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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중한 임무
1972.10.15 (일), 한국 전본부교회
[기 도]
아버님, 오늘은 10월 15일, 벌써 이달의 중간을 맞는 날이 되었습니다. 세번째 맞는 안식일인 이 아침에 어린 자녀들이 아버님 존전에 부복하였사옵니다.
우리의 마음,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시는 아버지여! 당신께서는 당신의 마음과 당신의 시선을 통하여 그리워할 수 있는 아들딸을 얼마나 바랐사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마음에 들지 못하고 보기에 아름답지 못한 자녀들이 될까봐 조바심을 가지고 아버지 앞에 모여 앉은 이들을 버리지 마시옵소서.
아들의 명예를 가진 저희들이 부모를 그리워하고 아버지의 얼굴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아시는 아버지여! 당신이 계신 것이 확실히 인식 되지 않는 자녀들이 있사옵거든 보고 싶을 수 있는 아버지로서 보여 주셔야만 되겠사옵니다. 느낄 수 있는 아버지로서 저희와 같이 늘쌍 생활 주변은 물론, 마음의 체휼을 통하여 언제나 동참할 수 있는 자리에 계셔주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당신의 아들이라는 것을 자인하게 될 때, 당신께서는 보잘것없는 저희의 한 생명이지만 그 한 자체를 찾아서 자녀의 명분을 부과해 주기 위해서 수고하신다는 것을 진정으로 알고 고맙게 생각할 수 있는 저희들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그야말로 없어서는 안 될 아버지여! 저희는 당신이 떨어질 수 없는 인연 중의 인연을 묶고 있는 생명의 근본되시는 분인 것을 알고, 삶의 인연을 갖추어 줄 수 있는 주체인 것을 알고, 이상의 근본을 저희 자신들 앞에 소개해 주실 수 있는 본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희 자신들이 거룩하고 존귀하신 당신을 흠모하면서, 깊고 고요한 자리에서 당신의 마음을 파고드는 사랑스러운 자녀의 모습이 되고 싶어 이 자리에 나왔사오니, 품고 사랑하시고 권고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한 생명을 두고 볼 때 '나'라는 관념이 강한 것을 알게 되옵니다. '나'라는 것이 강하게 될 때는 '나' 가운데에 아버지께서 임재하실 수 없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나는 대상이요 아버지께서는 주체이기 때문에, 주체를 나보다 존중시하는 데 있어서는 내 마음속에 주체로서 아버지가 계실 수 있으되, 상대인 나를 중요시하는 데 있어서는 아버지께서 계실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언제나 저희들은 대상의 입장을 취하고 아버님을 주체의 입장으로 모시기 위하여 진정코 사모의 심정과 흠모의 심정에 사무칠 수 있는 참다운 그리운 모습이 되기를 바라고 있사옵니다. 당신이 부르기 전에 마음으로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고, 당신의 아들딸이라는 인식을 하기 전에 이미 당신을 사랑했다는 입장에 선, 당신의 아들딸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이 아들딸의 입장에 있는 최대의 소원인 것을 저희들이 알고, 그립고 간절하고 안타까운 아버지의 사정에 통할 수 있는, 누구보다도 가깝고, 누구보다도 간절한 아버지의 자녀된 자리를 그리워하고 있나이다.
아무개라고 부르는 아버지의 얼굴에는 희열이 넘치고, 아버지의 그 모습에는 자유롭고 영원한 사랑이 넘쳐흐를 수 있는 그 아버지를 저희의 마음으로 몸으로 모시고, 저희는 어린 아기와 같이, 벌거벗은 어린애와 같이 그 아버지의 품에 매양 품겨 살고 싶고, 매양 그 곁에서 재롱을 피우고 싶은 어린아이의 마음을 가져야만 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심정의 인연에 화합할 수 있는 본질을 갖지 못하고 타락성이 저희 몸 가운데서 충동하고 있다는, 억울하고도 슬픈 사실을 깨닫게 될 때, 당신은 높고 귀하시기 때문에 저희 앞에 가까이 할 수 없는 분인 것을 마음으로 느끼면서, 부족한 자신을 찾아올 수 없는 아버지요.
만날 수 없는 아버지요. 모실 수 없는 아버지라고 먼 자리에서 바라보면서 눈물을 흘리며 자책하고 스스로를 회개할 수 있는 모습만이 타락성을 벗지 못한 우리들이 처할 수 있는 입장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어찌하여 이와 같은 자신이 되었느냐고 생각하면 할수록 우리 선조들이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을 한탄하지 않을 수 없는 자신임을 발견하게 되옵니다. 그렇게 될 때에 한탄 가지고 끝나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 알수록 그 모든 책임을 그 누구에게 돌릴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아버지 앞에 속죄의 제물로서 바쳐지기를 바라게 되옵니다. 그렇게 되기를 바라게 될 때 그 책임이 우리의 책임이요. 나의 책임이라고 다짐하고 나서게 됩니다.
인간이 타락하게 된 것도 하늘이 지었기 때문이며, 이와 같은 고통 중에 인류를 남겨 둔 것도 하늘이 지었기 때문이옵니다. 하늘의 거룩한 마음이 침범당할까봐 두려운 마음으로 몸을 붙안고 몸부림치는 자들 앞에는 당신이 찾아오셔서 '그것은 나의 책임'이라고 주장하시는 아버지가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될 때에 그 고마움은 무엇으로도 표시할 수 없다는 것을 저희는 느껴야만 되겠사옵니다.
보잘것없는 나 자신을 향하여 아버지깨서는 얼마나 찾아왔던가를 생각할 적에, 저희들이 모르고, 저희들이 생각하지 않은 때에 내 한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밤이나 낮이나 쉬지 않고 움직여 나왔다 놀 사실을 진정 모르고 있던 저희들이었사옵니다.
보잘것없는 한 생명을 세우기 위해서 잠자리의 몽시 가운데 찾아 오셨고, 혹은 일하는 자리와 고독한 자리에서 몸부림치게 될 때에 아버지께서 현현하시어 자연스레 음성으로 혹은 마음의 느낌으로 지도하여 주신 것을 느끼면서도 고마운 것을 몰랐던 불쌍한 무리들인 것을 저희들은 다시 한 번 자각해야 되겠습니다.
내가 오늘 남아지기까지 당신께서 수고하신 날들이 얼마나 얼마나 많았나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면서, 찾아오시는 당신을 위하여 얼마나 몸 마음을 단장했으며, 오시는 그 시간을 그리워하며 당신 앞에 바쳐지고 당신에게 필요할 수 있는 자신으로 바쳐질 수 있기를 바라서 얼마나 준비하였는가를 반성하게 되옵니다.
그러지 못하였던 자기 과거를 한탄하면서, 오늘 그와 같은 자리에 서서 당신의 소명을 고대하면서 새로운 명령을 바라는 마음을 갖고, 당신이 원하는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하고도 남을 수 있다는 자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해야 되겠사옵니다. 그러나 그러한 자신을 발견하지 못한 이 서글픔을, 무엇으로도 비교할 수 없는 내적 억울함과 외적 분통함을 느낄 줄 아는 아들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저희는 알고 있사옵니다.
하오나 땅 위에 살고 있는 인간들인지라 타락한 세계의 습관적인 생활권내에서 그날 그날 보내기를 습관적으로 하고 있는 여기에 모인 부족한 자녀들을 아버지여, 다시 한 번 권고하여 주시옵소서.
죽도록 배워야 할 것이 인간이요. 죽도록 싸워 다짐지어야 할 인생노정인 것을 너무나 잘 아시는 아버지여! 완전한 자가 이 땅 위에 어디에 있사오며, 당신을 위하여 충의 도리, 효의 도리를 다했다는 자가 이 땅 위에 어디에 있사옵니까?그러한 자가 이 땅에 없다는 것을 타락한 후손이기 때문에 당연지사로 아는 것을 생각할 적에 아버님께서는 끝까지 이들을 가려 나가야 되는 불쌍한 분이신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이 땅 위에서 사는 일생 노정뿐만이 아니라 영원한 세계에 가서도 우리의 처참한 모습들을 가려 줘야 할 남아진 당신의 사명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당신은 그야말로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고독의 중심이요. 비참의 중심이요. 탄식의 중심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그러한 아버님을 저희들이 너무너무 몰랐던 것을 이 시간 다시 한 번 반성하면서 당신 앞에 솔직이 직고할 수 있는 모습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나'라는 사람은 이러한 것이었사옵니다. '나'라는 모습은 이것이었습니다. 이것을 보시고 찾아오실 수 없는 아버지시여! 도리어 나를 멀리해 달라고 기도해야 될 자신들을 직시하면서, 오늘의 슬픔을 억울하게 생각 하면서 내일의 비참함을 넘기 위하여 무한히 몸부림치고, 무한히 안타까워해야 하는 자신이 되어야 될 것을 생각할 적에, 그러지 못한 오늘의 나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기가 막힌 처참지사인가를 다시 한 번 자각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뜻 앞에서는 솔직해야 되겠사옵니다. 당신 앞에서는 겸손해야 되겠사옵니다. 겸손의 마음을 따르는 그 배후에는 당신의 구조의 손길이 있을 수 있지마는, 교만한 마음을 갖고 나서게 될 때에는 당신의 자비의 손길은 멀리 멀리 떠나 버린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겸손하지 못했던 과거의 자기 자신을 무한히 증오해야 되겠사옵니다. 그렇지 못한 자신의 현실을 무한히 증오해야 되겠사옵니다.
현실에 있어서 저희들은 솔직해야 되겠사옵니다. 있는 그대로, 가식을 모르는 그냥 그대로의 순박함이 자신에게서 표현돼야 될 것을 저희가 그리워할 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인간이 가식으로 말미암아 타락의 동기를 가졌다는 것을 저희들이 생각할 적에, 이제 저희들 앞에 가식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껴야 되겠사옵니다.
아버님, 부복한 자녀들을 살피시옵소서. 불꽃 같은 눈으로 그 마음 마음을 살피시옵소서. 그 마음과 몸에 뺄 수 없는 죄악의 쓴 뿌리가 아직까지 자리를 잡고 있는 이 억울한 사실을 바라볼 적에 무책임한 당신이라면 이 자리를 떠날 수 있겠지만, 떠날래야 떠날 수 없는 아버지의 간곡한 심정을 그 누구 앞에도 하소연할 수 없는 외로운 아버님인 것을 저희들이 발견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께서 그와 같은 외로움의 자리에 선 것은 나로 말미암은 것이요. 나의 조상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것을 느끼면서 제가 괴롭기 전에 당신이 먼저 괴로왔던 것을 알았습니다. 저희들이 비참하기 전에 당신이 비참했던 것을 알았습니다. 탄식이 가중될 수 있는 고독과 억울함의 자리에서 저희는 그 자리를 원망도 하고 저주도 하면서 당할 수 있지만 아버지께서는 원망도 할 수 없고, 저주도 할 수 없는 고독과 비참의 자리에서 몸부림치며 도리어 우리를 위로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 아버지의 사정이란 것을 어느 누가 알았겠습니까.
아버지, 이제 이 부족한 것들을 당신께서 모아 놓으셨사오니, 오늘의 자기 자신을 들어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 있거들랑 스스로 망령된 자임을 자각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 하나를 위하여 역사적인 희생의 대가를 치르시면서 허구한 날 비참과 고통을 극복해 나오신 아버지가 계신 것을 몰랐다면 모르지만, 계신 것을 아는 저희들로서는 그러할 수 없사옵니다. 저희는 저희에게 비참함이 있을 때, 하늘의 동정을 받을까봐 조심성 있게 행동해야 되겠사옵니다. 하나님께서 비참한 자리에 서 있을 때, 저희가 동정하지 못했던 슬픈 사실을 느끼면서, 아버지께서 저희의 슬픈 자리에 동정의 인연으로 찾아주게 될 때는 황공하여 몸과 마음을 둘 바를 알지 못하고 눈물로써 하늘을 모시고 대할 줄 아는 겸손한 자신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저희 자신, 당신을 더럽힌 자식이요 흠 많은 자식이로되 그 자식을 심정으로 붙안고 사연을 나누고 싶어 하시는 간곡한 아버지의 마음이 있었음을 저희들은 미처 몰랐습니다.
아버지! 이 아침에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당신 앞에 이런 기도를 올리기에 부족한 자신임을 느끼면서도 당신께서 그리워하는 사람을 찾으시기에 이러한 기도를 올리는 것이요. 그렇게 되기를 바라시기에 이러한 기도를 올리는 것이요. 그들을 책임지고 지도할 것을 바라시기에 이런 기도를 올리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악하고 또 악하고, 또또 악한 부모라 할지라도 자식에 대해서만은 잘되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라는 것을 아시는 아버지여!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이 책임 못 한 것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또 부족한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그 부족을 탄할 것이 아니라 내일의 소망을 갖고 이 부족을 극복해 나가야겠사옵니다. 오늘에 당하는 이 분함을 풀기 위해 책임지고 지도하는 입장에서 하늘 앞에 이런 기도를 올리지 않을 수 없사오니 긍휼히 보아 주시옵고, 측은히 보아 주시옵고, 불쌍히 보아 주시옵소서.
이 자리는 그 누구의 이익을 바라는 곳이 아니옵니다. 저희들은 단지 당신의 슬픔의 분량을 저희로 말미암아 제하든지 혹은 없앨 수 있는 곳이 되기를 바랄 뿐이옵니다.
아버님이시여! 저희가 필요하시거든, 저희가 당신의 뜻 앞에 소용이 있으시거든 어떠한 자리라도 명령을 내려 주시옵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원하옵니다. 이제 당신 앞에 부복한 저희의 심경은 당신만을 위하여 있어야 되겠사옵니다. 당신께 필요한 것으로 남아져야 되겠사옵니다.
당신께서 소원하시는 후계자로서 하나의 등불이 되고, 하나의 마음의 대상이 되어 남아져야 될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지고지존(至高至尊)하신 당신의 상대의 자리에 설 수 있다는 이 엄청나고 황공한 사실 앞에 뼈살이 녹아지도록 감사에 사무쳐야 하겠습니다. 그런 은사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을 생각하기 싫어하였던 배은망덕한 배도(背道)의 후손들을, 아버님께서는 저주와 더불어 멸망의 길로 몰아내셨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않으시고 참으시기에 수고스러웠던 아버지의 입장을 저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사옵니다.
그렇지만 당신을 따라가지 않고는 살 길이 없기 때문에 따라가면서 중얼거리고 따라가면서 투정부리고, 따라가면서 욕을 하고, 따라가면서 채찍질하고 뒤에서 돌팔매질하던 이 불쌍한 것들이 다시 이렇게 나와 부복하였사오니, 이 아침, 아버지께서 이곳에 친히 찾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통일교회를 당신께서는 사랑하시옵니까?통일교회를 당신께서 키우셨습니까?통일교회 속에 계시고 싶습니까?생각하게 될 때, 저희는 높고 귀하신 당신을 모실 수 있는 아무런 준비를 갖추지 못하였습니다. 더 좋고 더욱 가치있는 것이 있기 때문에 그저 가치있는 곳까지 모셔 가기 위한 하나의 중간 처소로서는 당신을 모실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이 자리가 당신께서 찾아나오시는 본연의 자리라고는 이 자식부터 생각하지 않사옵니다.
이곳을 넘어가야 된다는 것, 넘어 지나가야 된다는 것, 더 빛나게 깨끗이 정비해야 된다는 것을 알 적에, 손을 대어 정비하려 할 때에는 하늘이 지금까지 수고하신 공적을 침범할까봐 주저하지 않을 수가 없사옵니다. 그런 때가 얼마나 얼마나 많았는가 하는 것을 느낄 적마다 아버님께서 불쌍하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저희는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하여 가는 사람도 역시 불쌍한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마음대로 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당신의 입장을 너무도 잘 알게 되옵니다. 마음대로 해야 할 책임자의 입장에 섰으면서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얼마나 불쌍한 것인가를 당하고, 보고, 느낄 적마다 아버님이 얼마나 불쌍하신가 하는 것을 배우게 되며, 그것을 배우는 것으로 당신께 감사하며 갈 수 있사옵니다. 그런 자리가 통일의 무리를 지도하는 책임자의 자리라는 것을 느끼면 느낄수록 이런 무리를 이끌고 오는 당신이 얼마나 불쌍하신 분이신가 하는 것을 더욱 깨달았사옵니다.
아버지, 저희의 손은 자기를 위하여 움직이기에 바빴고, 저희의 마음은 자기의 이익을 따지기에 바빴고, 저희의 욕망은 자기의 편한 길을 찾기에 바빴지만, 당신은 그 반대의 입장에서 늘쌍 저희와 더불어, 보이지 않는 저희 뒷 자리에서 저희를 따라와야 할 사정이 있었다는 것을 저희는 미처 몰랐습니다.
