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 낭송에 여울지다
조 인 숙
인터뷰가 끝났다. 무슨 말을 했는지, 질문이 무엇인지도 모르게 정신없이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60일간의 여정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그동안의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흐르다가 사라진다.
시 낭송에 뜻이 있는 분들이 모여 지도를 요청해 와 구성된 ’시낭송여울팀‘을 맡아 강의하던 중, 수업을 함께하는 참가자를 통해 연세 높은 어르신들도 지도해줄 수 있겠느냐는 문의가 들어왔다. 지역에 홀로 계시는 어르신들로 그분들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진 ‘봉숭아 학당’팀이라 했다. 그 팀은 동네 지역 센터가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70, 80대 어르신들이 함께하고 계신다. 지난해 1기생에 이어 얼마 전 2기생이 입학했다고 한다. 그 어르신들이 받는 수업은 기공, 텃밭 가꾸기, 시니어 모델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재능 기부로 진행되고 있었다.
난감했다. 지금까지 아이들, 성인반 수업을 진행했지만, 80세에 가깝거나 훌쩍 넘긴 분들과의 시 낭송 수업이라니…….시 낭송이 무엇인가, 시를 외워서 낭송하는 것이 아닌가, 첫 수업을 하기 위해 교실에 들어서자 서른 분 남짓한 어르신들이 계신다. 분위기가 사뭇 진지하다. 먼저 조심스럽게 모든 어르신이 글을 아시는지 확인한 후 수업을 시작했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어색한 웃음으로 인사를 나눴다. 먼저 시를 낭송해 드렸다. 눈을 감고 듣기도 하고 같이 읊기도 하신다.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발음, 발성, 호흡법을 알아가며 소리내기를 한다. 시 낭송이 처음에는 낯설다가도 조금씩 입술을 옴짝거리며 눈을 마주치기도 하신다. 짧은 시 두 편을 골라 드리고 한 주 동안 외워 오기로 했다. 집 안 제일 중요한 곳에 두고 낭송하라는 당부와 함께…….
숙제로 내어 준 시가 부담될까 걱정을 했지만, 얼마나 보고 또 봤는지 돌돌 말린 종이에는 글씨가 지워져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빈손으로 앉아 있는 어르신께 종이를 잃어버리셨나 했더니 “나는 다 외웠다.”하고 바로 낭송할 수 있다 하신다. 뭉클했다. 잠시나마 난감해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그렇게 ‘시, 낭송에 여울지다’의 작은 속삭임은 새벽 공기를 타고 내려온 이슬과 같이 우리를 맴돌며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어르신들과 함께하는 시낭송반이 문화체육관광부가 2023 대한민국 문화도시 사업으로 추진하는 ‘우리가 만드는 문화도시 실험실’에 응모해서 선정되었다. 시市가 문화도시로 선정되기 위해 문화 컨텐츠(프로그램)를 만들어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주제를 가지고 준비하는 행사이다. 최종 선정이 되어 내가 시 낭송 반 대표로 컨설팅 워크숍에 참석해 전문가들의 피드백을 받아 실험을 시작하게 된다. 수업에서부터 공연까지 어르신들의 열의가 뜨거웠다.
공연 날짜가 정해지고 28명이 최종 참여하기로 했다. 시를 정하고 연습에 돌입했다, 나태주 시인의 시집 ‘꽃을 보듯 너를 본다‘에서 시를 골랐다. 장소를 옮겨 다니며 공간만 주어지면 어디에서라도 낭송연습을 했다. “선생님 앞에만 서면 외웠던 시를 잊어버려요” “선생님 나이 많은 우리 때문에 애 많이 쓰지요?” 하면서 손에 사탕을 쥐여주시기도 하며, 조금 긴 시를 달라는 투정도 하면서 공연 준비를 해나갔다. 처음에는 서로 어색해하던 어르신들도 친구가 되어갔다. 각자의 사연도 풀어 놓는다. 7남매 중간으로 태어나 배우지를 못했다 한다. 집에서는 오빠들 공부시키느라 자기는 학교 못 가고 밭일 논일 나가야 했다고……. 얼굴에는 아쉬움이 서린다. 아직 목소리가 또래보다 젊다는 말을 듣는다고 수줍은 미소를 보이기도 한다.
실험실 제목은 ’시, 낭송에 여울지다’로 정했다. 내가 강의하고 있는 ‘시낭송여울팀’이 함께 공연에 참여한다. 시로 인해 낭송이, 우리의 열정이 천천히 타오르다 불길처럼 일어나기를 바라서이다. 외우고 잊어버리기를 반복하며 연습을 이어 나갔다.
드디어 결전의 순간이 왔다. 지역 한 대학 미용학과 학생들이 곱게 화장을 해주고 우아한 드레스에 턱시도까지 성장을 한 어르신들이 순서를 기다린다. 김춘수 시인의 「꽃」을 시작으로 나태주 시인의 열세 편의 시가 독송으로 또는 합송으로 이어진다. 시를 찾고 시 속의 감성을 느끼며 외우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하며 감상해 달라는 나의 말에 관객은 따뜻한 박수를 보내준다.
공연은 순조롭게 흘러가다가도 낭송이 막힐 때는 출연자 관객 모두 정적에 쌓인다. 관객석에서는 격려의 박수 소리가 공연장에 울렸다. 합송에서는 세 사람이 나란히 서서 차례로 낭송을 한다. 옆 사람이 자기가 해야 할 낭송을 해버리자 무대 위에 작은 소동이 인다. 관객은 기다려주고 다시 낭송이 이어지자 유쾌한 웃음소리와 함께 박수가 공연장을 채운다. 「꽃」을 「선물」하고 서로의 「행복」과 「안부」를 「부탁」하며 「시」를 나누며 그렇게 공연은 관객과 하나가 되어간다. 시간이 어찌 가는지도 모르게 지나갔다.
마지막 순서를 알린다. 반주에 맞춰 봉숭아학당 어르신팀과 ‘시낭송여울팀’, 관객이 함께 ‘모두가 꽃이야’를 합창한다. 객석과 무대가 하나가 되는 순간이다. 잘하고 못하고며 나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마음을 나눌 수 있고 우리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어서 소중하고 감사했다. 공연은 감동적으로 막을 내렸다.
행사를 준비했던 문화도시 기록단에서 인터뷰 연락이 왔다. 공식 인터뷰가 끝나고 관계자가 묻는다. 시 낭송이 왜 좋은지, 어떤 영향을 주었냐고. 나를 착하고 참된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것 같다고 했다. 어르신과 함께한 소감을 물었다. 시 낭송을 하면 시 안의 주인공이 된 것 같다며, 시가 자꾸 낭송하고 싶어진다고 하시는 어르신들과 꼭 다시 만나기로 한 약속을 말했다. 느린 손동작으로 검버섯이 조금 더 늘어나도 즐거운 발걸음으로 우리 다시 만나 ‘시, 낭송으로 여울지겠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