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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경회 5일차 | 성소와 재림 전 조사 심판
어떤 부분은 뺐고 어떤 부분은 더 하여서 말씀을 살폈습니다.
오늘 저는 성소와 재림 전 조사 심판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겠습니다.
이 부분을 한 번도 안 들어본 분도 계시겠고요 이 자리는 여러 번 들어본 분도 계시지만 마음의 부담을 가진 분도 계실 것 같습니다.
제가 이번 한 주에 여섯 번 말씀을 전하는데 여섯 번 중에서 오늘 이 말씀이 제일 중요한 말씀입니다.
악천우 속에서 한 전투함이 해상에서 기동 훈련을 하고 있었습니다.
완전히 어둠이 깔렸는데 배의 앞쪽에서 근무하던 한 감시병이 다음과 같은 말로 함장에게 보고를 합니다.
우현 이물 배 앞쪽 오른편에 빛이 보입니다. 함장이 다시 묻으면 그 사람에게 감시병에게 대답합니다.
물었습니다. 불빛이 가만히 있는가 움직이는가?
그때 감시병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소리쳤습니다.
그것은 이 전투함이 가고 있는 진행 방향과 충돌할 수 있는 위험한 코스에 앞에 뭔가 있다는 의미였습니다.
함장은 신호수에게 소리를 칩니다. 저쪽 선장에게 충돌 코스에 들어와 있다고 신호를 보내고 항로를 20도 바꾸라고 지시를 하라고 말합니다.
그랬더니 신호가 되돌아옵니다. 당신들이 항로를 20도 바꾸시오.
그러자 선장이 무전기를 들고 나는 함장이다. 당신이 20도를 움직여라 저쪽에서 반응이 옵니다.
저는 2등 항해사입니다. 함장님이 20도 바꾸시는 게 좋겠습니다.
순간 함정이 화가 납니다. 여기는 전투함이다 당장 진로를 20도 변경하라 그쪽에서 반짝 빛이 나면서 응답이 들어옵니다.
여기는 등대입니다. 거기가 어디라고요? 등대라고요?
누가 항로를 바꿔야 합니까? 전투함 아니고 항공모함이어도 등대 앞에서는 비켜가야 합니다.
부딪힐 수는 없지요. 그러면 등대는 고정이 돼 있습니다.
그러나 전투함이나 항공모함은 움직이지요. 여러분 세상이 잘 변하는 거 같아요. 잘 안 변하는 거 같아요?
우리는 자꾸 살면서 다른 사람들을 바꾸라 그럽니다.
정작 자기가 바뀌어야 되는데 자기는 고정을 시켜 놓고 자기는 변화될 마음이 없고 상대방만 자꾸 바꾸라고 그럽니다.
성경을 보다가도 하나님의 말씀이 나오면 내 생각과 맞지 않는 부분이 나오면 내 생각을 바꾸어서 하나님의 말씀에 맞추어야 되는데 그 성경의 내용이 틀렸다라고 주장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틀렸다고 말해서 안 믿는 사람도 있지만 설사 그것이 있다고 그래도 무시하고 삽니다.
확정 편향이라고 그러죠. 다른 말로 표현하면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이 기록되어 있어도 자기 취향에 맞고 내 욕망에 맞고 내 어떤 이기적인 어떤 그런 것들을 잘 이렇게 가지고 있어도 문제가 없는 말씀만 보고 그것들에 대해서 건드리면 그 말씀은 없는 것처럼 대하는 것이 많은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한 교리들도 그렇습니다. 조사 심판 교리를 반대하는 주장들이 많습니다.
우리 재림교회의 안팎으로 이 문제는
뭐 엄청 오랜 기간 동안 도전을 받아 왔습니다. 조사 심판 교리 조사 심판이라는 말은 성경에 없어요.
단어는. 그런데 여러분 단어가 없다고 해서 성경적인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에요.
삼위 일체라는 말이 용어는 성경에 안 나옵니다. 하지만 삼위일체는 분명하게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진리예요.
조사 심판 교리를 반대하는 자들의 주장을 모아보면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이루신 속죄와는 조화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뭘 그 다 이루었는데 또 뭔가를 해서 하냐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구원과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신자가 계속 두려움과 죄책감 어 살게 한다는 것이죠 살아야 한다는 것이죠.
신자가 구원의 기쁨을 누리며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적어도 이 3번 4번은 조사 심판 때문이 아니고 신자가 살면서 두려움과 죄책감 속에서 살고 구원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사는 것은 죄와 타협하기 때문이에요.
이 땅에 살면서 적당하게 죄와 타협하고 죄책감 가지고 또 후회하고 여러분 그렇게 살아서 죄책감과 두려움 속에 살고 구원의 기쁨이 없는 것이지 조사 심판이 있기 때문이 아니에요.
많은 분들이 오해합니다. 자 오늘 저는 이 부분을 굉장히 좀 어 깊게 이야기를 다루겠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허용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자 그럼 왜 조사를 하나?
여러분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조사하는 내용이 굉장히 많이 나옵니다.
창세기부터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이 명하신 과일을 먹고 나서 벌거 벗은 것을 알게 되었을 때 하나님이 아담을 찾아옵니다.
내가 어디 있느냐 누가 너의 벗었음을 내게 알렸느냐 내가 내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내가 먹었느냐 조사하러 온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몰라서 조사합니까? 알고서 하는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이 모르는 건 없어요. 여러분 하나님이 조사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그건 착각입니다.
하나님 다 알고 계셔요
가인이 아벨을 죽이고 난 다음에 하나님이 가인에게 나타납니다.
내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몰라서 묻는 질문이 아니에요.
내가 무엇을 하였느냐 내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한대.
창세기 11장에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이 거대한 탑을 세웠습니다.
이름하여 바벨탑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 그랬습니다.
조사하러 오셨어요 몰라서 내려오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소도문과 고모라가 부패하고 타락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 도성을 멸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지즘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
하늘에 계셨으면 소돔에서 일어나고 있는 죄악의 상황을 모르셨을까요?
다 아셨어요. 근데 왜 내려와서 보고 알려 하셨을까요?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에 그분이 특별히 행하실 때 특별히 심판의 사역을 집행하실 때에는 반드시 그 앞에 조사하는 과정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심판을 하실 때에는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조사하는 과정을 행하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믿도 끝도 없이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불합리하고 비합리적인 상태에서 심판을 진행하지 않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한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에도요 심판 다른 말로 하면 재판이죠 세상의 재판도 조사하지 않고 재판하는 경우는 없어요.
