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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의 신] 윤지희 - 시놉시스
기획의도
‘다크나이트’ 때문에 난리가 났었다. 전좌석 연일 매진이었지만, 트렌드에 뒤쳐진 작가가 될 수 없으므로, 암표까지 사서 심야를 보고 나왔다. 아, 너도나도 다 보는걸 드디어 나도 봤다. 큰 숙제를 해결했단 안도감과 암표까지 사서 볼 건 아니었다는 본전 생각, (개인적으로는 전편이 훨 나았으므로) 그리고 갑자기 마지막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뭐여, 배트맨이랑 우리 미스김이랑... 비슷하잖녀?
놀란 감독이 들으면 놀랠 노자겠지만, 어쨌든 미스김은 배트맨에 필적할 만한 여자다. 물론 작가생각.
#‘돌아와요 미스김’은 히어로물이다.
배트맨은 출동할 때 항상 검정색 배트슈트를 입지만
미스김은 출근할 때 항상 긴정장바지와 목끝까지 채운 무채색의 블라우스를 입는다.
배트맨은 배트카를 타고 고담시로 출동하지만
미스김은 172 간선 버스를 타고 서울시 중구 서소문동으로 출근한다.
배트맨이 배터랭을 던져서 적진을 뚫는 동안
미스김은 뚫어뻥으로 회사의 변기를 뚫고
배트맨이 배트건을 쏘며 적들을 물리치는 동안
미스김은 124개의 자격증으로 정규직 사원들을 제압한다.
그리하야
배트맨이 배트윙을 날리며 평화사회 구현을 이룩하고 사라지면
미스김은 청구서를 날리며 자신의 일에 대한 정당한 대가인 '시간 외 수당'을 이룩하고 사라진다.
모든 히어로물의 필수요소인 약점과 천적이 미스김에게도 있다.
배트맨이 유틸리티 벨트를 벗기면 힘을 못쓰듯이
미스김은 머리의 망사머리끈을 벗기면 힘을 못쓰고 여자로 변신한다.
배트맨에게 광기로 무장한 천재 악당 조커가 있었다면
미스김에게는 근자감으로 무장한 아부 수재 장규직이 있다. 어떤가? 정말 배트맨에 비길만한 히어로물이지 않는가? 하지만 이쯤에서 우리가 잊지말아야할 사실 한가지.
대한민국 샐러리맨들에게는 미스김이 배트맨보다 1.5배 정도는 더 통쾌할거란, 바로 그 사실.
#‘돌아와요 미스김’은 철저한 현실 속에 탄생하는 판타지물이다.
미스김이라는 캐릭터가 도저히 한국사회에 있을 수 없는 히어로인 반면,
미스김이 현존하는 곳은 너무나 한국적이고 현실적인 곳을 배경으로 한다.
저게 회사여 호텔이여, 발길 닿는 곳곳마다 먼지 한톨없는 그 대리석 세트장같은 회사말고
이게 직원이여 소사여, 천근만근 정수기통 스스로 매일 들어 매다 꽂아야하는 그 회사
50대에 술배가 좀 나와줘야 겨우 단다는 하늘같은 본부장을 30대 초반의 얼굴재력능력 다 갖춘 엄친아들이 다 해먹는 그 회사말고
혼자 사는 집에 들어가기 싫다는 기러기 아빠 김부장과 3차 4차 순회공연해야하는 그 회사
저 회사는 망해가나 도대체 일은 언제한데, 전직원이 일 안하고 연애만 하는 그 회사 말고
이 회사는 망하지도 않나 야근에 주말잔업에 강제로 가입된 사내 동호회까지 내 청춘 다 바쳐버린 그 회사
징글징글 구질구질 그만둘까 로또살까
이번달만 카드값만 적금타면 결혼하면
그러다 결국 오늘도 만원지하철 타고 출근하는 바로 그곳
강남역 사거리에서 광화문 사거리까지 징글징글하게 들어선 수많은 회사 건물들, 그 중에 제일 꼬진 그 사무실, 그래 이제 알겠나, 그게 바로 우리 회사!
그곳이 바로 이 드라마의 배경이다.
#가장 사적인 것으로 공을 이야기한다
'돌미김'이 '파견의 품격' 과 다른 지점은
1. 첫째로 에피소드의 차별화에 있다.
오오마에가 참치해체 요리사와 검도 유단자 등, 멋있고 화려한 일본식 그림을 선보였다면
미스김은 마트캐셔에서 골프캐디, 기간제 교사에서 때밀이 아줌마까지. 너무도 현실적이고 흔하기때문에 우리가 주목하지 않았던 직업들의 의외성을 보여준다.
캐셔의 화장실 연속 참기 스킬, 때밀이의 때수건 두번 돌려감아 발가락 사이 때밀어내기 신공 등, 조금은 과장되었지만 프로페셔날한 미스김의 활약을 통해
비정규직이라는 분야의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2. 그리고 두번째로 원작에는 없었던 가족사와 과거의 비밀들
미스김 뿐만 아니라 그녀와 삼각관계인 두 남자, 그리고 주변 인물들까지
모든 인물들에게는 과거 각자의 비밀이 있다.
그리고 그 비밀은 2007년 12월 24일이라는 공통 분모를 가진다.
언젠가부터 등장하기 시작했던 비정규직이라는 단어. 굶어죽는 사람은 없는데 살기 힘들다. 는 말을 입에 달고 살기 시작한 사람들. 결혼은 때가 되면 하는 게 아니라 돈이 되면 할 수 있는 럭셔리한 제도가 되었고, 내집마련은 했는데 당장 생활비가 없는 하우스 푸어도 생겼다. 몇년사이 급격하게 달라지고 있는 한국사회의 구조.
드라마는 당연히 그 구조를 들여다보고 이야기해야한다.
하지만 그 구조를 들여다보이기위해 우리는 인공위성이 아닌 현미경을 이용한다.
인공위성으로 내려다보는 지구의 모습이 아닌
현미경으로 자세히 들여다봐야만 볼 수 있는
지구의 어느 한 지면을 열심히 기어다니고 있는 개미들의 모습만을 보여준다.
그리하야 그 개미들의 사연과 비밀이 어느 한 지점에서 모였을 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가 정말 둥글던가, 혹시 네모나던가, 아니면 세모지 않을까. 한번쯤 의심해보게 된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지금까지 '미스김'의 장르적 특성, 원안과의 구조적 공통점, 그리고 그 차이점을 총 세가지 논지로서 분석해보았다. 하지만 이러한 열라 논리적이고 대박 거창한 논지보다 중요한 점은
#‘돌아와요 미스김’은 무조건 재미있고 봐야한다.
는 것이다.
그리하야 낮이고 밤이고 전화질을 해대는 상사때문에 불면증이 생긴 Miss 신과
야근과 잔업에 지쳐 소개팅 나가서 졸고만 Miss 한과
더럽고 치사해서 회사 때려친다하고 나갔는데 카드고지서 받고 다시 출근한 Mr. 윤이
이 드라마를 보는 동안만이라도 다 잊고 그저 하하하 웃게되길... 간절히 소망해본다.
캐릭터
“회사를 위해서 동료를 위해서 상사를 위해서 일하지마.
오로지 너 자신만을 위해서 일해. 그것만이 니가 여기서 살아남는 방법이야”
천상천하 유아독존 천지간에 오로지 나와 수당과 자격증만이 존귀하노니
국내최초 자발적 비정규직 미.스.김
여, 나이미상, 소속미상, 신원미상.
아직 20대라는 이야기도 있고, 이미 불혹을 넘긴 나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항상 긴 정장바지와 목끝까지 채워 잠근 무채색의 블라우스, 쌍팔년도 시대의 망사머리끈으로 머리를 질끈 동여맨 모습으로,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스타일과 말투를 항상 유지한다. 듣는 사람이 이상하게 ‘을’이 되게 하는 재주가 있다.
한 회사에 계약직으로 들어가면 계약기간은 절대 3개월 이상을 넘기지 않는다. 어느 회사를 들어가던지 담당업무 이외의 일은 절대 하지 않는다. (*자세한 세부 사항은 미스김 설명서 참조)
3개월의 계약이 끝나고 나면 3개월은 한국을 떠나 세계를 떠돈다. 그래서 남들이 다 가지고 있는 게 없다. 집, 통장, 적금, 가족... 하지만 문제없다. 124개의 자격증과 이 망사머리끈만 있으면 혼자서도 세계 어디서든 살아갈 수 있다.
그리고 이번에 일하게 된 회사에서 만난 푸들머리 남자... 이 푸들, 지금껏 만나본 정규직 멍멍이들 중에 최악의 꼴통이다. 난생처음 내 망사머리를 벗기고, 긴바지를 벗기고, 이제는 내 시간 외 수당까지 벗겨먹으려 한다. 그러던 이 푸들... 어느날 전봇대에 자전거 들이박듯이 입술박치기를 하더니 자기 소속이 되라한다. 자기는 계약직과는 절대 연애를 할 수 없으니 나에게 자신을 위해 정규직이 되어달라 한다.
뭐...? 나에게 정규직 멍멍이가 되는 것도 모자라 멍멍이와 연애를 하란 말인가?
어이가 없어 뚫어뻥으로 그 푸들머리를 뽑아버릴뻔 했다. 그런데... 이제는 또 무말랭(미스김이 무팀장 부르는 별명)까지 나서서 자신을 믿어보라 한다.
하지만 나는 정규직들을 믿지 않는다. 푸들이나 무말랭이나 다 똑같은 멍멍이일 뿐이다. 언젠가는 주인을 위해 동료든 친구든, 누군가를 물 수 있는. 계약직 역시 마찬가지다. 진계장님의 망사끈을 손에 쥔 날, 나는 ‘인간’을 믿지 않기로 했다.
6년 전 그 때 그 사건 이후로...
미스김 사용설명서
▶업무 원칙 및 주의사항
원칙
① 정규 업무시간(AM 9:00~PM 6:00. 점심시간 제외) 엄수를 원칙으로 합니다. 야근이나 잔업에의 강요를 일체 거부합니다.
② 계약서에 명시된 업무 사항 이외의 업무 요청은 일체 거부합니다. 회식 등 단합도 업무의 연장이라는 견해에 명백히 반대합니다.
주의
① 위 원칙 이행에 사원의 반발이 있을 시, 일시적으로 요청을 거부하거나 쌍방 간 다소 유감스러운 관계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② 위 원칙 이행에 사측의 압박이 있을 시, 중도 계약 해제를 고려할 가능성이 큽니다.
▶사용 방법
① 미스김 설명서를 미리 확인하십시요
설명서에 적시된 사항이 아니거나 이를 위반하는 업무/비업무 요청은 절대 수락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쌍방의 괜한 실랑이와 감정손상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니 꼼꼼하게 숙지하시기 바랍니다.
② 시간을 지켜주십시요
업무 시간을 확인바랍니다. 업무 시간 외 점심시간에도 요청이 불가합니다. 부재 시, 혹은 업무 외 시간에는 메모를 남기거나 대기해 주십시오.
③ 요청 내용을 말씀해주십시요
요청의 요점만 간결하게 말씀하셔야 하며 단시간에 복수 업무요청은 받지 않습니다.
④ 등록이 완료되었는지 반드시 확인해주십시요
업무 수행중에 고도로 집중했을 시에 간혹 요청사항을 듣지 못할 수도 있으니, 반드시 ‘접수되었습니다.’ 라는 응답을 확인한 후 자리로 돌아가 주십시오.
⑤ 사용 후 불필요한 인간관계는 자제해주십시오
과도한 칭찬이나 개인적 불만제기는 담당매니저에게 전달하여주시고, 다 쓰신 후에는 조용히 자리로 돌려보내기 바랍니다.
*소프트웨어에 해당하는 정사원의 메인 업무 및 창의적 데이터 작성은 미스김의 업무가 아닙니다.
경고 : 6시 이후 업무이행시 시간 외 수당이 발생합니다.
“우리 YJ 그룹의 핵심상품이 뭔줄 알아? 된장, 간장, 고추장, 그리고!!
바로 나, 잇츠 미, 규직장~!”
나는 평생, 알뜰히, 딸랑딸랑 회사에 묻어가고 기대갈끄야
회사의, 회사에 의한, 회사를 위한 남자 장.규.직.
남, 32세, YJ 그룹 입사 5년차. 현재, <마케팅영업부서> 신임 팀장으로 발령
부동산 유무 : 현재 23평짜리 강남권 전세에 거주
승용차 유무 : 국산 중형차 ‘하이 7’ 소유
수입현황 : 연봉 7200
대한민국 명문대인 ‘염고대’ 졸업했다.
‘YJ 식품’의 영업부에 입사 후, 타고난 눈치와 갈고 닦은 아부 실력으로 우수사원 표창만 2번 수상, 사내 최연소로 회사에서 보내주는 MBA 과정까지 다녀왔다.
화려한 스펙에 걸맞게 사내 최다 별명을 보유하고 있다. 자신의 머리 스타일에 관한 자부심이 대단하여 스스로는 자신의 별명을 청담스따일이라 지었지만 직원들 사이에서는
황부장 앞에서 목에 방울 단 듯 입만 열면 딸랑거린다해서 ‘방울이’,
회사에 맹목적인 충성을 바친다해서 ‘장교주’
어딜가나 학연, 지연, 혈연을 내세운다해서 ‘삼년이’ 란 별명으로 불리우고 있다.
신입 사원들을 위한 규직의 특별 강연 “뱀의 머리가 되느니 용의 꼬리가 되어라”
방울이, 장교주, 삼년이... 하하하... 뭐, 이런 시기와 질투들, 내 모르는 바 아니다. 승자는 어차피 외로운 법이니까, 민초들의 지지 따위 필요없다. 방울이든, 바둑이든, YJ 그룹의 아늑하고 안전한 앞뜰이라면 천년만년 꼬리를 흔들며 총애 받는 멍멍이가 되리라. 이 회사가 이 냉혹한 사회에서 그대들의 카드값과 대출금과 계급을 지켜줄 것이다.
