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중앙대 문창과 실기 합격한 19기 학생입니다. 합격 후기를 보면서 부럽고 동시에 불안해했던 기억이 나는데, 지금은 제가 이렇게 합격 후기를 쓰고 있네요. 우선 저는 학원을 좀 늦게 다니기 시작한 편이었어요. 여름방학에 다니기 시작했으니까 4개월 정도 다녔던 것 같네요. 고3 올라오면서도 제가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확신이 없었고, 막연히 예술 분야로 가고 싶다는 것 말고는 구체적인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다 어느새 여름방학이 되었고 저는 시간에 쫓겨 섣불리 문창과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시를 쓰거나 이야기를 쓰는 것을 좋아했고, 어떤 분야로 나아가든 글을 잘 쓰는 능력은 제게 반드시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저는 세종에 집이 있었기 때문에 굳이 서울에서 학원을 구하는 게 맞나 싶었고, 체력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불필요한 소모가 너무 많을 것 같았습니다. 반신반의하며 들은 입시 박람회가 아니었다면 전 아마 이 학원을 다니는 것에 끝까지 의심을 품었을 것 같아요. 정말 감사하게도 입시 박람회에서 원장쌤은 입시생인 저에게 어쩌면 가장 필요한 것을 주셨습니다. 합격할 수 있다는 확신. 그렇게 저는 오직 원장쌤만을 믿고 학원에 등록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학원에 간 날, 모든 것이 어색하고 낯설었습니다. 여기저기 눈치를 살피며 능숙하고 익숙해 보이는 학생들을 따라 수업을 들었습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이 학원에 다닌 지 1년은 넘은 것 같았어요. 저는 무척이나 위축되었습니다. 제가 늦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걸 실제로 겪게 되는 건 또 다른 일이었습니다. 글과 어느 정도 친하다고 생각했던 저의 오만함은 완전히 사라지고 기본도 갖춰지지 않은 저의 볼품없는 실력이 그제야 똑바로 보였던 것 같아요. 그렇게 잔뜩 우울해진 채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고생했다며 반겨주시는 엄마, 아빠의 모습을 보니 저에게 들어가는 교통비와 학원비가 떠올라 우울함은 더욱더 심해졌어요. 부담스럽고 다 그만두고 싶었습니다. 이건 학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4개월 내내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게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학원에서 평일에는 입시 글을 배우고, 주말에는 소설을 배웠어요. 회차가 쌓여갈수록 선생님이 공통으로 강조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인지하게 되었지만, 인지하는 것과 할 줄 아는 것은 역시 하늘과 땅 차이였습니다. 차라리 몰라서 그랬던 거라면 다행인데 중요한 것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그 포인트를 지적받으니 그렇게 답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집에 돌아오면 새벽이라 잠도 부족하게 자고 학교에서도 과제를 하며 이번에야말로 괜찮을 글을 썼다는 기대감에 2시간가량 버스를 타고 학원에 가면 저의 기대는 와장창 깨지고, 다시 2시간 동안 버스를 탔습니다. 돌아가는 2시간 동안에는 오늘 지적받았던 부분을 떠올리며 어떻게 고쳐야 할지 고민하다 자괴감에 빠지기를 반복했습니다. 결국 저는 동그라미를 단 한번도 받지 못했습니다. 겨우 세모를 받거나 반세모를 받은 것들도 이런 저런 이유로 준비작에는 부적합하다는 말을 들었어요. 지금 생각해 봐도 참 절망적입니다.
동국대와 백석예대 실기를 끝내고, 중앙대 실기만을 남겨둔 때였습니다. 동국대는 이렇게까지 망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처참하게 망해버렸고, 백석예대는 너무나 부족한 글이었습니다. 내신이 나쁘지 않아 여기저기 학종으로도 넣어둔 곳이 있었지만, 학종은 안전권도 떨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들어서 이제 저에게는 중앙대밖에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었어요. 중앙대는 문학적 글쓰기와 비평적 글쓰기를 준비해야 했기에 수업은 다른 형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본격적으로 논술 수업이 시작되었어요. 저는 제가 논술보다는 그래도 산문을 잘 쓸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걱정이 많이 앞섰습니다. 산문도 칭찬받지 못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논술을 잘하겠어요. 그러나 제 예상과는 달리 초고로 써서 낸 글들이 줄줄이 세모와 동그라미가 박힌 채 제게 돌아왔습니다. 선생님이 좋은 문장에는 G라고 표시를 해 주시는데, G가 적히면 마치 훈장을 단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산문 수업에서는 한번은 받을까 말까 했던 그 표시를 논술 수업에서는 심심찮게 볼 수 있었습니다. 학원에 오는 것이 너무 힘들어져 갈 때쯤 논술 수업은 다시금 제게 활력을 불어넣어 준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저는 칭찬을 받아야 의욕이 생기고 재미를 느끼고 실력이 느는 타입이었기 때문에 드디어 받아본 칭찬들을 꼭 붙들고 논술 마지막 수업 때까지 최선을 다해 과제와 수업에 임했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밤바람을 맞으며 버스 시간을 맞추기 위해 거리를 뛰어갈 때 몸과 정신은 너무나 피로하고 숨 쉬기도 벅찼지만 어쩐지 마음만은 가벼웠습니다. 괜히 웃음이 나고, 바람을 따라 점차 몸도 가벼워지는 기분이었습니다. 그 기억을 잊을 수 없어요. 고도를 다니면서 4번 정도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런 장면은 애니메이션에서나 봤는데 정말 값진 경험이에요.
