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C 부터 시작된 '新羅系'의
역사왜곡
지나 동북공정의 전략과 6세기
부터 시작된
'新羅系'의 역사왜곡의
역사
[원제] ‘동북공정’이 성공할 수 있는 이유.
지나, 백두산에
우리자본으로 지은 호텔, 강제 철거.!!
‘주몽’에서 시작해서 ‘연개소문’을 거쳐 ‘대조영’에 이르기까지 우리 고대사와 관련된
사극들이 계속해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이런 바람을 타고 앞으로 ‘태왕사신기’와 ‘단군’도 방영될 예정이라 한다.
이쯤
되면, 우리 국민들은 일종의 자기최면에 빠지게 되는데, 우리가 지나의 동북공정에 승리할 것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국민이 생각하기에 모든
역사적 진실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실은 이렇게 간단하지 않다. 지금 우리나라의 방송사들이 서로 앞 다투어 상고사에
관련된 드라마를 방영하는 것은 우리 국민들의 역사 각성과 동북공정에 대한 준비와는 아무 관련이 없음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은 우리
국민들의 역사의식을 이용해서 돈벌이를 하고 있을 뿐이며, 오히려 ‘동북공정’에 대해서 우리 국민들의 경각심을 완화시키고 있음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이는 적어도 두 가지 결정적인 이유들 때문이다.
우선, ‘동북공정’은
역사적으로 ‘고구려’를 왜곡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구려’는 물론이거니와 ‘고조선’이 왜곡의 핵심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다
엄밀하게 말하면, ‘동북공정’은 고조선보다 더 근원적인 ‘배달국’을 그 타깃으로 삼고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이는 ‘동북공정’이 우리
민족사의 근원을 파괴/왜곡하려는 만행임을 의미한다.
동북공정은 소위 ‘요하문명론’으로 압축된다. ‘요하문명론’은 시기적으로
고조선보다도 앞서있는 것으로 알려진 소위 ‘홍산문명’의 유적을 통해서 가공된 이론이다. 홍산문명은 고조선을 배태시켰던 근원/토대문명으로서
시기적으로는 ‘배달국’시대에 해당되는 유적지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지나는 이 홍산문명의 유적지에 대한 고고학적 탐구를 기초로 해서 그들의
동북공정을 하고 있기에 ‘주몽’이니, ‘연개소문’이니 하는 드라마 따위로는, 그리고 ‘고구려공정’이라는 하수의 대응으로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홍산문명’의 유적지에서는 초기로 갈수록 그 유적의 주인공들이 ‘환웅’을 만나기 이전의, 즉 아직 배달나라조차 성립되기 이전의
소위 요하/발해만 지역의 정착세력이었던 ‘熊女族’세력의 문명임이 드러나고 있다. 그런데 바로 지나는 이런 ‘웅녀계’의 문화를 자신들의 신화
속에서의 원류인 ‘황제’계로 왜곡하고 있다. 그 근거는 단 하나다. 바로 ‘황제’의 여러 이명 중의 하나가 ‘有熊氏’로 알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설도 아니며, 그 누구도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지도 않는 ‘황제신화’를 이용, 그것도 오직 ‘유웅씨’라는 단서 하나만으로도
지나정부는 우리 배달문명을 자신들의 방계로 매도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 그리고 이 결과, 우리가 단군의 역사,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배달과 환국의 역사를 인정하고 복원하지 않는 한, 우리민족의 미래는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이런 황당한
소설을 만들어내는 지나에 있지 않다. 그리고 그 지나 괴뢰문명이 그런 만행을 서슴치않고 자행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우리들의 ‘아킬레스 건’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우리의 아킬레스 건이며, 도대체 왜 우리는 그들의 그 엉터리 짓에 대응할 수 없는 것일까?
우리 역사의 비극은, 비록 한편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빛나는 역사이지만,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수치스럽고 모욕적인
역사라는 데서 시작한다. 우리 역사는 언제부터인가 우리 스스로 자신의 역사의 등에 칼을 꽂고 스스로 조상을 욕되게 하는, 환부역조의 대역죄를
짓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과거에 줄곧 이런 대역죄의 주체를 ‘신라계’로 설명해왔었다.
이 신라계의 환부역조의
대역죄의 역사를 간단히 정리하자.
