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비아와 무아에 대한 아함경의 용례
아함경의 한문 번역본을 보면, 같은 문맥에서도 ‘비아’와 ‘무아’를 혼용하여 사용하고 있다.
“‘무상하다’고 관찰한 것과 같이, ‘그것들은 괴로움이요, 공하며, 나가 아니다[비아].’라고 관찰하는 것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잡아함경_1. 무상경(無常經))
“무상하다고 말씀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괴로움이고, 공하며, 나가 없는 것[무아]이라고 말씀하셨다.”(잡아함경_208. 무상경(無常經))
“무상한 것이요, 괴로움이며, 공이요, 무아인 것이다.” (잡아하경_575. 병상경(病相經))
“무상한 것이고 괴로운 것이며 공한 것이고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아니다[비아].” (잡아함경_265. 포말경(泡沫經))
“‘괴로운 것[苦]이요 공한 것이며 나라고 할 것도 없는 것[무아]이다’라고 사유해야 합니다.” (증일아함경_34. 등견품(等見品)[1])
한편 다음과 같은 문맥에서는 ‘비아’를 사용한 용례는 보이지 않는다.
“모든 법에는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잡아함경_262. 천타경(闡陀經))
“일체의 법은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증일아함경_31. 증상품(增上品)[4])
2. ‘아니다’와 ‘없다’의 차이
그런데 ‘아니다’와 ‘없다’는 그 뜻의 차이가 뚜렷하다. ‘아니다’는 ‘이다’의 반의어이고, ‘없다’는 ‘있다’의 반의어인데, 그 만큼의 차이가 있다.
“눈은 내가 아니다. (내지) 빛깔은 내가 아니다.”라는 말은, 그것이 나인지 나 아닌지를 확인하여 가려내는 과정과 관련하여 쓰이는 말이다. 곧 ‘무엇이 나가 아니다’는 말은 ‘나의 정체성’에 관한 진술이다.
“눈에는 내가 없다. (내지) 빛깔에는 내가 없다.”라는 말은, 거기에 나의 존재가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는 과정과 관련하여 쓰이는 말이다. 곧 ‘무엇에는 나가 없다’는 말은 ‘나의 존재’에 관한 진술이다.
‘이다, 아니다’와 ‘있다, 없다’를 사람 찾는 일에 비유하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장소에서 어떤 사람을 찾을 때, ‘이다, 아니다’는 거기 있는 사람들이 내가 찾는 사람과 일치하는지를 일일이 확인하여 가려내는 일과 같다. ‘있다, 없다’는 동일한 상황에서 ‘이다, 아니다’라는 과정을 통해 내가 찾는 사람이 그 사람이라는 것을 최종적으로 확인하는 것과 같다.
간추리면 ‘무엇은 내가 아니다’는 나의 정체성을 찾아나가는 과정과 관련된 것이고, ‘무엇에는 내가 없다’는 그러한 과정을 거쳐 나의 존재를 총체적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이렇게 ‘비아’와 ‘무아’의 뜻이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문 번역본에서 이것들을 혼용하여 사용한 것은 아마도 이 말에 대응하는 원전의 용어가 중의적인 데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필자는 산스크리트어나 팔리어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는 제미나이의 글로 대신하기로 한다. 이어지는 3-5는 제미나이가 쓴 글이다.]
3. ‘비아’와 ‘무아’, ‘아낫타(anattā)’
이렇게 ‘비아’와 ‘무아’의 뜻에 뚜렷한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함경》의 한문 번역본에서 이들이 혼용된 것은, 무엇보다 원전의 용어인 팔리어 ‘아낫타(anattā)’가 지닌 중의적 성격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아낫타’는 문법적으로 ‘자아가 아닌 것(Not-self)’이라는 인식론적 부정과 ‘자아가 없는 상태(Self-less)’라는 존재론적 부정을 동시에 포괄하는 단어입니다.
한역가들은 수행자가 대상을 관찰하며 집착을 내려놓는 실천적 과정에서는 ‘비아(非我)’를, 그 과정을 통해 도달한 법의 본질을 선포할 때는 ‘무아(無我)’를 선택하여 번역했습니다.
원전의 한 단어가 지닌 풍부한 함의가 한문이라는 그릇에 담기며, 수행의 단계에 따라 ‘아니다’와 ‘없다’라는 두 갈래의 길로 분화된 셈입니다.
4. 수행의 과정과 ‘아니다, 없다’
이러한 용어의 분화는 앞서 살펴본 ‘사람 찾기’의 비유를 통해 더욱 명확한 철학적 생명력을 얻습니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내가 찾는 사람을 가려내듯, 수행자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하나씩 대조하며 “이것은 내가 아니다”라고 선언합니다. 이것은 정체성을 확인해 나가는 인식론적 부정의 과정이며, 대상에 투사된 자아라는 환상을 거두어들이는 ‘비아’의 작업입니다. 이 단계에서 수행자는 ‘나’와 ‘내가 아닌 것’을 엄격히 분리하며 집착의 고리를 끊어냅니다.
그러나 이 ‘아님’의 과정을 끝까지 밀고 나가면 마침내 존재론적 전환이 일어납니다. 모든 구성 요소를 일일이 대조해 보았으나 그 어디에서도 고정불변한 ‘나’를 발견할 수 없을 때, 수행자는 비로소 “거기에는 나라는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최종적인 확증에 도달합니다. 이것이 바로 존재의 유무를 확정 짓는 ‘무아’의 단계입니다. 즉, ‘비아’가 개별적인 대상을 부정하며 나아가는 역동적인 수행의 방법론이라면, ‘무아’는 그 모든 부정의 끝에서 마주하게 되는 총체적인 진리의 모습인 것입니다.
5. ‘아님’에서 ‘없음’으로
결국 《아함경》에서 두 용어가 혼용되는 현상은 수행의 과정과 결과가 분리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모든 법에는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는 보편적 원리인 ‘제법무아’의 자리에서 유독 ‘비아’라는 표현이 쓰이지 않는 이유 또한 명확해집니다. 그곳은 이미 개별 대상을 대조하는 인식의 단계를 넘어, 존재의 실상을 온전히 선포하는 결론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비아와 무아는 ‘아님’이라는 방편을 통해 ‘없음’이라는 실상으로 나아가는 불교 수행의 시작과 끝을 관통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