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짜리 역할”
오케스트라의 성공여부는 연주자의 리더십에 달려 있다.
훌륭한 지휘자는 당연히 작은 소리에서부터 큰소리에 이르기까지, 단원 하나하나의 숨소리까지 온몸으로 감지하며 100%이상 열연할 수 있도록 부추기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연주가 끝나면, 아쉬움을 지적하여 강제하거나 꾸중대신, 단원 스스로 감각을 지니도록 칭찬을 열배로 더하는 것이 리더의 몫이다.
그래서 좋은 리더십은 머리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머리없는 리더는 어떤 연유로 운 좋게 리더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결코 리더로서 성공할 수는 없다.
그런 리더는 분명 관객의 기립박수는커녕, 해픈 웃음이나 비아냥의 휘파람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며, 관객들의 마음을 UP시키지 못한 책임이 입장료로 계산되기 어려운 무량수라는 것마져 자각하지 못한다.
물론, 그 오케스트라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단원들의 일사불란한 협조가 있어야 한다
단원들 또한 오직, 신들린 듯이 자기 몫에 최선을 다할 뿐, ‘차선’의 여지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리더의 리더십에 작은 문제가 있거나, 연주 중에 작은 실수가 있을지라도, 열연으로 덮어가는 멋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것만이 ‘우리’에 대한 배려이고 오케스트라가 성공하는 길이다.
단원들이 훌륭한 리더를 만들어가는 것은 바람직스럽지는 않지만 관객을 위해서는 必要充分한 처방이기도 하다.
리더와 단원들이 彼此間 弱點을 집어내는 일은, 彼此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결국 제3자인 관객에게 더 큰 피해가 전가됨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어느 직장이고 리더십의 문제는 흔하게 도마 위에 오르는 일이다.
리더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다.
리더는 검증된 자기철학이 있어야 한다.
며칠 남지도 않은 시간에 남의 말꼬리나 잡아가지고서야 어디 리더 자격이 있겠는가?
소가 웃을, 개똥철학도 못되는 것을 철학인양 자기도취에 빠진 나머지, 이기와 아집과 소위 황소고집으로 밀어붙이면서 개혁이니 시대흐름이니 하는 미사여구로 정당화하려는 愚를 범하는 리더는 그동안도 너무 흔했다.
진정한 리더는 많은 매체를 통해 차고 넘칠 만큼 밀물처럼 쏟아지는 다양한 정보홍수의 진수성찬에서 추진환경과 목적에 맞는 것들을 골라 자기 것으로 용해시켜가는 현택(賢擇)이 필요하며, 백개의 눈과 귀를 가지고 항상 수렴할 줄 아는 해불양수의 친화력으로 공약수를 찾아내고 추진하는 능력을 가져야한다.
그렇게 선택된 아이템은 리더의 의지와 여건, 관객에게 잘 먹힐 것인가를 심사(深思)하고 숙고초려(熟考焦慮)하여 모두가 함께 나서도록 잘 부추길 때만이 성공은 기능한 것이다.
리더는 아무나 할 수 있다.
그러나 훌륭한 리더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한편의 영화나 드라마에도 수많은 관련자들에 의해 연출하고 감독하고 연기하듯, 그래서 주연이나 조연이나 나그네 완, 투가 열연하여야만 성공하듯, 나랏일도 그렇게 해달라고 국민은 혈세모아 집주고 월급주고 연금주고, 모든 부대시설과 무대장치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재정지원을 섭섭함 없이 해주며 국민이라는 관객을 매일매일 울고 웃기는, 그래서 관객의 감동이 백지에 먹물처럼 번지며 저절로 기립박수가 터지는 참정치를 해달라 주문하는 것 아니겠는가?
어디에나 자기역할은 있는 법이다.
벌은 물을 마셔 꿀을 만들고, 뱀은 물을 마셔 독을 만든다는 말을 우리는 수없이 듣는다.
어떤 인생관을 갖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듯 어떤 경영관을 갖느냐는 참으로 중요하다.
가정의 경영중심은 부모이고 조직의 경영중심은 관리자이고, 사회의 경영중심은 그 사회의 리더 아니던가!(말쟁이들처럼 모든 중심은 구성원이라고 말하지 말자)
그 리더의 역할이 나라처럼 거의 수평사회에서는 어려움이 없진 않겠지만, 누구처럼 임기대충 때우는 무사와 안일, 그리고 제 혼자 주인인양하여 獨不何하는 행위는 매우 위험한 일로 그동안 수없이 나라를 침체에 빠뜨리지 않았는가?
관리자가 대통맞은 병아리처럼 멍하는사이, 배우는 연습을 게을리하게 마련이었고, 결국 관객은 하나둘씩 빠져나가지 않았는가?
자리에 걸맞는 '짜리역할'이 그래서 중요한 것 아니던가?
진정한 역할은 어디서나 ‘다우면’되는 것이다.
리더는 리더답고 주연은 주연다워야 한다.
관리자는 말 그대로 관리자이어야 하고, 나랏님은 진정 나랏님이어야 한다.
어디서나 제대로 된 ‘짜리역할’을 하라는 것이다.
관리자는 관리자답고, 나랏님은 나랏님이어야 한다.
정치가는 정치꾼이어서는 안 된다.
‘말글 배워 됫글 풀지 말고, 됫글 배워 말글 풀어라’라는 옛말이 있다.
