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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은 환상들과 상징적인 언어로 가득 차 있어서 어떤 책인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인지에 대한 신학적 해설을 먼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패트릭 슈라이너는 “묵시 문헌은 인간의 사건들에 개입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식별하는 방법”이라고 하면서, “요한계시록은 과거, 현재, 미래에 관한 책이다. 왕이 아담과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약속된 하나님 나라의 약속을 어떻게 완성할 것인지 궁금해하는 모든 시대의 그리스도인을 격려하는 책이다.”라고 정의한다. 아래에 소개하는 패트릭 슈라이너의 글을 보면 요한계시록을 포함한 성경 전체에 흐르는 중심 주제를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요한계시록은 영원한 화염에 불타는 쓰러진 나무의 이야기를 전한다. 이 이미지는 승리의 나라와 대조되는 멸망한 나라에 대한 묵시 환상이다. 이와 비슷하게 영국의 시인 퍼시 셸리는 소네트 형식의 시 "오지만디아스"에서 한 여행자가 본 장면에 대해 썼다. 이 여행자는 사막에 묻혀 있는 부서진 신상을 보았다. 석상의 두상을 이렇게 묘사한다.
반쯤 묻힌, 부서진 얼굴이 누워 있다. 그것의 찌푸린
그리고 주름진 입술, 독선의 비웃음.
석상의 축대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
나의 이름은 오지만디아스, 왕들의 왕.
너 강한 자여 나의 업적을 보고 절망하라!(Percy Bysshe Shelley, The Works of Percy Bysshe Shelley in Verse and Prose, vol. 1 (London: Reeves & Turner, 1880), 376.)
오지만디아스는 고대 이집트 파라오 람세스 2세의 헬라어 이름이다. 셸리의 시는 모든 지도자와 제국이 위대함을 자랑하지만, 그런 허세와 달리 필연적으로 몰락하게 됨을 언급한다. 요한계시록 역시 인간 나라들의 오만과 "엄청난 무제한적이고 철저한 파멸”을 병치시킨다.(Shelley, The Works of Percy Bysshe Shelley in Verse and Prose, 376.) 하나님 나라에 맞서는 모든 나라는 부서지고 말 것이다. 한 나라만이 영원할 것이다.
정경은 천사장의 소리로 절정에 이른다.(또는 바커가 말하는 것처럼 “성경이 왕적 모티프로 시작하고(창 1-2장) 마치는(계 19-22장) 것은 의미심장하다." Kenneth L. Barker, “The Scope and Center of Old and New Testament Theology and Hope," in Dispensationalism, Israel and the Church: The Search for Definition (Grand Rapids, MI: Zondervan, 1992), 306.) 요한계시록은 바벨론의 도시와 하나님의 도시 간에 벌어지는 전쟁을 묘사한다. 하나님 나라는 창세기에 시작되었고 처음부터 도전에 직면했으나 요한계시록에서 완성에 이른다. 에덴동산에서 시작해 아브라함과 다윗을 거쳐 예수, 교회에까지 이르는 이야기가 어떻게 종결될 것인지 우리는 간절히 알기 원한다. 하나님 백성은 보호받을까? 백성의 왕이 귀환하실까? 백성의 도시들이 재건될까? 왕의 원수들은 어떻게 될까? 십자가에 죽고 승천하신 왕은 다시 나타나실까?
복음서에서 왕은 땅에 발을 딛고 있으나, 신약의 나머지 본문에서는 만사가 이상처럼 되지 않는 현실이 명백히 드러낸다. 밧모섬에서 요한이 받은 계시는 연속되는 환상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환상들은 일곱 교회에 전달되는 편지, 독특한 이야기, 음악적 시의 양식이다. 이 모든 환상은 묵시적인 특징이 있다. 다시 말해, 역사의 휘장을 걷어 올리고 계시한다. 요한이 묘사하는 장면은 용, 짐승, 피, 전갈, 전쟁 등으로 채워져 있다.
