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남편은 다섯 포기 수박 모종을 심은 뒤 자식처럼 애지중지 들여다보고 물을 주었다. 인터넷에서 열성으로 배운 수박의 아빠줄기와 아들줄기를 운운하며 줄기와 꽃을 솎아내었다. 놀랍게도 다섯 개의 수박이 열렸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는 아이들처럼 수박도 우리의 눈을 의심할 만큼의 속도로 커갔다.
수박이 내 손바닥 만해졌다. 초록빛과 연두빛이 섞인 줄무늬는 선명했다. 조심스레 만져보고 들어보았더니 제법 묵직했다. 수박 아래쪽 땅이 축축했고 그 땅에 닿은 수박의 표면은 무늬가 뭉개져있고 색깔도 칙칙했다. 물기까지 느껴졌다. 바람이 부족하다는 증거였다. 아래쪽을 받쳐주어야 할 때임이 분명했다. 짚으로 똬리를 만들어 주셨던 어머니가 생각났으나 7월은 볏단을 구하기가 어려운 시기였다.
주변에서 쉬이 구할 수 있는 풀이나 칡덩굴을 염두에 두고 있는 중이었는데, 이른 아침 산책길에서 운 좋게도 누군가 베어 길섶에 던져놓은 억새 더미를 발견하였다. 억새는 본디 뻣뻣하다. 하지만 베어낸 지 오래 된 듯 줄기가 마르고 구부릴 만큼은 부드러웠으며 길이가 길어서 둘둘 말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시골에서 자란 내게 똬리는 익숙한 물건이다. 아버지의 경사진 너른 수박밭에는 풀줄기나 짚으로 만든 투박한 똬리가 어김없이 있었다. 참외밭에는 지푸라기를 두껍게 깔아 똬리 역할을 하게 했다. 울타리를 타고 자라나던 호박이 어머니가 옥수수줄기로 엮은 똬리에 앉아 번듯해지고 누렇게 익어가는 모습은 부잣집 안방마님이 비단 방석에 앉은 자세였다. 들일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새참이나 점심을 광주리에 담아 이고 가시던 어머니 머리 위에는 어김없이 수건으로 만든 똬리가 있었다.
똬리는 생각만큼 쉽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서울에서 자란 그보다는 시골에서 자란 내가 똬리를 많이 보고 자랐으므로 더 잘 만들거라는 생각이 억지였을까. 모기가 정강이를 물어뜯는 것도 모를 만큼 애를 썼지만 억새는 뻣뻣했고 잎사귀는 자꾸 삐져나와 손바닥이 얼얼해졌다. 잘하네 잘해. 옆에서 추임새를 넣어주는 그가 없었으면 아마도 나는 그냥 집어던졌을지도 모른다. 모양새가 들쑥날쑥하고 크기가 다른 엉성한 똬리 다섯 개를 만들었다.
산책길에 들고 다니는 막대지팡이에 다섯 개의 똬리를 끼우더니 그가 어깨에 맸다. 처음이지만 수박에 받쳐줄 똬리를 만들었으니 그는 개선장군처럼 으쓱거렸고 나는 그의 옆을 따르는 졸개처럼 촐랑거렸다. 길가 밭에서 일을 하고 계시던 산 끄트머리 집 아저씨가 참으로 똬리를 오랜만에 본다고, 서울 사람이 그런걸 다 만들었느냐고 놀라운 표정으로 한 말씀 하셨다. 똬리를 다 만드셨네요. 똬리를 보고 똬리라 말하는데 왜 그리 우쭐하던지 우리는 의기양양해져서 산길을 내려왔다.
서둘러 수박밭으로 들어갔다. 수박이 다칠세라 그는 수박을 얌전하게 들어 올리고 나는 똬리를 조심스럽게 놓아주었다. 의자를 놓아주었다. 맨 땅에 닿은 수박보다 훨씬 품위 있고 보송보송해 보이고 의젓해보였다. 괜한 웃음이 솟구치는데 옆쪽 참외밭에 참외가 조그만 얼굴을 들어 내게 묻는 것이었다. 제 의자는요?
이정록 시인의 '의자' 라는 제목의 시가 생각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어머니의 말씀이 전부 시여서 받아적기만 하면 된다고 말하던 겸손한 시인의 시는 그래서인지 한없이 정겹고 푸근하다.
의자 이정록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있는 것이여//주말엔/아버지 산소에 다녀와라/그래도 큰애 네가/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싸우지 말고 살아라/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 놓는 거여//
수박 다섯통을 번듯하게 길러내서인가. 수박 기르는 재미를 알게 된 남편이 올해도 수박모종을 심는가싶더니, 수박밭을 드나드는 발길이 잦아지기 시작이다. 사랑하는 여자라도 된다는 듯 그쪽으로만 눈길을 보내기 시작이다.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함흥차사이기 시작이다. 그 정성과 발길 덕분에 수박이 맺히기 시작이다. 하나 둘 셋 넷 이십 개가 이미 열렸다고 소리를 높여 막내아들처럼 흥분해서 자랑하기 시작이다.
