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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메모리] 황민아
S#1. 학교 뒤 야산 (오후) / 꿈
교복 입은 영인(여,17), 화구박스와 스케치북을 들고 뒷산을 오른다.
제법 높은 곳에 도착한 영인, 허리를 펴고 한 호흡 고른다. 천천히 돌아본다.
서쪽 하늘을 물들이고 있는 노을, 그 빛이 번져 붉게 반짝이는 도심이 보인다!
자리에 앉아 서둘러 스케치 하는 영인, 화구박스를 열어 물감으로 색을 칠한다. 노을빛이 점점 짙어지더니 어느새 주변에 어둠이 인다.
집중했던 영인, 정신이 든다. 어서 그리던 것을 챙겨 일어나는데... 뒤에서 부스럭! 영인, 돌아보면 어둠속에서 검은 그림자가 나타난다.
놀라 손에 든 것들을 놓치는 영인, 뒷걸음질 치다가 겁먹은 얼굴로 달린다.
툭툭-빗방울이 영인의 그림 위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도망치다 발에 걸려 넘어지는 영인, 다급히 일어나는데 등 뒤에서 전해오는 공포. 검은 그림자가 바로 뒤에 서 있다. 영인, 겁에 질려 돌아보면 순간 번개가 번쩍!
영인의 비명과 동시에 비가 쏟아지며 영인의 소리가 묻혀버린다.
영인이 떨어트리고 간 그림, 비에 물감이 흘러내려 흉측하게 변한다.
S#2. 영인의 원룸 (아침)
침대에 등 돌리고 잠들어 있는 영인(여,27), 악몽에 신음한다.
그러다 움찔! 영인의 가냘픈 신음 소리가 멈춘다. (계속 영인의 뒷모습)
힘겹게 일어나 침대에 걸터앉는 영인, 고개를 떨어트린 채 잠시 앉아있다.
영인, 창가로 가서 블라인드를 걷으면 빛이 쏟아진다. 창 앞에 선 영인의 뒷모습.
아침 햇살에 드러난 집안, 곳곳에 쌓여있는 미술서적과 벽에 기대있는 얼굴 형태정도만 스케치 된 꽤 많은 캔버스, 테이블 위에는 켜켜이 먼지 쌓인 유화도구가 있다.
갑작스럽게 끼어드는 음악소리, 돌아보는 영인의 얼굴이 햇빛에 하얗게 지워진다. 보통 집이라면 텔레비전이 있어야 할 자리에 놓여있는 오디오의 알람이 켜졌다. 볼륨 조절이 잘 못 됐는지 소리가 너무 크다.
영인, 오디오로 가서 볼륨을 낮추고 라디오로 돌리면 아침 방송이 흘러나온다. 욕실로 들어가는 영인, 세면대 씻는 물소리 위로 묻히듯이 들려오는 라디오 소리.
캐스터(e) 오늘 밤에는 전국적으로 천둥번개를 동반한 큰 비가 내리겠습니다.
S#3. 지하철역 앞 (아침)
출근하는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사람들 사이의 영인, 가능한 부딪치지 않으려고 어깨를 웅크리고 한쪽으로 피해 걷는다.
영인, 매표구를 빠져나와 출구 쪽으로 간다. 그런 영인을 바라보는 시선.
영인을 쫓아가는 시선, 어느새 빠르게 따라가는 한 남자의 걸음이 된다.
남자, 아슬아슬하게 손을 뻗어 영인의 어깨를 잡는다.
영인, 너무 놀라 소리도 못 지르고 얼어붙어버린다.
남자(e) 영인씨!
영인, 겁먹은 얼굴로 돌아보면 낯선 남자(윤석,30)가 반가운 표정을 하고 있다.
영인 : (뒤로 주춤, 경계하며) 누...누구세요?
윤석 : (당황) 네? 저... 조윤석...(하다가 질린 영인 얼굴 보고) 어디 아프세...
윤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뒤돌아 가버리는 영인.
S#4. 미술관 전시실 (낮)
낮고 조용한 음악이 흐르고 천장에는 cctv가 달려있는 전시실.
인부 두 명이 벽에 걸린 작품을 떼고, 그 옆에 하얀 유니폼을 입은 영인이 서서 작품리스트를 확인하고 있다. 뒤쪽에서 같은 직원 민주(여,27)가 다가온다.
민주 : (일부러 기척) 흠!
영인, 돌아보면 이목구비 없는 얼굴의 여자 가 서 있다. 재빨리 명찰을 확인한다.
영인 : (민주를 인식하고 얼굴 보며) 민주구나.
민주 : 응. 4층 작품 다 교체 된다며?
영인 : 내일모레까지 정리하래.
민주 : 너무 촉박하다. 근데... (전시실 입구 보며) 너한테 할 말 있나 본데.
영인 : (보며) 누군데?
전시실 입구에 윤석이 서성대다가 영인과 눈이 마주치자 목례하고 간다.
민주 : 새로 온 남자 직원이잖아. (귓속말 하는 시늉으로) 잘생겼어.
영인 : (서류 다시 보며) 상관없어.
민주 : 남자라서? 아님 잘 생긴 게?
민주 : (서류 뺏으며) 일만하다 늙어 죽을래?
(영인 보고) 너도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도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리잖아.
영인 : (서류 다시 가져오며) 시간 맞춰 끝내려면 빠듯해.
S#5. 미술관 앞 (낮)
트럭에서 인부1이 포장 된 작품을 내려서 미술관 안으로 들고 들어간다.
인부2, 트럭 뒷문을 닫고 영인에게 다가와 서류에 싸인을 받는다.
인부2, 트럭에 올라타고 시동을 건다. 인부1이 돌아와 인사하고 트럭에 탄다.
트럭이 떠나자 사방이 조용해진다. 그때 들려오는 남자들의 싸우는 목소리.
영인, 미술관으로 들어가려다 말고 무슨 소린가 싶어 소리가 나는 쪽으로 간다.
미술관 한 쪽 공원, 그늘진 곳에서 경비복을 입은 유남식(남,38)과 사복차림의 공중호(남,38)가 말다툼을 하고 있다. (중호는 계속 등 돌리고 서 있다.)
중호 : (핸드폰 드밀며) 정말 니가 보낸 거 아냐?
남식 : 나한테도 똑같은 게 왔어! 재수 없게 언제 적 일인데!
중호 : (멱살 잡으며, 버럭) 내가 당하고만 있을 것 같아!
누군지 빨리 찾아야 한다구!
분위기가 점점 험악해지자 자리를 피하려는 영인, 순간 기척을 느낀 남식과 눈이 마주친다. 중호도 돌아보려고 하는데, 영인이 그보다 먼저 걸음을 옮긴다.
서둘러 미술관으로 들어가는 영인. 그 뒤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S#6. 미술관 지하 복도 (밤)
비상구 조명을 제외하고는 불 꺼진 복도, 문 열린 창고에서 불빛이 새나온다.
S#7. 미술관 지하 창고 (밤)
지층 가까이 창들이 나있고 한 쪽 벽이 거울로 된 작품 보관 지하 창고.
혼자 남아 팔 걷어붙이고 작품을 확인하는 영인, 포장 된 작품 중 확인해야 하는 것은 가위(전문가용 깅어 가위)로 끈을 자르고 갱지를 벗겨낸다.
창을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에 서류를 든 채 허리를 펴고 창밖을 보는 영인.
천둥번개가 친다. 순간적으로 스쳐가는,
F.C) (1씬) 번개 빛에 지워지는 빗속의 검은 그림자의 얼굴.
영인, 놀라 서류를 떨어트린다. 번개 탓인지 조명이 깜박깜박 나갔다 들어온다. 얼어붙어버린 듯 서있는 영인, 정신을 차리고 쪼그려 앉아 떨어진 서류를 줍는다.
S#8. 미술관 경비실 (밤)
깜깜한 경비실, 불빛이라고는 미술관 구석구석을 비추고 있는 cctv 모니터뿐이다. 모니터에 지하 창고에서 서류를 줍고 있는 영인의 모습도 보인다.
모니터를 보는 남식의 뒷모습, 경비복을 벗고 사복점퍼를 입는다.
남식, 일어나서 cctv 녹화스위치를 끄고 나간다.
모든 모니터의 한 쪽에 표시 된 'on'이 'off'로 일제히 바뀐다.
S#9. 미술관 지하 창고 (밤)
일을 마무리 하려고 서두르는 영인, 인기척에 놀라 돌아본다.
영인 : (아무도 없다, 혹시나 해서) 거기... 누구 있어요?
대답대신 모습을 드러내는 남식, 창고 쪽으로 한 발 들어선다.
영인,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친다.
영인 : 누...누구세요?
남식 : (한 발 더 들어서며 창고 문을 닫는다) ...
영인 : 뭐하시는 거예요? (뒤로 물러나며) 사람 부를 거예요!
남식 : (씨익- 웃는다) !!
S#10. 미술관 경비실 (밤)
장갑을 낀 채 경비실로 들어서는 누군가(이하 용의자), cctv 전원을 뽑아버리려다가 문득 모니터를 본다.
지하창고의 화면, 남식이 도망가는 영인을 쫓아가 붙잡는다.
황급히 경비실을 빠져나가는 용의자의 발길.
S#11. 미술관 지하 창고 (밤)
쫓아오는 남식을 피해 도망치는 영인, 곧 벽에 막힌다.
당황하며 겁먹는 영인,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남식의 얼굴이 흔들리면서 뭉개진다.
S#12. 미술관 복도 (밤)
어두운 복도를 필사적으로 달리는 용의자의 발.
너무도 다급하게 사력을 다해 뛰어가는 용의자의 뒷모습.
S#13. 창고 안 (밤)
창고 안의 기괴한 조각상 위로 번개가 치고, 영인의 비명 울려 퍼진다.
S#14. 미술관 지하 복도 (밤)
숨 가쁘게 창고에서 뛰쳐나오는 영인, 얼굴과 옷에 피가 잔뜩 묻어있다.