옛날에 공산당이나 인민재판 식으로 그렇게 무자비하게 사람들을 죽이고 가두고 하는 그런 일이 있었지.
적어도 요즘 시대에는 독재 국가가 아닌 이상 재판을 한다면 조사를 합니다.
여러분 적어도 재판에는 세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진실을 밝히고 무죄한 자에게 승리를 안겨주고 악한 자를 멸하는 것 이게 재판의 목적이에요.
그렇죠? 진실이 드러나야 돼. 그리고 죄 없는 사람은 자유가 있어야 되고 옹호되어야 하고 죄 있고 잘못 행한 사람은 벌을 받아야 돼요.
그게 재판을 하는 목적이에요.
그런데 하나님의 심판에도 이 세 가지는 작용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에는 진실이 밝혀져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품성이 온 우주 앞에 드러나야 합니다.
그리고 의는 옹호되어야 하고 악인들은 심판을 받는 것이지요.
여러분 올해 1월 6일에 24년여 만에 재심을 통해서 무죄를 선고받은 김신애라고 하는 한 여인의 기사가 보도되었습니다.
이 여인은 워낙 유명한 사람이어서 계속해서 보도가 되었습니다.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받습니다. 그리고 24년여를 복역합니다.
2000년 3월에 아버지에게 수면제가 든 술을 마시게 하고 살해한 뒤에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무기징역에 처합니다.
그리고 검찰이 수사를 할 자기가 아버지를 죽였다고 자백을 합니다.
근데 그것은 허위 자백이었다고 후에 번복을 합니다.
왜냐하면 아버지로부터 자기 여동생과 자기가 굉장히 시달렸어요.
성폭행도 당하고
그래서 아버지를 충분히 죽일 만한 이유가 되었었고 아버지 이름으로 거액의 보험금을 들었어요.
그리고 자기도 자백을 했어요. 근데 자백한 이유가 고모부로부터 네 동생이 아버지를 죽인 것 같다 그 말을 듣고 자기가 대신 뒤집어 쓰기 위해서 거짓 자백을 했다고 그럽니다.
그런데 법원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무기징역에 처합니다.
그때부터 계속 자기는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대 그렇게 해서 계속 주장하다가 이천십오 년에 재심이 허락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0년 만에 무죄 석방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만약에 이렇게 정말로 죄를 짓지 않는 사람에게 재판이 다시 진행된다는 것은 복음이에요 아니에요 복음이에요 그렇죠?
죄 지은 사람에게 재판을 있다 심판이 있다는 것은 굉장히 두려운 것이지만 죄 없는 사람에게는 재판이 있다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축복인 것이지요.
어쨌든 간에 진실이 밝혀져야 하는 것이 재판의 목적입니다.
보셔요. 성경 창세기 22장에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어마어마한 시험을 허락합니다.
내 아들을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가서 번제로 들이라.
이때 아브라함의 나이가 백이십 아들 이삭의 나이가 스무 살이었습니다.
사흘 동안을 고민하고 권해하다가 이 명령에 순종합니다.
그리고 모리아 산에서 재단을 쌓고 칼로 아들을 죽이려고 할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내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내가 내 아들 내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내가 하나님을 경의하는 줄을 아노라.
여러분 한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죽이려고 다네에서 칼을 뽑아들였을 이때 하나님께서는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의하는 줄을 안다.
그럼 그 전에는 몰랐을까요? 여러분 하나님은 모르는 거 없어요.
우리는 야 이제야
네가 나를 좋아하는 줄 알겠다. 이제야 너 마음의 진심을 내가 알겠다.
우리는 그럴 수 있어요. 왜? 속 마음을 모르니까.
근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어떻게 결정할 것도 다 아셔요.
그러니까 이거는 하나님 본인에게 해당되는 말이 아니에요.
이거는 누군가 이 상황이 되면서 아브라함이 정말로 하나님을 향하여 어떤 마음을 가졌는지를 알게 될 존재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예요.
하나님 본인이 아니고 어느 다른 대상이 좀 더 깊이 들어가 보죠.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것은 굉장한 시험인데 이유가 있습니다.
여기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의 부족을 나타냈기 때문에 아브라함이 굉장히 헌신하고 순종했던 적도 많았지만 여러 번 하나님께 불순종할 때가 있었습니다.
믿음의 부족을 나타낼 때가 있었습니다. 애굽에 가가지고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기도 하고
하나님의 아들을 주는데 이게 왜 잘 안 이루어지는가 해서 허가를 통해서 이스라엘도 낳고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랬기 때문에 사탄은 하나님과 천사들 앞에 그가 언약의 조건을 따르지 못하였다고 비난하고 그래서 하나님의 복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그를 뭐 하였다?
고소하였습니다. 사탄이 아브라함을 누구 앞에?
하나님 앞에 하나님께서는 온 하늘 앞에서 이 노란 부분을 잘 기억하셔야 온 하늘 앞에서 당신의 종의 충성심을 증명하여 완전한 순종만이 받으시는 바 된다는 것을 나타내며 구속의 경륜을 그들 앞에 더욱 완전하게 밝히고자 하셨대.
이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시험을 허락하신 목적이에요.
또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아들을 죽이라고 명령하신 것은 그의 믿음을 시험하시는 동시에 여기에 있고요 복음의 실제를 그의 마음에 새겨주기 위함이었대요.
여러분 아브라함의 아들은 안 죽었습니다. 이 때 하지만 복음의 실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는 그 복음의 실체를 알려주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죽는 것을 아무도 막지는 못하였습니다.
그건 죽어야 하였기 때문에 그래서 아들을 죽음에 내어주는 고통이 어떤 고통인지를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맛보게 하기 위해서 그게 복음의 실제이기 때문에 그걸 알려주기 위해서 하나님이 아들을 죽이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요구된 희생은 그 자신의 유익이나 후대의 이익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늘과 다른 세계들의 무제한 지적 존재들을 교훈하기 위한 것이었다.
온 하늘은 아브라함의 확고부동한 순종을 경의와 감탄 가운데 바라보았대.
온 하늘은 그의 충성됨을 칭찬하였대. 사탄의 고소가 거짓됨이 드러났다.