그렇게 중앙대 실기를 보러 갔습니다. 문학적 글쓰기는 최대한 빠르게 쓰고 비평적 글쓰기를 쓰는데 사실 거의 망쳤습니다. 그동안의 기출들과는 너무나 다른, 심지어는 문창과와는 전혀 관련도 없어 보이는 문제가 출제되어서 엄청나게 당황했어요. 논술이라 하면 제 의견을 저만의 근거를 들어 서술해야 하는데 상식도 없는 분야가 나와버려서 제가 감히 근거를 만들어낼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보통은 근거를 두 개 정도 적는데 그날은 하나를 겨우 짜내서 썼습니다. 그마저도 문제를 읽고 대충 유추해서 쓴 거라 망했다 싶었어요. 문제를 내신 분이 미울 뿐이었습니다. 그래도 시간이 꽤 남길래 비문이라도 쓰지 않으려고 몇 번이고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모든 실기가 끝이 났어요. 이제 중요한 것은 중앙대 최저를 위한 수능 공부뿐이었습니다. 아예 공부를 놓고 있었기 때문에 마지막 모고에서 2합8이 나왔었어요. 2합6을 할 수 있을지 막막했지만 어떻게든 일단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처음으로 수능 국어 특강도 열어주셔서 고도에서 급히 세세한 부분들을 다잡을 수 있었어요. 그 결과 국어3, 생윤1로 2합4를 만들어냈습니다.
도저히 정시까지 할 형편은 안 될 것 같아서 중앙대를 끝으로 학원은 더 이상 다니지 않았어요. 다행히도 백석예대가 붙었기 때문에 다 떨어지면 그냥 백석예대를 갈 생각이었습니다. 위치도 좋고 어느 정도 네임도 있으니까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4년제가 아니라는 점이 아쉬웠지만.. 그 사이에도 입결이 차례차례 떴지만 더 붙은 대학은 없었습니다. 완전히 마음을 굳혔을 때쯤 12월 13일 수시 입결 마지막 날에 중앙대 최초합을 했습니다. 산문, 논술, 최저까지 챙길 것이 가장 많았던 대학이라 제가 마지막까지도 원서를 넣을지 고민했던 곳인데 이렇게 당당히 합격을 받아서 너무나 다행스럽고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합격 결과를 보고 복원작을 다시 들여다보니 문학적 글쓰기에서 중요한 문장에 단어 하나를 아예 다르게 적어서 보낸 걸 발견했어요. 제 합격작을 후배들에게 보여주실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게 자꾸 신경이 쓰였네요. 차라리 몰랐다면 마음은 편할 텐데... 어찌 됐든 고도가 아니었다면 저는 대학을 못 갔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붙은 곳이 실기를 본 대학밖에 없었거든요. 그동안 너무너무 감사했습니다. 고도 선생님들께서는 저에게 가장 중요한 시기를 꽉 채워주신 가장 중요한 분들이십니다. 고도에서 배웠던 것들은 절대 입시를 위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 꼭 필요한 기초였다고 생각해요. 학원에 다니면서, 만일 제가 대학에 떨어진다 해도 학원에 다녔던 시간과 비용들이 아깝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었요. 분명 인생에 꼭 필요한 것들이었고, 대학이 아니라 다른 경로를 통해서라도 제가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었으니까요. 사실 뿌듯함이나 후련함보다는 아쉬움이 많이 남지만 어찌 되었든 이제 진짜 끝이자 시작이니까 앞으로는 더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다시 한번 그동안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