뭐? 그래봤자 회사에 묶인 월급쟁이 아니냐고? 명심하라! 그대들이 지금 잡은 이 용의 꼬리는 그냥 평범한 용의 꼬리가 아니다. 33년간 2800억의 흑자를 거두며 대한민국 장류계를 평정한 최고의 식품회사, 33년간 구조조정 한번 없이 사원들을 지켜온 가족 같은 우리의 회사 YJ 의 황금꼬리다! (일동 환호와 박수)
자, 그런 의미에서 다 같이 우리 회사의 건배사를 외치며 이 강연을 마치도록 하겠다.
간장 공장 공장장은 강 공장장이고, 된장 공장 공장장은 공 공장장이고 세계최고 간장된장고추장은 우리 YJ다!!
규직의 속사정
공부를 잘했다. 근데 집이 좀 어려웠다. 아버지 없이 은행 계약직이던 어머니 혼자 규직을 키웠는데, 대학 등록금까지 대기엔 좀 무리였다. 그런데 고등학교 때부터 규직을 지원해주던 ‘염장 장학재단’에서 ‘염고대’ 장학금을 지원해주겠다 했다. 덕분에 꿈에 그리던 ‘염고대 경제학과’에 갈 수 있었다. 고마웠다. 졸업하면 한국 최대 대기업 ‘차성’에 지원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대학 4학년 때, 비정규직 보호법인가 뭔가, 때문에 계약직인 엄마가 은행에서 잘렸다. 엄마는 26년동안 일한 일터에서 이대로 쫓겨날 수 없다며 매일 같이 파업시위에 나갔고 그러던 어느 날, 주검이 되어 돌아왔다. 그거도 불에 탄 채로...
그래도 엄마가 26년을 다닌 은행인데, 계약직이란 이유로 장례식장엔 화환 하나도 없었다. 그 때 깨달았다. 조직이 없다는 게 얼마나 무섭고 외로운 것인지... 그 때, 규직 앞에 화환이 하나 도착했다. ‘염장 기업’에서 보내온 화환이었다.
염장은 규직이 입사한 후, YJ로 이름을 바꾸고 급성장해나갔다. 규직이 아버지 같은 황부장님과 좀 모자란 큰형님같은 고과장님, 그리고 형제나 다름없는 정한이와 같이 일한지도 벌써 5년이되었다. 남들은 ‘방울이’네 ‘딸랑이’네 하며 규직의 애사심을 ‘아부’와 ‘비겁함’으로 치부하지만, 상관없다. 아부도 비겁함도 내 능력이다. 그 능력으로 나는 평생 조직의 울타리 안에서 안전하게 보호받으며 살 것이라고, 5년 전 그 장례식장에서 결심했다.
이제 YJ는 규직에게 빽이요, 돈이요, 유일한, 가족 이다.
그런 의미에서 뜨내기 계약직들을 혐오한다. 애사심도 책임감도 없이 월급만 축내다가 사라지는 객식구들. 계약직들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언니’라고 부르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유일한 콤플렉스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와 악성곱슬머리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들어온 계약직 하나가 자신을 ‘돼지털 푸들머리’ 라고 부른다. 일부러 청담 스타일로 파마한 머리라고 지금껏 잘 숨겨왔는데, 이 계약직여자, 내가 악성곱슬인 건 어떻게 알았지? 전직이 미용사라도 되는거야 뭐야? 했는데... 미용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 미용 자격증 뿐만 아니라, 버스 운전 자격증, 조산사 자격증, 항공조립 자격증까지! 이봐, 당신 도대체 뭐하는 여자야? 당신이 뭐 슈퍼맨이라도 돼? 뭐? 슈퍼맨이 아니라, 미스김이라고?
“적자생존, 약육강식 정글사회... 전 이런 말들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우린 식인종이 아니잖아요? 우리는 피 대신 일을 나눈 한 식구에요 여러분!”
YJ의 정석, YJ의 상식 무.정.한.
남, 32세, YJ 그룹 입사 5년차. 현재 <마케팅영업‘지원’부> 팀장 발령
부동산 유무 : 현재 15평짜리 회사 근방 오피스텔에 거주
승용차 유무 : 15분 거리 지하철, 혹은 자전거로 출퇴근
수입현황 : 연봉 5200
키워드. 무도령, 청정한, 양보의 미덕
규직과는 염고대 동기이자 YJ 입사 동기다. 3대를 이은 교육자 집안에서 태어났다(현재 그의 여동생이 교사다). 정한의 아버지는 넘치는 인품을 주체하지 못해 여기저기 보증을 서주는 바람에 한동안은 ‘너네 집 또 망했니?’가 친척들의 안부인사였다. 해서 어머니가 너만은... 하는 절박한 심정으로 작두도령에게 비싼 복채 바치고 지어온 이름이 바로 ‘무정한’이다. 그러나 정한은, 아버지의 성품을 쏙 빼닮았다...
누구보다 근태도 완벽하고 일처리도 언제나 우수하다. 하지만 상사한테 이쁨은 못 받는다. 그 이유를 모든 직원이 아는데 정한만 모른다. 라인? 줄타기? 아부? 쭉 뻗은 대나무 같은 그의 성품에는 입력조차 되지 않은 단어다. 그가 지금껏 서본 줄이라곤 밥 먹을 때, 물건 살 때, 그리고 투표할 때 선 줄이 전부다.
최근 YJ 식품의 마케팅부와 영업부가 통합되면서 규직과 함께 팀장 후보로 올랐지만 결국 탈락했다. 것도 모자라 사실상 좌천 수준인 마케팅영업‘지원’부로 발령받았다. 하지만 그는 회사에 절대 불필요한 조직은 없다, 주어진 자리에서 소임을 다하면 그만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회사 식구들은 그런 그를 ‘역시 무도령’이라며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을 따름이다.
그런 그에게 미스김의 존재는 가히 신인류 발견에 준하는 충격이었다. 정한을 호구취급하며 껌을 강매하는 할매에게 ‘껌팔이에게는 프라이드가 없는가’ 하며 껌팔이 설명서를 써갈겨주는 여자... 규직에겐 좌변기에서 소변을 볼 땐 앉아서 싸라고 소리를 지르는 여자.. 정한은 그런 미스김이 멋.있.었.다.
동경에서 비롯된 호기심은 점점 자라났고, 이제 정한은 그녀가 늘 궁금하고 안쓰럽다. 서른둘 평생 처음으로 가져보는 감정, 도대체 이게 뭘까...?
겉만 보면 미소짓는 아리따운 여자, 기회 앞엔 맹수처럼 돌변하는 여자
그런 반.전 있는 여자 금.빛.나.
여. 25세.
2013년 YJ식품 상반기 공채로 입사(인턴쉽 수료 우수자 전형)
현재, YJ 마케팅영업부 신입 정규직으로 발령
거주지 : 현재 강북 50평형대 빌라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음.
자산관리 : 월급은 펀드형 적금으로 저축, 지출은 아버지 명의의 가족카드로.
승용차 유무 : 입사기념으로 아버지에게 선물받음
좌우명 : 사람을 잃으면 한순간 후회하고 기회를 놓치면 일평생 후회한다.
웃는 얼굴로 천 냥 빚을 갚는다.
아버지가 야당 국회의원 ‘금배집’이다. ‘약육강식의 냉혈함 속에서 살아남는 비법은 오로지 기회를 잡는 것이다.’라는 배집의 가르침에 따라 자신의 타고난 강점인 미모를 활용해 줄곧 기회를 꾀어 차곤 했다.
7세 때 우유빛깔 어린이 대회에서 대상을 수상, 학교 다닐 땐 Y대 김태희(일명 금태희)로 이름을 떨쳤고, 금태희라는 명성으로 학교의 간판모델이 되어 YJ 입사의 목표까지 달성하게 되었다.
이처럼 매번 기회를 놓치지 않고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그녀의 전매특허, ‘월드비젼 미소’다.
흔히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지만, 빛나의 유달리 예쁜 미소는 날아오는 침도 피해가고 천 냥 빚도 갚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뭐든 쉬워 보이는 그녀에게도 유일한 난공불락의 성이 있었으니 이름하야 그가 그녀의 과거 첫사랑이자 현재의 짝사랑, 장규직이다.
때는 6년 전, 콧대 높은 대학 동아리 선배 장규직과 연애에 골인한 빛나, 그러나 그 연애는 얼마 못 가 종지부를 찍게 되는데... 이름하야 ‘대성리 딱밤 사건’이 발단이었다. 동아리 MT 때 빛나는 규직의 벌칙 딱밤 상대가 되었고 설마했던 빛나에게 규직은 ‘벌칙은 벌칙이요, 여친은 여친이로다.’ 라는 짧은 변명과 함께 이마가 찢어질 듯한 고통을 날렸었다. 그 뒤 6년이 흐르고 규직과 같은 회사에 입사하게 된 빛나. 6년동안 자신이 얼마나 더 예쁘고 사랑스러워졌는지 규직 앞에 당당히 보여주며 복수하리라 했는데... 모두가 보는 앞에서 빛나가 밤새만든 기획안으로 코를 풀어버리는 규직. ‘니 기획안에는 여자가 들어가있다. 화장 다지우고 킬힐 벗고 쌩얼로 맨발로 나를 이겨라. 그럼 나도 그땐 널 여자로도 인정하지’
저 남자는 6년 전이나 지금이나 늘 한결같이 재수없다. 그런데 그랬던 규직이 요즘 좀 변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미스김 앞에서는 규직이 다른 사람처럼 변한다. 규직은 최근에 미스김을 위해서 ‘배려’라는 걸 했고, 빛나는 그 낯선 광경을 똑똑히 보게 된다.
뭐지? 미스김은 되는데 나는 안되는게? 미스김은 있는데 나는 없는게?
“저의 소원은 딱 하나랍니다... 소개팅 나가서 맘에 드는 남자한테 당당하게 저 YJ식품 다녀요! 라고 말하고 애프터신청해서 성공하는 거!”
아직은 인생의 ‘진짜’ 장맛을 모르는 햇병아리 신입 계약직 정.주.리.
여, 25세, YJ식품 <마케팅영업부> 3개월 계약직 입사
부동산 유무 : 현재 관악구 소재 월세 40만원 다세대주택 거주
승용차 유무 : 매일 아침, ‘지옥철’ 2호선에 몸을 싣고 뚜벅이 출근
수입현황 : 연봉 1500, 보너스 제로, 연차수당 제로
키워드. 무한긍정. 당황하면 튀어나오는 오리지널 하드코어 전라도 사투리.
전라도 곡성 출신이다. 그녀 역시 염고대를 나왔다. 다만, 서울 본원이 아닌 전라도 군산 캠퍼스다... 덕분에 학교 얘기할 때는 구구하고 절절한 설명을 덧붙여야 한다. 어찌됐든, 그곳에서도 주리는 남들만큼 열심히 공부했고, 토익 토플 서포터즈(것도 YJ에서!) 등 남들 하는 건 다 했다. 하지만 졸업 후 내몰린 취업시장에서 ‘저쪼아래’ 대학 출신은 아~무도 눈여겨보아주지 않았다. 모든 염고대가 ‘그’ 염고대가 될 순 없단 사실을, 주리는 스물다섯이 되어서야 맨몸으로 뼈저리게 깨달았다.
취직을 위해 상경한 후 지원한 회사마다 죄다 떨어지고 눈물겨운 생활고에 시달리다 <파견의 품격>이라는 파견회사에 등록했다. 그리고 그녀를 서류전형에서 뻥 차버린 수십 개의 회사들 중 하나인 YJ식품에 3개월 파견 계약직으로 들어갔다.
기대에 못 미치는 출발선에서 시작한 사회생활. 서러움이 넘쳐흐른다. 규직의 알쏭달쏭 호의에 덜컥 맘 줬다가 쇠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고. ‘입사동기’라며 사근사근 다가온 빛나에게 덜컥 정 준 이후로는 웬일인지 거의 밥 먹듯이 야근을 한다... 정규직들의 텃세와 무시에 툭 하면 화장실로 뛰쳐가 주먹으로 입을 틀어막고 엉엉 운다.
하지만 것도 잠시... 천날만날 질질 짜면 뭐하당가. 들장미소녀 캔디도 아니고.. 주리는 캔디보다 훨씬 강한 여자다. 그 언젠가 다가올 정규직 전환의 그날을 기다리며! 미스김선배 같은 슈퍼울트라커리어우먼이 될 그날을 그리며! 그녀는 오늘도 외로워도 슬퍼도 한번만 울고는 훌훌 털고 일어난다.
그에게 충성하면 못 먹어도 고용안정, 모로 가도 기득권은 거머쥔다
마케팅영업부의 절대실세 황.갑.득.
남, 54세, YJ 그룹 입사 30년차. 현재, <마케팅영업부> 부장
부동산 유무 : 용산구 한남동 소재 52평 주상복합 거주, 경남권 개인부지 소유
자동차 유무 : 대기업 부장급 고정차종인 국산 대형차 쟈네시스 소유
수입현황 : 연봉 8600
83년 영업부에 입사하여 밤낮없이 맨발로 뛰며 회사에 청춘을 바쳤다. 당시 염장식품은 이제 막 출정준비를 마치고 업계에 진출한 햇병아리 회사였고. 그는 ‘직장은 내 인생의 사활이다’라는 인생의 표어 아래 염장과 그 운명곡선을 함께 했다. 갑득이 최연소 과장으로 승진하던 해, 회사의 대표식품 염간장은 최초로 업계매출 1위를 달성했다. 그리고 현재까지 YJ는 10년 넘게 업계 절대우위를 고수하고 있고, 갑득은 핵심 중의 핵심인 마케팅영업부의 부장 자리에 올라 슈퍼갑의 지위를 획득했다. 이제 남은 건 임원 뿐, 지금의 기류로는 별 무리없이 안착할 것으로 예상된다.
