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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왕산을 노닐다가(遊周王山)」 학봉(鶴峯) 선생의 시운(詩韻)을 차(次)하다>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이번 편에 소개하는 장문의 연작시 「유주왕산 경차학봉선생운(遊周王山 敬次鶴峯先生韻) 21수(二十一首)」는 조선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운암(雲巖) 김용(金涌, 1557~1620) 선생의 작품으로, 『운천문집(雲川文集)』 권2(卷之二)에 수록되어 있다. 저자가 자연이 만든 걸작, 경상북도 청송군의 주왕산(周王山)을 유람하면서, 스승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 1538~1593) 선생의 시운을 빌려 지은 연작시 21수(二十一首)다. 제목의 뜻은, ‘주왕산을 노닐다가(遊周王山) 공경하는 학봉(鶴峯) 선생의 시운(詩韻)을 차(次)하여 21수(首)를 짓다(遊周王山 敬次鶴峯先生韻 二十一首)’이다.
이 글의 저자 운암(雲巖) 김용(金涌) 선생은 그의 스승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 선생이 주왕산(周王山)에서 지은 ‘麻’, ‘蒸’, 운목(韻目)의 절구 4수(首) 「추기주왕산 4절(追記周王山四絕)」과 ‘支’ 운목의 칠언절구 「추기주왕산 일절입원집(追記周王山 一絶入元集)」, 그리고 ‘支’ 운목의 칠언절구 「추기주왕산(追記周王山)」, ‘庚’과 ‘先’ 운목의 칠언절구 「주왕산(周王山)에 들어가(入周王山)」 2수(首) 등의 시운(詩韻)을 차(次)하여 「유주왕산 경차학봉선생운(遊周王山 敬次鶴峯先生韻) 21수(首)를 지었다.
운암(雲巖) 김용(金涌, 1557~1620) 선생의 이 연작시는 단순히 자연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스승에 대한 추모와 존경, 주왕산에 얽힌 비극적 역사(주왕의 전설)에 대한 회고, 도가적인 탈속(脫俗)의 경지, 그리고 난세를 바라보는 지식인의 고뇌가 촘촘하게 엮여 있는 조선 중기 기행문학의 수작이다.
또한 선생은 학봉 김성일의 제자이자 사위로, 스승이 앞서 주왕산을 다녀가며 남긴 시의 운(韻)을 따라 지으며 주왕산의 빼어난 절경을 예찬하고, 그 속에 담긴 역사적 비장함과 도가적 은일(隱逸)의 정서를 노래했다.
● 21수(二十一首)의 내용을 하나씩 요약하겠다. 먼저 제1수(首) ‘방대정(方臺亭)’에선, 주왕산 초입의 방호정(方壺亭) 주변 풍경을 그린 시다. 신선이 산다는 '방호산'에 비견될 만큼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세속의 모든 일을 잊고 은거하고 싶은 마음을 표현했다.
제2수(首) ‘주왕사 뒤쪽 골짜기로 들어가며(入周王寺後洞)’에선, 대전사(옛 주왕사) 뒷골짜기의 깊고 신비로운 풍경을 신선 세계에 비유했다. 깎아지른 절벽과 맑은 못을 보며 선비로서의 지조와 내면의 평정을 다짐하는 내용이다.
제3수(首) ‘부백(부사)이 산을 나가는 것을 배웅하며(送府伯出山)’에선, 함께 온 청송부사(부백)는 공무로 먼저 산을 내려가고, 자신은 주왕산의 끝을 보리라는 다짐을 유쾌하고 호기롭게 표현한 시다.
제4수(首) ‘주왕성(周王城)’에선, 주왕산의 유래가 된 당나라 주왕(周王)의 전설을 배경이다. 신라 말기 이곳으로 도망쳐 숨어 살다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주왕의 처지를 생각하며, 역사의 허무함과 여전히 세속의 흔적을 씻어내지 못한 인간의 부끄러움을 웅장한 폭포 소리에 투영했다.
제5수(首) ‘주왕전 옛터(周王殿古基)’에선, 주왕이 대궐을 짓고 살았다는 옛터에서 느끼는 인생무상(人生無常)의 감정을 담았다. 화려했던 권력은 사라지고 잡초만 남은 공간에서 가을 저녁의 쓸쓸한 풍경을 바라보는 감회가 깊게 묻어난다.