이 아침, 당신의 소신 앞에 일치될 수 있는 진정한 아들의 자리를 그리워할 줄 아는 마음이 저희의 가슴속에 사무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진정한 딸로서 효녀로서의 마음을 다할 수 있는 본성의 마음이 저희 마음 가운데에 발로(發露)되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이제라도 당신을 향하여 효도할 수 있는 아들과 딸이 되겠다는 결심과 자각된 마음을 가진 것을 당신께서 보시고, 다시 소망과 희망을 가지고 저희를 다시 한 번 붙들어 주시옵소서. 과거에는 그랬지만 미래에는 그런 사람이 아니 되겠다고 다짐할 수 있는 오늘, 이 아침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빌고 원하옵니다.
때가 가까와 오면 올수록 고독이 사방에서 욱여싸여져 온다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이제 여기 서 있는 '나'라는 사람은 무엇을 결정하고 무엇을 판단하고 가지 않으면 안 될 과제들이 남아 있는 것을 직시할 적마다. 하늘이 시대시대를 책임지고 인도해 나을 때 당하던 딱한 사정을 알게 되었사옵니다.
아버지, 그럴수록 당신을 의지하고, 당신 앞에 모든 것을 바치고, 심각한 마음으로 당신의 권고와 소망스런 결정이 있기를 바랄 때가 된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수많은 탕감의 대가를 치러 가지고 이 자리까지 온것을 생각할 적마다 감사하지만 일면 슬프고 고독함이 찾아온다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한번 결정하면 다시 결정할 수 없는 때가 저희 눈 앞에 다가오고 있사옵니다. 가겠다고 말하면 가야 되는 것이요. 머물겠다고 말하면 머물지 않으면 안 되는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역사적인 순간이 저희의 목전에 다가옴에 있어서, 땅에 있는 그 누구의 입장에서 이 문제를 판결했다가는 영영 인류의 역사기 걸려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그렇게 생각할 때, 당신만이 주인이 되시고 당신만이 주체가 되시어 이 문제를 깨끗하고 거룩히 넘어갈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날을 바라면 바랄수록 과연 이 자리는 하늘을 대신한 고독한 자리라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이 민족의 운명을 책임져야 할 당신의 뜻, 수많은 교계와 수많은 종교를 새로운 길로 인도해야 할 당신의 뜻, 인류를 금후에 있어서 당신이 소망하시던 이상세계로 가름지어 인도해야 할 거룩한 당신의 뜻, 이 사명적인 모든 분야를 책임져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저 제물된 자리에서 따라가고, 치욕을 당하는 자리에서도 인내하며 그 자리를 무난히 당신의 소원대로 통과하기를, 넘기기를 바라는 마음을 저희가 가지고 있다는 것을 당신은 잘 알고 계시옵니다.
밥을 먹을 때나 길을 걸어갈 때나, 무엇을 하든지 오로지 일편단심 이 역사적인 기준을 바로 세워야 할 지중(全量)한 사명이 저희에게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그럴 적마다 당신께서는 허구한 날 그런 마음을 지니시고 이 역사시대를 거쳐오시면서 그 심정을 알아 줄 수 있는 한 사람을 얼마나 얼마나 그리워하셨는가를 생각하게 되옵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할 때, 통일교회의 책임자보다도 아버지께서는 더 불쌍한 분이시라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무형으로 계시는 아버지께서는 현현하실 수 있는 상대적 기준이 없으면 나타나실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땅에서 살고 있는 저희는, 슬프면 슬픈 표정을 억울하면 억울함을 탓할 수 있는 자리에 있기 때문에 고독한 사실도 통과할 수 있고, 외롭고 슬픈 사실도 통과할 수 있사옵니다. 그렇지만 아버지께서는 그럴 수 없는 자리에서 바라보시며 홀로 짐을 지셔야 하는 불쌍한 분이라는 것을 마음으로 느끼게 되옵니다. 그러기에 저희는 반드시 효자가 되어야 되겠고, 충신이 되어야 되겠다는 일념을 드높일 수 있는, 자기의 운명을 스스로 인도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을 이 아침에 다시 한 번 깨닫는 무리가 되게 허락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10월을 복된 달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이제 10월, 11월, 12월, 석 달밖에 남지 않은 1972년도가 저물어 가고 있사옵니다. 저희의 운명길에 있어서 생사의 판결이 어느때에 설정되는지 그것을 아는 사람이 없듯이, 저희가 걸어가는 뜻의 길에 있어서도 어느때 어떠한 자리에서 결정지어 넘어가는지 모르기 때문에, 언제나 끝날이 되면 될수록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늘 깨어서 기도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한 번 상기하게 되옵니다.
과연 그 말씀은 예수님의 말씀인 동시에 우리의 말씀이요. 우리의 말씀인 동시에 아버지의 말씀인 것을 다시 한 번 느끼는 저희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마음 모아 이곳을 향하여 하늘 앞에 정성들이는 자들이 있거 들랑 천배 만배 복을 주시옵시고, 당신을 위해서 희생을 각오하고 민족과 세계 앞에 제물되기를 각오하며 일선에서 싸우는 뭇 자녀들이 있거들랑, 제가 그러한 자리에 있을 때, 그 환경을 해결하기 위하여 당신은 얼마나 얼마나 편히 대했고 얼마나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사옵니까? 바라옵건데, 이들의 외로운 자리에도 함께하시어서 이들로 하여금 당신의 온후한 품에 품기고, 영원한 사랑의 품에 품긴 아들딸의 영광을 느끼게 해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부디 이 시간 이후의 모든 것을, 이날 전체가 모이는 자리 자리마다 긍휼과 자비의 은사로서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말 씀
여러분이 원리를 통해서 알다시피, 아담 해와의 타락으로 말미맘아 잃어버린 그 기준을 탕감복귀하기 위해서, 그 문제를 해결짓기 위해서 하늘이 찾아가서 책임을 당부하였을 때 그것을 맡은 사람들이 그 책임을 완수하지 못하게 되면, 그 책임이 그냥 흘러가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대신해야 하는 후계자들 앞에 다시 상속되어 가지고 내려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을 통해서 뜻을 이루려고 하다가 그 뜻을 못 이루게 될 때는 두번째 사람을 택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두번째로 택함을 받은 사람은, 물론 자신이 해야 할 책임도 있지만 첫번째 사람이 하지 못한 책임까지 이루지 않고는 그 사람은 자기의 책임노정을 출발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천번 일이 첫번으로 끝나지 않게 되면 둘째번으로 연장되는데, 둘째번으로 연장된 그 뜻의 자리라는 것은 첫번에 이루려고 하던 그 뜻보다도 훨씬 더 감당하기 어려운 자리가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비참한 세계의 운세를 해결할 수 있는 책임기반이 설정되려면
다시 말해서 아벨을 중심삼고 가인과 복귀의 사명을 완수하려 하던 문제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이 노아 때까지 연장되어 온 것입니다. 그런데 노아를 중심삼고 그것이 아담 가정을 대신한 아벨의 자리에서 탕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아담 해와가 하지 못한 그 자리에서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이 자식을 통하여 가인 아벨의 탕감 노정까지 설정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비운의 역사를 거쳤다는 것을 알고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뜻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에 하늘은 아브라함을 통해 가지고 그 역사를 다시 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 가정을 통해 가지고 종족, 민족, 국가, 세계까지 발전되어 내려온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오늘날 세계적 시대에 있어서의 탕감복귀에는 개인들이 가야 할 탕감복귀의 노정도 있겠지만, 여기에는 역사적인 가정들이 가지 못한 탕감노정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개인으로서 완성을 보지 못했고, 가정으로서도 완성을 보지 못했고, 종족으로서도 완성을 보지 못했고,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 가지고도 완성을 보지 못했고, 예수 시대에 예수를 맞이한 이스라엘 나라를 통해 가지고도 완성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비록 역사시대에 이스라엘 나라와 민족과 유대교가 탕감복귀 해야 할 시대는 지나갔지만, 탕감복귀를 해야 할 운명을 지니고 있는 기독교는 역사 앞에서 언제나 탕감의 대가를 추구하는 데 앞장서 나왔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탕감의 역사적 인연은, 끝날이 가까워 오면 올수록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세계적 사명을 대표할 수 있는 교회가 있으면 그 교회 앞에 전체적인 탕감의 내용은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또, 그러한 교단이 있으면 하늘은 세계적인 탕감을 해 달라고 하는 입장에서 그 교단 앞에 탕감의 내용을 제시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택함을 받은 교회가 있거들랑 그 교회는 불쌍한 교회인 것을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또, 택함을 받은 교단이 있거들랑 그 교단은 역사시대의 그 어떠한 교단보다도 비참한 운명길을 가려 가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또, 택함을 받은 어떠한 나라가 있거들랑 그 나라는 역사시대의 어떠한 나라보다도 비참한 운명길을 가야 할 처지에 있다는 것을 탕감복귀의 노정을 통하여 우리는 잘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 관점에서 볼 때, 끝날이 가까와 오면 가까와 올수록 세계사에 없었던 하나의 비참한 나라가 나오지 않고는 세계사적인 탕감의 운명을 해결지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 나라 가운데 비침한 하나의 교파가 있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또, 그 교파 가운데 비참한 하나의 교회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교회 가운데에는 보다 비참한 하나의 책임자가 있어야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그 책임자가 교회와 더불어 그 교회 앞에 막아져 있는 비참한 탕감노정을 타개해 가지고 승리를 다짐하고 나서기 전에는 비참한 교파를 구할 수 있는 하나의 길을 모색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그 비참한 교회를 구하고 나서게 될 때, 비참한 나라의 운명을 구할 수 있는 것이며, 비참한 그 나라가 구함을 받게 될 때, 비로소 비참한 세계의 운세를 해결할 수 있는 책임기반이 설정된다는 것입니다.
하늘이 한국을 통해서 세계사적인, 천적인 책임을 추구하고 있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탕감복귀라는 엄연한 인과법칙을 섭리역사과정에서 부정할 수 없는 원칙으로 공인한다면, 이 세계사적인 종말시대에 있어서 그러한 사명을 대신할 수 있는 비참한 나라가 어떤 나라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 나라는 다름 아닌 한국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한국은 6·25동란을 통해 좌우의 세계적인 정세가 삼팔선이라는 대치선을 중심하고 이 민족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고 인연도 없었던 좌우의 세계사적 사조 때문에 제물이 되어 피를 흘렸다는 사실은 비참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로부터 20여 년 가까운 시대를 지나온 오늘날, 세계 무대에 있어서 또다시 비참한 운명의 자리를 대표해야 될 입장에 선 나라가 한국이라는 것을 두고 볼 때, 어찌하여 한국은 이러한 운명의 권에 휘몰아침을 당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탕감복귀역사를 두고 볼 때, 하늘이 이 나라를 통해서 세계사적이고, 천적인 책임을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남북이 갈라진 현시점에 있어서 서쪽에는 중공, 북쪽에는 소련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동남쪽에는 일본이라는 나라가 중공과 손을 잡고 아시아의 방향을 혼미하게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지금 월남에 있어서는, 티우 대통령의 거취 문제가 자신이 소원하는 바에 의해서 논의되는 것이 아니라 국제정치 무대에 흥정의 제물로 등장하여 논의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두고 볼 때, 우리 한국도 그와 같은 운명이 안 된다고 단적으로 결론을 내릴 수 없는 현실에 직면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런 현실 가운데서 금후의 한국은 어떻게 될 것이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면 할수록 이 한국이 서 있는 자리는 그야말로 비참한 자리가 아닐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될 것은 한국의 현재 입장을 한국 백성의 힘만으로써는 가릴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민족의 힘만 가지고서는 금후에 있어서 이 민족이 살수 있는 길을 가려 가기가 불가능한 자리에 처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자기의 흠 있는, 후회스러운 환경을 타파해 버리고 그것을 극복하여 자주적인 권한을 세울 수 있는 아무런 소망의 요건도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탕감복귀역사를 두고 볼 때, 이러한 입장에서 이 민족이 살 수 있는 단 한 가지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이 민족을 하늘 앞에 제물로 바쳐 드리는 길 외에는 없다는 결론을 우리는 원리를 통한 입장에서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 민족이 살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것입니다.
남북통일을 위한 민족 주체성을 고취해야
그러면, 과연 이 민족을 수습해서 하늘 앞에 하나의 제물로서 바쳐 드릴 수 있는 그런 민족적 속성, 즉 민족성이 갖추어져 있느냐?그렇지도 않다는 것입니다. 교회와 정부는 서로 반목질시하는 입장에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예수시대의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를 상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중심삼고 유대교가 완전히 하나되고, 하나된 그 주체 앞에 이스라엘 민족이 완전히 하나되어야만 로마제국을 중심삼은 국가의 터전을 발판삼아 새로이 출발할 수 있는 소망의 기준이 생겨날 것이었는데, 예수와 교회와 이스라엘 민족이 분립됨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깨졌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이스라엘 민족은 뒤로 떨어졌지만 예수는 전진하였습니다. 유대교는 뒤로 떨어졌지만 예수는 전진했습니다. 전진해야 할 책임을 짊어진 하늘은 역사시대에 있어서 새로운 문화세계를 창건하면서 세계사적인 탕감복귀의 노정, 혹은 발전의 노정을 거쳐온 것입니다. 그 발전이 확대되면 될수록 그에 비례하여 기독교의 수난의 비율도 점차적으로 증가 되어 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의 국가 국가를 두고 볼 때 그 가운데는 기독교 국가도 있을는지 모르고 또 어떤 나라에서는 탕감의 희생이 없었다고 볼는지도 모르지만,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 지금까지 나온 역사에 있어서 통계를 잡아 본다면, 발전과 더불어 역사시대의 그 어떤 때보다도 기독교가 가중된 탕감을 치러 나왔다는 사실은 틀림없는 사실(史實)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기독교가 이 민주세계를 창건하였고, 이제 공산주의와 대결해 가지고 최후의 승패를 결해야 할 시대상을 맞이한 것입니다. 그러니 민주세계가 우세한 자리에서 주도권을 쥐어야 하는 것인데, 지금에 와 가지고는 열세한 입장에 있어야 할 공산권이 오히려 우세한 자리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는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의 기독교 문화권에 있어서 비참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미국을 위시한 민주세계가 기독교 문화권에 예속되어 가지고 이와 같은 입장에 처해 있는 한, 기독교 문화권은 비참한 운명에 처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직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바라보게 될 때, 그 비참한 운명이 어떠한 나라에 집중되게 되어 있느냐?그것은 가면 갈수록 최후의 종말적인 현상들을 중심삼고 볼 때, 그 나라는 한국이 아닐 수 없다는 결론이 지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한국문제를 한국 국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차원은 지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 국민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해서, 외국의 어떤 세력 있는 강국이 한국을 위해 책임을 지고 이 나라의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는 나라가 나올을 수 있겠느냐?없습니다. 왜?세계의 주도적인 책임을 지던 민주세계를 대표한 미국이 후퇴하기 때문에 그 어떤 나라도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손을 댄다면 이 나라를 삼켜 버리기 위해서, 이 한국을 몽땅 사로잡기 위해서 오는 그런 강대국은 있을는지 모르지만 진정으로 한국을 위해, 한국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 찾아오는 강국은 없다는 결론을 짓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있는 것이 현재 한국의 입장인 것을 여러분이 잘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처지에서 해결점을 어디에서 찾아야 될 것이냐?자주적인 국민을 어떻게 형성하느냐가 문제입니다. 남북이 통일될 수 있는…. 세력균형상에 있어서 열세한 한국 민족이 남북으로 분단된 가운데에서 민족의 주체성을 고취하기 위하여 어떻게 단결해 가지고 이 환경을 타개해 나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한 주체적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을 갖지 않고는 금후에 있어서 한국이 갈 길은 불행한 처지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남한이 그런 주체적인 책임을 질 수 있겠느냐 할 때, 그러한 비준을 얻을 수 있는 자신을 아무리 찾아보더라도 갖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기에 만일 북한 공산권이 주체성을 쥐었다 하게 되면 한국은 여지없이 파탄되고 마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북한과 중공, 북한과 소련은 본질적인 입장에서는 같은 노선이다 이겁니다. 체질적인 입장에서는 다르다고 하지만, 공산주의라는 본질적인 관점에 있어서는 서로 협조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기에 중공이라든가 소련으로부터 언제라도 협조받을 수 있는 기반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한국은 그렇지 못한 자리에 서 있습니다. 이러한 정세를 앞에 놓고 우리 한국 민족, 자주적인 한국 민족으로서 금후의 한국을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야말로 비참한 운명에 놓여 있다는 것을 잘 알아야 하겠습니다. 어떠한 제 3세력을 통해 가지고 이 나라의 해방을 기원할 수 있는 때는 지나갔다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어떻게 주도적인 역량을 배양해 가지고 이북을 능가하고, 공산세계를 제압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을 찾느냐 하는 것이 이 민족이 살아 남을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메시아가 올 나라는 한국
그러면 한국이라는 나라가, 탕감복귀역사라는 것을 두고 볼 때, 어찌하여 역사시대의 그 누구도 해결할 수 없고 책임질 수 없는 비운을 맞이하게 되었느냐?인간을 통해 이루어진 역사적인 종말을 중심삼고 볼 때는 비참한 것일는지 모르지만, 세계의 그 어떠한 민족도 가질 수 없는 자주적이며 독창적인 민족성을 하나 남기고 싶은 하나님이 계시다면 문제는 다릅니다. 그러한 민족을 여기서 재기(再起)시켜 가지고, 하나님의 주도 앞에 새로이 봉화를 일으키게 해 가지고 아시아와 세계로 통할 수 있는 하나의 사상적인 조건을 갖추어 놓는다면, 거기서부터 새로운 민족 창건을 할 수 있는 가능한 자리에 설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뜻적인 입장에서, 혹은 섭리적인 입장에서, 그리고 하늘의 입장에서 생각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느때든지 한 나라의 정세라든가 혹은 그 나라의 운명을 결정짓는 책임자들은 많은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그 나라가 비상시에 처하게 될 때, 그 나라의 운명을 해결하기 위해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단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여러 사람이 그렇게 해야 되겠다는 공동결정을 통해서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한 사람이 제시한 조건을 잘 받아들이면 그 나라는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한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나라는 영영 역사의 뒤안길로 흘러가고 만다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적 실증들을 미루어 볼 때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처지에서 이 나라를 바라보게 될 때, '너, 한민족은 어디로 갈 것이냐?이겁니다. 문제가 큰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이 한국을 포기해 버리시겠느냐?정말로 포기해 버리셨다면 모르지만 포기하시지 않았다면 이 한국에 뜻이 있는 것입니다. 한국에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한국을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가 주시하고 있다 이겁니다.
