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타이 1 - 예전에 안티오키아(안디옥) 라고 불린 하타이에서 아침을 맞이하다!

어제 5월 19일 오후에 카파도키아 에서 동쪽으로 한시간 거리에 위치한 카이세리 Kayseri
에서 붉은색 달과 별 터키 국기와 에르두안 대통령 초상화 가 유난히도 많은
시내를 구경하고는 200번 시내버스를 타고 카이세리 공항 Kayseri Airport 에 도착합니다.



카이세리 공항 에서 19시 30분 출발 터키항공기에 올라 이스탄불 에 도착해서는
공항 화장실에 가니.... 수도꼭지 가 있고 밑에 그릇이 있기로 그 용도를
생각하고 웃고는 다시 하타이 로 가는 23시 55분 출발 터키 항공으로 환승합니다.



다음날인 5월 20일 새벽 02시 캄캄한 밤중 에 터키 동남부에 옛날에는 안티오키아
( 안디옥 ) 라고 불리던 도시.... 하타이 (안티오크) Hatay 공항에 내립니다.



밤중이라 대중교통수단이 없으니 택시(80리라) 를 타고는 40분간 달려서는 새벽
3시에 하타이 시내 Buyuk Antakya Oteli 호텔에 도착해 하룻밤을 잤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텔레비젼을 트니 검은색 돌 로 보아 메카의 카바신전 이 나오더니
전투 장면에 이어 이어 테러 가 일어났다는 뉴스가 일상사 처럼 흘러 나옵니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 복도로 나오니 이번 여행에 우리가 예약한 15개 호텔 중에
가장 큰 호텔 인 탓인지 복도 여러군데 그림 들이 걸려있는데....
층계를 오르내리며 그림들을 찬찬히 구경 하다가 이 도시의 역사 를 생각합니다.


이 도시 하타이 Hatay 의 옛 이름은 안티오키아 를 거쳐 안타키아 Antakya 인데 아시아
와 유럽 및 아프리카에 걸친 대제국 오스만 터키가 쇠약해지다가....
1차 세계대전에 독일편에 참전했다 패하는 바람에 영토는 갈가리 찓길 운명 에 처합니다.

이에 케말 파샤 는 술탄의 정부에 대항해 앙카라에 새 정부 를 수립하고 무력으로
그리스, 아르메니아, 영국 및 프랑스 를 몰아내고 터키 공화국 을 수립하는데
이 도시 안타키아 는 역사적으로 시리아에 속한지라 프랑스의 통치 를 받게 됩니다.

그런데 주민은 시리아계 와 터키계가 반반 이라 케말 파샤 는 주민들에게 자치정부 를
세우라 충동하고는, 옛 히타이트제국 영광 을 생각해서 그 후손들이니 나라 이름을
하타이공화국 으로 정하게 했다가 1,939년에 다시 터키 공화국에 합치게 된 것이지요!

안타키아(하타이) 는 고대에는 안티오크 또는 안티오키아 로 알려졌으며....
성서에는 안디옥 으로 나오는데 시리아와의 국경 부근에 있는 도시로
오론테스강 좌안을 따라 지중해로 부터 25km 거슬러 올라간 지점에 있습니다.

안타키아 는 BC 2,000년경 까지는 시리아 알레포의 야무하트왕국 의 통치하에
있었으나 BC 17세기에는 앙카라 동쪽 핫투샤 에서 일어난 히타이트 의
지배하에 들어갔으나 제국이 붕괴된후 BC 841년 까지 몇개 공국이 분립하였습니다.

이후 안타키아 는 이라크 북부에서 일어난 앗시리아에 점령 되었으며 BC 333년에....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 은 이곳에 이르러 물맛에 감동해 도시를 세우기 를
바랬다는데 말라리아 에 걸렸는지 갑작스럽게 죽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는 못합니다.

알렉산더 대왕 이 죽은후 그 영토는 마케도니아, 이집트, 시리아(터키) 3국으로
분할되니 부하 장군 셀레우코스 는 오론테스강 하류 사만다으 에 항구를
건설하고 수도 로 삼으니 당시 이름은 셀레우키아- 피에리아 라고 불렀습니다.

그후 셀레우코스 1세 는 BC 300년경 여기 오론테스강 25km 내륙에 도시 안타키아
를 건설해 수도를 옮기는데..... 도시의 이름은 왕의 아버지 안티오코스
이름을 딴 것이라고 하며 시리아 셀레우코스 왕조의 수도 로서 번영하였습니다.