내가 이제야 너가 나를 경해한 줄을 알겠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에게 해당되는 게 아니고 온 우주의 거인들이 왜 그때야 감탄하고 경이롭게 놀라면서 아브라함의 순종을 보고 이야 아브라함이 이런 사람이지 이제야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이렇게 순종하는 사람인 줄을 알겠구나 이 말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은 이 사람들 온 우주의 거민들 앞에서 사탄이 고소한 그 아브라함에 대해서 하나님은 증명을 해야 하였습니다.
이게 아브라함에게 시험이 허락된 이유였어요. 사탄이 그를 고소하도록 허락하신 이유였습니다.
하나님 알아요 몰라요 알아요 누구는 몰라요 우주의 거인들은 아브라함의 마음을 모르기 때문에 모르지요.
그래서 여러분 조사는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게 아니에요.
인간의 구원의 과정과 인간의 마음 속에 있는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알려주기 위함이에요.
왜냐하면 그렇게 두루뭉실 하지 않고 정확하게 하지 않고 두루뭉실하게 구원 주고 두루뭉실하게 심판하고 나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한 오해가 생겨서 하나님의 이루신 심판의 결과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조사는요 여기 보셔요
각시대 대징투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이제 그는 사탄입니다.
그들의 사람들의 생애의 기록을 지적하고 그들의 품성의 결함과 그들이 그리스도와 같지 아니한 곧 그들이 구속주의 영광을 더럽힌 것과 바로 그 자신이 그들로 범죄하게 한 점들을 지적한 그리고 그는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자기 백성이라고 주장한다.
여러분 역사적으로요 강대국이 약소국을 지배하여서 속국으로 만들어서 지배를 하면 이익이 많죠 그런데 그 속국이 도저히 우리가 이 힘들어서 앞지에 못 살겠다 라고 독립을 하려고 하고 저항을 하려고 하면 순순히 지배하고 있는 나라가 허락해 줘요 짓밟아요.
순순히 허락한 나라가 제국이 없어요. 우리나라 일제 강점기 때도 어때요?
독립운동에서 우리나라의 독립을 찾으려고 하면 더 악랄하게 핍박하고 속국을 지배하려고 했습니다.
여러분 그게 세상의 법칙이에요. 근데 이건 영적인 법칙도 마찬가지예요.
여러분 인간이 범죄한 후 이 세상은 전부 사탄의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이 이루신 구속의 경륜을 따라서 사탄의 지배를 받지 않고 독립하여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겠다고 선언을 하면 사탄이 그렇게 하라 그럴까요?
어? 너 그렇게 예수 잘 믿고 하나님 자녀로 살아 그럴까요?
너 자기 자녀를 빼앗기는 그 사탄은 분노하여서 그 백성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사탄의 일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아무리 잘 믿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됐다 하더라도 그 자녀들을 살펴서 그들의 생애의 기록을 잘 보면서 그들의 품성과 결함과 그리스도와 같지 아니한 점 그들이 구속주의 영광을 더럽힌 자기가 시험하여서 유혹하여서 범죄한 점들을 다 까발려 놓고 지적해 가지고 하나님 앞에 드러내놓고 이건 누구 백성입니다 내 백성입니다.
그렇게 사탄이 주장한다 이 말이에요. 여러분 그러니까 하나님이 이 백성이 내 백성이라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니까 구원해 주면 되는데 여러분 사탄은
이 사람이 제대로 믿음대로 살지 못하는 점을 끄집어 내놓고 지적하면서 이게 내 백성이라고 하나님께 주장을 한다 이 말입니다.
그럼 하나님은 어떻게 하셔야 돼요? 이걸 지금 온 우주의 금민들은 보고 있어요.
여러분 사탄이 조사합니다. 사탄이 뭘 조사하는가 하면 우리의 잘못과 죄들을 들춰냅니다.
사탄이 조사해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데 세상 사람들과 별로 다르지 않아요.
한 비신자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그들에게는 진정한 사랑이 없어 보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우리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들의 삶이 우리의 삶과 별반 다른 것이 없어 보이는데도 말이지요.
여러분 세상 사람들이 교회 다니는 신자들을 보면 자기들하고 굉장히 다르다고 생각할까요 비슷하다고 생각할까요?
어떻게 생각하셔요? 여러분이 보시기에 세상 사람들하고 교회 안 다니는 사람 예수 안 믿는 사람들하고 여러분 보니까 굉장히 달라요.
비슷해요.
안식일날 교회 나오는 거 빼고 혹은 일요일 날 교회 나가는 거 빼고 무슨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하는 방법이라든지 미워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그 사람과의 관계를 이룬다든지 그게 전혀 다른 것 같아요.
그 사람들이 해결하는 방법이나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해결하는 방법이나 비슷한 것 같아요.
죄송하지만 별로 다르지 않아요.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교회를 욕합니다.
오늘 날은 소위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한 자들과 불신자들의 한계를 거의 구별할 수 없게 되었대.
교회의 교인들은 세상 사람들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고 있고 그들과 연합하고자 한다.
그러니까 여러분 사탄은 이 사람이 교회를 다녀도 예수님을 믿어도 그들의 죄를 들추워내고 예수님 앞에 가서 하나님 앞에 가서 뭐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이건 누구?
백성입니다. 이건 내 백성입니다. 여러분 그때 예수님이 뭐라고 주장을 해야 돼?
뭘 근거로 이 백성은 네 백성이 아니고 이 백성은 내 백성이다라고 말을 할까요?
여러분 그게
예수님이 조사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뭐를 조사하는가?
우리의 죄를 다 조사합니다. 그리스도와 같지 않고 그가 유혹하고 시험에 빠뜨려서 범죄한 모든 것들을 끄집어 내놓고 이게 내 백성입니다 라고 말할 그러면 예수님은 뭘 주장하냐 이 말이에요.
여러분 그게 조사 심판의 굉장히 중요한 이슈예요.
구원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사탄이 관련되어서 그 구원을 주지 못하게 막고 있고 온 우주가 타락하지 않은 거인과 천사들이 그 사람을 무슨 근거로 구원을 시키는지에 대하여 온 우주가 보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냥 좋은 게 좋은 거지 라고 할 수가 없어요.
많은 사람들 특별히 개신교인들이 이제 이 조선 심판 이야기가 나오면 믿는 자에게는 심판이 없다라고 말을 해요.
