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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6월21~22일(土日)雲霧
▲용화산(龍華山)~▲오봉산(五峰山)*사진76컷
해봉산악회 38명
♠참 고
오봉산[五峰山]
위치 : 강원 춘천시 북산면, 화천군 간동면
높이 : 779m
문화재 : 청평사 회전문(보물 164)
청평산·경운산이라고도 한다. 《산경표》《동국여지지도》《대동여지전도》《세종실록
지리지》《동국여지승람》등의 문헌에는 청평산이라 되어 있다. 또 전설에 따르면 고려
시대 이자현이라는 사람이 이곳에서 도를 깨친 뒤 호랑이와 도적이 모두 자취를 감추었
다 하여 청평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도 한다. 지금의 이름은 비로봉·보현봉·문수봉·
관음봉·나한봉의 다섯 봉우리가 열을 지어 있는 모습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산 전체가 화강암 암봉으로 되어 있어 오밀조밀하고, 정상에 오르면 소양호가 보여 전망
이 좋다. 삼악산(654m)·봉의산(741m)과 함께 춘천의 명산으로 알려졌으며 소양강과 연
계하여 관광지가 조성되어 있다.
소양호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타고 5분쯤 들어가면 청평사가 있다. 이 절로 오르는 길목
에는 아홉가지의 청아한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는 구성폭포와 한국 연못의 시조로 손꼽히
는 영지(남지) 등이 있다. 청평사는 신라시대 아도화상이 창건했다고 하나 973년(고려
광종 24)에 승현선사가 개창하면서 백암선원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경내에는 보물 제164
호인 청평사회전문과 청평사극락보전 및 불각, 공주탑이 있다.
산행은 소양강댐에서 배를 타고 청평사 입구 선착장에 도착한 뒤 오른쪽으로 난 등산로
를 따라 정상에 오르고 다시 선착장으로 내려오는 것이 보통이다.
▲용화산(龍華山]
위치 : 강원 화천군 간동면(看東面)·하남면(下南面)과 춘천시 사북면(史北面)의 경계
높이 : 875m
이 산에는 용화산성이 있으며 산 밑에는 용화사와 용흥사(龍興寺)가 있다. 용마굴(龍馬
窟) ·장수굴(將帥窟) ·백운대(白雲臺) ·은선암(隱仙岩) ·현선암(顯仙岩) 등의 기암
이 많아 경치가 아름다우나 교통이 불편하다.
※지네와 뱀이 서로 싸우다 이긴 쪽이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 하여 용화산이라
이름 지어진 화천의 대표적인 명산이다. 용화산 준령과 오봉산 사이에 성불령이라는
고개가 있고 여기에 성불사 터가 있다. 옛부터 성불사 저녁 종소리와 용화산 안개와
구름, 기괴한 돌, 원천리 계곡의 맑은 물, 부용산의 밝은 달, 죽엽산의 단풍, 구운소의
물고기 등을 옛부터 팔경이라 불렀다. 산에는 광바위, 심바위, 꼭지바위, 주전자바위,
마귀할미바위, 바둑바위 등 실물을 방불케 하는 기암괴석이 있다.(산림청)
♣산행 코스
A팀 :
05:25 큰고개
06:15 용화산정상
고탄령~사야령~
11:05 배후령 (5시간40분)
~오봉산~
12:50 청평사
총 7시간25분(선두)
B팀 :
06:58 배후령
07:15 산불감시초소 (되돌아 나와)
08:07 1봉
08:29 청솔바위
08:50 오봉정상, 식사
09:25 구멍바위
09:39 청평사갈림길
10:00 119신고5지점, 부용계곡갈림길
11:12 마지막 쇠사슬
11:22 청평사 주목
총 4시간24분
☞☞☞☞중앙고속도로가 개통하기 전에는 감히 무박2일로도 벅찬 호반의 도시, 춘천지역의
산행. 소양호를 낀 오봉산과 용화산을 산행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벼운 기대를 가지고 참여.
