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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의 신경제(New Economy): 자본주의에서 서비스의 가치
이 시리즈의 두 번째 글은 '서비스'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와 상품생산에서 멀어지는 것이 경제 발전에서 필수적이라고 생각하는 가장 부유한 자본주의 국가에서 ‘서비스’가 외형적으로 보이는 핵심 역할을 조사한다. 실제로, 2007~2008년 금융 붕괴에 따른 후퇴에도 불구하고, 세계은행 통계는 '서비스'가 세계경제의 GDP에서 더 높은 비율을 나타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국의 경우 2018년에 GDP의 77.4%를 '서비스'가 차지했다.
2부: 자본주의에서 서비스의 가치
서론
이 시리즈의 첫 번째 글에서 우리는 영국의 5개 직업 중 4개가 이제 공식적으로 '서비스'로 분류된다는 점에 주목했다. 영국은 가장 부유한 자본주의 국가들 사이에서도 선두로 '서비스'가 GDP의 점점 더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들 때문에 자본주의의 경제 전문가들, 특히 앵글로 색슨계, 사이에서는 서비스 부문이 제조업 부문보다 더 생산적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분명히 이러한 주장은 이전에는 선진국의 제조업 부문에서의 높은 생산성이 덜 생산적인 서비스 부문에서의 부담을 지속할 수 있게 한다고 주장했던 과거의 주장과는 매우 다른 주장이다. 마르크스주의적인 관점에서 보면 서비스가 경제에 있어서 '잉여가치'의 주요 원천이라는 생각이 허튼소리이지만, 노동이 모든 가치의 원천이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돈과 가격으로 모든 것의 가치를 판단하는 자본가들에게 있어서는 '서비스'가 명백히 경제성장을 유발한다는 것만이 중요할 뿐이다.
임금 노동은 새로운 가치의 진정한 원천이다.
마르크스는 '서비스'를 노동에 대해서 지불할 준비가 된 사람에게 사용가치를 창출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이 정의는 '무엇'이 만들어지는가, 또는 수행되는 특정한 종류의 일에 기초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과 자본의 관계에 기초한다. 서비스 노동자는 급여를 받고 일하는 가사도우미 또는 보모일 수도 있고, 일정한 비용으로 음악을 가르치는 강사, 청소부, 변호사, 목회자, 매춘부 등 모든 영역을 포함한다. 이러한 모든 유사한 사례에서 '서비스 제공자'의 노동은 구매자에게 유용한 무언가를 생산하고, 구매자는 그들의 수입이나 수익에서 직접 그 대가를 지불한다. 하지만 그 서비스가 구매자에게는 '가치'가 될 수 있다 할지라도, 서비스는 사회의 전체적인 부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서비스의 구매자가 서비스의 가치를 만드는 데 소비된 노동력의 전액을 지불하기 때문이다. 마르크스가 살았던 시대에는 서비스의 개인적 구매가 일반적이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서비스 노동자의 노동이 서비스 구매자의 수익이나 소득으로 지불된다는 그의 기본적인 통찰은 복지시스템과 국가 관료체제의 후기 선진 자본주의경제에서도 유효하다. 마르크스는 세금을 강제저축으로 보았으며, (공공서비스 종사자의 임금까지 포함한) 공공서비스가 세금(노동자의 임금에서 많이 차감되지만, 기업 이윤에서도 차감되는)에서 지출된다는 점에서 ’서비스’의 정의에 부합된다고 보았다. 즉, 공공서비스는 자본주의 사회 전체에 유용한 무언가를 재공하기 위하여 사회의 총수입으로부터 지불되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자의 관점에서 서비스는 그 일이 불필요해서, 육체적 작업이 아닌 두뇌 작업이라서 또는 어떤 다른 주관적인 기준 때문에 비생산적인 것이 아니라, 서비스를 창출하는 데 소모된 노동력 이상으로 새로운 가치가 창출되지 않기 때문에 비생산적이다. 즉, 임금노동자가 자본가를 위한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 고용될 때만이 생산적이다.