현대 독자들은 이런 형식의 저술에 혼란을 자주 느끼지만 "묵시 문헌의 목표는 예고가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실체들의 정체를 밝히고 드러내는 것이다.”(James K. A. Smith, Desiring the Kingdom: Worship, Worldview, and Cultural Formation (Grand Rapids, MI: Baker Academic, 2009), 92.) 이처럼 묵시 문헌은 무엇을 보는 방법이다. 즉 인간의 사건들에 개입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식별하는 방법이다. 이 사건들은 현재 일어날 뿐 아니라 모형론적으로 미래에 일어난다. 요한계시록은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책이다. 왕이 아담과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약속된 하나님 나라의 약속을 어떻게 완성할 것인지 궁금해하는 모든 시대의 그리스도인을 격려하는 책이다. 요한은 아담과 하와 때부터 인간의 씨와 뱀의 씨 사이에 벌어지는 이 전쟁의 초자연적 속성을 드러낸다.
또 다른 이미지를 사용해 보자. 땅을 채울 정도로 크게 자라는 나무는 도끼, 불, 바위의 반대를 만날 것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땅 전체를 채울 수 있게, 이 나무 주변에 보호용 울타리를 세우실 것을 보증하신다. 요한계시록은 하나님 나라와 관련해 세상의 창조 때 시작된 세 주제를 계속 사용하며, 하나님 나라의 목표가 이제 이루어지고 있음을 주장한다. 이를 위해 요한은 장면들의 배후에 있는 것을 ('점진적 반복'으로 불리는) 다양한 관점으로 드러낸다. 그러므로 우리도 요한처럼 설명을 반복하는 방식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밝히려 한다. 하나님과 어린양의 권능은 하나님 나라의 원수들에 대한 심판을 통해 나타난다. 왕의 백성은 방어와 보호 속에 산다. 백성이 왕과 함께 영원히 살 수 있게 하나님 나라의 장소는 청결해지고 준비된다. 이 일이 일어나기 전에 어린양이 용을 이겨야 한다(중략).
리처드 보컴이 언급하는 것처럼 "요한계시록에서 그리스도는 하나님 나라를 땅에 세우는 역할을 한다. 11장 15절의 표현대로(현재 악이 다스리는)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게 하는 것이다."(Richard Bauckham, The Theology of the Book of Revelation (Cambridge, UK: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3), 67.) 이런 일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요한계시록에서는 하나님과 어린양의 권능으로 가능하다. 권능은 원수들에 대한 승리를 통해, 어린양의 희생적 죽음에 의해 표현된다.(요한은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분으로 묘사하면서 시작한다(계 1:5).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분은 골로새서에서 바울이 예수에 대해 말한 표현을 암시하는 언어다. 예수는 또한 땅의 "임금들의 머리"시다. 이는 예수를 최고로 높은 왕, 즉 왕들의 왕으로 고백하는 표현이다. 이어서 요한은 하늘로 올려져 보좌, 그룹 천사들, 일곱 촛대를 본다(계 1:10-20). 요한은 자신이 있는 장소를 알았다. 그는 성전에 있었다. 성전은 높으신 왕의 집이다.) 하나님과 어린양의 권능은 (1) 성전 예배에 대한 요한의 환상들에, (2) 두루마리가 열릴 때, (3) 일곱 인과 나팔과 대접이 집행될 때, (4) 바벨론, 용, 땅의 왕들이 멸망할 때 입증된다.
요한계시록 4장에서 요한은 왕으로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본다(2절). 네 생명체는 왕 주위에서 그를 경배한다(8절). 네 생명체는 하나님이 만물의 창조자, 즉 왕이시므로 그를 경배한다(1절). 이곳은 하늘 법정이다. 하늘 법정은 땅의 나라들에 대한 심판을 집행할 것이다. 두루마리가 열릴 때 왕의 통치가 입증된다. 두루마리는 왕의 원수들을 심판하는 수단이다.