손에서 뚝뚝 떨어지고 있는 피, 신발도 벗겨지고 정신이 반쯤 나갔다.
영인, 복도를 달려 도망치다가 천둥이 치면 겁먹은 얼굴로 문득 돌아본다.
복도를 비추고 있는 창고 불빛에 어두운 그림자가 나타난다.
그림자로 보이는, 용의자의 손에는 피가 떨어지고 있는 흉기가 들려있다.
그림자가 한 발 앞으로 나오면 창고 문 앞에 검은 실루엣이 드러난다.
이어 실루엣 뒤로 번개가 번쩍, 영인의 눈동자가 커진다. 영인은 그를 봤다!
황급히 돌아서는 영인, 공포에 질려 달린다. (F.O)
S#15. 경찰서 강력반 (낮)
형사와 잡혀온 이들로 뒤엉켜 어수선한 분위기의 강력반.
검은 옷을 입은 지훈(남,29)이 주머니에 손을 꽂고 빠른 걸음으로 들어온다.
지훈, 서류를 들고 나오고 있는 서형사(남,36)를 보고 손을 들어 인사한다.
지훈 : 무슨 일이야?
서형사: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다.
지훈 : 몇 달 만에 쉬는 사람을 당장 오라고 난리친 게 누군데?
서형사: (머쓱해서) 동생 생일은? 선물이라도 해주고 오지.
지훈 : 됐어. 얼굴 봤으니까... (서류 보며) 뭔데?
서형사: (서류를 퍽 안겨주며) 너 없는 동안 골 때리는 사건이 하나 생겼다. (가며) 따라와.
지훈 : (못마땅한 얼굴로 따라간다) ...
S#16. 미술관 지하창고 (아침)
사건현장을 수습하는 과학수사대, 경찰들, 서형사의 모습이 보여진다.
유남식의 타이트한 모습에서 사진으로 전환되며...그 위로 들리는 서형사의 브리핑.
서형사(e) 유남식, 38세. 경비로 근무하고 있는 미술관에서 살해당했어.
S#17. 사건 브리핑룸 (낮)
브리핑 보드에 붙여지는 살해된 유남식의 사진.
지훈 : (복잡한 표정으로 남식의 사진을 본다) ...
서형사: 사망시간은 밤 10시에서 12시 사이로 추정되고. 이렇다 할 전과는 없어.
지훈 : 사인은?
서형사:(사진의 목 부근 가리키며) 목에 있는 경동맥을 정확히 관통했어. 피가 뿜어져 나왔을 테니, 잘 못 찔렀거나 노리고 찔렀거나 둘 중 하 나야.
지훈 : (책상 위에 놓여있는 사건 현장의 사진들을 보고) ...
서형사: 현장에서 흉기는 발견 되지 않았고, 범인도 도주한 것 같아.
지훈 : 증거도 단서도 없다는 거네.
서형사: 대신 목격자가 있어.
지훈 : 목격자?
S#18. 경찰서 강력반 일각 (낮)
한 쪽에 엉망인 몰골로 담요를 걸치고 앉아있는 영인.
영인, 피가 묻고 단추가 떨어진 하얀 유니폼을 불안한 손길로 자꾸만 여민다. 손에 통증이 느껴져 보면, 오른손 바닥에 생긴 상처에서 피가 슬며시 배나온다. 옆자리의 여경의 기척에 고개 드는 영인, 모니터를 보며 몽타주를 작성한다. 영인, 얼굴형이 넘어 갈 때마다 아니라고 고개를 젓는다.
강력반으로 들어오는 지훈과 서형사, 걸음을 멈추고 먼발치에서 영인을 본다.
서형사: (턱짓으로 영인을 가리키면) ...
지훈 : (영인을 보고 약간 찡그리며)...목격자라는 게 저 여자야?
서형사: 피해자랑 같은 미술관 직원이야.
근데 기억도 뒤죽박죽인데다 결정적으로 안면인식장애래.
지훈 : (서형 보며) 안면 뭐?
서형사: 나도 처음 들어 보는데 사람 얼굴을 인식하지 못한 댄다.
(서류 가리키며) 그 안에 의료기록이랑 주변 사람들 증언도 있어.
지훈 : 아무것도 기억 못한다는 거야?
서형사: 적어도 얼굴은. 심한 경우 본인 얼굴도 못 알아본다고 하니까.
지훈 : (놀라 서형사 보며) 자기 얼굴도? (영인을 본다) ...
영인, 점점 더 난처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는다.
모니터에는 여러 이목구비들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S#19. 경찰서 취조실 옆방 (낮)
원웨이미러 앞에 서 있는 지훈, 취조실에 혼자 앉아있는 영인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영인, 옷을 갈아입었다)
반쯤 넋 나가 앉아있는 영인, 상처 난 손을 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든다.
지훈, 영인과 눈이 마주친다.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는 영인이지만, 지훈과 마주보고 있는 것 같다.
지훈, 영인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본다.
여경(e) 강형사님!
지훈 : (돌아본다) ...
여경 : (안으로 들어오며) 혈흔이 묻은 옷은 증거 자료로 보냈구요,
(몽타주 내밀고) 목격자 상태로 봐선 이것도 확실 한 것 같지 않아요.
몽타주를 받아서 보는 지훈, 얼굴형과 눈매 정도만 그려져 있다.
S#20. 경찰서 취조실 (낮)
취조실 문이 열리자 고개를 돌리는 영인,
검은 옷을 입은 지훈을 보고 놀라 벌떡 일어나며 의자를 넘어뜨린다.
F.C) (13씬) 창고에서 나오던 검은 그림자의 실루엣!
/파편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용의자의 눈매!
떠오르는 눈매가 지훈의 눈과 겹쳐졌다 사라진다.
영인, 기겁하며 뒷걸음질 치다 의자에 걸려 넘어진다.
달려가는 지훈, 팔을 뻗으면 더욱 뒤로 물러나는 영인.
지훈 : 이봐요! (영인의 손목을 붙잡는데 왼쪽 손목의 자상자국을 발견한다) !!(영인의 얼굴 보고 크게) 정신 차려요!
영인 : (지훈의 얼굴을 똑바로 못 보고, 애처롭게) ...놔 주세요. ...제발.
지훈 : (영인의 얼굴을 빤히 보다 손목을 놓고) 이영인씨!
영인 : ...(천천히 고개 돌리면) ...
지훈 : 저는 강지훈 형삽니다.
영인 : ...형...형사요?
지훈 : 여기가 경찰선 건 기억해요?
영인 : ...(주위를 둘러보고, 다시 지훈을 보고) ...검은 옷이요.
지훈 : (보면) ...
영인 : (얼빠진 사람처럼 중얼)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었어요.
S#21. 미술관 지하 창고 (밤) / 회상
얼굴이며 옷에 피가 튀어있는 영인, 겁에 질려 앉은 채 뒤로 물러난다.
영인, 등 뒤의 벽에 막힌다. 자신의 손바닥을 보면 피가 잔뜩 묻어있다.
고개를 드는 영인, 남식의 시체를 보고 있는 용의자의 뒷모습이 보인다.
용의자가 들고 있는 흉기에서 피가 떨어지고 있다.
용의자가 서서히 영인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데...
얼어붙어 보는 영인, 그때 번개가 치며 창고 안이 번쩍!
영인, 비명을 지르며 열려있는 창고 출입문 쪽으로 도망쳐 나간다.
S#22. 경찰서 취조실 (낮)
영인의 맞은편에 앉아 심각하게 듣고 있는 지훈.
조용히 취조실로 들어오는 서형사. 책상에 또 다른 서류를 내려놓는다.
지훈 : 진술이 사실이라면, 그 범인도 이영인씨 얼굴을 봤다는 거네요.
영인 : (정신이 없어서 미처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 했다. 놀라고) !!
지훈 : 얼굴 말고 다른 거 생각나는 거 없어요?
영인 : (괴로운 표정으로 고개 젓고) ...
서형사: (영인을 보며) 정말 누군가 있긴 했어요?
(서류 두드리며) 지문이며 족적이며 사방에 이영인씨 흔적밖에 없어요!
영인 : (보면) !!
서형사: (버럭) 아무것도 기억 안 나지만 누군가 있긴 했다?
그걸 우리가 믿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지훈 : (영인의 반응을 본다) ...
영인 : (불안한 듯 계속 상처 입은 오른손을 만지작댄다) ...거기 있었어요, 분명.
서형사: 이영인씨! 지금 무슨 일이 일어 난건지 정확히 알고는 있어요?
영인 : (서형사 보고) !!
지훈 : (서형사에게) 그만하죠. 어차피 지금 상태로 더 이상 나올 것도 없겠어요.(영인 보며) 보호자한테 연락했어요?
영인 : ...
지훈 : 보호자 없어요?
영인 : 돌아가신 부모님 말고는... 연락할 사람, 없어요.
지훈 : ...(보고) ...
S#23. 경찰서 복도 창가 (밤)
지훈과 서형사가 귀가하는 영인을 내려다보고 있다.
서형사: 아무래도 영 찝찝하지?
지훈 : 뭐가?
서형사: 안면실인증이라는 것도 그렇고, 단순히 목격자가 가지는 공포가 아냐.
지훈 : (보면) ...
서형사: 심리적 외상이면 이유가 있을 거 아냐.
유남식은 이영인의 병을 알고, CCTV녹화까지 꺼버리고 덤빈 거야.
지훈 : (서형사 보며) 형은, 이영인이 범인이라고 생각해?
서형사: 위협을 느꼈을 테고 충분한 살해 동기가 되잖아!
지훈 : 동기만 있지 증거가 없어.
서형사: 그래 그럼 제 3자가 있었다고 치자.
(지훈 보며) 그 놈은 유남식을 왜 죽이려고 했을까.
지훈 : (심각한 표정)...
서형사: (돌아서 가며) 유남식 주변 탐문조사 하면서 이영인이도 지켜보자.
지훈 : (창밖을 보며) 이영인 쪽은 내가 맡을게.
