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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어찌들 지내시는지...
저는 이제 여행의 모든 준비를 끝내고 여러분과 떠날 날짜만 세고 있는 중입니다. ㅎ
뉴스를 보셔서 아시겠지만
일본의 니이가타 지역에 최근 3일에 걸쳐 4m에 가까운 폭설이 내렸네요.
니이가타(니가타) 지역은 일본의 유명한 소설 [설국]의 배경이 되었던 지역으로
지형적인 여건으로 적설량이 홋카이도보다도 많이 쌓이는 곳입니다.
니가타 뿐 아니라 동해를 낀 서쪽지역 전반이 폭설로 인해 몸살을 앓고있는 듯합니다..
문득 이런저런 자연재해로 인한 사건사고가 끊이지않는 일본을 보며
안정된 기후의 우리나라가 얼마나 탐나고 부러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암튼... 이번 폭설사태에도 비교적 평온한 홋카이도입니다만
다음 주엔 기온도 평년의 수준으로 돌아간다고 하네요.
정한수라도 떠놓고 우리의 여행일정 중에는 하늘의 축복이 있기를 빌어볼까합니다.^^;
현실의 눈은 다소 위협적이기도 하지만
홋카이도 여행을 앞둔 철없는 중년 아줌마의 뇌리에는
눈 + 홋카이도 = 영화 '러브레터'가 떠오르니 어쩜 좋아요.
그만큼 영화 '러브레터'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감성과 코드가 맞았고
이와이슌지 감독 특유의 섬세한 손길이 영화 구석구석 느껴지는 작품이다보니
시간이 흘러 다시 보아도 여전히 가슴 한구석이 아련해지는 마력을 발휘합니다.
우리의 마지막 일정인 오타루가 바로 영화 '러브레터'의 무대다보니
눈과 함께 아련한 추억 여행을 떠나 보시는 건 어떨까 싶어
제가 좋아하는 이웃의 글을 소개해 드릴까합니다.
추운 날에 따뜻한 커피 한잔과 더불어 첫사랑의 추억 여행을 함께 떠나보시죠.
도죠~^^
이와이 슈운지 감독의 <러브 레터>입니다.
디비디를 보면 스페셜 피처로 OST중에서 <Winter Story>라는 곡의 뮤직비디오가 수록되어 있는데,
그 부분에서 몇장면 캡쳐해본 것이 바로 위의 장면들입니다.
겨울 이야기라... 겨울 이야기...
그러고보니 여기저기에서 눈 소식이 들리는 것을 보니 겨울의 한가운데 들어온 모양입니다.
이와이 슈운지 감독의 <4월 이야기>를 봄 이야기로 말할 수 있다면 <러브 레터>라는 이 작품은
문자 그대로 겨울 이야기라고 부제를 붙일만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적어도 저로서는 봄 하면 생각나는 영화가 <4월 이야기>라면,
겨울에 자동으로 떠오르는 영화가 <러브 레터>라고나 할까요.
지난 1995년도에 세상에 선을 보인 이 작품도 가만히 생각해보니 무려 17년 전의 작품이로군요.
하지만 지금 다시보더라도 이 작품의 영상미와 탁월한 편집감각은 흠잡을 데 없이 수려합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한번 정도는 반드시 경험하게 되는 첫사랑이라는 아련한 추억을
관객들로 하여금 떠올리게 만드는 빼어난 줄거리 외에도 인공적인 색채가 그다지 묻어나지 않는
수려한 겨울풍경, 은은한 사운드 트랙은 단연 이 작품을 멜로영화와는 그다지 친하지 않은
남성관객들도 극찬하게 만든 부분이기도 할겁니다.
이 작품에서 히로코 역을 맡은 나카야마 미호 라는 여배우입니다.
굉장히 단아한 모습의 여배우인데, 이 작품 이후 <동경 맑음>이라는 작품으로 우리나라에 알려지긴 했지만
별다른 작품활동이 없어 아쉬운 여배우이기도 하네요.
작품속의 히로코는 결혼하기로 약속했었지만 산에서 조난사고로 죽어버린 후지이 이츠키라는
옛연인을 잊지 못해 괴로워하는 여인으로 출연했습니다.
그녀는 이 작품에서 히로코의 옛연인 후지이 이츠키와 같은 이름의 동명이인인
또다른 후지이 이츠키라는 여성으로 1인 2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습니다.
