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에서 홍성집이라고 이부장님의 글인데
공감하는 바가 크고 시사하는바가 크기에 재정리하구서 두고두고 접하려구.......**
너무 생각만 하다가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말아요
너무 망설이다가 멋진 행운을 보내지 말아요
너무 따지다가 큰 축복을 흘리지 말아요
당신의 소심한 성격 때문에 많은 좋은 것들을 잃게 될거에요
시간은 당신을 마냥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_유지나 『지나간다 다 지나간다. 2』 중에서..
완벽한 기회가 오기만 기다리다가 시간을 헛되이 보내곤 한다
어떤 일을 하기에 완벽한 기회는 없다
완벽하고 완전한 기회를 기다리다 평생을 보낸다
용기와 결단력이 새로운 변화, 새로운 시대, 새로운 기회의 주인이 되게 한다.
[1688. 와인 파는 인문학자의 인문 일기] (2021년 7, 14)
세네카는 말했다.
"어느 항구로 향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는
어떤 바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런 차원에서 오늘의 화두는
'오늘 하루도 김사하고 겸손해야 할 이유'이다.
나는 우연히 <한겨례 21> 의 김현철 홍콩과학기술대 경제학과 교수의 글을 만났다.
그에 의하면, 그 이유는
"인생 성취의 8할"이 "운"이라는 것이다.
우리들의 삶의 성취는 태생의 우연성과 공동체 도움이 결정적이라는 결론이다.
어떤 성취를 이루려면, 도와줄 누군가가 마침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
정말 운은 우리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다.
그 '운'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자신의 노력보다 출신과 성장 배경이 큰 몫을 한다.
(1) 어디서 태어났는가 이다.
예컨대, 태어난 나라가 평생 소득의 절반 이상을 결정한다.
태어난 나라의 평균 소득과 불평등 지수만으로
성인기 소득의 최소 50%를 예측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저 개발 국가에 태어나면 능력이 뛰어난 사람도 삶에서 성취를 맛볼 가능성이 작다.
고등교육을 받기 어렵고, 대학을 졸업해도 좋은 직장을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업가로 성공하기도 힘들다.
자본도 부족하지만,
부패와 법 집행의 자의성, 불합리한 규제, 인프라 부족 등 넘어야 할 산이 많고 높다.
(2) 부모이다.
사람의 성취와 행동에서
유전요소와 환경요소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두고 많은 논쟁이 있었다.
이를 '본성과 양육' 논쟁이라 한다.
유전 요소가 중요하다면 운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시사하고,
환경요소가 중요하다면 아이의 운명을 바꿀 여지가 더 많을 것이다.
부모는 위에서 말한 두 요소를 모두 제공하므로 둘의 역할을 구분하는 것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어떤 부모를 만났는지는 명백히 '운'이다.
부모를 자기가 결정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기에 인생 성취의 8할은 운이다.
(3) 건강.
우선 태어난 나라가 기대수명을 크게 좌우한다.
왜냐하면 소득수준과 의료시스템 등이 기대 수명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한 논문에 의하면,
주요 암의 발생 요인은 크게 유전, 환경, 세포분열 과정에서 발생하는 우연적 요소로 본다.
연구결과 암 발생의 50% 이상이 우연에 기인한다.
부모가 물려준 유전도 운이다.
사람의 노력으로 예방할 수 있는 환경요인은 4분의 1에도 미치지 않는다.
결국 사람의 건강도 운이 8할을 좌우한다.
최근에 우리 사회의 뜨거운 이슈는 능력주의(meritocracy) 논쟁이다.
능력주의가 말하는 '능력만큼 보상받는다'는 언뜻 보면 공정하다고 느껴진다.
그래 능력주의가 젊은 층들을 중심으로 인기가 있는 이유이다.
왜냐하면 솔직히 말해
우리 사회가 능력에 따른 보상을 하지 않으며 공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대학을 나오던, 즉 50-60대들은 운이 좋았다.
학점이 낮아도, 자격증 하나도 없어도 좋은 직장에 들어가 안착했다.
반면, 단군 이래 가장 '똑똑하다'는 20-30대들은 시대를 잘못 만난 탓에
치열한 입시와 학점 경쟁, 끝없는 자기계발 뒤에도 원하는 취업이 어렵다.
젊은이들은 능력주의 사회의 보상이 정말 능력에 따른 것인지 의심한다.