과연 그럴까? 믿는 자에게 심판이 없다라고 말하는 구절의 대표적인 구절이 요한복음 5장 24절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아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그다음 말이 뭐예요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봐라 이 성경 구절에 예수님을 진실로 믿었으면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않는다.
있어요. 그런데 이 심판이라는 단어가 그리스도 성경 언어로 크리스스라는 단어입니다.
이 심판이라는 이 크리스라는 단어가 심판이라는 뜻도 있고 다른 뜻도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정죄라는 뜻이 있습니다. 조지은 j지문라는 뜻도 있고 condemnation 정조라는 말이 있는데 똑같은 단어는 요한복음 3장 19절에서 이렇게 번역합니다.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이 빚은 예수 그리스도예요. 예수 그리스도가 빛으로 왔는데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해서 빚보다 어둠을 더 사랑했다 그래 빛으로 나오지 않는 거예요.
자기 어둠이 다 드러나니까 그게 세상 그 당시에 바리새인들이었고 예수님을
싫어하는 사람들이었어요. 여기 정제 그것 자체 그러니까 자기가 죄인이기 때문에 예수님 앞에 나오진 빚 대신 그들이 어둠이니까 빚 대신 예수님 앞에 나오지 않는 그 자체가 정제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게 크시스라는 단어에요. 심판은 이것이 이 뜻이 아니에요.
로마서 8장 2절에 보면 그 놈으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조함이 없다.
여기 카타 크리마라고 하는 단어가 이 크리마라는 카타 크리오라는 단어가 정조하다라는 단어는 동사인데 거기서 나온 명사인데 여기서 크리마라고 하는 단어가 크리시스의 동족 단어예요.
같은 의미. 그래서 여러분 여기에 믿는 자에게는 심판이 없는 것이 아니고 믿는 자에게는 정죄가 없는 거예요.
왜냐하면 그 정죄를 예수님이 받을 것이기 때문에 자 믿는 자에게 그러면 심판이 있는 것을 보여드릴게요.
로마서 14장 10절 내가 어찌하여 내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내 형제를 없이 여기느냐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여러분 로마서예요. 로마서는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교회에게 쓴 편지예요.
그러니까 이 편지를 보내는 사람도 신자고 이 편지를 받는 사람도 신자예요.
맞아요 그래서 이게 우리가 누구예요? 바울 자기를 포함한 이 편지를 받는 로마 교회의 성도들이 맞아요 그럼 믿는 신자예요?
아니에요 믿는 신자예요. 믿는 신자인 당신들 편지를 받는 로마 교회 교인들과 나 바울 내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겠대.
심판이 있다는 거예요. 또 봐요. 고린도 후서 5장 10절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합니다.
여기에 우리는 바울과 고린도 교회에 받는 신자들이 받는 편지에요.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가 고린도 전석 후석이기 때문에 여기도 우리가 다 바울은 자기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혹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되겠다라고 말하고 있어요.
또 봐요. 베드로 전서 사장 십칠절 이건 베드로가 쓴 말이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하나님의 집은 교회예요.
그렇죠 믿는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예요.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다 이 말이에요.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만일 우리에게 믿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집에서 먼저 심판을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 즉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겠느냐 이 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도 심판을 하는데 그렇다면 복음을 믿지 않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마지막은 결과는 어떻게 되겠느냐 이 말이 여러분 하나님을 믿는 사람도 심판을 하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도 심판을 하는데 심판의 종류가 달라요.
제가 어제 말씀드렸어요. 천연기 심판이 있고 천연기 전에 심판이 있고 천연기 후에 심판이 있어요.
그 대상이 달라요. 재림 전 조사 심판의 목적이 이렇습니다.
조사 심판은
죽은 자들 중에 누가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고 있으며 다른 말로 하면 누가 그리스도를 믿고 잠들었는가 이 말이에요.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첫째 부활에 참여하기를 하기에 합당한가를 자 노란 부분 읽겠습니다.
시작. 하늘의 주민들에게 게시해 준다. 이건 하나님이 알고자 하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은 다 알아요. 사람들의 믿음의 상태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조사가 필요한 거예요.
그것은 또한 살아있는 자들 가운데에도 누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고 있고 그러므로 그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도록 승천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분명히 알려준대요.
그러니까 여기서 제일 중요한 말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가 라는 거예요.
죽은 신자들 지금 살아 있는 신자들이 참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지 없는지를 온 우주 거민 앞에 확인시키는 작업이 지금 절차예요.
그래서 조사를 합니다.
자 그러면 왜 조사하는지는 이야기가 됐습니다. 하나님 때문도 아니고 무엇을 조사할까요?
아까 좀 말씀드렸습니다. 아까 얘기했던 말씀 다시 읽습니다.
이제 그는 사탄은 그들의 생애의 기록을 지적하고 그들의 품성의 결함과 그들이 그리스도와 같지 아니한 곧 그들이 구속주의 영광을 더럽힌 것과 바로 그 자신이 그들로 범죄하게 한 점들을 지적한 데 그리고 그는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자기 백성이라고 주장한다.
그 다음 말 보셔요. 예수께서는 그들의 죄에 대하여 변명하지 않으신다.
왜 그럴까요? 맞으니까 믿는 신자의 모습 속에 죄가 드러나고 세상과 똑같음이 드러나고 그런 게 있는 게 맞으니까.
그 다음 말 보셔요. 그러나 그들의 회계와 믿음을 보여주시고 그들이 용서받은 것을 주장하신 여러분 사탄이 사람의 죄를 끄집어내어서 예수님 앞에 끄집어내놓고 이 백성은 내 백성이다 라고 말할 때 예수님은 변명하지 않아요.
맞으니까. 그럼 예수님은 뭘 보여주길 원해요? 이 사람이 회계했다.
이 사람이
나를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내가 이 사람에게 받아야 될 죗값을 십자가에서 다 받고 희생했다는 사실을 믿고 있다.
그래서 니 말이 맞지만 내가 이룬 희생의 공로를 통하여 이 사람은 용서받았다 라고 말하고 싶은 거예요.
그럼 예수님은 뭘 조사하고 계실까요? 우리에게 회계가 있는지 우리에게 믿음이 있는지 여러분 이거 조사하고 계셔요.
지금 예수님은 우리 죄를 들추워내지 않아요. 죄는 사탄이 다 들 추워 놨어요.
그게 틀려요. 맞아요 맞아요. 그게 직업이니까.
