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이끌 사람, 가난해도 능력만 있다면 추천해 보시오
천거 제도
고구려 고국천왕, 인재 추천받아 수시로 인품·학문 우수자 등용해
조선시대에도 '천거제' 이어져
3품 이상 관직자가 3년마다 추천… 친분으로 천거하면 파직시켜
4월 10일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지면 총 254명의 지역구 국회의원과 46명의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결정돼요. 이번 선거에 등록한 지역구 후보는 총 944명이나 된답니다. 이들 중에는 정당 추천을 받은 공천 후보도 있고, 정당에 속하지 않은 무소속 후보도 있지요. 여기서 공천이란 각 정당이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 선거에 출마할 후보자를 추천하는 것을 말해요. 선거에 나가고자 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속한 정당의 지원을 받으면 유리하기 때문에 공천을 받으려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지요. 지금 우리나라의 공천 제도와는 좀 다르지만 나랏일을 맡아볼 사람을 추천받아 뽑는 일은 우리 역사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답니다. 우리 역사 속 인재 추천 제도를 알아볼까요?
◇ 을파소를 등용해 나라 탄탄해지다
고구려 제9대 왕인 고국천왕 때 위세가 높은 관직에 올라 있던 어비류와 좌가려는 왕비 우씨의 친척이라는 것을 앞세워 권력을 마구 휘둘렀어요. 백성들의 원망 소리가 높아지자 고국천왕은 어비류와 좌가려에게 죄를 물어 벌을 주려 했지요. 이 소식을 들은 좌가려는 왕이 있는 왕궁이 있던 도읍지를 선제공격했어요. 고국천왕은 군사들을 불러 모아 좌가려의 반란 세력을 물리쳤고, 반란에 합세했던 주모자들을 붙잡아 처벌했어요.
소동이 진정되자 고국천왕은 대신을 불러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려요. "사사로운 친분 관계로 관직이 주어지고, 덕이나 능력으로 관직에 나설 수 없으니 그 피해가 백성에게 미치게 된다. 이는 과인이 현명하지 못한 탓이니 현명한 인재를 추천하도록 하라." 새 인재를 추천하라는 왕의 명령에 따라 대신들은 의논 끝에 안류라는 인물을 추천했어요. 왕이 그를 불러서 나랏일을 맡기려 하자 안류는 왕에게 말했지요. "저보다 더 큰 능력을 가진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을파소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유리왕 때 대신이었던 을소의 후손입니다. 을파소는 의지가 굳고 의젓하며 지혜가 깊으나 다만 세상에 등용되지 못해서 농사를 지어 생활하고 있습니다. 대왕께서 나라를 다스리려면 을파소를 반드시 등용하시기 바랍니다." 고국천왕은 안류의 진심을 알아차리고 을파소를 최고 관직인 국상으로 삼아 나랏일을 맡겼어요.
고국천왕의 지원을 받은 을파소는 참되고 성실하게 나랏일을 해나갔어요. 상과 벌을 신중하게 처리하고 법령을 엄격하게 적용하니 백성들이 편안하고 나라 안팎이 무사하였다고 해요. 이 시기 고구려에서는 백성들이 어려울 때 도움을 주는 진대법이 실시됐어요. 오늘날의 사회보장제도라고 볼 수 있는 진대법은 식량을 구하기 어려워 굶기 쉬운 봄철 국가가 곡식을 백성의 식구 수에 따라 빌려주었다가, 추수가 끝난 10월에 갚게 하는 제도예요. 이 제도가 시행되기 전에는 백성들이 굶주림을 참지 못해 자기 자신을 귀족들의 노비로 파는 일도 많았어요. 하지만 진대법을 통해 곡식을 빌릴 수 있게 되자 백성들의 생활이 안정되게 되었죠. 그뿐만 아니라 평민 계층이 내는 세금으로 고구려의 재정 또한 건전하게 만들 수 있었어요. 을파소는 고국천왕의 뒤를 이은 산상왕 때에도 계속 국상으로 나랏일을 돌보다 203년 8월 숨졌고, 을파소의 장례 때 온 고구려 사람이 슬피 울었다고 해요.
을파소처럼 행실이 착하고 바르며 학문과 정치적인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추천에 의해 선발하는 제도를 천거제라고 해요.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와 신라에서 왕이 내린 명령에 따라 천거를 통해 인재를 등용한 적이 있답니다. 고려시대에는 천거제가 관리를 선발하는 제도 중의 하나가 되었어요. '고려사'에는 992년 성종 때 천거제로 관리를 등용하였다는 기록이 나와요. 과거 제도처럼 실시되는 시기가 일정하지는 않았지만, 천거 제도는 수시로 실시돼 주요한 인재 등용 수단이 되었어요.
◇ 조선시대의 천거제, 인재 선발 기준은?
고려에서 제도적으로 자리 잡은 천거제는 조선시대에도 이어졌어요. 3품 이상의 관리들이 추천하는 관원 후보자를 3년마다 추천하게 하는 제도가 있었지요.
가난하고 변변치 못한 가문 출신 선비 중 학문과 덕망이 높은 인물이나 효행이 뛰어난 효자, 성균관에서 학업이 우수하지만 과거에 급제하지 못한 40세 이상의 만학도, 청백리(淸白吏·청렴하고 강직한 신하)의 자손 등을 대상으로 숨어 있는 인재를 밝혀냈답니다.
관리가 될 만큼 재능이 있고 행실이 합당한데도 추천되지 못한 자는 6조에서 인사권을 가진 이조가 나서서 추천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해요. 그리고 만약 연줄을 써서 인재가 아닌데도 억지로 추천을 받은 경우에는 추천인은 파직되고 추천된 사람도 함께 벌을 받았다고 해요.
천거제는 유능한 인재를 널리 등용할 목적으로 실시되어 숨은 인재를 등용하는 효과를 거뒀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