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6일(일) 맑음
청도군 풍각면에 있는 삼층석탑 2기(봉기리/보물, 덕양리/유형문화재)를 보고 '용천사(각북면)' 에 들렸다.
용천사에서 운흥사까지 10km 이내라 운흥사로 향했지만 운흥사 맞은편 주암산에 산불이 나서 방문을 체념하였다.
어제 저녁에 지나가며 본 이정표, 녹동서원과 남지장사, 그곳으로 향했다.
불이 난 주암산과는 많이 떨어져 있는 모양이다. 산불의 연기가 보이지 않고 맑고 조용하다.
가는 방향대로 먼저 녹동서원에 들렸고, 남지장사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청련암과 백련암도 들렸지만 둘레길을 더 걸었다.
최정산 남지장사(最頂山南地藏寺) /전통사찰
-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
684년(신라 신문왕 4) 양개(良价)대사가 왕명을 받아 창건.
고려 말~조선 초 무학대사가 수행,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승병을 훈련시킨 본거지이라 전한다. 이 난에 완전 불타버렸다.
1653년(효종 4)에서 1769년(영조 45)에 이르기까지 인혜, 모계, 지월(池月)대사가 중건, 보수하였다.
(남지장사 안내문에서 발췌, 정리)
1263년(고려 원종 4)에 일연(一然)이 중창하였으며, 1653년(효종 4) 인혜(印惠)가 중건하였다.
1767년(영조 43) 모계(慕溪)가 중창한 뒤 팔공산 내의 북지장사와 서로 대칭되는 곳에 위치한 절이라 하여 남지장사라 하였다.
(다음-한민족대백과사전 발췌, 정리)
일주문, 사천왕문이나 누각은 없다.
담장 넘어 3칸 건물이 일주문이며 누각인 모양이다.
최정산 남지장사 사문, 한편에 범종이 있다.
누각이 없는 게 아니다. 이게 광명루이다. 보수를 하였다. 지붕을 새로 얹은 것 같다.
아주 오래된 벚나무, 벚꽃 필 때 흥이 절로 나겠다.
극락보전과 요사채
대웅전
석조 석가여래삼존상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89호, 17세기 후반 만든 것으로 추정한다.
석조 지장보살좌상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88호, 1659년(숙종 10), 조각승 승호가 수조각승으로 만든 불상이다.
(어디에 있는지 보지를 못하였다.)
측문의 쌍용 그림이 화려하다.
극락보전
목련존자 사리, 부처님 진혈 사리, 사리불존자 사리.
이 사리의 진위 여부는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다. 그래도 근거가 있으니 이렇게 봉안하였을 것이다.
삼성각
용왕각인가?
청련암(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4호) /남지장사 부속 암자
창건은 남지장사와 같다. 임진왜란으로 소실, 본사 중건 때 같이 중건, 1806년(순조 6) 화재로 소실.
현 건물은 1808년 중건한 乙자형 건물이다. (청련암 안내문, 정리)
남지장사 돌계단 아래 감로로 목을 축이고 잘 닦여진 길을 따라간다.
남지장사 주변 송림은 참 좋다.
청련암 가는 길에 승탑 2기를 볼 수 있다. 주인을 알 수는 없겠다.
인터넷 검색했을 때 '육각범자문 승탑'(글 쓴 이가 붙인 이름)이 있다고 나오지만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
청련암을 지나 마을 가까이 갔지만 길에서 많이 벗어나 있는가 보지를 못 했다.
남지장사는 수목장을 하고 있다.
청련암, 문이 잠겨 있어 들어갈 수 없었다.
마을로 가는 길, 낙엽송이 도열하고 있다. 이 길은 둘레길이다.
백련암 /남지장사 부속 암자,
남지장사 우측 사면 있었으나 50여년 전에 현재 위치인 좌측 사면으로 옮겼다.
(안내문)
남지장사 전면 좌측 사면에 있다. 청련암은 우측에 있다. '백연암'이 아닌 '백련암'이 맞겠다.
공덕탑비와 사적비
단촐한 암자이다. 갑갑하지는 않다.
관음전
관음전 외벽은 팔상도가 그려져 있다.
관음전과 요사 중간 뒤편에 있는 작은 '산신각'은 박공지붕을 얹어 단아하다.
관음전 내부
남지장사로 오르는 길, 백록마을에서 본 경치이다.
*양개(良价)대사*
신라 신문왕 4년(684)에 남지장사를 창건하였다고 한 이 승려를 검색하면 중국의 선사로 나온다.
동산 양개(洞山良价, 807~869)는 운암화상(남전? 남천?)의 법을 잇고 조산 본적(曹山本寂, 840~901)을 제자로 두었다.
중국 선종 5가 중 하나인 조동종(曹洞宗)의 시조이다. 조동종은 제자인 조산의 조, 스승인 동산의 동을 따왔다.
동산 양개 '사친서(辭親書)'가 유명하다.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이다.(난 읽어보지 않았음.)
통일신라시대에 신라에도 양개란 승려가 있었다는 의미일까?
녹동서원(鹿洞書院)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
사성(賜姓) 김해 김씨의 시조인 '모하당 김충선(慕夏堂金忠善)'을 기리는 서원, 사당이 있다.
김충선은 임진왜란 때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 휘하의 좌선봉 장수였으나 조선으로 귀화하여 큰 공을 세운 사람이다.
달성한일우호관, 의문이다. 일본에서 보면 김충선은 배신자이다. 일본인들이 이 분을 존경하고 기릴까?
김충선은 명분 있는 배신이었지만.
우륵인줄 알았다. 우록(友鹿)이다.
우미산(尾山牛) 아래 우륵리(牛勒里)였지만 김충선 장군이 세거지로 삼으며 우록리(友鹿里)로 바꼈다.
녹동서원에 주차, 남지장사까지 왕복 6.4km, 1시간 40분. 넉넉히 3시간 잡고 하루를 보내면 좋겠다. 가파른 길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