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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36]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앞부분의 줄거리] 작가인 ‘나’의 고향 친구 유재필은 그 성품이 본받을 만한 데가 있어 ‘나’는 그를 ‘유자’라고 부른다. 대기업 총수의 운전기사로 일하던 그는 우연한 사건으로 총수의 미움을 사 그룹의 교통사고를 처리하는 노선 상무로 좌천된다.
그는 운전자의 운전 윤리에 누구보다도 반듯하였다. 그러므로 운행 중에 때아닌 곳에서 과속으로 앞지르기를 하거나, 옆에서 끼어들어 진로 방해를 하거나, 차선을 함부로 넘나들거나, 신호 등이 바뀌기 전부터 앞으로 나가지 않는다고 뒤에서 경적을 울려 대거나, 운전 상식이나 도로 질서에 도전하는 자를 보면, 매양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기를 잊지 않았다.
“츤헌늠…… 저건 아마 즤 증조할애비는 상전덜 뫼시구 가마 꾼 노릇 허구, 할애비는 고등계 형사 뫼시는 인력거꾼 노릇 허 구, 애비는 양조장 허는 자유당 의원 밑에서 막걸리 자즌거나 끌었던 집안 자식일겨. 질바닥서 까부는 것덜두 다 계통이 있는 법이니께.”
그가 다루는 사건도 태반이 가해자의 운전 윤리 마비증이 자아 낸 것이었다. 그렇지만 가해자가 그룹 내의 동료 운전수라 하여 팔이 들이굽는다는 식의 적당주의를 취한 적은 거의 없었다. 다만 사건 처리에 필요한 서류를 갖추기 위해 신상 기록 대장에 있는 주소를 찾아가 보면 일쑤 비탈진 산꼭대기에 더뎅이 진 무허가 주택에서 근근이 셋방살이를 하는 축이 많았고, 더욱이 인건비를 줄이느라고 임시로 쓰던 스페어 운전수들이 사는 꼴이 말이 아닐 때는, 그 운전자의 자질 여부를 떠나서 현실적인 딱한 사정에 괴로워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스페어 운전수는 대체로 벌이가 시답지 않아 결혼도 못 한 채 늙고 병든 홀어미와 단칸 셋방에 살고 있거나, 여편네가 집을 나가 버려 어린것들만 있는 경우가 적지 않았고, 들여다보면 방구 석에 먹던 봉지 쌀이 남은 대신 연탄이 떨어지고, 연탄이 있으면 쌀이 없거나 밀가루 포대가 비어 있어, 한심해서 들여다볼 수가 없고 심란해서 돌아설 수가 없는 집이 허다한 것이었다.
그는 결국 주머니를 털었다. 스페어 운전수의 사고에는 업무 추진비 명색도 차례가 가지 않아 자신의 용돈을 털게 되는 것이었다. 식구가 단출하면 쌀을 한 말 팔아 주고, 식구가 많은 집은 밀가루를 두 포대 팔아 주고, 그리고 연탄을 백 장씩 들여놓아 주는 것이 그가 용돈에서 여툴 수 있는 한계였다.
그는 쌀가게에서 쌀이나 밀가루를 배달하고, 연탄 가게에서 연탄 백 장을 지게로 져 올려 비에 안 젖게 쌓아 주기를 마칠 때까지 그 집을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집을 나와서 골목을 빠져나오다 보면 늘 무엇인가를 빠뜨리고 오는 것처럼 개운치가 않았다. 그는 비탈길을 다 내려와서야 그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깨닫곤 하였다. 산동네 초입의 반찬 가게를 보고서야 아까 그 집의 부엌에 간장밖에 없었던 것이 뒤늦게 떠오른 것이다.
그러면 다시 주머니를 뒤졌다.
그가 반찬 가게에서 집어 드는 것은 만날 얼간하여 엮어 놓은 새끼 굴비 두름이었다. 바다와 연하여 사는 탓에 밥상에 비린 것이 없으면 먹어도 먹은 것 같지 않아 하는 대천 사람의 속성이 그런 데서까지도 드티었던 것이다.
