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천하(三日天下)를 꿈꾸다! (隨筆)
影園 김 인 희
여고시절 현모양처(賢母良妻)를 꿈꾸었다. 담임 선생님께서 장래희망을 적어 내라고 했을 때, 교사를 썼다가 지우고 공무원이라고 쓰고, 공무원을 썼다가 다시 지우고 현모양처라고 써냈다. 나름 깊게 생각하고 내린 결론이었다. 지금은 고리타분하다고 하겠지만, 삼종지도(三從之道)를 여자가 걷는 아름다운 운명이라고 여겼다.
결혼 후 현모양처(賢母良妻)가 되려고 몸부림쳤다. 임신 후 태교에 전념했고 아기를 양육할 때 가장 따뜻하고 편안한 보금자리 마련해 주고 싶어서 노심초사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집에 있는 엄마가 되어주겠다고 다짐하고 집에서 공부방을 운영했다. 그 아이들이 성장하여 대학생이 되었을 때, 가정을 벗어나 밖으로 직장을 다녔다. 결혼하고 30년 가까이 세월을 보내면서 가족과 동반한 여행 외에 가정을 떠나 본 적 없다.
내게 가족이란 나의 전부를 쏟아붓고 지켜온 우선순위다. 한 남자의 아내로서 그 남자의 눈언저리를 주목하고 살았다. 그 눈가에 웃을 때 잡히는 주름이 보기 좋아 그 사람 웃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보물 같은 두 자녀를 위하여 청춘을 고스란히 제물로 바치고 나르시시즘에 전율하고 있다.
자녀들과 올망졸망 맞비비고 지낼 때 현관에 수북하게 쌓인 흙먼지를 쓸어내면서 나란히 놓인 신발 네 켤레를 행운의 네 잎 클로버라고 생각했었다. 나는 가족을 가을 들녘 이슬 맞고 함초롬히 핀 들꽃이 바람에 흔들리듯 바르르 떨면서 지켜왔다.
요즘은 직장이 집과 근접해 있어서-걸어서 3분 거리- 집과 직장을 오가면서 우렁이 각시처럼 지내고 있다. 퇴근 후 집안일을 끝낸 후 컴퓨터를 켜고 이런저런 일을 마치면 자정이다. 마치 쳇바퀴에 갇힌 다람쥐처럼 가정과 직장을 오가면서 옴짝달싹 못 하고 있다.
딱! 삼일만 홀로 여행을 떠나고 싶다!
일상을 탈출하고 싶어 외친 외마디 비명이다. 文學은 나의 이상형, 나의 운명이라고 주창하고 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책 한 권 챙겨서 훌훌 떠나고 싶다.
바닷가에 닿았다면 창문을 열었을 때 바다를 볼 수 있는 숙소를 잡을 것이다. 그런 숙소를 정한 후 여장을 풀고 침대에 몸을 던지고 심호흡을 하겠다. 창문을 열어젖히고 파도 소리 방안에 가득 들여놓고 갈매기 울음소리도 초대할 것이다.
밤에는 내 베개 옆에 책을 두고 읽다가 자다가 또 읽다가 자다가 밤을 지새우고 싶다. 아침에 태양이 중천에 떠올라도 꼼짝하지 않고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늦잠 늘어지게 자고 해변을 산책하면서 모래사장을 맨발로 걷다가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싶다. 모래사장에 질펀하게 앉아서 모래성을 쌓고 조개껍데기를 줍고 소라껍데기를 줍고 세파에 시달린 생각을 모두 내려놓고 아이처럼 놀고 싶다.
해변에서 맞이하는 밤은 어떤 빛일까? 밤바다에서 보는 별은 어떻게 보일까? 낮에 듣던 파도 소리는 분명 밤에는 다른 소리를 내겠지? 다시 밤에는 책을 껴안고 읽고 자고, 자다가 다시 읽고 잠을 설치고 새벽에 잠들고 싶다.
산으로 여행을 떠난다면 어떨까? 통나무로 지은 산림욕장에서 여장을 풀고 창문을 열어 피톤치드를 한껏 들이키겠지. 이름 모를 산새들의 합창 소리 들으면서 고즈넉한 휴식을 즐길 수 있으리라.
산장에서도 밤에는 책을 끼고 잠을 청하지 않을 것이다. 창문을 열면 성긴 나뭇가지 사이로 별을 볼 수 있겠지. 밤에도 노래하는 새가 있을까. 풀벌레들이 날개 비비면서 노래하지 않을까. 정오에 태양과 인사하고 키가 큰 나무들 발아래 핀 작은 들꽃들과 눈을 맞추면서 낮게 걸으리라. 그 꽃잎 만져보고 살갗을 느껴보리라. 개미들의 행렬을 따라가 보리라.
서울에서 삼일을 지내는 것도 마다할 이유 없다. 가장 좋은 호텔을 숙소로 정하고 최첨단의 서비스를 누리리라. 영화배우처럼 욕조에 거품을 풀고 누워서 욕실 벽에 있는 TV를 시청하는 것이다. 폭신한 소파에 누워 영화를 감상하리라. <러빙 빈센트>, <사운드 오브 뮤직>, <스칼렛> 등 감동받았던 영화를 다시 봐도 좋을 것이다.
밤에는 바다에서처럼 산장에서처럼 서울에서도 책을 끼고 지낼 것이다. 책을 펼쳐 읽다가 딴청을 부리고 다시 책을 읽다가 자는 척하기를 반복할 것이다. 도시 한복판에서 모두 잠들고 고요해질 때까지 비몽사몽 책을 끼고 지새고 싶다.
서울에서는 낮에 갈 곳이 많을 것이다. 조개껍데기를 줍던 시간에 대형 서점을 배회할 것이다. 개미들의 행렬을 따라가던 시간에 전시회장에 갈 것이다. 백화점에 가면 구경거리가 많아서 시간이 부족할지 모르겠다. 하마 모르지. 명품 가방 손에 들고 나올지도...
만약에 내가 가족들에게 혼자서 여행 다녀오겠다고 한다면 까르르 웃으면서 손사래 칠 것이 뻔하다. 유독 겁이 많아서 혼자 지내지 못하는 약점을 들추어내면서 놀려댈 것이다. 휴~~
홀로 떠나고 싶은 여행, 삼일천하는 꿈이련가!
첫댓글 일상의 탈출이 로망이 되어 버린다 손 말릴 수 는 없는 일
3일 가지고 서야 ?
기왕에 나섰으면 "
그러나 세사람의 신발 생각에 하루도 견딜수 없을듯
늘 꿈 속을 헤매고 있습니다.
하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갖고 싶은 것
모두가 꿈꾸듯 간절한 것들입니다.
감사합니다. 원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