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시 주요명소
수도리 전통마을
문수면 수도리는 아름다운 자연과 옛고가가 그대로 보존된 전통마을이다. 수도리는 이름 그대로 내성천이 마을의 3면을 감싸안고 흐르고 있으며, 그 가운데 섬처럼 떠있다. 안동 하회마을을 연상시키는 이 마을에는, 휘감아도는 강을 따라 은백색 백사장이 펼쳐져 있으며 맞은편에는 소나무, 사철나무 등이 숲을 이룬 나지막한 산들이 강을 감싸안고 이어진다.
또, 강 위로는 견실한 다리가 놓여져 마을과 마을을 잇고 있다. 수도리는 고택과 정자로 이루어진 전통 마을로 옛모습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그 중에 서도 해우당(도 민속자료 제 92호)과 만죽재(도 민속자료 제93호)는 옛 선비들의 단아한 격식이 느껴지는 고택이다. 이처럼 유유히 흐르는 강과 정겨운 자연 속에 고풍스러운 옛 집이 즐비한 수도리는 고향 을 찾는 편안한 마음으로 다녀오기에 좋은 곳이다.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 영주시 문화관광과 054-639-6062
죽령터널
죽령터널은 경북 영주와 충북 단양을 가로막고 있는 해발 689m의 죽령고개를 관통하는 연장 4.6km의 터널로서 철도를 제외한 도로터널로는 국내 최장 터널이다.
죽령터널의 개통으로 인해 경북 영주시 ~ 충북 단양 통행시간이 50분에서 10분으로 약 40분가량 단축되었으며, 중앙 내륙지역의 물류비용 감소 및 충북, 경북지역의 문화교류 촉진에 기여하였다. 고속도로 터널 최초로 TBM 굴착후 NATM 확대굴착을 실시한 터널로서 이 지역의 명물로 자리 잡고 있다.
충북 단양군 대강면 ~ 경북 영주시 풍기읍(고속국도55호선)
경상북도 최북단에 자리한 소백산단산포도마을은 원곡, 알남, 사암, 두레골, 웃질막 등 독특한 이름을 지닌 20여 개의 작은 마을들로 이루어져 있다. 소백산 동남쪽 자락을 따라 마을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으며, 맑은 단산호가 그야말로 한걸음에 달려갈 수 있는 거리에 있다.
일교차가 큰 고산지대라 당도가 높은 단산포도와 영주사과가 생산된다. 알싸한 향이 진하게 나는 인삼 역시 마을의 주요 특산물이다. 포도축제와 함께 포도따기, 사과따기체험 등 다양한 이벤트도 많다. 인근에 소백산국립공원과 부석사, 소수서원, 풍기온천 등 볼거리가 많다.
영주시 단산면 옥대리 김해수 019-543-5309, 남호득 010-9446-5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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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시 단산면 옥대리 김해수 019-543-5309, 남호득 010-9446-5539
백산서원
백산서원은 단산면 사천리 새내마을 안쪽에 있는 서원으로, 일제에 항거하여 분기한 죽림 서재승의 충절을 추모하는 서원이다. 경내에는 전사청, 명사루, 창의정, 동재, 월영당, 학구재, 서장각 등이 있고, 옆으로 99간 고택도 있다.
백산서원은 지방 유림과 달성서씨 문중의 발의로 1951년에 창의사(彰義祠)로 건립되었으며, 1973년에 백산서원으로 개칭하였다. 이 서원에는 을사조약(1905)이 체결되자 의병활동에 투신하여 순절한 충의공(忠義公) 죽림(竹林) 서재승(徐在承;1876∼1915)의 위패를 봉안 하고
있으며, 매년 음력 2월과 8월 하정일(下丁日)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1983년에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영주시 단산면 사천1리 백산서원
영주시청 문화관광과 054-639-6062
유석사
풍기 I.C를 빠져나와 희방사 방향으로 7km쯤 가다보면 착락리가 나왔다. 착락리 입구에 들어서면 유석사라는 표지가 보인다. 그곳을 따라 10여분쯤 올라가면 절을 만나게 된다. 특히, 절로 올라가는 길에는 사과나무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4~5월에는 순백의 사과꽃이 속세에서 묻은 때를 말끔히 씻어줄 정도다. 순백의 사과꽃들이 가을에는 탐스럽게 익으니 그 향이 온 천지를 향기롭게 만들어준다.
유석사(留石寺) 이름과 얽힌 이야기는 두 가지가 전해지고 있다. 신라 의상조사가 이 절 앞에 있던 느티나무 아래 반석에서 묵고 간 일이 있다고 하여 유석사(留石寺)라고 불리는 것과, 인근에 자리한 희방사를 희사한 경주의 호장(戶長) 유석(兪碩)이 두운조사와의 인연을 길이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절이라는 뜻으로 유석사(兪碩寺)라고 붙였졌다고도 한다. 현재는 전자의 뜻으로 절 이름이 불리고 있다.
