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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고 34회 제20차 문화답사(榮州 浮石寺-紹修書院)
2011.11.12(토) 08:00 경복고 34회 문화답사회 42명(8명은 죽전에서 승차)은 경북 榮州 浮石寺와
紹修書院을 답사하기 위하여 잠실 종합운동장역을 출발하였다.
죽전정류소까지 1시간이 넘게 걸리고 영동소속도로도 정체되어 양지I/C에서 17번 국도-죽산-
38번 국도-박달재터널-제천I/C-중앙고속도로-풍기I/C-순흥을 거쳐 부석사주차장에 도착하니
12:00, 무려 4시간이나 걸렸다.
오늘 답사는 浮石寺-점심식사-錦城大君神壇-紹修書院을 돌아보고 서울 城內洞에서 저녁식사로
마무리했다.
2011. 11. 15 孤 山 朴 春 慶
경복고 34회 제20차 문화답사(2-1); 榮州 浮石寺
榮州 浮石寺
경북 영주시 浮石面 北枝里 鳳凰山(해발 819.9m) 중턱 비탈에 자리잡은 浮石寺는 한국 華嚴宗의
根本道場으로 신라 文武王 16년(676) 왕명에 의해 義湘이 창건하였다(三國史記에 기록).
고려시대인 11세기 중반 圓融國師 決凝이 크게 重修하고, 恭愍王 7년(1358) 倭寇의 침탈로
가람의 일부가 소실되어 禑王 2년(1376)과 이듬해에 圓應國師 千熙가 無量壽殿과 祖師堂을
중수 하였으며, 그 후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 1916년 무량수전을 해체 수리하였다.
부석사가 유명한 것은 佛敎史的인 面 외에도 禮山 修德寺 大雄殿(1308년 건립/국보 제49호)과
더불어 가장 오래되고 가장 아름다운 木造建物인 無量壽殿이 있으며, <宋高僧傳>에 전하는
義湘이 唐에 유학할 때 그를 사모한 善妙 娘子의 애틋한 사랑과 善妙龍에 얽힌 創建 說話가
부석사를 더 유명하게 만든 것 같다.
또한 부석사는 九品(9단계의 극락세계를 의미)의 석축과 108개의 돌계단으로 이루어졌는데
천왕문에서 범종루까지 3개의 석축이 下品의 경계를, 범종루에서 안양루까지는 中品의 경계를,
안양루에서 무량수전까지를 上品의 경계를 上中下로 보여준다고 하며 석축은 자연석을 그대로
자연스럽게 쌓은 것이 특이하다.
*榮州 浮石寺 無量壽殿 -국보 제18호-
정면 5칸, 측면 3칸의 단층 팔작지붕 柱心包 건물로 恭愍王 7년(1358) 倭寇에 의해 불에 타
禑王 2년(1376) 重建했으며, 構造美나 部材加工手法으로 보아 원 건물은 이때보다 한 世紀쯤
먼저 건축된 것으로 보고 있다.
건물의 6개 기둥은 바깥쪽일수록 조금씩 높이는 귀솟음 수법과 기둥의 배흘림, 기둥 위에만
간결하게 짜 올린 栱包 등 건축수법이 조화를 이루어 넓거나 길지도 않은 안정된 외형을
보여준다. 그래서 柱心包 건축양식의 가장 완숙한 형태를 보여주는 고려 사원건축의 白眉로
일컫고 있다.’ -崔完秀 著 <名刹巡禮> 제1권-
무량수전의 특이한 점은 건물은 남향인데 불상이 동쪽 벽면을 향해 서쪽에 앉아있으며
夾侍 菩薩도 없이 主佛인 阿彌陀佛像만 奉安하였다.