이 작품에서 그녀는 히로코일때는 다소곳하고 느린 말투를 사용하지만 후지이 역으로 모습을 보여줄때는
상당히 톤이 높고 빠른 말투를 사용하는데, 대단히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후지이의 집앞에 세워져 있는 빨간 우편함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상당히 보기드문 소품이기도 하네요.
히로코라는 여성과 후지이라는 이름의 생면부지의 두 여성이 편지라는 비교적 고전적인 소재를
활용하여 한사람은 첫사랑의 상처를 치유해가고, 또다른 한사람은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첫사랑의 기억을 되살려가는 과정을 다룬 이 작품은 이후 우리나라의 멜로영화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우리나라의 <편지>, <시월애>, <오버 더 레인보우>, <연애소설> 같은 작품들을 보다보면
알게모르게 <러브 레터>의 잔영들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아, 그렇다고 위에서 이야기한 우리 영화들이 표절이라는 말은 절대로 아니구요, 그만큼
많은 시나리오 작가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어주는 작품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아직 후지이를 잊지 못하는 거야? 그럼 우리 사이는 어떻게 되는 거지?" "......" 히로코는 우연히 옛 연인 후지이 이츠키의 중학교시절 앨범에서 옛주소를 알아내고, 그곳으로 "잘 지내고 계신가요? 전 잘 지내고 있답니다" 라는 짧막한 내용의 편지를 보내게 됩니다. 하지만 뜻밖에도 이미 죽어버린 옛연인 후지이 이츠키로부터 감기에 걸리긴 했지만 잘 지내고 있다는 내용의 편지를 받고 깜짝 놀라게 됩니다. 그리고는 후지이의 오랜 친구이자 지금 사귀고 있는 친구 아키바에게 그 사실을 이야기하는데... 영화에서도 간략히 설명되지만 이 작품의 감독인 이와이 슈운지가 쓴 이 작품의 원작소설에서는 아키바의 모습이 좀더 자세히 그려져 있습니다. 애시당초 대학생 시절, 히로코에게 데이트를 처음으로 신청했던 것은 아키바였는데, 혼자 미팅자리에 나가기 쑥스러워서 친구인 후지이를 데리고 나갑니다. 하지만 그동안 여자에게는 거의 무관심으로 살아온 듯한 후지이가 첫만남 자리에서 히로코에게 "한눈에 반하는 사랑을 믿습니까? 저와 사귀어 주세요." 라고 느닷없이 고백을 해버리는 바람에 히로코나 아키바나 깜짝 놀라는 대목이 원작소설에서는 짧막하지만 아주 재치있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부분이지만 어째서 후지이가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동안 여자들에게는 일체 관심을 가지지 않는 남자였는지, 그리고 히로코를 처음 본 자리에서 느닷없이 왜 그런 고백을 했는지 곰곰히 생각해보면 무척 재미있다는 생각도 드는데, 그래서 원작소설을 한번쯤 접해보시면 영화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등장인물들의 내면을 조금이나마 더 가까이 들여다볼 수 있기도 하더군요.
히로코는 자신에게 답장을 보낸 후지이 이츠키가 옛 연인과 동명이인의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동안 민폐-_-;를 끼쳐 죄송했다는 편지를 남깁니다.
그리고 뒤늦게 히로코의 편지를 본 후지이는 그제서야 중학교 시절, 자신과 같은 이름의 남학생이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히로코에게 다시 편지를 써보냅니다. 후지이가 우체통에 편지를 넣는 모습을 우연히 먼 발치서 바라본 히로코는 도플갱어-_-;;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자신과 쏙 빼닮은 그녀를 보고는 놀라게 되는데...
집으로 되돌아온 히로코는 옛 연인 후지이 이츠키의 중학교 졸업앨범을 찾아
또다른 후지이 이츠키라는 이름의 여학생 모습을 찾아냅니다.
그제서야 그녀는 여자에게는 완전히 쑥맥이었던 후지이 이츠키가 첫만남에서
"첫눈에 반하는 사랑을 믿으세요?"
라고 물었던 말의 의미를 되새기게 됩니다.
그리고는 후지이가 자신에게 사귀자고 이야기한 것은 히로코와 똑같이 생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닮아있는 여학생 후지이에 대한 추억을 잊지 못해서일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상처받게 됩니다.
그래서 히로코는 여자 후지이 이츠키에게 옛연인이었던 남자 후지이 이츠키에 관한
추억이 있으면 들려줄 수 있겠느냐는 부탁을 하는데...
