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미국 대학생들은 『호밀밭의 파수꾼』을 바이블처럼 끼고 읽었다. 왜 ? 그리고 이 책을 쓴 미국작가 샐린저는 적어도 40년 이상 세상과 담을 쌓고 숨어 지내는 은둔생활로 유명하다. 왜 ? 이 책은 두 개의 의문을 풀기 위해 흡족하지는 않지만, 샐린저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샐린저에 대한 갈증을 약간이나마 해소해주는 책이다. 「파인딩 포레스토」라는 영화를 본 사람은 그 영화에 등장하는 은둔 작가 포레스토가 샐린저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비틀즈 멤버 중의 하나인 존 레논을 저격한 범인이 홀든 콜필드의 광팬이고, 범행 순간에도 『호밀밭의 파수꾼』을 옆에 끼고 있었다고 해서 또 한번 화제가 되기도 했다.
샐린저는 알렌 긴스버그나 『노상에서』를 쓴 잭 캐루악과 함께 비트세대를 대표하는 작가다. 이들은 기성세대의 위선과 기만에 진절머리를 치며 격렬하게 현실에 저항한 세대들이다. 1951년에 발표된 『호밀밭의 파수꾼』는 작중화자인 홀든 콜필드를 통해 당대 젊은이들의 방황과 내면의 불행의식을 선명하게 드러내 보인다. 『호밀밭의 파수꾼』이 거침없는 비어와 속어, 추악한 세상에 대한 조롱, 반체제적 내용 등으로 한때나마 유해성 논란에 휩싸이고 금서가 된 적도 있다는 사실을 놀랍기조차 하다. 궤도에서 이탈한 행성과 같이 홀로 밤거리를 떠도는 홀든 콜필드의 방황은 곧 정체성을 찾으려는 열망과 관련되어 있으며 타자들과 진정으로 소통하고자 하는 안타까운 몸부림이기도 하다. 속물주의와 세상의 타락한 풍속의 한 가운데 섬처럼 떠 있는 홀든 콜필드는 외롭고 고독하다. 작가는 홀든 콜필드의 외로움과 고독을 통해 인간이 잃어버린 순진성의 신화에 애닲아 하고, 2차세계대전에서 일본의 두 도시에 원폭이 투하되는 것을 목격한 세대가 겪는 정신적 좌절과 고뇌를 보여준다. 두말 할 것도 없이 홀든 콜필드는 샐린저의 분신이다. 홀든이 믿고 따르는 한 선생님은 홀든에게 다음과 같이 충고한다. "미성숙한 사람의 특징은 대의를 위해 고결하게 죽기 원한다는 것이고, 성숙한 사람의 특징은 대의를 위해 겸허하게 살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허위와 가식으로 가득 차 있는 주류 세상을 부정하고, 단순하고 직접적인 것을 추구하며 고뇌와 기쁨을 있는그대로 받아들이는 미국의 비트세대 작가들은 영국의 앵그리영맨 작가들과 동렬에 선다. 비트세대 작가들은 1960년대 히피운동으로 그 명맥을 이어간다. 샐린저는 세상을 앞서 사는 작가다. 나는 샐린저가 그토록 오래 세상과 담쌓고 지내는 까닭을 알 수 있는 듯하다. 세상이 손써볼 여지가 없을 정도로 너무 깊이 병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샐린저의 작품 중에서 단편소설 「에스메를 위하여」와 함께 이 소설을 가장 좋아한다. 샐린저는 가장 적게 쓰고도 쓴 것만으로도 너무 유명해졌다. 나는 채식주의자로 명상과 요가를 하며 은둔 속에서 자신의 삶을 꾸리며 살아가는 샐린저가 좋다. 아울러 사람들이 더 이상 자꾸 그를 찾아내 세상 끌어내려고 하지 말고 그냥 두었으면 좋겠다.
『김성동 천자문』, 김성동, 청년사, 2004
한자는 진화한다. 마찬가지로 『천자문』도 진화한다. 중국 남북조시대 양나라 문인 주흥사가 지은 책으로 널리 알려진 『천자문』을 작가 김성동이 직접 쓰고 새로 그 뜻을 풀어냈다. 이 책은 한자를 익히는 첫걸음으로 권할 만하다. 하지만 『천자문』은 단순한 한자교습서가 아니다. 이 책에는 천문·지리·인물·학문·가축·농사·제사·송덕·처세·지혜·도덕·자연현상에 대한 선인의 가르침이 두루 녹아 있다. 작가 김성동이 토박이 말을 가려 써서 지은 아름다운 글과 함께 옛책에 농축된 지혜와 학문을 더불어 습득할 수 있는 좋은 책이다. 한자에 관심이 없거나 이미 한자를 충분히 아는 사람에게도 권할 만한 책이다.
『지식』데틀레프 간텐·토마스 타이히만·틸로 슈팔, 인성기 옮김, 이끌리오, 2005
슈바니츠 디트리히의 『교양』이 출간되면서 한때 '교양' 열풍이 일었던 적이 있다. '교양'의 바탕은 지식이다. 이 책은 생명, 자연, 우주, 과학에 대한 지식을 두루 다룬다. 유전자 복제와 줄기세포를 이용한 의학 치료가 갖는 윤리성의 문제는 어떤 것인가 ? 우주에 생명체가 있을까 ? 인간의 미래는 어떨 것인가 ? 이 책은 이런 기본적인 물음에 대한 답을 갖추고 있다. 특히 내가 흥미를 갖고 본 부분은 의식과 뇌에 관한 장이다. 뇌과학은 지난 20년간 학문적으로 가장 빠르게 발전한 분양 중의 하나다. 정신·언어·인지·지능·감정이 어떻게 발현되고 발전되어 가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 책은 방대한 '지식'을 다루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깊이'는 생략된다. 이 책은 꽤나 두껍지만 그다지 어렵지 않기 때문에 겁먹지 않고 도전해볼 수 있다. 고등학교 3학년이나 대학교 1, 2학년 학생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