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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산림 대법회 50강-3 (2014. 4. 7.)
大方廣佛華嚴經 卷第十七
初發心功德品(초발심공덕품) 第十七.
七. 法慧菩薩의 重頌
17. 法界普入
18. 入佛種性
19. 成佛現示
20. 佛境界平等
21. 功德의 平等
22. 一身과 無量身
모두가 그렇고, 그러한 것을 우리가 깨닫기까지가 좀 힘들어서 그렇지,
사실은 그렇게 엮여서 돌아가고 있습니다. 지혜善巧로써 법장에 통한다. 그리고 깊은 지혜의 곳에 들어갔으되 집착하는 바가 없도다.
隨順思惟說法界(수순사유설법계)를,
수순하여 사유해서, 상황 따라서 사유해 법계에 설하는 것을
經無量劫不可盡(경무량겁불가진)하며,
무량겁이 지날 때까지 가히 다 하지 못하며,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법계를 설명하고, 진리의 세계지요. = 說法界. 진리의 세계를 설명하는 것이 끝이 없더라.
智雖善入無處所(지수선입무처소)나,
지혜가 비록 처소가 없는 곳에 善入 = 잘 들어가나, 그러나
無有疲厭無所着(무유피렴무소착)이로다.
疲厭도 없고, 피로하고 싫어함도 없고 집착하는 바도 없더라.
사실은 그렇게, 낱낱이 그렇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안으로 계산하면 우리 한사람ㆍ한사람이 60조를 가지고 있고, 또 60조마다 매 60조세포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3600조인간과 같이 더불어서 같이 돌아가고 있는 것은 이해를 해요. 일단 우리가 설명하니까요. 사실은 그렇고요.
제가 왜 세포이야기를 많이 하느냐? 전번에도 말씀 드렸지만 저는 매달 2억cell(쎌), 2억 세포를 제 몸에 주입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제 세포입니다.
제 세포를 요만치 꺼냈는데, 그것을 무수히 배양하는 겁니다. 아무리 배양해도 끝도 없습니다. 병원에 물어보니까 한 번만 꺼내면 수 천만 번을 배양해도... 세포는 식물처럼 배양이라 그러고, 그 다음에 형상화하면 복제라 그래요. 개나 돼지 소나 많이 복제하잖아요. 사람도 “복제”그래요. 그런데 세포는 배양이라 그래요. 무수히 배양해도 그대로 있다는 겁니다. 무수히 배양해도... 예를 들어서 제가 책을 써서 출판사에 그대로 보내도 제 컴퓨터에는 그냥 아무 손색도 없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또 출판사에서는 여러 번, 수 10번 카피해서 이리 고치고 저리 고쳐도 하나도 변함없이 그대로 다 있습니다. 우리 인체도 똑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세포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이 제가 매달 직접 경험하는 일이라서, 또 그 분야에 대해서 저 나름대로 공부를 했고, 또 그런 데에 대한 어떤 새로운 발견이 있으면 막 눈을 부릅뜨고 연구를 하고 하니까 그래서 세포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직접 저하고 연관 되고, 여러분도 똑 같이 그렇게 적용이 되는 일이고... 그것을 밖으로, 예를 들어서 저~ 태양계라든지 은하계라든지 무수히 멀고 먼 그런 몇 100억 광년 밖으로까지, 천문에도 제가 관심이 많은 것이 그래요. 천문위성들, 또 별들의 세계. 이런 데 대해서 어떤 새로운 별을 발견했다하면 그것도 저는 상당히 취미가 있어서 그것을 들여다보기를 좋아합니다.
그것도 인체하고 똑 같은 겁니다.
안으로 들어가면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세계가 펼쳐지고, 밖으로 나가도 똑 같아요. 드넓은 우주나, 미세한 세포나 가장 중심은 “나” 입니다. “나” 라고요. 나에서부터 넓은 데로, 나에서부터 좁은 데로 이렇게 펼쳐집니다.
우주도 인체하고 똑 같고 모든 존재가 똑 같습니다.