부산지역에서는 처음으로 개척하는 산행지라는 정 대장, 김 성수대장이 2박3일의 직장
휴가를 얻어 현지답사를 다녀와 가능했다고 알려줍니다.
가로등이 화려한 시민회관 앞의 가야고속 관광버스 안에는 신 고문, 조 회장 내외분이
모처럼 참여 먼저 도착해 앉아있고 오래 동안 못 보았든 낯익은 회원들의 모습에 반가운
인사들을 나눕니다.
오 지호님이 모임이 있어 불참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여분의 캠코더는 정 대장이 촬영하고
카메라는 이 종원군이 찍기로 의논이 되어 마음 편하게 오봉산만 타기로 했지만 아무래도
내일은 디카까지 촬영해야 하기 때문에 분주한 하루가 될 것 같습니다.
모처럼 이 대장이 양산시외버스 정유소에서 승차를 하고 언양휴게소에 들리면서 북한산을
간다는 윤 춘우님과 오랜만에 인사를 나누고 다시 달리면서 지난번 낙동정맥종주 종합비
디오를 보다 자정을 지나면서 비디오를 끕니다.
대구I/C에서 중앙고속도로로 꺾어 올라 훤히 뚫린 고속도로를 달려 안동휴게소와 단양휴
게소에 들리고 깜박 잠이 들었다 눈을 떠니
03시48분, 춘천T/G를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자욱한 안개속의 먼동이 트이기 시작하는 국도를 따라가다 꼬불꼬불한 급경사 길의 아스
팔트 도로공사가 중단된
큰 고개에 당도한 게
05시13분, 주위는 완전히 밝아져있습니다.
도로가 끝나는 지점에 승용차 두 대에 나누어 타고 온 일단의 중년등산객들이 둘러앉아
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A코스(큰고개~배후령~오봉산~청평사)를 탈 회원 20명이 내리고
나머지는 배후령으로 가기위해 되돌아 내려갑니다.
배 기사 대신 나온 가야고속관광버스의 기사님이 초행길이라 지도살피기와 오음리
삼거리에 새벽잠에 문을 잠가놓은 파출소에 들려 문의하는 등 46번 국도를 따라 올라가다
‘오봉산휴게소’에 들려 잠시 용무를 보고 다시 고개 길을 올라
도로 건너편에 38선 표지석이 서있는
문이 잠긴 ‘오봉산수’휴게소 앞을
06시37분에 도착합니다.
▶▶먼저 ‘큰고개’에서 출발한 A팀의 산행기는 정 대장이 촬영한 비디오와 이 종원군이
자동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을 참고하여 역어나갑니다.
각자 산행준비와 가볍게 몸 풀기를 마치고
05시25분, 화천군에서 마련한 좌측 ‘용화산등산안내도’간판이 세워져 있는 가파른
기슭으로 올라갑니다.
‘입구정상930m’간판을 거쳐 좌로 밧줄이 내려져 있고
5시30분, 모가 없는 바위 길의 밧줄이 계속 이어집니다.
5시33분, 오른편으로 밧줄 끝의 안개 속에
여기가 새남바위인가
안락의자 같은 바위에 정 대장 부인이 마음의 여유를 갖고 앉아 기념촬영을 하고
5시37분, 오른편으로 휘어진 청솔을 품에 안은 안개구름속의 만장봉이 신비스럽게 그
위용을 살포시 자랑합니다.
5시50분, 너럭바위에서 회원들이 퍼질고 앉아 뒤편의 안전가드레인 벼랑을 배경으로
단체 기념촬영하고
6시08분, 흙길을 오르다 ‘유촌리218m’의 노란 이정표를 지나치고
얼마가지 않아 등산로 변에 열린 오디를 발견한 회원들이 오디를 따먹으며 올라갑니다.
6시15분, 스텐리스 스틸로 만든 ‘용화산정상해발878.4m'의 정상비와 석축 바탕의 큼직한
네모난
정상석비(龍華山)에서 다시 단체 기념촬영을 하고 출발하면서 인원파악을 하는데 최 금련
회원 등 두 사람이 보이지 않아 두런두런 걱정을 합니다.
