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의 비극 4.3●
2023년 9월2일(토)오후 3시 강릉말글터서점에서 현기영 작가의 북토크가 있었다.
최근 출간한 장편소설 <제주도우다 1~3권 >을 주제로 작가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감정이 복받칠 때는 멈추고 물을 마셨다. 특히 1979년 <순이삼촌> 출간후 보안사에 끌려가 죽음 직전까지 한 달간 고문 당한 이야기를 할 때는 목이 메이는 듯 했다. 고문을 지시한 정권의 폭력은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고 가해자의 죄의식을 무감각하게 했다.
올해 83살인 작가는 자신의 나이에 소설을 썼다는 것이 흐뭇하다고 했다. 7살 어린 나이에 경험한 4.3을 겪으며 느꼈던 개인적 트라우마와
무고한 희생자들에 대한 부채의식에서 어느정도 벗어날 수 있어 홀가분하다고 했다
현기영 작가를 만나기 전 책을 읽고 가는 것이 예의라는 생각에 일주일간 꼬박 시간을 쏟아 책 3권을 읽었다.
지금은 우리나라 사람들 뿐만 아니라 외국인도 방문하고 싶어하는 최고의 관광지 제주도의 또 다른 눈물을 볼 수 있었다.
조선시대엔 유배지로,일제강점기에는 태평양전쟁기지로 수탈당하던 땅,해방 후에는 빨갱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3만여 명을 참혹하게 학살한 곳이다.
학교 다닐 때 역사 시간에 4.3이
무엇인지 배우지 못 했다.1948년 제주에서 일어난 일은 오래도록 금기였다.
제주 4.3은 1947년 3월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3일 발생한 소요사태를 시작으로 1954년 9월 24일까지 있었던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 당한 사건이다.
3.1절 기념 집회에서 남한 만의 단독선거반대,친일파 척결,곡식 공출을 반대하는 주민들의 시위가 있었다. 미군정 시절 미국은 일제의 압제와 수탈에 진액이 빠진 양민에게 양과자를 팔고 제주도민에게서 빼앗은 곡식을 불태웠다.6년간 연속 가뭄과 흉작으로 굶주림에 시달렸던 이들은 불에 타는 곡식을 바라보며 분노와 허탈감이 얼마나 컸을까.
현기영 작가는 역사의 현장에서 누군가 한 사람의 죽음이 기폭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4.19는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마산 앞바다에 떠올랐을 때,세계 제 1차 대전은 오스트리아 황태자 페르디난트가 암살 당하면서다.대만의 2.8사건도 탈세를 빌미로 담배노점 여인에게 경찰이 심한 구타를 하자 시위가 일어났고
소요 사태를 구경하던 학생이 총에 맞아 사망하면서 대만 원주민의 불만에 불이 붙었다.
제주 4.3역시 마찬 가지였다.3.1절
집회가 끝나갈때쯤 한 경찰이 지나가던 말에 어린아이가 치이는 사고가 일어났다.
무시한 채 가 버리는 경찰에게 항의하자 경찰의 발포로 6명의 주민이 죽었다. 항의 하는 학생은 등교를 거부하고 일부 공무원과 경찰관도
출근하지 않았다. 제주의 직장인 95%가 참여한 합동 파업이었다.
미군정은 제주도를 좌익의 본거지로 보았다.육지에서 온 서북청년단은 학살의 하수인이 되었다.
결국 1948년 4월 3일 새벽 남로당원이 산에서 내려와 경찰과 우익단체를 공격하며 무장 봉기가 시작 되었다.결과는 참혹했다. 선량한 주민들이 무장한 폭도를 도왔다며 무참하게 죽이고 빨갱이라며 죽였다.
숱한 반대와 탄압 가운데 치러진
남한만의 단독 선거에서 제주 선거구 2곳 만이 투표율 미달이었다.
이승만 정부와 미군정은 불순한 도전으로 받아들여 섬을 초토화 시키는 작전을 시작했다. 해안선에서 5km 이상 지역에 출입하는 사람은 폭도로 규정해 무조건 사살한다는 포고문을 내렸다.
요즘처럼 전화도 없던 시절 소식을 듣지 못 했던 사람들이 많이 희생 당했다. 이념이 무엇인지 사상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어린 아이나 노인들까지 처참하게 죽였다.
그림책 <무명천 할머니>의 주인공 진아영 씨는 34살 때 토벌대의 총격으로 아래 턱을 잃었다. 정상적으로 말을 하거나 음식을 먹지 못한 채 소화불량과 관절염으로 후유 장애를 앓았다. 2004년 90세로 돌아 가실 때까지 부상당한 턱을 하얀 천으로 가리고 살아야 했다.
4.3의 아픔만큼 고통스럽게 살았을그녀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말도 못하고, 까막눈이라 글자도 몰랐던 그녀는 세상과 소통하지 못해 얼마나 외로웠을까.
300여개 부락 중 131개 마을이 불탔다. 죽임을 당한 마을주민은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지만 죽어서 공산주의자로 몰렸다.
읽는 동안 가장 가슴에 와 닿아 아팠던 구절이 있다.
3권 p128에 나오는 구절이다.
"외세에 대한 싸움이 이제는 동족 간의 싸움으로까지 번져갔다.좌우양쪽이 번갈아 서로를 죽이고,그 가족을 죽이고,그 집에 불을 질렀다.복수심에 눈 멀어 물불 가리지 않았다.친구가 친구를 잡아 먹고,친척이 친척을 잡아 먹었다.천년의 공동체,무엇으로도 끊어낼 수 없을 것 같은
끈끈한 우애와 혈연 공동체,씨줄 날줄로 정교하게 엮인 그 돈독한 공동체가 무참히 찢겨 나가고 있었다."
제주의 비극과 인간의 삶을 성찰한 소설 <제주도우다> 는 현기영 작가의 섬세하게 반짝이는 매끄러운 문장 속에서 거대한 진실을 마주보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