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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3일 화요일 <진리에 대한 태도, 진화론, 싸르크스, 터부>
[김용호] [오전 2:40] 굿모닝입니다~^^ 화끈하게 충성하는 화요일을 만듭시다~!!
어제 지웅 형제와 대화를 나누던 중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몇 가지 가설들을 제가 언급했는데 과학이든 철학이든 인간 존재에 대해서는 가설들뿐입니다. "나"라는 존재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것이 인간인 것이지요. 어디서 왔는지 또 어디로 가게 되는지 모르는 것은 물론 현재의 "나"라는 실존 자체를 입증하는 것조차 모호한 것이 인간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인간 존재에 대한 규정 중 가장 합리적인 규정은 근대 철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데카르트(1596-1650)의 "나는 회의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물론 데카르트는 이 명제를 진리를 찾아가는 철학과 과학의 방법론으로써 제시한 것이지만 회의, 즉 의심이라는 방법론의 출발점을 자신의 존재 인정에 두고 있는 점이 탁월합니다. 모든 것을 의심하고 회의해야 하지만 그 의심하는 나의 존재 자체는 인정하고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나의 존재 자체도 의심의 대상이긴 마찬가지지만 말입니다.
제가 데카르트의 이 명제를 귀하게 보는 이유는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받은 우리도 성경의 진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우리의 존재 인정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옳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믿음과 약속에 대한 믿음(히11:6)에 더해 나 자신의 실존에 대한 믿음까지도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의 전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히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위 히브리서 본문에 등장하는 세 존재인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 하나님, 하나님의 약속은 존재 증명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회의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계시고 나는 있고 약속은 주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도키마조, 즉 검증의 대상은 우리에게 주어진 그 약속이 과연 우리에게 성취되고 있는가 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존재, 나의 존재, 약속의 존재 자체를 검증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게 뭐 그리 중요한 거라고 이 꼭두새벽에 정성을 들여 장황하게 설명을 하고 있는 걸까요? 자유주의 신학이 빠진 함정이 바로 이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함정은 참으로 교묘해서 우리도 수시로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철학적 사고와 과학적 사고의 종착점이 바로 존재 증명이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교회의 생각 없는 자들이 가끔씩 주장하듯 크리스찬은 과학적 사고와 철학적 사고를 경원시하는 것이 옳을까요? NEVER!! 그건 말도 안 되지요. 그리스도의 제자의 삶에서 과학적 사고와 철학적 사고는 반드시 필요하고 동시에 인류의 과학적 업적과 철학적 업적도 반드시 활용되어야 합니다.
문제는 증명된 진리와 가설을 구분하지 못하는 데에서 발생합니다. 소위 과학의 우상화와 철학의 우상화의 오류지요. 좋은 예가 진화론입니다. 진화론은 가설입니다(종간 화석이 발견된 적이 없으므로 가설입니다). 따라서 진화론으로 성경을 해석하거나 폄하하는 것은 비논리적이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 존재에 대해서도 가설들만이 존재합니다. 따라서 정신분석학이나 뇌과학 세포생물학 등이 세워놓은 가설을 가지고 성경을 해석하려는 것은 과학적으로 그리고 논리적으로 오류인 것이지요.
우리는 진리로 검증된 과학과 철학의 학문적 성과는 성경 해석에 적극 활용해야 하지만 가설을 동원하는 오류는 철저히 경계해야 하는 것입니다. 가설을 제외한 철학과 과학과 논리를 동원해 성경을 해석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의무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세속 학문들이 가설들만 제시하고 있는 부분에 있어서는 보기에 그럴듯한 그 가설들의 유혹을 뿌리치고 철저히 성경의 계시에 기반해 진리를 탐구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 번 말씀드렸듯이 우리 안에 정신분석학자, 뇌과학자, 세포생물학자 등등의 전문가들이 나오기를 소망하는 것도 두 가지 이유에서입니다.
1. 진리로 검증된 해당 학문의 성과를 잘 활용하기 위해
2. 해당 학문들의 학문적 업적들 중 가설을 철저히 가려내기 위해
요즘 교계에서 유행하고 있는 심각한 사례를 하나 들자면 바로 기독교 상담학입니다. 지난 세기부터 세속 정신분석학의 대세를 이루고 있는 대상관계이론을 도입한 기독교 상담학이 교계에 널리 퍼져있습니다. 대단히 우려스러운 일이고 심각한 오류들이 실제로 많이 일어나고 있는데 이는 대상관계이론이 가설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소위 "과거의 상처의 치유"라는 방법론이 그것으로서 크리스찬들의 심리적 정서적 문제의 해결을 성경의 계시에서 찾지 않고 인간관계의 회복에서 찾습니다. 진리에서 눈을 돌려 가설에 의지하는 오류지요. 성과가 있을까요? 세속의 프로 심리상담가도 성공을 못하는데(우울증의 완치는 보고된 사례가 없다고 합니다) 그 흉내를 내는 아마추어에 불과한 교회 안의 기독교 상담가가 성과를 낼 수는 없지요. 오히려 하나님의 은총을 가로막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여 대단히 우려스럽습니다(참고로 현재의 정신분석학은 프로이드의 가설과 대상관계론의 가설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상황입니다).