부드럽고 허물없는 상사의 면모의 이면에는, 칼날같은 냉철함이 숨겨져 있다.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서면, 모든 감정은 배제하고 오로지 실리에 따라 결정한다. 20년 전, 회사의 경리이자 비밀연인이었던 호분에게도 그랬다. 당시 그녀는 갑득의 잘못을 대신 뒤집어쓰고 회사를 그만뒀지만, 그는 끝내 다른 여자와 결혼했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갑득의 인생계획 그림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녀가 바로 현재 마츄픽츄의 사장인 조여사다. 이제 그녀와는 이따금 가게매상을 올려주며 진한 농을 주고받는 편안한 친구사이가 되었다.
그가 규직을 예뻐하는 건 당연하다. 규직은 과거 일선에서 회사에 몸 바쳐 일하던 시절의 자신을 닮았다. 그의 하늘을 찌르는 애사심은 갑득에게도 큰 이득이다. 규직이 지금처럼 몸 바쳐 충성하는 한은, 그의 든든한 방패막이 되어줄 생각이다.
“너희들이 회식 가서 목청 터져라 외치는 건배사 있지? 그게 바로 내가 이 회사 들어와서 이룬 제일 큰 업적이다. 그러니까 건배할 때마다 내 생각하라구.”
늘 ‘제자리’가 감사한 만년과장 고.정.도.
남, 57세, YJ 그룹 입사 30년차. 현재 <마케팅영업‘지원’부> 과장 발령
부동산 유무 : 은평구 소재 28평짜리 자가 연립주택 거주
자동차 유무 : 역사 속으로 사라진 불운의 국산 중형차 내간자 소유
수입현황 : 연봉 6500
특이사항. 60KG 이하의 왜소한 체격
황부장과 입사동기다. 갑득이 승승장구하며 부장까지 오르는 동안, 그는 15년째 쫓기듯 이리저리 부서만 옮겨다니는 만년과장 신세가 되었다. 회사에서 세수하기, 귀파기, 낮잠자기 등 사무실의 ‘찜질방화’ 스킬로 상사들, 일부 깔끔 떠는 여직원들의 질타를 사기도 한다. 허나 특유의 푸근함과 수다로 기합만땅 신입사원도 무장해제 시키는 매력이 있다. YJ의 건배사 ‘간장 공장 공장장은 강 공장장~’의 창시자다. 덕분에 회식 때마다 어깨가 으쓱 올라간다.
소문난 아날로그맨이기도 하다. 아직까지 종이신문을 구독하며, 아직도 사내메일 첨부문서 하나 여는데도 진땀을 뺀다. 고물 내간자는 뻑하면 폐차로 오인돼 강제 견인되고, 64화음 고물폰도 10년 넘게 강산이 마르고닳도록 쓰다 얼마 전 딸의 성화로 바꿨다. 덕분에 요즘은 하루 한번 딸내미와 화상통화 하는 재미로 산다.
마누라는 늘 한숨섞인 푸념이지만, 정작 본인은 큰 불만도 자격지심도 없다. 큰 사고 안치고 고만고만 여기까지 온 것만도 기특하다. 그는 그저 퇴근 후 동료들과 도란도란 부딪히는 소주 한잔이면 족하다. 그래, 이 정도면 그리 나쁜 인생은 아니지..
수다쟁이 고과장의 입이 유일하게 무거워지는 때가 있는데, 황부장과 함께 바 마츄픽츄를 찾아갈 때다. 사실 그는 총각시절, 경리였던 조여사를 짝사랑했었다. 그녀도 이젠 세월이 흘러 많이 변했지만, 아직도 가끔은 명치가 뭉근-해질 때가 있다. 딱 마누라한테 미안하지 않을 정도, 고정도만...
야근대신 외근을 밥 먹듯이 하고 호시탐탐 칼퇴근할 기회만 노리는 남자
없어도 회사는 잘~만 굴러가지만 그래도 없으면 서운할 남자 구.영.식.
남, 34세, YJ그룹 입사 7년차. 현재, YJ식품 <마케팅영업부> 대리 발령.
수입현황 : 연봉 4600.
자동차유무 : 국산 SUV 물쏘
부동산유무 : 현재 서울 마포구 29평형 아파트 형네 집 더부살이 중.
규직의 입사선배지만 4년째 대리딱지를 떼지 못하고 있다. 후배이자 상사인 규직을 대하기가 껄끄러운 것이 당연할 터, 업무시간에는 반말과 존대의 중간어미를 구사하고. 회식 때는 엄청 선배노릇을 하며 시답잖은 군기를 잡아 분위기를 종종 흩트린다. 그래서 황부장 눈밖에 난 부하직원 1순위다.
영업부 시절 별명이 ‘외근차사’였다. 외근만 나갔다 하면 깜깜무소식이어서. 그 밖에도 까인 기획안을 제목과 폰트만 바꿔 고대로 올리고, 법인카드를 분실하여 비상사태를 불러오는 등 여러모로 팀의 구멍을 맡고 있다.
더부살이하며 형수님 눈칫밥 먹어온 세월이 꼬박 3년. 지긋지긋한 노총각 신세에서 탈출하고 싶다. 허나 그의 이상형은 ‘맞벌이에 혼수는 5대 5, 집안살림은 알아서 착착, 시부모에게 싹싹하고 출산 후에도 일을 놓지 않을 개념녀’다. 이 얘기를 들은 봉희소담다라 트리오는 치를 떨며 마흔 살까지 장가갈 꿈도 꾸지 말라고 저주를 퍼붓는다! 그중 맏언니 봉희는, 입으로는 사사건건 틱틱거리면서도 손길만은 은근 살뜰하게 영식을 챙기고. 영식 역시, 그 손길이 마냥 싫지만은 않아 보이는데...
퇴근 땐 제일 먼저 엉덩이를 떼고, 회식 때는 끝까지 엉덩이 붙이고 앉아 황부장에게 야자타임을 건다. 그런 그에게.. 승진과 장가의 길은 아직 멀고도 요원한 듯 보인다.
떡볶이 한 접시를 먹어도 청담 사거리에서!
부장한테 깨지더라도 장규직 어깨 뒤에서!
노는 물이 인생을 좌우한다 신.민.구.
남, 29세, YJ 그룹 입사 2년차. 현재 YJ식품 <마케팅영업부> 사원
자동차 유무 : 수입차 흔다 시박 보유(36개월 할부/ 18개월남음)
수입현황 : 연봉 3900
특이사항 : 장규직은 나의 미래!
‘그 사람을 알려면 사는 곳부터 파악하라.’ 신입이 들어오면 정규직, 계약직 불문하고 이력서의 주소지부터 확인한다. 벼룩시장 부동산 정보면을 닳도록 정독하는 취미 덕에 주소만 훑고도 그 사람의 자산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고. 어린시절 ‘우리들의 천국’ ‘베버리힐즈의 아이들’ 을 보며 상류층 대학 생활을 꿈꾼 나머지 인근 대학에 입학하고도 사립의 메카 염고대 주변에서 여흥을 즐겼다. 졸업 후 YJ에 입사하자마자 마이너스통장 개설, 강남의 원룸을 얻어 독립생활을 꾸렸다. 버는 족족 자동차 할부금등을 갚느라 모아 논 돈은 없지만 ‘인생 즐기는 니가 챔피언’이라는 소중한 좌우명이 있으니 의기소침할 일 없다. 더구나 입사 후부터 줄곧 인생의 멘토로 삼은 장규직 선배가 있으니 더욱 든든하다. 그의 꼬불거리는 머릿결 한 올에도 배울점이 있으니 그 곁에서 바짝 붙어 지내다보면 나도 언젠가 비지니스 클래스 타고 미쿡 갈 날이 올거라 생각한다.
“그냥 편하게 Mr. 계라고 부르셔도 됩니다. 하하하.”
칭찬이 자자하다, 경우 바른 계.경.우.
남, 27세. 2013년 YJ식품 상반기 공채로 입사. <마케팅영업‘지원’부> 발령.
한국 시립대 행정학과 차석 졸업
거주지 : 구리에서 부모님, 남동생과 함께 주공아파트 거주. 지하철로 출퇴근.
자산관리 : 월급 전액 어머님 통장으로 자동이체. 용돈 받으며 생활. 교통비 제외(교통카드) 하고 하루 만원으로 생활.
키워드. 바른 생활, 짠돌이, 겸손, 국공립, 시립, 이름 부를 때 주의요망. 초코파이
어떤 경우에도 늘 바르고 겸손하라는 뜻에서 지은 이름, 계 경우. 20대 청춘을 오로지 스펙 쌓기에만 갖다 바쳤던 경우는 입사 첫날 한 눈에 반한 주리를 보며 핑크빛 첫 연애를 꿈꾸는데... 빠듯한 용돈 사정 속에서도 주리를 위해 매일 아침 몰래 자리에 초코파이를 가져다 놓는 경우. 그 소박한 정성과 진심이 너무도 경우스럽다.
그러나 이런 바른청년 경우에게도 반전이 있었으니... 바로 '주사' 였다. 친구들과 축구 보며 마시는 맥주 한잔이 자신의 한계라 믿고 있던 경우, 회식에서 처음 자신의 무궁한 주량을 확인하지만... 그만 주사를 부리게 된다. 과장님 넥타이를 노래방 문고리에 묶어버리고, 안주대신 재떨이에 있는 꽁초를 집어먹고, 노래방 탬버린까지 양복에 숨겨서 가져와버린 경우. 그날 이후, 경우의 별명은 정말 개경우란 뜻의 '멍경우'가 되어버린다.
그러나 정신줄을 놓은 상황에서도 그가 유일하게 예의를 다하는 단 한사람이 있었으니, 정한이었다. 늘 마음 속 존경하는 위인(?)이자 멘토였던 정한, 후에 주리가 정한을 좋아하게 되자, 사나이답게 주리를 정한에게 보내주기로 하고 홀로 소주를 먹으며 마음을 접는데... 주머니 속에는 단돈 만원 뿐이고! 지금은 사랑하는 여자를 그분께 보내드려야 하는 계.경우일 뿐이고!
별일 없이 잘 사는 박봉희
참견 없이 못 사는 오지랑
월급 족족 옷 사는 연다라
이름하야 계약직 트.리.오
박봉희(여, 29세)
경력
: 2년 계약직 두 번 갱신, 마영부 5년차 근속 근무중
특징
: 손놀림이 빠르며 엉덩이가 무겁다. 맡은 바 일을 ‘앉아서’ 잘 해낸다. 근무 중 일어나는 때라곤 점심시간, 회의시간 뿐. 화장실 가기 싫어 물도 잘 안마시고 악성 변비가 있어서 오히려 편리하다고 느낀다. 일어나는 것을 죽도록 귀찮아 한다. 자리는 일어서지 않아도 될 만큼 근무 중 필요한 물건 모두 구비, 최적화되어있다. 속도위반이라는 말에 유독 민감하게 반응한다. 비록 박봉의 계약직이지만 남자 능력에 기대지 않고 독립된 자산으로 결혼을 꿈꾸는 합리적 현실주의자.
오지랑(여, 25세)
경력
: 2년차 계약직 현재 2년차 마영부 근속중
특징
: 졸려서 눈은 감고 다녀도 귀는 늘 열고 다닌다. 쥐도 새도 모르는 말들을 혼자 다 주워듣는 가십계의 토끼귀. 사내 핫뉴스는 가장 빨리 캐치하며, 사원들 등급매기기, 별명 짓는 게 취미다. 계약직이라고 차별대우 받는 것보다 남들이 자신도 모르는 가십거리를 알고 있을 때 더 서러운- 자타공인 오지랖 1인자.
연다라(여, 24세)
경력
: 1년차 새내기 계약직. 마영부 근속중
특징
: 주리와 같은 시기 입사한 계약직이다. 주리처럼 여러군데 원서 넣어서 된 케이스가 아니라 적당한 2년제 대학을 나와 한번에 입사한 케이스. 계약직계의 금빛나다. 내가 계약직인 게 뭐 어때서? 내 남자만 정규직이면 되지.. 하는 가치관. 정규직 남자와 데이트하기 위한 품위유지비에 월급의 80퍼센트 이상 투자하느라 저축은 0원이다.
겉보기엔 오타쿠지만 알고 보면 레알 엄친아
지나치게 똑똑해서 고달픈 병특박사 오.탁.구.
남, 24세, YJ식품 마영부 병역특례 산업기능요원 근무
1998년 과학영재올림피아드 금상 수상
1999년 백리안 윈도우 커뮤니티 부시삽
2011년 서울택시 앱 개발자
염고대 전산학과 3학년을 마친 뒤 휴학하고 YJ그룹에 병역특례 산업기능요원에 지원했다. 참여정부시절, 과학영재로 뽑혀 장차 한국의 스티븐 잡스가 될 것이라는 집안의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컴퓨터의 세계에 몰두한 결과, 그냥 오타쿠가 되었다...
항상 두꺼운 초근시안경에 체크무늬셔츠, 청바지를 고수한다. 출근하면 대부분의 시간은 ‘디씨아웃사이드’ 컴갤, 비아블로3갤, 아이유갤을 전방위로 오가며 놀고, 남는 시간에 빛의 속도로 업무를 해치우고, 그러고도 남는 잉여타임엔 마케팅영업부서의 인간 군상들을 관찰한다. 사실 지금까지 전산학도인 그의 세상은 0과 1로만 통했다. 하지만 조직생활은 달랐다. 그 안에는 수많은 변수가 존재했고, 그 변수들 중 가장 골때리는 존재는 바로 빛나다. 금빛나... 그녀가 처음 울상을 지으며 엑셀자료를 들고 그의 자리로 찾아왔을 때, 탁구는 이제까지 자신을 스쳐간 수많은 여자들의 환영을 보았다. 자기 무기가 뭔지 너무 잘 아는 영악한 것들. 자신이 진화심리학적인 관점에서 절대우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굳게 믿는 여자(그래놓고, 데이트... 해주지 않았어..). 이젠 이골이 난다. 그 모든 증오를 담아 매몰차게 거절, 승리감에 쾌재를 부르며 고개를 돌리는데, 어라... 나의 취미생활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인터넷창... 내리지 않았어.. 등뒤에서 들려오는 빛나의 나긋한 목소리.
