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 서울 오기 7일 전에야 육포 만들 생각이 났다.
종이질녀(사촌언니 딸)와 통화를 끝내고였다.
스페인엔 어찌나 고기값이 싸서 우리나라의 1/3가격이고
고기가 맛있어서 향이 좋다고 했더니
"그럼 육포나 좀 만들어 오시지."란 말에 그때야 무릎을 쳤다.
그곳에선 슈퍼마켓엘 가면 특히 식육코너는 너무 낯이 설다.
고기가 어떤 부위인지, 용도는?...연한지 질긴지...
그러나 딸과 함께 마트엘 간다하더라도 각자 다른 코너에 있어
찾아 물어보려고 해도 너무나 매장이 넓어 서로 어디 있는지
찾을 엄두가 안 나 차라리 맘대로 사거나 안 사고 마는게 낫다.
우리나라에선 스지에 양지머리 고은 걸 즐겨 먹었다.
슬쩍 끓여내 씻어서 다시 마늘 조금, 식초 조금(고기 냄새 제거용)
조금 넣어 푹 서너 시간 꿇이다가 무를 두툼하게 툼벙툼벙
썰어 넣고 좀 끓으면 배추를 숭덩숭덩 썰어 넣어 끓이다가
맛소금 반 수저 정도 넣으면 아주 구수하고 감칠맛이 있다.
거기다 양념간장을 타서 먹어야 탕국이 제맛이 난다.
영주 시집式 탕국인데 시집에선 사골국물에 고기를 넣어서
끓인다.
들통에 한 통 끓여놓으면 며칠 국거리로 아주 좋다.
먹기 지루하면 2~3인 분씩 두어 봉지 지퍼 백에 덜어 냉동실에 뒀다가
반찬 없을 때 먹으면 요긴하고 별미다.
스페인에서도 이런 식으로 끓이려해도 고기 부위를 알 수가
없었다.
제일 처음에 샀던 아뇨호 고기-
10유로 42센트에서 40% 세일이니 6유로 24센트인셈(우리나라 돈으로 7900원 정도.
지금은 유로화가 더 내렸으니 그보다 더 싸다. 1kg 가까우니 1근 반에 7천 원도 안 되는 셈이니
얼마나 싼가?
이렇게 실로 묵고 쌓여 있어 이게 무슨 고긴지 처음엔 알 수가 없었다.
실로 묶은 뭉터기 고기를 풀어보니-
오래 푹 고아 먹을 고기로 적당한 고기로 보였다.
집에 와서 딸에게 이야길 했더니 거기선 오래 고아먹는 고기는 전부 아뇨호 고기라 하였다.
결국 옳게 찾은 셈이다.
고기 고유한 누린냄새를 빼려고 마늘 다진 것과 식초를 몇 방울 떨어뜨려 슬쩍 삶은 아뇨호 고기- 1kg
적당하게 결대로 굵게 썰어 시간 반에서 두어 시간 푹 끓인다.
굵은 파처럼 생긴 양파를 줄기와 썰어서 넣고- 한참 끓이다 넣는다.(너무 일찍 넣으면 짓무른다)
어느 날 기안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동네 마트를 들렀다.
스테이크 용 고기와 삼겹살, 그리고 이 국거리를 사고 싶은데
식육코너 제일 위 칸에 덩어리 고기가 보인다.
아뇨호(Anojo)라고 씌어서 점원에게 물어보나 마나 설명을 한들
알아들을 수도 없고 덥썩 집고말았다.
집에 와 '아뇨호(Anojo)를 사전을 찾아보니 '1년된 숫송아지 고기'
라고 씌어 있었다.
'맛이 없을 리가 없겠군. 어린 고기니...
'
서울에서 스지와 양지머리로 탕국을 끓이듯 푹 끓였다.
이 아뇨호는 스지와 달리 시간 반이나 두 시간만 끓여도 꼭 맞게 맛있다.
향긋한 고기가 연하고 얼마나 맛있는지...
스스로 한 가지를 알아낸 기쁨을 제대로 만끽했다.
들통에 푹 끓여놓고 끝에 맛소금 반 수저를 넣는다.
거긴 무 배추가 없어 양파처럼 생긴 뿌리와 줄기를 숭덩숭덩
썰어 넣었다.
