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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5장
십자가에서 하나님 앞에 영원한 제사를 드리고
무덤에 묻히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찬송 160장)
2023-4-7, 금
맥락과 의미
15장은 금요일에 있었던 일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목요일 저녁에 성찬식을 행하셨습니다. 그 후 유대인의 국회인 산헤드린 공회에 잡혀갑니다. 한 밤과 새벽 어느 시간에 사형을 선고받으십니다. 그러나 유대인에게는 사형 집행권이 없습니다. 그래서 금요일 아침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끌고 가 사형시켜 달라고 요청합니다.
예수님은 빌라도의 로마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으십니다. 예루살렘 성 서쪽에 있는 골고다로 끌려 가십니다. 금요일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못박히십니다. 12시부터 온 세상이 캄캄하게 어두워졌습니다. 오후 3시에 임종하십니다.
1.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문하고 십자가 사형을 선고(1-15절)
2. 유대의 왕이라는 조롱을 받으며 고난을 겪으심(16-20절)
3. 못박히심(21-41절)
4. 예수님이 묻히심(43-47절)
5. 십자가의 가장 큰 고난: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버림당하심
1.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문하고 십자가 사형을 선고(1-15절)
로마 총독 빌라도가 예수님께 묻습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님은 대답하십니다. “네 말이 옳다.” 이어서 유대인들이 아무리 고소해도 예수님께서는 이 말 외에는 아무 말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이상하게 여겼습니다(5절). 예수님이 기적을 행할 때 사람들의 반응은 “기이히 여긴다”는 것이었습니다(마가복음 5:20). 우리 주님께서 침묵하며 자기를 변호하지 않고 결국 지신 십자가야말로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44절에도 빌라도는 예수님이 이미 죽으셨음을 알고 기이히 여겼다고 합니다. 십자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보고 믿읍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통해 우리가 받을 심판을 대신 받으셨습니다. 십가가를 통해서 우리를 죄와 마귀의 권세에서 구원하고자 하셨습니다. 죄가 없이 형벌을 받으시면서도 변명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예정하신 뜻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동시에 우리도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한다는 모범을 보여주십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맡겨주신 직분을 다하기 위해서 고난도 받고 오해도 받습니다. 심문을 당하듯 비난을 받기도 합니다.
꼭 필요한 경우 외에는 변명하지 맙시다. 그냥 십자가를 지고 갑시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도 은혜지만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 받는 것도 은혜입니다(빌립보서 1:29).
유월절 명절에는 유대인들에게 죄수 한 명을 사면하는 관례가 있었습니다. 빌라도에게는 원래 예수님을 석방하려는 뜻이 있었습니다. 대제사장들이 시기심 때문에 예수님을 끌고 온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제사장들은 군중을 선동하여 바라바라는 살인범을 대신 석방하도록 요구했습니다. 군중은 소리쳤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라!”
빌라도는 군중을 만족시키려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어주었습니다(15절). 자신의 총독 지위가 흔들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정치, 종교 지도자들도 이렇게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예수님을 시기하고 죽음으로 몰고 있습니다.
백성은 지도자들의 조작에 넘어가 악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섭리는 사람들의 시기심과 죄악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시기심을 주의합시다. 사람들의 인정을 얻기 위해 악한 일을 하지 맙시다. 군중심리에 휩쓸려 악한 일에 참여하지 맙시다. 사람들과 친하고 인정받고 영광을 얻는 것이 우리 인생의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그분께 영광 돌리는 것이 인생의 목적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순종합시다.
2. 유대의 왕이라는 조롱을 받으며 고난을 겪으심(16-20절)
16절, 군인들은 예수님을 브라이도리온으로 끌고 갔습니다. 로마 군인들이 주둔하는 병영의 뜰입니다. 온 군대를 모아 조롱했습니다. 자색(보라색) 옷은 왕이 입는 옷입니다. 면류관도 왕이 쓰는 관입니다. 갈대는 왕의 홀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예수님의 머리를 때렸습니다.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 지어다.” 이 말도 왕에게 하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왕이요 그리스도라고 자신을 밝히신 것을 조롱하고 있습니다.
군인들은 침을 뱉으며 모욕했습니다(17절, 14:64에 성전 호위병들도 침 뱉음). 그리스도는 조롱당하는 왕이십니다. 20절, 그들은 예수님을 조롱한 후 자색 옷을 벗기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갔습니다.
