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인형
황지은
엄마가 계신요양원으로 향했다.그곳에서는 구순이신 엄마가 어린이가 되어 지내고 계신다. 인형 두 개도잘 챙겼다. 요양원은 외곽지역에 있다. 건물 내부가 넓고 시설도 좋은 편이라 그나마 지내시기에 불편함이 없어 다행이다. 가는 도중, 가로수에 곱게 물든 단풍이 눈길을 끌었다. 어느새 가을이 무르익고 있음이다. 지난해 엄마가 요양원으로 가실 때는 마음이 아파서 계절을 느낄 여유가 없었다. 지금은 이 순간을 놓치고 나면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들었다.동학사 삼거리 회전 교차로에서 계룡시로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빠른 길도 있지만 밋밋한 그 길보다는많이 돌아가는 이 길은 경치가 아름답다. 그 숲속 도로를 따라 운전하고 있다.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저만치 햇빛으로 붉은색 잎이 투명하게 비치는 단풍나무가 단아한 자태로 서있다. 매료될 만큼 예뻤다. 엄마께도 전해드리고 싶은 마음으로차를 잠시 멈추고 사진에 담았다.
고갯마루 올라서니 구불구불 내려가는 길가에 샛노란 은행잎 나무가 줄지어 서 있다. 화사하게 금빛 옷으로 잘 차려입고 마중을 나온 듯하다. 매번 마음에 돌을 안고 찾아오는 딸이 안쓰러워 엄마가 자연을 선물로 주고 계시나 보다. 엄마가 계시니 고맙고 한편으로 마음이 시려온다.
계룡대 앞을 지나 큰 도로에서계룡톨게이트 방향으로 향했다. 대로변에 메타쉐콰이어 가로수가 특유의 파스텔톤으로 우람하게 큰 키를 자랑하며 도열해 서있다. 풍광이 장관이다. 그곳을 지나니 요양원으로 가는 소로가 나온다. 평범한 시골길은 마음을 차분하게 안정시켜준다.
오늘은 엄마께서 어떤 모습으로 반기실지 궁금하다. 지난번은 엄마에게 포근포근한 인형을 사다 드렸었다. 좋아하실까? 반신반의했었다. 엄마는 물론, 함께 계시는 할머니 두 분이 더 좋아하셨다. 번갈아서 인형을 안아도 보고 가슴에 품어도 보았다. 거동을 못하는 창가 쪽 할머니는 인형을 가슴에 꼭 안고 “아이 따뜻해라” 하면서 내놓기를 싫어하셨다. 중앙에 있는 엄마는 양쪽 할머니에게 번갈아 인형을 던져주면서 재미있다고 계속 웃었다. 한 개만 준비한 것이 미안하였다. 해서다음에 올 때는인형을 두 개 더 가지고와서 하나씩 드리겠다며 약속했었다. 한 할머니는 자기가 인형 값을 치를 돈이 없다며 걱정하셨다. 선물이니 안심하라고 했었다. 많이 기다릴 것만 같았다. 인형 하나씩 품에 안고 세 분이 정답게 지낼 것을 생각하니 갑자기 마음이 바빴다. 속도를 높여 서둘렀다. 인형과 간식이 든 가방을 들고 엄마가 계시는 방문을 열었다. 엄마는 언제나 두 팔 활짝 벌리고 환한 웃음으로 나를반겨 주셨다.간식을 나눠 드리고 인형을 가방에서 꺼내어 엄마한테 먼저 드렸다. 엄마가 옆 할머니들에게 직접 드리는 것이 좋을 듯해서였다 그런데 엄마의 표정이 굳어지더니 갑자기
“이거 다 내꺼야.”
하고는 이불속에다 부리나케 감춰버렸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에 곁에 있는 요양보호사 보기가 민망했다. 나는 하나씩 나눠 가져야 좋은 이유를 찬찬히 설명도 하고 달래어도 보았다. 엄마는 막무가내로 완강했다. 엄마는 불룩해진 이불을 다독다독하며 아기이듯소중히 여겼다.
“여기다 두면 발이 월매나 따뜻하다고…”
명분까지 붙이니 나눠 드릴 방도가 없었다. 나이 들면 욕심이 많아진다더니 엄마도 그런가? 생각을 해 보니 꼭그건 아니다 싶었다.인형이 하나만 있었을 때 엄마는 이해가 안 될 정도로 인심이 후했었기 때문이다. 그 때는 한 분 할머니가 안아보고 돌려주면 곧바로 옆에 할머니에게 주곤 했다. 금방 돌려주지 않아도 흐뭇하게 지켜만 보셨다. 정작엄마는 안 가지고 계셔서 오히려 내가 서운할 정도였다. 그러나 오늘은 상황이 달라졌다. 인형 하나씩 드리려던 내 계획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기분을 바꿔보려고 엄마를 휠체어에 옮겨 앉혔다. 강아지, 토끼와 닭이 있는 뒷마당으로산책을 나갔다. 야외용 탁자 옆에있는 의자에 앉았다. 커피를 타서 드리며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엄마는 엉뚱하게도 다른 이야기를 하셨다. 심각한 표정으로, 손님이 오면 밥을 해주어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어서 걱정이란다. 대접할 것이 아무것도 없어 손님한테 무척 미안하더란다. 사무실 직원이나 다른 방 요양보호사가 오면 손님으로 생각되는가 보다. 집에 계실 때 손님맞이를 융숭히 하던 엄마였으니 이해가 되었다. 엄마의 치매는 낯선 사람하고 관계가 좋아 보여서그나마 다행이다. 다음에 올 때손님대접 할 것을 꼭 챙겨오겠다고 말씀 드렸다. 안심되는지 좋아하셨다. 마당에 핀 꽃도 보고 연못의 잉어에게 먹이도 주면서 즐거워하셨다. 피곤하다고 방에 가자고 하더니 금방 잠이 드셨다.
집으로 돌아와서, 뜻밖의 행동을 보인 엄마를 이해해보려고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인형이 하나였을 때 엄마는 자랑거리이었을 것이다.빌려주고 돌려받는 것은 본인 의지로 하니 신나는 일이다. 엄마는 자기가 당사자가 되고 싶은 주체 의식이 살아있는 것이 분명하다. 치매가 온 엄마에게도 편한 것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잘해주는 이에게 감사 표시도 하고 싶고 내 것을 가지고 인심도 쓰고 싶은 것이다. 삶은, 함께 하면서 자세히 보아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이 많다. 별일이 아닌 소소한 것에서 재미와 보람을 느낄 때 삶의 질이 향상되기도 한다. 엄마에게 인형은 하나이어야 했다. 그래야 자랑도 되고 재미가 있는 일이었다. 옳은 것은 아니더라도 내 기준에서 엄마의 즐거움을 빼앗아버린 셈이 되었다.
사람은 세월이 가니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고 노인이 된다. 나는 끝까지 맑은 정신력을 온전히 지켜가며 살 수 있을까? 두렵다. 마지막 순간까지 내 자존감은 지킬 수 있기를 소망하는 기도를 드린다. 그래도 나의 엄마는 다행스럽지 않은가? 함께 살지는 못해도 딸인 내가 가까이에서 지켜주고 있으니 말이다. 문득외국에서 살고 있는 딸이 보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