대개 極樂殿에 봉안하는 阿彌陀佛은 끝없는 지혜와 壽命을 가져 ‘無量壽佛’이라고도 불러
‘無量壽殿’이라는 전각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榮州 浮石寺 塑造如來坐像 -국보 제45호-
부석사 무량수전에 있는 높이 2.78m의 塑造佛像으로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소조불상 가운데서
가장 크고 오래된 것으로 그 가치가 높으며, 신라시대 불상의 특징인 온화함 대신 위엄이 넘치며
긴장된 모습을 하고 있지만, 고려시대의 불상으로서는 상당히 정교한 솜씨를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한다. (@塑造佛像: 나무로 골격을 만들고 진흙을 덧붙여 만드는 불상)
*浮石寺 無量壽殿 앞 石燈 -국보 제17호-
부석사 무량수전 앞에 세운 花崗石의 八角 石燈으로 전체 높이 2.97m이다.
불을 켜는 부분인 火舍石도 8각형으로 4면에는 불빛이 새어 나오는 火窓을 만들었고 남은
4면에는 蓮臺 위에 서 있는 菩薩像을 陽刻하였다.
비례의 調和가 아름다운 신라시대의 전형적인 8각 석등으로 화려하고도 端雅한 걸작이며
제작연대는 신라 중기 이후로 추정된다고 한다.
*浮石寺 三層石塔 -보물 제249호-
무량수전의 동쪽 약간 높은 지대에 있는 높이 5.26m, 基壇 너비 3.56m의 3층 석탑으로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며, 본래 부석사에 造成한 것이 아니라 慈忍堂의
석조불상과 함께 동방사 터(동쪽 약 1.5km)에서 옮겨왔다.
*榮州 浮石寺 祖師堂 -국보 제19호-
부석사를 창건한 義湘國師의 초상화를 모시고 있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공민왕 때 倭寇의 방화로 소실되어 고려 禑王 3년(1377) 圓應國師가 重建하였으며 조선
成宗 때 改修하였다.
건물 내부에는 菩薩像 ·四天王像 등이 그려진 壁畵(국보 제46호)가 있었으나 벽면 전체를
그대로 떼내어 안전장치를 한 후 寶藏閣 안에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浮石寺 祖師堂 壁畵 -국보 제46호-
가로 75cm, 세로 205cm의 菩薩像 2폭과 四天王像(持國天王 ∙增長天王 ∙廣目天王 ∙多聞天王)을
그린 총 6폭으로 조사당을 건축한 禑王 3년(1377)에 그린 벽화로 고려시대의 벽화는 開城
水落巖洞 고분벽화, 開豊郡 恭愍王陵 벽화 등이 있으나 이 벽화가 가장 뛰어날 뿐만 아니라
한국에 남아 있는 벽화로서는 가장 오래된 작품이라고 한다(寶藏閣에 보관).
*榮州 北枝里 石造如來坐像 -보물 제220호-
慈忍堂 안에 있는 三尊佛로 光背와 座臺 등을 지니고 있으며 부석사 동쪽 약 1.5km 지점인
東方寺 터에서 옮겨온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이다.
동쪽에 모신 불상(毘盧舍那佛坐像-東)의 높이는 99.5cm, 대좌 높이 105cm이며 서쪽에 봉안된
불상(毘盧舍那佛坐像-西)은 불상의 높이 103cm, 대좌 높이 102cm로 광배와 대좌의 세부
조각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榮州 浮石寺 幢竿支柱 -보물 제255-
높이 4.28m로 1m의 간격을 두고 동서로 서로 마주보고 있는데 전체적으로 보아 소박 미려한
지주이다.
이 당간지주는 가늘고 긴 편이지만 아래 위의 두께가 차이가 있어 안정감이 있어 보이며
단아하고 견실한 조각 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 초기의 작품으로 7세기 무렵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榮州 浮石寺 五佛會掛佛幀 -보물 제1562호-
毘盧遮那佛 ·藥師佛 ·阿彌陀佛 ·釋迦牟尼佛 ·盧舍那佛의 五佛이 강조된 五佛會圖형식의 괘불로
조선 英祖 21년(1745)에 조성된 가로 850㎝, 세로 58.2㎝이다.