18. 入佛種性(입불종성)
三世諸佛家中生하야 證得如來妙法身하고
三世諸佛家中生(삼세제불가중생)하야,
三世諸佛의 집에서 태어나서
證得如來妙法身(증득여래묘법신)하고,
여래의 妙法身을 증득한다. 아~, 이런 것 좋잖아요. 三世諸佛집에서 우리가 태어난 겁니다. 이것이 피를 받아 태어난 것이 아니라, 법을 받아 태어난 것이지요. 法化生이라. 법의 교화로부터 태어났다. 법화경에도 그런 말이 있습니다. 從佛口生이라. 부처님의 설법 소리를 듣고 발심한 제자. 그렇게 번역하는데, 부처님의 설법 소리를 거기는 부처님 입으로부터 태어난 제자. 이런 표현을 하고, 여기서는 뭐라고요? 佛家中으로부터, 부처님 집에서 태어난 겁니다.
우리 모두가 부처님의 아들딸이잖아요.
부처님정신으로 살아야 되는 것이지요. 證得如來妙法身하고,
如來의 妙法身을 증득하고, 그것이 곧 여래로 사는 길이지요.
19. 成佛現示(성불현시)
普爲群生現衆色이 譬如幻師無不作이라
或現始修殊勝行하고 或現初生及出家하며
或現樹下成菩提하고 或爲衆生示涅槃이로다
普爲群生現衆色(보위군생현중색)이,
널리 群生을 위해서 여러 가지색을 나타내는 것이
譬如幻師無不作(비여환사무불작)이라.
마치 마술사가 뭐든지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이 없는 것과 같더라.
마술사가 다 눈속임이기는 하지만, 별별 것 다 만들어내지요. 보통 제일 잘 만들어내는 것이 비둘기ㆍ비둘기 알ㆍ카드ㆍ수건ㆍ색깔 있는 종이들. 입속에서도 웬 종이가 그렇게 많이 나오고, 웬 보자기가 그렇게 많이 나오는지 하여튼 눈속임은 참 잘해요. 그것이 無不作이잖아요. 짓지 못하는 바가 없더라. 어떻게 눈을 속이는지 사람 뉘어놓고 자르는데, 사람은 하나도 안 다치는 것, 그것도 신기해요. 전부 눈속임이기는 한데요.
或現 始修殊勝行(혹현시수수승행)하고,
혹은 수승한 행을 닦는 것을 비로소 나타내기도 하고, 수승한 행. 그 다음에 或現 初生及出家(혹현초생급출가)하며,
혹은 처음 태어난 것도 나타내고, 출가한 것도 나타내고,
或現 樹下成菩提(혹현수하성보리)하고,
或現보리수 나무 밑에서 보리를 이루는 것, 정각이루는 것을 나타내기도 해요.
或爲衆生示涅槃(혹위중생시열반)이로다.
혹은 중생을 위해서 열반을 보이는 도다.
그렇습니다. 부처님의 법신은 法身常住 그러잖아요.
법신은 항상 있습니다. 부처님태어나기 이전부터 있었기 때문에, 부처님 육신이 열반한다고 해서, 그것은 우리안목으로 열반한다고 보는 것이지요.
그래 중생을 위해서 열반을 보인다 하는 겁니다. 그런데 부처님의 법신은 우리나 실재 부처님이나 동등하기 때문에, 항상 그 자리입니다. 그 다음에
20. 佛境界平等(불경계평등)
菩薩所住希有法은 唯佛境界非二乘이라
身語意想皆已除하고 種種隨宜悉能現이로다
菩薩所得諸佛法은 衆生思惟發狂亂이라
智入實際心無碍하야 普現如來自在力이로다
此於世間無與等이어든 何况復增殊勝行가
雖未具足一切智나 已 獲如來自在力하며
已住究竟一乘道하야 深入微妙最上法이로다
菩薩所住希有法(보살소주희유법)은,
보살들이 머무는바 희유한 법은, 보살들은 희유한 법에 머무니까요.
唯佛境界非二乘(유불경계비이승)이라.
오직 부처님의 경계요 이승의 경계가 아니다.
성문ㆍ연각의 경계가 아니다. 이 말입니다.
身語意想을 皆已除(신어의상개이제)하고,
몸과 말과 생각의 생각을, 의식의 생각을 다 이미 제해버리고,
신 구 의를 다 떠난 것이지요.
種種隨宜悉能現(종종수의실능현)이로다.