여기에, 오늘날 한국은 비참한 탕감의 운명길을 세계사적인 입장에서 책임져야 됩니다. 또한 한국 자체내에 있는 어떠한 특정한 교회가 있으면 그 교회는 세계사적인 탕감의 제물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교회와 교파가 하나되어야 한다 이겁니다. 또한 교파와 나라가 하나되어야 한다구요.
유대교 앞에 이스라엘 민족이 그 유대교의 사상을 중심으로 온전히 하나되어 나갔더라면 그 나라는 망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유대교가 만일에 메시아의 뜻을 받들 수 있는, 다시 말하면 예수님과 완전히 하나 되었더라면 유대교는 망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 볼 때, 그 같은 재판(再版)의 형성이 세계적으로 전개되는 때가 바로 지금 이 시대가 아니냐?민주세계와 공산세계, 민주 세계는 무엇을 위주로 한 사상적 터전 위에 형성된 문화권이냐 하던, 기독교 사상입니다. 다시 말하면 산 기독교, 즉 교회와 하나될 수 있는 세계적 기반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형태로서는 세계형을 갖추었지만, 이스라엘 나라를 두고 볼 때에는 유대교와 마찬가지의 판도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가 끝날에 갈구하였던 것이 무엇이냐? 메시아의 현현을 갈구하였던 것입니다. '이제 저희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 민족이 살 수 없으니, 하나님이 이 민족을 위하고 저희를 사랑하시거든 우리 나라에 메시아를 보내 주소서' 하고 고대했습니다. 이것이 장구한 역사적 수난길을 극복하기에 지친 이스라엘 민족의 최후의 갈망이요. 갈구가 아닐 수 없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때에 비로소 하나님은 메시아를 보내신 것입니다. 그럴 때에, 최후의 때에 메시아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한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날 민주세계의 정세를 놓고 미국에 그러한 것들을 풀 수 있는 관건(關鍵)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한국에 있는 것입니다, 한국.
통일교회가 나오게 된 배경과 그 사명
이러한 문제 등등을 생각해 보게 될 때, 오늘날 한국은 세계적 수난도상의 최첨단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교회는 세계적 수난도상에 있을 뿐만 아니라, 자주력을 상실한 세계적 대표의 자리에 서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전통을 자랑하던 수많은 교파들은 이미 낙엽과 같이 떨어져 나가는 단계에 처해 있습니다. 이렇게 만신창이가 되어서 자기 자신을 가누어 갈 수 있는 역량을 완전히 상실해 버렸습니다.
이제 나라도 무기력하고 교회도 무기력 합니다. 그러니 이 나라와 교회는 어디로 갈 것이냐?망해 떨어져 간 유대교와 이스라엘은 무기력했지만, 이후 기독교는 강했습니다. 망해 떨어지는 유대교보다 강했고, 망해 떨어져 가는 이스라엘보다도 강했습니다. 그러기에 기독교가 4천년 하나님의 역사를 상속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발판이 아니었드냐?
이러한 입장에서 볼 때, 지금은 세계의 기독교가 망할 운명에 놓여 있고, 민주세계도 망할 수밖에 없는 운명권내에 처해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러한 때에 있어서 이 무력한 교회의 그 무력함을 타파할 수 있고, 사상적으로 무력한 민주세계의 그 무력함을 타파할 수 있는 자주적인 기독교와 마찬가지의 새로운 사상체계가 갖추어지면, 그 가는 길이 아무리 수난의 길이라 해도 하나님은 그 길밖에는 협조할 수 없다는 결론을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 길밖에는 소망할 것이 없습니다. 미국도 믿을 수 없고, 교회도 믿을 수 없으니 그 미국을 넘어설 수 있고 그 교회를 밀고 나갈 수 있는, 생사를 개의치 않고 나가는 기독교의 운동과 같은 새로운 운동이 이 세계적 현실의 종말시대에 전개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곳이 있거들랑, 그곳을 통해서 하나님은 방향을 제시해 나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교회와 교단이 다름아닌 통일교회다 이겁니다. 그러니 강해야 되겠다는 거예요. 기성교회의 어떠한 교단한테도, 어떠한 교파들한테도, 어떠한 교인들한테도 밀려 나가는 통일교회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들을 밟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반대하면 반대할수록 뚫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대한민국과 연결된 민주세계가 반대한다고 해서 밀려 나갈 것이 아니라 뚫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피를 흘리더라도 나아가야 될 것입니다. 피 흘리고 나가는 기독교는 발전할 수 있었지만, 피를 흘리게 하는 나라와 교회는 패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한 상극적인 세계정세를 눈 앞에 놓고 있는 것입니다.
자, 이렇게 볼 때, 통일교회가 갈 길은 뭐겠어요?그러한 역사적인 책임을 짊어진 자리에 섰으면, 거기 속한 개인이 짊어진 책임이라는 것은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짊어진 것이 아닌 것입니다. 알겠어요?그 짊어진 이익의 결과적 내용이라는 것은 자기의 이익만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세계의 이익을 위해서요. 민주세계의 이익을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6천년 동안 피의 대가를 치러 가지고 하나님의 섭리역사를 근근히 이어받아 나온 기독교 문화가 깨져 나가는 것을 상속받는 자리에 섰습니다. 그것은 세계와 기독교를 대표한 것도 물론이지만, 하나님의 복귀섭리를 대표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복귀섭리를 대표해서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모든 권한을 대행할 수 있는 자리에 섰다는 것입니다. 그가 결정하면 결정되는 것이요. 그가 망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자리에 섰다 이겁니다.
모질고 무자비한 훈련을 통해 최후의 결정타를 준비하는 통일교회
그러니까 우리는 세상의 그 무엇을 바라보고 기대할 수 없습니다. 민주세계와 기독교에 기대를 가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기대를 걸 수 있는 곳은 한 곳, 하나님에 대한 기대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하나님에 대한 기대밖에 없다는 거예요. 그런데에 기대를 거는 데는 책임을 할 수 있는 사명을 짊어지고 그 기대를 요구해야 됩니다. 그 책임이란 무엇이냐?망해 들어가는 교회와, 망해 들어가는 세계를 책임질 수 있는 대표의 자리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이미 세계는 망해 들어가지만, 본래의 전통적 정수(精髓)를 이어받는데 있어서는 사탄이 하나님 앞에 절대 참소할 수 없는 당당한 자리에서 이어받을 수 있는 개인이라야 합니다. 그래야 되는 거예요. 그러한 주체적 입장에서 하나님을 대신하고 뜻을 대신한 상대적 인간으로서, 그 주체성을 갖고 나설 수 있는 자각된 무리이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은 이미 민주세계를 상대하지 않습니다. 상대할 것 같아요?또한 하나님은 기독교도 상대하지 않습니다. 망해 떨어져 들어가는 이 기독교는 썩은 수박통같이 굴러 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역사적 종말시대에 있어서, 통일교회를 지도하는 문 아무개는 그들보다 달라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불신하는 세계를 놓고 하나님의 뜻 앞에서 볼 때에, 불신해야 할 세계와 교회를 자를 때는 아무나 그냥 잘라 버려서는 안 됩니다. 그것을 잘라 버릴 수 있는 자세를 가진 하나의 교단을 대표하고 세계를 대표한 그런 단체여야만 합니다. 이것이 현재 취해야 할 통일교회의 주류적인 자세가 아니겠느냐 하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관점에 있는 통일교회라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런 통일교회가 갈 운명의 길은 어떤 길이냐?비참한 세계사적인 망운권내(亡運圈 內)의 포로가 되어 가지고 사망의 물결에 휩쓸려 가는 이 비극적 현상들을 가로막기 위해서는 값비싼 희생을 치르지 않으면 안 될 단체가 돼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6천년 동안 하나님의 피의 희생의 대가를 이어가지고 남아진 기독교가 저렇게 됐구나' 하는 걸 알고 살려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 민주세계가 저렇게 됐으니 잘라 버려야 되겠지만 그것을 잘라 버릴 수 있는 하나님의 입장이 못 되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책임을 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미국을 구해 줄 사람은 미국 사람이 아닙니다. 그건 미국 사람도 알고 있어요. 기성교회를 구해 줄 사람은 기성교회 사람이 아닙니다. 그들을 구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미국을 들이쳐서 회개시키는 놀음을 해야 합니다. 기독교를 들이쳐서 회개시킬 방망이가 공산당이라는 것입니다. 잘못하면 할수록 공산세계는 강력한 방망이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강력한 방망이로 등장하는 그것을 견제할 수 있는 다른 하나의 움직임이 있어야 할 텐데, 그러한 것이 없거들랑 공산주의 일색의 세계가 결정적으로 이루어질 것이 아니냐?
그러므로 하나님이 어떠한 단체를 반드시 그 방망이에 브레이크를 걸어서 조정할 수 있는 하나의 산 모습으로 내 세우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제2의 기대를 걸어 그들이 회개하도록 연결시킬 수 있는 준비를 할 것이 틀림없지 않느냐 이겁니다. 그러한 것을 준비한 단체로서 나타나야 할 단체가 다름아닌 통일교단이 되어야 되는 겁니다. 그렇게 되어 한 나라의 기반만 닦고 나타나게 될 때는 세계로 도약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때가 통일교회 앞에 있을 성싶다 하는 것입니다. 현세계정세를 중심삼고 볼 때, 해결 방법은 섭리적 내용과 하나님의 심정을 통한 최후의 이 길밖에 없다는 것을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통일교회 교인들은 어디로 갈 것이냐?이 썩어빠진 사회로 돌아갈 것이냐?그렇다면 망해야 된다구요. 썩어 떨어진 교계의 틀거리를 소망한다면 그것은 망해야 된다구요. 기대를 갖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공산권을 포위하고 사로잡을 수 있는 자체의 역량을 완비하는 그러한 준비기간을 강화시켜야 됩니다. 그런 훈련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 훈련은 결코 수월한 훈련이 될 수가 없습니다. 수월한 훈련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질고 무자비한 훈련을 통해 최후의 결정타를 준비하는 하나의 교파요. 하나의 사상적인 일을 대표할 수 있는 그러한 단체, 그 단체가 통일교회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러한 자부심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자부심을 갖고 나타난 한 개인으로서 서게 될 때에, 나 개인은 민주세계의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일을 대표해서는 앞섰다고 하겠습니다. 수많은 교파 중의 그 어떠한 교파보다도 내가 책임을 져야 되겠고, 어떠한 지도자보다도 내가 앞섰다는 자부심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왜 그러한 자부심을 가져야 되느냐?오늘날 탕감복귀의 원칙을 두고 볼 때, 우리들이 갈 길은 자기 집을 이끌어 나라에 영향을 미치고 세계로 넘어가야 할 길이기 때문에, 여러분이 갈 길은 세계입니다. '세계 대 나'라는 것입니다. 국가 대 나가 아니요. 민주세계 대 나가 아니요. 공산 세계 대 나가 아닙니다. '세계 대 나'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관점에서 유일한 세계관의 입장을 확립해 가지고, 거기에 자주적인 주체성을 어떻게 확정지어 갈 것이냐가 문제입니다. 또한 그것을 어떻게 횡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자리에 선 통일교인이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자 그런 입장에서 보면, 오늘날 통일교회 앞에는 탕감복귀의 세계적인 제물의 내용이 전부 다…. 개인적으로 실패한 것, 가정적으로 실패한 것, 종족적으로 실패한 것, 민족적으로 실패한 것, 국가적으로 실패한 것, 세계적으로 실패한 모든 것을 상징적으로 탕감해야 합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실패하고, 미국의 기독교가 세계적으로 선교하는 데에 있어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지만 이제는 그것이 전부 다 동강이 날 수 있는 단계에 들어섰습니다.
여러분 미국의 여러 교회에 가 보라구요. 우습다구요. 젊은이들은 하나도 없습니다.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어서 망하라는 거예요. 망해라 망해, 망해! 불이 붙기 시작했다면, 더 좋은 집을 짓기 위해서 차라리 불살라 버려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 '어서 망해라' 하나님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망하지 않으면 공산당이 들어가 칠 것입니다.
일본 같은 데 가 보게 되면 관서학원 신학교라든가, 청산학원 신학교라든가, 전부가 공산당에게 놀아나고 있다구요. 그래서 이제 폐문해 버릴때에 다 들어왔다구요. 뜻을 망각해 버리고 자기 배를 채우기 위해 살던 보응을 단단히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합니다.
골리앗을 때려잡은 다윗과 같은 신념을 가져야 할 통일교인
통일교회 교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야말로 지금의 때는 숨막힌 역사적인 시점이 아니냐?골리앗을 대한 다윗은 비록 양 치는 목동으로 한 벌밖에 없는 남루한 옷을 입고 있을망정, 그의 눈동자에는 뚜렷한 목적관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세워서 약속을 한 그 나라의 승리적 권한은 반드시 자기를 통해서 준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망하게 될 때는 이스라엘 나라가 망하는 것이요. 수천년의 역사시대에 있어서 하나님이 사랑하였던 민족적 선민권이 망해 떨어져 나간다'는 그런 자부심을 가졌던 다윗이었습니다.
그처럼 다윗이 골리앗보다 나아야 하나님이 협조해도 사탄이 참소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협조해 가지고 다윗이 이기게 된다면 사탄이 그걸 어떻게 참소하겠어요?그래서 다윗이 골리앗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그의 시선은 하나님의 축복의 세계를 바라보았던 것이 아니냐?그는 비록 목자의 생활을 했지만 미래의 이스라엘 국운을 염려했던 것이 아니냐는 거예요. 모든 것이 골리앗보다 못하지 않다는 거라구요. 비록 현실적인 기반에서는 아무것도 없지만, 내적인 심정문제에서 보나 소망적인 면에서 보나 골리앗보다는 백 배 낫다는 겁니다. 참된 자리에 섰다는 거라구요.
그렇게, 다윗은 하나님이 편 되어 줄 수 있는 당당한 자리에 섰기 때문에 그 골리앗을 때려잡은 것입니다. 그런 것을 알아야 돼요. 그러기에 다윗을 왕으로 세운 거예요. 그것은 정의를 위하고 나라를 대신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겠다는 그러한 자세를 가지고 빛나는 사상을 닦아 나온 다윗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다윗에게 있어서는 목자의 생활이 길면 길수록 거기에서 내적 정비를 할 수 있었고, 내적인 심정의 애국사상을 고취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상이 하나님의 뜻과 방향에 일치될 수 있었기에 위대한 다윗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이스라엘 민족 그 누구도, 이스라엘의 어떠한 교역자도, 이스라엘의 교단 그 누구도 갖지 못하였던 당당한 모습으로 하나님의 뜻 앞에 일치되는 사상을 가진 사나이가 아니었느냐 이겁니다. 그러니 '비록 이스라엘 나라는 망하더라도 내가 가진 사상으로 말미암아 다시 나라는 건국될 것이다'는 사상을 가졌던 사나이가 다윗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골리앗에게 외적인 모든 면에 있어서는 비할 바가 아니었지만, 내적인 가치기준에 있어서는 골리앗보다도 무겁고 크기 때문에 거기에 하나님이 편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탄이 참소할 수 없는 당당한 승리가 된 것이 아니냐? 그건 당연한 것이 아니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다윗은 왕이 된 거예요. 그렇지요?