유석사는 신라시대에 지어진 1000년 고찰로 소백산 남쪽자락에 영주와 풍기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오는 곳에 터를 잡고 있다. 천년의 세월동안 오직 불도를 닦는 스님들의 공덕이 산 아래 중생들에게 스며들지 않았을까 짐작할만 하다. 경주에 사는 유석(兪碩)이 400리나 되는 경북 북부지역까지 올라와 첩첩산중 소백산 자락에 절을 지었다. 두운조사와의 인연이 어떠하였기에 먼 땅까지 달려와 절을 짓고 수도를 하였을까?
신라의 호장 유석이 스님과의 인연을 내세까지 이어가기 위해 불심을 쌓기 위함이 중생이 부처님과의 인연으로 극락세계에 들고자한 그 마음과 같을 것이다. 불도를 닦는 스님들이 중생들을 내려다보며 그 고통을 들기위해 밤낮으로 불공을 드리는 것과 중생이 부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절을 우러러 봄이 이곳 소백산 유석사에 고스란히 묻어있다.
영주시 풍기읍 창락리 36
유석사 054-636-5178
순흥향교
순흥향교는 원래 순흥부 북쪽 금성에서 창건하였으나 조선 숙종44년(1718) 부 동쪽 위야동에 이건하였고, 영조 26년(1750) 현 위치로 재차 이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금성단에서 죽계 제월교를 건너 좌측길로 들어가 청다리 마을회관에서 다시 좌측길로 꺾어 조금 올라가면 배산임수한 산록에 남향하고 있다.
건물배치는 전면 영귀루를 지나면 동재와 주사가 명륜당 앞에 놓여 있고, 그뒤 별도의 일곽 전면에 내삼문을 두고 북쪽 높은 곳에 대성전이 자리잡고 있다. 대성전 앞쪽에는 안마당을 사이에 두고 동·서무가 대향하고 있다.
영주시 순흥면 청구1리 437 영주시 문화관광과 054-639-6062
홍유한 유적지
홍유한(영주 2년, 1727∼정조 9년,1785)은 자는 사량(士良), 아호는 농은. 창보의 아들, 효자 중명(重明)의 손자다. 어머니는 파평윤씨로 사생의 딸이다. 16세에 실학의 거장 성호 이익 문하에 나갔고, 그의 고족제자였다. 그로부터 20년을 탐구에 정진하여 학문을 이루었으며 동문인 순암 안정복, 소낭 윤동규, 정산 이병휴 등 학자들과 학문으로 사귀며, 출세의 뜻을 끊고 진리탐구에 전심했다. 영주 32년(1756) 시국이 불안(사도세자 문제)해지자 서울 집을 팔아 예산 여촌에 옮겨 살았다. 영조 51년(1775) 영남 땅으로 내려와 순흥 동쪽 구고에 터전을 잡으니 '배나무실'이다.
배나무실에 터전을 열자, 영남 여러 고을에서 그를 찾아오는 인사들이 매우 많았다. 그는 고문을 잘하고 시에 능했으나 영남으로 옮기고는 글짓기를 안 했다고 한다. 그래도 남긴 글이 많았는데 모두 없어지고 시문 약간이 전한다. 그의 유고에는 세로의 함난함을 경계하는 뜻으로 읊은 시들이 보인다. 그는 4절 16면이나 되는 긴 유훈을 자손에게 남겼다.
홍유한은 천주교 관계 서적을 읽고 깊이 교리를 이해 실천한 독실한 학자다. 그 집에 전하는 기록에는 천주교의 내용이 없다. 홍유한은 한국인 최초로 세례(1784년)를 받은 이숭훈(1756년, 영조 32 ∼ 1801년 순조 1)이나 한국 최초의 신부 사제 서품(1845년)을 받은 김대건(1821∼1846)보다도 앞서서 천주교의 역사상의 의미가 크다.
영주시 단산면 구구1리 풍기성당 장윤찬 054-639-6062
소수박물관
고대로부터 한국인의 정신세계를 지배한 민족의 정신문화, 유교! 소수박물관은 유교와 관련된 전통문화 유산을 체계화하고, 우리 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으로 유교의 이상을 간직한 소수서원을 통하여 민족 정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민족문화의 전
당이다.
이곳은 조선유학의 메카답게 서원과 관련한 귀중한 문화유산과 유학의 전말을 눈으로 체험해 볼 수 있는 국내 유일의 유교박물관이다. 소수박물관은 2004년 9월 22일 개관을 시작으로
영주의 귀중한 유물과 유적을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전시함으로써 지역문화의 활성화와 생동감 있는 역사 체험을 위한 공간으로 다가갈 것이다.
영주시 순흥면 내죽1리 152-8 (소수서원 내)
054-639-6259(관광안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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