반대로 철학과 과학의 학문적 성과를 무시함으로써 기독교가 오류에 빠진 경우도 많지요. 대표적인 사례가 천동설과 지동설의 충돌입니다. 과학과 철학의 사려 깊은 활용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필수입니다. 진리로 검증된 것은 활용하고 가설은 철저히 경계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 분별은 물론 쉽지 않은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을 우리에게 보내주시기를 간절히 원하는 이유입니다. 차차 우리 안에서 나오게 되면 금상첨화겠지요. 이 또한 흥미진진입니다.
성경은 지동설에 부합될까요, 아니면 천동설에 부합될까요. 우주의 먼지 크기만한 지구에 사는 인간들이 하늘의 해와 달과 별을 보면서 살게 하시려고 이 거대한 우주를 창조하시고 지구를 자전과 공전을 하게 하신 것으로 보아야겠지요.
이것이 비과학적 논리일까요? 우습게도 TV의 기상캐스터들은 지금도 일출 일몰이라는 천동설에 기반한 용어를 사용합니다. 그렇다고 그들을 비과학적이라고 비난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일출 시각"의 과학적 표현은 "우리 위치가 자전해 태양을 처음 보게 되는 지점에 이르는 시각"입니다. ㅋㅋ
이처럼 전 인류가 지금도 천연덕스럽게 천동설적 용어를 사용하면서 성경의 천동설적 표현을 가지고 비과학적이라고 시비를 거는 것은 모양새가 좀 그렇지요. 더구나 그런 스스로 모순된 모습을 가진 소위 과학적 사고를 하는 자들의 공격 앞에서 기독교인들이 주눅들어 하는 모습은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지요.
결론입니다. 인간은 어떤 존재일까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흙으로 지으시고 그 생기를 코에 불어넣으셔서 창조된 존재입니다.
이 규정에 대한 참된 반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러 가설들이 있을 뿐이지요. 그 가설들을 참고하는 것은 우리에게 필요한 일이지만 그 가설들을 근거로 성경의 설명을 재해석하려 들면 오류에 빠지게 됩니다.
[한휘석] [오전 8:22] 궁금한 게...제가 알기로 진화론은 "원숭이가 사람으로 진화했다."라는 식의 이론은 아닌 것 같은데요.
[김용호] [오전 8:24] 형제님이 알고 계신 진화론의 핵심을 설명해주시지요.^^
[한휘석] [오전 8:26] 돌연변이와 환경에 적응된 개체와 그 자손들의 생존.
[김용호] [오전 8:27] 진화론은 종내 진화와 종간 진화의 두 영역이 있습니다. 말씀하신 종내 진화가 축적되어 새 종의 출현으로 이어진다는 가설이지요.
[한휘석] [오전 8:28] 아 그렇군요..... 저는 종간 진화는 입증된 바는 없는 것 같고..... 종내 진화는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기적 유전자는 종내 진화만을 설명하는 것 같더라고요.
[김용호] [오전 8:28] 예 종내 진화는 객관적으로 관찰됩니다. 진화론이 가설인 이유는 종간 화석이 한 번도 발견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한휘석] [오전 8:30] 제가 종내 진화만을 생각하면서, 진화론을 과학적이라고 생각해 왔네요.
[김용호] [오전 8:31] 종교를 떠나 기술하자면 생명 종들의 탄생에 대한 두 가지 가설이 있는 거지요. 창조론과 진화론^^ 둘 다 가설이기 때문에 논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비이성적입니다.
[한휘석] [오전 8:31] 그렇네요. 진화론이 더 과학적이라는 근거는 없네요. 종간 진화가 입증된 바가 없으니까...
[김용호] [오전 8:32] 사실 진화론도 거의 종교의 위치에 있다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ㅋㅋ
[한휘석] [오전 8:33] 다윈도 종간 진화를 말한 바는 없을 것 같아요. 종간 진화는 좀 부풀려진 말 같네요.
[김용호] [오전 8:34] 아닙니다. 다윈의 첫 저서 제목이 “종의 기원”이었지요. 갈라파고스 섬에서 다윈이 관찰한 것은 종내 진화이지만 그의 첫 저작은 종간 진화가 핵심입니다. 좀 무리했던 거지요.^^
[한휘석] [오전 8:35] 그렇네요. 그것은 제가 봐도 무리~~ 그런데 진화론이 사실이라면 종간 진화가 있어야 논리적 구성이 형성될 텐데.......예를 들어 사람이라는 복잡한 생물이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날 리는 없을 것 아닙니까? 그런 점에서 본다면 창조론이 더 설득력을 가질 수도 있겠네요.
[김용호] [오전 8:37] 예. 유인원 화석을 놓고 중간단계라고 주장하는데 사실 근거가 약합니다. 그리고 종간 진화가 인간이 자연을 관찰하기 시작한 이래 한 번도 발견된 적이 없다는 것도 결정적인 약점이지요. 자연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굴러가는데 말이지요.^^ 창조과학자들이 내 놓은 절충안이 창조적 진화론입니다. 각각의 종은 창조되었고 그 후 종내 진화는 계속되어온 것으로 보자~
[한휘석] [오전 8:40] 하나님께서 창조한 생물들이 그때부터 종내 진화를 시작했다는 건가요? 가장 그럴듯하네요. 제가 듣기로는.