그 통에 정 대장이 캠코더의 스위치를 끄지 않아 계속 선체 땅바닥만 촬영됩니다.
두 사람은 기념촬영도 않고 선두를 제치고 직진하여 몇 분 동안 K2C, 히말리야 등의 이
름이 나오고 고함을 쳐 부르는 소리도 나왔으나 반응이 없고 불안속의 10분 뒤, 뒤쫓아
간 회원들과 함께 나타납니다.
지도상의 직진코스만 생각하고 안개 속으로 곧장 갔는데 한참 내려가다 아니다 싶어 되
돌아 나오다 만났다며 반갑고 미안하다며 인사하고
6시30분, 정상에서 10여m 되돌아 나와 고탄령으로 향합니다.
6시35분, 흙 비탈길을 촬영합니다.
6시52분, 암능의 고사목과 우측 벼랑 끝에서 촬영하다
7시, 오른편으로 벼랑옆길을 조심스럽게 통과하고
7시11분, 흙길의 된비알을 오릅니다.
바위사이 길의 오름을 거쳐 암능을 지나고
7시30분, 밧줄을 잡으며 올라 뒤돌아 안개구름속의 용화산 자락을 희미하게 조망합니다.
춘천시 사북면 고탄리로 넘어가는 부드러운 잘록이사거리의 고탄령(古灘嶺)을 지나고
8시3분, 아침식사를 한 뒤 김 신 총무가 더덕 한 뿌리를 캡니다.
9시19분, 숲 속 길을 거쳐 잘록이, 옛날 난리 때 남매가 이 고개 밑 오누골이라는 데서
피난을 하였다 해서 흔히 사여고개라고 부르는 사야령(四夜嶺)을 지나고
9시50분, 지도상의 공터를 지납니다.
포개진 암괴를 왼편으로 끼고 돌아가다
밧줄이 걸려있는 암능을 너머
모가 없는 층층이 쌓여있는 암괴에 자일이 내려져 있는 바위 길을 조심조심 내려갑니다.
10시48분, 드디어 46번 도로 배후령이 내려다보입니다.
10시50분, 구멍이 벌집처럼 뚫린 총알바위,
50여 년 전의 동족상잔의 격전지라는 아픈 상흔이 그대로 남아 있는 총알바위를
지나면서 아직 그 앙금의 치유는커녕 새로운 긴장 속에 살아가는 현실을 탄합니다.
11시5분, ‘오봉산수’휴게소 옆으로 내려섭니다.
큰고개에서 출발하여 5시간40분이 걸렸습니다.
곧 ‘38선’ 경계석비가 서있는 46번 도로와 마주하고
오른편으로 ‘춘천시 신북읍’ 경계간판이 보입니다.
30여m 올라가면 간척리 뒤에 있는 고개라 하여 붙여진 이름의 배후령(背後嶺)에
올라섭니다.
☞☞☞한편 신 고문의 부인등 C팀 2명은 바로 버스로 안동댐을 거쳐 청평사로 가고
B팀 16명은 신 고문이 선두, 한 군이 후미담당이 되어
춘천시 신북읍 도로곙계표지를 따라 올라가다
6시58분, 좌측으로 큼직한 오봉산 안내지도가 세워져있고‘배후령600’이라고 쓴
들머리에서 비탈을 오릅니다.
된비알의 숲 속 길을 거쳐
7시14분, 오른편으로 산불감시초소가 보이는 공터에 올라섭니다.
왼편으로 보이는
방향이 애매한 이정표(배후령, 청평사7km)가 보이고 선두는 산불감시초소 옆의 폐쇄코스
아래의 낡은 시그널이 달려있는 등산로를 따라 들어간 지 오래인지
보이지 않고 한 군을 뒤따라갑니다.
