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특강
인문학과 전통주, 삶의 결을 만나다
권대근
문학박사, 문학평론
대한민국 수필학 대한명인
I.
오늘 특강의 포커스는 전통주의 유래와 그 가치 평가를 통해, 전통주의 복원이 갖는 인문학적 의미를 천착하는 데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한 전제적 작업으로 먼저 인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여러 학자들의 견해를 확인해 보겠습니다.
인문학은 내용을 채워주는 바탕이다.
인문학은 사람과 사람의 무늬, 흔적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인문학은 좋은 자세를 잡기위한 훈련이다.
인문학은 삶의 옹달샘이다.
인문학은 나그네의 쉼터다.
인문학은 동영상이다 / 서울대 김월희 교수
인문학은 텍스트다, 세상을 분석하고 시대를 진단한다 /서울대 김현진 교수
인문학은 초콜렛이다. /서울대 신은영 교수
인문학은 인간에 대한 질문과 탐구다 /서울대 오순희 교수
인문학은 행복의 전도사다 /서울대 박종소 교수
인문학은 개인을확장한 공동체적 물음이다.
인문학은 중심주의에서 벗어나는 것이다./권대근
여러 가지 인문학에 대한 개념이 존재하지만, 이러한 정의 중에서도 가장 탁월한 것은 아시겠죠? 제가 말한 바로 “중심주의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중심주의하면, 우리는 서양의 과학 중심주의가 먼저 생각납니다. 실증주의는 비판적 이성보다는 정합적 이성을 통해 진리를 파악하려고 하면서, 인문학을 주체의 이성 중심 위에 세우려 합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 자명하다고 생각했던 것에 문제의식을 두면, 자본주의 시대에서 ‘자본’은 결코 우리를 구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문명은 우리의 삶터를 위기에 빠트리고, 과학기술은 인류의 미래를 어둡게 합니다. 일체의 중심이라고 했던 것들이 얼마나 인간 세상과 인간성을 초토화시키는지 중심주의에서 벗어나면 알 수 있습니다. 이제는 품격이 아니라 풍격입니다. 격이 아니라 결입니다. 격이 닫힘이면, 결은 열림입니다. 청주의 수필가 이은희는 수필집 <결>에서 “인간도 나무처럼 그 사람의 결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가 살아온 행적에 따라 그의 결은 다르다고 봤습니다. 결의 진리를 깨달으면, 우리는 그와 진정한 동거가 시작된다고 했습니다. 전통주와의 동거는 인문학과의 동침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진정한 삶의 결을 만나러 갑시다.
II.
중심주의는 정말 협소한 가치입니다. 중심주의는 그 중심이 부셔져야 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본주의 시대를 살면서 무슨 주의에 지배되어 있습니다. 특히 과학주의, 이성중심주의, 실증주의에 매몰되어 있습니다. 현대주를 마시고, 술을 좋아했을 때, 그 중심인 현대주가 사라지면 중심주의적 시각에서 그 둘의 관계는 끝이 납니다. 그 중심이라는 현대주는 주류의 전부가 결코 될 수 없는 것이죠. 현대성의 모습만 보고 그것을 온전히 평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진실을 보고 내린 판단이 아니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주제, 전통주의 복원은 인문주의의 회복을 의미하며, 진정한 삶의 결에 동침하기 위해서는 이런 우월적 가치라고 생각하고 있는 현대성 중심주의의 오류를 해체해야 할 것입니다.
전통주의 복원이 중요해진 이유는 이런 현대성 중심의 가치체계를 전복하여, 새로운 욕망의 작동 시스템, 즉 소수, 전통의 가치 체계를 세웠기 때문입니다. 전통주의 복원이 갖는 의미는 중심주의적 철학적 가치를 다 붕괴시키고 새로운 질서를 회복시킨다는 측면에서 진정한 삶의 결을 찾아가는 작업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사실상, 현재의 중심은 사실의 차원에서 못 벗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리 차원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현대성과 전통성의 공존하게 해야 한다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전통은 진리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역사와 믿음 그리고 일관성이란 3요소를 충족시키고 있습니다.