가지ㆍ가지를 편의를 따라서, 편리에 따라서 다 능히 나타내는 도다.
부처님 경계하고 보살의 희유한 법하고 같은 경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菩薩所得諸佛法(보살소득제불법)은,
보살이 얻은바 모든 부처님의 법은
衆生이 思惟하면 發狂亂(중생사유발광란)이라.
그야말로 발광한다. 이 말입니다. 정말 보살이 얻은바 모든 부처님의 법이라고 하는 것은 보통 중생들이 생각해 보면 바로 발광하게 돼있다.
狂亂하게 돼있다. 그만치 차원이 다르다는 뜻을 표현한 것입니다.
智入實際心無碍(지입실제심무애)하야,
지혜가 實際. 진리에 들어가서 마음이 걸리는 바가 없어요. 그래서
普現如來自在力(보현여래자재력)이로다.
여래의 자재한 힘을 널리 나타내는 도다.
此於世間無與等(차어세간무여등)이어든,
이것은 무슨 말인가 하니 此於라고 하는 것은 초발심입니다.
보살이 초발심한 것은 세간에 있어서 더불어 같을 이가 없어요. 그동안 우리가 初發心功德品을 쭉~~ 살펴보았습니다. 여기 몇 가지 비유가, 열 댓가지 비유를 들고 다시 이비유는 그만두고 하고 또 새로운 비유를 들고, 그래놓고 또 이비유는 그만두고 차츰ㆍ차츰ㆍ차츰 그 비유의 내용이 격상되어가는 그러한 내용으로 저 산문에서 우리가 보아왔습니다. 사실은 初發心이라고하는 그 격은 세간에 있어서 더불어 같을 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10주품 안에, 10주법문 안에 해당되는 것이 初發心功德品하고 또 명법 품입니다. 그런데 그 나머지 10행 품ㆍ10회향 품ㆍ10지 품ㆍ등각ㆍ묘각. 이런 법문이 앞으로 쫙~~ 남아있습니다.
何况復增殊勝行(하황부증수승행)가? 이 말이
다시 더욱 더 수승한 행이겠는가? 앞으로 나아갈, 지금 初發心功德品.
물론 “초발심시변성정각” 이라고 해서, 초발심이 그대로 정각이고, 정각이 그대로 초발심이고요. 그중에 “초발심이 정말 값지다. 훨씬 어렵고 소중하다.” 이런 말씀을 했었지만, 그러나 그 차원은 차츰ㆍ차츰, 앞으로ㆍ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수승한 행을 이렇게 또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초발심도 그러한데, 초발심만 해도 세간에 같을 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10행ㆍ10회향ㆍ10지ㆍ등각ㆍ묘각이겠는가? 이런 뜻이지요.
雖未具足一切智(수미구족일체지)나,
비록 一切智를 구족하지는 못했으나, ‘초발심보살이 아직 부처님은 되지는 못했어.’ 그 말입니다. 雖未具足一切智나 = 비록 일체지를 구족하지는 못했으나,
已獲如來自在力(이획여래자재력)하며,
이미 여래의 자재한 힘은 얻었어요. 초발심만 확실하게 했으면, 우리가 발심만 확실하게 했으면 사실은 완전한 보살입니다. 무엇도 못 할 일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여래의 자재한 힘을 이미 얻었다. 일체지는 조금 떨어진다 하더라도...
已住究竟一乘道(이주구경일승도)하야,
究竟一乘道 = 최후의 一乘道. 일불승도지요. 사람이 그대로 부처라고 하는 이 경지. 거기에 이미 머물러서
深入微妙最上法(심입미묘최상법)이로다.
微妙한 最上法, 미묘한 최상법에 깊이 들어갔더라.
