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힌남노가 끝나기 무섭게 지금은 난마돌이 다가오고 있다. 무사히 지나가길 바라며, 기도하는 지금. 오늘 나는 푸른 하늘, 파란 바닥 잘 묻었던 수월봉과 그곳을 걷는 지질 트레일에 대해 이야기 해 보려 한다. 이날 느꼈던 태풍의 피해. 빠르게 복귀되기를 바라는 마음과 그럼에도 여전히 아름다운 제주의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한다.
강셰프의 키친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대한로 558 / 오전 열 한시부터 오후 여덟 시까지. 브레이크 타임 오후 3시부터 오후 5시까지, 매주 일요일 휴무
여정의 시작은 '강셰프의 키친'에서 점심 식사를 함과 동시에 시작됐다. 이곳을 꼭 가보고 싶다는 지인의 부탁에 그러자고 떠난 강셰프의 키친. 결과적으로 이곳에서의 시작은 성공적이었다. 셰프의 이름을 걸고 하는 식당은 언제나 옳다 느끼는데, 이곳은 특히 더 그랬다. 강셰프의 키친은 여러 호텔에서 실력을 갈고닦은 셰프가 직접 운영하는 식당이었고, 신선하고도 건강할 것 같은 음식들을 판매하는 식당이었다. 메뉴는 15,000원 선으로 제주에서 생활하는 내겐 그리 싼 금액은 아니지만, 셰프의 명성과 여행자들에겐 그리 비싼 금액은 아닌듯했다. 하지만, 맛을 보면 제주에 사는 나조차도 이 금액이면 괜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전복 돌솥비빔밥과 몸국, 간장게장 멍게비빔밥과 몸국 정식이 크게 당겼던 나는 어떤 걸 먹을까 고민하다 후자인 간장게장 멍게비빔밥과 몸국 정식을 주문했고, 그에 곁들여 먹을 흑돼지 탕수육을 주문했다. 정갈하게 나오는 밑반찬. 다시 리필이 어려우니 골고루 먹으라 적혀있는 안내에 나는 헛웃음을 쳤지만, 그럴만했다. 밑반찬만으로도 밥 한 공기를 뚝딱할 정도였고, 손이 안 가는 반찬이 없었다. 그렇게 식당을 나올 때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먹고 왔다. 밑반찬이 차려진 뒤, 곧바로 식사가 나왔다. 제주 전통 음식인 몸국과 비빔밥. 나는 먼저 몸국에 손을 댔다. 보통의 몸국이라면 맑은 국물에 모자반만 들어간 경우가 많은데 여기는 걸쭉한 국물에 고기가 들어 있었다. 가끔 이런 몸국 집들이 있는데, 나는 맑은 국보다 이렇게 고기가 들어간 몸국이 더 좋다. 배가 든든해지는 기분이 드니까. 비빔밥은 재료를 아끼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 신선한 야채들과 살만 발라낸 게장과 멍게 소스. 잘 버무려 먹은 비빔밥은 메뉴를 잘 시켰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또 흑돼지 탕수육은 비빔밥과 잘 어울렸다. 무거움과 가벼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조화. 부드러운 탕수육은 옳았고, 비빔밥은 더 옳았다.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오후 다섯 시부터 여덟시까지 오마카세 식사가 가능하다는데 다음은 오마카세 식사도 한 번 노려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식사였다.
수월봉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고산리
해발 77m의 낮은 높이를 가진 수월봉은 제주 서부지역의 조망봉으로, 정상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가히 아름답다. 특히, 깎아지르는듯한 수월봉의 해안절벽은 동쪽으로 2km까지 이어져 그 멋과 자연의 위대함을 느끼게 한다. 이 해안절벽은 '엉알'이라 불리고, 벼랑 곳곳에는 샘물이 솟아오르는 '녹고물'이 있다. 약수로 유명한 녹고물은 현재 마시지는 않는듯 하다. 수월봉 아래쪽에는 해안선을 따라 걸을 수 있는 지질 트레일이 있다. 해안절벽을 따라 화산 퇴적물이 쌓여 있는 모습은 실로 놀라울 수밖에 없다. 베이커리 중 페이스트리를 닮은 지질 모양은 이곳을 여행하는 재미를 선물한다.
수월봉 정상에는 기우제를 지내던 육각정 '수월정'이 있고, 수월정 옆으로는 고산기상대가 우뚝 서 있다. 우리나라 남서해안 최서단에 있는 기상대로서 거의 모든 기상 관측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이곳 5층엔 일반인에게 오픈되는 전망대가 있다.
수월봉을 저녁에 방문했다면, 당신은 특별하게 하루를 마무리하게 될 것이다. 차귀도로 떨어지는 낙조는 일몰이 아름다운 제주의 여러 여행지 중에서도 가장 으뜸으로 손꼽히니까. 만약 수월봉을 방문한다면, 느지막한 시간에 방문해 전기 자전거를 타고, 낙조를 바라보는 게 가장 옳은 방법일 것이다.
아쉽게도 수월봉을 방문한 시간은 이른 오후였다. 점심 식사를 하고, 정상까지 차를 끌고 간 나는 파란 바다와 푸른 하늘을 눈으로 담았다. 낙조만큼이나 아름다웠던 수월봉의 풍경. 뒤로 보이는 한라산의 모습과 엉알길과 지질 트레일의 모습은 그 어떤 풍경보다 아름다웠다.
나는 수월봉에서 내려와 지질 트레일을 걸어보기로 했다. 하지만, 태풍 힌남노의 영향 때문에 지질 트레일 방향은 출입이 완전히 금지되어 있었다. 나는 아쉬운 마음에 길이 잘 닦인 엉알길 방향으로 걸어보기로 했다. 지질 트레일만큼이나 아름다웠던 엉알길. 수월봉에서 바라보는 파란색의 제주를 더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으매 감사하게 됐다. 천천히 걸으며 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의 시원함을 느꼈고, 귀에 퍼지는 파도 소리에 상쾌한 감정을 느꼈다. 하지만, 이 모든 감정은 불과 10분 만에 끝나게 됐다. 조금은 놀랄 수밖에 없는 풍경을 만나며.
제주시에 살고 있는 나는 태풍 힌남노가 이렇게 큰 피해를 준 지 몰랐다. 체감이 잘되지 않았던 힌남노. 하지만 이곳 엉알길을 걸으며 그 피해를 확실하게 체감할 수 있었다. 원래라면 잘 닦인 길을 따라 반대편 주차장이 있는 곳까지 걸어야 했는데, 10분 정도 걸을 즘, 길이 조금씩 금이 가져 있는 걸 느꼈고, 그곳에서 조금 더 걸었을 때 완전히 끊겨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힌남노로 인해 파괴된 엉알길. 가슴이 미어지는 풍경에 속이 많이 상했다. 하지만, 잘 복구할 거라 믿었고, 분명 다시 멋진 모습으로 반길 거라 생각했다. 아쉽게도 끝까지 걷지 못하고 끝난 여정. 태풍으로 인한 복구 작업이 잘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여정을 마쳤다.
북상하는 태풍 '난마돌'. 이번만큼은 피해가 크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