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나라의 원리(마태 25:31-46)
심규용 안토니오 신부 / 예산교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은 왕이신 그리스도 축일입니다. 대림으로 시작한 교회의 시간은 사순과 부활을 거쳐 긴 연중주일을 지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끝에서 우리는 왕이신 그리스도를 만납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교회력의 마지막 주일이기도 합니다.
왜 이 시기를 왕이신 그리스도 축일로 지내는 것일까요? 그것은 이 세상의 종말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한 해를 마감하는 것은 곧 세상의 끝을 의미합니다. 들풀은 말랐고, 나무는 맨몸을 드러냈습니다. 자연이 그렇듯 삶도 처음이 있으면 마지막이 있습니다. 과학의 발달로 광대한 우주의 별들도 소멸이 있음을 압니다. 이 종말의 시간 우리는 그리스도를 우리의 왕으로 고백합니다. 그것은 인류를 포함한 피조세계의 구원이 종말의 시간에 완성된다고 성서는 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오늘은 피조물을 돌보시고 다스리시는 그리스도의 왕권을 고백하는 날입니다. 그분의 나라는 세상 나라의 방식과 질적으로 전혀 다른 나라입니다. “내 왕국은 결코 이 세상의 것이 아니다”라고 요한복음은 증언(18:36)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나라는 힘과 권력과 부를 추구하지만 그분의 나라는 진리와 정의와 평화를 추구합니다. 이것이 하느님 나라를 규정하는 중요한 원리입니다. 이 추상적인 단어는 구체성을 가질 때 의미가 더욱 분명해집니다.
오늘 복음서는 세상의 마지막 날 왕좌에 오르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분은 모든 천사들을 거느리고 와서 영광스러운 왕좌에 앉아 모든 민족들을 앞에 불러놓고 그들을 갈라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자리잡게 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최후의 심판의 모습입니다.
특별한 점은 이 비유가 오른편과 왼편에 있는 사람들과의 문답법을 통해 하느님 나라의 원리를 가르쳐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원리의
구체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 되었을 때에 따뜻하게 맞이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주었다”라는 것입니다.
이 비유는 예수께서 공적 사역의 시작을 알리는 선언(루가 4:18)에서 이사야서(이사 61:1)를 인용한 것과 연결됩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께서 선포한 하느님 나라는 가난하고 소외된 약자를 향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생애동안 그의 시선은 항시 사회적 약자를 우선시하였고 또한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러므로 두 번이나 강조해서 하신 말씀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40, 45)는 하느님 나라를 가장 잘 드러내는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교회는 공리주의나 다수결에 바탕을 둔 민주주의를 초월합니다. 가난하고 연약한 자들을 우선적으로 살피고 배려하는 곳입니다. “예수를 충실히 섬기며 모든 성도를 사랑”(에페 1:18)하는 곳이며, 성령의 빛으로 마음의 눈이 밝아져야만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 오늘날 시민불복종의 기원이 되는 저항권 사상은 백성을 탄압하는 타락한 왕에 대한 교회의 고민 속에서 시작되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금주 교구의 모든 성직자는 연피정에 들어갑니다. 한 해의 마지막을 침묵속에서 성찰하며 나약하고 부족했던 것들을 성령께서 이끄시는 새로운 빛으로 채워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야훼께서 에제키엘에게 하신 말씀처럼 헤매고, 길 잃고, 상처입고, 아픈 양들을 돌보는 목자의 구실을 다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길 바랍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