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정명조 주교 삶과 업적 "
잘 떠났다고 전해달라 마지막 인사
"…만물이 새 생명의 환희로 가득차 초록의 아름다움을 한껏 드러내는 계절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천상의 영원한 삶이 그와 같이 아름다울 것으로 생각합니다. 병고의 고통 속에서 삶과 죽음의 의미를 깊이 새기면서 마지막 남은 날까지 주님의 뜻이 그대로 내게 이루어지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정명조 주교가 자신의 글들을 엮어 펴낼 예정이었던 「그대로 이루어지소서」 서문의 마지막 대목이다. 지난 3월께 주치의에게서 주변을 정리하는 것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 자신의 인생에 도움을 준 이들에게 감사의 정을 전하고자 준비한 이 책은 결국 유고집이 됐다. 유언과 같은 마지막 기도는 70 평생 하느님께 의탁하며 살아온 그의 신앙과 죽음에 대한 자세를 온전히 보여준다.
다른 이들에게는 더없이 자상하고 소탈하면서도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철저했던 정 주교는 죽음을 앞둔 마지막 순간에도 그러했다. 정 주교는 병상에서 자신의 고통을 부산교구 사제와 수도자, 그리고 신자들을 위해 봉헌했다. 참기 힘든 고통을 겪으면서도 내색 한번 하지 않고 오히려 "고통스럽지 않아 봉헌이 될지 모르겠다"는 유머와 의연함으로 주위 사람들을 편안하게 했으며, 임종 직전까지 의식을 놓지 않고 하느님께 기도를 바쳤다.
마지막 순간을 지켰던 김경욱(부산교구 홍보전산실장) 신부는 "돌아가시기 전날 오후에 병원을 돌며 세상을 향해 마지막으로 강복하신 주교님은 1일 새벽 4시쯤 일어나셔서 화장실도 다녀오고 내의를 갈아입으신 후 새벽 6시 56분께 아름답고 평화로운 모습으로 하느님께 가셨다"면서 "평소 성품대로 모든 것을 깔끔하고 편안하게 마무리하신 주교님은 죽음이 슬픔이기보다는 하느님과 만나는 영원한 행복임을 몸소 보여주셨다"고 고인을 기렸다.
1935년 5월 경남 거제도에서 정연수(요셉)씨와 박금악(모니카)씨 사이의 3남 3녀 중 다섯째로 태어난 정 주교는 유교 전통에 따라 제사도 지내던 평범한 집안에서 자라났다. 아버지가 임종 직전 대세를 받은 것을 계기로 중학교 3학년 때 세례를 받은 정 주교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본당 신부 권유로 신학교에 입학하지만 어머니(81년 선종)의 반대에 부딪혔다. '아들이 신학교에서 나오게 해 달라'는 어머니 기도는 정 주교가 신학교에서 시종직을 받은 후에야 비로소 끝이 났다. 신부가 되는 것을 허락한 것이다.
사제품을 받고 거창본당 주임을 거쳐 군종신부로 입대한 정 주교는 꼭 20년간의 군 생활 동안 월남 파견과 육군 군종과장, 군종참모 등을 거치면서 군 사목을 몸으로 익혔다. 예편한 뒤 부산교구 남천본당에서 사목하던 정 주교는 1989년 10월 한국교회 첫 군종교구장으로 임명됐다. 이후 9년간 군종교구장으로서 사목을 위해 다닌 거리가 연평균 4만 여㎞로, 최전선 비무장지대에서부터 제주도까지 가보지 않은 부대가 없을 정도다. 그래서 정 주교에게는 승용차가 곧 '이동 교구청'이었다. 성당과 공소 140여 곳을 건립한 정 주교는 어려운 여건에서도 군 사목을 반석에 올려 놓았다.
1999년 제3대 부산교구장에 착좌한 정 주교는 부산평화방송과 가톨릭 의료법인을 설립하는 등 교구 발전을 위해 혼신의 힘을 쏟았다. 착좌 당시 35만7000여 명이던 신자 수는 40여만 명으로 늘었고, 사제 수도 214명에서 309명으로 증가했다. 본당 수도 92개에서 107개로 늘어났다. 일본 히로시마 인판타교구 및 대만 까오숭교구와 자매결연을 맺는 등 아시아교회와 교류에도 힘썼으며, 부산교구장으로는 처음으로 2000년 5월 '부처님 오신 날'에 범어사를 직접 방문해 축하인사를 전하는 등 종교간 대화에도 개방적 면모를 보였다. 특히 올해로 교구 설립 50주년을 맞아 전 사제 성경 필사와 지구별 워크숍을 실시하는 등 부산교구의 변화와 쇄신에 박차를 가했다.
정 주교는 솔직하고 소탈한 성격으로 누구에게나 환영받는 참 사제로 존경을 받았고, 편지봉투를 잘라 이면지로 사용할 만큼 검소한 생활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에 다녀올 때는 교구청에 근무하는 모든 사제와 직원들에게 자그마한 기념품을 꼼꼼히 챙기고, 몸이 아픈 신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는 '정이 많은' 사제였다.
정 주교는 선종 전날 "잘 떠났다고 전해달라"는 인사를 남겼다. 임종 직전 옆에서 '이제 예수님을 만나러 가실 시간이 된 것 같다'고 했을 때 정 주교가 마지막으로 한 말은 "안다, 안다"였다. 지금 그는 그토록 뵙고 싶었던 예수 그리스도 곁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며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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