‘너... 설마... 혹시... 그 말로만 듣던 오타쿠라는 계층이니?’
황급히 창을 내리는 나에게 ‘부끄러워하지마, 다문화사회잖아' 라며 윙크를 날리는 빛나. 그 사건 이후에는 나는, 나와는 공존할 수 없는 인간 리스트 상위권에 빛나의 이름을 올렸다.
계약직을 향한 어머니즘, 계약직을 위해 존재하는 계약직 잡매니저 안.종.철.
남, 32세, <파견의 품격> 입사 6년차 계약직 잡매니저
5년차 베테랑 잡매니저다. <파견의 품격>에 등록되어 있는 파견계약직들을 회사에 채용시키고 관리한다. 그러다 보니 어딜 가나 머리 숙여야 하는 ‘을’ 신세다. 사용주인 회사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굽신굽신, 툭 하면 때려치겠다 선언하는 직원 말리느라 굽신굽신. 게다가 그 역시 정규직 전환의 날이 아득한 계약직 신세. 그러니까 말그대로 계약직들을 관리하는 계약직 신세요, 계약직들의 고충을 꼬박 들어줘야 하는 게 그의 가장 큰 고충이다.
그는 5년째 잡매니저 기피대상 0순위인 미스김을 전담하고 있다. 고압적이고 까칠하며 일하는 동안 사용업주의 불만도 폭주하는 그녀. 왜인지 미스김은 번번이 종철만 지목한다. 왜일까. 내가 제일 만만해서? 제일 말을 잘 들어서...? 어쨌든 그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하게 회사 수익의 15%를 차지하고 있는 VVIP 회원이다. ‘뭬시는’ 데 한치의 실수도 있어선 안 된다.
최근 미스김이 근무하는 YJ식품. 그곳엔 공포의 악덕사용주 장규직이 있다. 툭하면 종철의 머리를 잡고 흔들며 ‘종철아, 종쳐라~’를 외치는 규직, 사실 둘은 고등학교 동창이다... 사회는 비정하게도 한 교실에서 같은 교복을 입고 공부하던 둘을 갑과 을로 나누어놓았고, 종철은 오늘도 규직을 위해 열심히 ‘종’ 흉내를 내며 딸랑인다.
“여자에게 사랑은 인생의 필수요소지만, 절대조건이 되어선 안 돼. 모든 걸 바치고 잃어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을 때에만.. 그렇게 해야 해.”
남미의 열정을 가득 품은 BAR 마츄픽츄의 여사장 조.호.분.
여, 47세, 살사 BAR <마츄픽츄> 운영
언제나 환한 미소로 Hola를 외치며 반기는 마츄픽츄의 사장, 조여사. 페루에서 미스김을 만난 후 갑자기 향수병이 훅 밀려와 그곳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했다. 하지만 막상 돌아오니 이젠 페루가 그리워져 한국땅에 그녀만의 작은 남미를 만들었다.
항상 여유 넘치고 즉흥적으로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기관리가 매우 철저하다. 덕분에 아직도 탄력넘치는 라인을 유지한다. 누구에게나 마음을 터놓고 다정하며, 매사에 낙천적인 여자다. 가게에서는 페루의 수호성녀의 이름이자 장미를 뜻하는 ‘로사’란 이름을 쓴다. 헌데 요즘 황부장과 고과장이 가게를 찾을 때마다 번번이 큰소리로 ‘호분씨~’를 외쳐서 부아가 난다.
20년 전, 갑득이 다른 여자의 손을 잡고 식장을 나서던 순간, 그녀는 남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20여시간의 비행 동안 그녀는 평생치 눈물을 다 흘렸다. 물론 지금은 미련도 미움도 사라진지 오래다. 하지만.. 아직도 그가 다녀간 날이면 혼자 바에 앉아 술을 한 모금 들이켜곤 한다.
페루에서 한인식당을 운영하던 시절, 우연히 미스김, 아니 점순을 만났다. 이따금 찾아가던 해안절벽에서. 엄마 잃은 고양이 같은 쓸쓸한 모습에 마음이 동해 따뜻한 밥을 먹이며 시작된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모성애 같은 건 없지만, 이 아이에게만큼은 언제나 파고들 수 있는 곁을 내주고 싶다.
“내게 옷이란 문명의 감옥이다.”
사시사철 치골 드러내는 찢청년,
살사 추며 여심 홀리는 이국의 마초남 훌.리.세.사.
한국나이 올해로 24세. 국적 페루, 태생은 아마존.
직업: 마츄픽츄 살사 댄서(미스김의 춤파트너)이자 아마존 구매대행 싸이트 쥔장.
(진짜 아마존에서 공수한 물건을 판매하고 있다.)
실수해도 괜찮아, 실패해도 괜찮아.
춤을 출 수 있다면 그 자체로 행복한 거니까.
훌리세사와 미스김의 인연은 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한은행사건으로 회사를 관둔 점순이 남미여행 중 페루에서 만난 훌리세사. 배낭 여행객 상대의 호스텔 알바를 하고 있던 그는 매일 침대에서 잠만자는 점순을 마구 깨운다. 'Hey Miss, 잘 곳이 필요하면 다른 곳을 알아봐. 여기선 딱 두가지 밖에 할 수 없어. 마시거나, 추거나'
그날 이후 훌리세사는 미스김에게 ‘실수로 스텝이 엉키면 그게 바로 춤, 실수로 넘어지면 그게 바로 삶이다.’ 라며 살사를 가르쳐줬고, 그 인연으로 점순을 만나러 한국으로 놀러 온 훌리세사, 하루만 더.. 하루만 더.. 하다 마츄픽츄에 정착하기에 이른다. 예쁜 한국 여자에게 더없이 친절하지만 겁쟁이 한국남자(특히 겨울에 추위타는)는 무시하는 경향 있다. 점순을 둘러싼 규직, 정한, 빛나, 주리 등 러브라인의 장본인들이 한번씩 바를 방문할 때마다 용기와 위로가 담긴 시의적절한 조언을 해 이들 마음에 잔잔한 파동을 일으키는 훌리세사. 그는 식을 줄 모르는 열정에 젖어 오늘도 셔츠를 찢는다.
“내가 뭐랬어, 세상에서 제일 더러운 게 돈이야.
그게 바로 은행원이 항상 몸을 깨끗이 해야는 이유야, 알았어 김점순?”
미스김의 가슴에 새겨진 화인 진.미.자.
여, 50세, 대한은행 입사 26년차
2007년, 계약직 직원 용역화 방침에 거부하며 총 파업 가담 중, 화재로 사망
실업계 고등학교 출신으로 대한은행에 입사해 대리까지 올랐지만, IMF때 정리해고를 당했다. 얼마 후 은행에서 다시 그녀를 계약직으로 불러들였다. 그후 그녀는 한결같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모든 직원들의 두터운 신임과 존경을 한몸에 받는 카리스마 계장으로 근속했다. 혼자 몸으로 외아들을 키워낸 강한 엄마이기도 했다.
그러던 중 기간제 보호법이 시행되고, 회사는 그녀를 하루아침에 듣도보도 못한 용역회사로 내몰아버렸다. 그녀는 직원들과 함께 파업에 가담했다. 26년간 함께해온 자신의 책상을 지키기 위해. 하나뿐인 아들, 규직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엄마에게도 끝까지 지켜내고 싶은 게 있다는 걸.
하지만 회사는 끝까지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고, 직원들은 하나둘씩 떠나갔다. 규직은 제발 적당히 하고 관두라며 역정을 냈다. 끝내 아들에게마저 마음을 외면당하고, 마지막 희망의 불씨마저 꺼진 날 밤. 미자는 자신이 딸처럼 아끼는 신입행원, 점순의 머리를 곱게 빗어주고 자신의 머리망을 씌워주었다. 함께 나가서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고 끝까지 자신을 설득하는 점순에게, 미자는 이렇게 말했다. 내 책상이 여기 있는데, 내가 어딜 가니.
그리고 그것은, 미자의 마지막 말이 되었다.
"세상 모든 때 낀 것들 내게로 오라!"
온 동네 허물 벗겨 하수구가 막혔다네, 근성갑 버블매니저 김.성.갑.
남, 56세, 점순의 아버지
26세 때 여수에서 상경 후, 정릉동 ‘억수탕’에서만 목욕관리사 경력 30년
‘때밀이 손님은 하루에 10명 이상 받지 않는다.’
지난 30년간 성갑은 위의 업무 원칙을 한 번도 어긴 적이 없다. 손님이 때가 많든 적든, 몸집이 크든 작든, 기본 한 시간 이상 온 정성을 다해 손님을 대하는 성갑. 그 집념과 장인정신으로 소문이 자자해 먼 곳에서 오는 손님들도 있고 종종 대형 사우나에서 고액 스카웃 제의가 들어오기도 한다.
그 좋은 재주를 왜 동네 목욕탕에서 썩히느냐, 손님 한 명당 한 두 시간 씩 때를 밀면 뭐가 남느냐하지만 그 때마다 성갑은 말한다.
‘나 잘 살자고 손님 몸값을 낮춰야 쓰겄는가? 내 직업이 본디 손님이 갑인디? 나는 30년 간 때밀어서 이미 때부자 아니여~? 허허허’
30년 간 손님의 때만 생각하느라 핸드폰도 없고 정해진 식사시간도 따로 없다.
안 움직이면 배불러지고 배불러지면 게을러진다. 게을러지면... 외로워진다. 고 생각하며 오늘도 요구르트 한 모금 쭉 빨아 당기며 근성을 다지는 성갑. 고향도 엄마도 없는 그리운 내 딸 점순이가 언제라도 찾아올 수 있는 억수탕이기에 그는 이 곳을 절대 떠날 수 없다.
시놉시스
2007년 12월 24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데이트를 하고 있는 풋풋 촌티 주리와 박선배, 세상이 모두 하트로만 보이는 이들과 달리 한켠에서는 대한은행 파업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시위 같은 건 딴 세상 일인 듯, 주리와 박선배, 달콤한 첫키스를 나누는데.. 그 뒤로 염장식품 빌딩과 대형 트리, 그리고 불길이 치솟는 대한은행 건물이 보인다. 그리고 그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어가는 한 여자가 있다. 아득하게 울리는 외침.
돌아와요! 돌아와요 점순씨!
6년 후, 2013년 봄의 시청 앞 광장 풍경. 염장식품은 YJ라는 세련된 간판으로 바뀌어있고, 불타던 대한은행 간판은 SD은행으로 교체되어 있다. 풋풋한 여대생에서 비루한 취업준비생이 된 주리. 망연히 올려다 본 하늘 위로 날아가는 비행기.
같은 시각 태평양 상공
LA에서 한국으로 오는 비즈니스 클래스 안, 규직의 모습이 보인다. 샤넬 양복에 흰색 발목양말을 신은 듯한 어색한 외양으로 비즈니스석의 품격을 맘껏 음미하는데...
‘캬~ 이코노미랑은 이 바디감 자체가 다르네. 언니, 혹시 꼬냑 이런 것도 있어요?’
이 남자가 바로 YJ 그룹의 떠오르는 별, 장규직이다. 회사에서 보내준 MBA 과정을 마치고 2년만에 비즈니스석에 몸을 싣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규직. 우연히 퍼스트 클래스에 발을 들였다가 본능적인 찌질함에 이끌려 이리저리 둘러보는데... 자리에 세팅된 떡을 맛보다 갑자기 난기류로 기체가 흔들리면서 떡이 목에 턱 걸리고 만다. 그때 나타난 한 여자, 정신나간 규직의 뺨을 사정없이 때리고 명치를 파워펀치로 가격한다. 가까스로 목숨을 구한 규직. 쿨하게 떠나는 여자의 신비로운 뒷모습에 대고 성함이라도 알려달라 외치는데..
무심하게 규직을 돌아보더니 쉬크하게 세글자를 내뱉는 여자.
-Kim.. 미스김.
슈퍼갑이 나타났다. 린다김보다 무섭고 돌김보다 까칠한 그 여자, 미스김!
규직은 돌아오자마자 마케팅영업부 신임 팀장으로 임명되고 동기인 정한은 사실상 좌천이나 다름없는 마케팅 ‘지원’부의 팀장으로 임명된다.
규직과 정한은 마영부에 일할 계약직 면접을 보게 되는데... 면접장에 들어서는 여자를 본 규직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녀는 다름아닌 바로 퍼스트 클래스의 그 사모님! '미스김' 이다. 뭐야? 겨우 파견회사 소속 계약직 직원이었어? 규직은 비행기에서 있었던 일이 자존심이 상해 미스김을 면접에서 떨어뜨리려 하지만 잡매니저 종철은 이건 면접이 아니라 ‘황부장의 승인으로 마련된 계약조건 설명의 자리’라며 단호하게 선을 긋는다.
그렇게 계약직으로 입사해 온갖 잡무를 거뜬히 해내는 미스김. 그녀의 손길에 죽어가던 엑셀파일도 살아나고, 막혔던 변기도 맑은 물을 쏟아내고. 규직은 그런 미스김이 못마땅하기만 하다.
한편 미스김과 함께 마영부의 3개월 계약직으로 입사한 주리. 얄짤없이 6시 퇴근하는 미스김과 달리 의욕이 넘치던 주리는 남은 업무를 USB에 담아 집까지 들고 오고. 다음날 아침 그만 중요한 PT 자료가 담긴 그 USB를 택시에 흘리고 온다.