그와 마찬가지로, 통일교회는 어떠냐? 비록 헐벗고 못먹고 있지마는 시선은 다윗과 같은 시선을 가져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 나라 이 민족의 비참상을 내가 책임지겠다. 그 누구한테도 맡길 수 없다. 비록 나이 어린 소년이지만 나의 책임으로, 내 손으로 해결짓겠다'고 해야 합니다. 그러한 정신이 하나님이 요구하는 최후의 적절한 요구가 아니겠느냐? 또는 최후의 통첩이 아니겠느냐 이겁니다.
그런 자리가 왔고 그러한 때가 왔기 때문에, '나는 당당코 생명을 바쳐 새로운 건국도상의 일인자로서 등장하겠다'는 다윗의 전통적 사상을 여러분이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에서 보게 될 때, 다윗은 지금까지 하나님이 기대하였던 역사시대의 어떠한 사람보다도 하나님이 바라는 새로운 나라를 지키는 데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새로운 전통적 교회를 구축하는 데 있어서 대표자였기 때문에 하나님은 양면에 그 사상적인 배후가 확고히 서 있는 다윗에게 이스라엘 나라를 맡기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의 원수를 때려잡고 다윗을 남긴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이걸 알아야 합니다. 통일교회에 있어서는 다윗과 같은 그런 신렴을 가져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망해 돌아가는 현세를 바라보게 될 때, 이 책임을 누가 지느냐? 그것을 기성교회에 맡기지 말라 이겁니다. 그 책임을 민주세계에 맡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니면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과중한 임무에 불타는 신념을 가지고 '세계를 우리의 손으로, 공산당을 우리의 손으로 책임을 지겠다'고 하는 무리가 있거들랑, 하나님은 이 무리를 빼놓고는 이 세계를 수습할 길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해서 무엇을 협조해 달라고 안 하더라도, 그런 사상을 가졌으면 하나님이 찾아와 협조해 주려고 하신다는 거예요.
한국이 살 수 있는 길은 이것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우리는 그러한 때를 바라보고 나왔던 것이며, 그야말로 그 때가 목전에 다가왔습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입장에서, 죽지도 못하고 살수도 없는 입장에서 이왕에 행동하려면 나를 중심삼고 행동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죽으려면 나를 중심삼고 죽지 말라는 겁니다. 다윗과 마찬가지로 행동하는 데에는 나라와 세계의 운명을, 하나님의 뜻을 걸고 행동하자는 거예요. '죽더라도 홀로 죽지 말자! 세계를 대신한 제물로서 죽으라!' 이게 얼마나 고차원적이요. 멋진 이상을 가진 무리들입니까?
그러니 세계사적인 역사를 대표하는 하나의 제물적인 자리에서 내 생명을 하나님 앞에 봉헌할 수 있는 숨막힘과 동시에, 무한한 가치가 맺어져 있는 그런 때를 향하여 내가 나설 수 있는 길이기에 이것은 마치 다윗과 같이 죽음을 넘어갈 수 있는 배후의 사상이 하나님의 심정을 휘어 잡을 수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그랬기 때문에 승리의 결정이 벌어진 것이며, 죽기를 바란 다윗은 살고 살기를 바란 골리앗은 죽은 것이 아니냐? 그리하여 망할 수밖에 없었던 이스라엘은 다윗으로부터, 망할 수밖에 없었던 유대교는 다윗으로부터 재편성되어 이스라엘의 건국이념이 창건되었던 것이 아니냐?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설정되는 주체민족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
그러니 통일교회는 이런 때에 대한민국만을 대표한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세계 전체를 책임지자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기성교회의 반대를 받았고 대한민국의 반대를 받았지만, 대한민국에게 밀리고 기성교회한테 밀려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이 갖고 나온 주류적인 사상입니다. 물러날 수 없어요. 기성교회가 물러나야 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에 있어서 불의의 씨들이 물러나야 되는 거예요. 세계의 민주주의를 지도하는 불의의 패들이 물러나야 되는 것입니다. 세계의 기독교의 전통을 자랑하는, 퇴폐적인 사상의 자리에 선 이 기독교가 물러나야 합니다. 우리는 밀려날 수 없습니다. 공산당을 물러나게 해야 하는 거라구요. 우리는 절대 물러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과중된 임무를 중심삼고 각오와 신념을 갖고 대비할 수 있는 자리에서만이 세계적인 새로운 수습방안이 현현될 것이 아니냐?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나온 것입니다. 또한 '국제승공연합'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나온 것입니다. 그래 뭘하자는 것이냐? 밀고 나가자는 것입니다. 여러분, 일본에서는 지금 공산당들과 대대적인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미는 것입니다. 밀고 나가는거예요.
그러한 입장에서 나오다 보니 한국의 기독교계에서는 통일교회를 암(癌) 중의 암적인 존재라고 보고 있다구요. '뭐 장로교니 성결교니 무슨교니 하며 서로 싸울 것이 아니라 이제 문제는 통일교회다. 합동해서 싸우자' 그러고 있습니다. 합동하라구! 빨리 합동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싸우자 이겁니다. 그들이 전국대회를 하게 되면 꼭 합동해 가지고 나오지요? 전라도에서 이긴 패, 경상도에서 이긴 패가 나와 가지고 싸워서 챔피언 선수권을 결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나오라 이거예요. 나오는 데는 발가벗고 나오라 이거예요. 담을 헐어 버리고, 문을 열고 나오라 이거야, 문을 닫지 말라 이거야, 그래 만나 보자, 해 보자, 이거예요.
그런 때가 왔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내가 모모한 사람들을 만나려고 합니다. 10월 후반기부터…. 대한민국에서 저라고 하는 사람들을 만나 보려고 하고 있어요. 요즘 대한민국의 시급한 문제는 주체사상이라고 말들은 하고 있습니다. 그래 그 주체사상을 어떻게 형성할 것이냐?그 사람 들끼리? 안 돼, 안 돼, 안 됩니다. 사람은 주권자가 달라짐에 따라서 주의와 입장이 달라지기 때문에 이 시대의 주권자를 통해서 세워 놓더라도 다음 세대에는 넘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절대적인 하나님을 중심삼고 세워 놓으면 주권자가 천만 번 변하더라도 그 본질과 그 본목적, 본사상 체계에 있어서는 변할 수 없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삼고 설정해 놓은 주체민족이 된다면 대한민국은 세계를 지도할 수 있다고 보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이 통일교회 패들, 생기기는 못 생겼고, 차리고 나타난 모습은 초라하지만 눈은 올바로 가지고 있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가는 길을 올바로 가야 되겠다는 거예요. 역사시대에 과중된 임무를 앞에 놓고 전체적인 탕감을 한꺼번에 하자는 것입니다.
보라구요. 이제 우리는 민주세계를 대표해 공산당을 대하자는 것입니다. 세계의 기독교를 대표해서 종교계를 대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은 억지가 아닙니다. 사실적인 내용이 그렇습니다. 사실적인 내용이 그러니 확신을 갖고 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강한 것과 약한 것이 서로 맞부딪치면 어떤 것이 깨져요?「약한 것이 깨집니다」 그러면 같은 것끼리 서로 때리게 되면 어느 것이 이겨요?그것은 보다 빠른 녀석이, 둘 다 쓰러졌어도 빠른 녀석이 먼저 일어납니다. 자동차끼리 충돌하더라도 속도가 빠른 쪽이 밀고 나가게 돼요. 그러니 암만 강하더라도 혹은 같이 강하더라도 빠르고 재치있게 하는 데에서 승패가 가려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구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기성교회하고 통일교회하고 어디가 무릅니까?어디가 물러요? 「기성교회요」 기성교회가 무르다구요? 기성교회에 가서 물어 보라구요. 통일교회가 무르다고 할 테니, 그렇기 때문에 부딪쳐 봐야 된다구요.
통일교회 아가씨들하고 기성교회 목사들하고 싸움을 붙이면 우리 통일교회 아가씨들이 질까 이길까? 「이깁니다」 이겨요?모가지를 비틀고 들이쳐도 이겨요?덩치 좋은 목사들을 말예요. 무엇으로 이겨요?말발로 이기지…. 아가씨들이 묻는 데에도 대답을 못하고 눈만 꺼벅꺼벅할 거라, 맨 처음 창피를 당하게 되면, 두번째 찾아가서는 정문에서 '목사님' 하고 부르게 되면 후문으로 도망갈 거라구요. (웃음)
싸움은 이미 결정된 거라구요. 이기게 돼 있는 거라구요. 물렁물렁한 것에 단단한 것이 들이치게 되면, 단단한 것은 흠도 안 납니다. 알겠어요?
그러니 망하지 않고 보호할 수 있는 비법이 뭐냐?싸워라 이겁니다. 알겠어요?재치 있게, 날쌔게 달려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 재치 있고 날쌔게 달려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기성교회가 따라올 수 없는 활동을 하자 이겁니다. 그래서 아아 저것도 통일교회구나 문목사 패다. 어어 저것도 통일교회구나, 아 이것도 통일교회고 , (웃음) 그렇다고 통일교회 여러분들이 다한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이 해 나왔지, 여러분이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지만, 여러분이 한 게 하나도 없다구요. 못생긴 문선생이 했지, 그렇지요?
그래 누구를 무서워하는 거예요?통일교회 누구를 무서워하는 거예요? 통일교회 김영휘를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구요. 통일교회 간부 누구를 무서워해요?통일교회 문선생이란 사람이 눈이 세 개 있는 것이 아니라구요. 다만 눈이 조그마하고 매섭게 생겼지, 사실은 만만치 않다구요. 콧대가 이렇게 섰는데, 누구 말 안 듣게 생겼다구요. 그렇게 돼 있다구요.
그렇게 때문에 내가 지금 굶어 죽었으면 죽었지, 절대 취직이나 해 가지고 종살이하려는 사람이 아니예요. 만약에 뜻대로 못 됐으면 차라리 저 농촌에 들어가 똥통을 메고 사는 농부가 됐지, 그러니 최고가 아니면 최하, 둘 중의 하나를 택할 사람이라구요. 본래가 중간에서 어영부영 살사람이 아니라구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이 통일교회 젊은 놈들, 잘 알아야 된다구, 긴가민가 해 가지고, 행여 공짜나 있나 바라구 말이야….술집에 가 가지고 뭐 개평술 없나 하는 것들, 이런 것들은 원수라구요. 투전판에 가 가지고는 뒤꽁무니에서 개평이나 바라는 것들은 원수라구요. '이 못난 녀석아, 이왕에 싸웠으면 대가리가 깨져 피를 보더라도 이길 수 있는 사나이가 돼야지, 싸움도 안 하고 그냥 공짜나 먹으려고 하면 너는 공짜 인생밖에 안 되는 거야' 그런다는 거라구요.
자, 그러니 단단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단단해요? 단단해? 「예」과중한 임무를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물렁물렁한 사람이다? 「단단한 사람입니다」 단단하다면 눈알을 뭐 강철 같은 것으로 박았나? 눈알도 물렁물렁하지, 볼때기도 물렁물렁하지, 손도 물렁물렁하지, 만져 보면 다 물렁물렁하다구요. 뭐가 단단한 거예요. 뭐가 단단하냐구요? 응? 「목적관입니다」 목적관이 아니라 사상이 단단한 거예요. 사상이, 사상이 단단하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이놈의 세계가 들이치더라도 잘못쳤다간 오히려 들이쳤던 세계가 두 동강날 수도 있다구요. 그렇지요? 그들이 잘 드는 작두나 비수를 가지고 이게 뭐냐고 하면서 수박통 쪼개듯 잘 만났다고 치게 되면 그 칼이 좋다고 하겠어요. 나쁘다고 하겠어요?칠 테면 잘 쳐라 하면서 가만히 있으면, 친 칼이 절반으로 뻐개져 나간다는 거예요. 그래서 통일교회는 가만 있지만, 통일교회를 반대하다 보니 오히려 기성교회가 깨져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거예요. 가만히 있어도 단단한 것을 치면 칠수록 자기가 깨져 나간다 이겁니다.
단단해야 하는 통일교회
이제 조금 더 있으면 통일교회 문선생이 들이칠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아무도 치지 않았어요. 그러나 조금만 더 가면 내가 그들을 들이칠 거라구요. 그들이 왼 매질을 하게 되면, 난 바른 매질을 할 거라구요. 그들이 왼 매질 하는 데 우리는 반대로 굵은 바른 매로 치게 되면 왼 매질은 떨어져 나가고 처음에는 맞지만 바른 매질로 응수하게 되면 왼 매질은 풀려 떨어져 나가고 바른 매질은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단단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자, 우리 할머니들도 어디 가다가 죽게 될지도 모르지만, 단단해야 되겠지요?어디에 가서 앉더라도 '아이구 난 허리가 꼬부라져서 죽겠다' 그러는 게 아니라구요. 허리가 꼬부라졌지만 마음만은 살아 있다고 해야합니다. 목이 아프게 되면 손가락이라도 이렇게 굳굳하게 하고 있으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힘들거든 혓바닥이라도 하늘에 대하여 이렇게 하고 '나는 이렇게 단단하다'고 하라는 거예요. (웃음) 웃을 게 아니라구요.
자 여러분, 단단한 것이 좋아요. 물렁물렁한 것이 좋아요? 「단단한 것이 좋습니다」 여자들은 물렁물렁한 게 좋지요? (웃음) 여자들도 단단한게 좋아요? 「예」 그러면 그 단단한 것이 사방이 전부 다 단단해야 되겠어요. 삼면은 단단하지만 일면은 물렁물렁해도 괜찮겠어요? 어때요? 「사면이 단단해야 됩니다」 삼면은 단단한데 일면이 물렁물렁하게 되면 그것은 모두가 물렁물렁한 것보다도 더 나쁘다 이겁니다. 그건 굴리면 굴릴수록 한 편만 닳기 때문에 가다가 금방 구멍이 뚫려 멈추게 됩니다. 알겠어요? 그렇지만 차라리 사방이 물렁물렁한 것을 굴리면 닳더라도 끝까지 구른다구요. 그러니까 삼면만 단단한 것이 도리어 전체가 물렁물렁한 것보다도 낫다. 못하다? 「못하다」 못하다는 것입니다.
자, 여러분은 어때요? 삼면이 단단하오, 이면이 단단하오, 일면이 단단하오? 여기 여자들, 대답해 봐요. 판가리를 해봐야 되겠다구요. 사면이 단단해요. 삼면이 단단해요. 이면이 단단해요. 일면이 단단해요. 「사면이 단단합니다」 사면이 단단해요? 「예」 그래 굴리면 어디든지 가겠다 그말이예요? 그렇잖아요. 사면이 단단하니 굴리면 어디든지 가는 거라구요. 동으로 가라면 동으로 굴러가는 거예요. 가다가 옆으로 갈 줄도 모르고 오직 일직선으로만 간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끝날에는 차든가 뜨겁든가 둘 중의 하나가 되라는 것입니다. 미지근한 것은 한 면이 물렁물렁한 것과 같습니다. 그거라구요. 그러니 단단하든지, 아니면? 「물렁물렁」 물렁물렁하든지 둘 중의 하나가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소원이 뭐냐? 물렁물렁이다? 「단단이요」 물렁물렁이야? 「단단입니다」 단단이야? (웃음) 응? 「단단이입니다」 할머니들도? 「예」 저기 아주머니도? 「예」
여러분, 형용사라는 것은 좋은 것을 고르기 위해서, 좋은 기분을 돋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지, 기분 나쁜 것을 돋구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그건 망해야 됩니다.
그러므로 단단해야 됩니다. 단단해야 된다구요. 통일교회 문선생은 질깁니다. 가죽처럼 질기다 이겁니다. 참으로 질기다구요. 왜정 때부터 지금까지 죽지 않고 남아져 꺼떡대는 걸 보면…. (웃음) 참 질기다구요. 여기 우리 아가씨들도 시집가게 되면 질긴 남자 얻으라고, 그렇잖아요? 사람은 질겨야 되는 거라구요. 뭘 하나 붙들면 그걸 녹여내야 되는 거라구요.
통일교회 패들, 특히 문선생을 가만히 보면 겉으론 물렁물렁하게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누가 오면 적당히 잘 대해 줍니다. 그렇지만 벌써 그 똥싸개까지 다 파헤쳐 가지고 알고 있다구요. 음, 너는 이런 생각을 갖고 있구나…. 어수룩해 보이지만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보면, '음! 저녀석 이런 생각 가지고 다니는구만' 말하지 않아도 벌써 그걸 다 안다구요.