이 말은 통반장째비도 못된다고 판단한 이가 실상은 면장보다 낫다거나, 장관째비는 되는 종 알았더니 통반장째비도 못되는 이들에게 빗대어 흔히 하는 말이다.
종지가 국그릇을 대신할 수 없는 것이며, 동전 오백원이 천원노릇을 할 수 없지 않은가?
이쯤해서 종지는 스스로 종지역할로 돌아갔으면 싶다.
나랏님을 할 만한 이가 통반장을 하는 것은 훌륭한 것이지만, 통반장째비도 안 되는 이가 나랏님 자리에 앉으면, 연관된 폐해는 국민에게 고스란히 전가되고 만다는 것은 우리 현대사만 유추해도 짐작되는 일 아닌가?
어디서나 자기에게 맞는 자리가 있고 그 자리에서의 역할이 있을진대, 자기 몫을 다하고 있는 양 혼몽착각(昏懜錯覺)속에 헤매며 기특하게도 남의 제사걱정은 잘 하면서, 정작 자기제사는 제대로 치루지 못하는 이가 있더라는 옛말을 한번쯤 반추할 일이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흔한 말 뒤에는 ‘무능’이라는 함정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강아지도 주인을 잘 만나야 한다.
대부분의 한국의 개는 평생을 주인에게 별로 큰 대접받지 못했으면서도 자신의 몸뚱이마저 보신이라는 이름으로 주인에게 대접하는 교훈을 남기며 쓸쓸하게 사라진다.
외국에서는 개에게 재산을 상속해 주고, 사람보다도 식비의 단가가 높은가하면, 장신구 값이 사람치장비보다 더 많이 들어가며 죽은 뒤에는 묘비를 세우고 꽃을 주기적으로 바치며 애도한다는 뉴스를 흔히 본다.
요새 대중화되어 생활필수품이 된 차량을 보자.
주인을 잘 만난 차는 말초신경에 이르는 너트하나까지도 잘 조이고 안팍이 더러워질 새가 없이 광나는데, 주인 잘못 만난 차는 깔끔함은 차치하고 질주의 광란퍼레이드로 수없이 카메라의 눈흘김을 당하고 주인에게 연대보증까지 서주면서도 대접은커녕, 거친 행동에 상처투성이이기 일쑤이고 때론 한적하고 으슥한 곳에 이름표를 떼인 채로 버림받는 신세가 되어 어느 가수처럼 ‘이름표를 붙여줘’하고 절망하기도 한다.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주인노릇은 어떨까?
우리는 흔히 자기에게 너무 관용한 나머지 자신의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불문율인 경우가 항다반사이다. 어쩌다 낌새가 보이면 자기보호본능에 도취되는 속성에 젖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과연 좋은 주인인가를 한번은 짚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
지역갈등을 만들었던 자들이,
방관했던 자들이,
지켜보며 즐겼던 자들이,
교묘히 이용코자 얼쩡거렸던 자들이,
순진무구한 국민들을 종북이라는 이름으로 남북으로 가르고,
흉노보리문댕이에 깽깽이 홍어좃으로 몰아세우며 갈라서 많은 이문을 남기더니
이젠 경상도 끼리도 남북으로 갈라 패거리 정치술수를 보이는 경상도 어떤 지자체장 후보 말하는 것 좀 봐라.
국민은 나라의 주인이고 관리자는 그 주인의 리더이다.
국민이 주인이니 어쩌니 하는 수사는 적어도 여기서는 삼가자.
학창시절 잘 만난 선생님 한 분이 많은 학생들의 인생관을 바꿔 주듯, 나랏님의 철학에 따라 국민들 삶의 질이 달라지는 것 아닌가?
후보자들은 나만이 할 수 있다는 자기맹신을 버리고 냉철하게 자리에 걸맞는 역할을, 격에 맞는 짜리역할을 누가 잘 할 것인지 냉철하게 판단하기를 기대해보고 싶다.
날씨가 점점 춥다.
동지 전전날이 가까워지니 추울 수밖에.....
후보자들은 날씨가 쌀살하지만,여유를 가지고 뜰에 잠시 나서서 심호흡을 하며 밤하늘의 화려한 유성우들의 쑈를 무상 관람하며 우주의 이치를 깨달아라.
계절 내내 뵈는 북쪽하늘의 큰곰과 작은곰, 카시오페아의 전설을 떠올려보고, 이 계절의 백미인 오리온별자리의 유난히도 밝은 삼태성을 찾아 남쪽하늘을 바라보며 오리온 왕자와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의 비운의 사랑을 건너 “나는 누구인가?”를 잠시 명상하라.
때때로 ‘자기 자신에게 묻는 질문은 다른 사람들에게 받는 대답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리니 좋은 결론 얻어, 우리 국민 모두를 격에 맞게 대우할 수 있는 자신이 없는 자는 스스로 결단하라.
아무나 북극성(北極星)이 되는 것이 아니다.
아무나 자미성(紫微星)이 되는 것이 아니다.
아무나 국민의 중심에서 리더하는 것이 아니란 애기다.
왜 입이 하나이고 눈과 귀는 두 개씩인지도 모르는 후보자들!
아직도 지역 편가르기나 꼼수장사를 하려는 후보자들!
그리고,
자신의 안위와 반사이익을 노리고 꼼수에 부화뇌동하는 쉬파리들!
제발,
국민들을 피곤하게 하지말고
이제라도,
새벽별 스러지듯 했으면 좋겠다.
- 봉거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