미끄러운 마사토와 좁은 바위옆길을 조심하며 올라가는데
7시29분, 저만큼 선두가 좁은 공터에서 휴식하고 있습니다.
안개는 겉이지 않고 해는 높다랗게 떠있는데 안개 속에서 연분홍빛으로 살짝 얼굴을
내밉니다.
그 때 신 고문이 지도를 펼쳐 보더니 나침판을 올려놓고
“아~ 우리가 잘못 왔어 에, 북쪽으로 가야하는데 동쪽으로 가고 있어요~”
하며 되돌아가자하고 몇몇 회원이
“그래, 이상하드라.”며 웃습니다.
7시40분, 산불감시초소 원점으로 되돌아 나와 북쪽 ‘청평사7km’ 방향으로 내려갑니다.
7시43분, ‘119신고1지점’표지판을 지나 암괴를 돌아 바위 길을 내려
7시58분, 소나무 뿌리가 얼기설기 노출된 공터를 지나면서 숲 속에서 청아한 4박자
새소리가 들려옵니다.
앞에서 가든 육중한 회원이 웃으며 이야기합니다.
“저, 새가 홀딱 벗어! 하며 우는데 이런 사연이 안있능기요...
옛날에 시어머니 때문에 부부관계가 안 좋은 며느리가 있었는데 시어머니 구박과 남편의
무관심으로 세상을 하직하고 새가 되어 그 원혼이 한이 되어 저렇게 운다카데요~”
“새 이름이 뭔데요?”
“홀딸 벗어 새 아잉기요!”
앞뒤로 걸어가든 회원들이 박장대소합니다.
홀딱 벗어 새는 한동안 뒤따라오면서 한풀이 하듯 계속 웁니다.
“홀딱 벗어!”
♣여기서 잠시, '홀딱 벗어'새는 검은등뻐꾸기인데
조류학적인 분류를 그림과 함께 올립니다.
8시7분, 아무런 표지도 없는 1봉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조 회장님이 힘들어하는 한 부녀 회원에게 나뭇가지로 지팡이를 만들어 줍니다.
5분간 휴식 후 내리막을 탑니다.
우측으로 보이는 소나무
이어지는 바위길
8시19분, 짧은 암능 길의 첫 쇠사슬 안전장치를 지나고
두 번째 암봉이 안개 속에 뿌옇게 나타납니다.
8시25분, 두 번째 바위능선 오름의 긴 쇠사슬을 잡으며 오릅니다.
아무른 표지도 없는 2봉을 넘어
8시29분, 오른편으로 안개속의 아찔한 청솔바위를 바라보고 캠코더와 디카로 담습니다.
뾰쪽한 바위에 뿌리내린 청솔의 강인한 생명력도 대단하지만 사방이 벼랑인 그 곳에
청솔바위라고 새긴 석비를 세워놓은 협동하는 인간의 용기도 가상합니다.
작은 턱을 넘고
좌우벼랑의 쇠사슬을 잡으며 짧게 가파르게 내려갑니다.
8시33분, 오른편 청솔과 암괴위에 작은 진혼석비가 서있습니다.
1989년9월3일이란 날자가 새겨져 있는 걸 보면 약 14년 전에 조난을 당한모양인데 바짝
긴장을 합니다.
먼저 3봉에 올라선 한 군이 배낭에서
‘해봉’깃발을 꺼내어 마치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라선 산꾼처럼 두 손으로 펼쳐들고
포즈를 취합니다.
세 번째 긴 쇠사슬 안전장치를 잡으며 오르다 왼편으로 조금씩 안개구름이 걷히는
벼랑에서 잠시 주변을 조망하고
8시49분, 숲과 흙길에 들어섭니다.
주변을 이동촬영하며
8시51분, 숲으로 둘러싸인 정상에 올라섭니다. 여기도 각종 수목이 뿌리를 길게
노출시켜 보는 사람을 안쓰럽게 합니다.
스테인리스 정상비가 서있는 공터의 왼편에 청평사 쪽에서 올라온 서울팀 6,7명이
보여
잠시 부탁하여 정상비를 배경으로 기념촬영하고 10여m 거리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는
회원들과 합류합니다.