사무실 안의 모두가 USB를 찾기 위해 뛰어다니는 가운데, USB를 찾는 일을 도와달라는 정한의 부탁에도 조목조목 계약사항을 따지는 미스김.
-택시회사에 전화는 걸수 있지만, 찾으러 나가지는 못합니다. 찾으러 나갈 경우, 개인경비신청이 요구되며....
-때려춰어~!!!
규직의 분노서린 외침과 함께, 부원들도 그녀의 속물스러움에 놀라 혀를 내두른다.
우여곡절 끝에 USB가 흘러흘러 공사장까지 갔음을 알아내고 바로 찾아간 직원들. 허나 지하 400M 아래 큰 구덩이로 빠져버린 USB.. 도저히 사람이 내려갈 수 없는 깊이에 주리도 체념하는데...
그 때, 어디선가 들리는 거대한 시동음, 미스김이 크레인을 끌고 나타났다! 모두들 그 모습 숨죽여 바라보고... 시간외 수당 계약서에 싸인을 받은 미스김, 거대한 집게로 살포시 USB를 집어올리는 데 성공한다.
피티가 성공적으로 끝나고, 완전히 녹초가 된 정한과 규직. 황부장은 고생한 두 남자에게 ‘진짜 좋은 걸’ 보여주겠다며 살사 BAR 마츄픽츄로 데려간다.
그 시간. 마츄픽츄 한가운데서 섹시한 의상을 입고 풀어헤친 웨이브머리를 나풀대며 춤추는 여자. 건강한 미소를 활짝 짓는 섹시한 저 여자, 바로 미스김이다...!
본격적인 대결의 시작
YJ의 2013년 상반기 신입 공채 입사식 현장. 하버드대 졸업가운과 학사모를 쓰고 마치 아가동산의 교주와 같은 자태로 나타난 규직, 신입사원들에게 ‘뱀머리는 잘돼봤자 뱀이고 용꼬리는 못되어도 용’을 주제로 목청 높여 열띤 강연을 펼친다. 눈을 빛내며 경청하는 신입들 사이엔 빛나도 있다. 한편 강당 뒤편의 미스김, 규직의 연설은 아랑곳않은 채 분리수거에만 몰두하고. 둘 사이에는 불꽃 튀는 눈빛이 오간다.
입사식이 끝난 후, 규직과 정한은 다소곳이 차를 돌리는 미스김을 유심히 지켜보며 지난밤을 떠올린다. 마츄픽츄에서 고혹적인 살사 댄스를 추던 그녀의 모습을 목격하고 경악했던 두 남자. 규직은 머리카락 한올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으로 답답한 바지 정장을 고수하는 미스김을 가증스럽다는 듯 보며, 살사 댄스를 흉내내며 외친다.
-내가 다 봤어!! 당신의 그 천박한 이중생활! 그 음흉한 정체를 밝혀내서 회사만천하에 폭로하고 말...
하는데, 눈하나 깜짝하지 않던 미스김. 방정맞은 춤을 추는 규직의 가랑이 사이 벽에 호치키스로 공고문을 파바박!! 붙이며 위협하고. 놀란 규직은 다리에 쥐가 나고 만다..
한편, 주리는 지난번 ‘크롱 USB 분실사건’ 후 미스김에게 어마어마한 시간 외 수당 청구서를 받고 광분한다. 안 되겠다 싶어 점심시간에 식당까지 졸졸 쫓아와서 6개월 할부는 안 되겠느냐 통사정을 하는데.. 미스김, 그런 주리의 코앞에 다가와 위압적으로 말한다.
-잘 들어. 계약직은 오로지 두 가지만을 위해서 일한다. 수당과 점심시간. 그러니까.. 수당은 빨랑 갚고, 앞으로 점심은 딴데 가서 먹어.
좋아. 저 여자의 콧대를 내가 사정없이 꺾어놓고 말겠어.
규직은 자신의 화려한 영업실력으로 미스김의 기를 깔아뭉개기 위해 거래처 홈마트 방문에 그녀를 대동한다. 홈마트에서 '미친 브로콜리'로 불리며 존재감을 떨치고 있는 규직. 이참에 이 여자에게 나의 카리스마와 영업력을 보여주겠다 마음먹지만... 웬걸, 버선발로 뛰어나와 규직을 맞던 점장은 미스김을 보더니 무릎을 꿇다시피한다. 알고보니, 예전에 홈마트에서 캐셔일을 했던 미스김. 최단시간 계산은 물론, 계산대의 비효율적인 동선까지 개선하고, 봉투걸이대까지 개발해내 그 해 홈마트를 역대 최고 매출 실적을 기록하게 만든, 전설의 캐셔였던 것이다.
정녕 저 여자에게 약점이란 없는 것인가, 좌절하는 규직...
그러던 중 홈마트 된장 주문 물량 문서를 정리하던 주리와 빛나의 실수로 100통이었던 주문량이 1100로 잘못 전송되는 사태가 벌어진다. 마영부 직원들이 전부 달려가 된장을 도로 나르는 한편, 규직은 모든 잘못을 계약직인 주리에게 덮어씌운다. 규직은 점장에게 사과하며 계약직이 문제다, 책임감이 없다를 운운하다가 캐셔들을 비하하는 발언을 하게 된다. 그 말에 천천히 눈을 치켜뜨는 미스김, 정규직을 계약직에 기대서 ‘기둥서방질’이나 하는 무뢰한에 빗대며 그와 맞선다. 그 말에 분노하는 규직. 급기야는 미스김에게 캐셔 대결을 신청한다.
-내가 이기면 모두가 보는 앞에서, 90도로 허리를 굽혀서 사과해라.
-그러죠. 대신 제가 이기면 빠마머리씨는 여기서.. 삭.발. 하십시오.
-콜.
그렇게 마크 피크타임에 캐셔 대결을 펼치게 된 두 사람. 제한 시간 내에 더 많은 물건을 계산하는 쪽이 이긴다. 마트 계산원 복장까지 갈아입고 비장하게 대결을 펼치는 두 사람. 어느새 정규직파와 비정규직파로 나뉘어 열띤 응원을 펼치는데...!
이건 뭐지, 이 느낌...?
모든 대결이 끝난 후... 정류장에 곧게 앉아 버스를 기다리는 미스김. 그 옆으로 다가오는 남자, 정한이다. 업무시간은 끝났다며 대화를 거부하는 미스김에게, 다짜고짜 묻는 정한.
-미스김씨, 왜... 일부러 져준 건가요?
미스김, 대답없이 물끄러미 정한을 본다. 그리고는 설마 장팀장과 회사를 위해 일부러 져준 거냐 묻는 정한에게 담담하게 답한다.
-저는 누구를 위해서도 일하지 않습니다. 그냥... 제가 진짜 똥이라서 진 것뿐입니다.
-(O.L.) 미스김씨는, 똥이 아닙니다!!
버스에 몸을 실으려는 미스김의 앞을 가로막고 다짜고짜 외치는 정한. 미스김, 그의 쌩뚱맞은 외침을 잠시 황당한 듯 보다 무시하곤 어깨를 밀고 가려는데, 버스에서 내리는 사람들에게 떠밀려 그만 정한의 품에 안기게 된다!
얼떨결에 정한의 가슴에 얼굴을 퍽, 묻었다가 고개를 든 미스김... 근데 정한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처음 느끼는 이상한 느낌에 눈동자가 마구 흔들리는 정한, 멍하니 묻는다.
-이거... 뭐죠 우리?
그렇게 정류장에 서서, 혼란스러운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미스김과 정한..
같은 시간, 밑동에 아주 살짝 바리깡 자국이 난 자신의 머리를 거울에 비춰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는 규직...
과연, 캐셔 대결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설마 정한이가 양파망태기를…?
YJ식품은 13년 동안 지켜온 간장매출 1위 자리를 라이벌 ‘차성’에게 뺏기는 충격적인 상황을 겪게 되고, 비상대책회의를 연다. 회의시간에 만나게 된 정한-미스김-규직. 마트 캐셔 대결 사건 이후로 미스김과 처음 대면한 두 남자는 각각 어색한 분위기로 그녀의 눈을 피하지만, 미스김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커피를 서빙한다.
어떻게 간장 1위 자리를 재탈환해올 것이냐에 대한 회의가 이어지고, 주부소비자들을 사로잡기 위해 간장게장 담그기 캠페인을 벌이자는 의견이 나온다. 그 말에 무릎을 탁! 치는 규직. 우리 회사 간장으로 즉석 간장게장을 담그는 과정을 보여주고 판매를 하면, 간장 매출도 올리고, 싱싱한 게장으로 우리 간장의 이미지도 각인시키고! 하며 아이디어를 보탠다.
오~ 모두 좋은 생각이라며 만장일치로 동의를 하는데. 정작 그 프로모션을 펼칠 달인이 없다... 수백 마리의 게를 한번에, 것도 뭐가 집게다리고 뭐가 내 손가락인지 구분도 안될 정도로 게 손질에 능한 달인을 대체 어디서 찾는단 말인가..
그때. 있어요! 정한의 목소리에 모두 고개를 돌려보면,
-16년동안 게손질만 하신 분. 저희 고향에 계세요.
합심하여 함께 게장 프로모션을 진행하게 된 정한과 규직, 남자 화장실에서 나란히 서서 일을 보게 되는데... 정한, 전날 정류장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조심스레 입을 연다.
-미스김씨 말이야, 보통 남자들이 봤을 때 여자로서 어떤거지? 그래도 객관적으로 예쁜 편. 에 속하는 거... 같은데...
-예쁘다는 말은 인간에게만 쓰는 것이다!!! 그런 표현자체가 저런 들짐승에게 가당키냐 하냐! 무엇보다도 저 망사머리. 저런건 현대사회의 여성이라는 인간이 쓰고 다니는 게 아니다!!!
그러더니 규직, 갑자기 걱정이 몰려오는 얼굴로 묻는다.
-너 말이야... 설마... 양파 망태기를 좋아한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
정한, 자기는 그냥... 미스김을 보면 왠지 안쓰러운 마음이 들 뿐이라고 한다. 그지? 너 그 여자가 불쌍해서 그런거지? 오지랖도 정도껏 해라. 너 계약직 여자랑 엮이면 인생이 얼마나 힘들어지는 줄 아냐. 이 세상에 우리를 노리고 취집하려는 계약직이 얼마나 많은데!!
-그럴 리가. 미스김씨는 그런 사람은 아닌 것 같아.
그 때, 갑자기 두 사람 사이로 들어오는 미스김. 정한, 당황하며 서둘러 바지를 추스르고. 규직은 소리를 지르며 여긴 왜 들어왔냐며 경악하는데... 태연하게 뚫어뻥을 들어 보이는 미스김.
-일하고 있었습니다. 왜요?
이 개념도 변도덕도 없는 여자야, 일도 좀 가려가면서 해라!!! 울부짖는 규직.
규직, 허옇게 뜬 얼굴로 화장실을 나서며 결심한다. 저 여자... 내가 좀 알아봐야겠어. 마침 신입과 계약직들의 사원증이 발급되고, 재빨리 미스김의 사원증을 확인하는 규직. 하지만 미스김은 사원증에도 미스김이라 박혀있다.
-이봐, 당신, 이름이 뭐야?
-미스김입니다.
-그게 아니잖아! 진짜 이름이 있을 꺼 아니야. 당신이 미국사람이야? 이딴식으로 성만 부르게? 성이 앞에 있고 이름이 뒤에 있는 한국이름을 대란 말이야!
말없이 무언가를 적어주고 가는 미스김, 펴보면 ‘김미스’ 라고 적혀있다.
게 손질의 달인, 집게손 김병만 선생을 모셔와라!
정한과 규직은 부산에 연락해 생게손질의 달인, 김병만 선생을 수소문해보지만, 몇년전 어디론가 사라진 후 행방이 묘연하다는 답만 듣게 된다. 두 남자는 병만선생을 찾기 위해 분주하게 뛰어다니는데...
주리와 빛나는 동기모임을 하던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병만 선생을 목격하게 되고, 정한과 규직에게 급히 연락을 한다. 수산시장으로 달려온 두 남자는 은인이라도 만난 듯 ‘선생님!!’ 하며 병만의 두 손을 부둥켜안고 행여나 그 귀하신 손에 흠집이라도 날까 조심하며 병만선생을 회사로 모셔온다.
병만선생과 게장 프로젝트 계약을 진행시키던 마영부. 그 때, 회의실로 커피를 내오던 미스김을 보더니 병만선생이 놀라며 아는 척을 한다.
-아니 너... 점순이 아니냐?! 여기서 일하니?
점, 점순이요? 미스김의 본명을 알게 된 팀원들은 다들 놀람을 감추지 못하고. 신난 규직은 점순송까지 작곡하여 부르고 다니며 미스김을 신나게 놀려먹는다. 반면 정한은 병만선생과 미스김이 어떻게 아는 사이인지 궁금한데...
마침내 마영부서는 ‘병만선생과 300마리의 게‘라는 야심찬 이름의 프로젝트의 계약을 성공적으로 성사시키고, 이제 당일 프로모션만을 앞두게 된다. 이미 축제 분위기에 휩싸인 마영부, 모두가 합심해 성사시킨 프로젝트에 이번만큼은 모두 서로의 공을 치하하며 연말 시상식과 같은 훈훈한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거기에 찬물을 끼얹는 미스김의 시니컬한 한마디.
-회사는 우정을 나누는 곳이 아닙니다. 생존을 나누는 곳이지.
그 말에 열받은 규직, 미스김을 ‘시간외 수당 밖에 모르는 돈기계’라 비난하며 또 한번 으르렁대는데...
우리의 의리는 당신들의 우정보다 절박하다.