통일교회 문선생이란 사람이 질기고 단단한 것 같지 않아요? 식구들이 아무라도 선생님에게 이러고 저러고 하면 '아 그래, 아아 그런가' 하고 사정을 잘 들어주는데 뭐가 단단해요?물론 사정은 잘 들어주지만 원리원칙에 가서는 조금도 용서하지 않는 거예요. 싹 잘라 버리는 거라구요. 어머니 아니라, 아버지 아니라, 여편네 아니라, 자식이라도 안 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망하지 않고 지금까지 이겨 나왔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여자들도 단단해야 되겠습니다. 사방이 단단한 여자들이 되어야 되겠다구요. 그렇게 되어야 되겠지요? 「예」
오직 나라와 세계만을 위해야 하는 통일교회
이제 전부 다 또 한 번 총동원시켜야 되겠습니다. '총동원' 하게 되면 여자들 얼굴이…. 그전에는 미인들인데…. 미인의 반대가 뭐예요. 추녀입니다. 때가 돼 가지고도 총동원 명령을 내리지 않으면 그것을 더 안타까와해야 합니다. 언제나 '아유, 난 싫어, 난 이제 싫어, 집에 있는 게 답답하고 지루해서 싫어' 그래야 됩니다. 여러분! 여름 내내 장마가 지면 지루하지요? 그것 좋아하는 사람 있어요? 누더기 보따리, 누더기 옷 한번 벗어 던지고 세계무대에서 활개치고 살다가 죽어야 되지 않겠어요? 그저 언제나 지루하게 생활하면 거 기분 좋아요. 나빠요? 기분 좋아요. 나빠요? 「나쁩니다」
짐을 벗는 데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승리해서 벗는 것이 있고 하나는 망해서 벗는 것이 있습니다. 한 길밖에 없다구요. 우리가 갈 도착점은 승리해서 짐을 벗는 놀음이지, 망해서 벗자는 놀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 그러니, 빨리 짐을 벗기를 바란다면 보다 과중된 임무를 짊어지라는 것입니다. 가정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 이제부터 나라를 위해 살아야 되겠다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솔가(率家)하여 나라를 위해 충성하게끔 하는 사람은 가정에서 공인받는 것만이 아니라 나라에서 공인받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기에 더 큰 공적인 분야에서 희생하고, 책임소행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들라는 것입니다. 그럴수록 그것은 나쁘지 않은 것이다. 그렇지요? 그럴수록 좋은 것이다. 뭐 나쁘지 않은 것이나 좋은 것이나 마찬가지지, 다 좋은 것이다 이겁니다.
그래서 내가 요전에, 남북적십자회담이 벌어져 남북이 왕래하며 무슨 무슨회의를 한다는 그런 소문을 듣고서 '아하 내가 삼팔선을 넘을 때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떠난 걸음인데, 수십 년 달리다 보니 이제 다시 삼팔선에 가 볼 때가 되어 오는구나'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만약에 그렇게 안 되면 우리가 그것을 밀고라도 가서 만나야 되지 않나 하는 그런 생각을 한 거라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그래 남한이 뭐가 걱정이예요? 인구 수로 해도 배가 넘지 않느냐? 그렇지요? 「예」 자, 그러니 이거 얼마나 못났어요? 이것들 이게, 사람이 얼마나 못났느냐 이겁니다. 내 이렇게 생각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일대 일로 바라볼 때 그들도 사람이예요. 사람이 아니예요?사람이라면, 두 녀석이 한 녀석을 무서워해요? 그게 잘난 녀석이예요. 못난 녀석이예요? 잘난 녀석이예요. 못난 녀석이에요? 「못난 녀석입니다」 못난 녀석이라구요. 못난 녀석이예요. 수적인 입장에서 보더라도 걱정이 뭐예요?
우리 대한민국 여자들만 동원해 가지고도 그들의 모가지를 다 잘라 버리고 밀어 버릴 수 있습니다. 여자만 동원하면 됩니다. 하면 되는 거예요. 공산당 이상으로 여러분도 하라는 거예요.
나는 지금도 그렇게 얘기한다구요. 박대통령 보고 '박대통령! 해라! 밀어라! 밀어붙여라! 야당이 반대해도 밀어라, 대한민국이 천년 만년 남아지기 위한 역사를 창조하려면 밀어라' 하고 얘기했습니다. 야당을 위한 대한민국이 아니라구요. 대한민국을 위해 야당이 있는 것이지 누구든지 대한민국을 위하는 입장에 서면 못 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당이 만약에 대한민국을 위해서 못하게 되면 들이쳐야 됩니다. 쳐야 된다구요. 대한민국을 사랑해야 됩니다. 공화당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구요.
요즈음 뭐 '통일교회는 공화당이다' 그러는데 우리가 공화당일 게 뭡니까? 통일교회는 오직 한국을 사랑하는 한국당 종교지, 공화당이 아니라구요. 미래의 역사를 이끄는 중심으로서의 한국을 위한 패들이지, 공화당을 위하는 게 아니라구요. 공화당은 한국을 잡아먹으려 하면 안 된다구요. 그걸 확실히 해야 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가는 노정은 죽도록 나라를 위해 가는 노정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니까 여당하고 한패라고, 야당들이 우릴 대해서 뭐가 어떻고 어떻고 야단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당이 우리를 알아주는 것도 아니라구요. 또 알아 달라고 내가 그러는 것도 아니예요. 알아주지 않더라도 그러한 자리에서 충의 도리를 다하는 그것이 애국이 아니냐? 내가 이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이 나라에 무엇이 되겠다고 하는 생각을 했다면 그건 애국이 아니라구요. 그건 자기를 위한 욕망이요 계획이지, 나라를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구요.
통일교회가 이 나라에 무슨 욕망이 있어요? 없습니다. 선생님도 욕망이 없다구요. 욕망이 있다면 세계를 구하자는 것입니다. 세계를, 요전에도 내가 한다 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그가 나보고 떡 제시하는 세 가지 조건이 뭐냐 하면 '첫째는 뭐고, 그 다음은 뭐고, 이런 문제는 이렇게 해야 됩니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아 그거 당신이 나라를 중심삼고 하는 말이요. 세계를 중심삼고 하는 말이요' 하고 반문하려다가 이야기를 안 했습니다. '결국 한국 사람은 한국을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한국이라는 영역에 포위되어 세계를 지도해 보겠다는 사상은 못 가졌구나' 그런 생각을 하고 언제 다시 만나면 전부 분석해서 비판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통일교회 기반이 커 가기 때문에, 뭐 박대통령을 밀어치우고 대통령 해먹으려고 그런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은 한국 대통령을 꿈꾸는 사람이 아닙니다. 미국 행정부를 내가 틀어쥐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야,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민주세계 꼭대기를 끌어잡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그 닻줄을 잡혀 주는 사명을 하겠다는 거라구요.
내가 감옥에 들어갈 때도 문선생님 뭐가 어떻고 뭐가 어떻고 말이 많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앞으로 문선생을 만나는 것은 세계무대에서만 만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한국의 인물들을 지금까지 만나지 않았어요. 만나자고 해도 안 만났다구요. 나는 저자세에서, 또는 신세지는 입장에서는 만나지 않아요. 그런 짓은 죽어도 싫어하는 사람이라구요. 신세를 지우는 입장에서, 당당히 그에게 신세를 입히는 자리에서, 공적 예의범절을 가릴 수 있는 자리에서 만나자는 거예요.
나는 이제 대한민국의 누굴 만나더라도 부끄럽지 않다구요. 그럴 수 있는 기반을 닦았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선생님을 한국에서의 선생님으로 생각지 말라 이겁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만나려고 하는 것이 통일교회 문선생의 사상이란 걸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예」
그렇기 때문에 미국 사람도 선생님을 좋아하고, 일본 사람도 선생님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미국 사람들도 선생님이 명령하게 되면 듣게 마련입니다. 일본 사람도 원수지만 선생님이 명령하게 되면, 천황이고 다나까 정부고 간에 반대하라면 반대한다구요. 공산당하고 공개토론해 가지고 그들을 쓰러뜨려라, 칼침을 맞고 쓰러지더라도 해라, 지금 그 놀음을 하고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공산당이 코너에 몰려 있으며, 이론적으로 공산당이 밀리게 됐으니 그들이 큰일났다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어제도 일본내의 비밀 이야기를 들었는데, 조총련을 통한 북괴 공산당들이 김일성 이가 큰일났다고 한다는 거예요. 그런 말들을 내가 지금 듣고 있는 거예요.
세계복귀는 우리의 사명
우리가 앉은 이 자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교회라고 이게 뭡니까?값으로 따져서 몇백만 원 되겠어요? 천만 원 미만이라구요. 그렇지만 여기에 사는 사람, 특히 통일교회 문선생은 천만 원 이하의 사람이 아니다 이겁니다. 토굴이면 어때요? 비참한 토굴이라도 그 토굴 속에서 세계를 살릴 수 있으면 각국의 원수들이 그 토굴을 찾아와 눈물 흘리며 들어서는 거라구요. 그들이 찾아 들어와 가지고 토굴 벽을 붙들고 눈물을 흘릴 거라구요. 그건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요? 내가 내 개인을 위해 그랬다면 그러는 녀석들은 미친 녀석들이지요. 그러니 우리는 단단해야 되겠다구요. 알겠어요? 「예」 통일교회 여자들은 세상 사탄이 간교한 수법으로 꼬여내면 꼬여넘어가야 된다? 「안 넘어가야 됩니다」 자신 있어요? 「예」 선생님은 '이 세상 사탄의 자식들이 나를 꼬인다는 것은 어림도 없다'는 그런 자부심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내가 가는 길은 누구도 막지 못한다구요. 어떤 길이라도…. 그런 길을 닦아온 사나이라구요.
여기 사내녀석들, 전부 다 알몸뚱이가 되게 해 가지고 캄캄한 방에 쓸어넣더라도 안 넘어갈 자신 있나? 「예」 자신들 있어? 「예」 자신 가져야 된다구요. 선생님은 그런 훈련을 다 거쳐 나온 사람이라구요. 지금도 그래요. 지금도 그렇다구요. 네가 내 말을 안 들으면 실적으로 승리할 것이다. 타당한 원칙인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공인하지 않고 수긍하지 않으면 실적으로 제압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돼 있는데 기성교회보다 못해서 되겠어요? 그렇지요? 못해서 되겠느냐구요? 「안 됩니다」 앞으로 우리 본부교회를 새로 짓더라도 이 건물을 헐어서는 안 됩니다. 이건 그냥 그대로 두고 앞으로 박물관을 세워 놓으라구요. 이제 교회도 세계에서 제일가는 교회를 지어야 되겠다구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그래야 되겠다구요. 우리들은 사는 데도 참 잘살아야 되겠습니다. 잘살자구요. 「예」 알뜰하게 살아야 되겠습니다. 최고의 이윤도 남기고…, 말뿐이 아니라, 그렇게 만들자 이거예요. 만들 수 있다구요.
이제는 선생님이 어떠한 말을 해도 여러분이 믿을 것입니다. 지금부터 10년 전, 20년 전 여러분들의 말을 들어 보면 무성했습니다. 그렇게 될 것이다. 안 된 것이다 하고…. 그러나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요즘에는 믿을 수 있는 단계에 들어 왔다구요. 그렇지요? 믿을 수 있는 단계에 들어 왔지요?조금만 더 가게 되면 입을 벌리고 '아하' 할 때가 올지도 모른다구요. 결국은 그렇다 이겁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위해서 과중한 짐을 지고 간다면 하나님이 싫어하겠어요. 좋아하겠어요? 서로가 짐을 안 지려고 하는데, 하나님을 위해서 파중한 짐을 지고 가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이 '야, 이녀석아! 얼른 가라'고 그러겠어요, '야, 쉬어라, 쉬어라' 그러겠어요? 생각해 보라구요. 쉬어라 쉬어라 하겠어요. 가라 가라 하겠어요? 고개를 넘을 때까지는 '이놈의 자식아 가라, 가라 이 자식아' 그럽니다. 잘 때도 맘대로 못 자게 하면서 가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쉴 때가 언제냐? 고개를 넘기까지는 밤을 새워서 가라고 하고, 쓰러져도 '야, 이 녀석아 얼른 가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개를 넘을 때까지는 그렇게 때려 몰지만 하나님도 양심이 있지, …(웃음) 하나님도 때려 몰았지만 그가 탕감하고 고개를 넘은 입장에 서면 '야야, 쉬어라, 짐은 내가 대신 지마' 그런다는 것입니다. 올라와 넘을 때까지 쉬지 못한 것을 이제 30년이고 40년이고 쉬라고 하는 거라구요.
자, 그렇게 되면, 그때는 하나님 보고 '이놈의 영감, 왜 그래' (웃음) '이 때려죽일 영감' 하고 욕을 해도 걸리지 않는다구요. '이놈의 영감, 뭐야?난 쉴 줄을 몰라, 언제는 짐을 지워 빨리 가라고 해 놓고, 이젠 쉬라니 그게 뭐야?난 지고 갈거야, 더 지고 계속 가겠어' 할 때 '이놈아 너 벌받을래? 그러지 않는다구요. 그렇게 나오면 하나님이 울면서 따라온다구요. 엉엉 울면서…. (행동을 취하심, 웃음) 그럴 수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 말 이해가 되지요? 「예」
사실은 잘 모르지만, 말은 이해가 가지요? 통일교회 문선생님도 하나님이 쉬라고 합니다. '이제 그만 일해라, 돈이 필요하면 돈도 내가 갖다 주마, 집이 필요하거든 집도 지어 주마, 교회가 필요하면 교회도 지어 주마, 뭐 그렇게 모닥불에 미친 사람처럼, 피스톤처럼 야단이야? 한다는 거예요. 여러분 피스톤 알아요? 피스톤은 그럴수록 복잡하다구요. 그렇지요? (웃음) 그래 복잡할수록 나쁜 거예요. 좋은 거예요? 「좋은 겁니다」
쉬라는 거예요, 달리기만 하면 되나요? 데리고 가야 하는데 그냥 넘어가면 곤란하다는 거예요. 그냥 가면 갔다가 또 와야 되기 때문에 그때는 쉬지 말라는 거예요. 그런 일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여러분들, 올라가는 과정에서 쉬라는 사람 따라갈래요. 넘어가서 쉬라는 사람 따라갈래요? 「넘어가서 쉬라는 사람 따라가겠습니다」 그건 아누만, (웃음) 그러려면 올라갈 때까지는 짐을 벗고 가겠다고 해야 되겠어요. 짐을 더 지고 가겠다고 해야 되겠어요? 「더 지고….」 짐을 더 지고 가야 된다구요. 그러한 놀음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더우기나 여러분은 탕감복귀를 배웠지요? 「예」 탕감복귀라는 것을 알지? 개인탕감이 실패했고, 가정탕감이 실패했고, 종족탕감이 실패했고, 민족탕감이 실패했고, 국가탕감이 실패했습니다. 외형적 세계탕감을 책임져야 할 미국까지도 전부 다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이번에 미국 가 가지고 미국놈을 대 놓고 1978년까지 너희들이 책임 못하면 망한다고 했습니다. 앞으로 7,8년 안에 공산당한테 모가지가 걸려 있다구요. 그 일을 우리 통일교회가 해야 된다 이겁니다. 만약에 그들이 내 말을 안 듣게 되면 통일교회 문선생이 망하게끔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 기동대를 급속히 편성한 것입니다.
자, 이 세계복귀는 우리의 사명이지요? 「예」 그렇지요? 「예」 그런데 여기 이 사람들을 데리고 세계복귀를 해? 여기 이 사람 이 사람들, 임자네들 데리고 세계복귀할 수 있겠어? 세계복귀해, 못 해? 「합니다」 해, 못 해? 「합니다」
한국 민족이 책임을 못 하면 외국 민족에게 책임이 옮겨진다
보라구요. 여러분, 급행열차가 잘생겼어요. 못생겼어요? 응? 빠른 기차일수록 잘생겼어요. 못생겼어요? 「잘생겼습니다」 그것 보면 말이예요. 생긴 것도 쭉쭉 뻗어 가지고 대가리가 날쌔게 생겼어요. 달리게 될 때는 소리도 안 난다구요. 그것 보면 잘생겼다구요. 그렇지? 그런데 화물열차는 잘생겼어요. 못생겼어요? 그것은 힘이 들어서 "칙-칙-푹-푹 칙칙 -푹푹" (웃음) 그게 그게 기분 나쁜 거라구요. 거기다가 '떨그렁 떨그렁' 그러니 그게 잘생겼어요? 「못생겼습니다」 그러면, 기관차가 잘생겼다면, 화물차는 못생겼는데, 그 잘생긴 기관차에 못생긴 화차를 달아 놓으면 어울리나요. 안 어울리나요? 「안 어울립니다」 누가 보더라도, 왜 저런 것을 달아 놨느냐고 할 것입니다. 어울리지 않지요?어울려요. 안 어울려요? 「안 어울립니다」
그걸 볼 때에, 우리가 세계를 책임지겠다고 하는 통일교회 패들인데 잘생겨야 하겠어요. 못생겨야 하겠어요? 응? 잘생겨야 돼요. 못생겨야 돼요? 「잘생겨야 됩니다」 잘생겨야 할 것이 원칙인데 여러분들이 못생겼다 할 적에 어떻게 돼요? 자, 통일교회 문선생이 잘생겼어요. 못생겼어요? 못생겼기 때문에 욕을 먹었겠지…. 하긴 잘생겨도 욕을 먹을 수 있는 일이니, 두고 보면 역적인지 충신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선생님이 기관차라면 여러분들은 짐 싣는 화차인데 잘생겼어요? 멋진 기관차에 멋진 객차를 달아 가지고 쭉쭉 뻗어 나가야 할텐데, 이건 뭐 대가리통은 좋지만 달아 놓은 화차통들은 여기저기 구멍이 뻥뻥 뚫리고…. 게다가 썩어 망가져 가지고 가려고만 하면 덜컹덜컹 하는, 이러한 화차를 끌고가야 될 기관차라 하게 되면, 그 기관차 꼴 좋겠어요? 그건 죽지 못해서 가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그렇다면 그 열차의 주인은 어떻게 하겠어요? '아하 저놈의 기관차는 저대로 두어서는 안 되겠다' 해 가지고, 그 열차를 기관차까지 둘 다 망하게 할 수는 없겠기 때문에, 둘 다 내버릴 수는 없기 때문에 기관차는 떼어서 그 기관차에 맞는 멋진 열차칸들이 있다면 주인은 그것들을 달아 주고 싶겠어요. 안 달아 주고 싶겠어요? 솔직이 말해 보라구요.