도로 산비탈을 기어올라 가서 굴비 두름을 개 안 닿게 고양이 안 닿게 야무지게 매달아 주면서,
“붝에 제우 지랑밲이 웂으니 뱁이구 수제비구 건건이가 있으야 넘어가지유. 탄불에 궈 자시던지 뱁솥에 쩌 자시던지 하면, 생긴 건 오죽잖어두 뇌인네 입맛에 그냥저냥 자셔 볼 만헐뀨.”
쌀이나 연탄을 들여 줄 때는 회사에서 으레 그렇게 돌봐 주는 것이거니 하고 멀건 눈으로 쳐다만 보던 노파도, 그렇게 반찬거리까지 챙겨 주는 자상함에는 그가 골목을 빠져나갈 때까지 눈시울을 적시고 있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가 노선 상무로 나간 초기에는 피해자 가족들에게 속절없이 봉변을 당하기에 바빴다.
사망자가 난 사고에서는 더욱 그러하였다. 운전수가 연행되어 조사를 받고 있거나 아예 달아나 버려서 분풀이를 하고 싶어도 상대가 없어서 앙앙불락하던 차에, 사고를 낸 회사에서 사고 처리반이 나왔다고 하면 대개는 옳거니, 때맞추어 잘 만났다 하고 떼거리로 달려들어 덮어놓고 멱살을 잡으며 주먹부터 휘두르고 보는 것이 예사였다. 나중에는 사람을 잘못 알고 실수했노라고 사과하고, 일을 처리하는 데도 싹싹하고 상냥하게 협조하는 위인일수록 처음에는 흥분을 가누지 못해 사납게 부르대고 날뛰는 편이었다.
[A] [“야, 너, 흥부는 놀부같이 잘사는 형이라도 있어서 매품을 팔고 살었다지만, 너는 뭐냐, 뭐여, 못사는 운전수를 동료라구 둔 값에 매품이나 팔며 살 거라, 그거여? 너야말루 군사 정변이 나서 구정권의 거물 비서 자격으루 끌려가서두 볼텡이 한 대 안 줘백히고 니 발루 걸어나온 물건인디 말여, 그런디 이제 와서 냄의 영안실이나 찌웃그리메 장삼이사헌티 놈짜 소리 듣는 것두 과만해서 주먹질에 자빠지구 발길질에 엎어지구 허니, 니가 그러구 댕긴다구 상무 전무가 아까징 끼값을 물어 주데, 사장 회장이 떨어져 밟힌 단춧값을 보태 주데? 사대부 가문을 자랑허시던 할아버지가 너버러 이냥 냄의 아랫도리루만 돌며 살라구 가르치셨네, 동경 유학 출신의 아버지가 동네북으로 공매나 맞구 살라구 널 나 놓셨네? 너두 처자가 있는 '←이 이게 뭐라네? 뭐여? 니 신세두 참…….”]
그는 봉변을 당하고 나면 자기를 저만치 떼어 놓고 바라보며 그런 허희탄식으로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 이문구, 「유자소전(兪子小傳)」 -
34. 윗글의 서술상 특징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인물에 얽힌 일화를 제시하여 성격을 형상화하고 있다.
② 대화와 행동을 통해 인물 간의 대립 양상을 드러내고 있다.
③ 장면에 따라 서술자를 달리하여 사건을 입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④ 서술자가 인물에 대해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며 관찰한 내용을 서술하고 있다.
⑤ 동시에 진행되는 사건을 병렬적으로 배치하여 사건 사이의 인과 관계를 보여 주고 있다.
35. <보기>의 선생님의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3점]
<보기>
선생님: 이 작품의 제목에 쓰인 ‘전(傳)’이란, 어떤 사람의 일대기를 기록하여 후세에 전하는 글의 양식으로, 행적과 함께 인물에 대한 평가를 덧붙여 교훈을 전달하거나 세태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윗글의 내용으로 볼 때, 작가가 작품의 제목을 ‘유자소전(兪子小傳)’이라고 한 까닭은 무엇일까요?