헌데 게장 프로모션 홍보 사진을 찍던 병만은 촬영장에서 미끄러져 오른팔에 깁스를 해 프로모션을 할 수 없게 된다. 모든 책임의 화살이 규직에게로 날아들고. 그때, 황부장 바지자락 앞에 조용히 무릎을 꿇는 규직. 황부장, 그런 규직에게 마지막 선처를 베푼다.
-니 장은 니가 담가라.
규직, 병만의 대타를 찾기 위해 경우와 함께 시장 일대를 샅샅이 뒤지지만 게 300마리를 손질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마트, 횟집, 정육점까지... 번번이 거절당하는 가운데 시간은 속절없이 가고, 프로모션 시작까지는 앞으로 한 시간. 더 이상의 방법이 없다고 깨달은 규직, 말없이 행사장으로 향한다.
한편, 정한은 이 상황을 타개할 사람은 미스김 뿐이라고 생각한다. 정한, 정수기를 갈고 있는 미스김에게 다가가 이 상황에 미스김이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는다.
-내 상황이 아니니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무정한 미스김의 말에 이번만큼은 순둥이인 정한도 화가 난다.
시간 외 수당 얼마면 됩니까! 하고 묻는 정한에게 태연히 대꾸하는 미스김
-시간 당 150, 이번 건은 특별업무기 때문에 부가세가 별도로 청구됩니다. 사용, 하시겠습니까?
한편, 행사장 시간에 맞춰 나타난 규직, 생게 300마리 앞에 모여든 인파를 향해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 황부장에게 다가가 품에서 사직서를 꺼내 내미는데... 그 때, 홍해를 가르듯이 인파 사이를 뚫고 나타나는 한 사람.. 바로 미스김이다! 수산시장에 막 도착한 어부의 차림으로 단상에 서서 고무장갑을 꺼내 척 끼는 그녀. 모두 놀라고, 규직 역시 커진 눈으로 바라보는 가운데, 미스김의 ‘대게 손질 쇼’가 시작된다..
퇴근길,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 미스김의 뒷모습을 보는 규직. 가만히 다가가 자신이 직접 준비한 시간외수당이 담긴 봉투를 내민다. 하지만 자신은 오늘 일을 한 게 아니라, 동종업계 지인을 도운 것뿐이라며 거절하는 미스김. 규직, 의아한 얼굴로
-하지만 당신은... 우정같은 건 안키운다고... 했잖아?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계약 인생들은 당신들처럼 우정을 키울 시간이 없습니다. 다만.
건너편의 SD은행을 바라보는 미스김. 불어오는 바람에 미스김의 긴 바지가 나부끼며 다리의 화상자국이 살짝 보이고...
-우리는 서로 생존을 나눌 뿐입니다.
바람에 벚꽃잎들이 흩날려 두 사람 아래로 떨어지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미스김, 소녀같은 표정을 짓는데.... 그 모습을 보더니 무언가에 홀린듯 그 미스김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갖다 대는 규직.
그리고... 건너편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는 정한이 있다.
저...저건 무슨 시츄에이션?
입술 접촉 사건 그 이후.. 마영부의 오전 풍경
자리에 앉아 사정없이 손톱을 물어뜯으며 다리를 떠는 규직. 간밤의 입맞춤 사건이 떠오르자 급기야는 ‘악!’ 하며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정한은 어젯밤 그 시간 이후로 알 수 없는 가슴 통증에 시달리고 있는데...
패닉 상태의 두 사람 때문에 이상한 사무실 분위기. 사람들 서로 눈치 보는 가운데, 정작 당사자인 미스김은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정수기 통을 매다 꽂고 있다.
이대론 안되겠다. 뭐라도 해야지. 하며 탕비실의 미스김에게 다가가는 규직. 생수 마시는 척을 하며 어젠 잘 들어갔냐 묻는다. 네. 하며 짧게 대답하는 미스김.
- 오늘 아침 인터넷 뉴스를 봤더니 어젯밤에 중구 근처에서 바람이 무려 풍속 30M로 불었다 하더라고? 중구 근처면 우리 회사 있는 데잖아, 풍속 30이면 성인 남자도 밀릴 수 있는 세긴데… 우와. 어젯밤 회사 앞에 서 있기라도 했으면 바람에 떠밀려서 실수로 지나가던 여자랑 입술이라도 부딪힐 뻔 했겠어.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규직을 빤히 바라보는 미스김
-왜…왜…?
-충치 보입니다.
아, 미안. 하며 입을 닫으면 쌩하니 나가버리는 미스김.
그렇게 하루아침에 슈퍼 을이 되어버린 규직, 자기도 모르게 미스김을 피해다니는데… 그 속도 모르고 부서원 전원을 집합시킨 황부장. 오늘은 자신이 좋아하는 롯데:기아의 야구 경기가 열리는 날. 롯데 광팬인 황부장은 앙숙인 기아와의 경기가 있을 때마다, 전 부서원들을 모아 강제응원 시키는 걸로 유명하다.
규직은 기다렸다는 듯 책상서랍에서 롯데 유니폼과 응원봉을 꺼내 들더니 마치 응원단장처럼 진두지휘를 펼친다. 캬~ 대단하다. 장팀장 저거 사러 사직구장까지 내려갔다 왔대. 모두들 규직의 딸랑이에 혀를 내두르지만, 정한은 안다.
규직이 사실은 기아 골수팬이라는 것을…
아버지의 원수 앞에서 웃는 낯으로 춤을 추는 기생처럼, 황부장 앞에서 흰장갑을 끼고 롯데응원을 선보이는 규직. 즐거워진 황부장은 이럴게 아니라 승점 맞추기 내기를 하자고 한다. 진 사람은 틀린 승점만큼 딱밤 맞기로. 부서원 전원은 당연히 롯데가 이긴다에 표를 던지는데. 딱 한사람 기아에게 표를 던지는 이가 있었으니…. 미스김이다. 사람들 모두 어서 철회하라며 미스김에게 눈치를 주지만 단호하게 대답하는 미스김.
-저는 최강 기아 타이거즈의 골수팬입니다.
하지만 경기는 기아선발투수 이훈재의 부진으로 롯데의 승리로 끝나고, 미스김은 딱밤을 맞게 된다. 부서원들은 당연히 규직을 내보내고, 황부장 역시 내심 기대를 거는데… 열광적인 응원 속에 손가락으로 미스김의 이마를 조준하는 규직. 하지만 미스김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간밤의 뽀뽀 사건이 생각나고 자신도 모르게 톡. 하고 이마를 살포시 건드린다.
규직의 어이없는 응징에 흠칫 놀라는 부서원들. 아~ 어제부터 바람이 계속~ 하며 어이없는 변명을 해대며 서둘러 사무실을 나가는 규직. 그 규직을 심각하게 바라보는 정한.. 또 다시 가슴에 통증을 느낀다. 아, 계속 왜 이러지? 체했나..?
마영부는 신제품 홍초 홍보활동을 위해 야구경기에 직접 참석한다. 마침 이날 ‘롯데: 기아’의 최종경기가 열리는데... 기아의 선발투수 이훈재가 마운드에 오르자 그와 스캔들을 일으켰다 어이없게 잘린 스포츠 아나운서가 관중석에서 난동을 피우는 돌발상황이 발생한다. 거기에 당황한 이훈재는 실수로 파울을 날린다. 그때, 규직과 정한은 관중석으로 날아온 파울볼을 동시에 잡게 되고, 정한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규직에게 볼을 양보한다.
9회말, 이훈재 투수는 주특기인 슬로커브 변화구를 선보이며 팀을 역전의 승리로 이끈다. 헌데 경기가 끝난 후 수훈선수인 이훈재의 인터뷰를 준비하던 신입아나운서가 부상을 당하게 되고. 미스김이 대신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는데.. 마이크를 잡은 미스김. 전문 스포츠 아나운서 못지않은 해박함으로 인터뷰를 잘 이끌어 나가는데… 갑자기 8회 말 투쓰리 상황에서 어이없는 볼을 던진 이선수의 실책을 책망하며 인터뷰는 법정분위기로 변하고.. 이훈재 선수는 뜨금하며 떠듬떠듬 답변을 하는데... 미스김, 진지한 카리스마로 말한다.
-좋겠네요.
-네…?
-야구선수라서. 현실은 야구가 아니라서 어떤 사람들은 그 단 한번의 실수로 영원히 아웃될 수 있습니다만. 이훈재 선수는 좋겠습니다. 실수를 해도 9번의 기회가 주어지는 야구선수라서. 당신을 감싸줄 팀원과 구단이 있어서.
미스김의 말에 눈동자가 흔들리는 이훈재 선수, 그리고 규직...
오늘도 얄짤없이 퇴근하는 미스김. 그 뒷모습을 보며 혼란스러운 규직. 그 때, 무언가 결심한 듯 비장한 표정으로 규직에게 다가가는 정한.
-내가 가지고 싶다.
뭐, 뭘? 하는 눈으로 규직, 정한을 보면
-아까 그 야구공. 내가 먼저 잡았잖아. 그러니까 그거. 내가 가지고 싶다.
처음보는 정한의 모습에 놀란 규직, 하지만 금세, 새끼 뭘 그런걸 진지하게 말하냐. 사람 쫄게. 너 다 가져라. 장난치며 공을 던지는데, 다시 규직에게 진지하게 말하는 정한.
-나 사실 봤다. 어제 버스 정류장.
말없이 서로를 쳐다보는 두 남자.
-바람이든, 실수든... 그게 뭐든... 미스김씨한테 확실히 해줬으면 좋겠다. 사과든, 설명이든...
-근데 넌... 왜 그렇게까지 그 여자한테 신경쓰는 건데... 너 말이야 설마... 정말로 그 양파 망태기를 좋아하는 거야?
정한, 그 말에 답하지 않고 가만히 규직을 바라보고. 두 남자 사이에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흐르기 시작하는데..
다음날 아침, 출근길에 황부장을 만난 규직... 무언가 결심한 듯 입을 연다.
-부장님. 사실은 제가 고백드려야 할 사안이 있습니다만...
황부장, 규직의 심각한 태도에 긴장하며 보면
-사실, 저는 기아 팬입니다.
후련한 마음의 규직. 할말이 있다며 미스김을 당당히 불러내고
-저기, 버스정류장에서의 일.
-(시니컬) ?
-그러니까 그, 바람이 불어서 내가 당신한테 부딪혔던...
-(딴청) ?
-그러니까 내가 당신에게 뽀뽀를 했던 바로 그 일!!!
-(그제야 들어주며) 네.
-내가 그 쪽한테… '시간 외 수당'을 주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뭐 그런 결론이 났어. 돈으로는 안받겠다고 하니까 어떻게 해? 그러니까 내 성의다 생각하고 받아둬.
규직, 담담한 얼굴로 바라보는 미스김에게
-뭐 어쨌든 미안하게 됐어. 혹시 상처 받았다면...
-(막으며) 괜찮습니다. 날아다니던 파리가 입술에 앉았다고 상처받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냥 더러울 뿐이지요.
멍해진 규직. 뭐…뭐…? 파리…? 너 지금 파리라고 했어!!! 내 입술이 파리? 파리라고???
닿았을 때 기분이 더럽다는 공통점을 설명하는 비유일 뿐입니다. 사과는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럼… 입가를 한번 스윽 닦고서 꾸벅 하고 사라지는 미스김.
거기서! 야! 망사! 야, 스타킹! 야이 양파 망태기야!
그렇게 또 한번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을 긋게 되는 두 사람. 하지만 이제는 그 뒤에 우리의 무정하지 못한 착한 남자, 무정한 팀장이 서있다.
정한은 미스김이 좋다.
처음엔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사람에 대한 '동경'인가 보다 생각했다. 하지만 왜인지 미스김이 계속 궁금하고, 안쓰럽다. 심지어 회사를 못가는 주말엔 그녀가 보고 싶어 빨리 월요일이 왔으면 싶다.
서른 둘 평생에 처음 가져보는 감정. 도대체 이게 뭘까...
하지만 이런 자신의 마음을 진단해보기도 전에, 정한은 규직이 마음에 걸린다. 당장이라도 죽일 것처럼 끊임없이 으르렁대며 싸우는 두 사람. 하지만 최근 규직의 모든 관심의 촉수가 온전히 미스김에게 쏠려있는 것도 사실이다. 대체 규직의 마음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런 정한을 지켜보는 또 한 사람, 주리다. 주리, 언젠가부터 정한의 눈길이 항상 미스김의 뒷모습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을 감지하는데..
뭐, 뭐지... 설마... 무팀장님... 미스김 선배를....?
미스김, 6년전에 그녀에겐 무슨일이?
휴게실에 모여 자판기커피를 마시며 막간의 대화를 나누는 마영부 직원들. 미스김을 화두에 올리게 된다. 우연찮게 그녀의 본명은 알게 됐지만, 그 밖의 것들은 여전히 오리무중인 상태다. 여전히 범상찮은 포스를 풍기며 온갖 활약을 펼쳐온 미스김. 계약직 트리오와 민구, 영식은 각자 상상력을 발휘하며 그녀의 과거를 유추해 본다. 전직 소방수였대 그래서 물불을 안가리다잖아. 뭔 소리, 다방 레지였다더구만, 그래서 커피를 잘탄다던데...? 급기야는 회사 이곳저곳에서 미스김의 정체에 대한 괴소문이 떠돌고...
한편, YJ가 장류를 공급하고 있던 학교 급식소에서 갑자기 거래를 끊겠다 선언한다. 마영부 팀원들은 거래중지를 막기 위해 학교로 찾아간다. 하지만, 급식소를 차성계열의 외식업체로 외주화 하면서, 각종 장류 공급업체도 당연히 차성식품 것을 쓸 수 밖에 없다는 학교. 결국 설득에 실패하고, 힘없이 돌아서는 팀원들... 헌데. 어느 교실에서 상위 1% 우수학생들이 어려운 수학문제를 내놓고 기간제 교사를 괴롭히는 광경을 목격한다. 그 때, 미친듯이 칠판에 부딪히는 백묵 소리가 들리고....