[김용호] [오전 8:41] 하나님께서 개나 비둘기의 종류를 그렇게 많이 창조하셨겠느냐. 합리적 추론이지요. 그러나 입증은 안 된다는 거~^^
[한휘석] [오전 8:43] 어차피 과학이 신의 부재를 증명할 수는 없을 듯하네요.
[김용호] [오전 8:44] 그래서 무신론도 종교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신이 있다는 주장이나 없다는 주장이나 거기서 거기~
[한휘석] [오전 8:44] 무신론도 신념이겠죠. 전에 교회에서 이야기했던 게 생각나네요. 신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 입장에서는 불가지론이 가장 합리적일 듯...
[정진호] [오전 8:46] 기독교에서 진화론을 비판하는 여러 가지 중에서 내게 가장 설득력 있게 들렸던 게 바로 왜 거의 모든 종에서 암컷과 수컷이 동시에 존재하느냐는 질문이었어요.
[한휘석] [오전 8:47] 그게 어떻게 진화론에 대한 비판의 근거가 될 수 있죠?
[김용호] [오전 8:48] 자연스럽지 않다? 비효율적이다? ^^
[정진호] [오전 8:48] 진화론이 설득력이 있으려면 어떤 종에서는 아직 수컷이 없거나 또는 암컷이 없거나 해야 하는데 암수가 동시에 항상 있다는 것이 어딘지 이상하다는 거지요. 진화가 계속 일어나고 있다면요.
[김용호] [오전 8:49] 오호~ 수컷의 종간 진화와 암컷의 종간 진화가 항상 동시에 진행된다는 것은 억지라는 논리로 이해되네요. 우연의 일치가 너무 정교하다는~ 종간 진화는 진화론에 의하면 우연의 요소가 크거든요.
[정진호] [오전 8:51] 진화과정에서 암컷이 먼저 만들어지고 나중에 수컷이 만들어졌다고 하면 지금도 어떤 종이 새롭게 만들어 지는 게 있을 거고 그럼 한쪽만 존재하는 게 발견되어야 하지 않나 하는 거지요.
[한휘석] [오전 8:52] 한쪽만 존재하는 게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멸종되어야 맞겠네요. 암컷이나 수컷 혼자 자손을 퍼트릴 수는 없을테니까요.
[정진호] [오전 8:53] 암수가 항상 함께 진화한다는 게 전도사님 말씀처럼 억지의 냄새가 난다는 거지요.
[김용호] [오전 8:53] 비슷한 공격 하나~ 지금도 밀림에서 사람으로 변한 침팬지가 가끔 걸어 나와야 하는 거 아니냐.~^^ 이건 우스갯소리 수준 ㅎㅎ 유인원은 왜 더 이상 출현하지 않는 거냐~ 결국 창조론과 진화론은 막상막하의 가설인 거지요.
[정진호] [오전 8:54] 결론은 진화론도 창조론도 다 신앙이라는 거.
[한휘석] [오전 8:55] 지금 과학의 수준에서는 신앙이라는 표현이 맞겠네요.
[김용호] [오전 8:55] 문제는 진화론이 검증된 이론처럼 교육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두 가설을 동등한 비중으로 교육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 제기되고 있지요
[한휘석] [오전 8:56] 저도 엄청난 착각 속에 살았네요.....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종내 진화만을 가지고 진화론이 더 설득력 있다고 믿었던 게... 엄청난 발견....
[김용호] [오전 8:56] 오늘 하나 건지셨군요. 이제 빚진 자가 되었으니 하나 제공하세요.^^
[한휘석] [오전 9:24] 아까 대상관계이론 말씀하셨는데요. 그 이론도 일부 타당성이 있지만, 요즘 그것이 만병통치약처럼 유행하는 것도 하나의 환상인 것 같아요. 정신분석학은 과학자들로부터도 비과학적이라고 거의 외면당하고 있는 데도 말이죠. 일부 사람의 일부를 설명해주는데 탁월함이 있기도 한데 그냥 일부일 뿐이죠.
[김용호] [오전 9:26] 맞습니다. 가설로 접근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특히 교회 현장에서는 그 폐해가 너무도 커요.
[한휘석] [오전 9:26] 아버지 학교 등이 대표적인 거겠죠?
[김용호] [오전 9:27] 그렇습니다. 검증되지 않은 인간적 방법론이 하나님의 약속을 밀어내고 있지요. 그것도 아마추어들이~
[한휘석] [오전 9:28] 소위 힐링 프로그램 중의 일부일 듯한데요. 기독교뿐만 아니라, 불교 더 나아가서 일반 사회에서도 힐링 프로그램이 유행하고 있는데 그 폐해가 자못 심각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용호] [오전 9:29] 그렇습니다. A와의 관계회복이 B에게는 재앙일 수 있는 문제도 있는데.