3. 못박히심(21-41절)
구레네 시몬을 잡아서 예수님 대신 십자가를 지고 가게 했습니다(21절). 예수님이 지쳤기 때문일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조롱하기 위해서인 듯합니다. “너는 유대의 왕이니까 힘든 일을 하지 않아야 하겠지?” 조롱하는 의미로, 다른 사람이 십자가를 지고 가게 합니다.
하나님은 섭리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죄를 위한 속죄제물로 삼아 예루살렘 성 밖으로 가게 하셨습니다. 구약에서 속죄제물의 기름은 성막/성전 제단에 바치지만, 나머지 모든 고기는 백성이 사는 곳 바깥에서 불태우게 하셨습니다.
22절 예수를 “끌고”는 구약 제사에서 제물을 가져오는 것에 쓴 말입니다. 골고다라는 “곳”(장소)은 백성이 사는 곳 바깥에서 구약 제물을 불태우는 “장소”와 같은 말입니다(“정결한 곳-장소” 레위기 4:11, 민수기 19:9). 이방인 군대와 이방인이 속죄제물이신 예수님을 하나님의 십자가 제단으로 끌고 갑니다. 제물을 불태울 십자가 나무를 다른 사람이 지고 가게 합니다.
로마 군인들은 유대인의 왕이라는 팻말을 십자가 위에 붙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왕 되심을 조롱합니다(26절). 29절, 지나가는 사람들이 예수를 모욕했습니다. 대제사장도,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자들도 예수님을 욕합니다.
30,32절, “네가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라면,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예수님에 대한 가장 큰 유혹이자 모욕이었습니다.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할 때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려오라”고 유혹한 그 유혹입니다(마태복음 4:6). 유대인들은 마귀의 악한 말로 유혹하고 조롱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전에 말씀하셨습니다. “성전을 헐어라.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세울 것이다”(요한복음 2:19-22).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부활할 것을 예언하셨습니다(마가복음 8:31, 9:12,31, 10:33, 12:7). 구원자는 십자가에서 죽어서는 안 된다고 사람들은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정치 경제적인 힘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할 왕을 기다렸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구원의 능력을 그들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으로서 능력이 있으십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약함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서 능력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정신적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참으로 온유하신 예수님입니다. 그 약해지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부활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고린도전서 1:21-25).
예수님은 제삼시(요즘 시간으로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33절, 육시(요즘 시간으로12시)부터 구시(오후 3시)까지 온 땅이 어두워졌습니다. 온 세상에 가득한 죄 때문에 어두움이 온 땅에 드리웠습니다. 그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 때문에 온 땅이 어두워졌습니다.
34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시편 22:1). 예수님의 이 부르짖음은 구약 성도가 악한 자들에게 고난을 당할 때 부르짖던 시편에 나오는 탄식 기도의 한 부분입니다. 예수님은 한 사람의 죄가 아니라, 선택받은 모든 성도의 악 때문에 하나님께 심판을 받으십니다. 고통을 당하십니다. 그리고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탄식하며 호소하십니다. 우리 모두를 대신하여 저주를 받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를 대신하여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하십니다. 그리고 운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임종 순간을 보던 로마 군인 백부장이 고백합니다.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39절). 앞으로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여 구원받게 될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40절, 제자들은 도망갔지만 갈릴리에서 온 여자들이 고난을 목격했습니다. 약한 자들이 예수를 따랐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가진 것이 적고 약한 사람들을 사용하여 교회를 세우십니다.
4. 예수님이 묻히심(43-47절)
43절, 산헤드린 공회원(국회의원) 중의 한 사람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님의 장례를 치렀습니다. “존귀한”은 가문이 좋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던 사람”이었습니다.
공회원에 속한 대제사장들은 하나님의 참된 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제물로 드리고 섬겨야 할 임무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그리스도를 시기해서 죽이는 악한 일을 했습니다.
대제사장이 져버린 일을 제사장 아닌 요셉이 이룹니다. 그리스도에게 예의를 갖추어 무덤에 장사했습니다. 갈릴리에서 온 여인들은 그 무덤을 보고 떠났습니다.
5. 십자가의 가장 큰 고난: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버림당하심
대제사장과 장로들은 구약 성경이 예언한 메시아(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이 기다리던 그리스도를 그들 자신이 죽였습니다. “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증거를 받습니다. 그들은 조롱하며 예수님을 “유대의 왕, 그리스도”(2,26,32절)라고 불렀습니다. 그분은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약한” 왕이십니다.