사탄이 고소하는 자 참수하는 자 그게 사탄의 직업이 그거 들 추워내어서 사람을 멸망시키려고 하는 게 사탄이 본분이니까.
저는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습니다. 저기 창전동에서 제가 학교를 다닐 때 시험과 관련한 두 특별한 교수님이 계셨어요.
시험 문제는 대부분 공학 문제를 길게 푸는 문제들이에요.
한 교수님은 학생이 정답을 맞췄습니다. 그럼 10점 한 문제 한 다섯 문제 나오면 50점이 한 10점 다섯 문제에서 그럼 처음부터 다시 봐요.
혹시 식을 잘못 전개시켜 가지고 1점이나 2점을 좀 깎을 게 없는가 그 좀 끝 꼬투리를 잡아서 8점 9점 이렇게 주는 교수님이 있었어요.
저희도 굉장히 싫어했어요. 또 한 교수님은 아예 틀렸어요.
이 문제가 빵점 근데 그냥 두지 않고 처음부터 다시 보는 거예요.
혹시 뭐 비슷한 끈덕지라도 뭔가 이게 맞는 걸 전개를 시킨 게 있는가 찾아가지고 일 점이나 이 점을 주려고 찾는 교수님이 계셨어요.
저희들 굉장히 좋아했어요. 여러분 예수님은 어떤 분 같아요?
인간을 구원시키려고 애쓰시는 분 같아요
구원에서 떨어뜨리려고 애쓰시는 분 같아요 그렇죠?
그럼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을 하려면 반드시 뭐가 있어야 되는데?
회계와 믿음이 있어야 되는데 그걸 찾는 거죠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사탄은 우리의 죄를 조사하지만 예수님이 조사하시는 것은 우리의 죄가 아니라 회계와 믿음이에요.
자 그런데 우리가 회계가 했고 우리가 회계를 했고 믿음이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아요?
보여요 여러분 교회 다니면 보입니까? 교회 다니면 회계했다는 게 드러나요 믿음이 있다는 게 드러나요?
어떻게 생각하셔요? 세상 사람들이랑 비슷한데 여러분 믿음은 어떻게 확인되는지를 확인하셔야 돼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여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너에게 보이리라. 여러분 믿음장이라고 말하는 것이 히브리서 11장에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믿음으로 아벨은 그다음 나오는 말이 뭐예요?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대. 믿음으로 에녹은 그가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대.
믿음으로 노아는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다.
여러분 히브리서 11장은 그들이 다 믿음으로 행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뒤에 전부 다 뭐가 따라 나오느냐 하면 행함이 나와요.
맞아요 여러분 믿음은 절대로 지적인 머릿 속으로 끄떡끄떡 인정하는 게 믿음이 아니에요.
근데 많은 사람들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믿음은 머릿속으로 끄떡끄떡 하면 그게 믿음인 줄 알아요 죄송합니다만 그게 믿음 아니에요.
자 성경이 어떻게 구원받는가? 많은 부분에서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 그래요 근데 많은 부분에서 행함으로 구원 받는다 그래요 그거 아셔요?
제가 믿음으로 구원받다는 말은 너무 많기 때문에 한 개만 갖고 왔습니다.
너무나 잘 아는 구절 에베소서 이장 8절 구절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뭐로?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다음에 읽겠습니다. 시작.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왜 믿음대로 보응한다고 말하지 않고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을 한다 그래요.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심판하겠다는 뜻입니다.
인자 마태복음 16장 27절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때에 읽습니다.
시작.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뭐 한 대로 믿음 대로가 아니에요.
행한 대로 자 로마서 이장 육절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이런 거 굉장히 많습니다.
고린도 후서 5장 10절 아까 읽었어요.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 간에 그만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하므로 여러분 행함으로 구원받는다는 말이 굉장히 많고 성경에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는 말이 굉장히 많아요.
그럼 이거 두 개 충돌될까요? 여러분 이거 같은 말이에요.
근데 이걸 신자들이 잘 몰라요. 구원은 뭐로 받는다?
믿음으로 받는다. 그 믿음이 도대체 뭐냐는 거야.
그 믿음은 반드시 뭐로 나타나야 한다? 행함으로 나타나야 한대 행함으로 나타나지 않는 걸 성경은 뭐라고 말하지 않아요 믿음이라고 말하지 않아요.
그래서 조사 심판은 뭔가? 이 심판은 조사 심판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누가 죄를 지었는가를 조사하고 결정하는 게 아니라 읽어봅시다.
빨간 불이 시작. 누가 용서를 받고 현재도 은혜로서 그 용서를 유지하고 있는가를 확인하는 것이래요.
제가 제가 첫날에 용서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마태복음 이십장 일만 달란트 탕감의 비율을 가지고 이야기했습니다.
임금이 분명히 그 탕감 어마어마한 것을 탕감해 줬는데 그걸 탕감받고 가면서 자기에게 빚진 자가 얼마 되지 않는 그 사람의 목을 틀어쥐었어요.
그 이야기를 하면서 그 사람이 탕감을 받았다 못 받았다 못 받았대.
탕감을 받았다면 그게 뭐로 나타난다?
자기에게 잘못한 사람을 대하는 태도로 나타난대.
여러분 조사 심판은 예수님의 은혜와 그분의 십자가 희생 공로를 믿고 용서를 받고 현재도 그 은혜 안에서 용서를 유지하며 살고 있는지를 확인합니다.
근데 그게 옛날에는 내가 용서가 됐고 옛날에는 그런 은혜 속에 살았는지 몰라도 지금 안 된다 그럼 무슨 뜻이에요?
지금은 그 은혜를 내 것으로 삼지 못했다는 뜻이죠 맞아요 여러분 구원은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 아니에요.
죄악 속에 살다가 구원의 은혜 안에 들어올 수도 있고 은혜 속에 살다가 감동적으로 은혜 속에 살다가 떠나갈 수도 있어요.
마치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듯이 집이 그 집을 만든 목수의 성격을 드러내듯이 우리의 행함은 우리가 지닌 믿음의 본질을 드러낸 듯 왜 하나님은 우리의 행위보다는 우리의 믿음의 마음으로서 우리를 심판하지 않으시는가?
하나님이 그렇게 하지 않으시는 이유는 그분이 정보를 얻기 위해서 심판하시는 게 아니라 모든 것을 알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없는 그분의 창조된 존재들에게 보여주시기 위해 심판하시기 때문이다.