이들은 아마도 아무리 늦어도 6세기 경부터 ‘민족반역의 프로젝트’를 가동시켰다. 이들은 나름의
고대국가로 성장하면서부터 종래의 ‘고구려’의 영향 하에 있던 것들을 부정하고, 지나의 연호, 지나의 제도, 지나의 종교 등등 전분야에 걸친
지나화 작업을 수행하기 시작했었다.
그리고 이런 지나화 프로젝트의 결정판이 바로 삼국의 파괴였다. 7세기에 일어난 이 민족적
비극은 세계사적 사건이었으며, 그 이후 현재에 까지 우리와 지나의 세력균형추를 지나쪽에로 기울게 했던 비극이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신라계’는 지속적으로 우리 민족사를 왜곡하는 역사공정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를 파괴하고 그
영광과 유산들을 고스란히 당나라에 헌납을 한 뒤에, 자신들의 죄가를 은폐하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영구화하려 다시는 이 땅에서 민족의 중흥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 ‘신라’를 본격적으로 ‘불교국’으로 변모시키는 작업을 수행한다.
7세기 선덕여왕 때의 고승으로 당나라 유학파인
자장은 소위 ‘문수보살의 신탁’을 이용해서 ‘신라의 김씨 왕이 인도의 찰리종족(사카족, 석가모니 족속)의 왕이며, 동이족과는
다르다’(『삼국유사』인용)라는 이데올로기를 가공해내기에 이른다. 그래서 특히 역사적으로 후기 신라는 우리 역사에서 ‘불교가 가장 융성했던’
시기이며, 이는 우리 역사를 ‘東夷’의 역사에서 이탈시키려는 신라의 음모의 결과이다.
이런 신라계의 음모는 그 이후 우리 역사의
모든 단계에서 계속해서 일어난다. 고려 중기에 이르러 김부식은 민족정신을 복원하려 했던 묘청세력을 진압을 한 뒤, 신라의 역사왜곡 프로젝트를
다시 가동시켜 『삼국사기』를 저술했는데, 이 책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1. 고조선-부여의 직계인 대륙백제를 삭제한다. 2.
고구려와 고조선-부여의 고리를 끊어버린다. 3. 우리 역사를 신라로부터 비로소 시작한 것으로 왜곡한다. 4. 고구려 시조 주몽은
황제의 손자인 제곡 고신씨의 후손이며, 신라는 황제의 아들인 소호금천씨의 후손이라고 환부역조의 만행을 저지른다.
명백한 사실은
『삼국사기』를 우리의 제 1의 역사책으로 인정하는 한, 우리는 ‘절대로’ 지나의 동북공정을 막을 수 없다. 지나의 동북공정은 이론적으로 이
『삼국사기』를 전제로 진행된 것이기 때문이다. 사태가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민족주의’입네 하는 ‘이중재’를 필두로 하는 경상도 지역주의
역사가들은 여전히 ‘고신씨-주몽, 김씨-소호금천씨’의 고리를 주장하고 있으니, 참으로 통탄할 노릇이라 하겠다.
이후 근세조선이
들어서자마자, 우리 사대주의 세력들은 김부식의 역사왜곡조차 만족하지 못하고는 다른 왜곡을 자행하는데, 이번에는 아주 우리 민족의 정체성인
‘조선’을 ‘기자’와 연결을 시키기에 이른다. 즉 ‘조선’의 정체성은 ‘기자조선’이라는 것이다.
기자는 동이족 국가인 은나라
사람으로서 은나라가 화하족의 주나라에 의해 멸망되자, 주나라의 배은망덕과 명분없음을 비판하면서, 주의 문왕에게 고조선 단군의 가르침이자 총체적
治國의 道인 ‘홍범 9주’를 가르치고는 주문왕의 만류를 뿌리친 채 혈혈단신으로 고조선으로 귀순한 자이다. 그리고 후에 그 후손이 드디어 삼조선의
하나인 번조선의 단군이 되기에 이른다.
그런데 이런 기자의 역사를 지나는 ‘주문왕이 기자를 조선의 侯로 봉했다’라고 황당하게
왜곡을 했으며, 이후 ‘기자’와 ‘기자조선’은 오히려 우리 역사의 하나의 ‘아킬레스 건’으로 작용해왔었다.
우리 근세조선의 기득권
세력은 김부식의 역사왜곡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족사에서 도저히 간과할 수 없는 ‘고조선’의 존재를 어떻게든 자신들의 이익에 맞추어서 정리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기자’를 이용해서 우리 민족을 그 시원에서부터 지나와 한 혈족임을 주장하기에 이른 것이다.