① 시련과 역경에 굴하지 않고 사회적인 성취를 이룬 인물을 통해 용기와 신념의 중요성을 일깨우고자 하였을 것입니다.
② 사회적 약자들이 성실하게 일하고도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도록 만든 불의한 권력에 대해 비판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을 것입니다.
③ 자기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면서 남의 일에 참견하기 좋아하는 인물을 반어적으로 칭송하여 세태를 풍자하고자 하는 뜻을 담았을 것입니다.
④ 각박한 세태와 힘든 여건 속에서도 어려운 이들을 진심으로 위할 줄 아는 인물의 인간미와 품성에 대해 본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⑤ 욕심내지 않고 자신의 자리에서 맡은 바 소임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진정으로 사회 발전을 이루는 길이라는 교훈을 전달하려는 뜻을 담고 있을 것입니다.
36. [A]에 대한 이해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신세타령 조로 인물의 고뇌를 드러내고 있다.
② 인물 자신에 대한 자기 평가의 성격을 띠고 있다.
③ 집안 내력에 대한 인물의 자부심을 짐작할 수 있다.
④ 현재의 처지에 대한 인물의 자조적 인식이 엿보인다.
⑤ 자신의 삶이 개선되리라는 인물의 기대감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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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36] 현대 소설
이문구, 「유자소전(兪子小傳)」
http://blog.daum.net/tlrtlrgksqkdgksro/14
http://9594jh.blog.me/220221755428
http://munjang.or.kr/archives/181506
해제 이 작품은 유재필이란 실존 인물의 삶을 전(傳) 양식을 차용하여 소설화한 작품으로, 서술자 ‘나’가 친구인 유재필의 범상치 않은 삶의 일대기를 전달하고 있다. 고전적인 서술 방식인 ‘전(傳)’ 양식을 빌려 온 점이나, 사투리를 사용하여 향토적 정서를 강하게 드러낸 점, 희극적 상황의 설정과 사건 전개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전통적인 서사 갈래의 특성을 계승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제시된 부분은 원칙을 중시하고 약자들을 배려하는 유자의 면모가 잘 드러나는 부분으로, 전의 주인공으로서 유자가 갖춘 덕성을 보여 주고 있다.
주제 현대 사회의 물질 만능주의에 대한 비판과 인간미를 갖추었던 유자의 삶에 대한 예찬
전체 줄거리 유재필이란 친구는 심성이 깔끔하고 매사에 생각이 깊으며 남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받아들일 줄 알아 ‘나’는 그를 ‘공자, 맹자’와 같이 ‘유자’라 부른다. 그는 ‘나’가 다니던 대남국민학교에 전학 온 후 특유의 붙임성과 눈썰미로 학교의 명물이 되었으며, 중학교 졸업 후 자유당 말기 야당 위원장의 눈에 띄어 그 밑에서 지내기도 한다. 군 제대 후 재벌 총수의 운전사가 된 유자는 어느 날 불쑥 무명작가인 ‘나’를 찾아오고, 그 후로 종종 들러 책을 얻어 간다. 비단잉어의 죽음과 관련한 사건을 겪으며 총수의 위선에 실망한 유자는 그 자리를 떠나고 싶어 한다. 결국 총수의 불상(佛像)에 묻은 파리똥을 침으로 닦으려다가 좌천되어 회사 노선 상무가 된 유자는 그곳에서 사고 처리를 하는 험한 일을 하면서도 남을 먼저 생각하고 도와주며 지낸다. 유자는 말년에 개인 종합 병원 원무실장으로 근무하던 중, 원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민주화 시위를 하다 부상당한 사람들을 치료받게 해 주고 대신 사표를 낸다. 암에 걸렸던 유자는 얼마 후 죽음을 맞이하고, 그를 아는 문인들과 ‘나’는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의 생애를 기리는 글을 쓴다.