하나님이 계시다면 좋은 기관차들이 떡 기다리고 있는데, 좋은 기관차가 없다면 하나님도 그걸 볼 때, 덜커덩거리는 기관차를 갖다 붙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거기에는 멋진 객차의 대가리를 갖다 붙이겠어요. 안 붙이겠어요? 「붙입니다」 그걸 붙이는 것이 정상이예요. 아니예요? 「정상입니다」 그럴 때는 옆에 있던 화물열차가 '나 죽겠네, 이놈의 기관차가 왜 왔어' 하고 참소해야 되겠어요? 할수없어 제바람에 나가자빠져야 된다구요. (웃음) 이거 웃을 일이 아녜요. 웃기는 말이 아니라구요.
통일교회 문선생이 여러분을 데리고 세계를 요리해야 되겠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여러분이 껄렁껄렁한 화차칸이 되게 될 때에는, 그걸 하나님이 보시고 '열차칸들은 난 모르겠다. 쓸만한 것은 기관차뿐이다'고 생각하여 미국의 멋진 열차칸에 달아 놓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면 하나님은 그 기관차를 미국으로 옮기겠어요. 안 옮기겠어요? 응? 미국으로 가져 가면 거기에서 더 발전하겠다고 생각되면 미국으로 기관차를 옮기겠어요. 안 옮기겠어요? 그렇게 옮기는 것이 정상이예요. 안 옮기는 것이 정상이예요? 생각해 보라구요. 생각을 해봐요. 남자들, 대답해 보라구, 대답을 해보라구 「옮기는 게 정상입니다」 쌍것들 같으니라구! 옮기는 게 정상적이야, 안 옮기는 게 정상적이야? 「옮기는 것이 정상적입니다」 대답을 빨리 해야지, 왜 이러는 거야 답답하게, 아무리 선생님이 있으려 해도 하나님은 옮기는 것이 정상적이라는 거예요. 그런 것까지도 생각하고 있다구요.
육체의 피로는 정신적으로 이겨 나가야
여기 이 영감, 오늘 어떻게 새벽같이 왔어?영감을 내가 늙어 죽도록 부려먹으려고 했는데, 어디 갔다 왔어?병나서 집에 갔었어?병이 났나? 요즘엔 며칠째 얼굴도 보기 힘드는 걸 보면, 그래도 죽기는 싫다는 것 아니야?때가 지금 바쁜 때라구요. 자식들을 올바로 지도하는가?내가 얘기 안 할 수 없지, 영감은 통일교회에서 제일 축복받은 영감이니, 그 후손들이 어떻게 되느냐 하는 것을 내가 두고보는 거라구요. 출발할 때 이상 죽을 때가 되면 될 수록 출발할 때의 그 이상을 추구할 수 있지 않으면 자손들이 참소하는 거예요.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된다구요.
통일교회 문선생은 나이가 많아도 쉬려고 하지 않습니다. 육신을 움직이지 못하는 지경이 되면 조건이라도 세우고 살 거라구요. 이런 얘기는 할 것이 못 되지만, 어제도 산에 가 가지고 아침부터 오전 내내 얘기하고, 오후에는 밤에까지 순회하며 얘기를 했습니다. 그 전날도 아침에 공장에 들렀다가 저녁에 또 공장에 가서 기합도 주고, 이래 가지고 지쳐서 들어왔다구요. 그래 가지고 주일이 되어 새벽에도 잠을 못 잤어요. 돌아오자마자 저녁밥 먹고 열 시밖에 안 됐는데도 몸살났나 해서 곤드레만드레가 되어 자신도 모르게 잠을 자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아주 습관이 되어 있습니다. 두 시간 먼저 자면 두 시간 일찍 일어난다구요. 그게 습관이라구요. 여러분은 두 시간 먼저 자면 두 시간 더 자게 되어 땡잡았다고 하지만 말예요. (웃음) 선생님은 습관이 됐어요. 두 시간 먼저 자면 반드시 두 시간 일찍 일어나게 되니, 어머니가 죽겠다는 거예요. 그래 덜렁덜렁 일어나면 출장소에 가야 된다구요. 출장소가 뭔지 알지요? (웃음)
오늘 아침에도 두 시 20분에 일어났다구요. 일어나면 습관이 말예요. 기도를 해야 됩니다. 기도를 안 하게 되면 얘기도 못 하는 겁니다. 또 그 다음에는 며칠 동안 신문을 못 봤기 때문에 요즈음 아시아의 정세에 대해서도 알아야 되겠다 해 가지고 네 시 10분 전에 변소 앞에 앉아서 신문을 읽는 거예요. 남 자는데 방안에서 볼 수 있어요?그래서 안경을 내다 놓고 버티고 앉아서 신문을 보는데 보다 보니까 다섯 시 12분까지 봤어요. "아이쿠?생각을 해보니 어제 저녁에 목욕을 하려다가 그것도 모르고 자 버렸기 때문에 목욕도 해야 되겠고, 양치질, 면도 정신이 없더라 구, 실컷 신문 읽다가 바빠라, 볶아라 그런다는 거예요. 그래 12분에 쫓아 올라가 하고 나니까 그래도 5분 남았더라 이거예요. 7분동안에 해치웠다구요. 그렇게 바쁜 놀음을 해 가지고 오늘 여기 이렇게 나와서 '과중한 임무'라는 말씀을 하고 있는 겁니다. 이렇게 바쁘다구요.
자 그런데, 내가 지금 만으로 쉰 두 살 넘었나, 안 넘었나? 응? 넘었어요. 안 넘었어요? 「넘었습니다」 넘었든가? 「예」 그렇지요? 나이를 보면 쉰 둘이 넘었다구요. 그럼 여러분들 중에 여기 나이 많은 분들은 통할겁니다. 나이 많은 분들만 말예요. 마흔이 넘어 마흔 다섯 살만 먹게 되면 벌써 눈에 무엇이 한꺼풀 씌운 것같이 눈이 달라진다구요. 그래 가지고 마흔 일곱 살 만 먹게 되면, 아이고 신문을 보고 읽던 것이 그때부터는 글자가 인사를 안 하려고 그런다구요. 그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 다음, 더 지나게 되면 말예요. 몸이 점점 앞으로 자연히 기울어진다구, 그걸 선생님은 지금도 운동을 하기 때문에 지탱하는 거예요. 젊은 사람들이 쏙 와서 완력으로 달겨들어도 내가 받아넘길 수 있어요. 만만치 않다구요. 선생님은 특수한 운동을 연구해 나왔습니다. 감옥에서도 그 운동을 안 했더라면 이미 큰 고생을 했을 거라구요.
앞으로 잘 믿는 통일교회 교인들에게는 선생님이 가르쳐 줄 겁니다. 지금도 그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 운동을 하게 되면 피곤함이 한꺼번에 다 해소됩니다. 어떤 때는, 아주 피곤하여 곤드레만드레가 될 때에는 그 운동을 해 가지고 전부 해소시키는 거예요. 지금도 나는 통일교회 누구한테 책임을 맡겨 가지고 일시키기가, 솔직이 이야기해서 누구도 책임자로서의 책임을 맡겼지만 그 책임자들이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리라는 생각을 절대 못 한다는 것입니다. 저걸 내가 손대야 되겠구나, 그렇게 생각되는 데도 그들은 자랑한다구요.
나는 지금까지도 내 자랑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조금이라도 자랑하면 내가 탕감받는다구요. 조금 더하면 '통일교회 너 뭐냐, 조금 더 자랑하다가는 탕감받는다' 이거예요. 자랑한다고 해서 꼭 탕감받는 법은 없겠지만, 그래도 있을 수 있다구요. 그건 사랑의 탕감이예요. 그렇잖아요?'야 이 자식아 쉬라는데 왜 쉬지 않는 거야' 그럴 때와 같이 사랑의 탕감도 있다는 겁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나이 많은 사람들도 그래요. 나이 많은 사람들, 여러분들도 그런 거라구요. 생각은 옛날 소년 소녀시대의 생각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구요. 그런데 몸뚱이는 옛날 같지 않습니다. 산에 올라갈 때도 말예요. 요즘 선생님이 매일같이 청평에 가 가지고 산에 올라갑니다. 그래 올라갈 때 옛날과 다른 기분을 느끼면 기분나빠서 또 올라가는 거예요. 그런데 어제 올라가던 것보다 더 피곤한가 가만히 생각하니 더 피곤하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정신적으로 피곤하지 않다. 않다. 않다. 해보라구요. 그래 않다. 않다. 하면서 출발하여 올라간다면…. 않다. 않다 하면 안타같이, 야구에서 안타를 치면 좋듯이 (웃음) 올라가게 된다구요. 사람은 정신력이다 이겁니다. 정신적인 힘이 큰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면서 가다 보니 언제 올라갔는지…. 안타치고 올라가는 것이지, (웃음) 올라가다 보면 정상이라구요.
메시아의 사명
지금도 그런 훈련을 하고 있어요. 감옥에 끌려가서 일하면서도 나는 그 훈련을 했습니다. 몸뚱이는 일하지만 정신은 딴 데 두고…. 그걸 알았기 때문에, 그런 작전을 하게 된다면 말예요. 피곤한 줄 모르고 이겨내는 거예요. 그리하여 그때를 지내고 나서 자리에 눕게 되면 곤드레만드레가 됩니다. 그때는 누가 져 가도 모른다구요. 그러다가 어떤 때는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르고 일어나다 보면 눈이 안 떠져 눈을 뜨다 보면 눈이 충혈이 됩니다. 어떤 때는 일어나긴 일어났는데 손을 들려니 손에 힘이 없어요. 그렇지만 일어나야만 된다고 그럴 때는 쓰윽 서 가지고 말예요 다시 정비하는 겁니다. 그러면 피곤을 모른다구요.
우리는 그렇다고 쉴 수가 없습니다. 쉴 수가 없어요. 중대한 책임을 다하고 쉬어야 합니다. 책임 못 하고 죽은 무덤은 누가 찾아 주지도 않는다구요. 여러분, 우리는 세계 복귀라는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에, 개인탕감에 실패하거든 가정시대에 그 개인탕감을 복귀해 가지고 개인 승리 표준의 가정을 닦아 나와야 됩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은 천번 만번 잎을 해결짓지 못했습니다. 개인이 실패를 했지만 하나님의 복귀섭리는 실패한 자리에 그대로 둘 수 없기 때문에 가정적 섭리를 펴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정적 섭리에 실패했지만 그것을 하나님은 또 중단할 수 없기 때문에 종족적 섭리를 펴 나오는 것입니다. 또한 종족적 섭리에 실패했지만 민족적 섭리를 펴 나오는 것이고, 민족적 섭리에 실패했지만 국가적 섭리를 펴 나오고, 국가적 섭리에 실패했지만 세계적 섭리로 쭉 쉴새없이 펴 나왔습니다. 하나님편에서 보게 된다면 이렇게 세계적 종교권시대를 맞이했지만 이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개인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가정이 없다는 거예요.
개인과 가정은 따로따로가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승리한 사람이 가정을 이어받아 가지고 승리해야 원칙입니다. 그 승리한 가정의 기준을 이어받아 가지고, 그 개인 이상으로 가정이 살아 가지고 종족적으로 승리해야 원칙이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무슨 말인지, 육천년 동안 역사적으로 실패한 종적인 실패를 전부 다 횡적으로 탕감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종족적 시대에 실패한 것을 수습하기 위해서는 민족적 시대에 수습해야 되고, 민족적 시대에 실패한 것은 국가적 시대에 수습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국가적 기반을 세계에서 수습하는 이런 놀음을 지금까지 해 나왔지만 전부 다 실패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반대하는 거예요.
이제는 개인적으로 승리한 사람이 가정을 수습해야 되고, 가정적으로 승리한 가정이 종족을 수습해야 되고, 종족적으로 승리한 종족이 민족을 수습해야 되고, 민족, 종족, 가정, 개인이 승리한 기반을 터전으로 국가를 수습해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국가와 민족과 종족과 가정과 개인이 승리한 그 기준으로 세계에 승리해야 합니다. 그 책임을 도맡아 가지고 해야 할 것이 왈(日),메시아의 사명입니다. 알겠어요?
다시 말해 메시아의 사명이 무엇이냐 하면, 전체적으로 실패한 것을 역사적인 대표로서 승리의 권한을 세계적으로 세워야 되고, 그리하여 그 메시아를 중심한 가정이 세계적인 가정의 실패를 대표적으로 승리한 자리가 되어야 되며, 수많은 종족이 망한 것을, 실패한 것을 전부 찾아 세워야 되는 겁니다. 이렇게 개인에서부터 가정적, 종족적, 민족적, 국가적, 세계적으로 다 한꺼번에 일대(一代)에 세워야 할 사명을 짊어지고 오는 분이 어떠한 분이냐?그분이 메시아요. 그 사명이 메시아란 분의 사명입니다. 알겠어요?무슨 말인지,「예」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천신만고해서 개인 승리의 기반을 닦으라는 것입니다. 천신만고해서 가정의 승리의 기반을 닦으라는 것입니다. 그 가정을 중심삼고 종족의 승리권을 닦으라 이겁니다. 그 종족을 끌고서라도 민족의 승리권을 닦으라 이거예요. 그 민족을 끌고 가서라도 국가와 세계의 승리권을 닦고, 세계를 끌고 하늘편 천주의 승리권을 닦으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일대(一代)에 하지 않고는 세계 완성적 통일세계는 되지 못합니다. 그것이 메시아의 사명이예요.
그러니까 메시아란 분은 육천년 동안 하나님이 지금까지 실패한 모든 역사를 지상에 한번 와서 당대에 총탕감복귀해야 하는 사명을 짊어지고 오시는 분이다 이겁니다. 이것을 만일에 기독교가 받들게 되면 일시에 될 수 있습니다. 일시에 기독교와 민주세계가 하나되어 가지고 받들게될 때에는 일시에 세계적 기준과 국가, 민족, 종족, 가정, 개인의 기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틀어지는 날에는 개인으로부터 가정을 거쳐 그 기준까지 다시 찾아 나가야 합니다. 이 놀음이 지금까지 통일교회가 해 나온 놀음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어떠한 입장이냐?개인의 책임을 절대적인 입장에서 져 가지고 가정이 설 수 있는 발판이라도 되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그러면 그 가정이 승리함으로 말미암아 개인적 발판이라도 되기 때문에 시대적 승리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렇게 된 승리의 그 가정은 종족적 발판이 되라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는 통일교인 전원이 과중한 임무를 추구하고 있다
여러분, 통일교회에서는 새로 축복을 해줍니다. 합동결혼식을 한 가정은 하나의 통일종족입니다. 통일종족이라구요. 앞으로는 창씨를 하는 거라구요. 사탄편 일본놈들이 먼저 성을 다 바꿨지만, 앞으로는 우리가 창씨를 하는 거라구요. 성을 갈아야 된다구요. 알겠어요. '통일'가(歌)?그런데 통일가라고 했을 때, 한국식 이름에 성이 두 자면 네 글자가 되어 일본인들 이름 같아서 기분 나쁘다면 '통'가가 되든가 '일'가가 되는 거예요. '일'자가 좋을 것 같구만, 이래도 일가요 저래도 일가요. 이웃 친척 전부가 일가니가 그게 통일이다 이거예요. (웃음) 그래 돼야 된다구요.
그렇게 해서 통일족속은 뭐냐 하면, 앞으로 민족을 탕감복귀할 수 있는 발판이 되라는 것입니다. 발판이 안 되면 안 된다 이겁니다. 그러한 발판이 못 되거들랑 세계 어디에서 끌어다가라도 발판을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엔 국가의 발판이 되라는 것입니다. 세계의 발판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이 하늘 앞에 서게 되면 대한민국이 세계를 복귀하는 발판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거든 대한민국은 세계를 지배하게 될 것입니다. 그게 복귀의 길입니다.