초발심보살의 그 경지를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 다음에
21. 功德의 平等(공덕평등)
善知衆生時非時하야 爲利益故現神通호대
分身遍滿一切刹하야 放淨光明除世暗이로다
譬如龍王起大雲하야 普雨妙雨悉充給이라
觀察衆生如幻夢하야 以業力故常流轉이로다
大悲哀愍咸救拔하야 爲說無爲淨法性하니
佛力無量此亦然이라 譬如虛空無有邊이로다
爲令衆生得解脫하야 億劫勤修而不倦하며
種種思惟妙功德하야 善修無上第一業하며
於諸勝行恒不捨하야 專念生成一切智로다
善知衆生時非時(선지중생시비시)하야,
중생들의 때와 때 아닌 것을 잘 알아서, ‘지금 이 이야기가, 지금 저 사람의 상황에 맞는가? 안 맞는가?’ 이것을 잘 알아서 설법을 해야 되고, 교화를 해야 되는 겁니다. 善知衆生時非時라. 남방불교에서 공부한 스님을 49재하는데 법문을, (그 스님, 큰스님이라는 말만 듣고) 올려놨더니 “아이구 49재 이것 필요 없다.” 고, 천도해달라고, 49재 법문해달라고 했더니, 49재 이것 필요 없는 거라고, 49재를 왜 하느냐고, 사람이 죽으면 아무 것도 없는데, 無我인데, 무아만가지고 이야기해요. 無我之中에 아가 없는 가운데, 有眞我 그 말이 어디엔가 곧 나옵니다. 眞我가 있는 사실을 모르는 겁니다. 無我만 아는 겁니다. 아주 치우친 소견이지요.
有를 알면 空도 알아야 되고, 空을 알면 또 有를 알아야 됩니다.
色卽是空 空卽是色아닙니까? 색이 곧 공이고 공이 곧 색입니다.
無我가 眞我고, 眞我가 無我입니다. 眞我卽是 無我고 無我卽是 眞我입니다.
그런데 없다는 소리만 하는 겁니다. 49재 지낼 필요 없고, 영혼이 어디 있느냐? 하고, 이래서 초청했던 스님이, 소개해준 스님에게 가서 하소연을 하는 겁니다. 세상에, 천도해달라고 하니까 49재 필요 없다고, 제자들이 정성들여서 7ㆍ7재를 그렇게 모시고 마지막 날인데, 큰스님 오셔서 근사하게 천도 하려고 그렇게 했는데, 그런 소리를 법상에 올라가서 하더라는 겁니다.
그 하소연을 들은 스님이 저한테 또 하는 겁니다.
“도대체 저 사람이 저런 사람” 이라고... 저도 잘 아는 사람입니다.
소개해준 스님도 알고, 그 사람도 알고요. 세상에 그런 법이 어디 있냐고요? 지가 안 믿더라도ㆍ그런 사실을 지가 안 믿더라도 그래도 중생에게 수순해서, 時非時는 알아야 될 것 아닌가? 時非時. 그 말을 할 땐가 아닌가를 알아서 해야 될 것 아닌가? 이것이 그 말입니다. 善知衆生時非時. 이것만 잘 알아도요? 또 10력 가운데 處非處 있지요. 열 가지 힘 가운데 도리와 도리가 아닌 것, 이치와 이치가 아닌 것을 아는 것.
제가 화엄경을 쭉~~ 공부하다보니까 수많은 법수가 여러 번 반복해서 나오는데 제일 자주 나오는 법수가 10력 입니다. 부처님을 열 가지 힘으로 표현하는 것이 제일 많더라고요. 거기에 뭡니까? 첫 조항이 處非處. 도리와 도리가 아닌 것을 아는 것. 그것이 부처님의 자랑스러운 힘입니다. 이것도 보살은 時와 非時를 아는 것이 보살이 자랑할 힘 가운데 하나입니다.
능력가운데 하나고요.
爲利益故現神通(위리익고현신통)호대,
중생을 이익하게 하기 위한 까닭에 신통을 나타내나니,
分身遍滿一切刹(분신편만일체찰)하야, 분신이 一切刹에 변만 해서
放 淨光明 除世闇(방정광명제세암)이로다.
청정한 광명을 놓아서, 진리의 설법이지요? 진리의 설법을 해서 세간의 어둠을除世闇 = 세상의 어둠을 전부 제거한다. 세상의 어둠이 뭐겠습니까?
인과의 도리모르는 것이 세상의 어둠입니다. 인과의 도리 몰라서 그렇게 캄캄한 겁니다.