이 경우 노동력 판매에 대한 용어는 변화해 왔고 일을 하는 사람과 고용하는 사람 사이의 전체적인 관계는 다르다. 이제 고용주는 일정 기간 동안 임금 노동자의 노동력을 샀고, 그 기간 동안 임금노동자의 노동력은 고용주에게는 직접적인 사용가치가 없는 상품(교환가치)생산에 소비될 것이다. 왜냐하면 상품 생산의 유일한 이유는 상품이 이윤 창출을 위하여 팔릴 수 있기 때문이다. 자본가가 서비스에 대해 지불하는 개별적 지출과는 달리, 기업이 상품생산 노동자에게 지불하는 임금은 일단 판매된 상품에 대해 이익이 실현되면 임금 그 자체의 비용보다도 훨씬 더 많이 늘어 날 자본으로부터 나온다. 이것은 노동자들이 그들의 임금에 상응하는 상품을 단순히 재생산하는 것보다 더 오래 일하고 더 많은 상품을 생산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예를 들어, 식품 가공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그들의 임금과 동등한 가치를 지닌 상품을 생산하는데 반나절이 걸릴 수 있지만, 주당 근무일은 5일이다. 나머지 4일하고도 반나절 동안 노동자가 생산한 상품의 가치는 자본의 당연한 권리로 주장되며, 노동자는 자본증식의 원천이 바로 이 미지급된 잉여가치라는 것을 인식하기가 어렵다.
마르크스에게 있어 '생산적인 노동'은 단순히 사용가치를 생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상품(교환가치)을 생산하기 위해 고용되는 노동이며, 그렇게 임금의 가치 이상으로 잉여가치가 만들어진다.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마르크스 시대보다 노동이 가치의 원천이라는 것에 대해 더 완강히 부정하고 있다. 자본가들은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설명할 수 없음에도,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것은 자본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서비스에 대한 그들의 정의가 마르크스의 정의와 일치하지 않는 것은 놀라운 일은 아니다. 곧 보게 되듯이, 자본가는 비생산적인 노동력과 가치 있는 노동력을 서비스에 함께 포함시키며, 특히 자본 순환과 상품 순환에 관련된 비생산적인 노동력인 소매 노동자와 은행 노동자의 노동도 서비스 범주에 포함한다.
영국 통계청(ONS)에서 공식적으로 작성된 위의 <표>를 영국 노동력에 대한 최신 묘사라고 본다면, 우리는 <표>에서의 직업에 대한 분류가 마르크스의 서비스에 대한 정의나 생산적 노동자와 비생산적 노동자의 구분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통계청의 경우, 9개의 일자리 범주 중 5개를 '서비스'로 정의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마르크스주의 기준을 사용하면, 앞의 4개의 일자리는 주로 생산적 노동자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으며1), 통계청이 서비스로 분류한 일자리 가운데서도 수 백만 명 이상 남짓의 서비스 노동자가 생산적 노동자로 다시 분류되어야 한다. 교통(transport)을 예로 들면, 마르크스는 상품들이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운송되는 결과로 상품들의 교환 가치가 증가할 때, 운송노동자의 노동은 생산적인 노동이라고 분명히 주장한다.
“이 경우에 실제 노동력은 사용가치에서 흔적을 남기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물질적 생산물의 교환 가치에서 실현된다. 따라서 이 산업에서는 노동력이 상품의 사용가치에 볼 수 있는 흔적을 남기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물질 생산의 경우처럼 노동력이 상품에 포함된다.”2)
그렇지 않고 '사람 수송의 경우'는 '서비스‘의 형태를 취한다'고 하였다.3) 그러나 여기서 우리의 요점은 자본가가 ’서비스‘로 분류된 범주에서의 서비스 노동자의 상당수가 마르크스의 노동가치 이론에 의해 정의된 생산적 노동에 종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비스 영역'으로 공식적으로 분류된 다른 그룹들도 비슷하다. 우리는 '서비스'라는 단어가 비생산적인 노동력을 의미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 보기를 들어, '유통, 호텔 및 식당'에 속하는 노동자의 대부분은 개인 서비스로서 사용가치의 단순한 제공보다는 상품 생산(새로운 가치 창출) 또는 그 가치를 증가시키는 것에 관여한다. 영국에는 250만 명의 호텔과 식당 노동자가 있는데, 이들 대부분은 자본주의 기업에 의해 고용된 임금 노동자로 단순히 개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에 대한 대가를 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호텔 요리사는 그녀의 노동력을 산 사람인 자본가(호텔 소유주)를 위해 상품을 생산한다. 양고기를 먹는 소비자는 그녀의 노동에 대해서 지불해야 한다. 그리고 그녀의 노동은 소비자가 그녀의 노동에 대하여 지불하는 돈을 호텔 소유주를 위한 자본으로 바꾼다.”
이는 다음의 경우와 전혀 다르다.
