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트본(Firstborn)은 원쇼(One Show), 칸느(Cannes), SXSW 등 국제 광고제에서 200번 이상 수상한 미국을 대표하는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다. 2009년 애드에이지(AdAge)의 에이리스트(A-List)에 선정되기도 했으며 OMMA의 올해의 에이전시에 2번이나 선정되기도 했다. 또한, 패스트 컴퍼니(Fast Company)의 50 이노베이티브 컴퍼니에 선정되며 펩시(Pepsi), 유니클로(Uniqlo) 등 글로벌 클라이언트와 혁신적인 광고를 제작해왔다.
이런 퍼스트본의 크리에이티브를 총괄하는 'CCO(Chief Creative Officer)'가 놀랍게도 한국인이다. 퍼스트본의 CCO 박준용은 지난 10년간 퍼스트본을 이끌어온 크리에이티브가 삶을 충실히 즐기는 매 순간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한국인으로서 미국을 대표하는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의 CCO를 맡고 계십니다.
9년 전 제가 디자이너로 합류할 때 퍼스트본은 10명 규모의 회사였습니다. 한국에서는 디스트릭트에서 팀장을 맡고 있었지만, 언어적인 부분을 비롯해 부족한 부분이 있을 거로 생각했어요.
미국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게 된 것은 아내의 도움이 컸습니다. 디스트릭트에서 글로벌 클라이언트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포트폴리오를 준비했죠. 특히 삼성의 글로벌법인 일을 많이 했었습니다. 저 자신에 대한 강한 확신, 그리고 조금 더 좋은 클라이언트와 좋은 작업을 하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실행에 옮겼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회사 책상에 전화기가 있는데 전화가 울리는 게 너무 무서운 거예요. 전화를 받으면 영어로 말해야 하니까. 하루는 전화기를 뽑아놨어요. 그러면 전화가 안 오니까. 그 정도로 많이 긴장했었어요. 그런데 큰 관점에서 생각을 해보면 프로세스에서는 다른 게 하나도 없더라고요. 그래서 열심히 했죠. 열심히 하니 좋은 기회가 많이 다가왔습니다.
그 후 개인적인 사정으로 한국에 잠시 귀국했다가 회사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를 제안해 다시 돌아오며 회사의 파트너가 되었습니다.
다른 디자이너들과 다른 특이한 경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저는 대학교에 안 갔어요. 꼭 안 가려고 했던 건 아니고 공부에 관심이 없었죠. 부모님과의 논의 끝에 검정고시로 고등학교까지 졸업장을 따고 16살부터 일을 시작했어요. 아무래도 아주 어렸을 때 시작을 해서 아직 나이가 젊은 편입니다. (박준용 CCO는 80년생, 한국 나이로 34살이다.)
많은 경험을 했죠. 운도 좋았고요. 좋은 사수분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지금은 아쉽게 돌아가셨지만 디스트릭트의 최은석 대표님도 그분들 중 하나였죠.
어떻게 16살 때부터 일을 하게 되셨나요? 한국에서는 그런 기회가 주어지는 일이 흔치 않은데요.
친한 형이 컴퓨터 쪽 일을 해서 우연히 알바 형식으로 일을 도와주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포토샵도 배우고 웹사이트 관리도 하게 되고. 기회가 거기서부터 생겼어요. (웃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지금 젊은 디자이너들을 보면 분야가 굉장히 나뉘어 있어요. 전문가를 키우는 거죠. 예를 들어 3D 안에서도 모델링 전문가, 라이팅 전문가가 따로 있죠.
하지만 저 같은 경우는 굉장히 여러 가지 분야를 조금씩 했어요. 그래서 주변에서는 굉장히 걱정했죠. 한 가지를 파고드는 것 같지 않으니까. 하지만 지금에 와서 보면 그런 여러 가지 경험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만약 한우물만 팠다면 그렇게 되지 못했을 겁니다.
인생에서 무엇을 하든 결과적으로는 자기가 가려는 길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르바이트를 하든, 배달을 하든 말이에요.
업계에 주목하고 계신 에이전시가 있나요?
요즘은 계속 기술이 중점이 되잖아요? 항상 Wieden and Kennedy의 작업을 좋게 보아왔던 것 같아요. 테크놀러지에 강한 회사는 아니지만 스토리텔링을 잘하는 회사죠. 기본에 충실하며 자신이 잘했던 것과 새로운 것을 잘 믹스해서 나아가는 것 같다고 생각해요. 사실 업계의 다른 회사들의 작품을 자주 보지는 않는 편입니다.
소셜미디어와 디자인의 결합이 계속될 것으로 생각하시나요?
마케팅의 관점이 많이 바뀌었어요. 한때는 페이스북과 트위터에만 집중되던 때가 있었지만, 돈으로 환산하기 어렵다는 것을 마케터들이 깨달으면서 새로운 균형이 맞춰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나 지금으로선 가장 핫한 요소이기 때문에 어떤 프로젝트이든 SNS와 관련이 없을 순 없죠.
퍼스트본이 덴츠네트워크에 조인하면서 디자인한 덴츠의 웹사이트
최근 프로젝트 중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가 있다면요.
유니클로 핀터레스트 프로젝트가 기억에 남습니다. 미디어 바이나 예산이 아무래도 거의 없었기 때문에 제약이 많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핀터레스트가 핀할때 높이에 제약이 많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핀터레스트를 해킹한다는 의미로 이런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기획했어요.
UNIQLO PINTEREST HACKING
오히려 안 보려고 하는 편이죠. 초년병 때는 정말 화면캡처도 많이 해놨었는데...... 게을러진 거냐면 그건 아닙니다.
어릴 때는 인생의 어떤 경험이 디자인된다는 것을 몰랐어요.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있는 사람이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나이가 들고 아이가 생기면서 생활에서 영감을 받게 되더군요.
아이를 얻고 나니까 도시 안의 유모차가 정말 많이 보이는 거예요. 나 자신을 살면서 다른 관점에 놓이게 되는 거죠. 다른 이를 위한 관점으로 세상을 보게 되니까 시야가 넓어지더군요. 피셔 프라이스(미국의 어린이 완구회사)의 작업을 하는데 너무 즐거운 거예요. 왜냐면 나 자신이 거기 사는 사람이니까.
어떻게 보면 인생은 그런 것 같아요. 열심히 놀기도 하고, 게임도 하고, 여행도 많이 다니고 하나하나 매순간을 열심히 사는 게 좋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는데 가장 빠른 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가족이 생긴다는 것은 디자이너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는 점이 제일 좋죠.
디자인할 때 프로세스가 딱 하나거든요. 모든 경우의 수를 다 디자인해보자. 디자인 탤런트보다 시야가 넓은 사람이 더 좋은 디자이너라고 생각해요. 저희가 항상 디자이너들에게 하는 말이 나가서 인생을 즐기고 열심히 살라는 거죠, 시각을 넓히라는 거예요.
Under Armour I Will 프로젝트
Pepsi Soundoff 프로젝트
자료제공 / 퍼스트본 글 김누리 @Noori_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