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밭서만 보여주는 진짜 ‘묵사발’맛
대전은 우리나라의 교통 요충지다. 동남쪽으로 경부선이 뻗어 있고, 서남쪽으로 호남선이 달린다. 북쪽으론 수도 서울로 이어진다.
축구로 설명한다면 최전방 공격수와 후방의 수비수를 이어주는 링커나 다름없다. 훌륭한 링커는 경기의 흐름을 정확하게 읽고 공격수와 수비수를 이끌어가는 핵심이다. 그렇지만 골게터의 그늘에 가려 자신은 드러나지 않는다.
대전이 바로 그렇다. 사통팔달의 지역적 특성 때문에 변변한 향토음식이 없다.
대신 역을 중심으로 한 스피드 요리나 뜨내기 음식이 발전했다. 그렇다고 워낙 흔한 것이라 향토 전통음식이라고 내세우기도 부끄러운 것이 많다.
대전보건대학 전통조리과 김상보 교수는 "수도 서울 다음으로 한반도의 모든 음식을 다양하게 맛볼 수 있는 곳이 바로 대전"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한국전 때 월남한 피란민까지 가세해 북쪽 음식의 특성도 가미됐다.
몇년 전부터 대전의 먹거리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6미3주(六味三酒)´란 말을 자주 듣게 된다. 한자의 뜻대로 여섯가지 맛과 세가지 술인데 대전시와 시민들이 월드컵을 계기로 ´무특성 대전 음식´의 오명을 벗기 위해 이 지역 대표음식으로 키우고 있는 것들이다.
대전시청 보건위생과 이계성 사무관은 "대전 시민과 대전을 찾는 사람들이 즐겨먹는 음식으로 대전에서 전래됐거나 다른 곳보다 음식 맛이 독특하고 뛰어난 것들"이라고 설명했다. 6미는 도토리묵.설렁탕.삼계탕.돌솥밥.숯골냉면.민물매운탕이며, 3주는 농주.국화주.참오미자주다.
▶도토리묵=´묵채´´묵사발´´묵국수´로 불리는 도토리묵 요리. 구즉동의 한 음식점에서 시작해 마을 전체가 묵마을로 변해 대전의 대표적인 먹거리가 됐다.
▶설렁탕=대전역 주변에서 설렁탕을 전문으로 취급해온 음식점이 명성을 얻으면서 대전 시민에게 친숙한 음식이 됐다. 사골을 이틀 동안 고아 낸 육수의 깊고 고소한 맛이 특색이다.
▶삼계탕=대전 인근 금산의 인삼과 논산시 연산면의 닭을 이용해 일찍부터 다른 지역 삼계탕과 차별되는 보양식으로 발전했다. 동의보감을 토대로 인삼.대추.녹각을 다린 물에 닭고기를 삶아내는 곳도 있다.
▶돌솥밥=쌀.조.콩.수수 등 잡곡과 은행.당근.밤 등을 넣고 1인용 돌솥에 지은 밥. 충청지역의 야채로 만든 나물 반찬이 20여종이나 함께 나온다.
▶숯골냉면=50여년 동안 가업을 잇고 있는 평양냉면. 부드러운 메밀 면에 닭 곤 물을 섞은 육수 맛으로 대전 시민의 입을 사로 잡았다.
▶민물매운탕=금강 쏘가리는 조선시대 임금에게 진상하던 특산품. 금강 중류인 신탄진 지역은 예부터 민물고기 요리가 발달했다. 대청댐 주변에 20여개의 업소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농주=구즉마을 농가에서 빚어 마시던 가양주(家釀酒)로 누룩 냄새가 적고 뒤끝이 깨끗한 것이 특징.
▶국화주=은진 송씨가에서 제사용으로 쓰던 것을 재현해 명맥을 잇고 있다. 알콜 함량 17%의 고급술로 국화향이 그윽하다.
▶참오미자주=대청댐이 있는 주산동의 오미자로 만든 보양주. 붉은 색깔이 입맛을 다시게 한다고.
사진=오종택 기자
북대전 IC 옆 묵마을
대전의 대표적인 먹거리를 꼽으라면 구즉마을의 도토리묵 외에 대안이 없다.
호남고속도로 북대전 인터체인지에서 신탄진을 향하는 변두리 마을이 온통 묵집이다. ´할머니 묵집´의 강태분 할머니가 1980년대 초 생계수단으로 시작한 묵장사가 동네를 바꿔 놓은 것이다.
국산 도토리로 쑨 묵을 도톰하게 채쳐서 따뜻한 육수에 말아낸다. 멸치와 다시마 등으로 만든 육수와 함께 잘게 썬 김치와 김을 고명으로 얹어 먹는다. 삭힌 풋고추로 간을 해 먹기도 한다.
도토리묵 특유의 질감과 쌉싸래한 맛이 국물과 어우러져 단출하면서도 투박한 시골음식의 특색이 고스란히 나타난다.
집집마다 겉 모양새는 비슷한데 ´국물´이 조금씩 다른 게 특징이다. ´할머니 묵집´은 된장과 조선간장 등을 넣어 맛이 구수하다. 값은 대부분 3천원.