제6수(首) ‘하명계(霞明溪)’에선, '노을이 밝게 비치는 시내'라는 뜻의 하명계(주방천 계곡)의 아름다움을 찬미한 시다. 거울 같은 물과 붉은 바위벽, 그리고 화사한 봄 풍경을 보며 자연의 이치를 예찬하고 있다.
제7수(首) ‘비로봉 폭포(毗廬峯瀑布)’에선, 주왕산 비로봉에서 떨어지는 거대한 폭포(용추폭포)의 웅장함을 묘사했다. 하늘을 찌를 듯한 바위와 끊임없이 쏟아지는 물줄기,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물보라를 통해 대자연의 엄숙함과 은밀함을 서정적으로 그렸다.
제8수(首) ‘기암(旗巖)’에선, 주왕산의 상징인 거대한 바위 '기암(旗巖)'을 보고 지은 시다. 주왕이 이곳에 깃발을 꽂았다는 전설을 바탕으로, 이 아름다운 신선의 세계에 세속의 때 묻은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늘이 큰 바위 깃발을 세워 통제하는 듯하다고 재치 있게 표현했다.
제9수(首) ‘급천암(汲泉巖)’에선, 가파른 바위벽에 있는 샘터(급천암)를 보며 지은 시다. 원숭이도 가기 힘든 험한 절벽에 구멍을 파고 물을 길어 먹어야 했던 주왕 일파의 절박한 역사를 되새기며, 난세를 만난 영웅의 비극과 시대의 아픔을 슬퍼하고 있다.
제10수(首) ‘유람객들이 학동에 이르러(遊人到鶴洞)’에선, 학들이 살았다는 학동(鶴洞)에서 먼저 다녀간 스승 학봉 김성일의 시를 생각한다. 정의롭고 강직했던 스승의 영혼이 학이 되어 세속의 불의와 모순을 내려다보며 울고 있는 것만 같다는 깊은 추모와 존경을 담았다.
제11수(首) ‘청학동으로 들어가며(入靑鶴洞)’에선, 주왕산의 아름다움을 금강산에 비견하면서도, 오히려 주왕산의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한 명시다. 금강산은 이름이 널리 알려져 세속의 명리를 쫓는 사람들(홍진거마)로 북적이지만, 남쪽에 깊숙이 숨겨진 주왕산은 찾는 이 없이 고요하여 진정으로 자연을 즐기고 은거하기에 최고의 장소라는 자부심을 드러냈다.
제12수(首) ‘산중에서 본 바를 기록하다(山中記所見)’에선, 주왕산 내부의 깊은 풍경을 본격적으로 감상하며 느낀 고양된 감정을 서사시처럼 묘사했다. 폭포와 성벽의 웅장함을 감상하며, 마치 신선의 세계로 들어가는 듯한 설렘과 호기를 보여준다.
제13수(首) ‘용담에서 지은 두 수 중 첫 번째(兩絶龍潭 一)’에선, 현재 주왕산 구룡소(용담) 주변의 신비로운 풍경을 노래했다. 옥빛 나무와 붉은 노을이 어우러진 신선의 땅에서, 초나라 굴원의 고사처럼 '갓끈을 씻는다(濯纓, 세속의 때를 벗고 은거함)'는 다짐을 표현했다.
제14수(首) ‘용담에서 지은 두 수 중 두 번째(兩絶龍潭 二)’에선, 도연명의 《도화원기》를 떠올리게 하는 시다. 세상과 격리된 용담 계곡의 절경 속에서 무릉도원을 꿈꾸며 깊이 빠져들었지만, 다시 현실로 돌아가야 하는 아쉬움과 세속의 거리감을 '아득하다(渺然)'고 표현했다.
제15수(首) ‘검은 학이 말을 스쳐 날아가다(玄鶴掠馬)’에선, 주왕산을 유람하던 중 검은 학(또는 그와 닮은 새)이 부딪칠 듯 날아가는 신비로운 광경을 목격한 순간을 포착했다. 이를 자연이 자신을 부르는 신호로 여겨 당장이라도 세상일을 접고 산에 머물고 싶어 하는 마음을 담았다.