오늘따라 컨디션이 좋은 임 회원이 빵과 쌈을 권합니다.
한데 4,5m 거리의 숲 속에 하트형 화환의 화판과 음식을 먹은 포장지와 쓰레기 등이
버려져 있습니다.
몇 사람이 한마디씩 합니다.
어느 열정적인 총각이 한 아가씨에게 플로포즈하기 위해 이 험한 정상까지 장미꽃 화환
을 들고 와 사랑의 열정을 보인 거라고.
그 뜨거운 정열을 보인 거는 좋은데 뒤처리를 제대로 못하고 저렇게 팽개쳐 버렸다는 건
그 앞날이 불을 보듯 훤한 일이 아닐까요?
서울 팀이 정상에서 그냥 되돌아 내려가려는 걸 경관이 빼어난 청솔바위만이라도 보고
내려가라고 조언 해주고, 식사 후 주변을 청소한 뒤
9시2분, 좌로 평범한 흙으로 다져진 하산 길로 접어듭니다.
9시7분, ‘오봉산119 3지점’을 지나고
9시13분, 오른편으로 꺾어지면서 바위 하산 길로 떨어집니다.
올라올 때와 달리 가볍게 내려가는 임 회원이 아래에서 여유롭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다시 비스듬히 올라가는 암괴 길을 거쳐
9시19분, 뒤돌아보니 암벽과 안개구름으로 치마 두른 오봉산의 진면목을 들어내며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다시 길은 보이지 않고 망부석 같은 입석이 보이고
9시25분, 좌측 소나무가지에 시그널이 매달려있는 곳의 암괴사이로 ‘ㄷ’ 자로 꺾어지며
떨어지듯 내려가는
바위사이 길로
문제의 구멍이 아닌 제법 긴 터널바위가 비탈져 나타납니다.
그것도 안전을 위해 다리 하나 들어갈 비좁은 바위사이에 쇠사슬을 길게 걸어서...
다시 소나무뿌리가 노출된 흙 등산로를 내려
갈림길 잘록이가 내려다보이고
9시40분, 칼날 바위 잘록이 갈림길이정표(청평사천단, 청평사해탈문)에서
오른편으로 떨어지지 않고 곧장 다섯 번째
긴 쇠사슬이 걸려있는 급경사 암능으로 올라갑니다.
마주 내려오는 한 장년등산객과 비겨가며 인사를 나누고
9시47분, 688봉에 올라선 뒤, 짧은 평탄한 길을 거쳐
9시51분, 앞에 가든 하 군이 망부석이라며 또 다른 입석을 가리킵니다.
다시 내리막 흙길을 지나
9시58분, ‘오봉산119 5지점’을 거치고
곧 갈림길이정표(부용계곡 청평사)에서 오른편으로 빠져 내려갑니다.
얼마 내려가지 않아 왼편 긴 너럭바위위로 또 다른 망부석 암괴가 나타납니다.
10시5분, 다시 뒤돌아 오봉산의 위용을 캠코더와 디카에 담고 암괴와
쇠사슬이 박혀있는 너럭바위를 타는데
10시10분, 너럭바위에 비스듬히 누운 노송이 수많은 솔방울을 매단 체 애처롭게도
고사중입니다.
10시13분, 청평사가 가마득히 내려다보이는
본격적인 쇠사슬 하산코스가 시작됩니다.
10여m 타고 내려가다 직각으로 꺾어지며 왼편으로 천길 낭떠러지가 나타나고
다시 ‘ㄷ’ 자로 꺾어지며 아찔하게 쇠사슬을 잡으며 내려갑니다.
이 부근에서 한 등산객이 추락사했다는 이야기를 회상하고 쇠사슬을 잡은 손에 힘을
줍니다.
10시23분, 흙을 밟으며 뒤돌아 암벽을 쳐다봅니다.
하지만 암벽 길은 아직 뒤에서 다시 기다리고 있습니다.