그러나 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 외에는 누구도 두루마리를 열 수 없다(5:5). 또한 유다 지파의 사자는 죽임당한 어린양이다(5:6). 희생적인 승리를 의미하는 새로운 상징은 사자와 어린양의 병치를 통해 강조된다. 로버트 마운스는 말한다. "요한은 탁월한 필치로 신약의 중심 주제인 희생을 통한 승리를 묘사한다."(Robert H. Mounce, The Book of Revelation (Grand Rapids, MI: Eerdmans, 1997, 『NICNT 요한계시록』, 부흥과개혁사 역간, 2019), 132.) 편지의 나머지 본문에서 사자의 이미지는 어린양을 통해 새롭게 정의된다. 승리는 희생을 통해 표현된다. 죽임당한 어린양은 지금 살아 있고 영원히 살아 있다. 보링의 주장처럼 "십자가 처형은……부활과 높여짐으로 대체되는 것이 아니다. 십자가 처형은 그리스도의 정체를 특징짓는 결정적 행위다.(M. Eugene Boring, Revelation. Interpretation (Louisville, KY: Westminster John Knox, 2011), 109.) 어린양은 희생을 통해 승리한다(3:21; 5:5; 17:14). 어린양을 따르는 자들도 마찬가지다(2:7, 11, 17, 26; 3:5, 12, 21; 12:11; 15:2; 21:7).
이린양이 인을 열자 땅에 파멸이 일어난다. 이는 역창조다. 창세기에 나타난 하나님의 창조 행위와 대조된다. 인간의 반역은 역창조를 일으킨다. 역창조는 우주의 창조자와 왕을 무시한 행위의 자연스러운 결과다. 하늘의 왕과 어린양은 온 인류, 특히 땅의 왕들에게 초점을 맞추어 진노를 쏟는다.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종과 자유인이 굴과 산들의 바위틈에 숨어 산들과 바위에게 말하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계 6:15-16).
누구도 땅을 청결하게 하는 어린양을 이길 수 없다. 요한계시록 12-14장은 하나님 나라에 속한 시민들과 사탄의 나라에 속한 시민들 간의 묵시적 전투를 확대해 묘사하는 부분이다. 이 부분은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시작하고(12:5) 교회 시대를 포함하며, 마귀(용)가 파멸과 전쟁의 더 깊은 원천임을 계시한다. 전쟁은 하늘에서 천사들과 용 사이에 벌어진다(12:7). 용은 패하고 땅으로 던져진다. 하늘에서 큰 소리가 들린다.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12:10). 하나님과의 그리스도의 권능이 하나님 나라를 오게 한다.
이 권능은 대접들이 쏟아지는 장면에서도 생생하게 묘사된다(15-16장), 짐승을 이긴 자들은 어린양의 노래를 부른다. 어린양의 위대한 행위, 어린양의 영광스러운 이름, 어린양의 의로운 행위를 찬송한다(15:3-4). 이 대접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으로 표현된다(16:1), 일곱 대접은 땅에 쏟아진다. 일곱 번째 대접이 쏟아질 때 "되었다"는 소리가 들린다(16:17).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는 완전히 된 것은 아니다. 요한이 여전히 두 개의 환상을 더 소개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바벨론의 몰락(17-19장)과 위대한 완성(21-22장)에 대한 환상이 남아 있다. 바벨론은 여자, 음녀로 의인화된다. 땅의 왕들은 음녀와 음행을 범한다(17:1-2). 음녀는 자신을 영화롭게 했으나 전능하신 주 하나님이 음녀를 심판하고 음녀와 음행을 범한 땅의 왕들을 심판할 것이다(18:18-19). 종국에는 큰 맷돌이 바벨론에 매달리고 음녀 바벨론은 바다의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거듭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라는 말씀이 선포된다(19:1). 요한계시록은 이 문구를 반복함으로써, 하나님 나라 왕의 권세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드러낸다. 승리는 희생과 심판을 통해 이루어진다.
패트릭 슈라이너, 강대훈 옮김, 『하나님 나라 성경신학』(부흥과개혁사, 2022), pp. 153~159.

첫댓글 좋은 내용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창세기에 시작되었고 처음부터 도전에 직면했으나 요한계시록에서 완성에 이른다": 이는 성경 각 책들의 순서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영적인 천국에서는 물론이고 지상의 나라들도 모두 점령을 하고 복속을 하는 영광의 요한계시록에 묘사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네. 좋은 댓글에 공감합니다. 요한계시록은 이 세상에 대한 마지막 심판을 확실히 보여주고, 성도들이 하나님과 영원히 거주하게 될 천국의 모습도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는 매우 귀한 책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높습니다.