S#24. 영인 집 앞 (밤)
누군가 지켜보는 듯한 불안함에 서둘러 계단을 올라 집안으로 들어가는 영인.
S#25. 영인의 원룸 현관 (밤)
영인이 들어서면 불이 켜지는 현관. 영인, 자물쇠를 이중삼중으로 걸어 잠근다. 불안한 마음에 문고리를 꽉 붙잡고 바깥 기척에 집중한다.
아무런 소리가 없자 힘없이 돌아서는 영인, 멈칫 한 곳을 응시한다.
거울에 비친 영인, 교복을 입은 ‘여고생 영인’의 모습이다.
영인, 물끄러미 거울 속 ‘여고생 영인’을 바라본다.
S#26. 경찰서 사건 브리핑룸 (밤)
스탠드만 켜놓고 사건 현장 사진을 보는 지훈. 심각한 얼굴이다.
피가 튄 바닥이며 액자, 자르다만 포장지, 피가 묻은 영인의 발자국과 지문, 시트에 덮여있는 유남식의 사체 등 다양하다.
사건자료들을 보던 지훈, 문득 생각난 듯 노트북으로 본청 사이트에 접속한다.
‘범죄수사경력조회서(수사자료표)’ 찾기 누르고, 피해자란에 ‘이영인’.
서류를 보며 주민등록번호 861029-*******입력한다. 엔터!
로딩 화면 후 ‘2002년 6월 피해자 이영인’ 기록이 뜨자 지훈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클릭해서 보면 사건 코드 성폭행,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 기록이다.
화면을 닫고 돌아앉는 지훈, 심경이 복잡한 듯 마른세수를 한다.
S#27. 영인의 원룸 (아침)
닫힌 블라인드 사이로 겨우 비춰드는 햇빛. 바닥에 부모님과 학창시절 친구들 사진, 그들의 얼굴을 그린 누렇게 빛바랜 스케치 종이가 널려있다. (영인의 사진은 없다)
음악을 끌 생각조차 않고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영인, 고개를 든다.
맞은 편 벽에 세워져있는 얼굴형상만 그려진 수많은 캔버스들이 보인다.
그림 속 얼굴들이 기이하게 일그러지면서 어지럽게 F.C과 겹쳐진다.
F.C ) (20씬) 고개를 드는 순간 사라져버리는 용의자의 얼굴.
(12씬) 영인에게 다가오는 남식의 일그러진 얼굴.
(1씬) 거친 손길로 영인을 잡아채는 남자의 알 수 없는 얼굴.
영인, 문득 자신의 손을 보면 손바닥에 피가 흥건하게 묻어있다! (환상)
일어나 싱크대로 뛰어가는 영인, 물을 틀고 손을 씻는다.
아무리 씻어도 손에 묻은 피가 지워지지 않는다.
순간 울리는 전화벨. 놀란 영인 손을 보면 상처만 있을 뿐 깨끗하다.
끈질기게 이어지는 벨소리. 영인, 고개 돌려 식탁 위의 핸드폰을 본다.
영인 : (전화 받고) 여보세요?
지훈(f) 강지훈입니다.
영인 : ...
지훈(f) 오후에 서로 나와 주셔야겠습니다.
영인 : 무슨 일이죠?
지훈(f) (짧게) 오시면 압니다. (끊는다)
영인 : ...(무거운 한숨) ...
S#28. 미술관 복도 (낮)
전화를 끊는 지훈, 맞은편에서 민주가 다가온다.
민주 : 영인이는 괜찮나요?
지훈 : 글쎄요.
민주 : (찡그리며 보고) ...
지훈 : (상관 않고) 평소 이영인씨는 어떻습니까. 이상한 데가 있다던가.
민주 : 아뇨. 안면실인증만 빼면 평범해요.
지훈 : 사람들과 관계는요.
민주 : 관계랄 게 없어요. 영인이도 나름 애는 쓰지만 다들 좀 불편해해요.
...알면서도 영인이가 못 알아보면 서운하거든요. 서로가 상처죠.
지훈 : ...여기서 일하기 전 이영인씨에 대해서 아는 게 있습니까?
민주 : (생각해 보고) 그건 잘...
지훈 : 학창시절이나 주변 사람들에 대해 들어 본 적은요?
민주 : 영인이가 원래 자기 얘길 잘 안 해요.
지훈 : 그럼 미술관으로 누가 찾아오거나...
민주 : (OL) 없어요.
지훈 : (보면) ...
민주 : 그러고 보니 영인이가 누굴 만난다거나 하는 걸 본적도 들은 적도 없네요.
지훈 : (영인의 삶이 짐작이 되고)...밖에서 이영인씰 따로 만나 본 적은 있습니까?
민주 : (생각해 보니 없다, 지훈 보며) ...그게 이번 사건이랑 관련이 있어요?
지훈 : 아닙니다. 그만 일 보세요. (돌아선다)
민주 : (가는 지훈 보다 갸웃하며) 근데! 우리 어디서 만난 적 있지 않아요?
지훈 : (일언지하에) 아뇨.
민주 : (너무 단호한 대답에 미심쩍지만 더 말을 못 잇는다) ...
지훈 : (찡그리고) 주변에서 수상한 사람 보거든 제보나 해주시죠.
민주 : (새침하게, 돌아서며) 그러죠.
지훈 : (가다가 민주를 다시 돌아본다) ...
S#29. 경찰서 자료실 (낮)
미술관 주변 공원 cctv화면, 모니터를 보고 있는 형사1에게 서형사가 다가온다.
서형사: 뭐 좀 나왔어?
형사1: 이거 미술관 앞 공원에 설치되어있는 cctv거든요.
업체에서 따로 관리하는 거라 다행히 파일이 남아있더라고요.
(화면 돌려 멈춰주며) 여기요! 이 사람 피해자 아니에요?
서형사, 보면 cctv 화면 끝부분에 남식과 중호(뒷모습)가 싸우고 있다. 잠시 후 화면 안으로 들어오는 영인, 두 사람을 멀리서 본다.
서형사: 스톱! 스톱! 이영인이잖아! (중호 가리키며) 이 남자 앞모습 봐봐!
형사1 : (난감하게) 없어요.
화면 2배속 하면, 영인이 자리를 피하고 잠시 있다가 뒷모습 그대로 앞으로 걸어 화면 밖으로 사라지는 중호. 미술관 쪽으로 오는 남식의 앞모습만 보인다.
서형사: (형사1 뒤통수 때리며) 이게 뭐야! 뭐든 더 찾아내!
형사1 : 왜 저보고 그래요.
서류를 든 여경이 자료실로 들어온다.
여경 : (서류 주며) 유남식 계좌 추적한 거랑 통화 목록이요.
서형사: (서류 받아 보며) 돈도 없고... 통화 한 사람들 확인 했어?
여경 : 네. 전부 근처 직원이거나 야식 배달하는 식당이에요.
서형사: 통화한 사람 명단 뽑아줘. 그 중에 저 놈이 있나 찾아보자고.
S#30. 놀이공원 작업실 (낮)
공구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작업실.
테이블에 신문을 펼쳐놓고 보고 서있는 중호 뒷모습. (계속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중호, 신문 한 쪽에 작게 실린 남식의 살해기사를 구겨서 찢어버린다.
사물함으로 가는 중호, 번호로 된 자물쇠를 열고 안쪽에서 상자 하나를 꺼낸다. 중호, 상자를 열어 뒤진다. 마구 헝클어지며 넘어가는 사진들, 대부분 몰래 찍은 교복 입은 여학생들의 사진이다. 사진 뒷면에는 년도와 날짜가 적혀있다. 그러다 멈칫, 손길을 멈추는 중호. 상자 아래서 어떤 사진 한 장을 꺼낸다. (사진 뒷면의 2002년 5월 23일 날짜 정도만 보인다)
S#31. 경찰서 취조실 (낮)
영인의 앞에 CCTV에서 캡처 한 남식과 중호, 영인의 모습이 잡힌 사진이 놓인다. 맞은편에는 서형사가 앉아있고, 지훈은 그 뒤쪽에 서서 영인을 보고 있다.
서형사: 기억나요?
영인 : (사진 보고) ...이건...
지훈 : (영인을 보고) ...
영인 : 그날 어떤 사람들이 다투는 걸 보긴 했어요.
(유남식 가리키며) 이 경비원이 죽은... 그 사람인가요?
지훈 : (찡그리고) 전혀 몰랐어요?
영인 : ...네.
서형사, 잠복하며 몰래 찍어 온 여러 사람의 사진을 탁자에 깐다.
사진 속엔 경비원들과 야식배달원까지 다양한 남자들이 있다.
영인 : (난감하게 사진을 본다) ...
서형사: 이 중에 유남식이랑 같이 있던 저 사람 있어요?
얼굴이 아니라도 좋으니까 전체적인 걸 봐요.
지훈 : (영인을 뚫어져라 본다) ...
영인 : (고개를 젓고, 어렵게) ...사진은 알아보기가 더 어려워요.
서형사: 잘 좀 봐요! 이영인씨 증언에 따라 멀쩡한 사람이 살인범이 될 수도 있고, 살인범이 활개치고 돌아다닐 수도 있다고요!
영인 : (당황하고) ...
지훈 : 그럼 사람을 어떤 식으로 기억합니까.
영인 : 체형, 머리모양, 냄새, 목소리...
(지훈 보며) 사람을 꼭 얼굴로만 기억하는 건 아니잖아요.
지훈 : (영인 보고) ...
서형사: 목소리 들으면 알 수 있겠어요?
영인 : 아마도요...
S#32. 경찰서 앞 도로 (낮)
택시를 잡고 있는 영인, 택시가 잘 안 잡힌다.
지훈(e) 여기 택시 안 잡혀요.
영인, 돌아보면 다가오는 지훈.
지훈 : 경찰서에서 나오는 사람은 대체로 둘 중 하나죠. 형사 아님 범죄자.
택시기사한텐 양쪽 모두 반가운 손님은 아니고.
