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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에스더서
주제성구 이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4:14)
본서는 구약 정경 39권 가운데서 룻기와 더불어 유일하게 여자 이름으로 책명이 붙여진 성경이다. 이러한 외적인 특징을 갖고 있는 본서는 적절한 시기와 장소에 적절한 인물들을 보내셔서 선택한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깊숙히 내재해 있다. 즉 본서에는 시공에 구애됨이 없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보호하시고 구원하신다는 사실이 강한 암시로 나타나 있다. 그런데 이 같은 강력한 의도를 본서 저자는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사건의 진행 과정과 사태의 반전속에 담고 있어 그 흥미를 더욱 고조시키고 있다.
특히, 본서 저자는 한 편의 드라마를 전개시키는 듯한 필치로 본 내용을 전개시켜 극적인 효과를 더욱 극대화시키고 있으며 단편 소설의 형태로 내용을 정리하고 있어 역사적 사건의 진실을 서술한 본서 전체를 잘 요약하고 있다.
인간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뿐만 아니라 유대 백성들이 자신들의 구원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한 ‘부림절’의 기원 또한 밝히고 앴는 본서는 이 사실의 근원 설명을 위해 전체적으로 ‘제비뽑기’를 그 핵심으로 해서 내용을 전개시키고 있다. 그래서 본서 전체의 흐름이 ㅣ일관된 주제의 연속이라는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다.
한편, 본서에는 하나님의 이름이나 여호와의 실존문제가 한번도 언급되지 아니한다. 이는 다른 구약의 정경들과 뚜렷이 구분되는 차이로서 본서를 기술한 저자의 의도로 이해된다. 이같은 문제때문에 정경성에 대한 논란도 많았으나 본서에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가 깊이 스며있어 의심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전체 내용상 유대인들이 당한 위기적 상황(1-4장)과 반전되어 승리를 쟁취하는 유대인들의 모습(5-10장)을 과정별,또는 극적인 대비로 구성하고 있어 본서는 더욱 흥미롭게 전개된다.
1. 기 록 목 적
본서에는 그의 성격 때문에 또는 소설 형식의 구성 방식 때문에 본서의 기록 목적이 무엇인지가 분명히 드러나 있지 않다. 그러나 본서가 기록된 당시의 정황이나 본서 전체의 내용을 통해 기록 목적을 추적해 볼 수는 있다. 이와 같이 당시 상황과 본서가 펼치고 있는 내용을 그 근간으로 해서 본서의 기록 목적을 추정해 보면 다음과 같이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본서는 시공을 초월하여 언제 어디에서든지 선택한 당신의 백성을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섭리하신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쓰여졌다.
이를 강조하기 위해 본서 저자는 역사적 사실을 단편 소설의 구성 기법을 도입해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바, 이는 본서 자자의 탁원한 능력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본서는 당시 이방의 땅에서 집필된 듯하기 때문에 구약 정경 전체에 걸쳐 언급되고 있는 여호와의 명칭이나 규례, 계명, 선민으로서 지켜야 할 사항, 그리고 심지어는 제사 문제까지에 대해서도 전혀 언급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서 저자는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하심을 드러내기 위해 어러한 사실을 계속해서 내용 전개의 극적인 기법을 통해 강하게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 인해서 본서 저자는 이방 땅에서 살고 있는 많은 유대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실존성과 역사성, 그리고 백성들이 가져야 하는 희망과 종교성에 대해 강조하는 것이다.
둘째, 부림 절기에 대한 역사적 기원과 더불어 그 절기의 의미를 밝히고 전달하려는 의도로 쓰여졌다. 사실 유대 민족에게 있어서 부림절은 대단히 의미심장한 절기이다. 부림절을 통해 애굽에서 구원해 내신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역사(출5:1-24:8)를 되새길 수 있었으며 이와 같은 부림절의 의미와 당시 사건의 생생한 재련을 통해서 거룩하신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부활을 촉진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본서 저자는 본서의 기록을 통해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침체시키기 위해 이방의 대적들이 함정을 판다 할지라도 오히려 이방인 스스로가 그 올무에 빠지고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건져 주신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에게 어떤 역경이 닥친다 해도 그것을 극복하고 능히 헤쳐 나갈 수 있다는 소망을 제공해 준다(눅21:25-28).