[한휘석] [오전 9:29] 힐링 프로그램에 참석하고 나서 자신은 이제 변했다. 나는 이제 다른 사람하고 다르다. 나는 철들었다......등등의 사례가 많죠. 그런 모습이 다른 사람에게는 폭력적인(권위적인)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고요. 전도사님께서 말씀하시는 A B 문제도 그렇고요.
[김용호] [오전 9:30] 인간의 지정의 내에서의 성숙을 주장하는 건데 인간의 지정의를 움직이는 시스템은 안 변하니까요.^^
[한휘석] [오전 9:32] 내가 변해서 가족 이외의 사람들에게도 나의 자원을 투자하기로 했다면, 가족들에게는 재앙일 수 있죠(예를 들면).
[김용호] [오전 9:35] 그렇습니다.
[한금옥] [오전 10:33] 한휘석 형제님. 오후 프로그램으로 오셔서 함께 나누면 좋겠습니다. 전 글 보다 듣는게 쏙쏙 들어오더라구요.
[김용호] [오전 10:33] 맞아요.^^ 우리에게 도움이 많이 될 거예요 ^^
[최해준] [오전 10:34] 못 이기는 척~ 오세요.^^
[정진호] [오전 10:34] 설명을 누구보다도 조리 있게 하는 능력의 소유자 그 이름은 휘석이요 성은 한씨요.
[임지웅] [오후 1:25] 전도사님. 싸르크스를 flesh의 개념으로 생각하는 것과 human nature로 생각하는 것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요?
[김용호] [오후 1:26] flesh는 영혼과 육체의 이원론적 의미로서의 육체, 즉 추악하고 더러운 것의 의미가 있고 human nature에는 인간들이 생각하는 선과 악의 이미지가 모두 포함되지. NIV는 실제로 싸르크스를 sinful nature로 번역하고 있어. 극단적인 오류지.
[임지웅] [오후 1:27] human nature와 sinful nature의 차이가...
[김용호] [오후 1:29] sinful nature는 human nature중 인간이 보기에 악한 본성의 부분만 성경에서 지적하시는 것으로 보는 번역이라 할 수 있지.
[임지웅] [오후 1:29] 아. sinful과 human 사이에는 인본주의적 관점이 있는 것이군요. 그렇다면 flesh와 human은 flesh는 육체라는 뜻도 있지만 인성이라는 부분도 의미가 있는데 거기에 human nature로 볼 때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김용호] [오후 1:31] human nature로 번역하면 인간의 마음에서 나오는 모든 것이 악하다는 말씀과 논리가 일치하게 되는 장점이 있어. 반면에 flesh나 sinful nature로 번역하면 인간의 일부 문제가 있는 점을 지적하는 의미가 되고 말지. 서구 신학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말씀에 지독하게 집착하고 있어. 그래서 타락의 개념을 pollution이라고 대부분의 신학자들이 규정해. 깨끗한 인간 본성 중 일부 오염되었다고 보는 거지.
[임지웅] [오후 1:34] 육적 욕심과 영적 욕심으로 구분할 수 있는 건가요?
[김용호] [오후 1:35] 그보다는 도덕적 성향과 비도덕적 성향의 둘로 보는 거지. 그들의 선 개념은 도덕 개념이니까. 양심 개념이라고도 할 수 있고. 성경은 인간의 양심도 인정하지 않는데 저렇게 고집들을 부리는 거야. 서구 신학의 주류는 어제 말한 이분설과 삼분설 중에서 이분설을 채택하고 있지. 따라서 그들은 영과 혼을 구분하지 않아. 인간의 영혼이 선을 택하기도 하고 악을 택하기도 한다고 보는 거지.
[임지웅] [오후 1:39] flesh는 육이라는 개념으로 번역해서 인간의 세속적 욕망은 잘못된 것이라 하고 영적 욕심은 가져야 한다고 기존 교회에서는 자주 얘기하는데 그 부분을 반드시 도덕적 개념이라고만 평가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김용호] [오후 1:40] 그건 그렇지. 그런데 그들이 말하는 영적이란 것의 의미는 사실은 혼 차원에서 종교적인 탐욕을 의미하지. 실제로 영적인 것을 의미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어. 인간의 종교는 영의 차원이 아니라 혼의 차원이거든. 표현만 영적이라고 하는 것뿐이야.
[임지웅] [오후 1:41] 우리 관점으로는 도덕적인 부분만 잘못된 게 아니라 인간에 대한 관점 자체가 잘못됐다고 보는 게 맞지 않나 해서 드린 말씀입니다. 도덕적인 부분만 잘못된 것이 아니라 도덕이라 생각하는 그 관념 자체가 잘못되지 않았나 하는... 다만 도덕적인 부분이 아니라 도덕이라고 생각하는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 아닌가하고요.
[김용호] [오후 1:43] 정답~^^
[임지웅] [오후 1:43] flesh라고 번역을 하면 육적 욕심은 버려야 할 것이지만 영적 욕심은 오히려 칭찬 받아야 할 것이라는 말을 당연히 할 수밖에 없겠구나라고 이해를 했습니다. 자기 스스로의 의를 삼게 되는 결과.