온갖 부정부패 다 저지르고, 불쌍한 일들이 그렇게 막 일어나고, 사기협잡이 난무하고, 아~ 참, 물질적으로는 얼마나 풍요롭고, 얼마나 많이 발전했고, 얼마나 편리하게 삽니까? 그런데 그야말로 눈만 감으면 코 베어가는 것이 아니라 눈 뜨고 있는데 코 베어가는 세상입니다. 참~~ 조심해서 살아야 됩니다. 정말 조심해서 살아야지, 지금 보이스 피 싱이라고 그저 매일 신문기사 오르고 내리는 것이 전화로 사기 치는 것 아닙니까? 저 한테도 몇 번 그런 전화가 오는데, 저는 별 볼일 없으니까 “다음에 봅시다.” 하고 끊어버리지요. 그런데 모르는 사람들은 “당신의 통장에 이상이 있다.” 이러면 덜컥 겁이 나서 뭐도 가르쳐주고ㆍ뭐도 가르쳐주고 하는 것 아닙니까?
참, 사기협잡만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물질문명이 아무리 발달했다 한들 무슨 좋은 나라로 만들었다고 할 것이 있습니까?
여기 放 淨光明 除世闇이라.
청정한 광명을 놓아서, 진리의 설법ㆍ인과의 이치, 이렇게 아주 축소해서 이야기합시다. 인과의 이치를 하나 잘 가르쳐서 세상의 어둠을 제거하도다.
譬如龍王起大雲(비여룡왕기대운)하야,
비유하자면 그것은 용왕이 큰 구름을 일으켜서
普雨妙雨 悉充洽(보우묘우실충흡)이라.
아주 미묘한 비를 널리 비 내려서 모두ㆍ모두 充洽하게, 충만하게 하고 흡족하게 하는 그런 격이다. 연기의 도리 하나 우리가 잘 알고, 인과의 도리 잘 알아서 인과대로 우리가 가르치고, 인과대로 실천하면 마치 가뭄에 용왕이 큰 구름을 일으켜서 단비를 쏟아 붓는 것하고 똑 같다.
觀察衆生 如幻夢(관찰중생여환몽)하야,
중생들이 환영과 같고 꿈과 같은 것을 관찰해서
以業力故로 常流轉(이업력고상류전)이로다.
업력을 쓴 고로 항상 流轉하도다. 流轉함을 잘 살펴야한다. 그런 뜻이지요.
大悲哀愍으로 咸救拔(대비애민함구발)하야,
大悲哀愍으로 = 큰 자비와 불쌍히 여기는. 중생을 哀愍히 여기는 것으로써 다 구제하고, 고통에서 뽑아내어서
爲說無爲淨法性(위설무위정법성)하니,
위하여 無爲淨法性. 이것은 연기의 이치를 이야기할 때 그래요.
이 연기의 이치는 부처님이 만든 것도 아니요, 부처님이 오시기 전이나,
부처님이 가신 이후나, 항상 이 우주에 존재하는 것이 인과의 이치이고,
연기의 법칙이다. 그래서 無爲입니다. 無爲法이라고요. 無爲淨法입니다.
이것이 無爲의 청정한법입니다.
본래 있는 이치지 누가 만든 것은 아닙니다.
부처님이 만든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만든 것은 변하는 것이고, 변하는 것은 일시적인 것이지 영원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계율이라든지 그것은 그 시대ㆍ그 상황ㆍ그 민족에게, 또 그 사람들에게 맞는 것이, 다른 데 가면 틀리는 것, 그것은 한 순간 하나의 방편으로서는 훌륭하지만 진리는 아닌 것이지요. 그런 것입니다. 無爲淨法性은 못 된다. 하는 것입니다.
위하여 無爲淨法性. 함이 없는, 조작이 없는 청정한 법의 성품을 설하는 도다.
佛力無量此亦然(불력무량차역연)이라.
부처님의 힘도 한량없고, 이 無爲의 淨法性도 또한 한량이 없다.
또한 그러하다.
譬如虛空無有邊(비여허공무유변)이로다.
마치 허공이 가없는 것과 같다. 갓이 없는 것과 같도다.