"나는 요리사의 노동을 일반적으로 노동으로 이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녀가 나를 위해서 고기를 요리하는 것과 같이 그 노동을 즐기려고 사는데, 그 노동은 비생산적인 것이다... 큰 차이점(개념적 차이점)은 내가 요리사에게 지불하는 돈이 나를 위한 자본으로 바뀌지 않는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나는 그녀의 노동력을 가치를 창조하는 요소로 사지 않았고 단지 순수하게 그 사용가치를 위해 샀기 때문이다."4)
게다가 통계청의 <표>는 미디어 산업과 창조산업 등 상대적으로 새롭게 성장하는 분야의 노동자 수는 구분하지 않고 있다. 작년에 <파이낸셜타임즈>의 기사는 창조산업과 관련한 최신 정보를 제공했다.
“영국의 창조적 부문은 라디오, 텔레비전 광고, 소프트웨어 산업의 급속한 성장에 힘입어 10년 만에 거의 두 배로 늘어났다. 최근의 수치에 따르면 창조산업은 영국 경제의 거의 9%를 차지했는데 이는 제조업, 농업과 같은 오래된 산업 부문들을 대체하면서 점유율을 증가시켰기 때문이다. ... 통계청에 따르면 2002년 창조산업은 영국경제에서 총 809억 파운드의 가치를 증가시켰다. 이 부문의 10년 동안의 93%의 상승은 같은 기간에 영국경제 전체가 단지 70% 증가한 것과 비교된다.”5)
창조산업이 자본가의 이윤창출 기업으로 얼마나 많이 운영되는가를 생각해 본다면, 마르크스가 '생산의 전체와 비교하여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던 배우, 예술가, 극작가 등의 일이 요즘에는 상품 생산에 종사하는 어떤 공장 노동자의 노동처럼 경제에 '진정한 가치‘를 더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극장, 공연장 등의 엔터테인먼트 기업도 마찬가지다. 이 경우에 배우는 대중과의 관계에서는 예술가이지만 그의 고용주와 관련해서는 생산적인 노동자이다."6)
심지어 BBC도 라이센스 수입에 많이 의존했었고, '공영방송 서비스‘는 경쟁적인 방송환경에 많이 노출되어 있다. 이는 공식적인 '서비스 부문'에서의 노동이 상품(따라서 새로운 가치)을 생산하고 자본(또는 이익)에서 임금이 지급되는 수백만 명의 노동자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공식적인 노동력 통계를 조사해 보면 자본가계급에 의해 서비스로 분류된 수백만 개의 직업들이 실제로 생산적인 노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노동력을 생산하는 가치의 크기는 자본가가 수치로 제시하는 것보다 두 배 이상 더 클 수 있다. 우리는 630만 개의 가치를 창출하는 일자리 대신에 적어도 1,200만 개의 가치를 창출하는 일자리가 있다고 추정한다. 그러나 이 수치는 여전히 영국의 신경제에서 약 3,000만 개 정도의 일자리 가운데 60%가 가치창출이라는 관점에서 비생산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고용된 노동자들의 수를 추정하면, 2,800만 남짓의 고용된 노동자 중 1,700만 명의 노동자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지 못한다고 말할 수 있다. 전체 인구(거의 5,800만 명)의 관점에서 볼 때, 이 수치는 가치를 생산하는 각각의 노동자에게 가치를 생산하지 않는 5명이 붙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영국의 경제적 부가 실제로 국내 경제에 의해 전적으로 만들어 졌다면, 이는 전통적인 제조, 채굴, 건설 산업 분야 이외의 산업부문으로부터 실제로 높은 수준의 잉여가치율과 절대적 가치를 창출한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우리는 공식적 통계에서 ‘서비스’로 분류된 직업들로부터 상품 생산, 가치 창출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재정 연구소’의 사람들이 "국가에 더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한다"고 주장하는 일은 이러한 일이 아니다.7)
반대로, 자본가 계급의 잘못된 정의에 의해서 분류된 '서비스'는 비생산적인 부문(가치 생산 노동자를 포함하는 '서비스지원' 부문과 공식적 통계가 구체적으로 분류하지 않는 '미디어' 부문은 예외이지만)이지만, 자본가 계급은 이 서비스 부문을 "영국의 가장 큰 가치 창조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명목적 화폐가치가 아닌 잉여가치를 말하고 있다).
늘어난 가치의 미스터리
올해 초 파이낸셜 타임즈는 "부의 창출의 수수께끼를 풀자"라는 목표를 정했지만, 이 목표가 해결한 것은 명목상의 화폐 가치를 넘어서 어떻게 진정한 부가 창출되는 지에 대하여 그 원천을 보는 것이 자본가 계급에게는 영원히 미스터리라는 것을 밝혀냈을 뿐이다. 파이낸셜 타임즈는 이 미스터리를 해결하기 위하여 무역산업부(DTI, Department of Trade and Industry)의 목록을 발표했는데, 이 목록은 영국에서 가장 큰 이익을 내는 산업과 기업들을 최고의 '부의 창조자'로 지정한 목록이다.