[김용호] [오후 1:44] 맞아. 바로 그 점이야. flesh는 인성 중 일부를 의미하는 단어이기 때문에 문제가 심각한 번역이 되는 거지.
[임지웅] [오후 1:45] 그렇다면 아담이 태초에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human nature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었지만 죄를 범한 이후 human nature를 구성하는 모든 부분-영, 혼, 육-이 타락하게 된 것이라고 이해를 하면 되겠습니까?
[김용호] [오후 1:46] 맞아~^^
[임지웅] [오후 1:47] 그리고 기존의 교회는 육적인 부분만이 부분적으로 오염됐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아직 남아있으니 노력하면 어쩌구 저쩌구 하는 것이구요.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개념을 보면 전작 타락이 더 논리적이네요.
[김용호] [오후 1:47] 그렇지^^
[임지웅] [오후 1:48] 저들은 그래서 빨래방에서 “부분세탁만 해주세요”라면서 기존교회를 이용하는 것이고 우리는 표백제까지 탈탈 털어 넣어서 완전히 물을 빼야 한다는 것이고요.
[김용호] [오후 1:48] 빙고~^^
[임지웅] [오후 1:48] 전도사님. 제가 자꾸 뭔가 질문을 하는 것을 이해해주시길...
[김용호] [오후 1:49] 아~ 좋은 일이지.
[임지웅] [오후 1:49] 저는 논쟁이나 토론을 통한 학습이 (하나님 앞에서 제 논리를 따지는 게 우스운데요) 저도 때를 벗으려면 이런 방법이 제게는 제일 잘 맞는 듯해서 ㅎㅎ
[김용호] [오후 1:50] 딱 우리 체질이야~ ㅋㅋ 우리 오후 프로그램에 딱 맞아~^^
[임지웅] [오후 1:50] 검은 빨래와 흰 빨래를 같이 돌리면 흰 빨래도 버리니 검은 빨래는 빼내야겠죠. 그게 공동체고요. 빨래는 함께 돌려야 더 잘되니 공동체 안에서 함께 돌려야 되고 서로에게 비벼지는 효과...
[김용호] [오후 1:51] 그래~ 서로 본이 되니까.
[임지웅] [오후 1:51] 시시때때로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세제와 표백제.
[김용호] [오후 1:51] 오우~ 정확한 비유야.^^
[임지웅] [오후 1:52] flesh와 human nature / sinful nature에 대한 궁금증은 해결됐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용호] [오후 1:52] 우리는 논리 빼면 시체야.
[임지웅] [오후 1:54] 네. 왜 하나님의 비논리적-세상 사람들의 기준-이고 기적 같은 부분에만 집착을 하는지 알듯 모를 듯.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계가 규칙을 가지고 운행하는 것 자체가 참 논리적인 분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용호] [오후 1:52] 우리가 가장 혐오하는 말이 믿으면 알게 된다는 말이지. 논리적으로 설명도 못하면서 무슨 복음을 전하겠어.^^ 자기들이 이해가 안 되니까 그렇게 말하는 것뿐이야. 얼버무리려고~ ㅎㅎ
[임지웅] [오후 1:55] 네. 그게 제일 싫었어요. 누구도 설명을 못해줘요. 제 질문에... 형제님 믿음이 성장하면 일게 됩니다. 지금은 거기까지 알 필요 없어요.
[김용호] [오후 1:56] 물론 우리가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어. 따라서 알게 된 것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나머지는 아직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옳지.^^
[임지웅] [오후 1:57] 물론 하나님께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행하시기도 하겠지만, 기본적으로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아시니까 기본적인 것은 논리적으로 이해를 할 수 있게끔 하시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용호] [오후 1:57] 동의~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논리적으로 서술한 책이지. 암호문이 아니거든. 베드로 사도도 함부로 해석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지 해석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거든.
[임지웅] [오후 2:02] 물론 우리 능력으로 다 알 수 있게 해놓으신 것은 아니니까 조심해야 하는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전도사님 말씀처럼 아는 건 안다, 모르는 건 쿨하게 모른다. ㅎㅎ 어쩌면 하나님이 던져주신 칼이 성경인지도 모르겠네요.
[김용호] [오후 2:02] ^^
[임지웅] [오후 2:25] 전도사님 또 궁금한 게 프뉴마, 프쉬케(제가 아이디로 사용하는), 싸르크스 이 세 가지가 모두 전적으로 타락을 했는데 왜 싸르크스만이 노예의지의 주인을 차지 한 것인지...
[김용호] [오후 2:28] 영혼육의 개념과 싸르크스의 개념은 다른 차원의 개념이야.
[임지웅] [오후 2:28] 아~ 싸르크스를 휴먼 네이쳐로 말씀하셨으니까 영혼육은 그럼 싸르크스를 이루는 집합요소로 봐도 될까요?
[김용호] [오후 2:29] 나도 그렇게 설정하고 있어. 설정하고 있다는 의미는 치밀하게 검증은 못하고 추론하고 있다는 의미야. 성경에서 말이야. 우리의 과제라고 할 수 있지.