그러니까 개인복귀해서 가정복귀로 가는 것이 원칙이지만, 될 수 있는대로 우리는 다 함께 가자 이겁니다. 알겠어요? 개인복귀해 가지고 세계복귀 무대로 가자는 것입니다. 그러고 싶어요. 안 그러고 싶어요? 「그러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냥은 못 갑니다. 길을 닦아 놓아야 합니다. 하이 웨이를 닦지 않고는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빠른 속도로 거쳐 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탕감을 해야 됩니다. 그 길이 아니면 못 가게 돼 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개인세계적 탕감노정, 가정세계적 탕감노정, 종족세계적 탕감노정, 민족세계적 탕감노정을 어떻게 하느냐?이러한 과중된 임무를 선생님은 짊어지고 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을 동정 못 하게 될 때는 한이 맺히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 사람의 편이 되어야 됩니다. 세계가 그의 편이 되었던들…. 거기에 돌팔매질하고, 거기에 가시덩쿨을 씌워 방해하는 사람들은 화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통일교회 반대하는 사람들 잘되나 두고 보라구요. 조사해 보라는 거예요. 전부 다 죽어 나자빠지지 않으면 가족들이 떼거지가 되어 산산히 흩어져 가지고 빌어먹는 패들이 돼 버린다는 것입니다. 두고 보라는 거예요. 앞으로 '통일교회 반대하는 사람은 결국은 종말이다' 하는 책자를 하나 내려고 합니다. 두고 보라구요.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은 이상합니다. 내가 성이 나고,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할 때는 이상하다구요. 우리 교회에서 '저 사람 안 되겠다'할 때는 가만 있어도 영계에서 그를 쫓아냅니다. 공산당은 칼을 대 가지고 숙청하지만 통일교회는 영계에서 숙청합니다. 그게 다르다구요.
자 그러면 선생님이 불쌍한 사람이예요. 안 불쌍한 사람이예요? 불쌍한 사람이예요. 안 불쌍한 사람이예요?무엇 때문에 내가 불쌍해요? 세상적으로 볼 때는 불쌍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사실 불쌍한 사람이라구요. 단에 나아가 기도하게 되면 눈물이 앞을 가리는 것입니다. 아! 이 막중한 책임을 누구한테 맡길소냐? 맡길 사람이 없습니다. 통일교회 어느 누가 맡을 수 있어요?그러니 나만을 바라보고 있는 하나님이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내가 있는 자리는 심각한 자리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동지가 없다면 누구보다도 없는 사람입니다. 책임을 진 자리에서 고독하다면 누구보다도 고독합니다. 그런 것을 알기 때문에, 나보다 더 고독한 하나님을 모셨기 때문에, 말없이 표정도 안 내고 가고 있는 것입니다. '허허' 하고 웃는 그 웃음이 좋아서 웃는 것이 아니예요. 오직 소망의 닻을 내려 가면서 웃고 있는 것을 여러분이 모를 거라구요. 누구든 여기 집에 가까이 살고 있는 사람이나, 앞으로 자식들이 커서 철이 들어도 그것은 모를 것입니다.
그렇다고 부모의 골수에 흐르는 하나님의 한을 아무것도 모르는 철모르는 아들딸에게 가르쳐 주고 싶지도 않습니다. 아들딸들은 탕감복귀의 해원성사시대를 지났기 때문에 영광의 자리와 놀라우신 은사로 태어난 것만을 알려 주고 싶지, 그 깊은 내막은…. 그래야 될 것이 아녜요?아담 해와의 후손이 타락권의 인연을 가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녹음이 잠시 중단됨)
여러분이 동내에 길을 하나 낸다면 많은 운세가 몰려들 것입니다. 그래 '뭘하자' 그러면 서로서로가 수가 나도록 이마를 맞대고 '네가 안 하면 내가 해야지' 둘 중의 하나가 그렇게 되면 할수없이 전부 움직이게 됩니다. 그러나 '내가 안 가도 다른 사람이 가는데 뭐' 그런 마음은 편치 않은 것입니다. 두고 보라구요. 마음이 편안치 않다구요.
자기들의 계획대로 통일교회에 인연되어 들어온 사람들이라고 해서 제 계획대로 가는 거예요?자기 선조들이 전부 길을 막아 가지고 못 가게 하는 거라구요. 여러분이 한 걸음 잘못 디디면 영계의 70대(代) 선조들이 걸려든다구요. 지금 그러한 방대한 문제가 엇갈려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팔자소관으로 태어났다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내 팔자가 이것을 위해서 태어났기 때문에 죽더라도 이 팔자길을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통일교회 들어온 사람들은 팔자소관이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을 만난 것입니다. 못 해도 40년은 여러분들이 안 가면 안 되는 운명입니다. 복귀 역사는 4수 역사이니까 40년을 못 가면 탕감 못 하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40년은 가야 한다는 겁니다. 지금까지 4천년, 아브라함부터 지금까지 4천년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40년을 여러분이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러기에 쉬어 보라구요. 편안한가? 쉬게 되면 여러분의 몸이 못 견딥니다. 몸에 고장이 난다구요. 병이 난다구요. 병이, 지방에 나가 지금 일선에 선 사람들이 피곤하다고 '아이고 힘들어 못 하겠다' 해 가지고 다른 것 해보라구요. 다른 것 해도 안 됩니다. 안 된다구요. 그러한 하늘의 탕감복귀의 운명을 짊어진 것을 여러분이 알고, '이 길 외에는 갈 길이 없다'고 하면서 죽더라도, 배밀이하면서라도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제는 어느 정도까지 오지 않았느냐? 이제야 말로 한번 뛰어넘으면 세계도 뛰어넘을 수 있는 시야가 우리 눈 앞에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야말로 자기를 사랑하지 않고, 자기 민족보다도 세계인류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모험을 할 때가 우리 목전에 다가온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시대는 통일교회 교인 전원이 과중한 임무를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이겁니다.
또 정세적으로 볼 때, 한국 민족은 과중한 임무를 감당해내지 않고는 살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외적 정세이기 때문에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책임을 진 통일교회 교인이라면 안팎의 그런 과중된 임무를 다해야 될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를 여러분이 느껴야 되겠습니다. 아시겠어요? 「예」
밤이나 낮이나 세 가지 사랑을 이루기 위해 살아야
이제 가는 길은 세 길이 있습니다. 세 가지 길이 있어요. 여러분이 부모의 길을 어떻게 가느냐? 그걸 알아야 돼요. 우리 복귀역사가 그렇습니다. 그 다음에는 신랑 신부의 길을 어떻게 가느냐? 그 다음에는 자녀의 길을 어떻게 가느냐? 그렇지 않아요? 그 세 사랑이 하나님이 찾아 오시는 중요한 포인트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 이 세 길을 통해 보게 될 때 여러분은 지금 어떠한 길을 가고 있느냐 이겁니다. 그걸 한꺼번에 다 못 가겠거들랑 자식으로서 갈 수 있는 사랑의 길을 가든가, 그 다음에는 선생님을 남편삼고 여러분은 아내와 같은 입장에서 부부의 사랑을 가지고 갈 수 있는 길을 가든가, 혹은 자기가 부모의 심정을 가지고 대신해 자식을 키우는 것과 같은 사랑의 길을 가든가 해야 됩니다. 이러한 세 가지 종류의 사랑이 통일교회에 있게 마련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
그래서 통일교회 문선생을 여러분이 대해 가지고도 그렇습니다. 남자들도 선생님을 좋아한다구요. 어떤 때는 말이예요. 여러분이 그런 자리에 같이 안 있어 봐서 그렇지, 한참 때에는 남자들이 부산에 가 있다가 선생님이 보고 싶어서 자기도 모르게 부산역으로 나가서 열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는 그런 놀음이 벌어졌었다구요. 그런 일은 세상에서는 있을 수 없는 놀음이라구요. 그런 일이 벌어진다구요. 남자들도 남자를 그리워 하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또 선생님을 대하게 되면 말이예요. 자기가 아무리 나이가 많더라도 애기와 같이 된다는 거예요. 애기와 같이, 자기 마음이 그렇게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그렇게 좋아하는 것은 왜 그러냐?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타락했기 때문에 인간들은 참사랑을 일시에 잃어버렸습니다. 부모의 사랑도 잃어버렸고, 부부의 사랑도 잃어버렸고, 자녀의 사랑도 다 파탄되어 버렸기 때문에 그 3사랑의 주체를 대해 가지고 내가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횡적 환경을 갖지 않고는 탕감복귀할 수가 없다는 거예요. 알겠지요? 그것이 원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부모의 자리, 아내의 자리, 남편의 자리 중 어느 자리든지 설 수 있어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그 다음에는 자녀의 자리에도 설 수 있는, 심정화될 수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완성한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원리의 가르침입니다. 그게 원리의 가르침이라구요.
그러니 그 세 가지는 다 못 하더라도 한 가정에서 벗어나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부모의 자리의 심정을 갖든가, 부부의 자리의 심정을 갖든가, 자녀의 자리의 심정을 갖든가 해야 됩니다. 이 심정 가운데 하나라도 갖지 않고서는 그 가정의 식구로서 남아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창조이상이란 무엇이냐? 사위기대 완성입니다. 그렇지요? 그 사위기대 완성, 즉 창조목적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지 않고는 완성 못 합니다. 사위기대 완성은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 이 세 가지를 다 이루어야 됩니다. 그렇지 않아요?그래 가지고 그것을 갈라놓으면 사위기대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것이 창조이상의 원칙이기 때문에 여러분은 부모만을 붙들어도 되는 거라구요. 부모만을 붙들고 효성해도 살아 남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 다음에는 자기 가정이 부모를 중심삼고 하나되게 되면 살아 남을 수 있습니다. 그 나라의 표창도 받을 수 있다구요. '아아! 저 부부는 나라에서 표본삼을 수 있는 부부다' 하게 되면 살아 남을 수 있다구요. 또, 자식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도 '아! 저 부모는 우리 국가에서 표창할 수 있는 부모다' 하게 되면 살아 남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자식이 부모를 대해 효도함에 있어서도 '저 사람은 효자로서 국가가 맞아들일 수 있다' 하게 되면 살아 남을 수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사랑을 이루는 데 있어서 한 가지라도 갖지 않은 사람은 인류사회에 있어서 미끄러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리의 근본 사상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밤이나 낮이나 이 사상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나라와 수많은 사회 사람들을 보게 되면 그 가정을 대신하고, 나이 많은 사람을 보게 되면 할아버지와 같이 위하여 주고, 어머니 아버지와 같은 분이 있으면 자기 어머니 아버지처럼 모시고, 형님과 같은 분이 있으면 형님으로 모시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가정에서 훈련된 사랑을 체계적으로 세계화하여 일치권을 이루는 것이 우리가 바라는 것이며, 하나님이 바라는 이상세계입니다. 그게 바로 지상천국이라고 하는 겁니다. 딱 나와 있다구요. 그것이 말뿐이 아니라 사실이 그래야 된다구요.
타락한 세계의 사람들은 부모를 몰랐기 때문에 형제를 몰랐습니다. 부모를 알고 나서 부모가 '저 사람들을 어느때 내가 어떻게 낳아 가지고 저렇게 갈라졌던 것이다' 하는 것을 가르쳐 주면 그때서야 '아!' 형제들아, 싸우지 마라, 원수가 아니다. 본래는 내 맏형이요 내 동생이기 때문에 모두가 형제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걸 알게 될 때에는, 원수끼리도 서로 목을 끌어안고 자기의 과거 잘못을 회개할 수 있는 길이 나오는 것이 아니냐? 그렇게 돼 있다구요.
과중한 임무를 받기를 좋아하는 특정한 사람이 되어야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통일교회에서 3사랑의 심정을 어느 한 면이라도 갖지 않으면 통일가의 일원에서 추방당하는 거예요. 아버지가 슬퍼하는데 아들이 기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요?아버지와 형님이 슬퍼할 때에 그 동생이 기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인간은 아버지가 슬프든 지, 남편이 슬프든지, 아들이 슬프든지 전부가 같은 마음의 같은 심정으로 화하는 거라구요. 자식이 사장이라 하더라도 아버지가 슬퍼하는 것을 보고 회사에 나갔다면 일을 하면서도 슬픈 아버지를 염려하는 것이 도리입니다. 자기가 집으로 돌아올 때, 그 아버지가 자식을 반기면서 맞이할 수 있는 것이 무엇보다도 자기의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 수 있는 가정의 일원이 돼야 평화와 이상을 누릴 수 있는 행복한 가정이 되는 겁니다. 알겠어요?무슨 말인지, 「예」
통일교회의 일원인데도 불구하고 통일교회 문선생이 무엇을 하는지 모르고 사는 녀석들이 있어요. 슬픈 일이라든지, 기쁜 일이라든지 우선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보면 책임자는 문선생이지요? 「예」 싫든 좋든 부모가 돼 있고, 책임자가 돼 있다구요. 그런데도 선생님이 어디에 가 있는지도 모르고 있는 패들,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는 패들, 슬퍼하는지 기뻐 하는지도 모르고 있는 패들, 그것이 통일교회 식구예요. 아니예요? 그게 식구야? 「아닙니다」
식구라면 가정적이어야 합니다. 아버지는 짐을 지고 피땀을 흘리며 비탈길을 올라가고 있는데 아들은 옆에서 '아버지 빨리 가요. 빨리 가' 하는 게, 그게 자식입니까? 저 혼자 먼저 가 가지고 '아버지 올 때까지 좀 쉬어야지' 하는 게 자식이냐구요. 아버지의 속셈도 모르는 그런 불효망측한 패들이 많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부모는 언제나 자식보다는 과중한 임무를 짊어진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아내 보다 남편은 과중한 임무를 짊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동생보다도 형이 과중한 임무를 짊어져야 한다는 거예요. 과중한 임무를 짊어지는 데에서 비로소 안식할 수 있는 사람이 생겨날 수 있습니다. 알겠어요? 「예」 과중한 임무를 자기가 지지 않고 그 임무를 누구에게 맡기려고 하는 자는 자기도 안식할 수 없고, 맡김을 받는 사람에게도 안식권이라는 것이 절대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에서는 과중한 임무를 특정한 사람을 세워서 전부 지우려고 하는 놀음이 벌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왜?전체가 될 수도 있는 조건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런 관점에서 통일교회는 민족을 대표한 과중된 십자가를 우리가 짊어지고 간다고 할 때, 민족은 우리로 말미암아 십자가를 안 져도 된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기에 과중한 임무가 좋은 것이냐 나쁜 것이냐 할 때, 그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힘든 것이냐, 쉬운 것이냐? 「힘든 것입니다」 힘든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이냐, 안식의 길이냐?십자가의 길인 것입니다. 무거운 짐을 지고 어려운 걸음을 걷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이 다 좋아하는 것이다. 그래요? 「아닙니다」 다 싫어합니다. 그렇지만 특정한 사람은 좋아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좋아하는 특정한 사람은 보통 사람들을 지도하기 마련입니다.
과중한 임무를 책임지는 자는 하나님이 알아 주신다
그러면 통일교회 패들은 특정한 패예요. 보통 패예요? 여러분이 생기기는 그렇게 생겼지만, 여러분들의 조상들이 선생님과 인연이 있었기 때문에 만난 거라구요.
내가 이북 평양에 가 있을 때 말예요. 아주머니 한 분을 만났는데 나보다 나이가 많았어요. 나보다도 한 20, 30년 위예요. 그 아주머니가 떠억 하는 말이 '내가 선생님을 만난 것은 영계에서 가르쳐 줘서 만난 것입니다' 그러고 이야기를 하는데 '선생님! '왜? ' '선생님 좀 가르쳐 주세요' '무얼? ' '참 이상해요' 이상하다 하기에 무엇이 이상하냐고 물으니,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없는데 참으로 이상하다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거예요. 그래 뭐가 이상하냐고 재차 물으니, 자기에게는 그것이 수수께끼라는 거예요. 자기가 스물 네 살 때 선생님의 지도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을 때인데 말입니다.
여러분,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어요?선생님이 나지도 않았을 때인데, 그런데 선생님의 지도를 받았다는 거예요.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어요? 그것은 평면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예요. 그렇지만 입체적인 면에 있어서는, 종적으로 하나님은 부모이기 때문에 그 부모의 심정을 좇는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과 같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양과 형태는 지금에 나타났지만, 심정의 세계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이렇듯 심정을 주관하는 하나님은 미래에도 만날 수 있는 인연을 내내 갖고 있기 때문에 영계는 시간을 초월해 있는 것입니다. 미래가 지금이요 지금이 영원이라는 거예요. 그런 심정의 세계관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가령 하나님의 마음속에 이러이러한 남성이 한 때에 태어날 것이다 하는 생각이 있게 되면, 그 심정을 통해서 그를 가르칠 수 있고 인연맺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심정세계의 인연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거예요. 그거 이해돼요?그런 일이 많아요. 그런 일이 많다구요.
