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대왕비문은 고구리사 연구에서는 매우 중요한 자료다. 고구리인이 쓴 고구리 역사기록으로서 유일하기 때문이며, 그 한문이 중국식한문이 아니라 고구리식 한자와 한문이므로 해석이 어려운데다가 일본인에 의해 비문이 훼손되고, 석회칠을 하여 탁본하는 등 여러 가지의 탁본이 난무하고 있다보니 정확한 해석이 어려웠다.
그런데 김덕중 선생께서 <한국문원>에 실린 비문으로 시작하여, <한국역대소사>를 비롯하여 한암당 이유립의 보완 비문 등 많은 탁본과 비문연구를 접하면서, 타고났고 어릴 때부터 몸에 익은 한문에 대한 느낌을 통해 결자들의 발견은 물론 행간에 감추어져 있는 내용까지를 고구리 사람의 입장에서 밝혀냄으로써 고구리사 연구에 큰 진전을 가져올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단지, 아직 그 연구가 책으로 나오지 못한 점이 안타까운데, 어떤 출판사에서도 과감히 그런 연구에 투자를 하지 않기 때문이지만 그것 또한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현재는 전체 원고가 A4로 700쪽 분량이라고 하니 이를 줄여서 출판하더라도 상당한 쪽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일거에 출판해줄 독지가를 찾고 있다.
한편, 덕중 선생께서는 어떤 단체든지 강의를 요청하면 응하겠다고 한다. 정말 새롭게 들을 수 있는 내용들도 많을 것이니 금요일에 그 소감을 들으면서 그분의 연구에 박수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김덕중 선생께서 요약한 소감을 여기에 올린다. 금요일 시민강좌에서 밝힐 예정이다.
우리나라는 고대시대부터 국정을 위한
민족유훈(民族遺訓)이 있었다.
지금, 세계 현상은 경제적 딜레마에 빠져 있어서 나라마다 여기에서 헤치고 나오려는 대안을 열심히 찾고 있으나 해법은 누가 쥐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이럴 때일수록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나라는 스스로 길을 찾아 국민을 안심시키지만 그 대안이 없는 나라들은 자신의 문제가 나라밖에 있다하여 전쟁을 유발하고 국민의 마음에 적개심을 심화하여 모든 문제를 바깥에 두게 하니 이것은 치졸한 하책을 쓰는 위정자들의 속이수라 사료된다. 한마디로 정의(正義)가 없는 현실주의 앞에서 도덕성도, 양심도 실종된 불안한 사태를 우리는 어떻게 그 해법을 찾아 극복하겠는가? 당장 현실이 우리에게 어렵게 펼쳐진는 입장에서 볼 대 여러 가지 대안이 될만한 일을 찾는 해법의 일환으로서 민족정기(民族正氣)를 바로세우는 방법도 하나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그 동안 잘 모르고 있었던 민족역사에서 해법이 될 만한 소재로서 ‘광개토대왕의 비석문’에 무엇이 있고 무엇을 주장했는지를 살펴보면 놀랄만한 사례들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을 국정운영이나 사업하는 최고의 지도자나 학자ㆍ학생들은 눈여겨 볼 만한 것이 있을 것으로 사료되니 강연장에서 해법을 풀어보려 한다.
1. 우리나라는 중국과 일본의 틈에 끼어있는 나라가 아니라 대륙의 기상을 가지고 왼쪽 날개는 일본, 오른쪽 날개는 중국을 달고 날아가는 웅대한 기상을 가지고 태평양, 인도양, 대서양까지 날아가는 기상임을 알리고 싶다.
2. 고대 조서은 자연주의 국가였다. 그러나 기자조선 시대에 중국에는 공자가 출현하여 문화주의를 주창, 책사들이 출세하는 시대가 열리니 이웃 국가들을 문화주의에 빠져들게 하므로 자연주의 국가들은 하나씩 무너지고 병합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현실에서는 다시금 자연주의를 필요로 하는 경향이 거론되므로 자연주의에 대한 해법이 새롭게 대안으로 요청된다.
지금까지 세계는 많은 사상과 이념이 실험되었고 종교정치, 경제주의 등으로 문화적 우선주의가 그 시대를 주도했으나 현실은 한계에 이르렀다. 따라서 실험되지 않았던 자연주의를 재해석함으로써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한다는 대안을 우리 민족 고유사상이 간직하고 있었으니 이것을 국론적으로 공론화하고, 자연주의에 대한 해법을 새롭게 하여 한국에서 제창되어야 함을 주창하고자 한다.
3. 광개토대왕은 분명히 영웅이며 위대한 왕이다. 결코 우리 민족 여가에서 지워질 이물이 아닏. 광개토대왕은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는 반대로 민족화평을 위해 토벌을 했고, 국가 기상을 바로 세운 인물이었는데, 일본측에서 먼저 자료를 입수하여 비문해석을 조작하여 우리 민족을 분열시킨 원인의 인물로 묘사하였다. 비문을 무려 스물 네곳이나 조작 해석하여 우리의 삼국시대를 전쟁터로 만들었고, 우리 민족끼리 늘 반목하고 불신하는 교육을 120년 간이나 지속하였고, 이것을 우리 역사가들이 답습하여 전하고 가르쳐으니 민족 분열로 고초를 겪고 있는 그 피해가 얼마인가? 강연장에서 낱낱이 해명하고 바로 잡으려 한다.
4. 우리나라 삼국시대의 주인이 되는 국가는 신라였다. 광개토대왕은 신라를 존중했고, 신라를 늘 위깅서 구하였다. 광개토대왕의 토벌군을 관병(官兵)이라 한 것은 신라였다. 그러므로 왜와 백잔(백제) 토벌을 신라가 요청함으로써 광개토대왕은 토벌을 했고 삼국은 안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로써 삼국은 어느 나라도 고구려의 속국이 아니었고 각자 멸망할 때까지 독립국가를 운영하였고, 형제국가의 의(義)를 지키며 지혜롭게 유지하였다.
5. 가야는 옛 신라였다. 일본이 옛 가야에 소위 임나일본부를 두었다는 것은 비문을 잘 해석하면 터무니없는 주장임을 알게 되거니와 가야가 옛 신라였음이 비문에 확실하게 명기되어 있으니 강연에서 풀어 보일 것이다.
6. 우리나라의 이름이 천제국(天際國)이라는 별칭이 있음을 알리고 싶다.
7. 광개토대왕의 정치는
첫째, 여론을 존중하였고,
둘째, 어려움에 처했을 때는 ‘흡사 하늘이 다스리듯 하였다’ 하므로 큰 정치는 도덕성을 바탕으로 한다는 원칙과
셋째, 민족화평(民族和平)을 위해 민족을 형제와 부모처럼 보라는 것은 천제국시대부터 국사를 운영하는 책임자들이 지키라는 국시(國是)였다.
대략 위와 같은 내용은 광개토대왕의 비문을 해석하는 바탕에서 발견된 내용이어서 시대적으로 크게 어긋나는 주장은 없는 것으로 사료되어 국정을 운영하는 지도자에게 강연으로 알리고저 한다.
한문학자 김덕중
o 광개토대왕 비문 완역 완료
o 학회이사ㆍ미술협회 회원
o 한문을 싫어하는 한문학자
서울 용산구 갈월동 5-1)우 140-800)
☎ 010-9653-1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