爲令衆生得解脫(위령중생득해탈)하야,
중생들이 해탈을 얻도록 하기 위해서
億劫勤修而不倦(억겁근수이불권)하며,
중생들이 해탈을 위해서 억 겁 동안 부지런히ㆍ부지런히 닦고 닦아서 게으르지 않는다. 게으르지 않으며
種種思惟妙功德(종종사유묘공덕)하야,
가지ㆍ가지로 미묘한 공덕을 思惟해요. 진정 아름다운 공덕, 미묘한 공덕이 무엇일까? 냉정하게 사유해서
善修無上第一業(선수무상제일업)하며,
無上第一業. 가장 높고 제일가는 업을 잘 닦아라. 우리가 “불 업 보살” 하잖아요. 부처의 부처행도 佛業이요, 보살의 보살행도 보살業입니다. 業이라고 하면, 우리가 중생의 어떤 좋지 아니한 부정적인 생각을 먼저 떠올리는데, 결코 그런 것이 아니지요. 여기 보십시오. 無上한 = 가장 높은 = 위가 없는 = 제일가는 업을 잘 닦아라. 無上第一業을 잘 닦아라.
業力難思議라. 우리는 업을 안 짓고 못삽니다.
부처님도 업 짓고 삽니다. 무슨 업을 짓느냐? 佛業을 짓는 겁니다.
부처의 業을 짓는 것이지요. 관세음보살은 관세음보살의 업을 짓고 사는 사람 아닙니까? 그것이 無上第一業입니다. 이런 용어들도요? 어디 다른 경전에서는 못 봅니다. 이것 화엄경에서 보는 것입니다. 대단하잖아요.
無上第一業을 善修한다. 잘 닦는다.
於諸勝行을 恒不捨(어제승행항불사)하야,
모든 수승한 행을, 아주 뛰어난 보살행을 항상 버리지 아니해서
專念生成一切智(전념생성일체지)로다.
오로지 一切智를 생성하는 것을 생각한다. 오로지 그저 一切智. 그것은 부처님이 가지신 지혜. 이것은 평등 지ㆍ차별지. 차별하는 것도 환히 알고,
평등한 입장도 환히 알아요. 空의 입장은 평등이지요. 空의 입장도 환히 알아요. 색의 입장은 차별입니다. 우리 현상은 전부 차별하잖아요.
이것은 색의 입장인겁니다. 색의 입장도 환히 아는 겁니다.
그래서 어떤 데는 더러 보면 一切智智. 지혜 智자를 두 번 써 놓은 데가 있지요. 그래서 지혜와 지혜. 평등 지ㆍ차별지. 空의 지혜ㆍ有의 지혜. 이 모든 것을 전부 이룬다. 그래서 아까 보살은 아직 一切智는 이루지 못 했지만, 그런 표현이 있었습니다.
22. 一身과 無量身(일신무량신)
一身示現無量身하야 一切世界悉周遍호대
其心淸淨無分別하니 一念難思力如是로다
一身示現無量身(일신시현무량신)하야,
一身이 無量身을 示現해서
一切世界悉周遍(일체세계실주변)호대
其心淸淨無分別(기심청정무분별)하니
一念難思力如是(일념난사력여시)로다.
一念의 難思力이 이와 같더라.
아까(50-2) 一毛端에 現衆刹. 한 터럭 끝에 온갖 무수한 세계를 나타낸다.
“우리 일신상에 60조 세포가 있고, 60조 세포마다 각각 또 60조의 세포가 있고, 우리는 3600조의 세포를 대중으로 동시에 모시고 다니는 거대한 세계며, 거대한 법당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개인이 화엄경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3600조의 세포가 함께 화엄경 공부를 하고, 환희를 하든 슬퍼하든 화를 내든 우리는 거대한 3600조의 대중과 더불어 희로애락을 함께한다.” 이런 말씀을 50-2에서 드렸는데, 여기도 같은 이야기가 나오네요. 그래서 화엄경 전체를 꿰뚫어보신 의상스님께서 一微塵中含十方 一切塵中亦如是 그렇게 아주 간단한 두 구절로 화엄경의 여러 구절의 의미를 이렇게 간단하게 표현을 했습니다.
여기도 보십시오.
一身示現無量身 했잖아요. 한 몸에서 한량없는 몸을 나타낸다.