이후 작품은 또다른 여주인공 후지이 이츠키의 중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벚꽃이 흩날리는 중학교 입학식날.... 그러고보니 이와이 슈운지 감독작품에는
<4월 이야기>에서도 그랬고 <하나와 앨리스>에서도 그랬지만 화사한 봄날의 풍경이
아름답게 담겨져 있기도 하네요.
중학교 등교 첫날, 담임선생님이 출석을 부르는 시간입니다.
"후지이 이츠키."
"하이, 센세~~ 엉 -.-;;?"
"옛썰~~~ 우잉 -,.-;;?"
남학생과 여학생의 이름이 같은 경우는 무척 보기 드물 것 같은데,
그래선지 이 두 어린 학생들은 곧바로 친구들의 놀림감이 되어버립니다.
"한마디로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아담과 이브라고나 할까요?" 교실에 두사람만 남아 있으면 같은 반 개구장이들이 뜨거운 사이라고 놀리기도 하고...
"저리 떨어지삼!" "댁이야 말로 저리 떨어지삼!" 두 사람은 티각태각거리면서 놀랍게도 중학교 시절 3년을 같은 반에서 생활하게 됩니다.
"후지이군, 일 좀 도와주시지요?"
얼떨결에 도서위원이 되어버린 두사람의 후지이 이츠키...
여학생 후지이 이츠키는 도서위원이 하는 일이 마음에 들어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도 도서관에서
일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남학생 후지이 이츠키는 도서관의 일은 안전에도 없고, 육상부에 더 열성을 보이는가 하면
도와달라고 하면 생까고 창가에서 독서모드로 맹렬히 진입해버립니다.
95년 쯤이면... 우리나라에는 어떤 하이틴 스타들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13년이 지난 지금 다시 보더라도 <러브 레터>의 주인공들이 더할나위없이 매력적으로 보이는 부분은
참으로 감탄을 자아내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히로코 역을 맡은 나카야마 미호는 말할 것도 없고, 중학교 시절을 연기한 두 어린 배우들도
대단히 앳되보이면서도 지금까지 지나간 세월이 주는 촌스러움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깔끔하게 보이는 것은 참으로 신기하게 느껴집니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이 작품에 출연하는 두명의 여배우에게 잠시 넋을 잃었다면,
여성관객들은 출연분량이 그리 많지 않은 이 꽃미남 스타일의 남자배우에게 시선을 빼앗겼을 것 같습니다.
"꺄아아아아악!!!!!"
어이쿠, 자전거를 타고 가는 여학생 머리에 저런 걸 뒤집어 씌우는 장난을 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할 것 같은데...-_-;;;
어느 날 여학생 후지이는 영어 시험지 답안지를 받아보고는 27점이라는 경악할만한
점수에 깜짝 놀라는데, 알고보니 남학생 후지이의 답안지와 바뀐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남학생 후지이의 육상부 훈련이 끝나기를 자전거 주차장에서 기다리는데...
대단히 로맨틱해보이는 장면이죠?
자전거 페달을 돌려 전조등에 불이 들어오게 해서 답안을 확인하는 장면인데...
별 특이할 것도 없는 아주 일상적인 공간이지만 대단히 인상적인 장면으로 탈바꿈시키는
이와이 슈운지 감독의 재능이 빛을 발하는 부분이기도 하네요.
"후지이 이츠키 스트레이트 플래쉬!"
여학생 후지이에게 남학생 후지이는 무뚝뚝하기 그지없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나중에 어른이 된 여학생 후지이가 히로코에게 보내는 편지에도 대체적으로 남학생 후지이 때문에
골탕먹었던 사건들 위주로 쓰여집니다.
그러던 남학생 후지이가 줄곧 장난삼아 하는 일이 있었으니...
바로 도서관에서 아무도 빌려읽지 않을 것 같은 책을 빌려 대출카드에 자신의 이름을 쓰는 것이었군요.
이 대출카드는 후반부에 이르러 관객들의 가슴 한 곳을 아련하게 뒤흔드는 장치로 깜짝 활용되기도 합니다.
히로코는 아키바와 같이 후지이가 조난당해 죽었던 산을 찾아가게 됩니다.
그녀는 자신을 사랑했었던 후지이 이츠키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것이 자신이었을지,
아니면 동명이인이었던 중학생 시절의 또다른 여학생 후지이 이츠키였을지 혼란스러워 합니다.
하지만 먼 산을 향해 그에게 안부의 말을 소리치는데...
"잘 지내고 계신가요?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이른바 "오겡끼 데스까? 와따시와 겡끼데쓰!"라는 일본어를 유행어처럼 퍼뜨리게 만든 명장면이죠.