침을 튀겨가며 자랑을 하더니 이틀 뒤 택배가 왔다. 수박 받침대란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동그스름한 초록색 받침대로 구멍이 숭숭 뚫려있다. 똬리든 플라스틱 받침대든 수박이 편안하게 앉게 해줘야 보기 좋게 잘 크는 것은 맞는 일이니 사실 나무랄 것은 없다. 그럼에도 왜 나는 심기가 뾰족해졌을까? 잘 사셨습니다 기대하겠습니다 말은 억지로 그렇게 하면서도 흥 두고 봐야지 수박 댓 포기 심어놓고 뭘 받침대까지 샀을까 여기저기 지천인 풀을 베어 대충 만들어 쓰면 되지. 솔직하게 마뜩잖은 마음이었다. 그렇지않아도 나무가 자라면서 그늘이 많아져 텃밭이 어둑한 터라 나무를 잘라낼 곳이 많은데 수박밭에만 매달리는 그를 못마땅해하는 중이었다.
사실 나는 수박보다는 꽃을 일 순위로 좋아한다. 종자골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텃밭으로 들어가고 나는 꽃한테로 간다. 채송화를 볕이 좋고 바람이 잘 통하는 장소로 옮겨심는다. 여섯 개의 화분에도 옮겨심는다. 수돗가 옆 텃밭 울타리에도 심는다. 나의 그런 행동에 대해 그가 불만을 말한 적이 있던가. 없다. 혼자 텃밭에 가게 되어 처음으로 꽃이 핀 것을 먼저 보는 날에는 내게 사진을 보내준다. 꽃에 대한 아내의 관심에 편들어 줄 줄 알다. 내게 편안한 마음의 똬리가 되어준다. 나는 왜 매번 그의 발을 걸고 싶어지는가.
수박밭에 들어간 그가 오래도록 쭈그려 앉아있다가 엎드렸다가를 반복하고 있다. 무엇을 하는가 궁금하던 차인데, 그가 고개를 들더니 수박 받침대 20개중 16개를 사용했다고 소리친다. 수박이 16개 열렸다는 말인데 그의 얼굴이 상기되어 있다. 어릴적 운동회날 달리기에서 일등을 하여 공책과 연필을 받은 내가 어머니에게 달려갈 때 얼굴 같다.
제법 큰 것은 점잖게 받침대 위에 앉아있다. 작은 수박들은 받침대에 앉아있는 모양새가 앙증맞다. 그 중 아직 꽃도 떨어지지 않은 새끼손톱만한 수박이 떡하니 받침대 위에 올라 앉아있다. 기가막히다는 웃음이 나오려는 찰나에 그가 수박을 얼마나 애지중지하는지가 보인다. 칭찬을 해야 할 순간이 아닌가. 여보여보 어떻게 저렇게 안성맞춤으로 해 놓았대요 잘했네 잘했어요. 사실 내가 그의 편이 되지 않는다면, 그의 마음의 똬리가 되지 않는다면 누가 되어 줄 것인가. 똬리에 앉아 잘 익어가는 수박처럼 아내의 말 한마디를 똬리 삼아 편안하게 크고 둥근 웃음을 짓는 그를 보라.
그러고 보니 내가 이만큼 꾸덕뚜덕하게 잘 살고 있는 것은 내게 똬리가 있어서였다.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 언니, 오빠, 그리고 지금은 남편이라는 똬리 때문이리라. 글을 쓰는 자리를 지키려고 애쓰는 것은 스승이라는 든든한 똬리 덕분이다. 유튜브에 수필낭독의 문을 열게 된 것도 서른두번째 수필을 쓰고 낭독할 수 있는 것도 친구라는 똬리가 변함없는 따스한 관심으로 나를 받쳐주어서다. 나 역시도 자식의 의자요. 부모님께서 늙고 병드셨을 때 부족하나마 의자가 되어드리려고 노력하였다.
세상에는 의자가 많다. 아프고 고달픈 이의 의자인 사람, 숲속 의자 같은 사람, 골목길에 낡은 의자 같은 사람, 동네 한가운데 느티나무 그늘 같은 의자인 사람등 셀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의자로, 똬리로 살아간다. 세상이 모나지 않고 부서지지 않고 둥글게 돌아가게 하는 힘은 똬리에서 나온다.
한걸음 더 들여다보면 진실로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똬리로 살아가는 중이다. 얼마나 기특한가. 아침에 일어나서 거울을 보며 자신을 쓰다듬어주고 하루일을 끝내고 잠자리에 들기전 자신을 쓰다듬어 줘야 한다. 자신이 자신을 받쳐주는 진정한 똬리가 되어야 남을 위해서도 진정한 똬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