영인 : ...
지훈 : 기다리라니까 왜 먼저 가요.
영인 : 혼자 가는 게 편해요.
지훈 : 무딘 겁니까, 경계가 지나친 겁니까.
영인 : (보면) ...
지훈 : 이 상황에 형사를 밀어내면, 이영인씨 안전은 누구도 보장 할 수 없어요.
영인 : 도와달라고 한 적 없어요. ...저 좀 그냥 내버려두세요.
영인, 택시를 잡으려 하지만 택시가 그냥 지나쳐간다.
지훈 : (영인 보고) 지하철로 가는 게 빠를걸요.
영인 : (지훈 보고) ...
체념하고 걸음을 옮기는 영인. 지훈, 가는 영인을 보다가 천천히 따라간다.
S#33. 지하철 안 (낮)
사람이 제법 많은 지하철 안.
손잡이를 잡고 서 있는 영인과 조금 떨어진 곳에 지훈, 꼭 따로 가는 사람들 같다. 지훈, 살짝 고개를 돌려 지하철 창에 비친 영인의 얼굴을 본다.
창을 보는 영인, 덜컹덜컹 진동에 따라 자신의 얼굴이 알아 볼 수 없게 흔들린다. 그러다 순간 흠칫! 영인, 뒤에서 기분 나쁘고 위험한 게 닿았음을 느꼈다. 영인, 소리도 못 지르고 차마 돌아보지도 못 하고 있는데...
지훈(e) 너 뭐야!
지훈, 영인의 엉덩이를 만지는 치한의 손을 낚아채 팔을 꺾는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리며, 수군댄다.
치한 : (뻔뻔하게) 이거 왜 이래!
지훈 : 어딜 만져!
치한 : 증거 있어? (영인에게) 이봐 아가씨 말 좀 해봐.
영인 : (쳐다보는 사람들 시선에 위축되고) ...
치한 : (히죽대며) 것 봐, 이 여자도 아니라...
하는데, 참지 못하고 치한에게 주먹을 날리는 지훈.
주변 승객들 소리 지르며 뒤로 물러나고, 스마트폰으로 사진과 영상을 찍기도 한다. 분노로 이성을 잃고 치한을 흠씬 두들겨 패는 지훈.
영인, 주먹을 휘두르는 지훈의 얼굴 위로 어지럽게 나타났다 사라지는 사건 용의자의 이목구비와 비정상적으로 크게 울리는 구경꾼들의 웅성거림에 패닉상태가 된다.
지하철이 다음 역에 도착하자 안으로 들어오던 승객들 놀라 소리 지른다.
그제야 모든 게 현실로 돌아오는 영인, 뛰쳐나간다.
분이 안 풀리는 지훈, 치한을 잡아 가려고 일으키는데 문을 나가는 영인이 보인다. 지훈, 치한을 팽개치고 영인을 쫓아 내린다.
S#34. 한강 지하철 역 앞 (낮)
역사 밖으로 나오는 영인, 걸음이 점점 빨라지더니 거의 뛰다시피 한다.
영인, 가장 먼저 보이는 화단 쪽으로 달려가더니 몸을 숙일 세도 없이 참고 있던 신물을 토해낸다.
뒤쫓아 나온 지훈, 영인을 향해 걸어간다.
영인 : (입가를 닦고 걸어간다) ...
지훈 : 이봐요, 이영인씨!
영인 : (공포에 질린 시선으로 지훈을 본다) ...
S#35. 한강 길 (저녁)
해가 저물어가는 한강 길, 그저 앞만 보고 걷는 영인.
지훈, 영인의 뒷모습을 보며 거리를 두고 따라 걷는다.
지훈 : 집까지 걸어갈 작정입니까?
영인 : (그저 걷고) ...
지훈 : (걸음을 멈추고) 이영인씨 말처럼 그냥 내버려 둘걸 그랬군요.
영인 : (조금 진정 된 듯 돌아보고) ...형사가 사람을 그렇게 때리면 어떡해요.
지훈 : 그런 놈을 가만히 둬요? (영인 보고) 왜 당하고만 있어요!
영인 : ...
지훈 : 하다못해 소리라도 질러야죠!
영인 : (지훈 보며) 그러면 뭐가 달라지나요?
지훈 : 반항 해 본적 있어요? 도와달라고 해본 적은요?
영인 : (떠올리고 싶지 않고) ...
지훈 : (위협적으로 다가서며) 무섭죠. 겁나잖아, 소리치고 싶잖아!
(버럭) 울고 싶잖아, 지금!
영인 : (시선을 피하며, 입술을 악물며 참고) ...
지훈 : (영인 보다가 한 발 물러서며) 그놈들이 노리는 건 약한 사람이 아니라 지금 이영인씨처럼 무력한 사람이에요.
지훈, 영인을 지나쳐 먼저 걸어가 버린다. 붙박인 듯 서 있는 영인.
영인 : ...(떨리는 손끝을 꽉 쥐며, 작은 목소리) 그럼 어떡해야하는데요.
지훈 : (멈칫 돌아보고) ...
영인 : (점점 격앙되고) 아무리 발버둥 쳐봤자 벗어날 수가 없는데!
누구도 와주지 않는 다는 걸 아는데... (참담하고) ...
(지훈 보며) 강형사님처럼 강한 사람은 이해 안 되겠죠.
지훈 : (영인 보며) ...강한 게 아니라, 잃을 게 없는 겁니다.
이영인씨는 지킬 게 많은가보네요.
영인 : ...하루아침에 내가 아는 모든 얼굴들이 사라져버렸어요.
...제게 잃을 게 남아있을 거라 생각하세요?
지훈 : (영인 보고) 이영인씨 자기 자신이요.
영인 : ...
지훈 : 난 아까 거기서 그 놈을 죽일 수도 있었어요!
영인 : (흠칫 놀라 주춤하고) ...
지훈 : 내 인생 따윈 어떻게 끝나든 상관없거든...
(평상시로 돌아온 건조한 말투) 진짜 잃을 게 없다는 건 이런
거예요.
S#36. 영인의 원룸 (밤)
검은 베란다 창에 비친 영인, 자신의 모습을 블라인드로 가린다.
영인, 돌아서는데 각종 미술 대회에서 입상한 상장과 트로피가 전시되어있는 장식장이 보인다. 그 안에 엎어진 액자 하나가 있다.
장식장을 열고 액자를 꺼내서 보는 영인, 메마른 눈빛으로 빤히 들여다본다.
액자 속엔 직접 그린 자화상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는 교복차림의 영인이 있다.
S#37. 미술관 지하창고 (밤)
출입금지 테이프가 뜯어지고 문이 열려있는 창고, 안에는 불이 꺼져있다.
복도 비상등과 창밖의 가로수 불빛 정도만 들어오는 어둑어둑한 사건 현장.
남식이 죽은 자리에 말라붙어 있는 핏자국을 보고 있는 남자의 뒷모습, 지훈이다. 지훈, 그날 사건을 떠올려보듯 천천히 주변을 둘러본다.
지훈, 품에서 지갑을 꺼내 그 안에 사진을 본다.
사진 속, 교복 차림의 지훈(19)과 지은(16)이 환하게 웃고 있다.
지은의 모습을 물끄러미 보는 지훈, 얼굴엔 아무런 표정이 없다.
S#38. 미술관 가는 길 (낮)
평화롭고 한적해 보이는 가로수 길,
미술관 가는 길과 놀이공원으로 가는 이정표가 세워져있다.
S#39. 미술관 내 카페 (낮)
직원과 외부인들이 섞여있는 카페, 민주(유니폼)가 커피를 받아서 걸어온다.
테이블에 사복차림의 영인이 앉아있고, 그 뒷좌석에 등 돌리고 앉아있는 남자 손님의 모습이 지나치듯 보인다.
민주 : (영인에게 커피 주고 맞은편에 앉는다) 이렇게 나와도 괜찮은 거야?
영인 : (고개 저으며) 여기서 형사님이랑 만나기로 했어.
민주 : 하루 종일 형사랑 같이 다녀야해?
영인 : 밖에 나올 때만...
민주 : ...너랑 같이 다니는 형사 말이야.
영인 : (보면) ...
민주 : (망설이다가) 아니야. (도록 보며) 뒤에 남은 것만 정리하면 되는 거지?
영인 : 나 때문에 너까지 고생이다.
민주 : 나야 뭘. 일도 못나오고 만날 경찰서 불려 다니는 네가 고생이지.
(걱정스레) 빨리 범인이 잡히던지 해야지.
영인 : ...
민주 : 막상 창고 들어가려니까 좀 무섭긴 하다.
영인 : ...
영인의 뒷자리에 등 돌리고 앉아있는 남자가 조용히 일어난다.
놀이공원 시설 직원 복장을 한 중호다!
아무것도 모르고 대화하고 있는 영인과 민주. 중호 카페를 나가며 영인을 본다.
S#40. 경찰서 강력반 (낮)
다들 각자의 일로 바쁘게 오가는 강력반.
한 쪽 프린트 기기에서 인쇄되어 나오는 ‘유남식’의 기록.
유남식의 이력서 중에 ‘2002.01~2005.08 놀이공원 시설 관리’ 근무 기록이 있다. 서형사, 와서 인쇄 된 종이를 가져간다.
S#41. 미술관 지하 창고 앞 (낮)
출입금지 테이프가 붙은 창고 문을 몇 발자국 떨어져 마주보고 있는 영인.
두려움을 딛고 창고 앞으로 다가선다. 결심하고 문고리를 잡고 돌린다.
철컥, 문이 열린다. 두려움을 딛고 사건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
F.C) 형태를 알아 볼 수 없는 용의자의 이목구비가 따로따로 스쳐지나간다. 그러다 떠오른 영인의 얼굴이 비친 마주보고 있는 눈동자!
지훈(e) 거기서 뭐합니까!
영인, 불에 덴 것처럼 화들짝 놀라면, 따로 놀던 이목구비들이 순식간에 한데 모였다가 사라진다.
