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촌의 메아리
글/리태근
연길에 온지도 30년이 가까워 오는데 나한테는 남다른 애착이 있다. 고리타분한 도회지 회색 콩크리트길과 잉크냄새가 물씬 나는 사무실에서 채바퀴를 돌리는 다람쥐처럼 틀에 얷매인 생활을 하는게 질색이다. 남들은 등산하는게 내 건강을 위해서라지만 나는 산을 오르게 고향산을 찾아가는 기분이다. 모아산에 오르면 산에서 풍기는 특별한 정취와 인간냄새가 좋아서 정해놓은 사간이 따라 없이 발이 다슬게 등산한다. 내가 모아산을 줄기차게 등산하는데는 남다른 애호와 특별한 그리움-산촌의 메아리때문이다. 산봉우리에 올라서서 목이 터지게 웨치는 소리, 남들이 뭐라고 하든 말든 미친놈처럼 목이 터지게 웨치는데는 오랜 세월을 두고 잊혀지지 않는 특별한 소리가 내 소리에 메아리로 화답해주고있기때문이라고 할가?
고향산을 향해 목청이 터지게 야호! 하고 소리치면 저 멀리 북녘하늘가에서 만세소리가 울려퍼진다. 백두산아래 와룡산골에서 가늘지만 우렁차게 강산이 쩌렁쩌렁 울려오는 한영백대장의 우뢰같은 목소리가 들려오는것 같다. 두메산골 내 고향 왕지평은 앞뒤가 산이 꽉 막혀서 번개치고 소나기가 운다고 하면 골짜기가 쩌렁쩌렁 울려터질 지경이다. 이른새벽부터 산간마을을 깨우는 우뢰소리에 귀가 멍멍할 지경이다. 10년내내 생산대 대장을 맡아하는 한영백은 어찌보면 소리로 해먹는 대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소리를 지르면 마을로 내려오던 호랑이도 겁에 질려 줄행랑을 놓고 배고프다고 발버둥치던 아이들도 울음을 뚝 그친다.
생산대대 회의실과 밭머리에서 한대장의 황소 영각소리가 그칠새 없다. 정치로선이요. 대채요, 소근장이요, 끝날줄 모르는 계급투쟁으로 사람들이 목에 피대를 세우고 쟁론하다가도 한대장이 뭐라고 소리치면 감히 누구도 거역하는 사람이 없었다.
한대장의 말이라면 무조건 순종하는데는 모두 그럴만한 리유가 있었다.
해마다 이른 봄 볍씨를 붓을 때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생산대 창고마다에는 사원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대채를 따라배우고 소근장(중국농촌 대채식 본보기)을 본받는 정신이 분발해서 이른 아침부터 너도 나도 달려오는가 했더니 쌀독에 거미줄을 치는 때라 행여나 먹을알이 생기겠는가 해서 찾아든다.
볍씨를 고를때면 물위에 뜨는 벼쭉정이를 처리한다는 명목을 빌어서 집집마다 조금씩 나눠주길래 모두들 발벗고 나섰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아도 그놈의 벼쭉정이가 왜 그리도 많았던가 볍씨를 다 부르고 모내기가 끝나고 호박잎에 물이 고이는 보리고개철에도 또 볍씨쭉정이를 나눠준단다. 해마다 보리고개는 요행 이렇게 넘기였다. 그런데 볍씨때문에 한대장이 향정부에 불리워가서 단지곰을 받으며 고역을 치르는줄은 누구도 몰랐다. 사원들을 굶기지 않으려고 볍씨를 허망수자로 보고했다가 눈치를 봐가며 야금야금 나눠준게 틀림없다.
그뿐이 아니였다. 해마다 감자를 심을 때면 사람들이 은근히 감자씨를 속는 일을 남 먼저 하려고 생산대 탈곡장마당에 초만원을 이룬다. 한대장은 모여드는 푸대죽이나 먹는 사원들은 다른 일에 안배한다. 늘 입에 풀칠하기 어려운 석복이네와 사람축에 못가는 청운이에게 안배하는것이였다. 감자눈을 뜨는 일을 하면 꿩먹고 알먹기였다. 공수도 멀고 감자속갱이로 어려운 고비를 무사히 넘기였다.
늦가을 감자를 캘 때면 한대장은 새벽부터 둥글소 영각하는 소리를 지르면서 온동네 남녀로소를 몽땅 산으로 동원한다. 새로 일군 캐황지라 감자도 잘되였다. 이럴때면 한대장은 일할줄 모르는 나에게 감자굽이를 시킨다. 감자밭 한복판에 한자깊이로 넙다란 구덩이를 파게 하게 하고는 구덩이에다 납작한 돌들을 주어다 한벌 펴놓고 모닥불을 지핀다. 불이 사그러질 때 살며시 밀어내고 돌판우에 토실토실한 감자를 펴놓고 뜨근뜨근한 재로 골고루 덮어놓는다.
특수한 방법으로 구은 감자라 둘이 먹다가 하나 죽어도 모른다. 매일 시래기국으로 끼니를 에우던 사원들은 살때를 만났다. 김이 훌훌 나는 감자를 껍질도 벗길새 없이 얼굴에 검댕이칠을 하면서 만포식하였다. 어찌나 많이 구웠는지 먹다남은 감자를 옷보자기에 싸서 집으로 가져가란다. 당장 끼니쌀이 떨어져서 갈팡질팡하던 사원들이 살때를 만났다고 한보자기씩 가져간다. 집체일이라면 잔뀌를 부리던 사원들이 감자파기와 채돌피철이면 누가 시키지않아도 허리띠를 졸라매고 앞장서는게 이런 공짜먹거리때문이 아닐가
그런데 한대장는 눈만 뜨면 책과 씨름하는 나를 은근히 미워하는것 같았다. 이른봄 덤을끄거나 한여름 기음철이면 청년들을 이끌고 산전막을 치고 돌격기음을 맬때면 부리기좋은게 개똥개라고 나를 내세우다가도 일년종결할때면 한번도 나를 선진으로 선거한적이없다. 벼모철이면 언제나 내 뒤를 따라다니며 잔소리가 그칠새없다. 준게없이 미워하는게 리해되지않았다.