보면, 미스김이 칠판 앞에 서서 문제를 풀고 있다. 의자까지 가져와 그 위에 올라서서 칠판 한가득 공식을 적어가며 문제를 푸는 미스김. 교실은 놀라움의 정적에 싸이고 미스김의 백묵소리만 울려퍼지는데...
문제를 다 푼 미스김, 백묵을 내려놓고는 아이들에게 문제를 풀었으니 자리에 앉으라 한다.
-학생도 직업 중의 하나다. 업무시간이 끝나기 전까지는 자리를 뜨지 않는 것이 모든 직업의 수칙이다.
당신은 누구냐고 묻는 아이들에게 나는 YJ 식품 마케팅영업지원부 계약직이라고 답하는 미스김. 사실 문제의 답은 알지도 못하고 어떻게든 수업을 땡땡이 칠 생각뿐이었던 아이들. 계약직 주제에 뭘 가르치려고 드냐며, 당신 뭔 대학 나왔는데? 당신 연봉 얼만데? 우릴 가르치려면 스펙부터 대라고 소리친다.
-염고대 수석 졸업, SD 은행 수석합격, 연봉 5500,
그 말에 놀라는 아이들, 덩달아 마영부 팀원들도 놀라고
-이게 내 6년전 스펙이다. 그리고 지금은
하며 바지를 올려보이는 미스김. 미스김 종아리의 커다란 화상흉터를 보고 놀라는 아이들.
-(화상흉터 보이며) 이게 내 스펙이다.
지켜보던 팀원들 역시 화들짝 놀라는데. 규직의 얼굴이 심상찮게 굳어지더니... 급기야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린다. 미스김의 6년 전 과거와 규직 사이에 무슨 연관이라도 있는 걸까...?
회사로 돌아가는 길, 미스김과 규직을 제외한 팀원들은 ‘대한은행 화재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6년 전, 기간제 보호법이라는 것이 통과되면서 대한은행에서 근무하던 계약직들의 정규직 전환을 막기 위해 모든 계약직들을 용역회사 소속으로 돌려버리려 했다. 대한은행의 전 직원들은 이에 반발해 은행 점거 파업을 벌였는데... 은행 안에서 큰 화재가 일어나 12명의 비정규직 행원이 큰 화상을 입고,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비정규직 행원 한명이 사망하게 된다.
이야기를 들은 주리, 그런 일이 있었어요? 난 처음 듣는데? 하는데.
그날이 아마 크리스마스 이브였지. 시청 앞에 대형트리 세우고 루미나리엔가 뭔가 한다는 뉴스에 묻혀서 소리 소문도 없이 끝났어. 연말 기분 잡친다 이거지. 하여간 미스김 그 때 다친거구나. 다리의 화상...
그 이야기를 듣고 곰곰 생각해보던 주리. 무언가를 깨달은 듯 화들짝 놀란다. 6년 전 생애 첫 키스를 한 이브날, 전단지를 나눠주던 그 여자... 불 속에 뛰어 들었던 그 여자... 그 여자가 바로 미스김이었던 것이다.
한편, 규직은 전에 본 적이 없는 가라앉은 모습으로 미스김을 바라보게 된다.
-저기, 당신 하고 있는 그 양파 망태기 말이야... 그거 혹시... 본인 껀가?
-또 벗으라는 말을 하시고 싶으신 거라면, 그 아줌마가발부터 벗으세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쌩하니 규직의 말을 받아치는 미스김. 하지만 규직은 여전히 알 수 없는 착잡한 눈빛으로 그런 미스김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런 규직의 눈빛을 목격한 정한은, 규직 역시 미스김을 좋아하고 있다고 확신하게 된다. 정말 그런 거라면... 그게 맞다면.. 그럼 난 어떡해야 하지.
생애 처음으로 누구에게도 양보하고 싶지 않은 것이 생겨버린 정한. 헌데 하필 그 상대가 규직이다. 그렇게 착한남자 정한의 고뇌는 점점 깊어져만 가고...
고추탈을 쓴 고과장
YJ그룹의 터줏대감인 고과장, 영어가 짧아 외국인 바이어의 전화를 잘못 받은 죄로 한직인 발효랜드로 좌천당한다. 발효랜드는 YJ식품 홍보관으로, 아이들에게 장의 발효과정과 중요성을 놀이기구와 함께 설명해주는 놀이동산이다.
안타까운 마음에 발효랜드에 찾아간 팀원들은.. 빨간 고추탈을 쓴 고과장이 인간 샌드백이 되어 견학 온 초딩들의 주먹질을 받아주고 있는 모습을 목격한다. 규직은 주먹을 불끈 쥐며 어떻게든 고과장을 다시 회사로 데려올 거라 선언하는데.
-못쓰게 된 시계는 버리는 게 당연합니다.
미스김의 말에 표정이 굳는 직원들. 규직이 되묻는다.
-뭐? 다시 말해봐... 못쓰게 된 시계? 그거 고과장님 얘기야?
-터지지도 않는 고물핸드폰 손에 쥐고 있음 뭐합니까. 스마트폰 나온지가 언젠데. 본인이 이제 회사에서 쓸모가 없어졌다는 걸 인정하고 알아서 제발로 떠났으면 저런 꼴은 안 당했을 꺼 아닙니까.
그녀의 소름 끼치도록 냉정한 말에 경악하는 직원들. 규직 역시 분노가 폭발한다.
-웃기지 마. 당신같은 계약직들이 판을 치니까, 고과장님 같은 노장들이 맥없이 쫓겨나는 거야, 알어? 침략자는 바로 당신이야!!
그렇게 또 한번 규직을 비롯한 모두를 적으로 돌리게 되는 미스김.
노장은 죽지 않았다!
최근 실적이 가장 지지부진한 마영부서. 황부장은 내부 경쟁자인 기획부서 여장미 부장과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이게 되고, ‘천수염 기획’ 에 박차를 가한다. 그리고 천수염 시장의 독보적 존재, ‘천수 식품’과의 미팅 약속을 잡게 되는데...
계약 미팅을 위해 직접 회사로 찾아온 옹아집 회장. 마치 천원권 지폐에서 막 걸어나온 듯한 하얀 마고자 차림의 자태... 천수염계의 ‘단군’격인 옹옹은 이름만큼이나 쇠심줄 같은 옹고집의 소유자다. 미스김이 특별히 손수 내린 드립커피도 마다하고 옛날식 커피만 고집하며 YJ의 신제품 기획을 설명하는 규직에게 천수염의 색이 무슨 색인지도 모르냐며 노기 어린 호통을 친다. 옹옹의 불호령에 황부장을 비롯한 마영부는 진땀을 흘리고..
그때 마침 자신의 짐을 챙기고 책상을 빼러 온 고과장이 그 모습을 목격하고, 조심스레 나선다. 그는 회사에서 일할 적 홀로 서랍에 쟁여두었던 프리마와 설탕으로 옛날식 커피를 손수 만들어주고, 지금은 폐간된 옛날신문에서 본 정보를 바탕으로 옹회장의 질문에서 척척 대답한다. 그리고 갑작스런 회사 정전에 컴퓨터가 작동하지 않자 눈금 없는 자와 수성펜만으로 완벽한 송조체를 갖춘 계약서를 작성한다.
앞서 계약서 작성에 나섰다가 무시무시한 악필이 탄로난 뒤 잠자코 뒤에서 지켜보고만 있던 미스김.. 고과장의 눈금이 다 닳은 철제자를 내려다보면서, 6년 전 대한은행에 근무하던 시절의 동료, 미자를 떠올리게 된다...
9의 배수로 떨어지는 잔액은 숫자를 바꿔 쓴 경우야, 라고 일러주던 미자의 모습... 머리는 단정하게 묶어야 한다며 자신의 그물망으로 손수 미스김의 머리를 빗겨주던 모습...
옹회장의 흡족한 미소와 함께 계약을 마무리 짓고 떠나고.. 황부장은 옹회장이 떠나는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무섭게 외친다. 지금 몇시야!?? 경영지원실에 계약서를 제출해야 하는 최종결재 시한은 다섯시. 남은 시간은 불과 10분이다. 하지만 정전 때문에 엘리베이터를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다. 뛰는 것도 전부 소용없다. 팀원들, 다들 어찌해얄지 모르고 발만 구르는데...
그 때, 창문을 쳐다보던 미스김, 창문을 닦다가 잠시 자리를 비운 로프공 박씨의 로프를 잡더니 몸에 묶는다. 경악하며 만류하는 규직을 향해 자신의 로프공 경력 파일을 던지듯 내밀고는 고과장을 앞에 매단 채 건물 외벽을 타고 마치 한 마리의 스파이더맨처럼 기어오른다. 그리고 시간 내에 결재를 마치는 데 성공한다!
천수염 기획이 통과되고, 고과장은 다시 마영부에 자리를 지키게 되고, 고과장은 오랜만에 부하직원들에 둘러싸여 삼겹살에 소주 한잔을 하러 나온다. 그 때, 로비에서 퇴근하는 미스김과 마주치는 고과장. 감사의 말을 전하는 고과장에게 미스김, 특별 수당에 상응하는 일을 했을 뿐이라며 홱 돌아서려는데,
-혼자서는 못가!
그 말에 미스김, 고과장을 보면
-시계는 혼자 가는 게 아니야. 초침.. 분침.. 시침... 그렇게 다 같이 가야만 갈 수 있어. 혼자서 시침 분침 초침 다 돌리면 너무 힘들지... 외롭지... 얼마 못갈거야. 그래서 같이 돌려야만 갈 수 있는 거야. 시계는...
-(냉정하게 자르며) 일이 있어 그만 가보겠습니다.
하며 돌아서는데 갑자기 미스김의 손을 붙잡는 고과장.
-밥 먹고 가라... 김양..
고과장, 미스김을 잡은 손에서 아버지 같은 따뜻한 온기가 전해진다. 미스김, 흔들리는 눈동자로 고과장을 바라보는데 그 얼굴 위로 또 한번 서서히 오버랩되는 얼굴이 있다. 바로 미자다.
아무것도 모르는 햇병아리 신입 은행원 시절, 미스김.. 아니 점순의 멘토이자 동료이자 엄마였던 그녀. 점순의 머리를 손수 빗어 자신의 그물머리망으로 손수 묶어주며 돈을 다루는 사람은 몸도 마음도 깨끗해야하는 거라 일러주던 사람.
6년 전 그날에 일어난 화재사고로... 이제는 세상에 없는 사람.
미스김의 단 한 명뿐인 동료. 진미자 계장님...
저도 모르게 과거에 잠겨 멍하니 고과장을 바라보던 미스김, 순간 정신이 들자 놀라서 손을 뿌리치고는 황급히 가버린다.
점순의 6년 전 이야기..
무표정한 얼굴로 빠르게 시청 앞 거리를 걸어가는 미스김. 걸음과 표정은 그대로인데 눈에는 물기가 어리기 시작한다. 오른 눈에서는 눈물이 한방울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고 빨개진 눈으로 위를 올려다보면, SD 은행의 환한 간판. 지난 6년간 지나다니면서 한번도 멈춰서지 않았던 그 건물과 처음으로 마주한 미스김, 아니 점순의 눈에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미자가 죽고, 1년 후 점순 역시 구조조정으로 정리해고되었다. 그때, 점순은 이곳에 서서 수많은 회사빌딩들을 올려다보며 결심했었다. 다시는 이 개 같은 논리에 놀아나지 않겠다고. 또 하나의 가족? 당신의 파트너? 평생의 동반자? 개소리들 하고 앉아있네. 회사는 멍청한 직원들의 동료애와 애사심을 이용해 자신들의 배를 불리는 ‘자본’일 뿐이다. 나는.... 이제 다시는 저 끔찍한 개미집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한국을 떠난 점순은, 1년 뒤에 다시 시청 앞 거리에 나타났다. ‘점순’ 이란 이름을 버리고, 트레이드마크였던 눈웃음도 버리고, 표정없는 얼굴과 124개의 자격증을 보유한, ‘미스김’ 으로...
그리고 6년이 지난 지금, 미자가 떠난 문 앞에서 점순은 가슴을 부여잡고 눈물을 떨구고 있다. 울 자격도 없다는 듯이 울음을 계속 억지로 삼켜보지만, 새어나오는 눈물은 멈출 줄을 모른다. 번화한 거리 한가운데서 우는 그녀를 퇴근하던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본다. 미스김, 뒤에서 빵빵거리며 거세게 달려오는 자동차도 발견하지 못하고 그렇게 울며 서 있는데... 한 남자가 달려와 미스김을 낚아챈다. 규직이다.
-이 여자야! 죽으려고 작정했어! 여기서 왜 이러고 서 있어!!
울음을 멈추지 못하고 규직을 올려다보는 미스김. 놀란 규직. 자기도 모르게 말없이 미스김을 가만히 안아주며 어린아이 달래듯 등을 토닥인다.
-괜찮아... 당신 잘못이 아니야... 괜찮아괜찮아...
그런 규직의 품에서 아이처럼 우는 미스김. 그리고 오늘도 한발 늦은 정한, 건너편에서 더 이상 다가가지 못하고 바라보고만 있다.
양파망태기, 나의 정규직이 되어줘!!
시청 앞 포옹사건 이후, 다시 혼란스러워진 규직, 탕비실에서 마주한 미스김에게 말을 거는데... 미스김은 시간 외 수당으로 주신 프리허그였겠지요. 하며 무 자르듯 칼같이 대답하고 돌아서 나가려는데.. 다시 가로막는 규직, 평소와는 다른 진지한 모습이다.
-프리허그 아니다. 그거 엄청 비싼 허그였다. 나한테 안긴 이상, 양파 망태기 당신은 이제부터 나의... 정규직이다!