여러분 왜 예수님이 마음 속으로만 보고 이 사람이 믿는다 안 믿는다라고 보고 심판하는 게 아니냐면 온 우주의 거민들이나 탈락하지 않은 사람들은 우리가 믿는 마음이 뭔지를 몰라요.
우리가 믿는 마음을 안다고요? 모른다고요? 몰라요.
그래서 그 사람들은 우리의 삶이 어떤지를 보고 판단합니다.
조사 심판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그 믿음 우리가 그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공로를 받아들였다라고 하는 그 그 은혜와 공헌이 현재도 유지되고 있느냐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오늘 나는 예수님하고 관계가 멀어져 있거나 소원해져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님은 그런 우리에게서 사탄이 이거 내 백성입니다.
그렇게 말할 때 아니야 이 사람 믿음이 있어 이 사람 이렇게 회계했어.
이걸 보고 싶고 이걸 사탄 앞에 말하고 싶은 게 오늘 예수님이 조사하시는 과정이에요.
얼마나 안타까운지 몰라. 그래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교회에 그리스도인들에게 회계가 있고 믿음이 있는 것을 그분이 찾고 계시는 것이 지금 예수님의 모습이에요.
찾을 수 있을까요? 다른 성경 구절에 보면 이런 말씀합니다.
인자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연수원에 한 성도가 왔어요. 제가 용서에 대해서 설교했습니다.
저는 용서에 대해서 설교를 많이 합니다. 왜? 용서가 안 되면 우리의 신앙이 아무리 뭐라고 주장을 해도 용서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면 뭔가 잘못됐기 때문에 그래요.
이분이 카톡이 이렇게 왔어요. 목사님 은혜로운 말씀 감사합니다.
저는 친구에게 제가 먼저 지난 날들은 다 있고 예전처럼 살자고 했습니다.
마음이 후련합니다. 이번 연수에 잘 갔다 온 것 같습니다.
다음 문자가 또 왔어요. 목사님 매번 연수원에 갈 때마다 새롭고 말씀의 은혜 받게 받고 오게 되네요.
목사님께서 단에서 용서에 대한 말씀을 안 하셨다면 저는 죽을 때까지 마음에 품고 살았을 거예요.
제 자신도 반성하고 살아야 했을 텐데. 목사님 저도 남에게 상처 주는 말을 했겠지요 목사님 저도 반성하고 용서해 줌으로써 말을 할 때 다시 한 번 생각하고 하네요.
목사님 감사합니다. 여러분 그 제가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여러분 제가 용서에 대해서 설교한다고 해서 다 용서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이 용서가 되려면 그분이 나를 용서하신 그 용서가 확인이 돼야 돼요.
그게 감동이 돼야 돼. 여러분 빚을 탕감해 준 그 기쁨이 있는데 그 자유함이 있는데 그 감사함이 있는데 생각만 해도 너무 고마운데 그거하고 비교할 수 없이 빚진 사람의 목을 어떻게 틀어지고 갚으라 그러겠냐 이 말이에요.
있을 수가 없는 거죠. 이 감동이 내가 빚을 탕감받은 이 감동이 사람만 있으면 나의 채무자에게 탕감해 주는 거는 쉽다 어렵다 쉽다.
그래서 대징투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진심으로 죄를 회계하고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피를 그들의 속재 재물로 주장한 사람들에게는 하늘의 책에 제가 넷째 날 책이 여러 권이 있다고 그랬습니다.
생명체 기념책 또 죄의 내용들을 기록한 그래서 하늘 성소가 더러워졌다고 그랬습니다.
지상의 성소도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정과 그들의 잘못 범한 죄로 인해서 레위기 십약 16장 17절에 지성소를 속제하고 회막을 속제하고 하늘 지성소도 인간의 피로보다 더 나은 그리스도의 피로 전결하게 되어야 된다라고 하늘 성소가 더러워지는 것은 인간의 죄의 기록이 거기에 남아 있기 때문에 그럼 언제 그것이 없어지는가 진심으로 죄를 회개하고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피를 그들의 속재 제물로 주장한 사람들에게는 하늘의 책에 기록된 그들의 이름 아래 용서받았다는 말이 기록된다.
그래서 이 죄의 기록을 도말하는 그 작업이 하늘 지성소에서 하나님이 하늘 지성소를 하늘 성소를 정결하게 하는 작업이고 지금 하고 계셔요.
그래서 오늘 우리는 정말로 내가 예수님을 믿고 받아들이고 그분의 공로를 내가 깨닫고 내가 오늘 내 삶 속에서 열매를 맺고 믿음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살면 이 조사 심판은 아무 두려울 게 아니에요.
맞아요 근데 믿기는 믿는데 계속 제화 살아 그리고 또 반성도 하고 이해도 하고 여러분 개신 교회에서 로마 가톨릭 교회를 향하여 뭐가 잘못됐다 뭐가 비성경적이다고 말하느냐 하면 고해 성사는 비성경적이다라고 말을 합니다.
죄는 누구 앞에 고백해야지 하나님 앞에 고백해야지 한 방에 들어가 가지고 사전에 저 쪽에 커튼 가리고 앉아 있는데 어 이렇게 이렇게 잘못했습니다.
어 그래 가서 저 고아원에 가서 백만 원 기부하고 뭐 어떻게 어떻게 선을 행하고 그러면 그거 갖고 나오는 거예요.
여러분 그거 성경에 잘못됐다고 말해요 잘못된 거예요 분명히 잘못된 거예요.
죄는 누구 앞에 회개해야 되는데 하나님 앞에 회개해야 돼요.
그런데 우리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신자들 교회 다니는 계신 교인들은
고해성사 같은 잘못은 하지 않아요. 근데 죄 짓고 또 회계하고 죄 짓고 또 회계하고 어떤 사람은 죄 짓고 회계도 안 하고 비슷해요.
그러니까 회계하는 삶에 힘이 없다는 거죠.
여러분 하나님이 심판을 끝내고 나면 세상은 이렇게 온 우주는 이렇게 판단합니다.
이렇게 심판하시니 뭐 하다 의로우시도다. 심판하시는 것이 참 되시고 의로우셔도 여러분 이 세상에 재판하는 사람이 어떤 재판을 했을 때 모든 사람들이 재판의 결과 과정을 다 보고 나서 이야 저 재판관 판사 정말 재판 잘했다.
