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생각
1961년 동복을 입었으니 가을쯤이겠지. 우리도 이제는 헤어질 때가 되었음을 알고 기념사진으로 남기자고 찍었겠다. 2022년이니 60년이 지난 일이다. 벌써 김건과 김수극 두 친구와는 이별했다. 장백현은 미국으로 간 지 오래되었는데 송별회를 한 기억도 없다.
김건이 하늘로 간 날이 2015년 6월이니 벌써 7주기가 다가오네. 경복고 입학하고는 건이와 도연이 셋이서 도봉산 암벽등반을 거의 매주 다녔다. 수극이는 이별한 날짜조차 모르고 넘어갔다. 인천제철 사장을 지낼 때 친구들이 몰려간 적이 있는데 그때 내가 못 간 것이 몹시 후회된다. 수극이는 대학 다닐 때까지만 해도 잘 만났었고 나보다 군대에 먼저 갔고 부산에서 군 생활을 했는데 부대장 집에서 아이 과외를 한다고 했었지. 그때 편지를 매주 보내다시피 했었는데. 결혼을 하나둘 하더니 나도 72년도에 결혼하고 1978년 중곡동으로 이사를 하면서 집들이할 때 부부 동반으로 모였었지. 우리 모임의 중심은 그래도 ROTC 장교 출신 도연이었지. 서울시청 뒤 코오롱 회사에서 근무했으니까.
내가 1991년 10월 대원고등학교에서 경복으로 전출되어갔다. 다음다음 해인가 배희병 교감 선생님이 오셨다. 36회였지. 어느 날 사석에서 장백현을 아느냐고 묻는다. 잘 안다고 했지. 자기가 매형이란다. 그런데 백현이가 고등학교 때 돈암동에 살았다. 성북천 가 가정집 문간방 둘을 누나와 둘이서 세 들어 살았다. 그 집 주인댁이 배 교감 집이었던 것이다. 물론 배 교감 부친은 경복고 교장을 지내셨다.
넓고도 좁은 세상 그렇게 얽히고 얽혀 서로 아는 사이가 된다.
아침에 세수하며 뺨에 무엇인가 꺼끌꺼끌한 것이 이제는 많이 없어졌지만 그래도 아직 남아있다. 비누 대신 샴푸를 사용한다. 비누를 사용하니 자꾸 가슴팍과 얼굴에서도 무엇인가 여드름 같은 것이 긁으면 나온다. 그래서 비누를 사용하지 않았더니 많이 없어졌다. 내가 봐도 사진 속 얼굴은 이제 하나도 남은 것이 없다.
시간이 많이 흘렀구나. ‘60년 세월, 그동안 나는 무엇을 했나!’ 옛 생각은 언제나 내 마음을 흔든다. 아직도 사진 속에서 나는 마냥 10대로서 두둥실 마음이 요동치는데 몸은 아무래도 힘이 달린다. 아내와 같이 걸어도 내가 처진다. 또 밖에서 식사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중에도 걸어서인지 속이 불편해진다.
골다공증이 있어 약을 1년 먹었는데도 효과가 없다고 해서 다시 운동을 강화했다.
400미터 축구장 달리기(4번 14분)와 줄넘기(130회 3번)를 한다.
그러고 보니 위 네 명의 집을 다 한 번씩은 갔었구나. 도연이 집은 방과 후에도 졸업하고도 참 많이 갔었다. 신교동 맹아학교 옆 이층집, 도연이 방에서 미국 방송 들으며 아는 팝송 나오면 얼마나 좋아했었는지 모른다. 나는 노래를 잘 못 부르지만 건이가 제일 잘 불렀다. ‘Top tune show!’가 있었는데 그땐가??? 도연이는 기타를 배워 잘 쳤다. 마포 집까지 갔었고 밥도 참 많이 해주셨는데……. 이제 신세를 갚을 수도 없네!
그래 이렇게 사진 한 장을 놓고 나 혼자 추억을 이야기하고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