[임지웅] [오후 2:30] 네. 저는 성경은 전도사님만큼 모르지만 근데 그렇게 추론하는 게 합당하다고 생각이 드네요. 서구기독교는 전체를 보지 못하고 육이라는 부분에만 천착하고 있는 것이구요.
[김용호] [오후 3:05] 이 부분에서도 서구 신학의 주된 오류는 인간 긍정의 헬라철학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고 보고 있어. 그리고 그 뿌리는 독자적인 선악체계고. 인간의 정신은 고귀하고 육체는 추하고 더럽다는 헬라적 이원론적 사고의 영향도 크지.
[임지웅] [오후 3:11] 네. 인간긍정이 문제의 큰 원인인 것 같습니다.오전에 맑시즘에 대해서 얘기가 나왔던데 사실 주류경제학도 인간긍정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김용호] [오후 3:12] 그렇지. 인간이 서로 믿을 만하니까 이렇게 세상이 유지되고 있는 것 아닌가~라고들 생각하지만 사실은 공멸을 피하려는 잔꾀인 거지. 슈퍼컴이 그 정도는 계산해내니까~ 가끔 멍청이가 있어서 일을 꼬이게 만들기는 하지만 말이야. 하나님이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저들이 꾀를 낸 것이라~~
[임지웅] [오후 3:16] 합리적이라는 말이 어찌 보면 인간 긍정이나 진실을 바라보지 못하게 막는 무서운 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용호] [오후 3:17] 빙고~ 핵심이야. 어둠의 시스템에서 작동하는 인간의 지혜, 이성, 합리성 등이 일을 꼬이게 한 주범이라 할 수 있어. 정확한 성경 독해부터 방해하지. 어둠 속에서 해석한 성경~ 어둠 속에서 하는 자기 성찰~
[한금옥] [오후 7:15] 임지웅 형제님 저희 오후 프로그램에 같이 참여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카톡 보다 직접 들으면서 저희들의 궁금증을 논리적으로 질문 해 주신다면 땡큐 하겠습니다. (전 글보다 듣는 게 더 좋아요.) 빨래 비유 또한 정집사님을 위협 하시는군요. ㅋㅋ
[임지웅] [오후 7:18] 전 말보다는 글이 조금은 더 나은 사람인데...ㅎㅎ 저도 곧 그 날이 오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재촉하시는 게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ㅋㅋ 감사합니다.
[정진호] [오후 7:27] 비유의 달인 칭호를 넘겨줘야 할때가 온것 같아 무척 기쁘네요.^^ 세탁기 비유에서 뻑~ 갔습니다. ㅋㅋ
[김용호] [오후 7:28] 이번 주일 오후 프로그램은 "싸르크스 어휘 연구"입니다. 싸르크스는 구야의 히브리어 바사르의 번역어이므로 구약의 바사르와 신약의 싸르크스의 용례들을 펼쳐놓고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싸르크스의 용례들 중 대표적으로 우리를 당황하게 하는 용례는 싸르크스가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해야 하는 타락한 죄악된 인성을 의미함과 동시에 예수님의 강림을 묘사하는 데에도 사용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셨다고 할 때 육신이 싸르크스의 번역입니다. ㅠ예수님의 종의 형체를 입고 오셨으나 죄는 없다고 사도 바울이 설명하고 있으므로 우리를 당황케 만드는 것이지요. 이번 주일 오후에 다함께 어깨동무하고 마이~ 당황합시다. 성령께서 우리의 눈을 열어주시고 더 깊은 깨달음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하실 것을 믿습니다
[정진호] [오후 7:31] 사르크스도 원래 가치중립적인 단어인가 보지요? 기대하겠습니다.
[김용호] [오후 7:33] 이번 오후 프로그램은 지웅 형제가 단초를 제공했네요. 감사~ 꼭 필요한 프로그램이었는데 말이지요.^^ 지웅 형제는 혹 참석이 여의치 않으면 자료와 녹음 파일을 메일로 보내줄게.
[임지웅] [오후 7:36] 요즘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요. 걱정이 됩니다. 아직 만나지도 못했으니 이런 걱정이 오바긴 한데 다담주쯤에 그 분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데 요즘은 걱정이 되는 게 저는 맛이라도 봤는데 기존 교회에 너무 열심히 빠진 사람을 만나면 얼마나 힘들까 이런 생각이 드네요.
[김용호] [오후 7:39] 휘석 형제님의 명언 소개 “차라리 교회 안 나가는 사람이 낫겠어요.” 세 여성분과 맛선을 본 소감이었지.
[임지웅] [오후 7:40] 결혼의 문제에 있어서 믿고 안 믿고는 우리 공동체 기준에서는 중요한 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열심인 사람이 더 위험하다고 하신 점에 요즘 공감하고 있습니다.
[김용호] [오후 7:41] 교리에 세뇌된 사람은 참 힘들어.
[임지웅] [오후 7:42] 사실 교리도 아니죠. 그 부분이 과거 내가 들었던 내용과 달라서 참 이해하기 힘들었어요. 자기 입맛대로 교리.