별 것도 아닌 이 장면이 유난히 관객들의 가슴속에 깊게 자리잡은 명장면으로 기억되는 이유는,
아마도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 역시 작품속의 히로코처럼 소리쳐 안부를 물어보고 싶은 사람을
가슴 속에 한사람 정도는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와타나베 히로코씨, 잘 지내고 계신가요? 저는 잘 지내고 있답니다."
그리고 같은 시간에 여자 후지이는 그동안 앓고 있던 감기가 악화되어 병원에 실려가
산위에서 히로코가 소리치는 인삿말과 같은 말을 되뇌이게 됩니다.
히로코와 후지이가 서로 안부의 말을 주고 받는 듯이 교차편집으로 연출된 이 장면은
마치 히로코의 인삿말에 남자 후지이가 화답하는 듯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키는데,
대단히 감성적인 울림이 강한 장면이었네요.
여학생 후지이가 중학교 3학년이 되던 해,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얼음속에 갇혀 죽어있는 잠자리를 보는 장면입니다.
잠자리가 많은 곳에서 유심히 관찰해보신 분들이라면 잘 아시겠지만 가을이 깊어가면
잠자리는 날개가 가장 먼저 부서져 버리는 곤충입니다.
날 수 있는 힘을 잃어 땅바닥에 떨어져 숱한 몸부림 끝에 죽는 곤충이 잠자리이기도 한데,
이는 날개가 커다란 매미 같은 곤충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렇게 얼음속에 날개까지 온전한 모습으로 갇혀있는 잠자리를 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 겁니다.
하지만 한겨울에 자연계에서는 볼 수 없는 잠자리의 모습이 보여지는 것은
아마도 이미 지나가버려 잡을 수 없는 지난날의 아름다웠던 추억의 한 단면을
상징하는 대목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장례식 때문에 3학년 개학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등교를 하지 못하고 있던
여학생 후지이의 집으로 누군가가 찾아오는데...
바로 남학생 후지이로군요. 서로가 학교에 가지 않았다는 사실에 당황하는 것도 잠시, 남학생 후지이는 부탁을 한가지 합니다.
바로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책을 방학하기 전에 도서관에서 빌렸는데
미처 돌려주지 못했다면서 여학생 후지이에게 대신 반납해달라는 부탁이로군요.
영화의 성격과 더할나위없이 잘 맞아 떨어지는 제목의 이 책은 저도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한겨울 홍차 한잔과 약간의 다과를 곁에 두고 지난날을 회상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관념적으로 그려낸 걸작소설이라고 하는군요.
눈썰미 있는 분은 이와이 슈운지 감독의 <4월 이야기>에서 서점의 내부를 훑어내리는 카메라에
큼지막하게 포착된 이 책의 제목을 찾을수도 있을 겁니다.
책을 건네준 다음 별다른 말도 없이 자전거에 올라타는 남학생 후지이.
그리고 훌쩍 떠나는 그를 바라보는 여학생 후지이.
두사람의 만남은 이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
나중에 등교한 여학생 후지이는 그제서야 친구들로부터 남학생 후지이가 전학갔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어른이 된 여학생 후지이가 히로코에게 편지로 중학교 시절 남학생 후지이와의 추억을
이야기하는 것도 여기서 끝을 맞게 되는군요.
"중학생때 나랑 이름이 같은 남학생이 있었어요."
"엉? 첫사랑이었냐?"
"그게 아니구요, 그냥 그런 남학생이 있었다구요."
"네가 태어났을때 나무를 심으면서 이름을 붙였는데, 여자인 너하고 이름이 같단다."
"정말요? 방금 지어낸 말 아니예요? 어떤 나무예요?"
이제 성인이 된 후지이는 중학교 시절, 이름이 같아 애를 먹였던 남학생 후지이가 2년 전에
산에서 조난사고로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뒤늦게 할아버지를 통해 자신과 같은 이름을 가진 나무가 그녀도 모르는 사이에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알고 기뻐하게 되는데, 한때 그녀가 잊고 있었던 후지이 이츠키라는 남학생을
어떻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는지를 우회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마치 그림엽서로 사용해도 될만큼 예쁜 장면이 가득한 작품이기도 하지만
이 마지막 대목 역시 참 가슴 한곳을 포근하게 만들어주는 장면이었네요.
작품이 끝날 무렵이 되어 모교의 도서위원으로 있는 후배들이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다면서
후지이의 집으로 찾아옵니다.