34 서술상 특징 파악 답 ①
| 정답이 정답인 이유 |
① 확인 인물에 얽힌 일화를 제시
이 작품은 ‘운전 윤리’에 관한 일화, 사고를 낸 ‘스페어 운전수’의 가족을 살펴보아 준 일화, 피해자 가족들에게 봉변당한 일화 등 주인공 유자와 관련된 여러 가지 일화를 제시하여, 유자가 따뜻한 인간미를 지닌 인물이라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 오답이 오답인 이유 |
② 확인 인물 간의 대립 양상
이 글에서는 인물 간의 대립 양상을 확인하기 어렵다. 이 글 후반부에서 피해자 가족들이 유자에게 분풀이하는 장면은 인물 간의 대립이라기보다는 유자가 일방적으로 봉변을 당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③ 확인 장면에 따라 서술자를 달리하여
이 작품은 작중 화자인 ‘나’가 이야기를 서술해 나가는 1인칭 시점을 취하고 있다. 장면의 변화에 따른 서술자의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④ 확인 서술자가 인물에 대해 객관적 거리를 유지
사고를 낸 스페어 운전수의 가족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유자의 생각과 행동을 유자의 입장에서 서술한다거나, ‘그는 운전자의 운전 윤리에 누구보다도 반듯하였다.’와 같이 유자의 성품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서술자인 ‘나’가 유자에 대해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며 관찰하고 있다는 설명은 적절하지 않다.
⑤ 확인 동시에 진행되는 사건을 병렬적으로 배치
여러 가지 일화들이 나열되어 있으나, 그 일화에 나타난 사건들이 동시에 진행되는 사건은 아니다.
35 작가의 세계관, 주제 의식 파악 답 ④
| 정답이 정답인 이유 |
④ 확인 어려운 이들을 진심으로 위할 줄 아는 인물의 인간미
제시된 일화들을 통해 유자가 도덕적이며, 어려운 이들을 진심으로 배려하는 따뜻한 인품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다.
| 오답이 오답인 이유 |
① 확인 사회적인 성취를 이룬 인물
유자가 시련과 역경에 굴하지 않는 면모를 지니고 있으나, 사 회적인 성취를 이룬 인물로 보기는 어렵다.
② 확인 불의한 권력에 대해 비판
유자를 사회적 약자로 본다면, 마지막 부분의 내용으로부터 성실하게 일하고도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도 볼 수 있으나, 불의한 권력에 대한 비판 의식은 나타나 있지 않다.
③ 남의 일에 참견하기 좋아하는 인물
유자를 일면 오지랖이 넓은 인물로 볼 수도 있으나, 그러한 유자를 반어적으로 칭송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⑤ 확인 사회 발전을 이루는 길이라는 교훈
유자를 욕심내지 않고 맡은 바 소임을 다하는 인물로 볼 수 있으나, 작가가 유자의 그러한 모습을 통해 사회 발전을 이야기 하고자 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36 대화의 특징 파악 답 ⑤
| 정답이 정답인 이유 |
⑤ 확인 자신의 삶이 개선되리라는 인물의 기대감
[A]의 주된 내용은 유자의 신세 한탄으로, 자신의 삶이 개선되리라는 유자의 기대감은 찾아볼 수 없다.
| 오답이 오답인 이유 |
① 확인 인물의 고뇌를 드러내
[A]는 유자가 노선 상무로 일하면서 겪는 괴로움을 담은 신세타령이다. 피해자 가족들에게 억울하게 봉변을 당해야 하고, 윗사람들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고뇌가 드러나 있다.
② 확인 자기 평가의 성격
매 맞고 사는 자신의 처지가 온당한지, 윗사람들이 알아주지도 않는 일을 하는 것이 타당한지, 집안 내력에 비추어 현재의 처지가 부끄럽지 않은지 등 스스로를 평가하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③ 확인 집안 내력에 대한 인물의 자부심
‘사대부 가문을 자랑허시던 할아버지’나 ‘동경 유학 출신의 아버지’라는 언급을 통해 유자가 자기 집안 내력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④ 확인 현재의 처지에 대한 인물의 자조적 인식
노선 상무라는 직책 때문에 피해자 가족들에게 하릴없이 봉변을 당해야만 하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자조적 인식이 나타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