고개 돌리는 영인, 방금 본 얼굴의 잔상처럼 희미한 누군가의 얼굴.
지훈, 멍하니 자신을 보고 있는 영인에게 다가간다.
영인 : ...강형사님이셨군요.
지훈 : 그럼 누군 줄 알았어요?
영인 : 아니에요.
어색한 정적이 이어지고... 이윽고...
지훈 : 뭐하고 있던 겁니까?
영인 : 여기 오면 생각나는 게 있지 않을까 해서요.
지훈 : (날카롭게 보며) 뭐 떠오르는 게 있어요?
영인 : (잠시 지훈의 얼굴을 보다가, 고개 젓는다) ...
S#42. 미술관 복도 (낮)
걸어가는 영인과 지훈, 어두운 복도에서 점점 밝고 넓은 로비로 빠져나간다.
영인 : 언제까지 이래야 할까요.
지훈 : (보면) ...
영인 : ...제가 그 사람 얼굴만 기억해내면 되는 건가요?
지훈 : 그것만으론 사건이 해결되진 않죠.
영인 : 결국 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거네요.
지훈 : 그냥 다 잊어버리는 게 나을 수도 있어요.
영인 : ...또... 도망가라는 말이군요.
지훈 : (보면) ...
영인 : (지훈 보며) 어디로 갈까요? 누가 쫓아오는지 알아 볼 수도 없는데...
이번 일로... 나한텐 어디든 다 똑같다는 걸 알았어요.
지훈 : ...
영인 : (걸어가며, 한숨처럼) ...그저 단 한 사람만...
내가 먼저 알아 볼 수 있는 얼굴이 있다면 좋겠어요.
지훈 : (걸음을 멈추고 영인을 보면) ...
영인 : (지훈을 돌아본다) ...
밝은 빛에 드러나는 두 사람, 마주보고 서있다.
S#43. 놀이공원 입구 (낮)
평일 한가한 놀이공원, 시설 인부들이 계절 축제를 알리는 현수막을 설치하고 있다. 서형사가 사다리 위에 올라가있는 인부1 아래서 수첩을 들고 뭔가 묻고 있다.
인부1: 에이, 십 년 전에 있던 사람을 어떻게 알아요.
우리야 해마다 용역업체 바뀌면 사람도 갈리는 게 일인데.
서형사: 삼 년 동안 여기서 일 했던데, 알만 한 사람이 전혀 없을까요.
인부1: 글쎄...(사다리서 내려오다가 서형사 뒤를 보고) 아! 저기 오네. 어이, 공씨!
서형사, 돌아보면 중호가 걸어오고 있다.
인부1 : (서형에게) 저 사람은 여기서 일 한지 오래 됐으니까 한 번 물어보쇼.
서형사: (중호 본다) ...
S#44. 놀이공원 일각 (낮)
서형사가 중호에게 남식의 사진을 보여준다.
중호 : (사진을 받아서 보다가 돌려주며)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서형사, 중호의 작업복에 수놓아진 이름을 보고 자신의 수첩에 ‘공중호’적는데 펜이 잘 안 나온다. 펜을 흔들어서 다시 쓰는 서형사.
서형사: 여기서 일하신지 얼마나 되셨습니까?
중호 : 햇수로는 십 년 좀 넘은 것 같네요.
서형사: (잘 안 나오는 펜으로 꾹꾹 눌러 수첩에 2002년부터 근무 적고) 같은 시설팀에서 근무했는데, 처음 봤다는 겁니까.
중호 : 몇 년 다른 일하다 여기로 다시 온지는 일 년 정도 됐습니다.
일하던 시기가 안 맞았나 보죠.
서형사: (수첩에서 명함 꺼내주며) 혹시라도 기억나는 게 있으면 연락 주십시오.
중호 : (명함 받으며) 그러겠습니다.
서형사 가면, 중호 ‘강력 4반 형사 서동철’이 적힌 명함을 본다.
S#45. 경찰서 강력반 (밤)
자리로 가던 지훈, 옆자리 서형사 책상 위에 놓인 유남식의 놀이공원 기록을 본다. 마침 들어오는 서형사, 지훈을 보고 어깨를 툭 친다.
서형사: 뭘 그렇게 봐?
지훈 : (서류를 내려놓으며) 못 보던 거라서.
서형사: (놀이공원 기록인걸 보고) 방금 다녀왔는데 오래 전 일이라
유남식을 기억하는 사람도 없고, 괜히 헛걸음만 했어.
지훈 : (자리에 앉고) ...
서형사: 놀이공원 인사팀에 자료 요청을 해놓긴 했는데 건질 건 없지 싶다. 이영인 쪽은 어때?
지훈 : 딱히 더 생각나는 건 없나봐. 주변도 조용하고.
하는데 여경이 두 사람을 향해 다가와 서류를 내민다.
여경 : 유남식 부검 결과 나왔어요.
지훈 : (서류 받으면) ...
여경 : 현장 감식 결과랑 크게 다른 건 없는데, 흉기가 칼이 아니라 가위래요.
서형사: 가위? 그렇게 뾰족한 가위가 있어?
여경 : 전문가용인가보죠. (간다)
서형사: (머리를 마구 긁으며 짜증스럽게) 대체 뭐하는 자식이야, 이거! (지훈 보고) 혹시 범인이 이영인이 안면실인증인 거 아는 게 아닐까.
지훈 : (못 듣고, 심각하게 서류만 보고) ...
서형사: 강지훈!
지훈 : (그제야) 어? 뭐라고?
서형사 :(지훈 보다가) 너 이번 사건에 너무 집중한다!
(일어나며) 잠은 좀 자라. 얼굴 그게 뭐냐.
지훈 : (얼굴을 쓸어내리고) ...
서형사가 나가면, 피곤한 듯 고개를 뒤로 젖히고 곰곰이 뭔가를 생각하는 지훈. 지훈, 책상 위의 놀이공원, 부검 결과 서류를 빤히 본다.
S#46. 미술관 로비 (밤)
관람이 끝난 미술관, 주변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안내 데스크로 가는 중호. 데스크 앞에 층별 안내, 작품 안내, 도슨트 시간과 담당 직원 사진과 이름 등이 적힌 팸플릿들이 꽂혀있다. 중호, 이것저것 뒤지기 시작한다.
도록을 들고 지하 쪽으로 가려던 민주, 중호를 보고 다가온다.
민주 : 죄송하지만 관람시간 끝났는데요.
중호 : (뒤에서 갑자기 들리는 소리에 놀라고) !!
중호, 표정 가다듬고 돌아서며 팸플릿 하나를 뒷주머니에 쑤셔 넣는다.
중호 : 아! 그래요? 알겠습니다.
중호, 급히 걸어간다. 민주, 어울리지 않는 시설작업복 차림의 중호를 의아하게 보다가 마구 헝클어진 팸플릿을 정리하는데... 중호가 가져 간 팸플릿을 돌려보면 하단에 작게 영인의 사진과 ‘4층 작품 상시안내(도슨트) 1시 이영인’ 소개 되어있다.
민주, 놀라 중호가 나간 정문을 본다.
S#47. 영인의 원룸 (밤)
새 캔버스를 이젤 앞에 올려놓는 영인, 뚫어져라 빈 캔버스를 본다.
영인, 그 앞에 앉는다. 결심한 듯 연필을 든다.
미간을 찌푸리며 범인의 얼굴을 떠올려보려고 한다.
영인, 연필을 캔버스 위에 갖다 대는데... 초인종이 울린다.
S#48. 미술관 로비 (밤)
팸플릿을 들고 초조하게 정문을 보고 있는 민주, 지훈이 미술관으로 들어온다.
지훈 : (민주 보고 다다가) 무슨 일입니까. 갑자기.
민주 : (팸플릿을 내민다) 이거!
지훈 : (받아서 보고) 이게 뭡니까?
민주 : 수상한 사람을 보면 제보하라면서요.
(영인이 나온 부분을 가리키며) 아까 어떤 남자가 이걸 챙겨 갔어요.
지훈 : 그게 누굽니까!
민주 : 30대 중후반에 놀이공원 작업복 차림이었어요.
지훈 : !!
지훈, 급히 돌아서서 뛰어나간다. 민주, 순간 뭔가 생각난 듯 다시 지훈을 본다.
S#49. 영인의 원룸 현관 (밤)
영인, 걸쇠를 걸고 문을 열면 앞에 중호가 서 있다.
영인 : (보면) ...
중호 : 서에서 나왔습니다. 연락받으셨죠.
서형사 대신 사건을 맡게 된 정동인형삽니다.
영인 : 그런 얘기 못 들었는데...
중호 : 그럴 리가... (핸드폰 꺼내 전화번호 누르며)
제가 서형사와 연결해 드릴 테니까 확인해보세요.
하는데, 중호의 핸드폰 반대편에서 서형사의 목소리 ‘네, 서동철입니다’ 들린다.
영인 : (중호가 내민 핸드폰 보다가, 통화는 불편하고) ...됐어요.
중호 : (전화에 대고) 아니야, 일 봐! (끊는다)
영인 : 무슨 일이시죠?
중호 : 몇 가지 급히 확인 할 게 있어서요. 들어가서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영인 : (찡그리고) ...
중호 : 잠깐이면 되는데. 아님, 서로 같이 가시죠.
영인 : (망설이다가 걸쇠를 푼다) ...
S#50. 영인의 원룸 (밤)
중호, 쓰윽 영인의 원룸을 둘러보고는 소파에 앉는다. 맞은편에 앉는 영인.
중호 : 번거롭겠지만 저한테도 그날 목격한 용의자에 대해 얘기해 주시죠.
영인 : (같은 얘기 반복에 지치고) ...검은 옷을 입은 남자였고,
키가 좀 크고 마른 편이었어요. (떠올리려 애쓰며) 눈매가 날카롭고...(하는데 문득 자신이 말하는 사람이 지훈과 너무 비슷한 걸 깨닫고) !!
중호 : 계속 말씀하세요.