툭하면 추천바람이 불어치는 때라 모두들 한대장에게 잘보이려고 수단을 가리지않는데 나는 어쩐지 내키않는다. 내가 좀만 굼뜨게 행동하면 송곳같은 조막손가락으로 옆구리를 꾹꾹 찌르면서 허리 펼새없이 쫓아다닌다. 그런대로 쓸만했던지 나에게 대체평공하는 권리까지 맡기고 사원들의 이름을 한자로 똑바로 쓰라고 족장질한다.
어찌 보면 열길 물속을 알아도 한대장의 한길속내를 알길 없었다.
새벽부터 빨리 산으로 오르라고 어찌나 달궈빼는지 오줌쌀새도 없다. 그날따라 도시락과 조선말사전을 각각 싸놓고 두가지 다 가지고 간다는게 산에 가서 풀어보니 달랑 사전을 들고 왔던것이다. 점심때가 되여 사원들이 샘물터에 모여앉았는데 나는 슬그머니 피해서 나무밑에서 사전을 펼쳐들었다.
“아니 이 애가 어딜 간게야. 야, 태근아, 너 얼른 나오지못해 네가 안 먹으면 우리 모두 오늘 점심을 굶는다. 얼른 나오거라…” 산이 쩌렁쩌렁 메아리친다.
내가 엉기정기 황소 뒷걸음하며 나타나자 다짜고짜로 도시락보자기를 펼쳤다. 한대장은 어이없는지 나와 사전을 뚫어지게 보다가 말없이 숲속으로 가더니 곰취를 한아름 캐가지고 왔다. 도시락덮개에다 구제량식으로 지은 말이발 같은 옥수수밥을 푹푹 떠주는것이였다.
이집 저집에서 떠놓은 모둠개밥에다 곰취를 그대로 무릎에 썩썩 문질러서 보쌈을 싸먹었다. 세월이 몇십년 흘러도 그때 한대장과 사원들이 떠주던 곰취쌈밥이 어찌나 맛있던지 오늘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해도 대학추천바람이 불었다. 정치배경이 좋지않은 나같은 비천한 글벌레는 감히 보명할 엄두도 못냈다. 민주평의를 거쳐서 사원들은 모두가 한대장의 외동딸 옥분이가 적임자로 찍었다. 부녀대장하면서 죽을 고생을 하는데 최근에 적극분자까지 됐으니 무조건 옥분이를 보내야한다고 점을 찍었다.
그런데 한대장은 들었는지 말았는지 끔쩍도 하지않더니 생각밖에 나를 추천할줄이야 두달이 되여서 흐지부지하며 질질 끌어오던 추천이 어떻게 돼서 생각지 않던 나에게 차례질줄이야.
나는 꿈이지 생시인지 은근히 내 살을 꼬집고 또 꼬집었다.
그날 저녁 생산대 보초막으로 나를 불러낸 한대장은 “너는 아무리 지켜봐도 호미를 쥘 놈이 아니야. 대학바람도 금년이 마지막이라더구나. 아무말도 말고 떠날 준비를 해라. 너 학교에 가서는 농사일처럼 대충 공부해서는 안된다.”
새천에서도 룡이난단다. 공부를 잘해서 큰 놈이 돼야 한다. 너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느냐?”
나는 목이 꽉 메서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과연 하는 일마다 서툴게 해서 누구도 나를 쓰게안보는데는 한대장은 나를 북데기속에 낟알로보았다. 당시 형님이 외국으로 도망가서 외국특무로 의심받았다. 정치배경이 좋지못한 나를 어떻게 추천했는지 지금도 그 비밀을 알길 없었다.
내가 방학이 되어 고향에 돌아 왔을 때 황소처럼 든든하던 한대장이 불시로 석페(페에 돌가루가 들어갔음)로 시름시름 앓다가 끝내 저 세상으로 떠나고 말았다. 한평생 사원들을 위해 말 갈데 소 갈데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은 한대장은 소문없이 떠나가고 말았다. 화룡현에서 소문이 자자했던 아동저수지와 석국저수지 막굴 뚫는 험악한 채석일을 앞장서 도맡아하면서 숱한 돌가루를 먹고서 석페병으로 앓았던것이다.
어려운 세월에 약 한첩 변변하게 써보지도 못하고 돌아갔다.
누굴보다 껄껄 웃는 호탕한 웃음소리, 새벽부터 온 골짜기가 터지게 소리치던 황소 영각소리를 몽땅 걷어가지고 하늘나라로 떠나갔는가
한대장이 하늘나라로 떠나간 이듬해부터 봄이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산촌에 메아리는 내고향산천을 세차게두두린다. 가물에 타들어가는 사원들의 가슴속에 단비를 듬뿍 뿌려서 내 고향은 해마다 풍년이 떠날줄 모르는가...
아! 그리운 산촌의 메아리여, 나는 오늘도 모아산 봉우리에 올라서서 한대장의 이름을 부르고 또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