제16수(首) ‘지원현 고개에서 주왕산을 바라보다(枝院峴望周王山)’에선, 유람을 마치고 고개를 넘어 돌아가는 길의 아쉬움이다. 멀어지는 주왕산의 기암괴석들이 창끝처럼 웅장하게 서 있는 모습을 보며, 이 감동이 잊히기 전에 한 자라도 더 시로 남기려고 서두르는 시인의 인간적인 면모가 잘 드러난다.
제17수(首) ‘송생현을 지나며(過松生縣)’에선, 주왕산 인근의 옛 송생현(현재 청송군 청송읍 송생리와 부동면·부남면 일대에 있던 옛 고을. 청송읍 덕리 일대)을 지나며 지은 감회다. 처량한 피리 소리와 변함없는 자연 속에서, 역사 속 인물이나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을 향한 쓸쓸함과 슬픔(怊悵)을 노래했다.
제18수(首) ‘추기(追記) 네 수 중 첫 번째 (追記周王山 一絶)’에선, 산을 다녀온 후 과거를 회상하며 지은 시다. 세월의 덧없음을 흐르는 물과 매화에 비유하며, 스승 학봉이 주왕산에서 주자를 생각했듯 자신 또한 스승과 주왕산에서의 시간을 애틋하게 추억하고 있다.
제19수(首) ‘추기 네 수 중 두 번째(追記周王山 二絶)’에선, 스승 학봉 김성일이 과거 동료들과 시를 주고받으며 학문을 논하던 아름다운 모습을 회상(혹은 주자의 고사를 동치)하는 시다. 스승이 남긴 시 구절 속에서 선현들의 높은 정신적 경지(襟期)를 천년이 지나도 느낄 수 있음을 찬탄했다.
제20수(首) ‘추기 네 수 중 세 번째(追記周王山 三絶)’에선, 앞서 11수(靑鶴洞)에서 주왕산의 한적함을 예찬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것은 산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세속의 눈을 가진 이들이 이 오묘하고 순수한 대자연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자부심을 드러냈다.
제21수(首) ‘추기 네 수 중 네 번째(追記周王山 四絶)’에선, 연작시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시로, 주왕산 깊은 암자에서 수행하는 승려를 보고 느낀 소회다. 오직 등불 하나에 의지해 깊은 산중에서 수도하는 '진짜 스승(眞僧)'의 모습과, 당시 세속에서 군역이나 세금을 피하기 위해 억지로 머리를 깎았던 가짜 승려들을 대비하며 씁쓸한 사회적 현실을 날카롭게 풍자하고 가엾게 여기는 선비의 시선을 보여준다.
**「유주왕산 경차학봉선생운(遊周王山 敬次鶴峯先生韻) 21수(二十一首)」** / 김용(金涌 1557~1620)
<제1수(首) 방대정(方臺亭)> ‘尤‘ 운(韻)
聽說方壺勝 듣노라니 방호의 경치 빼어나다던가
眞宜隱靜流 참으로 고요히 흐르는 물가에 숨어 살 만하네.
雲閒明鏡面 구름은 밝은 거울 같은 물면에 한가로이 떠 있고
松老翠屏頭 소나무는 늙어 푸른 병풍 같은 바위 머리에 서 있네.
深樹鳴幽鳥 깊은 숲속에는 그윽하게 새가 울고
晴沙立炯鷗 갠 모래사장에는 반짝이는 갈매기가 서 있네.
若能謀數頃 만약 이곳에 몇 이랑의 땅을 구할 수 있다면
萬事付滄洲 세상만사 모두 자연(창주)에 맡기리라.
<제2수(首) 주왕사 뒤쪽 골짜기로 들어가며(入周王寺後洞)> ‘侵’ 운(韻)
十二樓何處 십이루(신선의 궁궐)는 어디에 있는가
層城深復深 겹겹이 쌓인 성벽처럼 깊고도 깊도다.
眞人應此住 신선(진인)은 마땅히 이곳에 살 터인데
俗子不曾尋 세속의 범부들은 찾아오지 못하네.
疊壁看高節 겹겹이 에워싼 절벽에서 높은 절개를 보고
澄潭想靜襟 맑은 못을 보며 고요한 마음을 생각하네.
長吟表獨立 길게 시를 읊조리며 홀로 우뚝 서 있으니
雲鶴是知音 구름 속의 학이야말로 내 마음을 아는 지음(知音)일세.
