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퇴근하고 집에 가서 어슬렁거리다 보니
뒷 베란다 김치냉장고 옆에 땅콩이 눈에 띄었습니다.
전에 준석이네 아빠인 블루베리님과 엄마인 씨니님이 포도원 사람들한테 나누어 준 땅콩이었죠.
블루베리님이 직접 농사지은 거라고 십시일반 나눠 준 귀하디 귀한 땅콩이었답니다.
"여태 땅콩을 저렇게 그냥 두고 있어? 준 사람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빨리 먹었어야지"
실로아한테 역정아닌 역정을 냈더니 실로아 왈
"땅콩 까기가 얼마나 힘든데 그래. 바빠서 못했다구."
"아니, 땅콩이 땅콩이지 그게 뭐가 힘들다구 참~"
공연히 핀잔을 주고 땅콩을 가지고 와서는 자리에 앉았습니다.
큰 애들은 시험 공부한다고 안보이는데 막내인 동희가 이번에도 어김없이 아빠 편이 되어줍니다.
처음엔 이까짓거 하면서 손으로 땅콩을 까기 시작했는데 가끔씩 껍질이 아주 단단한 놈들이 있었습니다.
어른인 제 손아귀로도 잘 부서지지 않길래 속으로 좀 긴장했지요. "괜히 큰소리 쳤나?"
잠시 생각을 하다가 언뜻 밤깎는 기계가 생각나서 물었더니 실로아가 가져 오더라구요.
위의 사진에 까맣게 보이는 저 녀석인데 생각보다도 훨씬 더 날이 예리하였습니다.
행여 손 베일까봐 조심 조심하면서 땅콩을 하나씩 까기 시작했죠.
첨엔 땅콩의 허리에 해당하는 중간 부위를 긴 방향으로 싹둑 눌러 보았는데
조금이라도 힘을 더 주면 속에 있는 땅콩까지 여지없이 두 동강이 나 버리더군요.
한참을 요리 조리 궁리하면서 까는데 드뎌 조금씩 요령이 붙기 시작하였습니다.
사진처럼 땅콩의 끝을 잡고 살짝 비튼다는 기분으로 돌렸더니 껍질이 길게 두 쪽이 났습니다!!!
캬~ 이 정도면 거의 예술입니다.
갑자기 기고 만장해져서 "아뉘, 이렇게 쉬운 걸 모가 어렵다고 그러나. 츠암나~" 큰소리도 쳐 보구요. ㅋㅋㅋ
제가 땅콩을 반으로 쪼개서 동희를 주면 동희가 껍질을 완전히 벗겨서 땅콩을 끄집어냈죠.
그야말로 2단계 자동화 시스템을 가동하여 땅콩을 전부 까게 되었답니다.
아빠인 제가 동희에게 긴급 제안을 했죠.
"동희야, 이 참에 우리 땅콩까는 부업하자. 우린 정말 환상의 콤비야, 그치?"
동희는 언제든지 긍정적입니다. "아빠 좋을대로 하세요. 저는 괜찮아요." ㅋ~~~
애 데리고 노는 유치찬란한 아빠입니다. 그러면 어떻습니까? 이 재미로 사는거 아입니꺼!
땅콩을 모두 모아보니 양푼으로 반 정도 되었습니다.
그런데 땅콩을 다 까고보니 정말 이 땅콩이 귀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수퍼나 할인마트에 가서 사다가 얼마든지 먹을 수 있는 땅콩에 불과한데
준석이네 아빠가 올해 처음 농사일을 하면서 땀 흘려 수확한 땅콩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리고 저와 동희가 한 알 한 알 정성드려 까고 보니까 그렇게 귀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생 것을 한 두알 먹어 보았더니 입 안에서 도는 땅콩 맛이 기가 막혔습니다.
저걸 한꺼번에 다 먹자니 도저히 아까워서 먹질 못할 것 같네요.
깐 채로 두었다가 조금씩 조금씩 먹을까 생각 중입니다.
제가 어릴 적에 아버지께서 한 해 땅콩 농사를 한 적이 있었죠.
그런데 점토질이 섞인 비옥한 밭에 심었더니 나중에 수확하느라 엄청 고생하였습니다.
흙 속에 있는 땅콩을 뿌리채 걷어 내야 하는데 딱딱한 토질에 들러붙어서 고생이 말이 아니었죠.
나중에 외삼촌이 모래가 섞인 밭에 심는 걸 보고서야 땅콩은 사질토가 좋다는 걸 알았죠.
암튼 직접 농사지은 걸 받아서 먹어보기는 정말 오래간만입니다.
땅콩의 가치가 누가 주느냐에 따라서 전혀 다르게 느껴지듯이
아이들을 키우면서 농사짓는 농부의 마음으로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늦은 저녁이었습니다.
첫댓글 저는 한 5일 전 우석이 아빠에게 땅콩 껍질을 까라고 특명을 내렸어요. 얌전히 다 까 놓았는데 볶는 것도 어렵더라구요. 다 태웠어요. 에구 아까워.....
그래도 먹을 만해요. 야밤에 이불에서 기어나와 한두알씩 까 먹고 있어요. 약간 싸사름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좋아요.
저희가 직접 지은거라구 누가?????저희도 돈 주고 산겁니다...이레님~~~~~~~~~~~~~~~글구 땅콩까는데 웬 연장....울 남편은 맨손으로 까던데...힘좀 기르세여~~~~~~~
프히히... 이번에도 씨니님한테크 먹는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실로아한테 물어보았더니 사 준 거라고 하네요. 그러면 어떻습니까 다른 분이 농사지으신 거라구요... 하여간 나누어 주신 마음만으로도 고맙슴다. 씨니님의 마지막 맨트 (힘 좀 기르세여) -> 음메 기 죽어
고소한 땅꽁.. 저희도 잘 까고 볶아서 먹고있슴다~
그냥 쪄드시지..... 왠 고생? 우리는 예전에 쪄서 다 먹었는데.... 당근 마이콜이 찜기에..^*^
우리도 받은 당일 바로 쪄서 맛나게 먹었는뎅 씨니, 담엔 잘먹는 사람만 줘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