눈보라를 헤치고 딸이 막 퇴근을 하였다.
끓여놓은 국과 야채묻침과 도토리묵과 김치 김 등을 내놓았더니
너무 맛있다며 흡입을 한다.
사위 프랜도 밥을 말아서 잘 먹었다.
그렇게 한 이틀 먹다가 좀 지루해 육개장으로 만들었다.
조선간장(국간장)으로 간을 한 다음
다진 마늘을 조금 더 넣고
양파처럼 생긴 줄기를 파처럼 숭숭 더 썰어넣고 고추가루와 참기름을
조금 더 첨가했더니 맛있는 육개장이 되었다.
그 후에도 몇 번을 더 끓여먹었다.
게다가 세일을 하면 얼마나 고기값이 싼지 눈이 휙 돌아갈 지경이었다.
1kg에 세일할 때는 6~7유로(7800원~9100원)다.
요즘엔 유로화가 내려 더 쌀 것이다.
돼지 갈비 2kg정도에도 7유로 남짓이다.
그때 9100원 정도니 지금은 더 쌀 것이다.
서울에 와서 하나로마트에 가서 보니 돼지갈비가 그보다 무게가 훨씬
덜 나가는 것이 3만 원이 넘는 텍이 붙어있다.
그고서 싼 고기를 먹다가 와서보니 새삼스럽게 입이 딱 벌어진다.
거긴 삼겹살도 그렇게 싸다.
삼겹살 살은 얼마나 좋은지... 단 껍질은 질겨서 가위로 잘라 낸다.
거긴 삼겹살에 우리나라처럼 껍질을 벗기지 않고 껍질까지 붙어 있다.
.
서울에 갈 날이 1주일쯤 남았을 무렵, 서울의 종이질녀(사촌언니 딸)와
통화를 하다가 고기 값 이야길 했더니
"고기값이 싸고 고기가 맛있으면 육포를 좀 만들어 오시면 좋겠네."라고
하였다.
종질녀가 하는 말이 "육포는 너무 얇아 딱딱한 거보다
손바닥 두께쯤은 되게 조금 두꺼워야 맛있다"고 하였다.
"그리 두꺼우면 서울에 갈 동안 마르기나 하겠냐?"고
했더니 1주일이면 꾸덕꾸덕할 텐데 그럼 가져오는데 괜찮지
않겠느냐고 한다.
바짝 마른 거 몇 조각은 몰라도 혹시 농축산물 반입에 걸리진 않을까
염려가 되면서도 안 마르면 딸도 육포를 좋아하니
딸을 주고 오기로 하고 다시 식육점으로 쫓아갔다.
손바닥만 한 두께로 아뇨호 고기를 썰어서 2kg만 달라고 하였다.
썰어 주는데 처음엔 너무 얇아 쪼끔만 더 두껍게 썰어 달라고 했더니
그보다는 약간 두껍게 썬다 싶어도 그냥 두었더니 생각보다
좀 두꺼웠다.
혹시 실패할까봐 2kg만 샀다.
식육점에선 그 날 잡은 소라며 세일을 하지 않아 20유로 조금
더 준 것 같다.
그래봐야 26,000원 정도다.
2kg이면 2,000g이니 3.3근인 셈이다.
고기가 묵직하다.
큰 손바닥 하나 반 크기로 아주 두꺼운 고기로 5조각이 됐다.
양념을 시작하다가 제일 처음 조금 얇게 쓸게 된 것은 그냥
불고기처럼 얇게 썰어 구워 저녁 반찬으로 식탁에 놓았다.
육포거리를 받쳐놓을 네모 쟁반이 다섯 조각을 담기엔
좀 작았다.
나는 육포를 처음 만들어 본다.
종이질녀에게 물어서 배웠다.
종이질녀는 하회마을 서애 선생(유성룡 선생) 종택, 충효당의
둘째 며느리로 그의 시어머니와 두어 번 육포를 만들어봤다며
육포 만드는 방법을 소상히 알고 있었다.
그의 시어머니는 경주 최부자 집의 딸로 음식 솜씨가 아주 뛰어난
분이다.