[김용호] [오후 7:42] 전문 용어로 잡신 신학^^
[정진호] [오후 7:43] 오늘도 누구와 통화하는데 내가 크게 웃지 않을 수 없었던 내용을 소개합니다. 아들이 군대 갔는데 그 아들이 엄마하고 그렇게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아이였어요. 훈련소에서 기도제목이 뭐였냐 하면 “제발 철원에 배치되지 않게 해주세요. 그리고 보병 되지 않게 해 주세요”였어요. 엄마하고 열심히 기도를 했는데 철원에 보병으로 배치되었어요.
[김용호] [오후 7:46] ㅋㅋ 응답 제대로 받았군요.
[정진호] [오후 7:47] 면회 가서 엄마하고 아들하고 붙잡고 그렇게 슬프게 울었대요.ㅎㅎ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어떻게 이렇게 기도에 응답해주시지 않나 하구요.
아이가 배치 되서 자대 생활 어느 정도 하고나서 아들한테 전화가 왔어요. 부대 고참들이 너무 좋고 주말에도 아무것도 안하고 휴식을 주고 생각보다 너무 좋다고 전화가 왔대요. 그랬더니 역시 하나님은 우리 기도를 다 들어주시고 우리는 모르지만 더 좋은 것으로 응답해주시는 너무 좋으신 하나니이라고... 그런 하나님은 하나니라고 불려도 되겠지요. ㅋㅋ 그 엄마는 내가 듣기로 모태신앙이고 지금도 주 5일 교회에 나간대요. 이런 실상이 과연 그 집만의 일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신앙생활에 만족하며 살고 있더라구요.
[김용호] [오후 8:02] 그렇습니다. 공양미 삼백석 신앙입니다. 잡신 신학의 정수지요. 그러한 종교생활을 본회퍼가 기계장치의 신(희랍 연극 무대에서 짠~ 하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신)을 섬기는 신앙생활이라고 꼬집었었지요. 물론 본회퍼는 완전히 거꾸로 방향을 잡아 휴머니스트가 되자고 엉뚱한 주장을 했지만요.
[정진호] [오후 8:07] 그런 신앙생활에서 빠져 나왔다는 게 참 기적 같아요.
[임지웅] [오후 8:07] 그런데도 여전히 그렇게 구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자기 자녀들에게 베풀어 주신다고 말을 하죠. 사람들은 아멘으로 화답하구요. 늘 하는 얘기가 있죠...하늘의 새도 길가에 풀도 입히시고 먹이시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들이랴.
[임지웅] [오후 8:09] 전도사님 질문이 또 하나 있습니다. 저번에 저희 교회에 새로 온 청년이 하나 있었어요. 몇 번 나오다가 근데 자기는 술과 담배를 하는데 도저히 그게 마음에 부담이 되서 못나오겠다고 하더라구요. 근데 뭐라 할 말이 없더라구요.
[김용호] [오후 8:11] 술 담배 그거 선교사들이 만든 일종의 터부야^^ 중국 선교사들은 아편을 터부로 선택했지.
[임지웅] [오후 8:11] 어떻게 보면 철면피처럼 자기를 위해서 교회를 다니는 사람보다 더 나은 건가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김용호] [오후 8:11] 아~ 그 점^^
[임지웅] [오후 8:12] 네. 질문이 2개입니다.
[김용호] [오후 8:13] 신에게 치성을 드리는 방법은 두 가지야. 하나는 재물, 다른 하나는 도덕적 삶인데 둘 다 잡신신학이지. 하나가 더 있었는데 요즘은 없어졌어. 자식을 제물로 바치는 것.ㅋㅋ
[임지웅] [오후 8:14] 술 담배를 금하는 것은 보수기독교에서 동성애에 그렇게 목을 매는 이유와 별로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김용호] [오후 8:15] 맞아. 모두 터부 개념이지. 신에게 속한 자라는 표지~ 그것도 일종의 치성이야.
[임지웅] [오후 8:14] 그럼 과연 술 담배를 막 하는 건 괜찮은 것인가요? 동성애가 터부지만 동성애를 할 수는 없듯이 술 담배도 그런 건가 아님 다른 건가 알쏭달쏭 하네요.
[김용호] [오후 8:16] 일상의 삶과 건강을 해치는 정도면 죄지.
[정진호] [오후 8:16] 이런 식의 설명을 하는 걸 들었어요.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 몸을 어떻게 굴뚝으로 만들 수 있나? 혹은 어떻게 술독으로 만들 수 있나?
[김용호] [오후 8:17] 콜라 통이나 커피 통으로는 잘들 만들던데요? ㅋㅋ
[임지웅] [오후 8:17] ㅋㅋㅋㅋㅋㅋㅋㅋ 정말 촌철살인이시네요. 제가 다른 곳에서 써먹어도 되겠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얘기하면 아마 그 거랑 그 거랑 똑 같냐? 이럴 겁니다.
[김용호] [오후 8:18] 실제로 몰몬 교도들은 물과 우유만 마셔. 기호식품도 술 담배와 동일하게 취급하는 거지. 하려면 그 정도는 하든가~
[임지웅] [오후 8:18] 오~ 새로운 사실을 알았네요.