<제3수(首) 부백(부사)이 산을 나가는 것을 배웅하며(送府伯出山)> ‘灰’ 운(韻)
松館剛辭把一杯 송관(숙소)에서 갓 한 잔 술을 나누고 헤어지고서
爲探奇勝入山來 나는 기이하고 빼어난 경치 찾으러 산속으로 들어왔네.
寄聲先語雲中鶴 구름 속의 학에게 먼저 말을 전하노니
不上巢顚不擬回 저 학둥지 꼭대기까지 올라가지 않으면 돌아갈 생각도 하지 말라.
<제4수(首) 주왕성(周王城)> ‘庚’ 운(韻)
羅季非周代 신라 말기이지 주나라 시대가 아니요,
霞標是赤城 노을 지는 주왕산은 바로 적성(신선 산)이로다.
何王來避世 어떤 왕이 와서 세상을 피했는가
此地欲偸生 이 땅에서 구차히 목숨을 보존하려 했네.
掃跡低枝影 흔적을 지우려 낮은 가지 밑으로 그림자 숨겼으나
懷慙疊穎情 겹겹이 쌓인 봉우리들 향한 부끄러운 마음 가득하네.
塵名洗不盡 세속의 이름 다 씻어내지 못했으니
飛瀑有餘聲 날아내리는 폭포수에 오히려 소리가 남아 있구나.
<제5수(首) 주왕전 옛터(周王殿古基)> ‘齊’ 운(韻)
絶壁支天屹 절벽은 하늘을 떠받친 듯 우뚝 솟아 있고
浮雲渡澗低 떠도는 구름은 산골짜기를 낮게 건너네.
王風餘蔓草 왕의 위풍은 이제 덩굴풀로만 남았고
玉殿已頹泥 화려하던 옥전은 이미 무너져 진흙이 되었구나.
萬事鴻無跡 세상만사 기러기 발자국처럼 흔적 없고
千年鶴有樓 천년 세월 속에 학이 머물던 루만 남았네.
沈吟仍坐久 나지막이 시를 읊조리며 마냥 오래 앉아 있으니
秋日下山西 가을 해가 서산으로 지고 있구나.
<제6수(首) 하명계(霞明溪)> ‘庚’ 운(韻)
溪名取何義 시내의 이름은 무슨 뜻을 취했는가
爲有水中英 물속에 아름다운 꽃(비치는 풍경)이 있기 때문이리.
鏡淨開塵匣 거울처럼 맑은 물은 먼지 낀 경갑을 연 듯하고
屛高起赤城 병풍처럼 높은 바위는 적성처럼 솟았네.
枝枝春爛熳 가지마다 봄꽃은 흐드러지게 피었고
片片夕分明 조각조각 노을빛은 저녁에 선명하구나.
會待淸和節 맑고 화창한 계절을 기다려
重探造物情 대자연(조물주)의 오묘한 뜻을 다시 와서 탐구하리라.
<제7수(首) 비로봉 폭포(毗廬峯瀑布)> ‘元’ 운(韻)
毗盧冠衆嶽 비로봉은 많은 봉우리 중의 으뜸이라
卓立不辭尊 우뚝 솟아 높은 자리를 사양치 않네.
矗石擎天宇 솟구친 바위는 하늘을 떠받치고
飛泉鎖洞門 날아내리는 폭포는 골짜기 문을 걸어 잠갔네.
剛風吹不斷 강한 바람이 불어도 폭포수는 끊이지 않고
素月映無垠 하얀 달빛은 끝없이 비추네.
餘沫霏成霧 흩날리는 물방울은 안개가 되어 피어오르고
時時豹隱濆 때때로 은자가 숨어 살 만한 곳이로다.
<제8수(首) 기암(旗巖)> ‘庚’ 운목, 평기식
溪風山月孰能爭 시냇가 바람과 산 위의 달을 그 누가 다투랴,
銀漢中間闢玉京 은하수 한가운데에 옥경(하늘 대궐)을 열어놓은 듯하네.
却恐塵蹤來假步 도리어 세속의 발길이 빌려 찾아올까 두려워,
洞門千尺豎麾旌 천 척 높은 골짜기 문에 대장군의 깃발을 세워두었구나.
<제9수(首) 급천암(汲泉巖)> ‘沃’, ‘寘’, ‘支’ 운(韻), 평기식
層巖飛狖難投足 층층이 쌓인 절벽은 날바랜 원숭이도 발 붙이기 어렵거늘
圭竇誰穿石壁爲 옥으로 만든 구멍 같은 샘을 그 누가 석벽에 뚫었는가.
