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부령)김씨 1897년 정유년 속간보 원형이정 4책 목활자로 席洞 聚星齋(취성재) 活印하였다.
元編편은 부안김씨 세보 가장 실록편이고, 형편, 이편, 정편은 족보 世係編이다.
扶寧金氏世譜. {卷1-8扶寧金氏承旨公派譜 編 高宗34(1897)}에 속간보로 보인다.
부령김씨 승지공파에 파조는 金直孫(1437-1493)
본관은 부안(扶安). 자는 자윤(子胤). 김광서(金光敍)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당(金璫)이고, 아버지는 사온서직장(司醞署直長) 김회윤(金懷允)이며, 어머니는 송광선(宋光善)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 어려서부터 도량이 크고, 자라면서 경사(經史)를 열심히 공부하여 1463년(세조 9) 생원시에 합격하고, 이어 1469년(예종 1)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검열에 제수되었다.
『예종실록(睿宗實錄)』 편찬에 참여하였고, 1472년(성종 3)에는 왕명으로 각사(各司)의 비위를 척간(擲奸)하였다.그 뒤 사부학당(四部學堂)의 교수가 되어 교육진흥에 힘썼다. 이어서 정언(正言)이 되어 유자광(柳子光)의 직첩을 환수할 것을 주장하였고, 안중좌(安仲佐)·홍이로(洪利老) 등의 부당한 임명에 서경(署經)을 거부하였다.그 뒤 외직으로 나가 한산군수로서 선정을 폈고, 다시 내직으로 옮겨 사도시첨정(司導寺僉正)이 되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하였다. 성품이 청렴강직하고 사치를 싫어하기로 소문이 나서 읍리(邑吏)들이 두려워하였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김직손(金直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