암반 옆으로 뿌리내린 우람한 금강송이 앉아있는
왼편으로 두 번째 긴 쇠사슬이 죽치고 있습니다.
10시32분, 세 번째 길게 떨어지는 쇠사슬을 내려서며 돌아가려는데 위에서 서울 팀의
젊은이들이 내려오는 소리가 들려 쳐다봅니다.
10시36분, 네 번째 쇠사슬을 지나고
10시41분, 다섯 번째 쇠사슬로 내려와
10시52분, ‘오봉산119 6지점’에서 더욱 가까워진 청평사를 내려다봅니다.
오른편으로 돌아내려가
10시54분, 여섯 번째 쇠사슬을 거치고
11시5분, 일곱 번째 쇠사슬을 지나
11시12분, 마지막으로 긴 쇠사슬을 잡고 내려와
11시14분, ‘오봉산119 7지점’앞을 지남으로써 긴장을 풀고
11시22분, 청평사 후문 ‘극락보전’옆의 800년 수령의 주목 앞에 당도함으로써
4시간24분의 산행이 끝납니다.
강원도의 도나무라는 보호수, 수령800년 주목의 철책과 주변에 수많은 잔돌로 작은
돌탑들을 철책위에 까지 올려놓아 시선을 끕니다.
극락보전 앞에서 뒤돌아보니 지붕위로 내려온 암봉이 보입니다.
여기서 잠시, 청평사[淸平寺], 회전문에 대해 옮겨보기로 합니다.
973년(광종 24) 승현(承賢)이 창건하고 백암선원(白岩禪院)이라 하였으나, 그 뒤 폐사되
었다. 1068년(문종 2) 이의(李)가 중건, 보현원(普賢院)이라 하였다. 이의의 아들 자현
(資玄)이 이곳으로 내려와 은거하자 도적이 없어지고 호랑이와 이리가 없어졌다고 하여
산 이름을 청평이라 하고 사찰 이름을 문수원(文殊院)으로 하고 중창하였다.
1550년(명종 5) 보우(普雨)가 청평사로 개칭하였다.
6 ·25전쟁으로 구광전(九光殿)과 사성전(四聖殿) 등은 소실되고, 현재 보물 제164호인
청평사 회전문과 극락보전 등이 있다.
절터는 강원도 기념물 제55호로 지정되었으며,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8호인 3층석탑이 있
다. 이 탑에는 상삿뱀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원나라 순제(順帝)의 공주가 상
삿뱀이 붙어 고생을 하다가 이 사찰에 와서 가사불사(袈裟佛事)를 한 후에 상삿뱀이 떨
어져 나갔다는 소식을 들은 순제가 지었다고 하며, 그래서 이 탑을 공주탑이라고 부른다
는 것이다.
사찰 내에 있는 고려정원은 일본 교토[京都]의 사이호사[西芳寺]의 고산수식(枯山水式)
정원보다 200여 년 앞선 것이다.
보수중인 청평사 회전문[淸平寺廻轉門]
보물 제164호. 정면 3칸 5.79 m, 측면 1칸 3.03 m의 단층 맞배지붕. 청평사는 조선
명종 때 보우(普雨)에 의해 중건되었으며 경내에는 회전문 이외에 국보로 지정된
극락전이있었으나 6 ·25전쟁 중에 소실되었다.
극락전 전면에 있는 회전문은 중앙의 한 칸을 넓게 잡아 통로로 하고 좌우의 협간에는
벽을 쳐서 내부에 천왕(天王) 등의 존상(尊像)을 안치할 수 있도록 하였다.
건축의 구조는 주심포(柱心包)집 계통에 속하는데 간소하게 꾸몄으며 공포(包)는 출목
(出目) 없이 주두(柱頭) 위의 두공(頭工)으로서 직접 주심도리를 받치고 있다. 천장은
대들보와 마루대공(臺工)뿐인 간단한 조립이며 처마에는 부연도 달지 않았다. 내부에는
중앙 좌우에 기둥을 하나씩 세워서 대들보를 받치도록 하고, 그 상부에는 홍살문처럼
살대를 가로로 배열하여, 문 표시를 하였다.