*浮石寺 高麗刻板 -보물 제735호-
漢譯本의 <大方廣佛華嚴經板>을 새긴 고려시대의 목판으로 크기는 24.3cm× 45cm로 3종
634장(晉本 239장, 周本 273장, 貞元本 122장)으로 13∼14세기에 제작되었다.
(@大方廣佛華嚴經: 華嚴宗의 근본 經典으로 <華嚴經>이라고도 한다)
*浮石寺 禪扉花
祖師堂 추녀 밑에 일명 禪扉花라고 부르는 콩과 落葉灌木인 骨擔草 1그루가 있다.
<擇里志>에는 의상대사가 天竺國으로 떠날 때 지팡이를 꽂으면서 “지팡이에 뿌리가 내리고
잎이 날 터이니 이 나무가 죽지 않으면 나도 죽지 않은 것으로 알라.”고 했다는 나무가 바로
선비화라고 한다.
光海君 때 慶尙監司 鄭造가 “선인의 지팡이였던 나무로 내 지팡이를 만들겠다”며 나무를 잘라
갔으나 다시 줄기가 뻗어 나와 전과 같이 잘 자랐고, 후에 鄭造는 역적으로 몰려 죽었다는
내용도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높이 170cm, 뿌리부분 굵기 5cm 정도 밖에 안 되지만 수령이 최소 500년에 이른다고 알려진
부석사의 선비화는 현재 철책으로 둘러싸 보호하고 있다.
浮石寺 사진
(01) 浮石寺 洞口의 인공폭포
(02) 부석사 안내판 앞에서
(03) 부석사 一柱門
1980년 건축, 앞에는 <太白山浮石寺>, 뒤에는 <海東華嚴宗刹> 懸板을 걸었다.
(04) 浮石寺 幢竿支柱 -보물 제255호-
높이 428cm, 부석사 창건과 함께 7세기경에 세워진 것으로 추측.
(05) 부석사 天王門,
佛法을 수호하는 外護神인 四天王, 즉 동쪽을 지키는 持國天王, 南-增長天王, 西-廣目天王,
北-多聞天王이 안치된 전각. 당간지주를 지나 처음 석축 위에 있으며 1980년 復元.
(06) 梵鐘閣, 안에는 <鳳凰山浮石寺>라는 銘文을 陽刻한 범종이 걸려있다.
(07) 부석사 梵鐘樓, <鳳凰山浮石寺>라는 현판을 걸었다.
이 건물의 앞쪽은 팔작지붕, 뒤쪽은 맞배지붕 구조로 특이한데 이는 안양루에서 범종루
너머 景觀을 볼 때 視野를 해치지 않게 하기 위한 배려라고 한다.
(08) 부석사 三層石塔 -경북유형문화재 제130호-
梵鐘樓 앞 양쪽에 있는 雙塔으로 높이는 東塔 360cm, 西塔 377cm로
두 탑의 크기와 樣式이 거의 같다.
(09) 藏經閣 -사진이 누락되어 2006.06.14 촬영한 사진으로 대치-
祖師堂 壁畵(국보 제46호)와 高麗刻板(보물 제735호)을 보관하고 있다.
(10) 地藏殿
(11) 安陽樓 서쪽의 築臺
(12) 安陽樓, 윗층에는 <浮石寺>, 아래층에는 <安陽門>이라는 扁額을 걸었다.
앞에서 보면 2층이나 뒤(무량수전 쪽)는 單層인데 뒤쪽에는 <安養樓> 편액을 걸었다.
(13) 안양루의 <浮石寺> 懸板
1956년 부석사를 방문한 雩南 李承晩 前 大統領의 親筆이라고 한다.
(14) 안양문에서 본 無量壽殿과 石燈
(15) 안양루 안에 있는 放浪詩人 金笠(金炳淵)의 글<浮石寺> -2006.06.14 촬영 사진-
2층 樓閣 안에는 이외에도 여러 개의 현판이 걸려 있다.