2. 주제 및 특징
본서는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주권적 도우심에 의해 이방 대적들의 심각한 위협으로부터 어떻게 보호되었는가를 보여 주고 있다. 그래서 본서 전체 내용 속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깊이 스며 들어 있다. 사실 때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언약 백성을 징계하시기도 하지만(출20:5, 민26:10, 신28:38-46,48) 결코 선택한 백성은 포기하시지 않으신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섭리가 본서에서는 징계보다는 보호와 역사하심쪽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주제를 드러내기 위해 본서 저자는 단편 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것도 극적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사건의 반전과 위기감을 고조시키는 등의 소설적 기법을 취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본서가 갖는 특징 가운데 한 가지이다.
그리고 본서는 구약의 다른 성경들과는 다른 독특한 성격을 또 한가지 갖고 있다. 즉 그것은 이방 땅에서 살고 있는 유대 백성들의 신앙상태와 삶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같은 소설 형식을 띈 룻기서에도 이방 땅에서의 생활이 약간은 언급하나(룻기 1장) 그것은 룻기서의 전체 내용이 아니다. 그러나 룻기와는 달리 본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방 땅 즉 페르시아의 수산 궁을 중심으로 해서 벌어지는 사건의 내용을 그 핵심으로 다루고 있다. 이처럼 시종 일관되게 이방에서 사는 유대 백성들을 그 대상으로 해서 기록된 성경은 다니엘서와 그 외 약간씩 언급된 성경 외에는 그 어디에도 없다. 이것이 바로 본서의 두번째 특징이다.
세번째로는 구약 성경의 대부분이 재의적(祭儀的)이고, 율법 중심인 것에 반해 본서는 매우 삶 중심의 믿음을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율법에서 금하고 있는 이방인과의 통혼문제(창24:3; 28:1; 신7:3; 수23:12)나 이방의 음식을 먹는 문제 등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지나치고 있는 것이다.
네번째로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 즉 이 세상을 향하신 여호와의 구원 섭리가 유대 백성이라고 하는 선택된 백성들과 더불어 이방인에게까기 확대되고 있다는 사실을 나타낸 점이다. 물론 이스라엘 역사상 이방인의 개종은 많지는 않았지만 간혹 있어 왓다(창17:13; 출12:48; 신29:10-15; 룻1:16). 그러나 본서의 표현에서와 같이 이방인이 집단적으로 유대인이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이었다(8:17). 그러기에 이것은 이 세상을 온전히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섭리하심의 예표적 사실을 담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본서에는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나 간구의 내용, 제사 드리는 모습이나 그 제의의 형식, 성전에 관계된 언급이나 그에 대한 해석,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명칭이 한번도 언급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그 특징이다. 또한 구약 성경 전체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사랑의 정신보다는 오히려 봇수심이 강조되어 나타나는 듯하다. 그러나 그 내면에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섭리가 잘 드러나 있어 이러한 문제를 잘 조화시키고 있다.
3. 에스더서와 그리스도
본서에는 특별히 그리스도의 사역과 직접적인 연관을 갖는 부분이 없기 때문에 본서에 나타난 그리스도에 관해 언급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본서의 전체 내용중에서 그리스도의 사역과 관계된 내용은 찾을 수 있는 바, 이를 통해 본서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예표적 모습, 혹은 암시적인 그림자를 찾고자 한다.
먼저 본서의 주인공인 에스더는 자신의 백성, 다시 말해서 유대 백성들을 위해 ‘죽으면 죽으리라’(4:16)는 각오로 왕에게 나아갔다. 그러나 오히려 그녀를 이를 통해 왕의 인정을 받으며 결국은 자기 백성들을 대적의 손에서, 즉 죽음의 그림자에서 구해낸다. 이러한 그녀의 역할은 중보자요 이 땅에 오셔서 친히 죽으셨지만(빌2:6-8; 히2:14-17; 7:27; 10:5-22), 하나님에 의해 다시 부활하사 높힘을 받으며(요6:40; 롬4:24; 8:11; 고전6:14; 15:4; 엡1:20) 결국 성도들의 구원의 보증이 되신 그리스도의 사역(롬4:24; 5:9,10; 8:11; 살전4:14; 벧전1:3; 3:18)과 그 연관성이 매우 크다할 수 있다. 그러기에 본서에는 그리스도의 핵심적 사역이 에스더의 행위를 통해 암시적으로 나타나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본서에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멸망시키려는 하만의 위협이 성공하지 못함과 같이 성도들을 미혹하려는 사단의 궤계도 성공하지 못하며 마침내 메시야 왕국이 이루어지고야 만다는 사실이 암시적으로 나타나 있다(10:1-3). 이와 같은 내용은 이 땅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신앙적인 소망을 준다.