간단한 컴퓨터 프로그램 하나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세대가
요직을 차지하는 게 부당하다는 것이다.
능력주의 사회에서 정말 능력만큼 보상받는가?
언뜻 보면, 맞는 거 같다.
우리나라는 시사총액 상위 30개 기업 임원의 25%가 소위 '스카이(SKY)대학' 출신이다.
이 점을 보면,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더 보상을 받는다는 원칙이 틀리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소위 스카이(SKY)에 운 좋게 간발의 차이로 합격한 학생과
불합격한 학생의 시험점수 차이는 거의 없을 정도이다.
다만 유일한 차이는 커트라인이다.
그 커트라인 안에 들어가느냐 못하느냐는 인생의 성취에 커다란 영향을 준다.
그러니 능력이 아니라, 운이다.
명문대 입학이 고소득자가 될 확률이 훨씬 높다.
이 점을 보면, 사회에서의 보상이
결코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이뤄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다.
김현철 교수가 소개한 로버트 프랭크 교수의 책 <성공과 운(success and Luck)>(2016)에 따르면,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이 모든 것을 스스로 해냈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 부작용이 사회에서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고 보았다.
(1) 자기 성취가 스스로 이룬 것이라 믿을수록 세금 납부에 더 적대적이다.
정부와 사회가 도와준 것이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2) 실패한 사람을 운이 나쁘기보다는 노력하지 않은 사람으로 인식한다.
그래 이들을 돕는 일에 소극적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오늘의 내가 될 수 있었던 것은 8할 이상이 공동체와 다른 사람 덕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능력 우선주의자들은 시험을 중시한다. 미국이 심하다.
미국 대학의 박사과정은 성적이 낮은 하위 20% 정도의 학생을 박사 종합시험으로 퇴학 시킨다.
교수채용 과정도 최종 후보자 4명을 선발해 사흘에 걸쳐 압박면접을 한다.
이런 엄청난 경쟁시험도 운이 작용한다. 경쟁 시험에서 누구를 만나느냐의 문제이다.
우리 사회는 교육문법이 잘못 되었다.
교육은 학생들에게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고 학습을 통해 인지적 성장을 견인하며,
진로준비와 사회적 소양 함양을 통해 어엿한 직업인 및 민주적 시민을 키워내는 것이 목적이다.
이젠 우리도 존엄한 인간을 기르는 교육, 성숙한 민주주의자를 키우는 교육을 할 때이다.
존엄이란 프랑스어 라 디니떼(la dignite), 영어로 디그니티(dignity)라 하는 데,
이 말의 뜻은 한 개인은 가치가 있고, 존중받고 윤리적인 대우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말이다.
반면 우리 교육은 능력 우선주의이다.
김누리 교수는 이를 '능력주의(meritocracy)'라 했다.
이를 '존엄주의(dignocracy)' 교육으로 바꾸어야 한다.
존엄한 인간을 기르는 것을 교육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말이다.
수월성 교육에서 존엄성 교육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독일처럼 경쟁교육을 완화하거나 없애야 한다.
김누리 교수는 '경쟁교육은 야만'이라고 자주 말했다.
경쟁없는 교육이 성숙한 시민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첫댓글 글이 길어서 둘로 나눴다
늘..., 혹은 꼬옥 그러지는 않지만.
일부러 말로 자랑하며 뽐내는 사람은
외려 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다네.
아들러도 분명히 지적했지.
"만약 자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열등감을 느끼는 것에 불과하다.”
정말로 자신있는 사람은 자랑하지 않아.
열등감이 심하니까 자랑하는 걸세.
자신이 우월하다는 것을 일부러 과시하려고 하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주위에 누구 한사람
이런 나를 인정해주지 않을까 봐 겁이 나거든.
이는 완벽한 우월 콤플렉스라네.
그러니까 열등 콤플렉스와 우월 콤플렉스가 의미는 달라도
실상 뿌리는 같다는 말씀인가요?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지."
《미움받을 용기》ㅡ 중에서..
사람들과 비교를 하다 보니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지 멋진 사람인지 잊고 산다
이 세상엔 예쁘지 않은 꽃은 없다
마치 꽃과 잡초를 구분하는 것은
인간의 이기적인 생각에 만들어진 이름이다
인간이 뭐라고 하든
제비꽃이 장미꽃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 예쁘지 않은 꽃은 없다
이 아침 함께하는 당신은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