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를 제대한지 육십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군 복무 시절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수직적 명령에 따라 자신의 의지를 포기한 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특수생활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근무한 곳은 강원도 북부 김화지역이다. 휴전선 너머 이북의 산야가 훤히 보이는 곳이다. 그 지역에는 시월 중순부터 이듬해 사월까지 눈이 내렸다. 따뜻한 남쪽에서 살아온 체질이 혹한을 어떻게 버텼는지 지금도 생각하면 온몸이 오슬오슬하다.
12월 초에 입영하여 고된 기초 군사훈련을 마쳤다. 전후방으로 배치될 때, 익숙하지 못한 집단생활에 서로 격려하고 위로했던 전우들과 얼싸안고 울었다. 후방 부산에 있는 부대로 전출 명령을 받은 전우들과 전방 부대로 전출 명령을 받은 전우들 간의 희비가 극명했다. 나는 기왕 군 복무를 하려면 전방 전투부대에서 근무하고 싶었다.
전투사단 보충대에 도착하니 민가는 드물었고 군인 막사만 이곳저곳에 많았다. 적진지 가까운 곳에 도착한 것이 느껴졌다. 눈초리가 초롱초롱한 기간병의 지시에 따라 중대본부 앞에 늘어섰다.
“너희들은 적이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 늘 긴장한 자세로 지휘관의 명령에 복종한다. 알겠나.”
천둥 같은 기합으로 기를 확 꺾어버린다.
“기상.”
다음 날 아침, 고함과 호각 소리에 주섬주섬 옷을 입고 막사 밖으로 튀어 나갔다. 밤새 눈이 내려 시야가 하얗게 변했다. 막사 주변과 도로의 제설작업을 명령받았다. 네모진 판자에 자루를 붙여 만든 도구와 빗자루로 밀고 쓸었다. 얼핏 봐도 적설량이 40cm는 되어 보였다. 난생처음 보는 적설량이었다.
“제설도 전투다!”
당직 주번하사가 소리치며 작업을 독려했다. 허리 펼 겨를도 없이 눈을 쓸다 보니 귀를 덮은 방한모 양쪽에 입김이 하얗게 얼어붙어 있었다. 선임병에게 눈이 너무 많이 내렸다고 말하니 이 정도는 적설 준비운동이라며 씩 웃었다.
식사시간이 왔다. 보충대는 잠깐 거쳐 가는 곳이라 대우가 형편없다고 신병 훈련 때 들은 말 그대로였다. 밥 한 그릇, 콩나물국 한 그릇뿐 숟가락도 없었다. 주어진 시간 15분! 급하게 국에 밥을 말아 군번이 찍힌 메달로 입에 밀어 넣었다. 1주간 전방 근무 기초요령 훈련이다. 어찌나 다잡는지 휴식시간에 화장실에 갔다 오는 것도 버거웠다. 훈련 중에 목이 간질간질하여 목도리를 풀면 이가 드문드문 붙어 있어도 하나씩 떼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연병장 가에 있는 돌에 툭툭 털고 다시 맬 정도였다.
복무할 부대에 배속되어 신상명세서를 썼다. 인사과에 배속됐다. 선임병들이 친절하고 다정하게 대해줘 안도감을 느꼈다. 기상나팔 소리가 나면 참모 부서마다 두 명씩 제설작업 차출 명령이 하달됐다. 내무반 스무 명 중에서 군번이 제일 늦은 졸병이 나가라고 했다. 전날 전입한 졸병 둘이 옷을 주섬주섬 입고 나갔다.
백설이 만건곤(滿乾坤)이었다. 숨을 쉴 때마다 코털이 얼었다 녹았다 했다. 제설 도구가 보충 중대보다 많고 튼튼했다. 선임병들의 제설요령을 힐끗힐끗 보면서 도로 양쪽으로 눈을 밀어붙였다. 작전 차량과 보급 차량이 늘 왕래하기 때문에 도로의 제설이 우선이었다. 적설량이 많을 때는 도로 양쪽에 쌓인 눈이 허리 높이에 이르렀다. 겨울철 강원 북부지방 군대 생활에서는 제설작업이 가장 힘든 일 같다.
강화지역은 1년 중 6개월이 겨울이었다. 주민들의 김장법이 남쪽 지방과 다르다. 큰 장독을 깊이 땅에 묻고 절인 무와 배추에 멸치액젓 양념을 하지 않고 소고기를 넣는다. 혹한을 이겨내려면 지방질을 많이 섭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겨우내 부식은 김치뿐인 것 같았다. 부대 인근에 살던 화전민은 이른 봄에 산에 불을 지르고, 그 땅에 옥수수와 감자를 심어 주식으로 삼았다. 강원도 북부 주민의 척박한 삶이 지금은 격세지감으로 다가온다.
입고 있었던 두툼한 솜옷과 신발을 벗었다. 일반 군복을 입고 군화를 신고 나니, 훈련병 티를 벗은 국군의 모습으로 변했다. 소속부대로 전입하는 신병들을 예하 중대로 배치하는 업무를 기안하는 보조병으로 보직됐다. 겨울철에는 보직과 관계없이 제설에 동원됐다. 직속 상급자의 업무보조와 군대 예절도 군 복무의 한 분야이다. 상급자를 모셨던 것처럼 부모를 모셨다면 효자상을 받을 것이라는 말이 돌았다.
예하 부대 파편으로 초병이 부족할 때는 행정병도 초계근무를 지원해야 한다. 나도 초계근무 명을 받았다. 선임하사로부터 근무수칙을 하달받고 함께 배속된 전우와 함께 초계근무에 임했다. 건너편으로 보이는 북한 지역에서 알아듣지 못할 스피커 소리가 윙윙거렸다. 아군 진지에서는 성능 좋은 스피커에 여군 아나운서의 낭랑한 목소리가 북쪽 초소를 향해 퍼져나갔다. 북에서 윙윙거리는 소리는 대북 방송을 듣지 못하도록 방해 술책임을 알고 있었으나 마음은 으스스했다.
하얗게 눈 덮인 전방 경계지역, 산과 분지에 달빛이 밝았다. 윙윙거리는 북한 스피커 소리는 멈추지 않고 들려왔다. 피곤했던 탓인지 몸이 노글노글했다. 갑자기 전방 30~40m 거리에서 후, 뚝뚝 소리와 함께 검은 물체가 움직였다. 방아쇠 안전장치를 풀고 사격 자세를 취했으나 손이 덜덜 떨렸다. 숨을 죽여 목표물을 주시하고 눈을 크게 뜨고 보니 야생동물이었다. 자칫하면 야밤의 총소리로 부대 천체가 비상 근무 체제가 될 뻔했다. 지금도 생각하면 아찔하다.
군대는 국토방위의 임무 수행을 위해 지휘 차량과 작전 보급 차량이 쉴 새 없이 운행한다. 폭설에도 차량 운행에 지장이 없도록 제설은 군무의 필수이다. 행정병도 폭설에는 제설작업에 동원된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명예로운 기억으로 생생하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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