지금 독일 책임자로 있는 사람은 말예요. 벌써 2차대전 때 선생님과 상관했다고 말하고 있어요. 아니 2차대전 같으면 전쟁이 나서 한바탕 세계적으로 싸울 격전기인데, 그는 순진하게도 독일 히틀러 군대의 훈련장교였다구, 그런 사람인데, 전쟁이 나서 죽을 수밖에 없는'그러한 격전이 벌어지게 되면 반드시 그에게 누군가가 나타나서 '너는 이런 때에 가서는 이러이렇게 해라' 하고 비몽사몽간에 가르쳐 줬다는 것입니다. 그래 그런 일이 벌어지게 되면 그 자리를 떠나 소변을 보러 갔다 오면, 그러니까 가르쳐 준 대로 그렇게 하고 나면 그 시간에 자기 동료들은 다 죽고 자기만 살아 남은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는 겁니다. 그런 역사를 거쳐 나왔는데, 그것을 참 이상하게 생각했다는 거예요.
틀림없이 동양 사람인데 자기를 그렇게 지도해 가지고 사지에서 구하는 그러한 것을 생각할 때, 그것을 예사로 여겨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었다는 것입니다. 그 바람에 정성을 들여 가지고 그분 앞에 심신을 다바쳐 충효의 도리를 다하려고 각오하고 있었다는 거예요. 그러다가 어느날 통일교회 원리 말씀을 듣고 감동을 해 가지고 가만히 보니 그 통일교회 말씀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니더라 이겁니다. 그리하여 '이 말씀을 누가 냈고, 이 원리를 누가 냈느냐?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선생님 사진이 있으면 한 장 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진이 있어도 함부로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고 하니까, '어딜 가면 사진을 볼 수 있겠느냐? ' '정 보고 싶으냐?'정말 보고 싶다' 그래 가지고 '미국에 가면 누구의 기도실에 선생님의 사진이 있다. 가자' 해서 가서 보니 그분이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분이 땅에 살아 있는 분이냐고 물었다는 것입니다. 그게 가능한 일이예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그분이 살아 있느냐, 그분이 누구냐? 이러는 겁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이유를 가르쳐 줄 필요도 없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명령만 하면 된다구요. 지금 선생님은 여기 있지만 전세계의 통일교회 교인들은 선생님의 지도를 받고 있어요. 살림살이까지도 코치하고 있다구요. 그러니 통일이 불가능한가요. 가능한가요? 「가능합니다」
미국 식구들도 지금 선생님을 위해 새벽같이 기도하고 있다 이거예요. 왜 그런지 모르지요? 그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부모의 심정에 사랑이 접해지면 그 심정은 국적을 초월하는 겁니다. 그렇지요? 거리를 초월하지요? 시간을 초월하고 공간을 초월하니, 곧 시공을 초월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조직적인, 영적인 배경을 중심삼고 현실이 생활권에서 적용할 수 있는 실제적인 문제가 벌어지기 때문에, 세계는 통일사상으로 통일되게 된다는 것입니다. 조금 더 가면 공산권내에서도 지도받는 사람이 있을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패들은 정신을 차려야 됩니다. 정신차려요! 언제나 이렇게 쉽게 통일교회에 들어오는 게 아닙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을 언제나 만날 수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지 말라구요. 지금 여러분이 모르는 가운데 주위에서는 영통하는 사람들이 전부 다 선생님 만나자고 야단들이라구요. 그들은 가만히 앉아 가지고 천리를 꿰뚫어 보는 거라구요. 선생님이 지금 어디 갔고, 오늘 누굴 만나고, 전부 다 알고 있다구요. '요즈음 이러이러한 문제가 벌어졌지요?' '그래' 이렇게 다 알고 있는 패들이 선생님을 만나겠다고 하지만, 선생님은 안 만나고 있습니다. 왜? 여러분들 때문이예요. 여러분들이 아직 졸업장을 못 받았기 때문에 그들을 데려다 놓으면 여러분은 전부 다 그들의 종밖에 안 되겠기 때문이라구요.
정신차려야 됩니다. 만일 한국에서 통일교회 선생님이 보따리 싸 가지고 사라지면 한국이 좋지 않아요. 이제 그만큼 선생님을 고생시켰으면, 여러분들이나마 선생님 고생시켜서는 안 되겠다고 다짐해야 될 것입니다. 선생님 대신 이 민족을 대표해 주어진 사명을 이어받아 가지고 책임지겠 다고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데도 여러분이 그 책임을 못다하면 선생님은 여러분을 그냥 그대로 두지 않을 겁니다. 그럴 수 있는 일이 많다구요.
그런 것을 알고, 과중한 임무를 책임지는 것은 그것이 그 시대에 있어서는 비참하지만, 어느때에 가면 그 책임진 것을 알아 주기 마련입니다. 알겠어요? 하나님이 있는 한 알아 주기 마련이예요. 내가 지금까지 일생을 통해서 이 길을 개척해 나오면서 누구에게도 말 못할 어려운 고빗길을 걸어왔지만, 하나님만은 알아 주시기 때문에….
어떤 때는 배가 고파, 허기가 져서 산을 못 넘고 기진하게 될 때는 말이예요. 누군가가 먹을 것을 가지고 옵니다. 그것은 공적인 일로 배고픈 사람을 대접해야 할 하나님의 책임이 있기 때문이예요. 그런 공적인 길을 가는 거라구요. 나라를 위해 가게 되면 나라가 그 공적인 일을 하는 사람을 대해 대접해 줘야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일을, 벌써 선생님이 어느 마을에 가기 전에 영계에서 명령을 해 가지고 밥을 지어 잔치상을 차려 놓습니다. 그리고는 흰옷을 입고 길가에 마중을 나와 가지고 '선생님이시지요? 하는 놀음이 있었습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의 역사 시대에는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입니다. 이야기를 안 해서 그렇지.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문선생은 망하지 않습니다. 망할 수 없다 이거예요. 또 망해서도 안 된다 이겁니다.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되겠다구요. 역사시대에 이러한 사명을 갖고 왔던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지나 가는 손님으로 알고 대접을 잘못하면 죽기도 하고 망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된다구요.
선생님은 공적인 입장에서는 무정한 사람입니다. 자식들 대에까지도 그 원칙을 적용하고 있다구요. 예를 들면, 우리 성진이에게 18세 되던 날 아침에 손을 들고 선서를 시켰어요. 네가 잘못하게 되면 아버지와는 상관이 없다고 했어요. 자식을 세워 놓고 그런 공적인 선서를 시키는 아버지의 심정이 어떻겠느냐 이겁니다.
우리로 말미암아 이 나라 이 민족에게 새로운 시대가 찾아오게 하자
그것은 나라를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 자식의 잘못이 그 일가의 잘못이 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잘못되면 나라가 망하고 세계가 망하기 때문에, 조건이라도 망할 수 없는, 사탄에 대한 방위선을 치고 나가야 된다 이겁니다. 그러한 비참한 자리에 선 공적인 가정이 돼야 하는 거라구요. 심각한 거예요. 어머니면 어머니에 대해서도 공약을 세워 놓고 가는 길입니다. 이 원칙에 어긋나게 될 때에는 어머니도 어머니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다구요.
여러분은 모를 것입니다. 모를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뭐라고 할까, 여러분들에게 뭐라고 이야기하면 좋을까요? 줄다리기라고 있지요? 줄다리기를 할 때 보면 표정이…. 힘을 내서 당기면 넘어오고, 조금 늦추면 넘어갑니다. 그러니까 최후의 싸움은 다 그렇다구요. 내가 기를 쓰고 하면 그것이 단축이 되고, 조금만 해이하게 되면 하늘이고 뭐고 전부 다 해이 해지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그렇게 한번 놨다가는 수습할 길이 없어요. 그렇지 않아요? 정상으로 가는 사람은 한 발자국만 잘못 되었다간 살아날 길이 없는 거라구요.
여러분들은 그런 의미의 책임을 진 자리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고 일어나서 정신 없는 사람 모양으로…. 여러분, 형무소에 가서 공판날 법정에 서는 그 기분, 나는 일생동안 그 기분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내가 처음 가졌던 그 기분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어요. 오늘 공판정에 가 가지고 자기의 한 마디가 운명을 결정한다 할 때는 비장하다구요. 그렇지만 복귀의 섭리노정에는 그 이상의 길이 얼마든지 있어요. 얼마든지 있다는 거예요.
그러한 전통의 길을 가려 가지고 통일교회가 닦은 그 기반을 여러분이 모르고 아무 공도 없이 그것을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고, 자기 마음대로 대할 수 있다는 것은 지극히 무서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책임자들은 주의하라는 거라구요. 책임자들은 주의하라는 거예요. 잘못하다간 하나님이 들이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그런 때가 조금 남았기 때문에 그렇지만, 앞으로는 친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책임자는 선생님 이상 벗어나라는 것입니다. 선생님 이상 못 벗어났으면 나가서 책임을 다하라 이겁니다. 그러지 않고는 책임자로서 통일교회의 전통 앞에 부끄러운 자들이다 하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러기에 과중한 임무를 짊어진 우리는 사탄 앞에 비웃음의 자리에 서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에 있어서 현재의 여러분이 짊어진 사명이요. 책임인 것을 알아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오래지 않아 선생님은 한국을 또 떠나야 해요. 떠나야 된다구요. 이제 가면 하나님이 언제 다시 돌아가라고 할는지 모르겠어요.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어디로 가라 하면 거기 가서 머무는 것이요. 한국을 당분간 포기해 버리라면 포기해 버릴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외적으로는 모르겠지만, 내적으로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선생님은 한국을 위해서 싸울 거예요. 금후에 있어서 한국이 아시아의 해방권을 준비할 수 있도록 여러분 이상 몇 배의 투쟁을 해 나갈 행로에 있어서 아침 햇빛을 바라보고 지는 해를 바라보며 지낼 거라구요. 그것만은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알고 이 과중한 임무를 책임지는 데 있어서 자신들이 서로서로가 앞을 다툴 수 있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 통일교회는 결코 망하지 않을 것이며, 이 나라 이 민족의 운명은 우리로 말미암아 개방된 새로운 시대가 찾아올 것을 틀림없이 믿기 때문에 여러분이 그렇게 해 주기를 바라서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기 도
아버지, 당신 앞에 면목이 없사옵니다. 저희들은 때로는 사람들 앞에 투정도 할 수 있는 입장에 있지마는, 당신은 존엄하신 권위를 죽으면서도 붙들고 나가야 할 입장이기 때문에 사정을 통할 수 있는 평면적인 상대권을 갖지 못한 아버님은 불쌍한 아버님인 것을 아옵니다.
아버지, 통일교회를 아버지께서 사랑하셔야 되겠습니다. 여기에 있는 자식을 보시고 사랑하시옵소서. 아버지 앞에 면목이 없사옵니다. 50이 넘도록 이 싸움을 아직까지 끝내지 못하고, 거듭되는 시련의 노정을 앞에 놓고 최후의 일격을 가해야 할 결전장을 바라보고 있사옵니다. 그러한 생사의 판가름을 짓지 않으면 안 될 이 엄숙한 사명의 분담이 저희에게 정면으로 부딪쳐 오는 것을 직시할 때에 아버지, 그 누가 이 책임을 져주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이옵니다.
제가 책임질 수 있는 입장이 아니옵니다. 제가 책임을 못 지거들랑 아버지께서 책임을 지고 이 일을 감당하기 위해 그래도 한 번, 두 번, 세 번까지는 용서하실 분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들은 그러기 전에 책임을 지고 30번이라도 해내겠다는 결의를 가진 저희가 되어야 할 것을 절절히 느끼옵니다.
여기 둘러앉아 있는 이들을 아버지, 보살펴 주시옵소서. 당신 앞에 자랑할 아무것도 갖지 못하였사옵니다. 못나고 상처 입고 지친 불쌍한 피난 떼거리이옵니다. 이들이 헐벗고 굶주리고, 혹은 노숙도 해야 하는 비참한 자리에 서 있는 것을 아시는 아버지, 이들을 몰아 당신의 뜻 성사에 세우시려는 그 거룩한 곳까지는 아직도 길이 남아 있사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복귀의 길이 남아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는 이 길을 달려가야 되겠사옵니다. 그리하여 원수들이 지쳐 쉴 틈을 타 가지고 가야 되겠기에, 밤이나 낮이나 저희는 전진밖에 할 수 없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사방을 주시하고 살피면서 가려 가야 할 길밖에 없다는 것을 생각하옵니다.
아버지, 금후의 한국을 아버지께서 긍휼히 보시옵소서. 이제 이 민족은 어떠한 강대국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운명을 벗어나야 하겠사옵니다. 자주적인 민족자결을 통해 통일된 민족을 형성하고 아시아의 강한 주체적인 기반을 닦아 일본과 아시아의 약소민족을 움직일 수 있는 주도적 기반을 넓혀야 하겠사옵니다. 어떤 나라의 민족보다도 많은 수를 갖추지 않고는 이 민족이 금후에 아시아에 있어서 주체적인 국가의 행세를 할 수 없다는 걸 생각하게 되옵니다. 그러기에 저희들은 이 나라를 넘어서 아시아를 향한 작전을 지금까지 해 나왔습니다.
아버지, 일본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 제단 앞에서 당신이 사랑하는 아들들이 해와국의 최고 간부들과 담판하는 자리에 서 있는 것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아버지, 그들의 갈 길을 지키시옵소서. 그 누구도 모르는 복귀의 길을 더듬어서 수 년 동안 쌓아 온 실적을 당신 앞에 영광과 찬양의 조건으로 남기기를 바라는 그것이 이 아들이 지금까지 누구도 모르게 쌓아 놓은 것이 아니옵니까? 그것이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현재의 입장이 딱한 환경인 것을 바라볼 때에, 아버지께서 저희들을 보내 주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더 급하시기에 저희들을 따라가는 입장에서 쓰라린 민족의 심정만을 붙들고 있사옵니다.
이 몸 다 바쳐, 이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아버지의 뜻 앞에 반역의 무리가 안 될 통일의 무리가 되어야 된다는 그 일념만은 변치 않고 있사오니, 아버지시여, 이 통일교회를 맡으시옵소서. 통일교회가 사랑하는 대한민국을 맡으시옵소서, 대한민국이 가야 할 금후의 아시아 제국을 맡으시옵소서. 이 아시아를 세우시어, 지금까지 핍박받고 압제를 당하던 아시아를 통하여 세계의 모든 민족을 지도할 수 있는 자유의 아시아권을 넘어 세계적 시대를 맞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가는 길이 험하더라도 우리 임이 가신 길을 이어받아 가는 것이기 때문에 정성과 충성과 효성과 열녀의 심정을 다 바쳐 가기를 결의하고, 과중된 임무를 다짐받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 누구를 대해 입을 열어 맹세하는 것보다도 당신을 대하여 저희의 심신이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자리에서 아버지 앞에 맹세하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시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오늘은 거룩한 날이옵니다. 이때의 책임을 짊어진 통일의 역군들, 삼천리반도에서 남모르는 색다른 대열을 갖추어 가지고 선두에 서서 투쟁하고 있는 기동대원들, 그리고 세계의 5개 국가에서 싸우고 있는 기동대원들의 젊음의 십자가를 아버지께서 고이 키우시어서 금후의 뜻과 더불어 교육하는 모든 것이 일취월장해야만 되겠사옵니다.
아버지, 가고 싶은 그곳이 그립습니다. 보고 싶은 그날이 조급한 마음으로 기대되옵니다. 당신이 살아 명령하는 주체로서 진정으로 아들딸을 품고 사랑하는 그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진정한 가정의 식구들을 보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그 전통을 배우고 싶고, 당신이 사랑하는 그 나라에서 당신이 치리하는 그 모든 국정을 보고 싶습니다. 늠름한 세계의 이상국가를 치리할 수 있는 만민의 갈 길을 이어 주기 위해서 보고 싶어하는 것을 아시는 아버지여, 그러한 자리에 당신의 해방과 당신의 자주권과 자중할 수 있는 자유의 천국이 어서 속히 오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기 위해서는 탕감의, 제물의 대가를 치르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보잘것없는 저희들을 고임돌로 삼으시어서 당신이 가시는 행보를 단축시킬 수 있는 길이 있거들랑 그 이상의 바람이 없는 것을 자각하는 통일의 무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뜻을 중심삼고 모여 있는, 초라한 당신의 자녀들이 모인 곳을 찾아 주시옵소서. 나라와 민족을 대신한 교회라야 민주세계의 정상을 향해 갈 수 있다고 하는 말씀을 저희들이 마음속에 갖고 있기 때문에, 아버지께서도 찾아오셔서 그 마음에 동조하시고 협조하여 주시길 간곡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이후의 모든 것이, 이달과 이해의 모든 것이, 70년대의 모든 것이 뜻과 더불어, 당신이 원하는 섭리의 뜻과 더불어 당신이 원하는 섭리의 노정에서 일취월장하게 허락하여 주옵시기를 간절히 부탁하옵니다. 만만세의 은사와 사랑과 가호와 지도가 길이길이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 위에 같이하기를 부탁하면서, 모든 말씀을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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