이곳의 도토리묵은 경부.호남고속도로를 달리던 운전자들이 중간에 북대전 인터체인지(묵마을까지 2분 거리)로 살짝 나왔다가 먹고 갈 정도로 인기다. 묵 외에 공통적으로 밀가루 부침개(2천원)와 보리밥(3천원)도 취급한다.
대전서 가볼만한 집
▶숯골원냉면(042-861-3287)=메밀 냄새가 진하게 배어있는 평양냉면 전문점이다. 메밀로 면을 뽑아 질기지 않고 부드럽다. 종업원에게 가위를 찾으면 "그냥 드셔도 된다"고 할 정도다. 면 육수도 쇠고기를 거부하고 ´꿩 대신 닭´이라고 닭 국물에 동치미 국물을 섞어 만들어 한결 감미롭다.
고명도 쇠고기 편육 대신 닭고기가 오른다. 메밀 삶은 물이 육수 대신 나온다. 평양에서 1.4후퇴 때 월남한 주인이 4대째 가업을 잇는 곳으로 평양냉면의 옛맛을 기억하고 있는 손님들이 줄을 잇는다. 물냉면은 4천5백원, 비빔냉면은 5천원.
▶무지개회관(042-488-5600)=돌솥밥(7천원)하나로 대전에서 명성이 자자한 곳이다. 돌솥밥에 비빔 반찬이 15가지나 나온다. 대전 인근 노지에서 채취한 산나물에 각종 야채가 한상 딱 부러진다. 육류로 등장하는 것은 계란 노른자 한가지뿐.
뜨거운 돌솥에 원하는 반찬을 얹고 그대로 비벼 먹는다. 다 먹은 뒤에는 누룽지가 붙은 솥에 된장국을 부으면 누룽지 된장국이 된다. 비빔밥 맛이 남아 있는 묘한 맛이다. 후식으로 나오는 식혜는 고집스럽게 직접 만들어 내는데 생강의 매콤함이 반갑다.
▶우가촌(042-489-8955)=´어머니가 차려준 밥상(1만원)´이란 점심메뉴는 정말 어머니가 차려주신 밥상답다. 정성스럽게 바글바글 끓인 된장찌개와 김치찌개에 두툼한 갈치구이와 날씬한 조기구이도 밥상에 오른다.
깻잎.마늘.무 장아찌 등 손수 담근 장아찌와 젓갈에 밑반찬만 20여가지나 된다. 한가지 한가지 맛보기도 버겁다. 저녁엔 갈비찜이 추가되면서 1만5천원을 받는다. 꽃게로 만든 1만5천원짜리 간장게장도 인기 메뉴.
▶송죽회관(042-256-8170)=은행동 흥국생명 옆 골목에 있는 3천5백원짜리 백반집. 값에 비해 실내와 주방 분위기가 상당히 깔끔한 편이다.
꽁치조림.김무침.오이김치 등 반찬이 15가지. 특히 돼지고기 대신 오뎅을 큼직하게 썰어 넣은 김치찌개 맛이 시원하다. 특히 식전 요깃거리나 안주로 판매하는 굴전(대 1만원)이 압권이다. 다른 식당의 파전과 비슷하게 파.풋고추에 굴.새우.오징어 등을 넣어 만들었는데 두께가 3㎝나 된다. 어른 네명이 술한잔에 식사까지 마쳐도 3만원이면 족하다.
▶왕관식당(042-672-7520)=´영업시간은 낮 12시부터 오후 2시. 매주 일요일마다 쉽니다. ´무척 당당하게 영업하는데 식사 메뉴라곤 콩나물밥뿐.
콩나물밥은 밥을 지을 때 콩나물을 넣어 나중에 양념 간장에 비벼 먹는 밥이다. 냉동 쇠고기로 만든 육회(대 8천원, 소 5천원)를 시켜 육회 콩나물 비빔밥으로 만들어 먹는 사람도 많다. 삼성동 인쇄 골목안에 있는 2층의 작은 간판을 단 집이지만 시원한 콩나물 냄새에 코 끝을 세우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살림(042-486-1288)=대전시청 근처에 있는 채식 뷔페 레스토랑이다. 브로콜리.파프리카.야콘 등 샐러드 바에 있는 채소는 모두 유기 농산물이란다. 양송이 탕수육, 밀가루 불고기, 콩으로 만든 햄 등 육류 요리를 흉내낸 먹거리도 많다.
음식은 모두 50여가지로 값은 어른(중학생 이상)은 1만원, 초등생은 6천원. 레스토랑 입구에 유기 농산물 판매코너도 있다.
▶진로집(042-226-0914)=´두루치기´라는 일반인에게 다소 생소한 음식을 만날 수 있는 곳. 두루치기는 원래 조개.낙지 등을 데쳐 양념한 음식인데 볶음요리와 흡사하다.
이 집은 두부에 고춧가루를 위시한 갖은 양념으로 만들어낸 두부 두루치기가 주특기. 빨간 매운 맛에 두부의 하얀 부드러움이 숨어 있다. 술안주로 좋지만 국수를 넣고 비벼 먹으면 끼니를 대신할 수도 있다. 2대를 잇는 허름한 실내가 편하다. 두부 두루치기 4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