뭐? 의외의 고백에 떫은 표정으로 규직을 바라보는 미스김. 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확인한 규직은, 여느때와는 다르게 진지한 눈빛이다.
한편, 규직의 마음을 확인한 정한은 미스김을 두말없이 포기한다. 미스김을 향한 정한의 마음을 알고 있던 주리는 그런 정한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무팀장님은 왜 항상 장팀장님에게 양보만 하세요...?
-장팀장은 저한테 그냥 장팀장이 아니니까요. 규직이는 저한테 가족이나 마찬가지예요. 그러니까 이건 양보... 가 아니라 당연한 거예요...
주리는 여전히 정한이 갑갑하고 답답하지만, 어디서도 본 적 없는 그 맑은 심성에 점점 끌림을 느끼는데...
간만의 멋진 모습에도 불구, 미스김은 규직의 고백을 가볍게 무시해버리고. 그러던 중, 황부장은 미스김에게 파격적인 연봉조건을 걸고 정규직 자리를 제안한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거절하는 미스김.
-저는 돈을 벌려고 일을 하는 게 아닙니다. 자유로워지려고 일을 하는 겁니다. 회사에 묶인 노예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뭐? 노예? 정규직들은 미스김의 발언에 분노하는데... 규직도 그 거절이 자기 고백에 대한 대답 같아 괜히 화가 난다.
-당신이 잘난 건 알겠는데, 그래도 사람은 소속이 필요한거야. 영원히 혼자 살 수 있을 것 같아? 당신도 곧 마흔이야. 여자나이 마흔 넘으면 ‘울’이 필요한거라고!
-누가 영원히. 혼자 소속없이 산다고 했습니까? 그리고 그 소속이 왜 꼭 이 회사여야 하고... 장규직씨여야합니까? 제 소속은 제가 정합니다. 그리고 저 곧 마흔 될 나이 아닙니다.
그, 그거 지금 거절 아니지? 시간 많아, 많으니까 찬찬히 생각해보라고! 나 강남에 내 명의 아파트도 있어! 근데 당신 마흔 될 나이가 아니면... 설마 이미 넘은거야? 그러고 보니 아직 나이도 모르네. 이봐요, 점순씨 거, 몇 살이요? 몇 살이냐고? 점순아!
미스김을 졸졸 쫓아가며 소리 지르는 규직. 그런 두 사람을 착잡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정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주리가 되라고라?
주리 역시 무기계약직 자리를 제안받는다. 무기계약직이란 직책이 생소한 주리.
-무기계약직? 뭐, 일종의 중규직이라고 보면 돼.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중간 직급 정도?
주리는 혼란스런 마음에 미스김에게 조언을 얻고 싶어 BAR 마츄픽츄를 찾았다가 우연히 마주한 황부장에게, 내가 뭔 회사의 숨겨놓은 홍길동이여~? 라며 마구 주사를 부리고 마는데...
캔디... 너는 정규직이었니? 비정규직이었니?
주리는 무기계약직을 거절하고, 용기를 내어 YJ식품의 정규직에 지원한다. YJ에서의 계약직 경력이 가산점이 될 거라는 살짝 부푼 기대를 해보지만... 결국 1차 면접에서 떨어지고 만다. 주리는 처음으로 부딪히게 된 ‘자신의 한계’ 라는 것에 깊은 좌절을 느끼고... 잔뜩 날 선 그녀는 곡성에 있는 엄마와 전화통화를 하다가 말다툼까지 하게 된다. 전에 없이 짜증내던 딸이 맘에 걸린 엄마는 회사로 30인분의 도시락을 보내온다. 도시락을 열어보면 정성스레 지은 가마솥 밥과 주리엄마의 대표작인 능이버섯계란부침. 도시락 사이로 정한에게 직접 쓴 편지까지 끼워 넣은 주리모.
‘저는 우리 주리가 말허는 비정규직이 뭔지 정규직이 뭔지는 몰라요. 그려도... 우리 주리보다 높으신 장선생님도, 주리보다 잘난 금빈난가 골빈난한가 하는 아가도 그냥... 우리 주리같이 다 똑같은 누구집 딸내미고 아들내미 아닌겨.... (중략) 어쨌든 서울밥이 이상헌거같어요. 화 한번 안내던 우리주리가 화를 다내는걸 보면. 주리 밥 보내면서 쪼까 더 쌌응게 같이들 나눠 잡숴여. 피만 나눈 것이 식구가 아니랑께, 한솥밥 먹으면 다 한 식구제. 그러니 무선생님이 우리 주리 좀 잘 챙겨주셔요’
편지를 보고 눈물이 뚝 흐르는 주리. 그 투박한 진심 앞에 오늘만큼은 전 팀원 모두 모여 도시락을 먹는데... 하지만 웬일인지 정한만은 그 도시락을 먹지 못한다. 급기야 도시락을 먹지 못하고 나가버리는데...
정한을 찾으러 나간 주리는 회사 앞 시청 광장에 홀로 앉아있는 정한을 발견한다.
왜 그러느냐는 주리의 물음에 뜬금없는 질문을 하는 정한.
-6년 전 크리스마스 때 주리씨는 뭐했어요?
-저요? 저는 첫키스....! (아차) 첫데이트 했었는데요...
고개를 들어 말없이 시청 앞 SD 은행을 바라보는 정한.
-저는요... 여기서 사람을 죽였어요.
무팀장님의 아픈 사연... 내 맘이 왜 이리 짠하당가... 정주리 너 또 혹시... 정준거여??
6년 전, 정한이 전경으로 근무하던 시절의 사연에 대해 들은 주리. 마음 아파 하며 사무실로 향하다가 회사 게시판에 나붙은 <YJ 사내 기획안 공모전>을 보게 되는데. 그 순간 문득!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주리의 머리 위로 전구가 반짝 불을 켠다. 그리고는 황급히 모니터를 켜고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한다.
다음날, 주리는 조심스레 정한의 자리로 다가가 수줍게 종이뭉치를 건네는데...
그건 바로 그녀가 손수 만든 기획안, ‘엄마한테 잘하자’ 식당 프로젝트다!
회의실에 모여 주리의 기획안 브리핑을 들은 직원들은 매우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신난 주리는 참으로 오랜만에 해맑은 미소를 짓는데... 규직이 거기에 찬물을 끼얹듯, 말없이 손가락으로 공모전 포스터의 하단을 가리킨다. 거기에 분명하게 적혀있는 글씨. ‘지원 자격은 정사원으로 제한’
주리의 고백, 제 행복은 당신만으로 되부렀당께요.
모두 회의실을 나간 후에도 혼자 덩그러니 앉아있는 주리. 이제 이대로 내 이마엔 계약직이라는 주홍글씨가 꽝! 박혀버린 거구나, 난 이제 뭘 해도 안 되는구나... 그때, 조용히 다가오는 사람, 정한이다. 주리, 표정을 감추곤 밝게 웃으며 이왕 만든 기획안이고 무팀장님이 마음에 들어 하셨으니, 팀장님 이름으로 내는 게 좋겠다고 말한다. 정한이 그럴 순 없다고 강하게 말하자 고개를 저으며 말하는 주리.
-저는 무팀장님이 점심시간만큼은 무팀장도 무이경도 아닌 그냥 누군가의 평범한 아들 무정한으로 맘 편하게 밥을 드셨음 좋겠어요. 누구의 이름으로 나가든지 저는 상관없어요. 전 그저... 팀장님만 행복하다면...
그리고 정적. 주리, 그제야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닫는다. 이를, 이를 워짠다냐... 본의 아니게 덜컥 마음을 들켜버린 주리. 그런 주리를 보며 무언가를 결심하는 정한. 사무실로 나가 전 팀원들에게, 이번 기획안을 꼭 주리의 이름으로 낼 수 있도록 모두 도와줄 것을 요청한다.
그렇게 마케팅영업지원부 직원들이 모두 합심해 기획안 프로젝트를 거의 완성해갈 즈음, 윗선에서는 기획안 제출의 계약직 제한규정을 삭제한다는 보고가 내려오고. 모든 직원들은 서로 얼싸안고 기뻐하지만... 이 때 가장 큰 복병이 등장하였으니...
주리의 해고위기, 미스김 나이스 샷~
‘기획안 채택’은 정규직에게는 승진의 바로미터, 황부장 판단에 이를 계약직의 공으로 돌리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것이다. 고민하던 황부장, 급기야 주리의 해고라는 극단적 카드를 꺼내들게 되는데... 인사과를 통해 이번 달까지만 근무하라는 통보를 받은 주리는 미스김의 소맷자락을 붙잡고 엉엉 운다. 주리를 대롱대롱 매단 채 자신의 일에만 매진하고 있던 미스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주리를 홱 뿌리치곤 정한에게 난데없이 잠시 외근 다녀오겠다 통보하고는 나가버린다.
그 시간, 황부장이 규직을 대동하고 골프장을 찾았다. 황부장이 오랫동안 공들여온 거래처와의 계약성사가 결정되는 골프회동. 헌데 캐디들의 전면파업으로 접대에 차질이 생겨 진땀을 흘리는데... 그 앞에 나타나는 캐디복장의 그녀, 바로 미스김이다.
미스김이 상대측 캐디를 맡게 되고, 미스김은 무표정한 얼굴로 나이스샷! 을 외치며 캐디의 소임을 다한다. 황부장, 자신이 져야만 하는 게임인데 어찌된 일인지 계속 이기게 되어 불안한데... 보면, 상대측 캐디인 미스김이 교묘하게 상대의 페이스를 흐트러뜨리고 있다. 골프에서 진 날은 계약 성사는커녕 전 직원 철야근무를 시킨다는 뒤끝작렬 상대측 이사. 슬슬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황부장에게 겁을 준다. 진땀을 흘리던 황부장, 당황을 감춘 채 웃는 얼굴로 미스김의 귀에 속삭인다. 원하는 게 뭔가?
-정주리씨 해고건, 철회해주시죠. 그 여자가 제 소매에 하도 코를 풀어서 옷이 다 헤질 지경입니다.
규직의 역습, 나에게 회사는 생존일 뿐이다.
다음날 아침, 주리의 해고가 취소됐다는 소식이 전달되자 모두 환호한다. 이렇게 되면 주리 이름으로 기획안이 통과되는 것도 기대해볼 만하다! 모두 마무리 작업을 위해 기획안 자료를 열어보는데, 컴퓨터에서 몽땅 사라진 기획안 자료들! 당황한 지원팀 직원들 사이로 등장한 규직, 주리의 기획안 자료들이 모두 규직의 손에 들려있다 .황부장이 주리의 해고를 취소하는 대신, 기획안을 마케팅영업부로 넘기도록 지시한 것이다. 규직의 역습에 경악을 금치 못하는 직원들. 하지만 정한은 묵묵히 기획안을 넘긴다.
황부장 직권으로 미스김까지 마케팅영업부로 데려온 규직. 미스김 물끄러미 규직을 바라보고... 처음 받아보는 미스김의 눈빛에 들뜬 규직
-왜? 볼수록 괜찮지? 내 소속, 하고 싶지?
-볼수록 놀랍습니다. 그냥 말 잘 듣는 푸들인 줄 알았는데, 자기 식구도 물 줄 아는 똥개였군요.
미스김의 말에 얼굴이 굳는 규직.
-잘봤어. 내 밥그릇만 지킬 수 있다면 식구 아니라, 주인도 물 수 있어. 그래도 집 있는 똥개가... 집 없는 들개보단 나으니까...
이 남자는 뭐가 항상 이렇게 불안할까... 회사를 위해서라면 뭐든 하면서도, 항상 버림받을 강아지처럼 떨고 있는 이 남자. 안쓰럽고... 나와 닮았다...
같은 날, 다른 추억이 된 국화꽃 당신
5월 1일, 노동절을 맞아 YJ는 사원들의 단축 근무를 지시하고 마영부 직원들은 저마다 오후 약속을 잡느라 분주하다.
퇴근하자마자 '각자의 약속' 을 향해 나선 규직과 정한, 미스김은 회사 앞 꽃집에서 마주친다. 단 세 송이만 남은 국화를 동시에 하나씩 집어든 세 사람. 영문 몰라 각자 서로를 바라보는데 정한이 먼저 운을 뗀다.
-난 오늘 행사가 있어서.. 장팀장은?
-나는 집에 제사가 있어서... (국화꽃 귀 옆에 꽂으며) 미스김은 오늘 살사 컨셉이 이건가?
-업무시간 끝났으니 알 거 없으십니다만.
그렇게 국화꽃 한송이씩을 사들고 각자의 방향으로 향하는 세사람.
집으로 돌아온 규직은 쓸쓸한 제삿상 위에 국화꽃을 올리고 엄마와의 추억을 떠올리고, 같은 시각 정한은 시청광장 앞에 '노동절 맞이 대한은행사건 열사 추모제' 앞에 준비한 국화를 내려놓고, 미스김은 어느 발길 뜸한 납골당 안 유골함 앞에 쓸쓸히 국화를 내려놓는다. 세 사람 모두 만감이 교차하는 듯 과거를 새기며 눈에 물기가 서리는데... 세 사람이 보고 있는 사진의 주인공은 놀랍게도 모두 같은 사람.
정한이 전경시절 사고로 다리를 다치게 한 그 아주머니, 미스김이 홀로 은행문을 닫고 나온 그 자리에 남아있었던 진계장님, 그리고... 그 날, 규직이 6년전에 화재로 잃은 규직의 엄마... 미자다.
누군가에게는 첫키스의 날,
누군가에게는 살아남은 날,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죽음의 날...
그 6년 전의 시간 앞에 다시 모인 세 사람,
여전히 시청 앞 광장에는 불이 켜지고...
세 사람의 비밀도 불을 밝히기 시작하는데...
‘돌아와요 미스김’ 커밍 쑨...!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