이 후배들은 도서실에서 후지이 이츠키라는 이름이 적혀있는 도서대출카드를 여러장 발견하면서
이후 후지이 이츠키 찾기 게임이라는 것 까지 만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재미있는 것이라고 하면서 후지이에게 오래전 그날, 남학생 후지이가 반납해달라고
부탁하면서 건네주었던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책을 건네주는데...
후지이 이츠키라고 적혀있는, 오래전 여학생 후지이를 골탕먹이던 그 남학생 후지이 이츠키가
중학생들은 도저히 빌려볼 것 같지 않은 책들만 빌려 자신의 이름을 써두곤 하던 그 장난이
남아있는 그 책, 그 대출카드....
"카드 뒷면이요, 뒷면을 보세요."
"......?"
"나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것은 중학생 시절의 내 초상화였다.
문득 정신차리고 보니 여학생들이 흥미진진하게 내 얼굴을 빤히 쳐다 보고 있었다.
난 태연한 척하면서 그걸 주머니에 집어넣으려고 했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앞치마엔 공교롭게도 주머니란게 어디에도 달려있지 않았다."
이와이 슈운지 감독이 이 작품을 연출한 다음에 썼다는 원작소설은 위의 문장으로 끝맺음하고 있습니다.
영화에선 대사없이 담백한 피아노곡만이 들려오는데, 관객들로 하여금
그동안 쌓아왔던 감정을 폭발적으로 들려주기보다 오히려 절제력있는 음악으로
마무리한 부분도 정말 돋보이는 부분입니다.
"와타나베 히로코씨, 가슴이 아파서 이 편지는 보내지 못할 것 같습니다."
흔히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들 하는데, 그 가장 큰 이유가 이 작품속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것 같습니다.
작품 속의 여학생 후지이처럼 당시로서는 자신의 감정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사랑인지 아닌지
미처 깨닫지 못해서일수도 있고,
남학생 후지이처럼 쑥맥 중의 쑥맥이라서 사랑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미처 고백하지 못했기 때문일수도 있을겁니다.
이 작품이 무려 17년 이상의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빼어난 작품으로 기억될 수 있는 이유도 누구나가 공감할 수 있고,
공감함으로써 잠시나마 행복해질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주었기 때문이겠지요.
그러고보니 <러브 레터>라는 이 작품은 제가 처음으로 극장에서 본 일본영화이기도 하고,
멜로영화와는 그리 사이가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여러번 본 멜로영화 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 이 작품이 개봉되었을때의 흥행성적은 잘 모르겠지만,
요즘들어 오래된 영화를 재상영하는 행사가 자주 열리는 것 같은데, 아마 이런 작품도 재개봉에 들어간다면
개봉당시보다 오히려 더 좋은 반응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극장에서 이 작품을 볼때만 하더라도 일본 영화를 본다는 것에 어느 정도 반감을 가지고 있기도 했었고,
영화속의 일본어 대사가 굉장히 생소하게 들렸던 탓에 이질감을 느끼면서 본 기억이 나거든요.
그래선지 나름대로 일본어를 조금 들여다본 탓도 있겠지만, 처음 이 작품을 봤을때보다는
두번째, 혹은 세번째로 봤을때가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처음 봤을때는 단순히 인상깊었던 장면들이 두번째 볼때는 어째서 저 장면이 기억에 오래남을까...
하면서 보게 되고, 그 의미를 곱씹다보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도 무시할 수 없겠죠.
일본의 여류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사랑을 받아본 적이 있는 사람은
더이상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는 표현을 쓴 적이 있습니다.
이별 뒤에 아쉬움과 외로움을 느낀다면, 그것은 어딘가 소홀한 부분이 남아있는 사랑이었다는 말이겠지요.
눈 속에 파묻히는 겨울의 중앙에서, <러브 레터>같은 작품을 접하면서
지난 날의 사랑에 대해,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사랑에 대해,
혹은 앞으로 하게 될 사랑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는 것도 나름대로 썩 즐거운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첫댓글 아직 우먼파워님을 만나진 못했지만 참 기분이 좋은데요. 즐감하고 갑니다. 덕분에 북해도 여행에 더 큰 기대를 걸게 되네요^&^
겨울에 북해도는 가보진 않았지만.... 가고프네요. 러브레터의 영화를 다시 보는 느낌이 들만큼 자세하게 올려주시니 너무 감사합니다.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를 통해서 알려진 작가죠? 많이 배우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여행 잘 다녀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