영인 : ...더 이상... 생각 안나요.
중호 : (사진 한 장을 내밀며) 혹시 현장에서 본 사람이 여기 이 사람입니까? 이때보다 나이가 먹긴 했겠지만...
영인 : (무심코 사진을 본다) ...
사진을 찍으려 포즈를 잡고 있는 지훈과 지은을 몰래 찍은 사진이다. (지훈의 사진 보다 원거리라서) 그들 뒤로 놀이공원의 상징적인 구조물도 보인다.
사진을 보던 영인, 문득 뭔가를 깨닫고 고개 들어 중호를 본다.
영인 : 저한테 사진은 왜...
중호 : (영인의 반응에 확신하며) 이 자식 맞죠?
그날 밤 이후에 다시 나타난 적 없어요? 협박 문자 같은 거 안 왔어요?
영인 : (겁에 질려 중호 보고) ...
중호 : (뭔가 잘 못 된 걸 느끼고) ...
영인 :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감추며) 잘 모르겠어요.
중호 : 다시 한 번 봐 봐요! (버럭) 당하기 전에 빨리 찾아야한다고!
F.C) (4씬) 중호: (버럭) 누군지 빨리 찾아야한다구!
영인 : (놀라 중호 보고) 그...그만 가주세요.
중호 : (뭔가 더 얘기하려다가, 사진 챙기고) 다시 뵙죠.
영인, 떨리는 손을 들키지 않으려 꽉 쥐고 안전거리를 두고 중호의 뒤를 따라간다. 중호가 나가자마자 숨소리마저 참으며 최대한 소리 안 나게 문을 다 잠그는 영인. 창가로 뛰어가 블라인드 틈으로 중호가 건물을 나서는 걸 확인하는데...
S#51. 영인의 원룸 앞 (밤)
돌아보는 중호, 블라인드 뒤로 급히 등 돌리며 몸을 숨기는 영인이 보인다.
중호, 영인의 팸플릿을 근처 쓰레기 더미에 던져버리고 간다.
S#52. 영인의 원룸 (밤)
두 손을 꼭 쥔 채 소파에 앉아있는 영인, 지훈이 베란다 창 너머를 살피고 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통화를 하는 서형사.
서형사: 알았어! (전화 끊고 다가오며) 우리 서는 물론이고 근처 지구대에도 정동인이란 경찰은 없대.
지훈 : (보고) 형 전화 기록은?
서형사: 발신 표시 금지로 걸려 온데다가 통화 시간이 짧아서 추적도 안 돼.
영인 : (고개 들고) ...그때 그 목소리였어요.
지훈 : (보면) !!
서형사: 그 자식! 안면장애 맞는지 직접 확인하러 온 게 분명해!
영인 : (겁에 질린 눈으로)...또 보자고 했어요.
밤새 불 켜진 영인의 원룸, 창밖으로 날이 밝아온다.
한 쪽 식탁 의자에 앉아 졸고 있는 서형사.
밤새 그러고 있었던 듯 미동도 없이 소파에 그 모습 그대로 앉아있는 영인.
지훈, 블라인드를 조금 돌려 빛이 살짝 들어오게 한다.
장식장에 놓인 상장들을 보는 지훈, 엎어진 액자가 눈에 띈다.
지훈, 장식장을 열어 액자를 들면 그 속에 웃고 있는 영인. 물끄러미 본다.
액자를 제 자리에 두고 영인을 보는 지훈. 영인, 시선을 느끼고 고개 든다.
지훈 : 이제 그림 안 그려요?
영인 : (지훈 보면) ...
지훈 : 상장이 고 1때까지 밖에 없네요.
영인 : ...못 그리는 거예요.
지훈 : (보면) ...
영인 : 눈앞에 있는 것도 알아 볼 수가 없는데... 그림을 어떻게 그려요.
(중호가 앉았던 자리를 보며) 여기에 앉아 한 참 동안 얘기 했어요.
그런데 난... 그 사람이 다시 와도 알아 볼 수조차 없어요.
지훈 : (다가오고) ...
영인 : (혼란스럽게) ...또 나타나면 어쩌죠. (중얼중얼) 또 나타나면... 나타나면...
지훈 : 이영인씨! (영인의 어깨 붙잡고 흔들며) 나 좀 봐요!
이영인씨를 노리고 온 사람이 아니에요.
영인 : ...(보면) ...
지훈 : 아니면 왜 그냥 갔겠어요.
영인 : (보면) ...
지훈 : 내 말 믿어요. (영인 보며) 그놈보다 내가 먼저 잡을 겁니다!
영인 : (지훈의 눈을 본다) !!
S#53. 영인의 원룸 앞 (아침)
영인의 원룸을 나와 주차 된 차로 가는 서형사와 지훈.
서형사: 이영인, 혼자 둬도 될까?
지훈 : ...(생각이 많고) ...
서형사: 수사진행 정도를 구체적으로 알고 있는 걸 보면,
가까이서 주시하고 있는 게 분명한데...
지훈 : (멈춰 영인의 집 돌아보고) ...서둘러야겠어.
(서형사 보고) 먼저 들어가! 주변 좀 살펴볼게.
서형사, 하품하며 알아서 하라는 듯 손짓하고 차에 탄다.
차가 떠나면 영인의 집을 물끄러미 올려다보는 지훈.
S#54. 영인의 원룸 (아침)
장식장 앞에 서 있는 영인, 액자를 지훈이 똑바로 세워 놨다.
영인, 장식장 문을 열어 액자를 도로 엎으려다가 사진을 빤히 본다.
액자를 그냥 세워 놓기로 결심한 영인, 장식장 문을 닫는다.
핸드폰 벨이 울리면, 순간 경계하며 본다. ‘김민주’ 발신인 떠있다.
영인 : (전화 받고) 응, 민주야!
민주(f) 영인아, 괜찮아?
영인 : 왜 그래?
민주(f) 나 아무래도 실수 한 것 같아.
S#55. 미술관 복도 (아침)
전시실 앞 복도에서 통화를 하고 있는 민주.
민주 : 어제 놀이공원 직원 중에 수상한 사람을 본 것 같아서
너랑 같이 다니는 형사한테 얘기 했거든.
영인(f) 놀이공원?
민주 : 응. 근데 나 그 형사 미술관에서 몇 번 본 적 있어. 확실해!
분명 나한텐 미술관에 온 적 없다고 했거든. 왜 거짓말을 했지.
...너, 정말 별 일 없는 거지?
S#56. 납골당 (낮)
납골 유리장 앞에 선 지훈, 표정은 없지만 슬픈 시선으로 한 곳을 보고 서 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지은의 얼굴이 담긴 사진,
그 뒤로 보이는 납골함에는 ‘강지은 1987.06.17~2002.05.23’ 적혀있다.
지훈, 지은의 납골함을 조금 옆으로 밀어놓고 팔을 넣어 안쪽에서 뭔가 꺼낸다.하얀 천으로 싸여있다. 지훈, 천을 풀면 피가 묻어있는 (깅어) 가위다!
지훈, 다시 천으로 싸서 안주머니에 넣는다.
지은의 사진을 보는 지훈, 손을 뻗어 사진 속 지은의 얼굴을 쓰다듬는다.
지훈, 물끄러미 지은의 얼굴을 보며 마음을 단단히 굳힌다.
돌아서서 납골당을 나가는 지훈, 웃는 얼굴로 남아있는 사진 속 지은.
S#57. 영인의 원룸 (낮)
불안하게 왔다갔다 서성대는 영인, 걸음을 멈추고 장식장에 세워진 자신의 교복 입은 사진을 노려본다. 겹쳐지는 중호가 보여준 사진 속 교복 입은 여학생!
F.C과 민주의 목소리와 중호의 목소리가 뒤엉켜서 떠오른다.
민주(e) 나 미술관에서 몇 번 본 적 있어. 확실해! 근데 왜 거짓말을 했지. 얼굴은 지워진 채로 여학생 옆에 교복 입은 남학생, 옆에 있는 남자.
민주(e) 어제 놀이공원 직원 중에 수상한 사람을 본 것 같아서.
그들 뒤로 보이는 놀이공원 상징물!
중호(e) (버럭) 당하기 전에 먼저 찾아야한다고!
고개를 돌려 중호가 앉아있던 소파를 본다. 주춤 물러서는 영인.
영인, 급히 겉옷을 챙겨 나가려는데 현관 문 앞에서 멈칫한다.
문을 선뜻 열지 못하고 심호흡하는 영인, 자물쇠를 하나하나 푼다.
S#58. 경찰서 자료실 앞 복도 / 자료실 (낮)
두꺼운 놀이공원 인사자료를 들고 연신 하품하며 걸어가는 서형사, 자료실 앞을 지나가는데 형사1이 급히 부른다.
형사1 : 서형사님!
서형사: (피곤해서 건성으로) 왜?
형사1 : (망설이며) 저... 좀 이상한 게 있어서요.
서형사: (보면) ...
형사1 : 직접 보셔야 하겠는데요.
서형사, 자료실로 들어가서 모니터 보면 민주가 지나가는 남자를 돌아본다.
cctv화면에 남자의 얼굴이 잡히면 지훈이다.
서형사: 저 자식이 왜 여깄냐?
형사1 : 그러니까 이상하다고 했잖아요. 사건 한 달 전부터 몇 번이나 다녀갔어요.
서형사: ...!!
S#59. 놀이공원 메인 광장 (낮)
사진 속 구조물 앞, 영인이 반짝이는 구조물에 비치는 자신을 보며 서 있다.
급히 달려오던 지훈, 낯익은 공간에 서 있는 영인을 보고 멈춰 선다.
지훈 : (다가서며) 왜 혼자 움직여요. 위험하게!
영인 : (지훈 보고) ...
지훈 : 여긴 왜 온 겁니까?
영인 :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요.
(지훈 보고) 강형사님, 혹시 우리 미술관에 온 적 있어요?
지훈 : (순간 표정이 굳었다가 풀어지며) 뜬금없이 그게 무슨 소리에요?