파이낸셜 타임즈는 DTI의 가장 수익성이 높은 업종 10개 가운데 5~6개가 실제로 영국의 공식 통계에서 서비스 업종에 속한다는 것을 보여준다.8) 한 번 더 살펴보면 목록에서 금융업이 주된 업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금융업종에 속하는 기업이 상위 12개 기업 가운데 5개이며, 목록의 맨 앞에 있다). 수익성이 높은 '서비스지원'(해충방제 서비스회사인 렌토킬(Rentokil)부터 자비스(Jarvis)까지) 부문과 '통신서비스' 부문은 생산적인 노동과 비생산적인 노동을 모두 포함하겠지만, 소매업 부문(8위)은 가치창출 측면에서는 전혀 비생산적이다.
영국에는 약 280만 명의 소매업 노동자들이 있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그들의 노동은 상품 형태로 순환하는 자본의 비용에서 일부분이다. 소매 부문은 마르크스가 묘사한 '상업자본' 즉, 싸게 사고 비싸게 파는 것이 핵심적 역할이지만 그 자체는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는 자본이다.
"따라서 상업자본은 잉여가치의 생산에는 참여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잉여가치의 평균이윤으로의 균등화에는 참여한다. 그러므로 일반적 이윤율은 잉여가치 중 상업자본에 귀속할 부분의 공제, 즉 산업자본의 이윤으로부터의 공제분을 계상하고 있다."9)
소매업 노동자에 대해서는,
"한 가지 측면에서 보면 그런 상업노동자는 기타의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임금노동자이다. 첫째로, 그의 노동력은 상인의 가변자본으로 사며, 수입으로서 지출되는 화폐에 의해 구매되지 않는 한, 다시 말해 상업노동자의 노동력이 개인적 서비스를 위해 구매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구매에 투하되는 자본의 가치증식을 위해 구매되는 한, 상업노동자는 임금노동자이다. 둘째, 그의 노동력의 가치, 따라서 그의 임금이 기타의 모든 임금노동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의 노동의 생산물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독특한 노동력의 생산비와 재생산비에 의해 결정되는 한, 상업노동자는 임금노동자이다. 그러나 ... 상인은 단순한 유통대리인으로서 가치도 잉여가치도 생산하지 않기 때문에 ... 상인에 의해 동일한 기능에 고용된 상업노동자도 상인을 위해 직접적으로 잉여가치를 창출할 수 없다."10)
그리고 소매업 부문이 사실상 사회의 진정한 부를 고갈시키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현재 거의 6백만 명의 노동자로 구성되어 있는 영국의 가장 기대되는 '금융 서비스' 부문도 그러하다. 은행들이 DTI의 수익성 리스트에서 수위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은행은 “이미 실현된 가치를 취급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에 잉여가치에서 차감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11)
이 글의 다음 부분에서 우리는 어떻게 금융부문 -노동 가치 이론에서 볼 때는 잉여가치의 거대한 낭비- 이 자본가의 부의 창출에 있어서 선두가 되었는지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어볼고자 한다.
자본을 위한 상품으로 전환된 공공 서비스
우리가 보았듯이, 서비스에 대한 일관된 자본가의 정의는 없다. 마르크스의 정의에 따르면 서비스는 상품이 아니며 서비스 생산에 관련된 노동은 사용가치를 만들지만 교환가치는 생산하지 않기 때문에 비생산적이다. 반면에 자본가는 모든 종류의 노동력 – 상품생산 노동력만이 아니라 자본순환 비용에 엄격히 속하는 비생산적 노동력까지 –을 서비스에 포함한다. 통계청의 <표>를 다시 한 번 살펴보면, 740만 노동자가 있는 가장 큰 범주인 '건강, 교육 및 공공 행정(health, education and public administration)'이 마르크스의 서비스 정의에 가장 가까운 것이 분명하다. 대체로 이 직종의 노동자들은 그들이 제공하는 사용가치에 대해 개인적인 수수료를 받지 않지만, 그들에 대한 임금은 대부분이 세금으로 지불된다. 그 세금은 사회의 수익에서 나온 것이며, 비록 그들이 사회에 유용한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그들의 노동력에 대한 비용은 사회 전체의 잉여가치로부터 나온 것이다. 고든 브라운 정권은 유망한 금융 부문과는 달리 교육, 병원, 복지 지출 전반을 잉여가치의 배수구로 재빨리 인식한다. 따라서 예산을 삭감하거나 민간 자본의 손에 넘겨줘 운영하게 함으로써 공공 서비스를 상품으로 전환하고자 한다. 이 경우, 과거에는 세금으로부터 지불된 서비스는 상품으로 변하고, '서비스 제공자'는 가치를 창출하는 임금노동자로 변한다.