외항 셀레우키아 를 통하여 지중해 각지와 연결되고 또 동쪽으로 이어지는 대상로가 있어
통상· 무역의 요지 로서 예로 부터 “동방의 여왕”이라고 하였는데 BC 64년
로마에 점령되어 속주 시리아의 수도 가 되었고 헬레니즘· 로마 시대에 번영 을 이룹니다.

47~ 55년 사도 바울의 기독교 전도 근거지였으며 그리스도교의 이방인 전도 기지 로서
알려졌는데, 그리스도교도 를 처음으로 “크리스천”이라고 부른 곳이라고 하며
3세기중엽 이래 기독교 종교회의 가 열렸으며 아시아 총대주교의 소재지 가 되었습니다.

안타키아는 바울 근거지로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빌립보서, 데살로니가전서,
빌레몬서가 신약성경에 편입 되었고..... 3세기후 이 도시에서 종교회의 가
자주 열렸으며 아시아 총대주교 가 설치된 도시로 누가복음의 누가 가 태어난 도시 입니다.

526년의 대지진 과 538년 페르시아군의 파괴 로 황폐화된 후 유스티니아누스 대제 가
재건했으나 옛 번영을 회복하지는 못했다는데.... 고대에는 소아시아의 프리지아에
있었던 “피시디아의 안타키아” 등 안티오크로 명명된 도시가 16개나 있었다고 합니다.

635년 이슬람 사라센인 에게 점령되어 300년동안 그 지배를 받다가 969년 동로마
에 속하게 되었으며..... 1084년 부터 셀주크 투르크의 지배 를 받게 됩니다.

그러자 유럽에서 제1차 십자군 이 결성되어 레몽과 고드프루아등 10여명에
달하는 유럽의 영주들 은 콘스탄티노플을 거쳐 니케아 를 함락하고
소아시아를 남진해서... 1,097년 말에 이슬람령 안타키아 로 쳐들어 옵니다.

주요 영주인 레몽 4세는 툴루즈 백작 에 나르본과 마그레브의 공작 이었는데
초기 십자군의 가장 중요한 군주들 가운데 하나로 당시 50대 였다고 합니다.

아데마르 주교와 같이 남프랑스 를 세력기반으로 삼고 있었는데 영지 일부를 팔아 군자금
을 마련해서는 아내 에비라와 아기인 아들 까지 데리고 원정 을 떠났다고 하네요?


6개월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마침내 도시는 배신자 로 인해 십자군에 의해 점령
을 당했으며 십자군이 쇠퇴한 이후에는 아랍측에 재점령 되었다가 16세기
전반에는 오스만투르크 가 장악했으며 1920∼1939년 까지는 시리아 가 지배합니다.

그림을 보며 이런저런 회상에서 깨어나 2층 식당으로 내려가는데 벽에 걸린 그림은 아마도
고고학박물관 에 있다는 비잔틴 시대의 모자이크 벽화인듯 싶어 한참 바라봅니다.


그리고 식당으로 들어가니 엄청 넓은데 큰 호텔이라 그런지 여행사 패키지
손님등 사람들이 많은데....... 젊은 터키 여자들도 많이 보입니다.

관리하는 여직원이 2명인데 검은 바지에 흰 와이셔츠 정장 차림인데
히잡 을 쓴 여자 손님들과 어울리니 묘한 느낌 이 듭니다.


원래 여행계획서에는 고고학박물관 과 성베드로 동굴교회 에 교외에 다프네의 유적지
인 하르비예 에다가 돌무쉬로 30분 걸리는 지중해 바닷가 사만다으 까지 볼려고
했는데 어제 밤, 아니 오늘 새벽 3시에 도착하는 바람에 시간이 모자라니 걱정 입니다.


동로마 비잔틴제국 시절에 사만다으 는 실크로드의 육로의 끝으로 여기서
배에 실린 진귀한 동방 상품들은 콘스탄티노플 로 옮겨졌다고 합니다.


사만다으 로 부터 6km 떨어진 체블리키산 중턱에 길이 1,300m, 높이 700m 티투스 터널 이
위치하는데 당시 해수면 상승 으로 항구 도시가 자꾸 바닷속으로 가라앉자 홍수방지와
관개수로 두가지 목적으로 산 중심을 똑바로 파고 들어가 반대편까지 뚫어놓았다고 합니다.


또 산 위에는 사만다으가 셀레우코스조 시리아 초기 수도 였으니 옛 왕족의 무덤 이 있는데
바로 영화 벤허 촬영지 이니 여주인공과 어머니가 문둥병자 가 되어 생활하던 곳이라네요?


여기까지 볼수 있을른지 마음이 급하니 아침은 대충 떼우고 일어서 작은 가방만
메고는 밖으로 나와서는 안티오키아 고고학 박물관 부터 찾아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