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엿보기
언 땅의 꽃씨처럼(책만드는집)
김수정
대구 출생. 2011년 《21세기문학》 신인상 등단.
시인에게 ‘자기-돌봄’이란 스스로를 통해 세계를 확장하는 실천이다. 그는 이 실천을 통해 타자와의 관계를 정립하고, 세계를 자기 자신에게 기투企投하며, 종국에는 ‘연가戀歌’ 만들기에 돌입한다. 시인이 산출한 문장이 분명하게 지향하는 형이상학과 윤리는 사랑 노래에 이르러 가장 멀리, 또한 가장 깊고 날카롭게 가지를 뻗는데, 여기서 연가는 “너를 낳고/네 이름의 엄마로 불릴 때/나는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겁쟁이가 되었다//더듬더듬/실수투성이가 되었다”(「초행」)고 노래 하 듯, 단순한 ‘사라’이 아니라 관계의 새로운 집적이자 압축이며 동시에 확장을 상징한다.
만일 이 시집을 통해 그의 시가 기꺼이 다다른 ‘장소’가 있다면 그곳은 연가가 고요히 흐르는 뜨거운 심장 한 가운데 일 것이다. 즉, 그는 감각적이고 세련된 사랑이 아니라, 불편하고 눈물겨우며 또한 상처투성이일 뿐인, 그 지겹고 지루한, 그러나 가장 세속화된 위악僞惡마저도 품어야 하는 사랑에서 비로소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김수정 시인이 발견한 자기 자신을, 그의 10년이 응축된 짧지만 거대한 사랑의 서시序詩를 듣도록 하자.
당신의 우산이 우리의 첫 시집이다
벚꽃비 날리는 호숫가
비에 젖은 연분홍 꽃잎들의 단칸방이다
매일 떠나고 매일 돌아오는 당신과 나의
까치발 작은 창이 밤하늘을 읽던 집
빗방울이 동당동당 피아노를 치던 집
버드나무의 노래가 강물 따라 흐르던 집
새들의 하늘을 빌려 허공에 지은 집
우리 것이 아니지만 우리만의 것이었던
많은 거처들...
어느 날 내가 먼저 우주로 날아가면
당신은 나를 찾아 어느 집을 헤맬까?
주소를 알려주지 않아도 당신이 찾아와
캄캄한 방 밝혀두고 기다리고 있을까?
-「애가」 전문
이 시에서 당신과 나는 명징하게 ‘우리’로 호명된다. 연가의 문장에서 존재-들은 ‘우리’라는 새로운 주어의 영향권 아래서 다시 배치된다. 주체와 타자의 균형이 기울어져 한쪽이 다른 한쪽을 장악하거나 아니면 서로에게 포획당해 형체도 없이 용해되지 않고 각자 자신을 유지한 채 말이다. 상상해보자. 벚꽃비 내리는 호숫가에 연인들이 우산을 쓰고 걸어간다. 그 풍경은 그들의 감정만큼이나 애틋할 것인데, 시인은 이마저도 존재-함의 실존으로 확장하여 “당신의 우산이 우리의 첫 집이다”라고 쓰는 것이다. 시인은 ‘연가’를 두 사람간의 단순한 감정 흐름으로부터 그들이 살아갈 운명적 실존과 극적인 사건의 나타남으로 돌려세운다.
당신과 나의 ‘우산’은 “비에 젖은 연분홍 꽃잎들의 단칸방”을 대칭한다. 그리고 두 사람의 존재-함의 체體인 ‘집’ 또한 그 대칭을 넘어서서 “매일 떠나고 매일 돌아오는 당신과 나의//까치발 작은 창이 밤하늘을 읽던 집”과 “빗방울이 동단동단 피아노를 치던 집”, “버드나무의 노래가 강물 따라 흐르던 집”, 새들의 하늘을 빌려 허공에 지은 집“으로 끝없이 확장된다. 내가 나로서 당신에게 닿고, 당신은 우리로서 나를 포용하는 ‘영원회귀’, 이것이 시인 연가를 통해 이끌어내는 것이다.
-박성현, 시집해설 「일상화된 기적, 그 불가해한 사랑노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