네, 공감합니다 😄 22
주기도문의 마6:10(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이 부분적, 점진적이다가 급격히, 완잔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요한계시록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공감합니다!
요한계시록 (<영> Revelation. Book of)
신약의 맨 마지막 책. 신약 가운데서 묵시적인 양식과 언어로 기록된 유일한 책이기 때문에 '묵시록'이라고도 불리운다.
Ⅰ. 저작권
본서는 본서의 저자가 그리스도의 종이며 아시아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형제인 요한이라고 스스로 밝힌다. (계 1:1, 9).
초대 교회는 이 요한이 바로 사도 요한과 동일인이며, 또한 요한복음과 요한 1•2•3서의 저자라고 믿었다. 그러나 A.D. 3세기 초에 요한계시록과 나머지 책들 사이에 언어나 신학적 강조점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그 저자들이 서로 다르다는 주장이 등장하였다. A.D. 130 년경에 사망한 파피아스 역시 예수님과 관련이 있는 요한은 두 사람이라고 언급하였다(사도 요한과 장로 요한).
오늘날에 와서는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이론들 마다 각각 다른 옹호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과 요한복음과 요한 서신들을 기록했다는 전통적인 견해를 뒤엎을만한 확실한 증거는 나타나 있지 않다.
Ⅱ. 기원과 저작 연대
요한은 본서를 밧모섬에 유배되어 있을 때나(1:9) 혹은 유배에서 풀려난 후
에베소 근처에서 생활할 때 기록했음이 분명하다. 요한을 유배당하게 만든 대박해는 일반적으로 네로의 박해(A.D. 64-67년)가 아니면 도미티아누스의 박해(A.D. 95년)일 것으로 추정한다. 비록 네로 시대의 연대로 추정하는 학자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초대 교부들의 전승을 받아들여 도미티아누스시대의 연대가 더욱 타당하다고 보고 있다. 계 13:4에 언급된 황제 숭배는 네로 이후부터 보편화된 제도였다. 그리고 계 2-3장에 언급된 교회의 어려운 형편들도 도미티아누스 시대의 연대를 뒷받침 해준다.
Ⅲ. 언어
요한계시록의 문장이나 문학 형식은 세련되지 못한 편이며, 때로는 미숙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본서에 사용된 서투른 문법은 아마도 아람어적인 생각을 헬라어적인 문장으로 표현한 결과인 것 같다. 또한 본서에 나타난 어색한 언어들은, 요한이 상서롭지 않은 주제를 취급했을 뿐만 아니라 구약이나 구약의 표현방식을 많이 인용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 본서는 세 종류의 성경 기록양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첫 번째 양식은 편지 형태이다(1:4).
이 부분은 특정한 시기와 장소에 거주하던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내어졌다.
두 번째로는 계시 형태이다(1:1).
이 부분은 시기가 확정되지 않은 장래의 일과 역사의 종말에 일어날 대변동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세 번째로는 예언의 형태이다(1:3).
이 부분은 긴박한 경고들과 교회에 대한 격려로 이루어 졌다.
Ⅳ. 정경성
요한계시록은 동방 교회 보다 서방 교회에서 먼저 정경으로 받아들였다. A.D. 2세기경에 소아시아 지역에서 등장한 '알로기' 파(派)에서는 본서의 천년 왕국에 대한 약속을 부인하려 했다. 그 후 알렉산드리아의 디오니시우스와 가이사랴의 유세비우스도 본서의 사도적 저작권에 의문을 품었다. 그러나 4세기에 아타나시우스는 본서가 정경임을 확고하게 단언하였다. 본서는 서방 교회에서는 제3차 카르타고 회의에서(397년), 동방 교회에서는 제3차 콘스탄티노플 회의에서(680년) 정경으로 인정받았다. 여기에서 중요한 사실은, 이 회의들이 본래 정경이었던 요한계시록을 그때서야 비로소 정경으로 인식했을 뿐이지 본서를 정경으로 만들었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V. 내용
요한계시록은 서론(1장),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와 일련의 환상들(2-21장), 그리고 결어(22장)로 구성되어 있다.