한편 본서에는 적그리스도를 암시하는 듯한 인물이 등장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적그리스도의 본질과 종말을 살펴보고자 한다. 즉 성경 학자들 중에는 하만이 미래의 적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인물이라고 보는 이가 많다. 그들이 이와같이 생각하는 그 근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몇가지 사항을 꼽을 수 있다.
1). 본서 7:6에는 ‘이 악한 하만’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그런데 이에 해당되는 히브리 원어를 히브리 자음이 나타내는 숫자로 환산해 그 수를 모두 합하면 ‘666’이 된다. 이는 곧 짐승, 또는 적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수이다(계13:18). 그러기에 하만은 적그리스도를 암시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2). 또한 본서에는 하만이 아하수에르 왕으로부터 큰 권세를 받는 대목이 나온다(3:1). 그런데 하만은 그 받은 권세를 올바른 곳에 사용하지 아니하고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일에 교묘히 이용한다. 그것도 왕까지 끌어들여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서 자신의 권세를 악용한다(3:8-11). 이는 곧 이세상의 지배를 위해 사단이 큰 권세를 받는 것과 유사하다 할수 있다(계13:2). 사단의 권세는 불신자의 마음을 혼미케 할 뿐만 아니라(고후4:3,4) 성도들을 대항하고(엡6:2) 의인을 괴롭히기 때문이다(욥1:12).
3). 적그리스도가 이 세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숭배를 받고자 하는 것처럼(계13:4) 하만이 모든 사람들로부터 절을 받기 원하는 대목이 나온다(3:2-5). 이와 더불어 적그리스도가 성도들을 핍박하는 것과 같이 하만은 하나님의 백성 유대인들을 핍박하였다(계13:6,7). 또한 적그리스도가 때가 이르면 이 세상에서 횡포하던 모든 권세를 잃고 멸망 당하게 되듯이(계19:21) 하만도 알마 동안은 담대히 권력을 누리다가 결국은 파멸 당하였다(3:1-7:10).
4. 부림절
‘운명의 날’이라고 하는 이 날은 히브리력으로 마지막 달인 아달 월 14,15일에 거행되는 이스라엘 축제의 이름이다. 이 부림절은 모세의 율법이나 구약의 어느 책에도 언급되지 않지만 그 기원에 대해서는 본서3:7과 9:24에 기록되어 있다.
한편, 이 절기의 대중성, 혹은 유대인들의 정통성 인정을 반영하기라고 하듯 이 절기는 외경의 책에 언급되어 있다. 그러나 이같은 절기의 내용이나 그 절기를 지켰다는 사항이 신약 성경그 어디에도 언급되어 있지 않다. 이 절기가 신약에 언급되지 않은 이유는 이 절기의 축제가 지방에 따라 거행되어서 명절에 행하는 예루살렘 순례 여행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듯하기 때문이다.
유대 사회에서 부림절은 항상 대중적 성격을 띠었다. 즉 아달월 13일에는 금식으로 지켜졌고, 그다음날 아침에는 회중이 공식적인 종교 의식을 행하기 위해 회당에 다시 모였으며 제의를 마친 뒤에는 하루 종일 유쾌하게 즐겼다. 그리고 이 절기의 특색중 하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음식과 선물를 보내는 것이었다(9:19). 그래서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하던 때를 회상하는 유월절(출12:1-28,43-49; 마26:17-30)과 무교절(레23:6-8; 민28:17-25; 요6:30-59)같이 이 절기는 언제나 대중성을 띤, 그리고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기억하는 날이 되었다.
출처: 주님의 시선 글쓴이: 카페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