* 육포 간 맞추기
1. 간장(진간장+조선간장 1:1)
2. 마늘, 생강즙
3. 설탕,
4. 꿀
5. 후추가루
6. 참기름
7. 배 갈아 즙낸 것. (그곳은 우리나라 배가 없어 잘 익은 키위 1개 정도와
양파 1개 즙으로 대신 했음- 고기가 부드러워진다)
* 배즙, 키위즙, 양파즙은 고기를 부드럽게 하고 더욱 맛있게 하기 위함이라 한다.
* 조선간장과 꿀만 빼면 불고기 양념과 같다.
맛을 보아 짭쪼롭 하게(불고기 양념보다 짜게) 한다.
* 만드는 법
심심하게 간을 해서 양념을 바른다.
2~3회 발라 꾸덕하게 말린다.(종이질녀가 가르쳐 준 방법)
*. 나는 종이질녀가 가르쳐준 것과 달리 간을 잘 배게 하기 위해
2~3회 양념을 바르지 않고,
고기가 두꺼워 아예 양념을 달콤 짭쪼롬하게
해서 이틀에 한 번씩 고기를 담궈 간이 배게 꼭꼭 고기를 눌러 몇 회를 되풀이 했다.
바람이 불고 햇빛 좋은 날도 있었지만 비가 몇 번 오는 바람에 비닐로 덮었다
베꼈다를 몇 번 하다보니 보통 정성이 드는 일이 아니었다.
* 결국 서울로 올 때까지 축축할 정도로 덜 말라 육포 만들던 것은 딸집에 두고 왔다.
"엄마, 고기 색깔이 이상해요."
얼마 전엔 딸이 아깝다며 울상이었다.
아깝더라도 색깔이 변했으면 버리는 것이 좋겠다고 했더니
며칠 후, 고기가 냄새는 맛있는 냄새가 나며 다시 붉고 검은 색이 나면서
마침 날이 좋아 잘 말랐다고 하였다.
그간 비는 한두 번 맞혔음에도 그 후로 요행히 잘 마른 셈이다.
거긴 공기가 좋으니 비 조금 맞았다고 해도 그리 더럽지는 않을 것이다.
오늘 저녁 페이스 타임을 하는데 화면으로 비춰준다.
딸이 하는 말이 간이 아주 맛있고 오징어처럼 한 번 먹어보니
자꾸 땡긴다고 하였다.
준호가 뜯어먹으며 뛰어다닌다.
준호는 꼭 구워서 먹이라고 하였다.
이제 거의 다 말랐다고 해서 맛있으면 지퍼백에 싸서 냉동실에
넣어두고 조금씩 구워먹으라고 했다.
* 문제점- 고기가 좀 질긴 편이라고 한다.
다음에 혹시 다시 만든다면 고기는 조금 더 얇게 썰 것을 부탁하고,
연하고 맛있는 부위(육포용- 홍두깨살)로 달라고 할 것이다.
처음 만든 것이라도 그만하면 성공한 셈인 것 같다.
육포를 만드는데는 겨울이 제철이다.
추운 겨울이라야 파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혹시 몰라서 이곳에서 사가져간 방충망이 그대로 있어 그걸
오려 깔고 덮은 다음 이쑤시게로 고정을 시켰다.
큰 네모 쟁반에 나무 국자를 네개 정도 걸쳐 고정시키고 그 위에 방충망을 깔고
고정 시킨다음(고기 핏물 빠지도록)
그 위 방충망을 덮고 이쑤시개로 아래 위를 고정을 시켰다.
혹시 파리라도 달려들까봐서이다.
비 올 때는 큰 비닐 백을 오려 펴서 위로 덮어 이쑤시개로 역시 고정을 시켰다.
비닐 아래로는 바람이 통하도록 비가 새지 않을 정도로 조금 터놓았다.
베란다에 유리가 없어 마르긴 잘 마르지만 비가 오면 비닐을 매번 덮어줘야 한다.
나중엔 아래 비닐을 붙여 놨었다.(아래 안 보이게 눌러두었다.
* 다음에 육포 만들기를 다시 한다면
식육점에서 고기를 살 때, 연한 부위로 줄 것을 부탁할 예정이다.
아뇨호 고기는 '1년 된 어린 숫송아지 고기'라고 하여 연한 줄 알았더니
맛은 좋으나 아뇨호라도 질긴 부위가 있었다.
연한 부위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아니면 육포용 부위가 따로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시행착오를 거쳐야 무엇이나 차츰 익숙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