여러분 이거 재판 잘 한 거예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 재판의 결과나 과정을 보고 나서 부당하다.
이거 잘못됐다. 여러분 그렇게 말하면 뭔가가 문제가 있는 거죠.
하나님이 이루신 인간을 구원하고 진실이 드러나고 악인들을 멸망하고 의인들을 옹호하고 구원하는 모든 재판에 대해서 멸망받는 악인들 구원받는 의인들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는 타락하지 않은 우주의 거민들과 천사들까지 심지어 사탄까지 하나님이 행하신 심판은 뭐 하다?
의롭다. 다른 말로 하면 공의롭고 공평하고 자비롭고 공의하다.
이걸 전부 다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게 조사 심판의 결과입니다. 예수님은 이 말이 나오지 않는 심판을 진행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 알리는 것입니다. 이 사람 내가 구원하는 이유는 이것 때문이야.
사탄 너 주장하는 거 맞아 그러나 내가 이룬 희생의 공로를 이 사람은 믿고 받아들여서 그걸 어떻게 압니까?
입으로 말하는 거 그거 못 믿습니다. 그래 이 사람의 열매를 봐.
예수님은 그걸 보여주고 싶은 거예요. 여러분 예수님의 안타까운 마음을 아시겠어요?
이거 굉장히 심각한 거예요. 우리가 교회 다닌다고 실물 경우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때에 교회와 연결되었지만 그리스도와 연결되지 않은 사람이 드러날 것이다.
여러분 지금은 몰라요. 지금은 동네 교회 연결되고 어느 아무 교회 연결되어서 다 믿는 사람처럼 보여.
그 때에 교회와 연결되었지만 그리스도와 연결되지 않은 사람이 드러날 것이다.
저런 교회와 연결되는 것은 교회는 그리스도의 머리 되시는 몸된 몸이에요.
몸에 연결되면 머리에 연결돼야 되는데 몸에만 연결되고 사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분의 위대한 계획이 완전한 성취를 향하여 한 발 한 발 전진할 때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의 동조와 시인을 받으시며 반역자들을 최종적으로 멸망시킬 때도 온 우주의 찬동과 시인을 받으실 것이다.
하나님이 하시는 그 일에서 이 사람 구원하고 이 사람은 멸망하는 모든 일 속에서 온 우주가 합당하다고 박수를 칠 것이라 이 말입니다.
여러분 그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에요. 왜? 그래야만 다시 한 번 반역이 일어나지 않으니까.
하나님에 대해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서 물음표 하나 딱 붙어버리면 그다음부터 하나님 섬기는 일이 굉장히 이상하니까.
여러분 그러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여러분 오늘 우리를 향한 일이 저 고등법원이나 대법원에서 나의 관련된 일이 지금 재판에 관련되는 일이 판사들이 막 지금 그걸 심의하고 있다면 마음이 굉장히 편할까요 불편할까요?
불편하겠죠 그렇죠? 굉장히 삶이 진지할 거예요.
막 깔깔거리고 이렇게 살기 힘들 거예요. 예 그렇다고 해서 막 우거지 상으로 살 필요는 없어요.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삶은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사망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진지할 필요는 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엘레나이 씨 둘째 아들이 열아홉 살 생일을 맞았을 때 장문의 편지를 씁니다.
그 마지막 부분에 이렇게 기록합니다. 이제 내 생애의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된대.
기록하는 천사의 책에서 새로운 책장이 열린다. 그 책장에는 어떤 기록이 남게 될까?
그 책장이 하나님에 대하여 소홀히 한 것이나 성취되지 못한 의문에 대한 기록으로 얼룩지게 될까?
하나님께서 금하신다. 사람들과 천사들이 살펴보도록 공개해도 부끄럽지 않은 그런 기록이 남도록 하여라.
이 새해는 새로운 한 해는 우리처럼 2025년 새해가 아니고 미국에는 만나이니까 자기 생일 다음에 한 해가 돌아오는 거예요.
그 새로운 생일 다음의 한 해를 맞이했을 만 열 아홉 살이 우리나라 나이로 한 스물 스물 한 살 그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사람들과 천사들이 살펴봐도 그것을 앞에 공개해도 부끄럽지 않은 기록이 남도록 살아라.
여러분 오늘 우리가 사는 삶의 모습을 기록을 우리가 알고 있고 우리 가족만 좀 알고 있는 게 온 우주 앞에 사람들 앞에 드러나면 부끄럽지 않을까요 부끄러울까요?
여러분 그게 만약에 부끄럽다면 고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태도를 바꿔야 된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우리가 만약에 구원받지 못하면 우리가 나중에 구원받지 못하면 우리가 은밀하게 지은 죄 혼자서 나만 알고 있어서 그래서 구원받지 못한 모든 죄가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이 이 사람이 왜 구원받았는지 받지 못했는지를 그걸 보고 확인할 겁니다.
아 저 사람이 교회에 와서 이렇게 설교하고 이렇게 앞에서 뭐 하고 장로하고 집사하고 목사하고 이렇게 했는데 혼자 있을 때 그리고 우리가 모를 때 이런 은밀한 죄를 짓고 살았구나.
그것이 사람들 앞에 다 드러나서 왜? 우리 눈에는 그 사람이 신실한 모습만 보이니까 근데 그 사람이 한일 천년기 때 구원을 못 받았다 이 말이에요 없다 이 말이죠 그럼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쾌을 막고 붙는다는 거죠.
왜 이 사람 구원 안 시켰습니까? 그거 계속 놔두면 의문이 붙잖아요.
그 사람한테 기록이 다 간다 이 말이에요.
이 사람 이래서 구원 못 받았어 아 그랬군요 이 사람이 그러니까 오늘 우리가 구원 못 받으면 구원받은 사람들이 우리가 왜 구원을 못 받았는지에 대하여 우리가 살았던 모든 삶의 기록들 다 올라가 있으니까 그것들을 확인하면서 이 사람이 이렇게 구원 못 받았다 라고 나중에 확인한다니깐요.
얼마나 부끄럽고 왜 부부를 이유도 없어 우리는 이미 죽었으니까 그때는 굉장히 심각한 거예요.
오늘 나의 기록을 놓고 뭐예요 이 사람이 이래서 구원을 못 받았구나.
