들이다.
"가면 갈수록 달라졌다. 입학할 때는 안 좋았는데 체육실 등 환경이 좋아졌다(김지향)"거나 "학교에서 문제집도 사주고 우유값 다 내주고 급식비까지 공짜라서 좋다(김성훈)"는 이야기부터 "분필이 바이오 초크라서 좋다. 먹어도 된다(김현진)"는 너스레하며 책장을 겸한 개인 사물함이 최고라거나, 한자자격증, 강요가 아닌 지원해서 하는 야자가 좋다는 이야기에 심지어는 (졸업한) 선배 오빠들이 잘 생겼다는 우스개까지 아이들은 당당하고 거침이 없다.
그래도 안 좋은 점이 있을 테니 말해보라고 꼬였더니(?) 돌아온 대답이 더 걸작이다. 교실바닥이 삐거덕거리던 나무에서 뽀송뽀송한 장판으로 바뀌었는데 그 바닥에 샤프펜슬 심이 떨어져 뭉개지면 까맣게 얼룩이 지는 것이란다. 물걸레로 닦으면 되지 않느냐고 했더니 그래도 보기 흉하단다. 세상에, 교실 바닥이 더러워지는 걸 염려하는 맑은 아이들을 남해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말하는 동안에도 아이들의 표정은 한결 같이 웃음이 환하다. 결코 꾸며낼 수 없는 표정들이다. 이 교장의 임기가 끝나는 내년에도 이 아이들의 웃음과 쾌활한 목소리가 여전할지는 미지수다. 이 교장은 내심 연임되기를 바라는 눈치지만 보수 성향의 교육감이 들어선 경남교육청의 선택이 어떻게 될지 아직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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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3 아이들 책상과 책상 사이에 놓인 책장을 겸한 사물함 덕분에 책가방이 필요없다. |
ⓒ 임정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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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고사 전혀 신경 안 쓴다"
[인터뷰] 이영주 경남 남해 설천중 교장 |
이영주 설천중 교장은 2007년 당시 경남 정보고 사회 교사였다. 그가 그해 9월 1일자로 내부형 교장 공모에 '낙점'돼 설천중학교 교장으로 부임하게 된다. 2급 정교사 자격증을 가진 채 17년 10개월째 아이들과 함께 하던 무렵이었다.
이영주 교장은 1980년 교단에 선 이후 1989년 전교조 창립을 주도했다가 10년 남짓 해직생활 했으며, 전교조 진주지회장과 경남지부장 등을 지냈다.
경상대 민주동문회 회장을 지내기도 한 그는 두 차례나 경남도교육감에 출마했고 현재 남해중등교장단 회장직을 연임하고 있다.
스스로를 "아시아에서 제일 오래된 2급(정교사) 교장"이라며 농담을 섞어 자랑삼아 말하기도 하는 그는 내년 8월이면 4년의 공모 교장 임기가 끝난다.
-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공모 교장은 경영계획서 교장이다. 경영계획서에서 밝힌 '공약'을 마무리해야 한다. 한때는 800명에 이르는 학생이 있기도 했지만 대한민국 시골 학교가 다 그렇듯 여기도 가만히 두면 없어질 학교였다. 학생들이 떠나지 않는다는 건 학부모나 학생들로부터 인정받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
- 처음 부임할 때는 어땠나?
"교장 연수를 받으러 갔더니 점수 따고 승진해서 교장 된 사람들이 그러더라. 이제 고생 끝 행복시작이라고. 교장 되려고 목숨 걸고 점수 땄을 테니 이제 긴장 풀고 좀 쉬고 싶다는 거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행복 끝 고생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부임해 오니까 폐교 직전이었다. 3년 동안 공사 많이 했다. 거의 다 고쳤다. 학교가 작다보니 선생님들이나 행정실이 일이 많다. 나처럼 게으른 사람이 교장 노릇하기에는 편하다.(웃음)"
- 일제고사 준비는 어떻게 하나?
"전혀 신경 안 쓴다. 그렇다고 시험 치지 말자는 이야기는 아니고 '시험 치자' 하고 교장이 안 나서면 선생님들도 신경 안 쓰니까(웃음). 강요하지 않는다. 작년에 학력향상우수학교로 선정돼 상금도 받았고 현수막도 붙였다. 처음엔 창피하게 (현수막) 그런 거 붙이냐고 하면서 못 붙이게 하다가 다 떠나고 여기 남은 아이들 생각해서 여기 남아도 공부할 수 있겠구나 싶은 마음이 생겼으면 싶어서 결국 붙이라고 했다."
- 내부형 공모교장 노릇 해보니 어떤가?
"훌륭한 제도다. 계속 이어져야 한다. 역할과 책임이 분명하고 경영계획서에 따라 소신껏 학교를 변화시키고 학생·학부모와 새로운 모색을 시도할 수도 있다. 획일적이지 않다. 확대, 정착하기를 기대한다. 연임하면 좋겠지만 새 교육감이 보수 인사라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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