난초 잎 하나에서 수 백ㆍ수 천포기의 난초를 배양해내고, 인간의 세포하나에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거기에서 다 복제해 내는 것이지, 무슨 오장육부 따로 복제하고, 머리카락 따로 복제하고, 머리카락 세포 따로 있고, 무슨 뼈세포ㆍ피 세포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장육부세포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 세포 속에 그 모든 것이 다 포함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소나 돼지를 복제할 때도 세포하나 가지고 복제하지, 무슨 오장육부세포 따로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고요. 一身에서 示現無量身입니다.
제가 최첨단 과학이론이고, 최첨단 물리학이론이 바로 화엄경이다. 라고 하는 말을 자신 있게 하는... 제가 그런 분야에 전문가는 아니지만, 그저 수박 겉핥기식으로 그저 조금 아는 지식가지고 견주어보면, 이런 말이 세상에 지금 이 시대에, 어찌 이런 말을 하느냐고요. 一身이 示現無量身이라.
정말 이 시대에 딱 적합한 이론입니다. 아까 그랬지요? 전자에도 화엄경한 권을 입력해 놓으면, 그것을 천 번ㆍ만 번 복사해도 하나도 흐트러지거나 잘못되지 않고 그대로 분화하는 것, 그대로 분화하잖아요. 복사가 가능한 겁니다. 배양이라고 했든, 복제라고 했든, 카피라고 했든, 그것 다 같은 의미입니다. 一身이 示現無量身. 그래서 一切世界悉周遍입니다.
낱낱 세포마다 전부 한량없는 모든 내용을, 인체라고 하는 모든 구조를 다 가지고 있는 것이지요.
其心淸淨無分別하나, 그 마음이 텅 비어서 아무런 분별은 없어요.
그래야 모든 것을 제대로 분별해 내는 것이지요. 우리가 어떤 고정관념에 딱 사로잡혀 있으면 더 이상 思考가 원활하게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사고가 원활하게 千變萬化를 할 수 있으려면, 고정되면 안 됩니다.
고정관념을 제일 싫어하는 것이 불교라고요. 고정되게 되어있지 않습니다.
應無所主而生其心이니까요. 머무는 바 없게 돼있고, 머무는 바 없게 돼있으니까 머물지 않고 그 마음을 천변만화로 엮어내는 겁니다.
계속 끊임없이 자아내잖아요. 우리가 오늘 하루만 가지고 생각해 봅시다.
하루 동안에 우리가 마음 쓴 것이 그 양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야말로 천백억 화신으로 나투잖아요. 천백억 화신이 하나ㆍ하나 千變萬化하는 겁니다. 한 몸ㆍ한 몸이 千變萬化. 천백억 곱하기 千變萬化를 얼마나 되는가?
한 번 계산해보세요. 그것이 끊임없이ㆍ끊임없이 반복이 된다니까요.
그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우리가 가능하면 고정관념 갖지 말고 텅 비우는 것. 그래서 其心淸淨無分別이 되는 길이 가장 중요한 겁니다.
그래서 화엄경을 공부할 때도 우리가 선입관가지고 글을 읽을 것이 아니라, 선입관 없이 그대로,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는 자세. 이것이 무엇보다도 참 중요한 겁니다. 그것 참~ 어렵습니다. 저는 성경을 읽어도 불교식으로 해석하려고 들고, 유교 책을 읽어도 불교식으로 해석하려고 들고, 노자나 장자를 읽어도 역시 불교식으로 해석하려고 들고, 심지어 周易禪解 라고 하는 것 있잖아요. 우리스님이 쓴 주역선해 라고 하는 것이 있는데, 주역도 불교인이 보면 불교식으로 해석이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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處非處. 도리와 도리가 아닌 것을 아는 것. 그것이 부처님의 자랑스러운 힘입니다.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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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身示現無量身...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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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미진중함시방 고맙습니다
佛業..._()()()_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 사사무애의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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善知衆生時非時(선지중생시비시)하야
善修無上第一業(선수무상제일업)하며
고맙습니다._()()()_
나무 대방광불화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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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대방광불화엄경 일체진중역여시 일미진증함시방 나무대방광불화엄경
고맙습니다 니무대방광불화엄경
부처님의 십력 가운데 處와 非處(도리와 비도리, 이치와 비이치), 時非時(때와 때 아닌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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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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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인욕요지 삼세일체불 응관법계성 일체유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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