[김용호] [오후 8:20] 사람들이 참 야비한 거야. 동성애 비난이 대표적 사례지.
[임지웅] [오후 8:20] 사실 정집사님이 말씀하신 사람들의 논리면 어떻게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 몸에 감히 죄악을 품을까요. 그거야말로 정말 큰 죄일 텐데 말이죠.
[정진호] [오후 8:21] 그렇지. 동성애는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이 열거한 23가지 죄악된 사례 중 하나거든. 그런데 거기에는 수군수군하는 것도 들어있어. 동성애와 수근수근하는 것이 동일하게 예시되어 있는 거지. 한 마디로 모든 인간은 꼼짝말라는 것인데 거기서 동성애만 쏙 빼내서 지적질을 하는 거야. 왜냐하면 자신 있는 게 그것밖에 없거든. 야비한 인간들~~
[임지웅] [오후 8:23] 술 담배에 대해서 누구도 답을 제대로 안 해주고 그냥 하면 안 된다고 해서 그렇게 알고 지내왔었는데 얼마 전에 위에 말씀드린 청년 일을 겪고 자료를 좀 찾아봤더니 우리나라에 처음 왔던 선교사들이 술 담배를 했다는 걸 보고 놀랐었거든요. 왜 조선인들에게만 그랬던 것일까요?
[김용호] [오후 8:24] 술 담배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고 전략이니까.
[임지웅] [오후 8:25] 난 달라. 이런 전략?
[김용호] [오후 8:25] 일종의 속박 전략이지. 좋게 말하면 결속시키기 위한 전략. 그러니 이미 결속되어 있는 자기들은 지킬 필요가 없지.
[임지웅] [오후 8:26] 그런데 죄에도 등급이 있을까요? 우리의 죄성에서 나오는 것은 크든 작든 다 같은 죄 아닌가요? 전도사님이 숨 쉬는 것도 죄라고 하신 차원이 그런 게 아닌지요.
[김용호] [오후 8:27] 죄의 뿌리가 동일하지. 단 성경에서 구분하는 기준은 있어. 죽음에 이르는 죄이에 대해서는 중보기도하지 말라고 요한 사도가 말씀하지. 아마 배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보고 있어.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가 해당되지 않는다는 의미니까.
[임지웅] [오후 8:29] 배교는 무엇일까요? 기존 기독교도 어떤 관점에서는 배교 아닐까요?
[김용호] [오후 8:29] 넓게 보면 그렇지만 좁게 보면 두 가지야. 1.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 2. 예수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부인하는 것. 잡신 신학은 송아지 숭배에 해당되는데 그것이 세 번째에 들어가는지는 잘 모르겠어. 엄격하게 십계명을 적용시키면 사실 살아남을 인간이 없지.^^
[임지웅] [오후 8:31]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얻었습니다. 두 번째는 자기를 정죄하며 떠나간 자와 기존의 교회에서 그 청년을 정죄하는 자 중 누가 더 불쌍한 것인가...둘 다 불쌍한 것이겠죠?
[김용호] [오후 8:32] 왜 남의 하인을 판단하느냐~ 네가 율법의 심판자냐~ 등의 말씀이 있고 자기 정죄의 경우는 교만이야. 자기가 그것밖에 안 된다는 것을 인정 못하는 교만한 소경인거지.
[임지웅] [오후 8:34] 제가 자기정죄 때문에 한동안 엄청 힘들어했었는데요.
[김용호] [오후 8:35] 자기 정죄에서 빠져나오는 것도 사실은 기적이야. 이론상으로는 이해가 되어도 실제로 빠져나오기는 힘들어. 왜냐하면 자기가 우주의 심판자 자리에 앉아 있기 때문이지.
[임지웅] [오후 8:36] ㅎㅎ 포기한 거죠. 니 주제에 뭘 판단하냐... 아님 뭣도 모르고 철면피가 되버린 건지.
[김용호] [오후 8:36] 전자가 정답입니다. 형제님^^ 사실은 전자와 후자의 자리를 왔다 갔다 해.^^
[임지웅] [오후 8:37] 궁금증이 풀렸습니다.^^ 초등학교 때 쓰던 표준전과 동아전과 혹시 아세요? 이 방은 제게는 전과 같은 방입니다. 딸랑딸랑~
[김용호] [오후 8:38] 오호~ 깔끔한 아부^^ 아주 좋아~ ㅎㅎ
[임지웅] [오후 8:40] 주님의 교회에 합류하는 것은 사실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여전히 두려워요. 두려움이 깨질 날을 소망하겠습니다.
[김용호] [오후 8:40] 아멘~!! 뭐든지 자연스럽게~~ 그게 성령의 인도를 받는 방법 중 하나야. 입술을 깨물었다간 뒤탈이 나는 수가 있거든.^^ 자기 열심은 아주 위험하지. 물론 게으름 경계는 필수~ 종이 한 장 차이라서 구분이 어렵긴 하지만 말이야. 이게 지금 내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가는 건지 아니면 게으른 건지~ ^^
[임지웅] [오후 8:44] 저는 아직 힘이 많이 들어가 있어서 ㅎ
[김용호] [오후 8:46] 화이팅!!!!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