그러나 그분의 십자가는 오히려 그가 하나님의 아들(34,39절)임을 선언합니다. 영원히 사는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어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십자가에 한 번 죽으셨지만, 그 죽으심의 효과는 영원하고 무한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통에서 육체적 고통보다 더 큰 것은 영적인 고통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장면을 이야기해주는 이 성경본문은 그분의 피나 찢긴 살 등 육체적인 것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는 육체적 고통도 컸지만 정신적, 영적 고통이 말할 수 없이 더 컸습니다.
죄인으로 취급받는 것이 고통의 핵심입니다. 왕이신 그리스도이지만, 사람들로부터 말할 수 없는 수모와 정신적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으신 것이 가장 큰 고통입니다. 죄인인 우리의 구원을 위해 죄인으로서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께 죽으셨을 때, 예루살렘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었습니다. 성전 뜰에서 성전 안으로 들어가는 문에 휘장이 드리워 있습니다(출애굽기 26:36). 헤롯 성전의 이 휘장은 25m나 됩니다.
또 다른 휘장은 성전 안에서 지성소로 들어가는 문 역할을 하는 휘장입니다. 1년에 한 번 대제사장은 안쪽의 지성소 입구 휘장에 피를 뿌리며 지성소 안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속죄소에 피를 뿌립니다.
어느 휘장인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의미는 분명합니다. 이 휘장이 찢어짐을 통해서 이제, 아버지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제사를 받으셨음을 보여줍니다. 그리스도는 속죄소도 되고, 희생 제물의 피도 되고, 또 대제사장도 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아버지로부터 버림당하며 “속죄제물”이 되셨습니다. 그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가 전에 지은 죄를 없는 것으로 덮어주셨습니다(로마서 3:25-26). 우리를 의롭다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딸로서 입양해주셨습니다. 그분의 나라에 들어오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당신의 몸으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막힌 휘장을 찢으셨습니다. 사람이 되신 아들 하나님은 예정된 성도의 영혼을 안고, 십자가를 통해서 하늘의 지성소 안으로 아버지 하나님께 나가십니다 (히브리서 10:20-21).
이제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며 하늘의 지성소로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갑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었습니다. 그 나라에 들어왔습니다.
믿고 복종할 일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하나님 나라로 들어오게 하십니다. 정치나 경제적인 힘으로 우리를 구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당신의 몸을 제물로 드리는 제사장이 되심으로써, 우리를 죄와 마귀의 권세에서 구원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고통의 절정은 “나의 아버지”로부터 저주받고 버림받은 것이었습니다. 죽임당하신 그리스도,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찬양합시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믿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그리스도의 나라에 들어온 우리도 완전한 그 나라에 들어갈 때까지 이 세상에서 각자 십자가를 지고 갑니다. 의롭게 살기 위해 당해야 할 고난이 있습니다. 우리도 “약한 자”라고 오해를 받고 조롱을 당합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하신 예수님의 부르짖음 안에서, 우리가 죄용서 받은 것을 감사합시다. 억울함과 고난을 당할 때도 그리스도의 이 부르짖음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읍시다. 삼위일체 하나님으로부터만 참된 위로가 우리에게 옵니다.
1. 오늘 말씀을 통해 계시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 찬양합시다. 2. 하나님께서는 내게 무엇에 순종하라 하십니까? (회개, 감사, 사랑, 섬김 등)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 왜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버림을 받아야 했습니까? 나에게 주신 직분을 다하기 위해 내가 십자가의 고난으로 기쁘게 받아야 할 수고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놀랍게 여김(5절), 이상히 여김(44절)
빌라도는 금요일 아침 예수님을 처음 만나 심문할 때 “놀랍게 여기는”(5절) 것에서 시작하여 그의 죽으심을 보고받을 때, “이상히 여김”(44절)으로 끝납니다. “놀랍게 여긴다”, “이상이 여긴다”는 둘 다 같은 말입니다(타우마조, 5절). 마가복음에 4번 나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기적을 행할 때 사람들이 하는 반응은 “기이히 여기는” 것이었습니다(마가복음 5:20). 침묵하며 자기를 변호하지 않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전에 예수님은 자신의 고향 사람들이 예수님의 지혜와 기적을 행하는 능력을 보고서도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다”(타우마조, 6:6)고 했습니다. 십자가의 놀라운 기적을 보고도 믿지 않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가 십자가 복음을 믿을 수 있는 것은 성령님의 능력으로만 가능한 기적입니다. 이 기적적인 믿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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