그런 이야기가 오고 간다는 건 너무 서글프잖아. 여러분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
그러면 정말로 제대로 믿어야 정말로 제대로 믿음이 뭐냐는 거죠.
그래서 성경은 싸우라 그래요. 디모데전서 사장 십이절 믿음에 선한 싸움을 뭐 해라 여러분 싸움은 좋은 거예요 나쁜 거예요?
네 싸움은 좋은 거예요 나쁜 거예요 싸움은 다 나 봐요.
딱 하나 빼고 이 싸움 믿음의 선한 싸움
이걸 위해서 부름받았다는 거예요. 날마다 그는 그는 영적 왕국에 들어가고자 결심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앞에 보면 그는 헌신을 새롭게 하고 날마다 악과 맞서 싸워야 한다.
옛 습관들 악으로 기울어지는 유전적 기질은 언제나 지배권을 쥐려고 분투할 것이다.
이것들에 대하여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경계하여야 하며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승리하고자 분투 노력해야 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고린도 전서 9장에는 내가 복음을 전파한 후에 내가 구원받지 못할까 봐 뭐 내 자신을 철서 복종시킨다고 그랬습니다.
이런 바울도 자기가 구원해서 떨어질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내 자신을 쳐서 복종시킨다. 마치 운동 선수들이 금메달 따는 것처럼 자기를 절제하는 것처럼 나는 생명의 면류관을 얻고 썩어질 면류관이 아닌 그 멸류관을 얻기 위해서 내가 내 자신을 쳐서 복종시킨다 그랬습니다.
여러분 그 일이 우리에게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 구원은 성경에 읽어보면 값없이 주는 선물이라고 그러는데 왜 분투 노력해야 돼요 사탄이 살아 있어요.
여러분 누가 공짜로 선물 준다고 그래도 그거 받아서 가지고 사용하려고 그래도 노력이 필요하고 선택이 필요하고 애를 써야 합니다.
누가 자동차 하나 준다고 그래 뭐 그거 관리하려고 하려면 애 써야 돼요.
구원은 선물인 것이 맞지만 그것이 그렇게 쉽게 우리의 죄된 본성 그대로를 가지고 살아가기에는 그 구원을 누리는 삶은 어렵다는 것이지요.
기 보시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한 가지 죄를 마음에 품거나 한 가지 그릇된 행습이 생애 가운데 남아 있다면 온 심신이 오염된데 그 사람은 불의의 도구가 된대.
여러분 여러 가지 죄가 아니에요 딱 한 가지 여러분 암 세포 하나가 내 몸에 생기면 그걸 제거하지 않으면 어떻게 돼요?
잘합니다.
https://youtu.be/QbMNXe-qmQE?list=PLWP5B6z6O6reXoqeggPsF5neX8sRjET2C
그래서 암 세포를 제거하지 않으면 물론 잘 관리해서 더 커지지 않게 관리하며 사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암세포는 자라요.
결국 하나의 암세포가 자라면 사람을 뭐 해 파괴시키고 죽입니다.
여러분 아담 하와는 한 가지 죄를 범했습니다. 자 이야기 드리고 마칠게요.
누가 한 말일까요? 나는 내가 만났던 어떤 다른 사람들보다 디엘 무디와 더 많은 분란을 겪었다.
저는 이 글을 처음에 읽었을 때 디엘 무디 아내인 줄 알았어요.
이 말을 한 사람은 뒤에 무디에 나는 내가 만났던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 디엘 무디와 더 많은 분란을 겪었다.
다른 말로 말하면 디엘 무디와 싸웠다는 것입니다.
누가 싸웠다 이거야 자기하고 우린 자기하고 싸워야 돼요.
자기의 죄 댄 욕망 자기가 먹고 싶고 마시고 싶고 말하고 싶고 행동하고 싶은 그 욕망과 싸워야 돼.
자기와 싸우지 않으면 남하고 싸웁니다.
근데 자기하고 싸워보면 못 이겨요. 그렇게 싸우려고 애쓸 때마다 우리에게는 그리스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여러분 이 세상은 곧 끝납니다. 여러분 살아보셨잖아요 지금 칠십 팔십 오래 사신 것 같아요 금방 사신 거 같아요 여러분 저도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육십이에요.
와 세월이 너무 빨리 가요. 보이는 것은 잠깐이고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 그랬습니다.
우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 맞아요 그런데 그 구원은 그냥 믿습니다.
한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그 믿음이 무엇인지를 우주 고민들이 보고 있어요.
그 사람들이 합당하게 저 사람은 하나님께서 왜 구원하셨는지에 대해서 타당하다고 여겨져야 되요.
그런데 사탄은 우리의 죄를 들 치워내고 예수님은 그런 우리에게 회계와 믿음을 찾아내기 위해서 애를 쓰고 계십니다.
오늘 여러분과 제가 사탄이 더 당당하게 우리를 자기 백성이라고 주장하도록 죄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고 우리에게서 회계와 믿음과
그에 따른 삶의 아름다운 열매들이 찾아지는 아름다운 성도들 재림 신자들 또 하나님의 백성들 되며 살아 가십시다.
여러분 그렇게 사는 거 어려워 보이지만 예수님이 그 길 먼저 가셨고 도와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안식이 시작된 시간 이 새해에 연초의 이 집회가 오늘 우리의 마음에 다시 한 번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고 그리스도를 온전히 더 신뢰하는 그런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 저희가 믿는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정말 자신을 살펴보고 남들이 우리를 보더라도 믿지 않는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그렇게 믿음에 불성실하고 믿는다고 말하지만 열매 없이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사탄은 볼 때마다 하나님 앞에서 이것은 내 백성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어 아버지 하나님 그때마다 예수님은 변명하지 못하고 우리에게서 회계와 믿음을 찾고 계시는데 그것을 얼마나 당당하게 찾아서 사탄에게 주장하며
이 사람은 너 백성이 아니라 내 백성이라고 말하고 있는지요 오늘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에게 회계가 있는지 정말로 믿음이 있는지 열매 맺히는 믿음이 있는지를 돌아보게 하셔서 예수님이 사탄 앞에서 당당하게 이 사람은 이 집사는 이 장로는 내 백성 내 아들이고 내 딸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우리가 되도록 열매 맺는 회개하는 삶 온전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 주실 능력도 바라보며 그 예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는 온전한 성도로 2025년을 살아가도록 힘 더 하여 주시옵기를 우리 주님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