영인 : (지훈 보고) ...
지훈 : 없어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예요?
영인 : (고개 돌리고) ...집에 왔던 그 사람 사진에서 여길 봤어요.
지훈 : (날카롭게) 그래서요?
영인 : (지훈 빤히 보다가) ...강형사님은... 어떻게 생겼나요?
지훈 : ...(영인 보고) 이제 와서 그게 왜 궁금한데요.
영인 : 지금 내 옆에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인데...
정작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것 같아서요.
지훈 : ...나도 잘 몰라요. 범인 잡으려고 다른 사람 얼굴만 보면서 다니니까.
내 얼굴은 볼 시간이 없었어요.
영인 : 그럼 저는요? 저는 어떻게 생겼나요?
지훈 : (영인 보면) ...
영인 : (시선 외면하고) ...오직 한 사람, 그 한 사람 얼굴만이라도
기억 할 수 있다면 하고 바랐어요. 정작... 내 얼굴은 잊어버린 채로...
지훈 : ...
영인 : (지훈 보며) 그날 본 얼굴이 떠오르기 시작했어요.
지훈 : (놀라 보고) 확실해요?
영인 : 파편적이긴 하지만 그래요.
지훈 : 알아 볼 수 있겠어요?
영인 : ...아직은요. 그래서 그림을 그려보려구요.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이자 유일 한 거더라고요.
지훈 : ...(영인 보고) ...
S#60. 경찰서 사건 브리핑룸 (낮)
자리에 두꺼운 서류를 내려놓는 서형사, 털썩 자리에 앉아 심각하게 고민한다. 핸드폰을 들어 전화를 누르려는데, 먼저 벨소리가 울린다.
서형사: (전화 받고) 네. (서류 보며) 보내주신 인사 자료 받았습니다.
...유남식 해고 사유요? 그래요? 알겠습니다.
서형사, 전화 끊고 다른 곳으로 전화를 건다.
S#61. 놀이공원 기념품 가게 앞 (낮)
조금 떨어져 걸어가는 영인과 지훈.
지훈, 기념품 가게를 보고 그쪽으로 간다. 뒤에 오던 영인 멈춰 선다.
기념품 가게에서 뭔가를 사가지고 오는 지훈, 영문을 몰라 지켜보는 영인.
지훈 : (다가와 손에 쥔 걸 내밀며) 직접 봐요.
영인 : (보면, 놀이공원 캐릭터가 그려진 거울이다) ...
지훈 : 이영인씨가 어떻게 생겼냐면서요.
영인 : (망설이다, 거울 받고) ...
지훈 : (핸드폰이 울리면 발신인 확인하고, 영인에게) 잠깐만요.
영인, 지훈이 전화를 받으러 가면 기념품 가게 앞에 있는 야외 테이블에 앉다.
S#62. 놀이공원 직원실 (낮)
핸드폰을 여는 중호, ‘도망갈 생각하지마!’ ‘잊지 않았겠지. 네가 한 짓을!’ ‘지켜보고 있어!’ 등의 발신 불명 메시지를 모조리 삭제한다.
주머니에서 지훈과 지은의 사진을 꺼내 구겨서 사물함 안에 던져버린다.
중호,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사복에서 칼을 꺼내 주머니에 챙겨 넣는다.
S#63. 놀이공원 기념품 가게 앞 (낮)
영인에게서 제법 떨어진 지훈, 영인의 위치를 확인하고는 전화를 받는다.
지훈 : 응, 형!
서형사(f) 당장 서로 좀 들어와!
지훈 : 왜, 무슨 일 있어?
S#64. 경찰서 강력반 (낮)
서형사 : 잔말 말고 들어오라면 들어와! ...놀이공원 쪽에서 연락이 왔는데,
유남식이 그때도 성추행으로 짤렸대. 이거, 완전 상습범이야.
어딘데 이렇게 시끄러워?
S#65. 놀이공원 기념품 가게 앞 (낮)
메인 광장에서 열리는 퍼레이드를 알리는 안내 방송이 나오고 있다.
망설이다가 거울을 들어서 보는 영인, 자신의 이목구비를 하나하나 들여다본다. 그러다 거울을 조금 비껴들고 통화하는 지훈의 뒷모습을 비춘다.
거울 속 지훈이 통화를 하며 영인을 확인하듯 돌아본다.
순간 F.C으로, 사건 현장의 용의자가 천천히 고개를 돌리는데... 거울 속 지훈! 탁! 거울을 테이블 위에 엎어놓는 영인. 손이 덜덜덜 떨리고 있다.
서형사(f) 이영인하고 같이 있어?
지훈 : (앉아있는 영인의 뒷모습 보며) 아니!
영인, 뒤를 돌아보고 싶은데 겁에 질려 숨 쉬기조차 힘들다.
지훈, 영인을 확인하고 돌아서서 계속 통화한다.
지훈 : 곧장 들어갈게.
전화를 끊는 지훈의 표정이 어둡다.
표정 관리를 하고 돌아보면, 영인이 있던 자리에 없다.
지훈, 테이블 쪽으로 걸어오며 주위를 두리번대지만 영인이 안 보인다.
영인이 앉아있던 테이블로 오면, 거울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거울을 드는 지훈, 순간 불길한 표정이 된다. 주위를 보며 영인을 찾아 나선다.
S#66. 놀이공원 메인 광장 (낮)
겁먹은 얼굴로 달리는 영인, 출입구를 찾아 두리번댄다.
메인광장을 가로질러 가던 중호, 영인의 바로 옆을 지나간다.
영인은 바로 앞의 중호를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친다.
멈칫 돌아보는 중호, 뛰어가는 영인을 보고 표정이 일그러진다.
퍼레이드 행렬이 다가오며 사람들이 몰려든다.
영인, 갑작스레 늘어나는 사람들 때문에 정신이 없다.
어지러운 영인의 시선, 형체 없는 낯선 얼굴들이 마구 밀어닥친다.
시끄러운 음악과 인파 속에서 방향 감각을 상실한 영인,
그 가운데 영인의 머릿속에서 엉켜드는 용의자의 이목구비와 지훈의 얼굴,
한 순간 사람들 속에서 두리번대고 있는 누군가의 얼굴에 초점이 맞춰진다.
얼굴 없는 사람들 속에 오직 단 한사람의 눈매, 눈빛만이 또렷하다. 지훈이다!
영인, 지훈을 피해 반대로 도망치는데 그때 뒤에서 닿는 서늘한 감촉!
중호가 겉옷으로 칼을 든 손을 가리고 영인에게 바짝 붙어 위협한다.
중호 : 앞으로 가!
영인 : (낯익은 목소리, 순간 경직된다) ...
영인, 위협을 느끼자 자기도 모르게 지훈이 있던 쪽을 보지만 없다.
중호 : 돌아보지 마! 그냥 걸어!
영인, 앞으로 걸어가면 시끌벅적 아무것도 모르고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
지훈, 사람들을 속을 헤매다가 떨어진 곳에 걸어가는 영인을 본다.
영인을 향해가려는데 뭔가 영인이 이상한 걸 느낀다. 영인 뒤에 중호가 붙어있다!
놀라는 지훈, 달려가는데 마침 폭죽을 터트리며 그 앞을 지나가는 퍼레이드 행렬과 몰려드는 사람들로 인해 뒤로 떠밀린다.
영인, 중호의 위협을 받으며 인파 속을 빠져나간다.
S#67. 놀이공원 시설 공사장 앞 (낮)
메인 광장에서 떨어진 야산 바로 앞에 있는 공사 현장.
그 앞에 ‘축제 기간 중 공사 일시 중지’ 푯말이 세워져 있다.
S#68. 놀이공원 시설 공사장 일각 (낮)
공사장 뒤편 인적이 드문 산기슭.
중호, 더 이상 영인을 협박이 아닌 폭력으로 질질 끌고 가고 있다.
주변을 확인하고 걸음을 멈추는 중호, 영인을 내동댕이친다.
중호 : (욕설을 내뱉으며) 잘도 찾아냈네!
영인 : (중호의 목소리! 중호 보고) 어제... 그....
중호 : 얌전히 있을 것이지! 난 왜 찾아 온 거야!
영인 : (아니라고 고개 젓고) 그게 아니라...
중호 : 설마 경찰한테 말한 거야?
영인 : (시선 피하며 뒤로 물러나고) ...
중호 : 뭐야? 벌써 떠든 거야?
영인 :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고) ...
중호 : (야릇한 시선으로 훑어보고, 다가서며) 내가 더는 말 못 하게 만들어 줄게!
영인 : (소름이 돋는다) ...!!
앉은 채 뒤로 물러나는 영인, 접근하는 중호에게 흙을 뿌리고 가까스로 도망친다.
S#69. 경찰서 강력반 (낮)
서형사, 의심을 떨치려는 듯 머리를 벅벅 긁고는 두꺼운 서류뭉치를 넘긴다.
십 년 전 기록부터 모아놓은 놀이공원 시설근무자 명단이다.
서형사: (중얼대며) 유남식이 2002년부터 근무했으니까...
유남식이 근무한 때와 겹치는 직원들을 표시하는데 펜이 안 나온다.
책상에서 다른 펜을 찾는 서형사, 사건 서류만 있고 펜 한 자루 보이지 않는다. 지훈의 책상과 서랍을 뒤지는 서형사, 맨 아래 서랍이 잠겨있다.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서형사, 그러다 문득 다시 잠긴 서랍을 본다.
서형사, 사건 파일에 끼워져 있는 클립을 뽑아서 지훈의 서랍을 딴다.
열리는 서랍, 안에는 평범한 서류들만 쌓여있다. 서랍을 통째로 빼서 뒤집는다. 서류를 마구 뒤지는 서형사, 유남식의 놀이공원 기록부터 모든 자료가 다 있다. 다른 서류를 보면 ‘공중호’에 관련된 기록들이 정리되어있다.
서형사: 공중호?