(16) 浮石寺 無量壽殿 앞 石燈 -국보 제17호-
부석사의 本殿 앞에는 塔이 없고 石燈만 있으며 탑은 무량수전 동쪽
언덕에 있다. 석등 뒤로 <安養樓> 현판이 보인다.
(17) 浮石寺 無量壽殿 -국보 제18호-
浮石寺의 本殿, 恭愍王 7년(1358) 燒失되어 禑王 2년(1376) 重建했다.
기둥 높이와 굵기, 사뿐히 고개를 든 지붕 추녀의 곡선과 그 기둥이 주는 조화, 간결하면서도
역학적이며 기능에 충실한 주심포의 아름다움, 이것은 꼭 갖출 것만을 갖춘 필요미이며
문창살 하나 문지방 하나에도 나타나 있는 비례의 상쾌함이 이를 데가 없다.
-최순우의 한국미 산책/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18) 無量壽殿의 배흘림기둥
崔淳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했다’
–최순우의 한국미 산책/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19) <無量壽殿> 편액. ‘紅巾賊의 亂’을 피해 蒙塵했던 고려 제31대 恭愍王의 親筆
(20) 石燈의 火窓을 통해 보이는 <無量壽殿> 편액
(21) 浮石寺 塑造如來坐像 -국보 제45호-
높이 278cm, 光背 높이 378cm로 무량수전 안 서쪽에 동향으로 奉安.
(22) 無量壽殿의 井字살문
(23) 無量壽殿의 추녀와 이를 받치고 있는 활주
(24) 無量壽殿의 東側面, 삼층석탑(보물 제249호) 쪽에서 본 모습
(25) 浮石
義湘이 절을 지으려는데 異敎徒들이 방해하자 善妙神龍이 조화를 부려 이 바위를 공중에
뜨게 하여 이들을 물리쳤다고 浮石이라고 한다는데 이 바위는 무량수전 앞 석등까지
용처럼 구불구불 생긴 모습이 땅 속에 묻혀있다고….
(26) 浮石 앞에서
(27) 善妙閣
(28) 애틋한 사랑의 주인공 善妙 娘子
(29) 浮石寺 三層石塔 -보물 제249호-
사진 왼쪽에 보이는 건물은 무량수전이다.
(30) 榮州 浮石寺 祖師堂 -국보 제19호-
고려 禑王 3년(1377) 重建한 부석사 제2의 목조건물
(31) 浮石寺 禪扉花, 學名은 骨擔草
선비화의 잎을 다려 먹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俗說 때문에 피해가 심해
‘鐵窓 안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32) 慈忍堂, 안에는 三尊佛이 있다.
(33) 榮州 北枝里 石造如來坐像 -보물 제220호-
부석사 동쪽 약 1.5km 지점인 東方寺 터에서 옮겨온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으로 慈忍堂 안 동쪽에 모신 불상 毘盧舍那佛坐像-東)
(34) 榮州 北枝里 石造如來坐像 -보물 제220호-
慈忍堂 안 서쪽에 봉안된 불상 毘盧舍那佛坐像-西
(35) 應眞殿
(36) 浮石寺 九品 중의 上品壇
三層石塔(보물 제249호) 뒤로 왼쪽에 安養樓, 오른쪽은 無量壽殿(국보 제18호)
(37) 祖師殿 일대를 둘러보고 삼층석탑을 거쳐 내려오는 회원들
(38) 무량수전 앞 마당에서 梵鐘樓 너머 보이는 景觀
범종루의 뒤쪽은 맞배지붕의 구조이나 건물의 앞쪽은 팔작지붕이다.
(39) 무슨 열매인지…. 아주 情熱的이다.
(40) 무엇에 열중하는가? 했더니…
(41) 바로 自然石으로 쌓은 築臺였네.
(42) 浮石寺 洞口 연못에 핀 무지개
(43) 浮石寺 洞口 연못에 핀 무지개
(44) 浮石寺 洞口 음식점의 山菜비빔밥
(45) 늦은 점심으로 ‘출출한 民生苦 해결’
(46) 浮石寺를 떠나면서
- (2-2)에 계속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