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장 반구의 충돌
Hemispheres colliding
유라시아와 아메리카의 역사적 궤적은 왜 달라졌는가?
식량 생산, 기술 발달, 정치조직 형성, 문자 발명 등 핵심저인 문물의 발달에서
남북아메리카 대륙이 항상 유라시아 대륙에 뒤처진 이유는 무엇일까?
뒤늦은 정착과 문명의 시작, 가축화,작물화할 생물종의 부족, 문물의 확산을 가로막은
지리적.생태적 장벽., 좁거나 외진 인구 밀집지역을 궁극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지난 1만 3,000년 동안 가장 큰 규모로 일어난 인구 교체는 구세계와 신세계의 충돌로 촉발됐다.
3장에서 살펴보았듯 당시 가장 극적이고 결정적인 순간은
소수에 불과하던 피사로의 스페인군이 잉카 황제 아타우알파를 생포한 때였다.
당시 아타우알파는 면적도 넓고 인구도 많고 풍요로우며 행정과 과학기술 면에서
가장 선진적이던 아메리카원주민 국가의 절대군주였다.
아타우알파 생포는 유럽의 아메리카 정복을 상징적으로 압축해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하다.
아타우알파의 생포를 가능케 해준 근접 요인들이,
유럽인이 아메리카의 다른 원주민사회를 정복할 때도 똑같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는 반구(半球)의 충돌로 눈을 돌려, 3장에서부터 배웠던 것을 적용해보자,
여기에서 우리가 답해야 할 근본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왜 유럽인이 아메리카 원주민의 땅을 정복했고, 그 반대가 되지 못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1492년, 즉 콜럼버스가 남북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해에
유라시아 사회와 아메리카 원주민 사회가 각각 어땠는지 비교하는 것으로 시작해보자
먼저 식량 생산부터 비교해보자,
식량 생산이 지역별 인구 규모와 사회의 복잡성을 결정하는 주된 요인,
따라서 정복의 궁극 요인이기 때문이다.
식량 생산에서 아메리카와 유라시아의 가장 확연한 차이는 가축화한 대형 포유동물에 있었다.
9장에서 언급한 유라시아의 포유동물 13종은
동물성 단백질(육류와 젖), 털과 가죽의 주요 공급원이었다.
아울러 육지에서 사람과 물건을 운반하고 필수적인 전쟁 수단을 제공하는 동시에
(쟁기를 끌고 거름을 제공함으로써) 작물의 생산성을 높여 주었다.
중세에 들어 유라시아에서 수차와 풍차가 포유동물을 대체하기 전까지,
그 동물들은 인간의 근력을 넘어서는 '산업력'(멧돌을 돌리고 양수 장치를 작동하는 등)을
제공하는 주요 공급원이었다.
반면 남북 아메리카에는 가축화할 만한 대형 포유동물이 라마.알파카밖에 없었고,
그 한 종마저 안데스 지역 및 그에 인접한 페루 해안 지역에만 서식했다.
라마는 고기, 털 ,가죽을 얻고 물건을 옮기는데 쓰였지만,
인간이 섭취 가능한 젖을 생산하지 않았고, 타고 다니기에도 적합하지 않았다.
수레나 쟁기를 끌지도 못했으며, 동력원이나 전쟁 도구로도 사용되지 않았다.
유라시아 사회와 아메리카 원주민 사회에 이렇게 큰 차이가 생긴 이유는
홍적세 말에 남북 아메리카에서 대형 포유동물이 멸종(혹은 절멸?)했기 때문이다.
이런 멸종이 없었다면, 현대사도 달라졌을지 모른다.
코르테스를 비롯한 스페인의 모험가들이 후줄근한 모습으로 1519년에 맥시코 해안에 상륙했을 때,
가축화한 말에 올라탄 아즈텍 기병애에게 내몰려 다시 바다로 쫓겨났을지도 모른다.
아즈텍 사람들이 천연두로 죽지 않고,
그 대신 저항력을 가진 아즈ㅌ텍 사람들이 옮긴 아메리카 병원균에
스페인 사람들이 속수무책으로 죽어갔을지도 모른다.
또 가축의 힘을 활용한 아메리카 문명의 콩키스타도르가 유럽을 유린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가정의 결과는 수천 년 전 포유동물이 멸종함으로써
원천적으로 실현 가능성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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