실제로 자본이 공공 서비스를 완전히 '상품화'하기는 어렵지만 공공 서비스 제공에 민간 자본이 점점 더 많이 관여하고 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외주화(작년에는 300억 파운드 가치의 서비스를 민간자본에 외주화 했다)로부터 이른바 민간투자개발사업(PFI. private finance initiative)이 현재 런던의 교통체증운영계획부터 자비스(Jarvis)사의 철도유지와 학교건축에 이르기 까지 약 660개 이상의 프로젝트에서 운영되고 있다. 민간자본은 공공서비스에 대한 참여를 통해서 세금으로부터 수익을 올릴 수 있고, 수익은 이윤율을 높이거나 주가를 부양하기 위한 자본이 된다. 수익을 자본으로 전환하고 상품을 서비스로 전환하려는 이러한 노력은 영국 금융분야가 얻는 금융이익에 의해 주춤해졌지만, WTO의 도하 라운드(Doha round)에서 협의되고 있는 국제적인 '서비스의 시장 자유화' 논의에서 진행 중이다. 이는 오늘날 새로운 잉여가치의 원천을 필사적으로 찾으려는 자본이 전형적으로 보이는 증상이다.
2019. 07. 10.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옮긴이 ㅣ 우연이
<주>
1) 마르크스는 생산적 노동은 '원재료 가공'이라는 행위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사람들만으로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명확히 한다.
“많은 노동자들이 동일한 상품의 생산에 함께 일하는 특정한 자본주의 생산 방식이 발전함에 따라, 그들의 노동이 생산되는 물체에 가지는 직접적인 관계는 자연스럽게 크게 달라진다. 예를 들어, 이전에 언급했던 공장에서의 미숙련 노동자들은 원재료에 대한 작업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원자재를 직접 만드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감독 역할을 하는 노동자들은 한 걸음 더 멀리 떨어져 있다. 엔지니어의 작업은 또 다른 관계를 가지고 있고 주된 작업에서는 오직 그 엔지니어의 두뇌만이 관련이 있다. 그러나 각기 다른 노동력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이러한 노동자의 총체성은 그 결과를 생산하는데, 이 결과는 순수하고 단순한 노동 과정의 결과로 간주되며, 상품이나 물질적 생산물로 나타나며, 모두 이러한 제품의 살아있는 생산 기계다. 이러한 생산 과정을 전체적으로 보면, 그들은 노동력을 자본으로 교환하고 자본가의 화폐를 자본으로, 즉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가치로서, 자기증식적 가치로 재생산한다. 이것은 실로 자본주의 생산 방식의 특징으로, 다양한 종류의 노동력을 구분한다. 즉, 정신 노동력과 육체 노동력을 또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노동력을 구분하여 사람들에게 분배한다. 그러나 이것은 물질적 생산물이 이러한 사람들의 공통적 생산물이 되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 또한 물질적 부에 내재된 노동자들의 공통 생산물이 되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임금 노동자들 각각이 가지는 자본과의 관계를 방해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변경시킨다. 이 모든 사람들은 물질적 부의 생산에 직접 관여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노동력을 임금과 교환하고, 결과적으로는 그들은 임금에 더하여 자본가에게 잉여가치를 직접 재생산한다. 그들의 노동은 지급되는 노동과 미지급 잉여노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TSV part 1, Lawrence and Wishart ed. p. 411-412).
2) 위의 책, p. 413.
3) “그러나 이 서비스에서 구매자와 판매자 사이의 관계는 털실을 사고 파는 구매자와 생산자의 관계보다도 더 생산적인 노동자와 자본과의 관계와 관련이 없다.” (위의 책. p. 412)
4) 위의 책, p. 165.
5) 파이낸셜 타임즈, 2018년 10월 4일.
6) 위의 책. p. 411.
7) 파이낸셜 타임즈, 2013년 5월 5일. 전체 인용문을 보려면, 이전 호의 첫 부분 참조.
8) 미디어 부문이 공식적으로 '서비스' 부문에 속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통계청은 이에 대해서 명시하지 않았다.
9) 마르크스, 자본론 3권, p. 286.
10) 마크크스, 자본론 3권, p. 292-293.
11) 마르크스, 자본론 3권 19장 화폐거래자본의 마지막 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