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에서는 ‘투르카나 소년’이라 불리는 화석의 전시 계획을 놓고 논쟁이 치열하다. 가장 오래된 호모 에렉투스(직립인간) 화석으로 150만 년 전의 것이다. 1000만 신도를 거느린 복음교회 지도자가 진화론을 뒷받침하는 화석 전시를 비난한 것이 빌미가 됐다.
러시아 정교회는 한 가족이 학교에서 진화론만을 가르치는 것은 잘못이라고 고발한 소송을 후원하고 나섰다.
세계 최대 가톨릭 국가인 브라질에서는 5월 초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방문을 계기로 성신강림 운동(Pentecostalism) 지도자들이 창조론 홍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생명의 기원을 놓고 맞붙은 진화론과 창조론의 다툼은 그 동안 미국에서만 사회적 쟁점이 됐으나 이제는 지구촌 전역으로 급속히 확산되는 추세이다.
5월 초, 내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나선 공화당 주자들 간의 첫 합동토론회에서 존 매케인 상원의원 등 유력 후보들은 한결같이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후계자임을 자처했으며, 일부는 진화론을 비판했다. 레이건은 보수층을 대변한 반(反)진화론자였다. 캘리포니아 주지사 시절 진화론 수업을 억제하고 창조론을 가르치도록 독려했으며, 1980년 대통령 선거에서 진화론에 중대한 결함이 있으므로 공립학교에서 성경의 천지창조를 가르쳐야 한다고 공언했다. 종교적 보수 집단에 크게 의존하는 공화당 후보로서 지당한 공약이었다.
2005년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공화당 지지자의 60%가 창조론자이고 11%가 진화론을 믿는 반면에, 민주당 지지자의 창조론 신봉자는 29%에 불과하고 44%가 진화론에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레이건은 미국의 집권 세력인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이 거의 절대적인 존재로 추앙하는 인물이다. 1964년 베리 골드워터 상원의원의 대통령 출마를 계기로 모습을 드러낸 네오콘은 과학과 끊임없이 갈등을 빚어왔다. 지구 온난화, 줄기세포 연구, 창조론 등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런 맥락에서 2월, 유력 후보인 매케인 의원이 ‘디스커버리 인스티튜트’의 초청을 수락한 것은 하등 이상할 게 없다. 시애틀에 있는 이 연구소는 지적 설계(Intelligent Design) 가설을 홍보하고 진화론 교육을 저지하는 운동의 선봉에 서 있는 단체이다.
1802년 영국 신학자인 윌리엄 페일리는 기계적인 완벽성을 갖춘 척추동물의 눈을 시계에 비유하고, 시계의 설계자가 있는 것과 똑같은 이치로 눈의 설계자가 반드시 존재한다는 논리를 펼쳤다. 페일리의 창조론 때문에 1859년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간됐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화론을 이해하기는커녕 관심조차 갖지 않았다. 그러나 훗날 진화론은 성경에 근거한 창조론을 뿌리째 흔들어 놓았다.
20세기 들어 유례없는 과학기술의 진보로 숨을 죽이고 있던 창조론자들은 1960년대부터 반격을 준비했다. 1996년 영국의 생화학자인 마이클 베히는 세포의 생화학적 구조는 진화론의 자연선택 과정에 의해 우연히 만들어졌다고 볼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정교하기 때문에 생명은 오로지 지적 설계의 산물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지적 설계란 과학으로 입증이 불가능한 지적인 존재, 곧 하느님의 손길에 의한 설계를 뜻한다. 요컨대 지적 설계 가설은 생명이 하느님의 창조물이라는 주장을 과학적으로 설득하려는 시도이다. 예전의 창조론자들처럼 맹목적으로 성경에 매달리는 대신 과학이 밝혀낸 사실을 원용하는 새 창조론은 창조과학이라 불린다.
▲이인식 과학문화연구소장
창조과학자들의 활동은 기독교 문화권을 넘어 이슬람 국가로까지 뻗어나가고 있다. 터키 이스탄불의 한 출판사는 이슬람 신자가 진화론을 공격한 770쪽짜리 ‘천지창조 도감’(Atlas of Creation)을 영어와 불어로 출간해 유럽의 교육기관에 무료로 대량 배포하고 있다.
이처럼 과학과 종교는 갈등 관계이지만 양자 간의 대화를 추진하는 움직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1997년부터 미국에서는 과학자와 신학자들이 모임을 갖고 화해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이들은 과학과 종교가 인류문화의 양대 자산이므로 갈등을 끝낼 필요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종교 없는 과학이나 과학 없는 종교는 절름발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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