서론에는 교회와 역사를 통치하시는 그리스도의 주권에 관한 계시가 나타나 있다. 그리고 소아시아 일곱 교회들에게 보내는 요한의 메시지에는(2-3장) 각 교회들의 강한 면과 약한 면이 상세히 실려 있으며, 각 교회들의 처지에 합당한 지도와 권면이 기록되어 있다. 4-20장에는 세상의 사악한 자들 위에 임할 하나님의 진노와, 교회의 신실한 자들 위에 베풀어질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나 있다. 4-5장은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받기를 거부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내릴 권세가 있는 유일한 분이시라고 기록되어 있다. 심판은 예수께서 두루마리의 일곱 인들을 떼심으로 시작되며(6장), 그 결과 땅과 땅위에 사는 사람들이 파멸과 죽음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인 맞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안전하게 보호를 받을 것이다(7장).
일곱 나팔들이 울려퍼지면(8-11장), 보다 더 심한 재앙이 임할 것이며, 하나님을 경외 하는 두 증인들의 죽음과 부활 사건이 잇따라 발생할 것이다. 그리고 난 후 하늘의 큰 이적, 곧 영계에서 벌어질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의 싸움이 계시되어 있다(12-15장).
진노의 일곱 대접들은(16장) 해와 달과 별들에 대하여 결정적인 파멸을
쏟아 부을 것이다. 특별히 이때 잔인하고 하나님을 모독하는 세상 정부를 상징하던 '바벨론'의 최후 멸망이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17-19장).
이와 같은 모든 과정이 사단에 대한 하나님의 승리와, '흰 보좌' 앞에서 있을 마지막 심판으로 종결될 것이다(20장).
21-22장은 교회의 영원한 본향인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하여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결어는(22:6-21) 지금까지 전파한 메시지의 진실성과 절박성을 강조하며 끝을 맺었다.
ⅤI. 해석 방법들
계시적인 언어는 그 의미가 모호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요한계시록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 방법들이 제시되어 왔다. 루터는 "요한계시록은 깊은 뜻을 담은 책이 아니다"라고 논평했다. 그러나 루터 이전이나 이후의 많은 사람들은 이 책 안에서 깊고 풍성한 진리들을 많이 발견하였다. 본서를 해석하는 여러 견해 가운데 하나가 역사학파들의 해석 방법이다. 이들은 계시록에 언급된 사건들이 교회사 속에서 순차적으로 성취되어 진다고 주장 한다. 예를 들면, 10:8-11에 언급된 두루마리의 인을 떼는 사건을 종교 개혁과 연관이 있다고 해석한다. 다음에는 미래학파들의 해석 방법이 있다.
이들은 일곱 교회에 보내는 일곱 편지들을 교회사 속에 나타난 일곱 세대로 해석한다. 예를 들면, 에베소 교회는 사도 시대 말기, 서머나 교회는 로마 박해 시대, 버가모 교회는 정교(政敎) 연합 시대, 두아디라 교회는 중세 시대, 사데는 종교 개혁 시대, 빌라델피아 교회는 종교 개혁 이후, 라오디게아 교회는 현대를 가리 킨다고 해석한다. 그리고 4:1이 종말 직전의 대 환란기(마 24:21)를 의미한다고 해석한다. 계 4-20장에 나타나 있는 대부분의 환상들은 연대기적인 순서에 따라 기록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교만에 대한 중복적인 묘사이며 어느 시대든지 겪을 수 있는 교회의 고난에 대한 묘사이다. 그리고 말세의 심판에 나타날 하나님의 주권도 맨 마지막 부분에 언급되어 있다. 본서에 대한 현대 학자들의 가장 일반적인 견해는, 본서에 나타난 계시가 A.D. 1세기의 상황 아래 주어졌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 언급된 계시들은 미래에 일어날 어떤 특정 사건들을 예언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계속 일어나는 인간과 하나님과의 갈등들과 마지막 때에 성취될 하나님의 승리를 묘사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한 해석 방법이라 하겠다.
