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얻기 위해서는 그 이름에 맞는 일을 한다던지
그 모양을 보고 정한다.
사람들은 말한다.
다듬어야지 관리자가 무관심하여 두니 산만하다느니, 자신들의 의견을 쏟아 낸다.
내가 들은 말만도 수없이 많다.
돈을 들여서 가지치기를 해 주어야 한다
왜 좋은 나무를 방치하느냐? 뭐 기억하지 못할 정도이다.
그냥 웃어 넘긴다. 나무의 속성을 알기에, 죽곡정사의 역사를 알기에.
나무는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몸을 만든다. 죽곡정사의 역사와 함께 해 온 매화나무는 두 그루가 있다.
동쪽에 와룡매와 서쪽에 들매가 있다.
동네분들이 회봉을 생각해서 들에 있던 매화를 캐다가 심어 주었다는 들매 죽곡정사 서쪽에 있는 들매
가지가 마당을 덮어서 한쪽 가지를 잘라냈더니 덩그렁하게 한 줄기만 남았다. 저 뒤쪽에 하얀진달래가 있는데 작년까지는 하얀 꽃을 피웠는데 올해는 기력이 약해졌는지 꽃 한송이도 안 보인다. 진달래도 관리를 좀 해 주어야 할 것 같다.
거친 언덕에 묻힌 지 몇 년이 되었나 埋沒荒崖問幾年
오늘밤 초당 앞엔 눈 속에 달이 떴네 今宵雪月草堂前
하루아침에 마음이 같은 벗을 얻어서 一朝致得同心友
백천번 매화를 둘러보니 미칠 듯하네 繞樹百千顚放然
메고 와 준 마을 사람들 매우 감사하고 舁來多謝洞中人
얼음과 옥 같은 참모습 가장 사랑스럽네 最愛天姿氷玉眞
천년 세월 알아주는 이 없음을 탄식하는데 堪歎千載無人識
회옹에게 눈 오는 밤에 봄을 전한 이 뉘였나 誰寄晦翁雪夜春
<-‘옮겨 심은 들매화 移植野梅’ 전문 회봉유고>
서쪽에 들매는 옥같이 하얀 꽃으로 매실도 당당하다.
해마다 열매를 주워다가 식초도 만들고 즙도 만든다.
그때마다 나는 이 시를 생각한다.
나무를 심어 두고 친구를 얻은 듯 반가워했을 회봉선생
이야기로 전하는 것은 그냥 이야기로 남을 뿐이다.
죽곡정사에는 알려지지 않은 사연이 있다.
회봉과 의병장 안규홍 장군과는 형제항렬의 인척이다.
안장군이 노동에서 일경과 싸우다가 (두 명이라고도 하고 한명이라고도 하는데 확실하는 모름) 죽이고 피신을 하였다. 그 당시 노동면의 흥학당 사건은 제법 큰 사건이었단다. 2016년도 조사결과 인재를 키워내던 흥학당은 이 사건으로 폐쇄된 것으로 보인다.
노동에서 쫓기다가 안장군이 죽곡정사로 피신을 하였다.
당시 회봉은 죽곡정사에서 가르치던 학생들마저 일제의 강압으로 집으로 돌려 보내고 홀로 지내고 계실 때란다.
안 장군이 피신을 해 오니 목판을 보관해 오던 벽장에 숨겼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일경이 죽곡정사에 들이닥쳤다.
회봉선생은 마루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 어인 일로 이 누추한 곳까지 "
"의병 한놈이 도망을 했는데 찾고 있소."
"여긴 보다시피 늙은 나 혼자 있는 곳인데 여기까지 오겠소. 다른 곳에 가 보시요"
회봉의 흔들림 없는 태도와 말씀에 일경들은 집을 뒤지지 못하고 나갔다고 했다.
그 벽장은 지금도 그대로 보존이 되어 있다. 이 사연은 오로지 집안에 전해 오는 이야기일 뿐, 어디에 기록 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행하고도 그 행함을 알리지 않고자 했던 회봉의 높은 선비정신을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스승 연재선생의 죽음 이후 회봉은 오로지 죽곡정사에 머물며 천지만물과 대화를 했던 듯
시에 나오는 '눈 속의 달' 그 시린 세월을 살았던 회봉 선생의 안타까운 마음이 시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벗이 찾아올 때 누대에 달빛 가득하니 有客來時月滿臺
추운 밤 찻잔을 드는 것도 무방하리라 不妨寒夜引茶盃
뜰 나무에 잔설이 남은 것도 잊어버리고 却忘殘雪着庭樹
봄빛이 벌써 매화나무에 있나 의심하네 疑是春光已在梅
<-‘달빛 아래서 벗을 맞아 月下迎友’ 전문 회봉유고>
달이 있는 밤, 친구와 찻잔을 기울이며 나누었을 대화의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어둡고 추운시절을 살아내야 했던 선비들의 비분강개?
요즘 항간에서 떠들어대는 선거에 대한 이야기는 참 하차잔은 이야기이다.
적어도 그 당시는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었으니 말이다.
눈 내리는 달밤 산창에 홀로 앉았는데 雪月山窓獨坐時
겨울 매화 소식은 진정 더디고 더디네 寒梅消息正遲遲
친구는 떠났어도 남은 향기 있으니 故人已去餘芳在
그리운 마음 맑은 시로 낭랑히 읊는다 朗詠淸詩有所思
< -‘눈 내리는 달밤에 홀로 앉아 雪月獨坐’ 전문 회봉유고 >
눈 내리는 달밤에 겨울 매화더러 소식이 더디다니, 떠나간 친구는 언제쯤 올 것인가?
회봉은 죽곡정사 동쪽 방에 기거하셨다. 와룡매는 동쪽 연못 위에 있다. 산창은 이 방문을 일컫는다.
산창에 와룡매의 그림자가 비췄나보다.
회봉선생이 남긴 매화에 대한 시다.
올해도 매화꽃이 진혼곡처럼 곱게 피었다.