☞☞☞보수중인 보물164호인 회전문 앞에서 촬영을 하고
자연석으로 만든 돌계단을 내려가는데 이름에서 느끼는 청정한 사찰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든지 별로 깨끗함을 느끼지 못하고
내려가다 뒤돌아 뒤틀린 돌계단을 담고
오늘 수고한 한 군 커플을 688봉과 청평사를 배경으로 기념촬영해 줍니다.
수초로 가득한 청평사 영지...
높이 9m 아홉 가지 소리가 들린다는 구성폭포[九聲瀑布]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습니다.
중국 원나라 순제(順帝)는 상삿뱀이 붙어 고생을 하던 자신의 공주가 청평사에 와서
공을 드리자 상삿뱀이 떨어져 나갔다는 소식을 듣고 공주탑을 지었다고 하며 공주가
기거하던 굴은 공주굴, 목욕재계하던 계곡탕은 공주탕이 되었다고 한다.
12시7분, 다리를 건너 식당거리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는 신 고문의 부부의 권유로
합석하여 시원한 맥주 한 컵으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피로를 풉니다.
13시5분, A팀 선두, 김 대장 일행이 7시간24분의 산행을 끝내고 도착합니다.
우로 물이 말라 땅바닥에 주저앉아있는 유람선을 촬영하며 10분 거리의 선착장에 도착,
누런 바위와 토사가 황량하게 들어난 소양호 주변을 촬영하며 유람선(편도2000원)에
오릅니다.
약 10분거리의 소양댐 선착장에 도착하여
거대한 수문이 버티고 선 콘크리트 계단에 올라 회원들이
소양댐과
소양호, 인공폭포를 배경으로 기념촬영들을 하며 셔틀버스를 이용하여
주차장에 내려온 게 14시19분.
A팀 후미를 기다리다 시간이 너무 지체한다며 당초 춘천시내에 들려 막국수로 식사할
계획을 변경, 목욕만 하고 바로 가겠으니 식사는 각자가 주차장에서 해결하라고 합니다.
16시50분, 후미 6명이 도착합니다.
큰 고개를 출발하여 소양댐까지 약 11시간이 걸린 샘입니다.
정 대장이 버스에 오르면서 이야기합니다.
소양댐에서 빨리 오기위해 택시를 타려는데 춘천시내로만 간다고 승차거부를 당했다며
춘천시청 홈피에 들어가 항의해야겠다며 흥분합니다.
16시54분, 출발하면서 조금 진정한 정 대장이 고충을 늘어놓습니다.
“오늘 김 신 총무가 뒤에서 데~기 욕 봤심더. K선배님이 고소공포증이 있지에, 여자
분이 다리 다쳤지...그리고 캠코더는 어떻게 된 샘인지 도중에 촬영이 안대지에~”
말없는 김 총무가 무진장 고생했다고 알려줍니다.
캠코더는 확인해 보니 약 38분 촬영에 전원이 고갈되어있습니다.
멋진 가로수를 마주보고 있는 ‘춘천하와이’욕탕에 들려 약30분간 날치기 목욕을 하고
다시 달립니다.
18시23분, 춘천T/G를 통과하여 고속도로에서 날개를 달고 닥아 오는 갖가지 풍광들을
캠코더에 담으며 곳곳이 망가져 가는 백두대간이나 낙동정맥과 달리 청정한 주변산세를,
다시 한번 안개와 꼬부라진 청송과 기암괴석들과 암능 길의 쇠사슬 오봉산을 회상하며
잠시 꿈나라로 빠져듭니다.
20시3분, ‘안동휴게소’에 들려 몸을 풀고 에너지를 보충하고는 일사천리로 달려
22시47분, 부산T/G를 통과하여, 무사히 부산으로 돌아왔습니다.
산 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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