결국, 현재 지나에서 진행하고 있는 ‘요하문명론’을 중심으로 하는 ‘동북공정’의 모든 이론적 토대는 “김부식의 『삼국사기』+우리
근세조선의 ‘기자조선론’”임이 분명히 드러난다. 결국, 우리 스스로 우리에게 덫을 놓은 것이며, 지나는 이를 잘 알고, 악용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 자신에 의한 우리 역사 파괴/왜곡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근세조선이 멸망하고, 일제 식민통치 시대가 오면서 이제는
‘단군’과 ‘고조선’은 ‘실증사학’과 ‘반도사관’이라는 근대적 이론틀에 의해서 ‘신화’가 되기에 이른다. 이는 김부식의 고조선 역사 말살작업과
근세조선의 ‘기자조선론’보다 더욱 악랄한 만행이다. 왜냐면, 이들이 제 아무리 고조선 역사를 부정하고, 혹은 기자를 이용해서, 아예 지나와
우리를 한 핏줄로 묶으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일반 민중의 ‘얼’에서는 여전히 ‘단군’과 ‘고조선’은 살아있었고 변함이 없었기에, 이런 우리
민족의 민족적 무의식을 ‘과학’을 명분으로 해서 ‘신화’로 욕보이려 한 것이기 때문이다.
‘과학과 미신’, ‘역사와 신화’라는
근대 서구적 제국주의적 ‘백색신화’는 우리 민족의 1만년의 얼을 가장 효과적으로 비난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식민사관
학자들은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흰둥이 신화’의 힘은 아직까지도 현재의 우리를 완벽하게 지배하고 있다. 현재
지나의 동북공정을 비판하는 좌파의 전략은 철저히 이 ‘백색신화’에 기초하고 있는데, 이들의 전략은 ‘역사’와 그 의미를 아예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즉 ‘역사 회의주의’이다. 그래서 이들 좌파의 동북공정 대응책을 살펴보면, ‘역사란 본질적으로 계급모순의 결과이며, 그것은 처음부터
가공된 신화에 불과하다.’로 압축될 수 있다. 이는 동북공정을 구실로 역사 자체를 폐기시키려는 술책에 불과하다.
한편, 현재
대한민국의 주류 종교로 성장한 개신교 세력 중의 일부는 ‘단군’과 ‘고조선’에 대해서 여전히 극렬한 증오심을 표현하고 있는가 하면, 아예
‘단군’을 유태인들의 부족신화에 불과한 『구약성경』에 나오는 ‘사라진 유태 12지파’ 중의 하나인 ‘단지파’와 연결(근거는 오직 단군과 단지파
모두 ‘단’자가 들어간다는 것뿐이다), 우리 민족과 민족사를 거지떼 민족인 유태민족과 그 역사에로 편입을 시키려는 코미디까지 저지르고 있다(바로
이런 ‘우매한 광기’의 한 결과가 최근에 일어난 탈레반 납치극임을 알아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의 주류세력들은 우리를
미국화시키는 공정을 자행하고 있다. 이런 우리 안의 ‘공정’은 이제껏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그 어떤 결정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한 계속될
것이며, 이런 공정이 진행되면 될수록 그만큼 우리의 얼은 그만큼 손상당하고 왜곡되고 죽어갈 것이다.
오늘 드디어 백두산 지역의
우리 자본으로 건설된 호텔들이 그 어떤 법적 근거 없이 지나 당국에 의해 강제철거 당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나는 우리의 백두산을 자기들의
‘창바이 산’으로 부르고, 거기서 2008년 올림픽의 성화를 채화하고, 후에 동계올림픽을 유치하려 하고 있다고 한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더
이상 논의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우리가 무사안일의 얼빠진 상태로 시간을 보낼 때, 실제적인 위험은 매순간 우리에게 가깝게
다가오며 우리의 생존을 위협할 정도로 악화되어 가고 있다. 우리의 지식인들과 학자들은 도대체 우리의 ‘현실’이 무엇인가를 잘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현재의 우리들에게는 감당해야하며 해결해야할 과제들이 너무나 많다.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절박한 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 자신에
의해 자행된, 거대하며 장구한 ‘자멸적 역사’를 치유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오직 이런 자멸적 역사를 우리 스스로 치유하는 한에서만 우리에게
참된 미래가 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참, 시대소리
시사문제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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