모든 시대마다 요한계시록은 역사나 당시에 일어난 사건들의 의미를 추론하는데 있어서 근거 자료로 사용되어 왔다. 간혹 파괴적인 광신주의와 연관된 그럴듯한 이론들이 요한계시록으로부터 도출되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요한계시록이 모든 세대의 신자들, 특히 고난이나 순교를 당한 성도들에게 소망과 위안을 안겨 주었다. 또한 요한계시록은 세상과 교회 위에 미치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잘 가르쳐 주며, 마지막에 얻게될 성도의 승리를 확고하게 보증해 주고 있다. (→육백육십육)
※ 참고 문헌G.R. Beasley-Murray. The Book of Revelation, rev. ed. NCBC(1981); G.B. Caird, The Revelation of St. John the Divine. HNTC(1966); R.H. Charles,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Revelation of St. John, 2vols, ICC(1920)
출처: <GODpia성경사전: 아가페출판사>.
다시 잘 읽어 보겠습니다.
역개정 기준으로, 신약성경에서는 음녀가 대부분 요한계시록에 나오고 로마서에 1회 나옵니다.
로마서 7:3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녀라 그러나 만일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롭게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지라도 음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요한계시록 17:1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로 오라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가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요한계시록 17:5
그의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요한계시록 17:15
또 천사가 내게 말하되 네가 본 바 음녀가 앉아 있는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니라
요한계시록 17:16
네가 본 바 이 열 뿔과 짐승은 음녀를 미워하여 망하게 하고 벌거벗게 하고 그의 살을 먹고 불로 아주 사르리라
요한계시록 19:2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 음녀의 손에 갚으셨도다 하고
남녀 성도 모두를 미혹하는 악한 존재가 음녀로 상징화 된 것 같습니다.
개역개정 기준으로, 어린 양은 신구약을 통틀어 두루두루 257회 나옵니다. 성경은 어린 양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시거 완성하는 역사를 쓴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어린 양”(요 1:29)으로 불리며 (이는 사 53장과 유월절 양에서 유래된 명칭임이 분명하다),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벧전 1:19)으로, 심지어 우리를 위해 희생되신 “우리의 유월절 양”(our Passover)으로 호칭된다(고전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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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에는 모세의 제사가 더욱 탁월한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의 예표였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수많은 실례가 나타난다. 구약 제사들이 그리스도와 그 사역의 예표임을 보여주는 분명한 암시와, 심지어 명시적인 표현이 골 2:17에 나오는데, 본문에서 사도는 모세 율법의 전(全) 체계를 염두에 두고 있음이 분명한 것이다(히 9:23. 24 10:1; 13:11, 12). 몇몇 구절에서는 그리스도께서 구약의 제사가 그 드린 자들에게 미칠 효력을 좀 더 고차원적 의미에서 성취하셨으며, 그 방법은 유사하다고 가르치고 있다(고후 5:21; 갈 3:13; 요일 1:7). 그는 “하나님의 어린 양”(요 1:29)으로 불리며 (이는 사 53장과 유월절 양에서 유래된 명칭임이 분명하다),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벧전 1:19)으로,
심지어 우리를 위해 희생되신 “우리의 유월절 양”(our Passover)으로 호칭된다(고전 5:7). 그리고 모세의 제사는 예표적인 것이었으므로, 자연히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한 속죄 제사의 본질에 관해 어느 정도 조명해 준다. 그라프-벨하우젠 학파(Graf-Wellhausen school)의 영향 하에 있는 대단히 많은 학자들이 구약 제사의 형벌적 · 대속적 성격을 부인하고 있다(비록 그들 중 혹자는 비교적 구약 시대 후기에 이 같은 성격이 때때로 제사에 나타났음을 충분한 근거 제시 없이도 기꺼이 인정하고 있지만).
루이스 벌코프, 『벌코프 조직신학』, p.401.
벌코프의 설명을 올려 주셔서 어린 양이 더 잘 이해가 됩니다 😂
잘 읽었습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설명한 책인 것을 믿고 읽습니다.
저도 공감합니다.
성경은 인물로는 예수님 이야기, 주제로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힌 이야기라고 나름 소박한 정의를 내립니다.
좋아요.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