서형사, 서둘러 자기 수첩을 열어 확인하면 적어놓은 ‘공중호’ 있다.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표정의 서형사, 컴퓨터에 ‘공중호’ 쳐서 신원 조회 한다. 공중호의 전과 기록이 뜬다. 대부분이 성범죄 관련 범죄다.
그 중에 2002년 사건 기록을 클릭하는 서형사, 벌떡 일어나 뛰어나간다.
모니터에 ‘피해자 강지은 신고 후 본인 사망으로 불기소’ 당시 조서가 펼쳐져있다.
S#70. 놀이공원 일각 / 시설 공사장 근처 (낮)
두리번대며 뛰어다니는 지훈, 사람들을 헤치며 영인을 찾는다.
지훈, 지나가는 사람들을 확인하며 주위를 둘러보는데... 눈앞으로 지은을 찾아 헤매는 ‘열아홉 지훈’이 지나간다. ‘열아홉 지훈’을 따라 돌아보는 지훈.
지훈, 애타게 지은을 찾아 헤매는 ‘열아홉 지훈’을 보다 시선을 돌리면 멀리 지은이 끌려가는 모습이 보인다.
안타깝게 보던 지훈의 귀에 멀리 영인의 비명소리가 스치듯 들려온다.
소리가 난 쪽을 보는 지훈, 다시 달리기 시작한다.
S#71. 놀이공원 뒷산 (낮)
내달리는 영인. 쫓아가며 칼을 꺼내는 중호.
도망치는 영인, 바짝 따라온 중호가 손을 뻗어온다.
F.C) (11씬) 쫓아오는 남식의 일그러진 얼굴.
아슬아슬 잡힐 것 같은 영인, 발을 헛디뎌 미끄러진다.
그 바람에 영인을 잡으려던 중호도 중심을 잃고 넘어지며 칼을 놓친다.
잠시 정신을 잃은 영인, 눈을 뜨면 바로 앞에서 중호가 히죽대며 보고 있다.
F.C) (11씬) 다가오는 남식의 알아 볼 수 없는 얼굴.
영인, 뒤로 물러나면 위협적으로 다가오는 중호.
그때 영인의 손끝에 닿는 차가운 감촉, 중호가 떨어트린 칼이다.
달려오는 지훈, 조금 떨어진 곳에 중호가 영인을 향해 다가가고 있는 게 보인다. 지훈, 영인을 보면 팔을 뻗은 영인이 무언가 집고 있다. 칼이다!
지훈, 표정이 일그러지며 전력을 다해 뛴다.
영인, 입술을 꽉 깨물고 칼을 쥔 손에 힘을 준다.
영인의 옷을 움켜쥐는 중호, 달려오는 발소리에 뒤를 돌아본다.
그 순간 두 눈을 꼭 감고 팔을 휘두르는 영인, 중호가 움찔한다!
눈을 뜨는 영인, 동공이 열린 중호가 영인을 노려보며 옆으로 쓰러진다.
영인, 놀라 자신이 쥔 칼을 보면 깨끗하다.
고개를 드는 영인, 지훈이 중호의 등에 칼을 꽂은 채 서있다.
영인,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난다.
지훈, 쓰러지는 중호를 본다. 지훈이 서서히 고개 든다.
F.C ) 남식의 시체를 보다가 고개를 돌리는 용의자, 지훈이다!
선명하고 또렷한 지훈의 얼굴, 지훈의 눈이 정면으로 마주치는 순간!
영인의 눈앞에 지훈, 그날처럼 영인을 보고 있다.
영인, 도망치기 위해 뒷걸음질 치며 일어난다.
영인 : ...강형사님...이었어요?
지훈 : (영인 보고) ...
영인 : (지훈 보며) 그날, 거기 있던 사람...!!
지훈 : (영인을 보며 다가간다) ...
영인 : (겁에 질려 뒷걸음치며) 왜... 왜...
지훈 : 당신은 그날 거기에 있으면 안됐었어.
(다가서며) 당신만 아니면 완벽할 수 있었는데...
영인 : (뒤로 물러나고) ...
지훈 : (슬픈 눈으로 영인을 본다) ...
영인, 물러서는데 더 이상 길이 없는 가파른 내리막 언덕이다.
다가서는 지훈, 주춤 물러나는 영인. 순간 영인이 중심을 잃는다.
지훈, 재빨리 팔을 뻗어 떨어지려는 영인의 팔목을 낚아채 당긴다.
안전한 곳에 발을 디디며 넘어지는 영인과 지훈.
영인, 앞에 있는 지훈을 보고 반사적으로 물러나는데, 손목을 붙잡는 지훈.
지훈 : 더 이상... (영인 보며) 도망가지 마!
영인 : (지훈 보면) ...
지훈 : 이제 그만... (눈물이 차오르고) ...당신도 살아야지.
영인 : (눈물이 맺힌다) !!
지훈 : 당신 잘못이 아니잖아. (눈물이 툭) 당신 잘못 아니라고...
영인 : (처음 받은 위로처럼 눈물이 흘러내린다) ...
해가 저물어가는 산기슭에 시간이 멈춘 듯 마주 보고 있는 영인과 지훈.
멀리 놀이공원으로 사이렌 소리 요란하게 경찰차와 서형사 차가 오는 것이 보인다.
S#72. 경찰서 앞 (낮)
서형사와 영인이 나오고 있다.
서형사: 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사건은 오늘부로 다 정리됐습니다.
영인 : 네...
서형사: 지훈이 자식이 다 자백을 했으니 더 이상 추가조사는 없을 겁니다.
영인 : (지훈이 안쓰럽다) ...
서형사: 이 형한테 진작 얘기했음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었을텐데...
영인 :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건가요?
서형사: 며칠 있으면 교도소로 이감될 겁니다.
지훈이 여동생이 그 두 사람에게 폭행당하고... 자살해서... 사건 당사자가 없는데다가 경찰 신분이라는 점 때문에 정상참작이 어려울 거예요.
영인 : ...
서형사: 참! (주머니에서 뭔가 꺼내며) 지훈이가 전해달래요.
이영인씨가 놓고 간 물건이라던데.
영인 : (받아들면, 지훈이 사준 캐릭터 거울이다) ...
S#73. 구치소 면회실 (낮)
영인이 면회실에 앉아있다. 유리 건너편에 지훈이 들어온다.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는 영인과 지훈.
영인 : 괜찮아요?
지훈 : 어때 보여요?
영인 : (보면) ...
지훈 : (얼굴을 쓸며) 십 년 만에 푹 잤어요.
영인 : (가방에서 거울을 꺼낸다) 이거, 잘 받았어요.
지훈 : 다행이네요. 주인을 찾아서.
영인 : (지훈을 빤히 보며) ...강형사님 얼굴이 보여요.
지훈 : 그럼, 이제 이영인씨 괜찮은 건가요?
영인 : (고개 젓고) 다른 사람들 얼굴은 여전해요.
지훈 : 나아지겠죠. 너무 애쓰진 마요
영인 : (지훈 보며) 그래도, 강형사님 얼굴은 안 잊어버릴 거예요.
지훈 : (영인을 보다가...담담한 미소)...
S#74. 영인의 원룸 (밤)
빈 캔버스를 마주하고 앉는 영인, 심호흡을 하고 연필을 쥔다.
사각사각 얼굴의 윤곽을 그린다. 입술, 코, 눈썹...손길을 따라 갖춰지는 이목구비. 집중한 영인, 눈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눈동자를 그린다.
영인, 후- 불어 연필 가루를 날린다.
완성 된 그림을 보는 영인의 얼굴. (그림은 보이지 않는다)
연필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영인. 걸어가다가 문득 돌아본다.
검은 베란다 창에 비친 영인, 거기서 조금씩 시선을 돌려 그림을 본다.
영인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는 영인 자신의 얼굴!
캔버스에 그려진 건 지훈의 얼굴이 아니라 영인 자신이다.
영인, 놀라 뒤로 주춤 물러선다.
F.C)
넘어지는 영인, 돌아보면 바로 앞까지 다가 온 남식.
겁에 질린 영인, 뒤로 물러나는데 그때 손끝에 (깅어)가위가 닿는다.
손을 뻗어 가위를 쥐는 영인, 천둥번개가 치는 동시에 가위를 든다!
질끈 눈을 감은 영인의 얼굴 위로 피가 튄다.
눈을 뜨는 영인, 남식이 목을 감싸고 옆으로 쓰러진다.
영인, 상황 파악을 못하고 도망치려고 일어서는데,
천둥소리에 놀라 고개 돌리면 거울 속 자신의 손에 피 묻은 가위가 들려있다. 번개가 치며 거울 속 영인의 얼굴이 하얗게 번진다.
쨍그랑- 가위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겁에 질려 주저앉는 영인, 거울 속에는 자신의 모습이 지워지고 없다.
영인, 뒤로 물러나지만 벽에 막힌다.
뒤늦게 도착해 창고로 들어서는 지훈, 손에 든 칼이 깨끗하다.
다가와 죽은 남식을 확인하는 지훈, 바닥에 떨어진 가위를 줍는다.
영인, 자신의 손을 보면 피가 잔뜩 묻고 상처가 나있다.
고개 드는 영인, 돌아보는 지훈과 눈이 마주친다. 놀라는 영인!
영인, 일어나 창고 문을 향해 달려 나간다.
영인, 모든 게 생각나자 무릎이 휘청하며 옆에 있는 탁자를 짚으며 주저앉는다. 탁자가 흔들리며 그 위에 놓여있던, 지훈이 사준 거울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영인, 떨어진 거울을 보다가 손을 뻗어 거울을 집는다.
천천히 거울을 보는 영인, 그 안에 선명하고 온전하게 들어있는 자신의 얼굴. 거울을 들고 있던 손이 툭- 힘없이 떨어진다.
영인, 자신의 얼굴 그림을 마주 본다. 소리 없이 눈물이 흐른다.
영인의 가녀린 어깨가 작게 들썩이기 시작한다.
그녀의 뒷모습에서 엔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