술과 인문학은 삶의 양극단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둘은 모두 “진정한 삶의 결을 복원하기 위해친숙한 세계를 낯설게 만든다."는 인문학의 본령에 충실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술이 '이성'을 낯설게 만든다면, 인문학은 '사유'를 낯설게 만듭니다. 새로운 실천, 새로운 삶을 위해 우리는 새로운 사유 그리고 감성과맞부딪혀야 하는 것입니다. 이 가운데 특히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간과되어온 전통주의 힘입니다. 전통주는 새로운 철학적 사유를 행동으로밀고 나갈 '감성의 힘'을 내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는 저는 건배사를 할 때마다, 이성보다 감성을 하고 외칩니다. 같은 술이라도 전통주, 특히 무형문화재로 등록된 신선주는 차원이 다릅니다. 그러면 이 즈음에서 청주의 전통주인 신선주를 함께 공부함으로써 정서적 그리고 인문학적 자극을 동시에 받아 삶의 결을 복원해서 삶의 변화를 일으킬 단초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제4호 청주 신선주는 1994년 1월에 무형문화재로 등록된 우리 전통술입니다. 청주 신선주는 청주 지방의 토호로 이름 높였던 함양 박씨 사대부 집안의 가양주로서 기능보유자 박남희께서 맥을 이으시고 기능 이수자 딸박준미에 의해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술은 신선주라는 이름에 걸맞게 보신 강장제로 쓰이던 각종 생약재가 부재료로 사용이 되어서 장기간 복용하면 연년수명하여 장수한다는 말이 전해질 정도로 약용주로서 접빈객이 많은 종갓집에서 접대용 및 가족 몸보신 보양주로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신선주의 유래는 신라 초기 최치원 선생이 이곳 주산의 신선봉에 올라 글을 쓰시면서 속리산을 바라보며 신선주를 빚어 즐겨마셨는데 그 자리에 후운정이라는 정자가 있었다는 설화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신선주 그 비법은 <동의보감 감기록>에 수록된 <신선고본주>를 바탕으로 자가 제조한 약주로서 박준미의 박래순 고조부님께서 기록해 놓으신 가전 비망록 <현암시문합집>에서 비로소 신선주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박준미 씨 집안의 신선주는 약주와 소주로 구분되는데 덧술을 만들지 않아 제조과정이 단순할 것 같지만 각 부재료의 비율과 온도를 맞추기가 쉽지 않아서 술빚기 과정이 이외로 복잡하다고 합니다.
먼저 찹쌀을 깨끗히 씻어 하루 불렸다가 건져서 고두밥 지어 식히고 12가지 한약재중 10가지 한약재(우슬,하수오,구기자,천문동,맥문동,숙지황,인삼,당귀,육계) 빻아 가루내고 감국화 지골피 2가지 한약재 달인물을 누룩과 차게 식힌 고두밥을 섞어 혼화 후 빚어서 술독에 무명보자기로 덮어 1차 발효한 뒤 온도를 낮추어 2차 발효를 시키고, 이를 용수박아 여과 후 정제하여 맑은 술을 그대로 마시면 신선약주, 소줒고리를 이용하여 증류하면 신선소주가 됩니다. 술맛은 강하고 진한향이 납니다. 신선소주는 맛과 향을 더 좋게 하기 위해 서늘한 곳에 장기 숙성 보관합니다.
술은 기호식품 중에서도 우리 삶에가장 친숙한 것입니다. 누구나 기억하는 술에 관한 추억이 한두 번 정도는 있을 것이며, 어린 시절 한 번 쯤은 부모님 몰래 술을 마셔 본 경험도 있기 마련입니다. 술을 식품으로 접근하게 되면 온갖 다양한 종류와 주조법이 난무하는 어려운 대상일지 모르나, 태곳적부터 오늘날까지 세상과 삶을 멋지게 노래하는 데 도움을 주는 가장 가깝고, 일반적인 음식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삶의 멋을 노래하고, 세상을 비판하는 역할에 있어서 술은언제나 선두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점은 신선주는 첨예하게 세상을 사유하는 인문학과 공통점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III.
전통과 인문학은 다만 글자가 다를 뿐”입니다. 전통주는 옛날 것이고 따라서 마시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 모든 것이 조금만 들여다보면, 전통주와 인문학 모두가 ‘우리 삶의 결’에 대한 이야기임을 역설합니다. 오늘 특강의 목적은 바로 신선주의 복원이 말하고자 하는 인간의 삶을 쉽게 풀어내는 시간을 갖는 데 있습니다. 비싸서 접근하기 어려웠던 술, 그리고 쉽게 발견되지 않는 술, 그 숨겨진 의미를 차근차근 이해해나가면, 술과 인문학을 큰 호흡으로 횡단하며 옛 사람들의 사유와 현대적 삶의 결에 동참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신선주의 고장 청주의 작가 이은희는 수필집 <결>에서 나무에 나이테가 있듯이 마음에도 심결이 있듯, 모든 것에는 결이 있듯, 우리 삶에도 고유의 문양이 있다고 합니다. 삶과 유리된 예술이 삶의 결을 해친다면, 좀 극단적인 얘기인지 모르겠지만 ‘술’이 없는 삶은 삶의 질을 높이지 않는다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현대인의 멋은 술과 격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톨스토이가, 지극히 단순한 마음, 평범한 사람이나 어린 아이도 알 수 있는 것, 남의 기쁨을 기뻐하고 남의 슬픔을 슬퍼하며 사람과 사람을 결합시키는 것을 예술이라고 노래했다면, 저는 예술이란 자리에 전통주란 어휘를 놓고 싶습니다.
강나루 건너서/ 밭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 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박목월의 <나그네>
국정농단, 대통령탄핵, 특검정국, 청문회 등등, 세상은 어지러워 삶은 먹물 속에 있습니다. 새로운 세상이 열려 앞서 인용한 시구처럼 전국 방방곡곡 ‘술 익는 마을’ 이나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의 정경이 펼쳐졌으면 합니다. 우리 민족의 전통적 아름다운 삶이 사람의 머리 속에 존재하지 않고 실제적 삶의 결이 풍요로움으로 넘쳐났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통주의 가치를 재고하는 담론을 형성하는 게 급선무입니다. 정치 권력의 확보는 필수라 하겠습니다.
*저작권은 권대근에게 있습니다. 인용 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