平地神仙太平事 평지에서 신선처럼 사는 것은 태평성대의 일이어늘
看來不得不傷時 이 험한 곳을 와서 보니 시대를 슬퍼하지 않을 수 없구나.
<제10수(首) 유람객들이 학동에 이르러(遊人到鶴洞)> ‘庚’ 운목, 측기식
絶壁飛流合讓淸 절벽에 날아내리는 물줄기는 진정 맑음을 양보해야 하리니
當年誰似此詩情 그 옛날(학봉 선생이 시를 쓸 당시) 그 누가 이 시심과 같았으랴.
懸知魂化松顚鶴 알겠노라, 스승님의 혼은 소나무 꼭대기의 학이 되어,
俯視塵寰叫不平 저 아래 인간 세상을 굽어보며 불평스레 울부짖고 있음을.
<제11수(首) 청학동으로 들어가며(入靑鶴洞)> ‘刪’ 운목, 측기식
周王山似金剛山 주왕산은 금강산과 비슷하다고들 하지만
我謂金剛山未閒 내가 보기엔 금강산은 한가롭지 못하다네.
紅塵車馬皆東首 속세의 수레와 말들은 모두 동쪽(금강산)을 향해가지만
寂寂維南斷往還 쓸쓸히 남쪽에 있는 이곳은 오가는 발길 끊겨 고요하구나.
● 이어 10수의 시들에는 주왕산의 깊은 절경인 '용담(龍潭)'의 신비로움, 산을 떠나며 느끼는 아쉬움, 그리고 스승 학봉 김성일 선생을 향한 깊은 그리움과 존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특히 주자가 남악(衡山, 형산)에서 조장(酬唱)했던 시의 고사를 인용하며 스승의 학문적·정신적 경지를 우러러보는 대목이 돋보인다.
<제12수(首) 산중에서 본 바를 기록하다(山中記所見)> ‘尤’ 운목
乘興遊仙境 흥에 겨워 신선의 세계를 유람하니
同行盡靜流 동행한 이들 모두 고요히 흐르는 물처럼 맑은 성품이네.
白雲初望美 처음 바라본 흰구름이 아름답고
靑鶴更尋幽 다시 찾아 나선 청학의 자취는 그윽하기만 하구나.
瀑下三千尺 폭포는 삼천 척 높이에서 쏟아지고
城高十二樓 성벽은 십이루(신선의 궁궐)처럼 높이 솟았네.
眞人應見待 신선이 마땅히 나를 기다리고 있을 터이니
振策莫遲留 채찍을 휘둘러 더 지체하지 말고 나아가세.
<제13수(首) 용담에서 지은 두 수 중 첫 번째(兩絶龍潭 一)> ‘庚’ 운목, 측기식
霞起山中是赤城 산속에 노을이 피어나니 이곳이 바로 적성(신선의 산)이요,
瓊枝琪樹見分明 옥 같은 나뭇가지와 신선의 나무들이 눈앞에 분명하구나.
莫言靈境終難住 이 신령스러운 땅에 끝내 머물기 어렵다 말하지 마라
欲挹飛流一濯纓 날아내리는 저 폭포수 길어다 갓끈을 씻고 은거하리라.
<제14수(首) 용담에서 지은 두 수 중 두 번째(兩絶龍潭 二)> ‘先’ 운목, 측기식
壺裏誰開別洞天 항아리 속(호중천지) 같은 곳에 그 누가 또 다른 별천지를 열었는가,
源窮應有避秦仙 물줄기 끝까지 가면 진나라 난세를 피해 숨은 신선이 살고 있으리.
欲從流水尋花去 흐르는 물 따라 도화원 꽃을 찾아가고 싶건만
其奈回頭却渺然 고개 돌려 바라보니 지나온 길 도리어 아득하기만 하구나.
<제15수(首) 검은 학이 말을 스쳐 날아가다(玄鶴掠馬)> ‘微’ 운목, 측기식
忽見玄裳掠馬飛 갑자기 검은 치마(현학)를 입은 듯한 새가 말을 스쳐 날아가니
客心能不更依依 나그네의 마음이 어찌 더욱 애틋하고 그리워지지 않으랴.
山靈若許山中隱 산신령이 만약 이 산중에 은거하는 것을 허락해 준다면
此日旋同此鶴歸 오늘 당장 저 학과 함께 돌아가리라.
<제16수(首) 지원현 고개에서 주왕산을 바라보다(枝院峴望周王山)> ‘陽’ 운목, 평기식
策驢枝峴返江鄕 나귀 채찍질하여 지원현 고개 넘어 고향 강가로 돌아가며
回首群峯列㦸鋩 고개 돌려 보니 허다한 봉우리들이 창검의 날처럼 늘어서 있구나.
却恐山容描不盡 오히려 주왕산의 그 웅장한 모습을 다 그려내지 못할까 두려워
遺鞭忙手點詩囊 말채찍 떨어뜨린 채 바쁜 손으로 시 주머니만 뒤적이고 있노라.
<제17수(首) 송생현을 지나며(過松生縣)> ‘庚’ 운목, 평기식
山陽晚笛不堪聽 산 남쪽에서 들려오는 저녁 피리 소리 차마 듣기 애달픈데
一帶溪流也自淸 한 줄기 흐르는 시냇물은 저 홀로 맑구나.
怊悵主人何處去 슬프다, 이곳의 옛 주인은 어디로 가셨는가,
依然芧棟是松生 볏짚 지붕(초가집)은 예전 그대로인데 이곳이 바로 송생이로다.
<제18수(首) 추기(追記) 네 수 중 첫 번째 (追記周王山 一絶)> ‘麻’ 운목, 측기식
逝水悠悠不返波 흐르는 물은 유유히 흘러가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
誰回春信似梅花 그 누가 매화처럼 다시 봄소식을 돌려올 수 있으랴.
令人更憶周王興 사람으로 하여금 주왕산의 그 흥취를 다시 기억하게 하니
歲月無情覺又遐 무정한 세월 속에 깨달음은 또한 멀어져만 가네.
[주] 학봉 선생의 시에 "올라 바라보니 문득 주자의 형산(衡山) 흥취가 생각나고, 우러러 우러르며 도리어 세월이 아득함도 잊었네(登臨忽憶衡山興 瞻仰還忘歲月遐)"라 하였고, 주부자의 형산 수창시에 "강물은 흘러가 돌아오지 않네(江波去不回)", 또 "계절의 사물에 또 매화가 성기었네(節物又疏梅)"라 하였으니 모두 옛일을 회고하는 뜻이다.
<제19수(首) 추기 네 수 중 두 번째(追記周王山 二絶)> ‘支’와 ‘微’ 운(韻), 평기식
先生聯騎石灘時 선생님들께서 석탄에서 나란히 말을 타고 거니실 때
幾首新詩玉屑飛 지으신 여러 수의 새 시는 옥가루가 날리는 듯 아름다웠네.
最是祝融峯一句 그 중에서도 '축융봉'에 관한 한 구절은
令人千載想襟期 사람들로 하여금 천년 동안 그 높은 기상과 흉금을 생각하게 하네.
[주] 형산 수창시에 "석탄에서 나란히 말 타니 눈이 소복이 내리는데, 이미 남산의 풍경을 작은 시 속에 담았네(石灘聯騎雪垂垂 已把南山入小詩)"라고 하였다.
<제20수(首) 추기 네 수 중 세 번째(追記周王山 三絶)> ‘支’ 운목, 평기식
名山誰似此仙洞 명산 중에 그 어디가 이 신선의 골짜기와 같으랴,
玉立群峯滿眼奇 옥처럼 우뚝 선 수많은 봉우리가 눈에 가득해 기이하구나.
莫道遊人蹤跡少 유람객들의 발길이 적다고 말하지 마라,
遊人自是不能知 유람객들이 스스로 이 가치를 알지 못할 뿐이로다.
<제21수(首) 추기 네 수 중 네 번째(追記周王山 四絶)> ‘蒸’ 운목, 측기식
五葉松枝一點燈 다섯 잎 소나무 가지 끝에 가녀린 등불 하나 켜 있으니
方知住此是眞僧 비로소 이곳에 사는 이가 참된 승려임을 알겠구나.
人間逃賦緇名者 인간 세상에서 세금을 피해 승려의 이름 뒤에 숨은 자들은
只削其頭儘可矜 단지 머리만 깎았을 뿐이니 참으로 가련할 뿐이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